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김기찬 작가의 작품집 이름을 제목으로 쓰고나니 부담스럽고 송구스런 마음이 한가득이다.



나의 유년시절 추억 중 골목길과 관련된 것은 안타깝게도 거의 없다. 아파트 단지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라면 대부분 비슷하겠지만 나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 내게 골목길이 친숙하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며 시작된 서울 생활부터였다. 학교 앞 주택가는 촌놈들이 기대하던 으리으리한 서울의 이미지와는 크게 달랐다. 다세대 주택이 밀집한 복잡하고 좁은 골목길과 고르지 못한 보도블럭, 곳곳에 널린 쓰레기와 복잡하게 얽힌 전깃줄과 기울어진 전신주들... 하지만 그 낡고 지저분함 덕분에 나는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카메라 한대를 어깨에 둘러메고 골목을 돌아다니는 것은 출사가 아닌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요란하지 않아도 됐다. 골목에는 거친 콘크리트의 질감이 있었고, 대문 옆에 놓은 작은 화분이나 보도블럭 사이에서 피어난 민들레 같은 소박하고 예쁜 눈요기 거리도 있었다. 다세대 주택의 가스배관들은 패턴을 만들어 줬고 대문과 창문의 모양도 저마다 다양했다. 그리고 골목에는 아이들이 있었다. 



2000년 10월 녹천

Nikon F3HP / ai-s 50mm f1.4 / Kodak TMX




2000년 10월 녹천

Nikon F3HP / ai-s 50mm f1.4 / Kodak TMX




2001년 7월 황학동

Nikon F3HP / AF85mm f1.8D / Kodak TMX




2001년 9월 무악동

Nikon F3HP / AF85mm f1.8D / Kodak TMY




2001년 9월 신설동

Nikon F3HP / ai-s 50mm f1.4 / Kodak TMY




2003년 7월 이문동

Nikon F3HP / ai-s 28mm f2.8 / Kodak TMX




2003년 12월 이문동

Nikon F3HP / ai-s 28mm f2.8 / Kodak TMY




2003년 12월 이문동

Nikon F3HP / ai-s 28mm f2.8 / Kodak TMY



사실 나의 골목길 사진들은 농익지 않은 아마추어 사진가가 찍은 그저그런 사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다큐라든지 기록이라든지 심도 깊은 고민과 주제 의식을 가지고 일관된 작업을 해왔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오늘 찍은 이 장면이 지금이야 평범하고 흔한 모습이겠지만, 언젠가는 시간의 가치가 더해지리라는 막연한 기대 정도가 있었을 뿐이다. 김기찬 작가께서 열정을 바쳐 평생 작업해왔던 사진들에 비해 겨우 흉내나 낸 내 사진들은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겠지만, 번뜩이는 감각과 창의적 예술성 따위란 애시당초 없었던 나의 한계로는 할 수 있는게 그것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런 보잘 것 없는 내 사진을 나 혼자만이라도 소중히 생각하는 이유는 그 시절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돈은 떨어졌어도 카메라 하나, 필름 한롤만 있으면 몇시간이고 돌아다닐 수 있는 시간이 있었고 낯선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고 아이들과 놀아줄 수 있는 앳된 젊음이 있었다. 


그 시절 그 골목길들은 여의도나 강남같은 화려한 서울의 겉모습에 가려진 또 하나의 서울이었고 나에게는 오히려 더 어울리고 편안한 서울이었다. 서울이 고향이 아님에도 이따금씩 서울이 그리워지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골목길과 그곳에서 만났던 아이들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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