요즘 국정원장 후보자 청문회로 좀 떠들썩한데, 그 사람의 자격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는 개인적 생각을 이런 공개적인 블로그에 드러내고 싶지는 않다. 그냥 내가 이 유명인사(?)를 딱 한번 만났던 나름 팔팔했던 그 시절이 기억이 떠올라 몇 자 적어본다.


남재준 육군참모총장을 만난 건 지금으로 부터 바야흐로 9년이나 지난 2004년 3월~4월 쯤이었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이..) 2004년 3월에 포병 소위로 임관하고 전남 장성의 상무대에서 OBC 교육을 받던 어느 날이었는데 이 날 육군참모총장의 강연이 있다는 것이었다. 상무대에는 보병, 포병, 기갑 등 주요 전투 병과들이 모두 모여있어서 교육받고 있는 3월 임관 초임장교들이 바글바글 했는데 이들이 모두 강당으로 모여서 참모총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뭐 이해는 가지만 육사 출신 소위들이 가장 앞쪽에 배치되어 앉았고 우리 같은 ROTC 출신 소위들은 그 뒤를 이어 쪽수로는 가장 많게 강당을 채우고 앉았는데 우리 중에는 사실 육군참모총장의 이름도 모르는 이들이 수두룩 했으리라 생각된다. 지루할 것 같다, 잠이나 자야겠다 뭐 이런 흔한 농담이나 쑥덕거리며 잠시 웅성웅성하던 중 '쉬엇!' 하는 구령이 울려퍼지자 모두 순간 샥~! 조용해지며 각을 탁 잡았다. 


드디어 왼편에서 네 개의 별이 박힌 계급장을 번뜩이며 자그마한 체격에 성공한 군인들이 그러하듯 꼿꼿한 자세와 작지만 반짝이던 눈빛, 그리고 깨끗하고 흰 얼굴에 곱게 빗은 백발, 야무진듯 얇은 입술의 남재준 총장이 자신있게 뚜벅뚜벅 걸어왔다.


순간 강당 맨 앞쪽의 육사 출신 소위들이 '와~~~~!!!' 하며 환호성을 지르며 참모총장을 뜨겁게 환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 ROTC출신들은 '응?' 하며 뒤늦게 박수나 좀 칠 뿐이었는데 우리에겐 육사 애들의 그런 반응이 무척 낯선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린 아무래도 단기 복무 장교들이 대부분이라 꼭 필요한 군사 교육 외에는 장교단으로서의 고급 교육을 늘 받지 못한지라 현역 장성들의 강연을 들을 일도 없었고 '별 = 높은 사람 = 우린 어차피 못(안)달 계급' 의 공식이 강해 지금 등장한 참모총장이 우리의 선배이자 내가 이룰 꿈과 목표라는 생각은 대부분 없었다. 그러니 스타가 등장한 듯 환호를 지르는 육사 애들의 모습은 참 낯설면서도 왠지 우리가 촌놈이 된 것 같이 은근히 기가 죽는 일이었다.


육사 애들의 환호성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등장한 남재준 참모총장은 가운데 서더니 정식 보고도 받기 전에 한마디를 날렸다.


"총장 멋있나?"


"네!!!! 멋있습니다!!!!" (이 때도 육사 애들만 대답한 거 같다.)


"나는 제군들이 더 멋있다" 


"와아아아아아~~~~" 


또다시 육사애들이 떠나갈듯 함성을 질렀고, 역시 우리는 또 멍~ @_@


육군참모총장을 총장이라고 줄여부르는 것조차 우린 익숙치 않았다..대학 총장이나 총장이지. 순간 무슨 말인지 머뭇거렸던 동기들도 많았다. 그러나 딱 두 번의 멘트 만으로 한 명의 육군참모총장이 천여명이 넘는 초임 소위들을 휘어잡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 후 첫 공식 행사였던 우리의 임관식 때 들었던 틀에 박힌 멘트 '조국의 간성이 되어 어쩌고 저쩌고..' 이런 말보다 참모총장인 자신보다 제군들이 더 멋있다고 해준 그 한마디에 누구나 가슴이 뜨거워지는 순간이었다. 길게 하든 짧게 하든 별 것도 아닐 수 있는 소위 계급장 하나 달기 위해 2년~4년간 달려온 초임 장교들에게 보내는 참모총장의 멋진 찬사였다고나 할까.


사실 그 날의 주요 강연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남재준 참모총장이 등장하며 던졌던 그 한마디는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 비단 군대 뿐이 아니라도 어떤 조직에서 구성원들의 마음을 그 짧은 순간에 얻어내는 자신감과 카리스마는 정말이지 대단한 것이었다. 그 장면 하나로 남재준 참모총장은 나에겐 참 멋있는 군인으로 남게 되었는데 요즘 국정원장 후보로 다시 등장하시니 문득 그 때가 떠올라 주절주절 적어봤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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