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8.05. 부산


폭염 속의 영도, Elmar 3.5cm 마지막 롤. 잘 가라 ㅠ


Leica IIIa / Elmar 3.5cm f3.5 (Coated) / Fujifilm C200 / IVED














2018.07.31. 안동

Leica IIIa / Elmar 3.5cm f3.5 / RDP / IVED























2018.07.31. 청송

뜨거웠던 지난 여름, 늦은 오후

Leica IIIa / Elmar 3.5cm f3.5 (Coated) / RDP / IVED
































































2018.05.19. 운곡서원


Leica IIIa / Elmar 3.5cm f3.5 / Kentmere 400 / IVED











































































2017.11.12. 고성, 대관령


Leica IIIa / Elmar 3.5cm f3.5 / Kodak 400TX / IVED





































































































2017.06.25. 포항 신광면 마북리


Leica IIIa / Elmar 3.5cm f3.5(coated) / Kodak 400TX / IVED















2017.06.04. 서울 이문동


Leica IIIa / Elmar 3.5cm F3.5 / Kodak 400TX / IVED


요새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그런가 사진도 치열하게 찍기 보다 풀떼기 찍는게 너무 좋다. 특히 Elmar 3.5cm같은 올드 렌즈로 찍으면 제법 맛깔스런 느낌의 사진들이 나오기도 하고.





2017.05.23. 경주 건천


Leica IIIa / Elmar 3.5cm f3.5(coated) / Kodak 400TX / IVED


개방에서 수차로 인해 약간의 회오리 보케가 느껴진다.














































2017.06.03. 서울


Leica IIIa / Elmar 5cm f3.5 / Elmar 3.5cm f3.5 / Kodak 400TX / IVED








































2017.05.07. 청송


할 줄 아는거 없는 사위는 죄송한 마음에 괜히 기웃거리기만 하다 사진만 찍고.


Leica IIIa / Elmar 3.5cm f3.5 uncoated / Kodak 400TX / IVED


케케묵은 고물 카메라와 렌즈를 사용하는 일은 생각보다 꽤 성가신 일이다.




다분할 멀티측광에 초당 수컷이 촤르르 찍히는 모터드라이브, 순식간에 초점을 맞춰주는 AF기능이 기본이 된 오늘날 뭔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칠순이 훌쩍지나 팔순을 바라보는 바르낙옹을 손에 쥐고 다니는지 스스로도 가끔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노출계는 당연히 없고 셔터스피드도 유럽식이라 1/40, 1/100, 1/200 같이 애매하게 되어있다. 여기에다 오늘 붙혀둔 Elmar 3.5cm는 또 어떠한가. 코팅도 적용되어 있지 않은 맨유리알인데다 조리개 수치도 4.5, 6.3, 9, 12 등으로 희한하기 그지없다. 노출계야 외장으로 쓴다 쳐도 측광값을 카메라와 렌즈에 적용하기 참 난감하다.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이런 녀석을 데리고 다니자면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한다. 1/3스탑 단위로 브라캐팅을 하던 결벽증 따위는 저 멀리로 던져 버리고 부처님같은 관용도의 400TX를 믿고 '대충' 맞춰서 셔터를 눌러야 한다. 무코팅이라 역광에 맞서는 무모한 짓도 최소화한다. 파인더를 들여보다 영 자신이 없다 싶으면 포기하면 된다. 태양에 맞서봤자 Summicron 35mm ASPH같은 사진을 만들어줄리는 만무하다. 이 녀석으로 잘할 수 있는 장면에 그저 충실하기로. 그것이 이 오래된 카메라와 렌즈로 할 수 있는 최선의 사진질이다.




이 불편함과 명확한 성능상의 한계는 이미지 퀄리티라는 측면에서는 어쨌거나 모든 면에서 불리하게 작용한다. 하지만 취미 사진가에게는 이러한 것들이 무조건 단점으로만 작용하지는 않는다. 보다 유리한 빛의 상황을 파악하고 단점은 커버하고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장면과 피사체를 찾아나서게 한다. 그야말로 쇠붙이와 유리로만 만들어진 정직하고 단순한 기계로 세상과 1:1로 마주한다는 느낌. 여기서 오는 소탈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기름지게 번들거리는 현행 렌즈의 화려한 코팅색도 부럽지 않고 최첨단 기능이 녹아있는 멋드러진 DSLR도 부럽지 않다. 밧데리 없으면 찍지도 못하는 거. 




내 처가는 경북 청송이다. 경북에서도 산간 내륙인 이 곳은 전국적으로 봐도 가장 발전이 더딘 곳 중 하나다. 처가가 있는 마을은 청송군에서는 비교적 큰 곳인 청송읍과 진보면 사이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마을 입구에는 제법 잘 가꾸어진 너른 솔밭이 푸르고 시원한 그늘을 선물해주고 있으며 동쪽과 서쪽에 자리한 산 사이로 흐르는 작은 개천과 그 개천을 따라 이어진 논밭이 제법 너르게 자리한, 작지만 아담한 동네다. 이 곳에서 자란 나의 아내는 어릴 적 동네 오빠야들을 따라 산을 뛰어다니고 논두렁에서 뛰어내리며 슈퍼맨 놀이를 하고 개울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놀았다. 하교길에 장인어른의 경운기라도 만나면 '아빠!'하고 달려가 점방에서 산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경운기를 타고 집으로 오던게 그렇게 좋았다고 하는 나의 아내. 나는 나의 아내가 그런 소박하고 행복한 유년 시절을 겪었음이 감사했고 나의 처가가 이런 곳이라 퍽 마음에 들었었다. 




처가를 갈 때면 언제나 카메라를 챙겨간다. 넓지 않은 동네라 돌아다녀봐야 찍을 것이 많지 않지만 계절과 빛의 변화가 보다 솔직하게 드러나는 이 곳에 가면서 카메라를 챙겨가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 어버이날을 며칠 앞둔 주말 찾았던 처가에서 속닥한 카메라 하나를 손에 쥐고 논길과 농로를 따라 걷고 두리번거리며 2롤의 필름을 찍었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이 곳에서 빠르고 편리한 카메라가 장점을 발휘할 일은 없다. 정직하게 제 속도에 셔터가 끊기고 빛이 들어오는 구멍만 제대로 조절되면 그걸로 족하다.




그 다음은 나의 몫이다. 






















































2017.05.06~07 청송








Leica IIIa / Elmar 3.5cm f3.5 (uncoated) / Kodak 400TX / IVED






























2017.05.25. 경주 건천


Leica IIIa / Elmar 3.5cm f3.5 (coated) / Kodak 400TX / IVED


Leica IIIa & Elmar 3.5cm f3.5


지인께서 선물로 주시고 가신 바르낙과 역시 또 다른 지인이 그의 지인으로 부터 선물받은 엘마 35미리 렌즈의 조합. 역시 바르낙은 예쁘다.




IIIa의 정면샷. II 모델들에 비해 스트랩 고리와 저속셔터가 추가된 것이 III 모델들의 가장 큰 특징. 바르낙형 라이카는 IIIc 이후부터는 상판의 제작 방식이 기존 단조에서 주조 방식으로 바뀌고 상판의 높이가 다소 높아지게 된다. IIIa는 단조바디의 단단한 만듦새와 컴팩트함을 즐길 수 있으면서 저속과 1/1000초를 사용할 수 있는 완성에 가까운 바디라 할 수 있다. 셔터소리나 조작감 등은 물론 이후에 나온 IIIf나 IIIg가 더욱 훌륭하지만 바르낙다운 컴팩트한 매력은 역시 IIIa가 아닐까. 물론 이쁘기로 치면 IId 블랙 페인트가 최고라 생각.




상부의 모습. 오밀조밀 위치한 각종 다이얼과 레버와 노브들이 조화롭게 아름답다. 필름 이송과 셔터 장전을 위해 노브를 돌리면 셔터 다이얼과 되감기 노브가 같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상판 각인은 언제나 옳다. 저게 없는 바디들은 너무나 밋밋하다.




IIIa 부터는 드디어 1/1000초가 가능해진다. 시리얼번호를 조회해본 결과 1937년 생산분으로 확인됐다. 올해로 무려 팔순이 되신 분.. ㄷㄷ 








바르낙의 파인더는 포커싱창과 프레이밍창으로 나뉘어져 있어 왼쪽 창에서 초점을 맞추고 오른쪽 창에서 구도를 잡는다. 당시 라이벌인 Contax II는 이를 하나의 파인더에서 가능케 했지만 라이카는 M3가 등장하기까지 이같은 방식에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덕분에 초점을 맞춘 후 다시 구도 맞춤을 위해 눈을 옮겨야하는 불편함이 따르는데 인간의 적응의 동물이라 또 쓰다 보면 그러려니 하게 된다. 프레이밍창은 좁긴 하지만 맑고 밝은 편이나 프레임 라인은 별도로 표시되지 않고 보이는대로 꽉차게 찍었을 때 약 40미리 정도의 화각이다. 바르낙에 흔히 쓰는 50미리 엘마같은 걸로 찍을 경우는 파인더에서 보이는 것 보다 조금 적게 찍힌다는 걸 감안해야 한다. IIIa까지는 여전히 포커싱창과 프레이밍창의 간격이 제법 넓지만 IIIb 부터는 두 창이 가깝게 붙어서 눈을 옮기기 수월해진다. (뭐 그래도 불편하긴 매한가지;)




필름카운터는 수동으로 리셋해둬야한다. 역시 불편하지만 재미라면 재미.




Leica IIIa와 Contax IIa의 사이즈 비교. 바르낙의 컴팩트함을 다분히 의식한 듯 Contax IIa는 Contax II에 비해 제법 작아졌지만 여전히 바르낙에 비하면 크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상판의 배치는 확실히 Contax가 간결하게 설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Leica IIIa & Contax IIa



한롤도 못찍어보고 일단 오버홀하러 서울로 떠났다. 셔터속도 및 작동이 불안정했고 이중합치상의 상하가 틀어져있어서 굳이 테스트해볼 생각은 않고 오버홀 부터 해주고 제대로 써보고 싶다. 얼른얼른 돌아오길.


아버지께서 며칠간 위가 쓰리다 하셨다. 

금방 괜찮겠지 했던 것이 조금 길어져 결국 검사를 다시 받아봤고 결론은 위염. 얼마전 대학원 동창들끼리의 제주도 여행에서 술을 좀 드신 것이 원인인 모양이다. 어쨌든 자극적인 음식을 피하고 당분간 죽을 드시라고 한다. 그 얘기를 듣고 아들로서 어찌 가만히 있을 수가 있나. 아버지 드릴 전북죽을 사오겠다며 사뭇 비장하게 집을 나섰다. 




나름 단골인 전복집 주차장에 도착했다. 무료한 일요일, 하릴없이 뒹굴거리다가 더없이 훌륭한 핑계로 집을 나와서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니 지끈거리던 머리 속에 시원해진다.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혔다.




저멀리 보이는 곳이 구룡포항이다. 흐린 날이었지만 바다는 비교적 잔잔했고 덕분에 갈매기들은 바위 위에서 편안한 일요일을 보내고 있었다.




전복죽을 주문해두곤 다시 밖으로 나왔더니 막 어선 한 척이 들어와 멸치를 부려놓았다.




구룡포가 기장이나 남해처럼 멸치잡이로 유명한 항구는 아니지만 이처럼 간혹 멸치가 들어오기도 한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멸치보단 고등어나 꽁치가 흔해 구룡포에서는 아직도 멸치액젓 대신 고등어로 젓을 담궈서 김장을 하기도 한다고 전복죽집 사장님이 얘기해줬다. 그 맛이 사뭇 궁금했다.




박스마다 가득가득한 멸치들. 날씨가 추운 겨울이니 저 상태로 바로 회로 먹어도 될 것 같았다. 색색의 박스들은 엘마 렌즈의 색감 테스트용으로 딱. 




상차 작업하시는 동안 서성이며 계속 셔터를 눌렀음에도 별 반응들이 없으셨다. 행색을 봐도 그렇고 손에 든 골동품 같은 카메라 꼬락서니를 봐도 별 시덥잖은 녀석이라 여겨지셨나 보다. 어쨌든 나로서는 다행이다.




방파제 옆 작은 비닐 천막 안에선 어민들이 모여 참을 드시고 계셨다. 




참을 먹었으니 커피도 한 잔! 인근 다방에서 커피 배달이 왔다. 조금 불건전하게 변질된 경우가 있어서 그렇지 커피를 배달시켜 마시는 나라가 또 있을까? 다방 문화에 대한 심도있는 고찰과 작업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불쑥 들었다.




방파제 너머 테트라포드에는 언제나 낚시꾼들이 있다. 안테나처럼 솟아있는 그들의 낚시대.




고소한 냄새가 진동하는 따끈따끈한 전복죽을 받아들고 가게를 나섰다. 가게 주차장 간판 위에는 자기도 한번 찍어달라는 듯 갈매기 한 마리가 포즈를 잡고 있었다. 차에 오르기 전, 마지막 한 컷을 눌렀다. 




Elmar 3.5cm는 예상대로 상당히 낮은 채도와 콘트라스트의 결과를 보여줬다. 물빠진 듯한 밋밋한 색감을 보며 역시나 칼라 보다는 흑백에 어울리겠다며 단정지었던 것이 사실. 그렇게 첫 인상이 약했던 엘마로 찍은 이 칼라 사진들은 희한하게도 보면 볼수록 참 편안했다. 소박한 절집에서 정갈하고 간소한 공양 한 그릇 받아든 듯한 그런 느낌이랄까. 코팅의 꼼수도 없이 유리알 그 자체로 담아낸 빛이라 생각하니 왠지 마음까지 차분해졌다. 칼라로 다시 찍어볼 일은 없을거라 생각했었지만 날씨와 빛 상황이 다를 때는 또 어떤 느낌을 보여줄지 사뭇 궁금해진다. 흐릿하고 멍청한 색감으로 나올 수도 있고 기대이상으로 화사하고 세련된 색감으로 나올 수도 있을테고, 색온도가 훅 틀어지거나 완전히 엉뚱한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모두 괜찮다. 현행처럼 완벽하지 않기에 예상이 쉽지 않고 그래서 더 재미있는 것이 올드 렌즈의 매력이니까 말이다.



2016.12.04 포항


Leica M3 / Elmar 3.5cm F3.5 / Fujifilm C200 / IVED


지인이 써보라며 올드 렌즈를 하나 건네줬다.

라이카 35mm의 원조격인 Elmar 3.5cm다. 1930년대 부터 발매되어 40년대 후반까지 이어진 엘마는 주마론이 등장하기 전까지 라이카의 35미리 화각을 담당했지만 성능적으로 크게 뛰어난 평가를 받지 못하다 보니 오늘날 5cm 엘마에 비해 그 인기는 높지 않은 편이다. 지인의 렌즈는 그 중 1940년산 무코팅 버전인데 경통에 상처가 많고 렌즈 내부에도 먼지와 스크래치가 적지 않은 그야말로 전투형이었다. 


LTM을 이용해 라이카 M3에 마운트하고 Zeiss Ikon의 35미리 파인더를 달아주니 제법 예쁘다. 보다시피 워낙 얇고 컴팩트한 렌즈라 침동한 5cm 엘마 못지 않다. 이왕이면 M3보다는 바르낙 바디를 하나 구해서 바디캡으로 써보고 싶은 욕심이 잠시 들지만 일단 결과물을 보고나서 생각하기로 하자. 광학적 성능에 대해서는 솔직히 기대되지 않지만 특유의 '맛'이 나는 렌즈면 좋겠다.




토요일 늦은 오후, 해가 짧은 요즘이라 지금 나가서 몇시간이나 찍을 수 있겠냐는 생각에 잠시 고민이 들었지만 그래도 토요일을 이렇게 허무하게 보낼 순 없지. 신광면에 있는 법광사지에 한번 가보기로 했다. 고즈넉한 폐사지에서 호흡긴 촬영을 할 수 있을테니 익숙하지 않은 이 렌즈로도 무리가 없으리라 생각됐다. 




큰 도로에서 벗어나 차 두대가 지나기도 버거운 좁은 마을길을 통해 한참을 올라가서야 법광사지가 나타났다. 그런데 이건 뭥미. 허허벌판에 드문드문 놓여진 주춧돌과 우뚝 솟은 당간지주 따위를 어떻게 적당히 담아볼까 생각하고 왔더니만 발굴 중이라 출입을 금한다는 안내판이 나를 맞이했다.




발굴 조사를 위해 온통 절터를 뒤집어 놓은데다 유구가 나온 곳은 방수천으로 덮어놓아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자괴감이 들 무렵 역광 테스트나 해보자고 해를 집어 넣어 찍어보았다. 무코팅 렌즈임에도 생각보다는 괜찮은 수준이다. 




해상도야 그리 높지 않지만 부드러운 콘트라스트와 그로 인해 넓은 계조를 보여준다. 대부분의 렌즈가 그러하듯 순광에서 조리개를 조였을 때의 묘사력은 부족하지 않다. 날카로운 선예도와 강한 콘트라스트 등 너무 잘나오기만하는 현행 렌즈에 비해 올드 렌즈가 흑백 사진에 좋다는 이유가 이런 느낌 때문이 아닐까.




법광사지는 완전히 허탕을 친 것이 되었지만 이대로 집에 돌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주변 마을이라도 좀 둘러보자 싶었다. 경사진 산비탈을 따라 이어진 계단식 논과 시골집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인공의 구조물임에도 자연과 하나된 듯 녹아있는 이런 따스한 풍경도 오랜만이다. 팔순이 다된 렌즈로 찍은 결과물이라 그런지 시간이 멈춘듯한 신광면의 풍경이 더욱 옛스럽게 느껴진다. 




집 가까이로 다가가 봤다. 살림 도구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봐 빈집으로 보인다. 애초에 대문은 없었던 것 같고 어설픈 목책만이 주인대신 빈집을 지키고 있다. 투박하게 쌓은 돌담과 3단으로 된 목책을 보고 지인은 제주도에서 찍은 사진이냐고 물었다. 




돌담 옆에 서 있던 감나무의 질감이 좋았다. 늦가을의 시골 정취를 표현하는데 잎이 떨어진 감나무에 달린 감 만한 소재도 없는데 요즘은 시골 마다 감을 딸 사람도, 먹을 사람도 없어 겨울이 지나도록 그대로 감이 달려 있는 경우가 많다. 어릴적 시골에 가서 키보다도 훨씬 긴 장대로 감을 따고 놀던 기억이 난다. 




길을 내려오다 마을의 당나무를 만나서 잠시 멈추었다. 





묵직한 톤이 제법 마음에 든다.




개방 조리개의 느낌은 어떨까 싶어 금줄에 초점을 맞추고 구도를 잡아봤는데 피사체에 좀 더 극적으로 다가섰어야 했나보다. 어중간한 거리 탓에 그리 심도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마을의 안녕을 기원했을 막걸리 한 병이 다소곳이 놓여 있었다.




지대가 높아 논농사보다는 밭농사를 많이 하고 있는 듯 했다. 하우스에서 자라는 시금치의 색이 생기있게 파랬다. 




지도에도 없는 촌 길. 




다시 차에 오르기 전 마을의 모습을 조금 넓게 잡아봤다. 노출을 결정하는데 신중을 기울였던 컷으로 기억된다. 3.5cm 엘마의 조리개 수치는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3.5 / 4.5 / 6.3 / 9 / 12.5 / 18 로 표기되어 있어 익숙치가 않은데다, 초기형 M3의 유럽식 셔터스피드 다이얼까지 더해지니 머리 속이 빙글빙글 돌았다. 이리저리 함수를 끼워 맞추며 겨우 한 컷을 눌렀는데 다행히 결과물은 원하던 분위기로 나와주었다. 




산길을 내려와 곧장 집으로 가려다 큰 도로변에 서있던 신광시장이라는 간판을 보고 혹시나 볼거리가 있나 하고 차를 세웠다. 골목 안쪽으로 향하니 요즘 시골에서 보기 드문 아이들의 소리가 왁자지껄하다. '어? 사진기자 아저씨다!' (노숙자로 안보여서 다행) 




카메라를 들이대자 녀석들이 좋아 날뛰기 시작한다. 법광사지에서 허탕친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밀려오지만 사실 익숙하지 않은 렌즈로 이런 상황을 맞이하고 싶지 않았다. 앞서 얘기했듯 엘마의 이상한(?) 조리개 수치 때문에 지금 내가 놓은 눈금이 조리개 몇쯤 되는지도 확신이 서지 않았고, 초점 맞추고 게눈 파인더로 눈을 옮기자니 정신이 없다. 제발 좀 가만 있어봐라 얘들아.





정신없이 움직이는 녀석들을 노출과 초점을 신경쓰며 찍기는 불가능했다. 결국 믿을건 Kodak 400TX의 부처님같은 관용도와 35미리 렌즈의 심도 뿐. 노출계 꺼낼 생각도 못하고 뇌출계로 대충 때려 잡았다. 흔들리지 않을 만큼만 최대한 느린 속도로 세팅하고 조리개는 조일 수 있을만큼 조인 후 초점을 고정시켰다. 이젠 그냥 찍는거다.




시골에 웬 아이들이 이렇게 있나 싶어 여기에 사느냐 물었더니 외갓집에 놀러온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럼 그렇지. 그래도 외갓집에서 제대로 추억을 쌓고 있는 녀석들이 부러웠다. 




귀염둥이들 :)




수레를 밀던 녀석은 부끄럽다며 한사코 얼굴을 허락하지 않았다.




신나는 한때를 보내고 있는 개구진 녀석들. 아이들은 이렇게 자라야 하는데 말이다.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헤어진 후, 다시 걸음을 옮기다가 이 장면을 마주했고 본능적으로 카메라를 눌렀다. 오른쪽에 있는 여인네와 눈이 마주치면 분위기가 깨어질거라 생각해 마음이 급했더니만 결국 흔들렸다.




면사무소 근처 도로에서도 다니는 차들을 별로 볼 수 없었다. 너무나 한적하고 조용한 동네였다.




제법 쌀쌀한 날씨임에도 신광 분식 앞 평상에 동네 할머니들이 모여 앉아 늦은 오후를 보내고 계셨고




나는 캔커피를 사러 점방에 들어갔다. 평상에 앉아계시던 할머니 중 한분이 주인이셨는지 느린 걸음으로 따라오셨다. 냉장고에는 전기도 들어오고 있지 않았지만 날씨가 추우니 괜찮았다. 동전이 없어 5천원짜리를 드렸더니 거스럼돈을 뒤적이시길래 그냥 담배 한갑도 같이 샀다. 내가 피우는 담배는 없었다.




점방의 기둥에 붙어있는 '간첩 잡자' 표어. 저런 것도 오랜만이다. 유리창에 흐릿하게 비친 아반떼가 아니었다면 시대를 가늠하기 어려운 사진이었이라. 해가 거의 떨어진 상황이라 콘트라스트 약한 엘마가 제대로 표현해줄까 걱정도 되었지만 보다시피 멋진 톤을 보여주고 있다. 




필름이 두 컷 정도 남았었다. 

'할매! 가게 앞에서 사진 한장 찍어드릴게요. 나와 보세요.'

'다 늙은 할매 뭐할라고, 안찍는다~~'

'에이, 한번 나와보세요. 할매 가게 앞에서 사진 한장도 안찍어보셨죠? 내가 좋은 카메라로 찍어드릴게요.'

그러고 보니 평생을 지내온 집이자 일터인 점방 앞에서 찍은 사진이 없다고 생각되셨는지 그제서야 할머니는 머리를 정리하시며 못이기는 척 밖으로 나와 앉으셨다. 뻣뻣한 포즈셨지만 그게 뭐가 중요한가. 남은 두 컷을 할머니에게 할애했다. 물론 그러면서도 '이 놈의 엘마가 제대로 나와줘야 할텐데.' 하는 걱정이 가시지 않았다. 처음 쓰는 렌즈를 신경쓰이는 촬영에 투입하는 건 역시나 부담스럽다. 어쨌든 여든이 넘으신 할머니를 그와 비슷한 세월을 보낸 엘마로 담아 드리면서 촬영은 마무리 되었다.  

그렇게 총알이 떨어진 나도 카메라를 내려놓고 할머니 옆에 앉았다. 신광면에 사람이 북직이던 재미나던 시절 얘기와 법광사지가 밭이었 때 밭을 갈다가 주웠던 기와조각 등의 얘기, 공부를 많이 못시켜서 미안한 자식들 얘기와 이 시골에도 대형 마트가 들어와 이제는 담배 말고는 팔리는게 없다는 점방 얘기까지. 제법 긴 시간동안 할머니와 얘기를 나눴다. 나중에 장날에 한번 다시 놀러오겠다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할머니도 저녁을 차려야겠다며 들어가셨다. 


그리고 일주일 후, 나는 다시 신광면에 들렀고 점방으로 가서 할머니를 불렀다.


'할매! 내 또 왔다!'



2016.12.03. 포항 신광면


Leica M3 / Elmar 3.5cm f3.5 / Kodak 400TX / IVED




Leitz Elmar 3.5cm f3.5

생산시기 : 1930 ~ 1949년
생산수량 : 40,000여대
최단초점거리 : 1.25m
렌즈 구성 : 3군 4매



2016.12.03. 포항

Leica M3 / Elmar 3.5cm f3.5 / Kodak 400TX / IVed

지인에게서 묻지마 무상, 무기한으로 라이카 Elmar 3.5cm f3.5를 데리고 왔다. 렌즈 상태는 그리 좋은 편은 아니지만 찍히기만 하면 되니깐 뭐. Summaron 3.5cm가 출시되기 전까지 바르낙 라이카에서 35mm 화각을 담당했던 녀석의 결과물이 제법 궁금해진다. 그러고 보니 무코팅 렌즈는 처음 써보는 건가? 지난 주말동안 흑백과 칼라네가를 한롤씩 테스트차 찍어두고 대기 중. 




3.5cm엘마의 가장 큰 매력은 컴팩트함이다. Elmar 5cm 같은 침동식도 아닌데 튀어나온게 저게 다라는 거. Summaron 3.5cm도 제법 짧지만 Elmar가 더 짧다. 겨울에는 코트 주머니에 쏙 넣기에도 부담이 없다. LTM을 이용해 M3에 마운트했고 35미리 파인더는 ZeissIkon의 것이라 짬뽕 조합이 되어버렸지만 의외로 예쁘다. 바르낙 바디를 하나 구하면 제격이겠다 싶지만 더이상의 카메라 지름은 자제해야.. 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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