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입학 후 사진동아리에 들어갔던 2000년. 


카메라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동아리 특성상 신입생들의 가장 큰 목표는 '내 카메라'를 장만하는 일이었다. 나는 다행히 아버지가 원래 사진을 취미로 하셨기에 집에서 동생이 쓰던 니콘 FM에 50미리 표준렌즈를 들고 왔다. (사실 난 캐논 AE-1을 중학교 때부터 쓰던 캐논 유저였지만 당시에 동생이 사둔 52미리 구경 필터가 많다는 이유로 FM을 들고 왔었다. AE-1에 붙은 FD50mm1.4는 구FD라 필터구경이 55mm였음) 카메라를 들고 온 동기는 20여명 중 나를 포함해 단 4명 정도였는데 한 명은 펜탁스의 명기 MX, 한 명은 미놀타의 명기 X-700, 그리고 당시에 모두 부러워하던 F90X를 들고 온 동기도 있었다. 


하여튼 이 소수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카메라를 장만하기까지 선배들의 카메라를 빌려가며 매주 일요일마다 촬영에 나섰다. 사실 이 과정에서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그만두는 친구들도 종종 있었으니 바로 카메라를 사는건 경제적 이유를 차치하고라도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긴 했다. 그러나 한두달 정도 동아리에 정이 들고 사진에 재미가 들리게 되면 여름방학 때 9박 10일로 떠나는 우리 동아리 최고의 행사 '하계촬영'을 앞두고 대부분이 카메라를 장만하게 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카메라라는 것이 당시로도 학생들이 사기엔 비싼 가격이라 몇달간 알바를 해가며 산 카메라를 자취방에서 끌어안고 잤다는 얘기도 그 땐 그리 낯 간지럽지 않았다.


당시 동아리에서 절대적 지지를 받던 기종은 두가지로 갈렸는데 바로 캐논의 대히트작 EOS-5와 니콘의 수동 명기 FM2였다. EOS-5는 통통 소리나는 프라스틱 바디의 부실함과 다이얼의 잦은 고장, 고질적인 그립부 벗겨짐 등 문제도 많은 카메라였지만 당시로선 획기적인 AF속도와 강력한 기능, 그리고 멋진 디자인에 생각보다 그리 비싸지 않은 중고 가격으로 큰 인기였다. 그렇지만 EOS-5는 기본적으로 AF카메라라 꽤 보수적인 우리 동아리에선 탐탁치 않게 보는 경향도 없잖아 있었고 지금도 그렇지만 캐논 AF의 부정확성은 확대 인화시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이상하게 우리 동아리는 핀!에대한 강박관념이 강했다.) 그래서인지 우리 선배 기수들에 비해 우리 기수부터 EOS-5의 점유율은 크게 하락했다.


우리 기수부터 동아리 내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은 카메라는 단연 니콘의 FM2였다. 내가 사용하던 니콘 FM에서 셔터스피드가 1/4000초까지 올라간 FM2는 이미 1982년에 첫 발매된 카메라였는데 2000년이었던 그 때만 해도 출시 20년이 다되가는 노장이었다. 그럼에도 FM2는 실제 90년대까지 꾸준히 생산되었고 2000년에 밀레니엄 한정판을 마지막으로 단종되었으니 니콘의 전무후무한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였다. FM2가 이처럼 긴 생명력을 유지한 이유는 명확했다. 


기본에 아주 충실한 그리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믿을 수 있는 카메라였기 때문이었다. 완전 기계식의 이 카메라는 노출계를 제외하고 배터리를 필요로 하지 않았고 그럼에도 1/4000초라는 고속의 셔터스피드와 1/250의 싱크로가 가능했다. 디자인은 그야말로 딱 카메라다운 실용적이면서 불필요하게 부린 멋이 없었고 실버크롬 도금은 단단해서 웬만해선 벗겨지지도 않았다. 바디는 황동으로 만들어져 견고했고 떨어뜨려도 고장도 잘 나지 않았다. (사실 고장날 것도 없지만) 무엇보다 파인더 배율이 높고 스플릿 스크린이 명확해 초점 맞추기가 좋아 동아리 사람들은 배율이 낮지만 시야율이 100%인 최고급기 F3HP보단 FM2의 시원한 파인더를 훨씬 선호했다. 심지어 'FM2로 찍으면 핀(핀트)이 잘 맞는다~' 라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구전으로 전해지고 전해졌으니..; 


당시 동아리 동기, 후배들 카메라 구입에 조언과 더불어 직접 남대문 동행, 직거래 동행 등을 쉴새없이 하던 나는 현대기아차 마냥 독과점의 지위를 누리는 FM2가 괜히 싫어 같은 디자인에 같은 기계적 성능이지만 조리개 우선까지 가능한 FE2나 F3 다음의 준플래그쉽이었던 FA, 그것도 아니면 FM2의 반값에 구할 수 있던 펜탁스의 MX나 ME-SUPER 등으로 꼬셨지만 대다수의 답변은 '오빠 그래도 FM2 살래요'였다. 사실 FE2의 조리개 우선 방식은 무척 편리했지만 보기에 명확한 FM2의 - O + 의 빨간색 노출 지시계와 달리 바늘이 오르락 내리락하는 노출 지시계는 보기에 그리 편한 편은 아니었고 야경 촬영이라도 하는 날은 바늘이 잘 보이지 않기 일쑤였다. 펜탁스 MX는 작고 예뻤지만 셔터스피드가 1/1000초까지만 지원하는데다 파인더도 FM2만큼 시원스럽지 못했고 ME-SUPER는 조리개우선으로만 사용하기에 편한 방식이었고 FM2를 빌려쓰며 익숙해진 후배들에게 버튼으로 조절하는 셔터스피드는 뭔가 이상한 것이었다. 그래서 나도 결국 설득을 포기하고 그냥 샵에 가서 FM2 있는거 다 꺼내달라고 펼쳐놓고는 시리얼넘버를 보고 셔터막을 보고 이래저래 수많은 FM2를 골라줬었다. 그당시엔 하도 많이 사러 다녀서 시리얼번호만 보고도 대략 몇년도 생산 바디라는걸 알아서 '이건 몇년도 생산바디니 좀 더 깎아 주세요' 라며 흥정을 하기도 했다. 당시 샵 사장들이 날 이상하게 쳐다보며 뭐하는 사람이냐 물어본 기억도 난다.


하여튼 그렇게 우리는 너도나도 노란색 니콘 스트랩에 번쩍이는 은색의 FM2를 어깨에 걸고 서울 곳곳을 누볐고 빈 매거진에 100피트짜리 TMX롤필름을 돌돌 말아넣은 일명 '마끼'를 아껴가며 찰칵찰칵 찍어댔다. 사실 FM2의 조작감은 F3의 그것에 비해 꽤 싼티나는 것이었지만 꾸밈없이 사진을 찍는데 충실한 가장 듬직한 도구가 되어줬다. 진흙탕에 넣었다 꺼내도 격발이 가능하고 고장도 잘 안나는 AK-47같은 그런 카메라였다고나 할까. FM2는 정말 믿음직한 친구였다.


그렇지만 우리가 즐기던 그 시절은 사실 필름 시대의 끝자락이었고 2000년대 후반부터는 필름으로 사진을 하기엔 점점 힘든 현실이 닥쳐왔다. 주머니 사정 가벼운 우리가 그나마 가장 싼값에 필름이나 인화지, 약품을 살 수 있었던 종로의 삼성사도 결국 사라져버렸고 코닥이 파산하며 필름은 하나둘 단종되고 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라버렸다. 그리고 이젠 그 많던 현상소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으니.. 그나마 나는 길게 버틴 편이라 생각하지만 2009년에 D700을 구입하고 나서는 사실상 필름 사진은 거의 접었다. 이제는 현상하고 인화할 시간도 부족하고 그리고 가격이 너무 비싸져 버렸다.


아쉽지만 추운 새벽 손을 호호 불어가면 사진을 찍고 노출계가 죽을까 품속에 카메라를 안고 돌아다니고 뭘 사먹을 돈은 없어도 필름은 몇롤이라도 가방에 있어야 든든했으며 그렇게 찍어온 필름은 동아리방에 와서 현상하고 물이 뚝뚝 떨어지던 필름을 건조대에 걸어두고 기대에 부풀어 지켜보던 일. 그리고 확대기에 걸어서 빛을 쏘고 약품에 담궈서 흔들며 8*10인화지에 상이 맺히길 기다리던 그 시간과 설레임은 이제 진짜 추억으로만 남았다. 


그 추억을 니콘이 기억해주고 되살려 주고 싶어서일까. 카메라 신제품 루머를 주로 떠벌리는 www.cameraegg.org 에서 지난 20일에 한가지 믿기 힘든 소식을 게시했다. 바로 FM2 디자인을 계승한 DSLR의 발표를 니콘이 준비하고 있다는 것! 이 사이트에 따르면 D4와 동일한 센서에 엑스피드3 화상처리 엔진을 탑재한 DSLR을 1-3주 이내에 발표할 것이라고 한다. 마운트는 여전히 니콘의 F마운트. 올림푸스가 과거의 명기 펜이나 OM시리즈의 디자인을 계승한 카메라들을 내놓으며 인기를 끌자 니콘도 추억의 명기 FM2를 되살리기로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과연 이게 사실일런지 모르겠지만 정말이라면 오랜 니콘 유저들에겐 정말 기쁜 소식이 될 것 같다. 소식을 접한 일부 지인들은 왜 하필 FM2냐고 하지만 F3같은 플래그쉽의 디자인을 계승하기엔 니콘도 부담이었으리라. F3의 디자인이라면 성능도 그에 맞는 최상급이 되야할테니 어찌보면 대중에게 가장 사랑받았던 FM2야 말로 복각 디자인엔 제격이었을 것 같다. 


과연 사실일런지 기대되는 간만에 들뜨는 루머. ㅎㅎ



원글은 여기서


http://www.cameraegg.org/nikon-full-frame-hybrid-camera-with-a-d4-sensor-to-be-announced-within-1-3-wee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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