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이 대세이던 시절에는 이른바 럭셔리 똑딱이라 불리는 기종들을 각 사에서 한두개씩 내놓았었다.


대부분의 공통점은 광각 계열의 밝은 단렌즈를 탑재하고 조리개우선 등의 자동노출 시스템을 갖추고 렌즈의 성능이 렌즈교환식 카메라와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우수하다는 점이었는데 이 같은 장점은 애호가들의 전천후 에버레디 카메라로서 혹은 출사시 서브 카메라로서 안성맞춤이었기에 신품가 기준 70~100만원에 가까운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많은 인기를 누렸었다.



손꼽히는 카메라들이 Contax T3, Leica Minilux, Minolta TC-1, Ricoh GR-1 등이었는데 내 선택은 T3였다. 




2002년 겨울 쯤 당시 기준으로 70만원 정도나 하던 T3를 회현지하상가에서 신품으로 구입했었다. 칼자이즈 35mm 2.8 Sonnar 렌즈를 탑재한 담배갑만한 사이즈. 이거 하나면 언제 어디든 들고 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시만해도 자가인화를 하던 시절이라 확대기에 T3로 찍은 필름을 걸었을 때의 느낌이 생생하다. 이 작은 렌즈에서 찍혀진 결과물이라 믿을 수 어려울만큼 날카로운 선예도와 강한 콘트라스트. 옆에서 지켜보던 동기가 뱉은 말이 기억이 난다.


'아 내 카메라도 팔아버리고 이거 하나 달랑 들고 다닐까?'




당시 혜화동에는 암실이라는 까페가 있었다. 말그대로 까페에 암실이 있는 특이한 곳이었는데 여기서 돈을 내고 인화를 할 수도 있었는데 나야 학교에서 암실을 이용했기 때문에 그 곳에서 작업하진 않았지만 독특한 분위기가 좋고 그 곳에서 즐겨 인화하던 친구를 따라 가서 도와주기도 하며 여러차례 갔었다. 어느날 저녁인가도 암실에 들렀는데 친구의 지인이 암실에서 인화된 사진을 들고 나오며 희희낙락하는 걸 마주쳤었다. 


'야 이것봐. 죽이지 않냐? 이거 뭐로 찍었게?'


'형 라이카 쓰잖아요? 주미크론으로 찍은거 아녜요?'


'아니지롱~ 짠! 이것봐. 예쁘지? 이걸로 찍은거야. 콘탁스 T3! 야 이거 죽이네 진짜.'


나와는 직접 알던 사람은 아니라 별 말 않고 있었지만 당시엔 참 '방정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그 양반이 그렇게 호들갑 떨 정도로 T3의 결과물은 상당히 훌륭하기는 했다.





군입대 후 T3는 당분간 놀게 되었다. T3를 대체한 카메라는 올림푸스 뮤2였다. 귀하신 몸 T3는 탄창 주머니에 넣고 돌아다닐 수는 없어서 대안으로 마련한 것이었는데 같은 35미리 화각에 개방값도 2.8로 동일했다. 조리개우선을 지원하지 않았지만 어차피 똑딱이는 대부분 P모드로 찍는지라 별 상관이 없었고 렌즈의 선예도도 상당히 우수한 편이라 군에서 잘 사용했었다. 내구성이 다소 떨어져서인지 말그대로 전투형으로 사용해서인지 전역하기 전 마지막 혹한기 무렵엔 이미 초점이 엉뚱한데 맞으며 짧은 생을 마감했다.




전역 후 회사원이 되면서 다시금 T3는 늘 가방속에 들어서 거의 대부분을 시간을 함께 하게 되었다. 2004년경 요도바시 카메라에서 구입한 속사케이스에 싸여서 서류 가방 한구석에 한두롤을 필름과 함께 늘 들어있던 T3는 그야말로 나의 에버레디 카메라. 회식 자리에서나 아님 잠깐의 외근에서나 필요하면 언제나 톡톡톡 누를 수 있었던 소중한 존재였다.




그러나 2010년경부터는 나도 디지털이 주력이 되면서 거의 5년간 T3를 놓고 살았는데, 그동안 이효리 효과로 중고가가 치솟는 기이한 경험을 겪었다. 대부분의 필름 카메라들이 X값이 된 와중에 T3는 지금 팔아도 살 때 가격을 보장받을 수 있단 사실에 이거 그냥 팔아버릴까 하는 생각을 한두번 한 것이 아니었지만 결론적으로 지금까지도 잘 살아 남아있다. 




그리고 2015년..   5년만에 다시 필름 사진을 시작하며 새로 주문한 필름이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필름을 넣어준 카메라는 T3였다.




T3의 기계적 성능이야 별달리 언급할 것이 없고 장단점도 명확히 알려져있지만 그래도 리뷰니 몇 가지만 언급해보자면.




▶ 장점


작은 크기, 우수한 렌즈... (뭐가 더 필요한가)



▶ 단점


1. 고질적인 베리어 고장 : 자동 카메라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렌즈 베리어 부분이 아무래도 충격을 받으면 쉽게 고장날 수 있는데 고장 정도에 따라 국내 가능 혹은 일본 ㄱㄱㅆ이라고 한다. 그런데 외부의 강한 충격에 의한 것이 아닌 자연스런 고장은 대부분 내부 접점의 접촉불량이나 이동 범위 오류에 따른 것으로 부품 교체 등을 요하지 않고 수리가 가능한 것으로 수리점에서 수리 불가 판명 받은 T3를 '병동사'님이 직접 수리하여 공개한 적이 있다. 따라서 수리점 말만 무조건 믿고 큰 돈을 들이지 않아도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2. 필름 로딩 에러 : 필름을 넣었을 때 자동으로 로딩이 되지 않고 헛도는 현상이 간혹 있다. 필름 스풀의 돌기가 다소 낮고 뭉툭해서 제대로 못거는 경우가 있는데 나는 자가로 수리했다. 돌기 부분을 칼로 좀 깎아서 좀 더 두드러지게 해줬는데 그 후 전혀 문제가 없다.



3. 감도 수동 설정 불가 : 이 정도 가격대면 감도 수동 설정 정도는 가능해야 좋을는데 DX코드만 인식된다. 뭐 전원켤 때 마다 플래쉬 설정 만져줘야하는 미니룩스에 비하면 이정도는 참아줄 수 있다. 




Contax T3는 최초 발매된지 이제 15년이나 지난 기종이 되었다. (벌써? ㄷㄷ) 필름 시대가 저물면서 더이상 이런 카메라는 나올리가 없기에 어쩌면 T3의 인기는 여전히 높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직 필름을 사용한다면 이런 고급 똑딱이에 매력을 한번쯤은 누구나 느낄 수 밖에 없는데 라이카의 손맛도 좋고 니콘의 단단함도 좋지만 이렇게 가볍고 작은 카메라를 주머니에 쏙 넣고 다니다 쓱 꺼내서 톡톡 찍어대는 스냅의 묘미도 만만치 않은 즐거움이니까 말이다. 









2007.01 서울 / 400TX / 미니룩스를 사용하던 친구







2007.12 포항 / APX400 / 지금은 사라진 송도해수욕장 방파제의 횟집들







2008.04 포항 / APX400 / 송도해수욕장








2008.04 대구 / APX400 / 삼성라이온즈 개막전. 경기가 잘 안풀렸던 걸로..







2008.05 후쿠오카 / RDP III






2008.05 후쿠오카 / RDP III

 






2008.07 부산 / TMX / 영도다리 밑








2008.08 군산 / Centuria 100 / 지금은 사라진 육교







2008.08 군산 / Centuria 100 / 군산역 도깨비 시장 가던 길








2008.08 군산 / Centuria 100 / 군산역 도깨비 시장








2008.08 포항 / Centuria 100 / 구룡포 해녀들의 잠수복





2008.10 대구 / 400TX / 민뿡형 유부초밥 되던 날








2009.01 서울 / 400TX / 후임 귀 꼬집기






2009.02 부산 / 400TX / 거가대교 건설 중일 때. 아직은 '섬'이던 가덕도








2010.12 경주 / TMX / 경주 남산 등산 중







2015.07 경주 / Color Plus 200 / 건천 5일장






2015.07 포항 / TMX / 포클 포항지부







2015.09 경주 / Delta 100 / 자화상







2015.09 경주 / Delta 100 / 매복 포인트에서






2015.09 경주 / Delta 100 / 매복 포인트에서






2015.09 경주 / Delta 100 / 매복 포인트에서






2015.10 제주도 / C200 / 동생과 스벅질






2015.12 대구 / APX100 / 평광동 광복 소나무







2015.12 대구 / APX100 / 시골집에서






2007.12 포항 / APX100 / 김치~~~! 하고 달려오던 아이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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