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가을의 어느 날. 


후배 몇몇과 함께 청량리 경동시장을 찾아 촬영을 하고 있었다. 

어느 골목길을 지나다 길바닥에 앉아 막걸리를 마시고 계신 노숙자 분들을 마주쳤다. 허락을 득하고 사진을 찍어볼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쉽지 않을 것 같아 포기하고 그냥 지나치려 했다. 그런데 함께 갔던 여자 후배 한 명이 아주 해맑은 표정으로 '아저씨 사진 좀 찍어도 될까요?' 라고 여쭙는 것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느닷없는 제안이 통했던 것인가 '아 그래 찍어라.'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겁 없는' 후배의 용기도 놀라웠지만 사진을 찍으라는 그 분의 말씀에 귀를 의심했다.



'아니 뭘 이런걸 찍어. 아 찍지 말고 그냥 가요!'

'아냐아냐! 우리나라엔 아직도 우리같이 힘든 사람들이 많아. 이런 모습도 찍어서 세상에 알려야지. 찍어. 괜찮아.'



일행들 몇분이 반대했지만 괜찮다고 찍으라고 하시는 아저씨 덕분에 쭈뼛쭈뼛 카메라를 들고 몇 컷을 누르기 시작했다. 동전 가득 푼 돈이 모여 이렇게 함께 막걸리를 마시는 중이라 하시던 노숙자 아저씨들은 우리가 물어보는 질문에 대답도 해주시고 우리의 카메라에 관심을 보이기도 하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각자의 고향과 과거에 '잘나갔던 시절' 얘기를 하며 잠시나마 즐거워하셨지만 가족들의 얘기를 할 때면 고개를 숙이고 어깨가 쳐지곤 했다. 우리도 아예 바닥에 앉아 그렇게 이야기를 들으며 이따금씩 카메라를 들어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쉽지 않은 경험이라 제법 가슴이 콩닥이는 순간이었다. 보통의 경우 이런 촬영은 상호간의 축적된 오랜 신뢰가 없다면 불가능하니까 말이다. 길 가다 불쑥 드린 당황스런 부탁인데도 학생들이니 찍어도 좋다며 허락해주신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던 중...



'이 XX들 여기서 뭣하는거야!'



갑자기 등 뒤에서 험한 말이 들려왔다. 어디선가 나타난 다른 노숙자분이 우리에게 욕을 하며 다가오고 계셨다. 후배들이 놀라며 카메라를 빼고 물러났다. 



'니들은 뭔데 여기서 사진을 함부로 찍고 그래! 뭐하는 놈들이야!'

'아 내가 찍으라고 했어. 냅둬.'

'냅두긴 뭘 냅둬. 야 너네들 어디서 나왔어. 허락없이 사진을 막 찍어도 돼?'



당장이라도 카메라를 던져버릴 듯한 기세로 아저씨가 달려들자 사진을 찍으라고 허락하셨던 아저씨께서 일어나 말려 주셨지만 겁에 질린 후배들은 연신 죄송하다며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손을 저으며 얼른 가라고 하셨지만 무작정 자리를 피해 이 상황을 모면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되면 해서는 안될 짓을 하다 쫓겨나는 모양밖에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일단 얼어붙은 후배들을 보내고 혼자 남았다.



여전히 화가 나 계신 그 분께 오해를 풀 수 있게 얘기를 좀 나누고 싶다고 했다. 나의 이런 태도가 다소 황당하셨는지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셨지만 일단 들어나 보자고 하셨다. 담배가 필요할 것 같아 주머니를 뒤져보니 갖고 있는 현금이 정말로 2천원 뿐이었다. 바로 옆 슈퍼에서 디스 한 갑을 겨우 사서 나와 아저씨께 한 개비를 권해드리고 나도 고개를 돌려 불을 붙였다. 얘기를 시작할 수 있게 됐다. 



'사진을 찍으려면 좋은 곳도 많은데 그런데 가서 찍을 일이지 왜 굳이 이런 곳에서 노숙자들을 찍어? 여기 사람들 십원 짜리, 백원 짜리 모아다가 몇천원 되면 겨우 이렇게 막걸리나 몇 병 사서 나눠 마셔. 그러다가 취하면 아무데나 누워서 잠들고. 그렇게 살아. 하루하루. 이런 거 찍어다 어디다 쓸거요?' 

'아름다운 장면을 아름답게만 찍는 것은 제겐 별로 의미가 없어요. 하지만 세상엔 아름다운 것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이 몰라주는 부분, 어두운 부분. 이런 곳에도 관심이 필요하구요 그 관심을 일으키는데 가장 좋은 수단이 사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그렇지. 사진 찍는다고 뭐가 달라지나? 이게 하루 이틀일인가. '

'네. 그렇긴 하지요. 하지만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니 더 심각한 것 아닐까요. 저는 세상이 달라지는데 사진으로라도 뭔가 기여를 하고 싶어요. 언젠가 저도 나이들고 용기가 없어지면 이런 사진은 못찍고 예쁜 꽃이나 멋진 풍경 사진을 찍고 다닐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아직 젊은데 벌써 그러고 싶진 않습니다. 조금은 더 의미있는 사진을 찍고 싶습니다. 그래서 아저씨들 사진을 찍었습니다. 단순히 호기심으로 접근한 것이거나 몰래 찍으려 한 건 아닙니다. 적어도 그 부분에 대한 오해는 풀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대화는 생각보다 길어졌고, 나를 나무라시던 아저씨는 어느새 고개를 끄덕이며 내 이야기를 경청해주셨다. 그렇게 길바닥에 앉아 한참 동안 얘기를 나눈 후에 우리는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내 연락처가 궁금하시다는 아저씨께 핸드폰 번호를 적어드리며 다음엔 여기서 막걸리라도 같이 한잔 하시자고 악수를 나누며 헤어졌다. 














그렇지만 사실 사진 한 장으로 무었을 할 수 있었겠는가. 사회의 현실을 사진으로 알리고 싶다고 그 분께 얘기하며 공감을 이끌어낸 것은 순전히 나의 가식적인 말발 덕뿐이었다. 피사체로서의 호기심에 이끌려 셔터를 누른 후 그럴싸한 언변으로 포장한 것일 뿐 내가 이 사진으로 뭔가를 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만 22세에 불과했던 철없던 나의 오만함으로 가득찬 '설교'가 통했음에 으쓱하며 '나 이렇게 진지하게 사진을 합니다. 예쁜 감성 사진이나 찍는 사람들과는 달라요~' 라며 자부했던 허영심과 과시욕이 전부였다.



어느새 세월이 많이 흘렀다. 14년전 그 때와 달리 지금은 이 사진들을 마주 보기가 어렵다. 그 때는 느끼지 못했던 많은 감정들이 날카롭게 내 가슴에 날아와 꽂힌다. 물질적으로 더욱 풍요로워진 삶을 누리고 있다지만 마음 씀씀이는 더욱 각박해졌고 여전히 우리 사회의 안전망은 취약하고 미래는 불투명하다. 자칫 발을 헛딛으면 다시 올라올 수 없을 골짜기로 굴러 떨어질 것만 같아 두렵다. '불쌍한 남의 일'이라기 여겼던 저 분들의 모습이 우리와 완전히 다른 세상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점점 강해지는 요즘이다. 






사진 속 오른쪽 앞에 앉아 계신 아저씨가 일행 분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사진을 찍으라며 허락해주신 분이다. 당신인들 당신의 가장 부끄러운 모습을 카메라에 찍히고 싶으셨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니 내 기꺼이 찍혀 주겠다시던 그 말씀이 너무나 감사하다. 지금은 어디에서 뭘 하고 계신지도 알 수 없지만 카메라를 바라보는 그 분의 눈빛에서 세상을 향한 오기가 보여 다행이다. 보다 좋은 환경에서 잘 지내고 계시길 바래본다. 


언젠가 다시 만났을 때 아저씨께서 내게 이렇게 물어봤을 때 나는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그래, 자네 잘 살고 있는가. 자네가 하고 싶다던 그런 사진도 잘 찍고 있나?'




2003.09.24 서울

Nikon F90X / ai-s 28mm f2.8 / Kodak TMY / I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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