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ica IIIa & Elmar 3.5cm f3.5


지인께서 선물로 주시고 가신 바르낙과 역시 또 다른 지인이 그의 지인으로 부터 선물받은 엘마 35미리 렌즈의 조합. 역시 바르낙은 예쁘다.




IIIa의 정면샷. II 모델들에 비해 스트랩 고리와 저속셔터가 추가된 것이 III 모델들의 가장 큰 특징. 바르낙형 라이카는 IIIc 이후부터는 상판의 제작 방식이 기존 단조에서 주조 방식으로 바뀌고 상판의 높이가 다소 높아지게 된다. IIIa는 단조바디의 단단한 만듦새와 컴팩트함을 즐길 수 있으면서 저속과 1/1000초를 사용할 수 있는 완성에 가까운 바디라 할 수 있다. 셔터소리나 조작감 등은 물론 이후에 나온 IIIf나 IIIg가 더욱 훌륭하지만 바르낙다운 컴팩트한 매력은 역시 IIIa가 아닐까. 물론 이쁘기로 치면 IId 블랙 페인트가 최고라 생각.




상부의 모습. 오밀조밀 위치한 각종 다이얼과 레버와 노브들이 조화롭게 아름답다. 필름 이송과 셔터 장전을 위해 노브를 돌리면 셔터 다이얼과 되감기 노브가 같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상판 각인은 언제나 옳다. 저게 없는 바디들은 너무나 밋밋하다.




IIIa 부터는 드디어 1/1000초가 가능해진다. 시리얼번호를 조회해본 결과 1937년 생산분으로 확인됐다. 올해로 무려 팔순이 되신 분.. ㄷㄷ 








바르낙의 파인더는 포커싱창과 프레이밍창으로 나뉘어져 있어 왼쪽 창에서 초점을 맞추고 오른쪽 창에서 구도를 잡는다. 당시 라이벌인 Contax II는 이를 하나의 파인더에서 가능케 했지만 라이카는 M3가 등장하기까지 이같은 방식에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덕분에 초점을 맞춘 후 다시 구도 맞춤을 위해 눈을 옮겨야하는 불편함이 따르는데 인간의 적응의 동물이라 또 쓰다 보면 그러려니 하게 된다. 프레이밍창은 좁긴 하지만 맑고 밝은 편이나 프레임 라인은 별도로 표시되지 않고 보이는대로 꽉차게 찍었을 때 약 40미리 정도의 화각이다. 바르낙에 흔히 쓰는 50미리 엘마같은 걸로 찍을 경우는 파인더에서 보이는 것 보다 조금 적게 찍힌다는 걸 감안해야 한다. IIIa까지는 여전히 포커싱창과 프레이밍창의 간격이 제법 넓지만 IIIb 부터는 두 창이 가깝게 붙어서 눈을 옮기기 수월해진다. (뭐 그래도 불편하긴 매한가지;)




필름카운터는 수동으로 리셋해둬야한다. 역시 불편하지만 재미라면 재미.




Leica IIIa와 Contax IIa의 사이즈 비교. 바르낙의 컴팩트함을 다분히 의식한 듯 Contax IIa는 Contax II에 비해 제법 작아졌지만 여전히 바르낙에 비하면 크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상판의 배치는 확실히 Contax가 간결하게 설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Leica IIIa & Contax IIa



한롤도 못찍어보고 일단 오버홀하러 서울로 떠났다. 셔터속도 및 작동이 불안정했고 이중합치상의 상하가 틀어져있어서 굳이 테스트해볼 생각은 않고 오버홀 부터 해주고 제대로 써보고 싶다. 얼른얼른 돌아오길.


포항에서 구룡포만큼 요근래 들어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 있을까 싶다. 

호미곶 남쪽에 위치한 구룡포는 10년전만 하더라도 사실 굳이 관광차 찾는 이들은 많지 않았던 한적한 포구였다. 과메 덕분에 이름이 알려지고 일본인 가옥거리가 정비되어 볼거리도 생기면서 찾는 이가 많아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요즘같은 늦겨울에 구룡포에 사람이 붐비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이 맘 때가 제철인 대게 때문이다. 




의기양양하게 대게 한 마리를 손에 든 할아버지께서 사진을 찍어달라시기에 한 컷 눌러 드렸다. 대게가 살아 있다며 집게가 움직이는 것을 보여주시던 할아버지는 결국 집게에 손가락을 물려서 게를 떨어뜨리셨다. 주변의 일행분들은 모델이 영 별로니 사진을 지워버리라고 했지만 그럴 수야 있나. :)










밤새 차가운 동해바다에 나갔다 돌아온 배에서는 대게가 끝없이 쏟아져 나온다. 


















크기와 상태에 따라 대게는 놀라운 속도로 분류된다. 보통 새벽에 이뤄지는 죽도시장 경매와 달리 배가 들어오는 시간이 늦은 듯 구룡포에서의 대게 경매는 9시 전후는 되어야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경매 시간이 늦기 때문에 경매인들은 물론 관광객들까지 어판장 안에서 뒤섞여 정신이 없지만 그들의 손놀림은 빠르고 눈썰미는 날카롭다.







경매가 끝난 물건들은 가판에서 곧바로 판매된다. 게는 어쨌거나 껍질 까보기 전에는 상태를 알 수 없다고 하지만 상인들은 좋은 게와 그렇지 않은 게를 귀신같이 안다. 물론 우리같은 비전문가들도 경험치가 누적되면 어느 정도 판단 기준이 생기긴 하지만 게를 살 때마다 불안한 것은 어쩔 수 없다. 나 같은 경우 차라리 살이 덜 찬 걸 좀 싸게 달라고 하거나 비싸도 좋으니 제대로 된 걸 달라고 정공법으로 나가는 편이 좋았다. 그래도 속으면 어쩔 수 없다.




구룡포 어판장에서 구입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가성비가 높은 것이 백고동이 아닐까 싶다. 저 나무 한 판 가득의 백고동이 보통 2만원대. 그러다 보니 대게를 쪄가는 사람들이 별 기대없이 곁다리로 같이 사가는 경우가 많다. 먹어보면 알겠지만 사실 끼워팔기 신세에 처할 녀석이 아니다. 




경매가 끝나고 다시 트럭에 오르는 대게들. 구룡포의 대게는 이렇게 트럭에 실려 전국 각지로 나가게 되는데 상당수는 영덕으로 올라가기도 한다. 대게라고 하면 그동안 영덕이 워낙 유명하다보니 이 쪽에서 잡힌 대게도 영덕으로 팔려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과거와 달리 구룡포도 이제는 대게로 유명세가 높아진 탓에 과거에 없던 대게 식당들이 많이 생겨났다. 사실 어획량 기준으로 구룡포 쪽은 결코 영덕에 뒤지지 않는다 한다. 



 

거적에 덮혀 마구 쌓여있는 대게들도 있었다. 악취가 제법 나기에 여쭈었더니 죽어서 썩은 대게들로서 따로 모아서 비료로 쓴다고 한다. 사실 바닷가 쪽에서 이런 식의 비료는 흔했는데 냉동 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과거에 청어 따위가 많이 잡히면 다 먹지도 못하고 멀리 내다 팔수도 없으니 하니 비료로 쓰곤 했던 것이다.






















하역 작업이 끝나고 경매도 마무리되면 어판장에서 들려오던 왁자지껄하던 고함 소리와 경매종 소리가 사라지고 시간이 다시 느리게 흐르기 시작한다. 어제부터 이어진 긴 하루가 끝난 선원들이 담배를 태우며 휴식을 취한다. 볕이 따셨다.




달달한 커피 한 잔이 절로 생각날 터. 다방에서 커피를 시키면 배 위로 가져다 준다. 엄청난 서비스다.




커피 뿐이 아니다. 중국음식도 배 위로 올라온다.




고된 일을 마치고 갑판 위에서 먹는 짜장면의 맛은 어떨까? 촬영도 촬영이지만 일행과 함께 침이 넘어가는걸 참기가 어려웠다.




배에서 내릴 때 손 잡아주시는 모습이 훈훈했다.










짧은 휴식이 끝나면 배는 다시 바다로 나갈 채비를 한다. 설비를 점검하고 밧줄을 싣고 배에서 쓸 가스통도 새로 넣어야 한다.




구룡포는 그렇게 분주한 오전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평소에는 한적하기 그지 없는 곳이지만 이 때만큼은 엄청난 활기를 띄는 곳. 대게가 제철인 2월의 구룡포다. 




그리고...

사진만 찍고 도저히 그냥 올 수가 없어서 딱 두마리만 사왔다. 두마리 밖에 없으니 평소보다 더 알뜰하게 더 느긋하게 음미하면서 먹게 되는 즐거움이 있었다.



2017.02.26. 포항 구룡포

Ricoh GR













































































2017.01.28.

Hexar AF / Kodak 400TX / IVED


자신과 가까운 주변의 모습은 원래 하찮게 여겨지는 것일까? 

포항에 살면서도 포항에는 참 사진 찍을 곳이 없다고 생각해왔다. 유명한 명승고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유서깊은 오랜 동네도 없으며 시가지의 모습도 그리 포토제닉하지 않다. 게다가 대중교통이 그리 편리하지 않은 지방 도시라 어딘가로 갈 때도 걷기 보단 자가운전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우연에 기댄 필연의 순간을 포착할 기회마저 우리에겐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뉴욕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서울 정도만 되었어도 걸어다니다 셔터를 누를만한 다양한 순간을 매일 같이 거리에서 마주했을텐데 말이다.




사진을 오래 찍어왔다는 사람들 대부분이 마찬가지겠지만 우루루 몰려다니는 출사를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 유희로서의 즐거움은 분명하나 사진 자체를 위해서는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서로의 위치와 간격을 수시로 파악하고 의식해야 하다보니 촬영 자체에 온전히 집중하기 어렵다. 어쩌다 동시에 꽂히는 장면을 발견하기라도 하면 모두가 달려들어 셔터를 눌러대기 십상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너무나 쉽게 눈에 띈다는 점이다. 여럿이 몰려다니며 사진을 찍는다는 건 스냅 작가로서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을 스스로 자초하는 일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여럿이 출사를 나가게 됐을 때 분명 부인하기 어려운 장점 하나가 있다. 바로 든든하다는 것! 군대도 다녀오고 마흔이 다되어가는 사내들이라 하더라도 혼자 사진을 찍으러 다닐 때는 사실 적잖은 용기가 필요하다. 아무도 시비걸지 않는 풍경 사진을 찍는다면 차라리 속 편하겠지만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촬영 스타일이라면 언제 어디서든 험한 꼴을 당할 각오를 해야한다. 하지만 여럿이 되면 이 부분에 있어서는 다소 안심이 되는 것이다. 설사 내가 생선 파는 아줌마로부터 소금물 한 바가지를 얻어 맞거나 왜 내 사진을 찍었느냐며 달려드는 거친 바다 사내에게 맞서야할 상황이 벌어질 때, 적어도 말려줄 사람은 있지 않은가. 




정식 모임 이름도 없고 정기적으로 만나지도 않지만 어느새 고유 명사가 되어버린 '포항지부'의 존재는 그런 측면에서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나이도 직업도 고향도 모두 달랐지만, 스냅 사진을 절대적으로 선호하고 작고 단정한 카메라를 즐긴다는 취향이 서로 맞았다. 억지스럽게 서로를 배려하지 않아도 각자가 알아서 편안하게 사진을 찍기에 부담이 되지 않아서 좋았다. 그러한 교집합들로 인해 느슨하면서도 은근히 야무진 결속력과 소속감을 느낄 수 있었고 이러한 든든함을 바탕으로 비로소 죽도시장을 카메라에 제대로 담기 시작할 수 있었다. 서로가 없었다면 사실 쉽지 않았을 작업들. 어느새 1년이 넘도록 죽도시장을 꾸준히 다니고 있다. 포항에 사진 찍을 곳이 없던게 아니었다. 




그러던 중 중간 정산의 의미로 지난 1년간의 작업을 정리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포항에 사는 이상 계속해서 이어나갈 작업이긴 하지만 지난 사진들을 돌아보며 앞으로의 방향도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했다. 통합된 주제전의 형식보단 멤버들 각각의 사진을 병렬식으로 나열하여 그들의 다양한 시선을 동시에 볼 수 있는 형태로 진행해 보기로 정했다. 다같이 모여 포트폴리오를 보며 일관되고 흐름이 느껴지도록 작품을 선별하여 구성해보고 싶었지만 직장인이자 가장인 우리가 그런 시간을 만들어내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10컷의 선택은 전적으로 각자의 판단에 맞길 수 밖에 없었다. 사전 조율없이 제출된 40장의 사진이라는 구슬을 꿰어야 하는 나로서는 적잖이 부담이 되는 일이었다. 비슷한 이미지들이 중복되거나 구성의 흐름을 해치는 컷들이 많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얘기가 나오고 불과 이틀 만에 40장의 사진이 정해졌다. 그렇게 각자가 고른 40컷을 보고 있노라니 일부러 모여서 셀렉팅을 한 것 이상으로 조화로운 구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그동안 서로가 찍어온 컷들을 봐왔기에 죽도시장 사진을 내라면 누가 무엇을 낼 것인지 어느 정도는 예상이 됐다. 그런데 이번에 모인 사진들을 보니 그 예상과는 많이 다르다. 이른바 '대박 컷'을 양보한 흔적이 역력하다. 단일 컷으로는 끝내주던 작품도 전체적인 흐름을 고려해 일관성이 다소 떨어질 수 있는 이미지들은 최대한 배제하고, 다른 멤버의 대박 컷과 중복될 만한 컷들은 아쉬워도 과감히 빼낸 듯 하다. 




내가 했던 걱정은 기우였음에 분명하다. 






▶ 민뿡


"죽도시장에 온전히 속해있는 사람들과 그 공간을 잠시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그 어느 곳에도 편하게 속할 수 없었다.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취미'라는 이름으로 셔터를 누르는 내가 설 자리는 마땅치 않았다. 그들과 같은 시선과 감정을 가지려는 욕심을 버리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기로 한 후에야 나는 비로소 카메라를 꺼내들 수 있었다. 어중간한 거리에서 어중간한 화각으로 담아낸 사진들을 보여준다는 것. 더군다나 다른 멤버들의 사진들과 함께라니 무척이나 부끄러워진다. 조심스레 골라본 나의 사진들을 사진 본연의 가치인 '기록'으로서 보아 주기를 바래본다."













































▶ 주아비


"한 주의 모자란 잠을 보충해야 할 주말 아침, 나는 죽도시장으로 향한다. 어판장의 아침은 싱싱한 생선과 활기로 충만하다. 이 곳에는 물 좋은 생선을 좋은 가격에 입찰하려는 어깨 넓은 중도매인들과 엄중한 카리스마로 이들을 리드하는 경매사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각본 없는 드라마는 때론 긴박하게 때론 느긋하게 스스로 완급을 조절하며 흐르고, 나는 그 흐름에 자연스럽게 녹아 든다. 주어진 셔터스피드는 1/60초. 어판장과 호흡을 맞추려 애쓰다보면 같은 주파수로 공명하는 순간이 있다. 바로 셔터를 릴리즈 할 때이다. 여기 2016년 한 해 죽도시장에서의 공명의 시간을 모아보았다. 1초도 채 되지 않는 1/6초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잠시나마 나의 주파수에 동조해주길 희망한다. STAY TUNED!"













































▶ 은빛연어


"어시장은 바다를 가장 가까이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겉에서 바닷가 주변만 서성거리는 것에 비해 바다 속에서 건져올린 주인공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며 그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어시장이다. 이런 어시장이 평범한 우리에게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은 특유의 활기찬 분위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활기는 바로 긴장과 속도에서 비롯된다. 아침 어시장은 혼을 쏙 빼놓을 정도로 분주하다. 그렇게 사람도, 사람의 말도, 눈앞의 생선도 급하게 나타났다 사라지는 이유는 바로 생선의 신선도를 유지해야하기 때문이다. 갓 잡아올린 생명력을 최대한 보존해서 육지의 사람에게 전달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급하고 분주하고 긴장된 공간에서 사진 촬영은 무척이나 생경한 일이다. 촬영은 흐르는 시간을 정지시킨다. 찰나를 포착한다. 셔터를 누름과 동시에 뷰파인더 속에서 그 긴장감은 정지된다. 상인들의 생계, 생업의 순간을 정지시켜 아름다움과 예술의 세계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바다와 육지의 차이만큼 어시장 상인들의 활동과 촬영 활동은 서로 대칭에 있다. 이렇게 어시장에서 건져올린 사진 속에는 갓 건져올린 활기와 죽음, 속도와 정지, 생업과 예술 이란 여러가지 퍼즐들이 서로 대칭되어 담겨있다. 이런 여러가지 극단의 대비들을 사진 속에 건져올리는 것이 어시장 촬영의 매력이다."













































▶ PIYOPIYO


"비상식과 비효율로 가득찬 회사에서의 일주일을 겪고나면 내 몸과 마음은 지치고 피폐해진다. 힘겨운 일주일을 보내고 얻어낸 주말 아침, 늦잠을 자봐야 더 피곤하더라는 것은 경험으로 익히 알고 있지 않은가. 흑백 필름을 넣은 단촐한 카메라를 하나 들고 죽도시장을 찾는 일이 잦아졌다. 팔딱거리는 물고기 만큼이나 생기 넘치는 새벽 죽도시장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는 것은 무척이나 흥분되는 일이었다. 물론 그 곳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생업의 현장을 그저 겉돌며 바라보기만 하는 나의 시선과 심리적 거리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 그렇게 찍은 사진들 역시 결국은 피상적이고 심도 얕은 아마추어의 수준을 넘어서긴 어려우리라.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셔터를 정신없이 누르는 한시간 남짓의 시간은 지난 일주일간 복잡하게 뒤엉킨 내 머릿 속을 리셋하고 지친 마음을 재충전 하는데 충분한 시간이다. 죽도시장에 촬영할 거리가 많다기보단 그런 이유 때문에 죽도시장을 더 자주 찾았던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무엇보다 바쁘고 힘든 와중에도 미소를 잃지 않던 그 곳 사람들의 모습에서 나는 다시 용기와 희망을 얻을 수 있었다."



 








































포항 죽도시장, 지난 1년의 기록들

사진 : 민뿡, 주아비, 은빛연어, PIYOPIYO

글 : PIYOPIYO
























2017.01.22. 포항

Contax IIa / Carl Zeiss Tessar 50mm f3.5 / Kodak 400TX / IVED



Zeiss Opton Biogon 35mm f2.8 T




RF카메라를 사용하는 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화각은 단연 35미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 좁지도 넓지도 않은 화각 탓에 편안하게 두루두루 운용할 수 있는 35미리 렌즈는 거리 사진과 보도 사진 분야에서 널리 인기를 끌었고 각 메이커들은 저마다 우수한 35미리 렌즈의 개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하지만 20세기초 표준렌즈와 장초점 망원렌즈의 발전에 비해 광각렌즈의 발전은 상대적으로 더뎠고 오늘날까지도 성능을 인정받는 '제대로된' 35미리 렌즈의 출현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 


소형카메라의 선두주자이던 라이츠사는 1930년 Elmar 3.5cm를 출시했다. 당시 자이스이콘은 아직 Contax I 조차 발매하지 못했던 때였으니 라이츠의 엘마는 가장 빨리 등장한 35미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에 자존심이 상했던 것인지 Contax I이 출시되고 난 후에도 칼 자이즈는 35미리를 아예 건너 뛰어버리고 더 넓은 화각인 28미리 테사를 발매하며 그들의 기술력을 과시한다. 그리고 정작 35미리 화각은 Contax II가 발매되고 난 뒤인 1937년에 처음 출시하게되니 바로 칼 자이즈 예나 비오곤이었다. 비로소 '제대로 된' 35미리 렌즈가 사진계에 등장한 것이었다.



역사적인 첫번째 비오곤. Carl Zeiss Jena Biogon 35mm f2.8 (uncoated)


35미리 비오곤은 당시로선 대적할 상대가 없는 최고의 35미리 렌즈였다. 라이츠에 비해 한발 늦었던 만큼 성능상으로 엘마를 완전히 압도하고 있었는데 최대 개방값은 f2.8에 달했고 놀라운 해상도와 극도의 왜곡 억제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는 후옥의 크기가 극단적으로 크고 플렌지 백이 엄청나게 짧은(21미리 비오곤보다 더) 특유의 설계로 달성할 수 있었던 놀라운 성능이었다. Elmar 3.5cm의 최대개방값은 f3.5에 머물렀고 해상도는 사실상 열악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당시 비오곤과 엘마의 성능 격차가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2차대전 전에 생산되었다고 하여 전전형(pre war) 비오곤이라 불리게 되는 Carl Zeiss Jena Biogon 35mm f2.8은 종전 이후까지 생산이 지속되며 당대 최고의 35미리 렌즈라는 지위를 내려놓지 않았다. 후기에 들어서는 T코팅이 더해지는 개량이 이루어졌고 전쟁 기간 중에는 특이하게도 라이카 스크류 마운트용으로도 잠시 생산되었다. 



라이카 스크류 마운트용 35미리 비오곤. 


전쟁 중 드레스덴의 자이스이콘 공장이 폭격을 맞아 카메라 생산을 못하게 되자 예나의 렌즈 공장 역시 위기에 처한다. 렌즈를 만들어봐야 이를 장착할 카메라가 없는 것이었다. 이에 궁여지책으로 자이스이콘은 콘탁스용 렌즈들을 라이카용으로 제작하여 판매처를 뚫기로 한다. 종전 후 이같은 변종들은 더이상 생산되지 않았고 생산기간이 짧다보니 생산량도 상당히 적어 구하기는 물론 쉽지 않다. 하지만 구할 수만 있다면 마운트할 수 있는 바디가 제한적인 콘탁스용에 비해 훨씬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하지만 명성을 날리던 전전형 비오곤은 1950년, Contax IIa가 등장하면서 뜻밖의 문제에 맞딱드린다. 앞서 얘기한 커다란 후옥과 짧은 플렌지백 때문에 Contax II에 비해 소형화된 Contax IIa에 장착이 되질 않는다는 점이었다. 최고의 성능을 자랑하던 비오곤 35미리를 쓸 수 없다니, 이건 심각한 사안이었다. 물론 자이스이콘이 이같은 문제를 몰랐을리는 없고 바디의 소형화를 달성하기 위해 희생시켰을 가능성이 크다. 어쨌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원투수로 동독 칼 자이즈 예나에서 설계된 Biometar 35mm f2.8이 급히 투입되게 된다. 이때만 해도 영구적이고 완전한 분단이라 여겨지지 않았던 터라 동독과 서독의 교류는 유지되고 있었고 비오메타를 공급받을 수 있었다는 점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비오곤과 비오메타. 한 눈에 봐도 렌즈 후옥의 길이가 짧은 것을 알 수 있다.




 Zeiss Opton Biogon 35mm f2.8 T



하지만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될 수는 없었고 서독의 Zeiss Opton은 곧 새로운 비오곤을 출시하게 된다. 덕분에 위에서 언급한 비오메타 35미리는 1,614개만 생산되고 사라지게 되어 레어 아이템으로 등극하게 된다. Zeiss Opton Biogon 35mm f2.8은 이전의 비오곤과 구분하기 위해 전후형 비오곤으로 불리게 되는데 Contax IIa에 마운트 할 수 있기 위해 새롭게 설계된 것으로 후옥의 크기가 작아지고 길이가 짧아진 것이 특징이었다. 출시 초기부터 단종 때까지 코팅의 변화 외에는 구조적으로 크게 변하지 않은 50mm Sonnar와는 달리 흥미로운 변화라 할 수 있다. 아래의 그림을 통해 그 변화를 확인해보기로 하자.





최초의 비오곤은 조나 타입으로부터 파생되었는데 후옥이 크기가 전옥보다 큰 특유의 구조를 확인할 수 있다. 전전형 비오곤은 전쟁 후 두갈래로 나뉘어 발전하게 되는데 전쟁 후 소련에서 생산된 주피터-12 렌즈는 전전형 비오곤의 설계를 거의 그대로 이어받은 반면, 서독에서 생산된 전후형 비오곤은 앞서 언급했듯 Contax IIa에 사용되기 위해 후옥의 크기가 작아지고 길이도 짧아진다. 




마운트된 전후형 비오곤. 짧아졌다지만 필름면 가까이 상당히 들어와있음을 볼 수 있다.




전전형 비오곤(좌)과 전후형(우) 비오곤의 비교. 후옥의 길이가 짧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바로 이 점이 전후형 비오곤이 가지는 핸디캡이었다. 바디에 맞추기 위해 비오곤의 완벽한 설계에서 타협이 이루어졌다는 의심을 받게 된 것이다. 이때문에 전후형 비오곤은 콘탁스 마운트 비오곤 타입 35미리 렌즈들의 성능을 논할 때 주피터-12 보다도 한수 아래라는 평가를 받는 렌즈가 되고 말았다.


이것은 사실일까? 실제 전전형과 전후형 모두를 써본 유저들의 대체적인 평가는 해상도 만큼은 전전형이 탁월하다는 쪽이다. 전후형 비오곤의 짧고 작아진 후옥을 고려해 봤을 때 전전형에 비해 해상도와 왜곡 억제력이 다소 떨어졌을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 하지만 나는 아직 두 렌즈를 1:1로 비교한 결과를 보지 못해서 선뜻 수긍이 가지는 않는 것이 사실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과연 전후형의 해상도가 다소 떨어졌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확연한 차이가 날 것 같지는 않다. 엘마와 비오곤이 60:100이라면 전후형과 전전형은 90:100의 느낌은 아닐런지. 그리고 해상도 측면에서만 렌즈를 평가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더군다나 고해상도 렌즈와 고화소 이미지 센서들이 당연시된 요즘 시대에 올드 렌즈를 사용하면서 기대하는 요소는 뛰어난 해상도만은 아니란 점에서 전통적인 시각을 무조건 따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 전후형 비오곤에 대한 평가는 여러가지 개선점들을 고려하여 다시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Contax II에서 IIa로 이어지면서 이루어진 소형화, 그리고 디자인의 개선은 비오곤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루어졌다. 전전형 비오곤이 다소 투박한 디자인과 마감을 보여줬다면 전후형 비오곤은 훨씬 세련된 디자인과 컴팩트함을 이루어냈고 크롬 코팅의 품질도 개선되어 아름다운 광택을 자랑한다. 거기에다 개선된 T코팅이 적용되어 역광에서는 물론 칼라 필름 사용시에도 보다 안정적인 결과물을 보장해준다. 결국 종합적으로 고려해봤을 때 전후형이 보다 우수한 성능이라고 봄이 더 타당하지 않겠냐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 바닥이 그러하듯 객관적 성능과 정밀하게 측정된 수치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전설'은 분명 존재한다. 전전형 비오곤은 그런 면에서 전설의 대열에 오른 렌즈였지만 전후형 비오곤은 아쉽게도 그러질 못했다. 그렇게 된 이유로 두가지를 들고 싶다. 


① Biogon 21mm f4.5의 출현. 

비오곤 35미리의 출시 후 얼마지나지 않은 1954년 칼 자이즈는 21미리라는 놀라운 화각의 비오곤을 출시한다. 전에 없던 광활한 화각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충격적이었을 이 렌즈는 광학적 성능마저 뛰어났다. 비오곤하면 21미리가 먼저 떠오를 정도로 임팩트가 강한 렌즈의 등장으로 상대적으로 35미리 비오곤은 한마디로 묻히게 된다. 


② 라이츠의 약진

앞서 언급했듯 전전형 비오곤이 출시되던 당시 라이츠에서 내세울 수 있는 35미리 렌즈는 해상도 낮고 코팅도 적용되지 않고 개방값도 어두운 Elmar 뿐이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당시 비오곤의 성능은 라이츠를 포함한 여타 경쟁사들의 렌즈들을 압도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전전형 비오곤은 독보적인 위치를 확보하고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전후형 비오곤은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라이츠는 엘마에 비해 모든 면에서 성능이 향상된 Summaron 35mm를 출시하고 있었고 1958년에는 그야말로 신화가 된 렌즈, Summicron 35mm 1st, 일명 8매를 선보이게 된다. 이건 그야말로 두 회사의 35미리 경쟁에서 종지부를 찍어 버리는 일이었다. Contax IIa가 61년 단종되며 콘탁스 마운트 렌즈들 역시 같은 운명을 따르게 되면서 주미크론에 대항할 f2.0개방값의 비오곤은 결국 시장에 선보이지 못했다. 이처럼 전전형과는 달리 경쟁 상대를 압도하지 못했던 상대적 지위 역시 전후형 비오곤이 다소 박한 평가를 받게된 이유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이러쿵 저러쿵 하는 호사가들의 얘기를 별개로 치더라도 전후형 비오곤은 좋은 렌즈임에 틀림없다. 출시 당시 콘탁스용 교환렌즈 중 세번째로 비싼 가격이었고 깔끔한 외관 디자인과 고급스런 크롬 광택이 아름답고 비오곤 다운 컴팩트한 사이즈 역시 매력적이다. 초점링과 조리개링은 아주 부드럽게 작동되어 만지작 거리는 재미도 크다. 더군다나 상대적으로 구하기도 어려운 물건인 탓에 소유에 따른 만족도도 높은 렌즈라고 할 수 있다. 


21미리 비오곤과 50미리 조나라는 걸출한 두 렌즈 사이에 가려 콘탁스 마운트 렌즈들 중에서 그 이름은 드높지 않지만 역시 비오곤은 비오곤이다. 시중에 돌아다니는 물건이 많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바디가 제한적임에도 불구 여전히 만만치 않은 가격을 자랑하지만 Contax 유저들이 선택할 수 있는 35미리의 폭이 좁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 렌즈 역시 Must Have Item이다. 보이면 사야하는 렌즈다. 




Contax IIa / Zeiss Opton Biogon 35mm f2.8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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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FORD HP5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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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08.

iPhone 7




"21mm Biogon이 없었다면 Contax는 지금쯤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 것이다."


조금 극단적이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지난 리뷰에서도 언급했듯 Leica M3의 등장으로 후속기를 내놓지 못하고 단종된 자이스이콘의 콘탁스는 잊혀진 카메라가 되어 버렸다. 그럼에도 아직도 소수의 열렬한 추종자들은 콘탁스를 사랑하고 있으며 60년이 넘는 세월동안 아껴가며 사용된 적잖은 콘탁스들이 여전히 시중에 돌아다니고 있다. 바디 자체만 놓고 봤을 때 그리 매력적이지만은 않은 것도 사실인 콘탁스가 이 정도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데 큰 공헌을 한 렌즈가 있다. 바로 '20세기 최고의 광각 렌즈.'라고도 불리는 전설의 렌즈, Carl Zeiss Biogon 21mm f4.5 이다.




1954년, 자이스이콘은 당시로선 그야말로 초광각이던 90도 화각의 21미리 비오곤을 출시한다. 




당시 브로셔 표지에는 21미리 비오곤으로 촬영한 사진 위에 50미리 화각을 표시하여 21미리가 얼마나 넓은 화각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21미리가 발매됨으로써 콘탁스용 비오곤은 두 개가 되었다. 21mm f4.5와 35mm f2.8





21미리 비오곤은 총 8매의 렌즈로 구성되었으며 전면에 2개의 오목 유리를, 후면에 1개의 오목 유리를 놓은 대칭형 구조를 이루고 있는데, 백포커스가 극단적으로 짧아 렌즈의 후옥은 필름면 가까이 최대한 근접하여 장착된다. 이를 통해 최고 수준의 왜곡 억제력과 주변부까지 선명한 해상도를 자랑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비네팅 현상 역시 그리 두드러지지 않아 사용에 불편함을 초래하지 않았다. 개방값은 f4.5로 그리 밝은 편은 아니었으나 라이카 28mm 주마론이 f5.6, 칼 자이즈 28mm 테사가 무려 f8.0이었던걸 생각해보면 보다 넓은 화각을 가지고도 f4.5를 달성한 비오곤이 오히려 대단하다 여겨진다.    




21미리 비오곤의 렌즈부를 분해한 사진 




배럴 내부의 사진


배럴 내부에는 노란색이 보이는데 이는 황동의 색이 아니라 금 코팅의 색이다. 비오곤 배럴 내부에는 금이 코팅되어 있는데 이는 렌즈의 부드러운 움직임을 확보하고 정밀한 중심축 유지를 위한 것이었다. 다른 렌즈에도 이런 식으로 금을 코팅한 경우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칼 자이즈가 비오곤에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21미리 비오곤의 특이한 설계 중 하나. 렌즈 후옥에 '플레어 쉴드'가 부착되어 있다. 렌즈 전면이 아닌 바디 속에 들어가는 후면에도 후드가 있는 셈이다. 같은 구조로 설계된 Contarex용 21미리 비오곤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 있는데 이와 같은 '플레어 쉴드'는 칼 자이즈의 다른 렌즈들에서는 볼 수 없는 것으로 21미리 비오곤을 설계하며 아주 미세한 부분까지 신경쓴 그들의 집념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아답터를 이용해 라이카 바디에 마운트 하고자 할 때는 두 개의 나사를 풀어 '플레어 쉴드'를 제거해주면 된다. 제거했을 때 특별히 문제가 있다는 보고는 보지 못했다. 




가장 비싼 금속인 금까지 코팅해줄 정도로 정성을 다한 21미리 비오곤은 당시 콘탁스용으로 발매 중이던 교환렌즈들 중 가장 비싼 가격을 자랑했다. 1961년 10월 기준 가격표에 비오곤의 가격은 219달러로 나와있다. 현재 화폐 가치로 환산했을 때는 약 3,000달러 정도로 추정된다. 참고로 당시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93달러..ㅠㅠ 




콘탁스용 21미리 비오곤에 이어 자이스이콘의 SLR 라인업 Contarex용 21미리 비오곤도 발매되었다. SLR용으로 발매되었지만 구조적, 성능적으로 콘탁스용과 동일한 렌즈로 알려져 있다. 필름면 바로 앞까지 들어가는 특성상 미러업을 한 상태로 마운트해야 했고 그로 인해 프레이밍은 외장 파인더를 이용해야 했고 포커싱은 목측으로 해야하는 불편한 방식이었지만 디스타곤 같은 레트로 포커스 구조의 광각 렌즈가 개발 되지 않은 상태라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콘탁스용 비오곤의 설계를 해치지 않은 덕분에 오늘날에는 비교적 더 후기에 생산되어 코팅이나 재료의 개선이 이루어졌으리라 '예상되는' Contarex용 21미리 비오곤의 인기가 조금 더 높다. Contarex 사용자는 멸종 위기로 현재 시중에 돌아다니는 Contarex용 비오곤의 대부분은 M마운트로 개조되었거나 아답터를 포함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21미리 비오곤은 여기까지 이어진다. 바로 누구나 써보고 싶어한다는 핫셀블라드 SWC에 탑재된 38mm Biogon이다. SWC의 높은 인기를 가능케 해준 것 역시 칼 자이즈의 비오곤이었다.




SLR이 대세를 장악했던 시절. 비오곤은 간신히 명맥만을 유지해왔다. 미러 박스가 차지하고 있는 공간으로 인해 비오곤 타입의 렌즈는 설 자리가 좁았던 탓이다. 하지만 교세라의 콘탁스 G시리즈와 함께 G28과 G21이 비오곤이란 이름으로 부활했고, 최근에는 코시나에서 자이즈 브랜드로 비오곤 광각 렌즈들을 출시하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요즘의 비오곤들은 60년전 당시에 비해 설계 구조의 많은 변경이 이루어 지고 있는데 성능상의 개선은 물론 좋은 일이나 렌즈 매수가 증가하고 백포커스에 여유를 두는 설계로 인해 길이가 길어지고 있다는 점은 안타깝다.




Zeiss C-Biogon 21mm f4.5




미러리스나 D-RF카메라들이 출시되고 있는 오늘날에도 비오곤은 그리 사용하기 편한 렌즈는 아니다. 앞서 얘기했듯 비오곤 설계의 특징은 대칭형 구조와 극도로 짧은 백포커스라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가장 우수한 왜곡 억제력과 뛰어난 해상력, 그리고 컴팩트함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비오곤처럼 짧은 백포커스로 설계된 렌즈는 디지털 센서에서 비네팅과 마젠타 캐스트를 억제하기 어렵다. goliathus님의 리뷰에 의하면 A7에 마운트했을 때 의외로 마젠타 캐스트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하며 이태영님께서 Leica M-P typ240에 테스트했을 때는 약간의 마젠타 캐스트가 발생한다고 알려주셨다. 슈퍼 앵글론에 비해서는 적게 발생하는 편이라 한다. 이 같은 문제점은 이미지 센서의 발전과 함께 개선될 부분일 수도 있겠으나 최상의 광학적 성능만을 고려해 설계된 오리지날 비오곤의 제 짝은 역시 RF카메라, 그리고 필름이라 생각된다. 



14-24mm 같은 초광각 줌렌즈까지 흔해진 오늘날 21미리는 '초광각'이라는 수식어를 붙히기도 쑥스러운 수준의 화각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35미리와 50미리를 주로 사용하는 대부분의 RF카메라 유저들에게 여전히 21미리는 낯설다. 파인더의 특성상 RF카메라 유저들은 28미리 이하 광각으로 내려가는 일이 드물다. 최단 거리가 길어 강렬한 근경을 큼지막하게 넣기가 어렵고 외장 파인더를 사용해야 하는 불편함도 따른다. 

이 같은 이유로 꺼려하는 이가 많지만 막상 21미리 비오곤을 접해보면 그 자유로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렌즈는 바디에서 아주 조금 돌출되어 있을 정도로 컴팩트하며 조리개를 8.0 정도로만 조여줘도 거의 모든 구간에 초점이 맞는다. 오로지 외장 파인더만 들여다보며 신나게 셔터를 눌러주면 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135판 SWC가 되는 것이다. 아니지. 콘탁스용 비오곤이 선배이니 그렇게 불러주는 것은 예의가 아니겠다. 어쨌든 콘탁스용 비오곤을 쓴다는건 단순히 21미리 화각을 다룬다는 의미가 아니라 RF카메라에 최적의 설계를 이루어낸 다시 나올 수 없는 최고의 광각렌즈와 함께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앞에서 슈퍼 앵글론과 슈퍼 엘마를 논하지 말자. 더 좋은 렌즈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나오겠지만 그 시작은 바로 콘탁스용 비오곤이었으니까 말이다.




Carl Zeiss 21mm f4.5 Biogon for Contax (1954~1961년)















































2017.01.14. 포항


Contax IIa / 21mm f4.5 Biogon / Kodak 400TX / IVED


















































































2016.11.20. 부산

Leica M3 / Elmar-M 50mm f2.8 / Kodak 400T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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