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15. 청송
Hexar AF / Kentmere 400 / IVED
2018.04.15. 청송
Hexar AF / Kentmere 400 / IVED
2017.01.28.
Hexar AF / Kodak 400TX / IVED
아빠가 되었다.
그동안 시장 바닥이나 낡은 포구, 재개발 지역 등지를 돌아다니며 거실에도 걸어두지 못할 '쓸데없는' 사진이나 찍어오던 사진질은 그야말로 부질없는 짓이 되었다. 유행하는 말로 '뭣이 중한디?!'였다. 아빠 사진가에게 가장 중요한 임무는 결국 딸냄의 성장 기록을 남기는 일이 아닌가. 아빠가 되면서 사진 생활의 주제가 아주 단순 명확해졌다.
실내에서 최적일 것
자, 그렇다면 육아 사진은 무엇으로 찍어야할까? 지금 생각해도 좀 어이없지만 '어떻게' 찍을 것인가 보다 당장 '무슨 카메라로' 찍을지가 가장 큰 고민으로 다가왔다. (마땅치 않으면 이 기회에 하나 더 사는거다..) 하지만 이미 육아 사진을 핑계로 삼아 Nikon D700에 꽂을 SB-700과 AF 35mm f2.0D를 들인지라 카메라를 또 사기엔 명분이 서질 않았다. 책장 위에서 몇년째 놀고 있는 카메라가 한두개가 아닌데 저 중에 육아 사진을 찍을만한 카메라가 한 대도 없다는 건 내가 생각해도 통할 소리가 아니었다.
'그래 있는 걸로 찍자.'
새 카메라에 대한 욕심은 깔끔하게 포기하고 이 중요한 임무에 투입할 최적의 무기가 무엇일지 검토해보기로 했다. 육아 사진이니 당분간은 대부분 실내에서만 촬영이 이뤄질 것이다. 당연히 이 작업에 투입될 카메라의 작전 요구 성능의 기본은 '실내 촬영에 최적일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밝은 개방값과 저진동 저소음, 실내에서 빠른 포커싱, 가벼운 무게 등을 필요 조건으로 들 수 있겠다.
이 기준에 의거 갖고 있던 카메라들을 하나하나 따져봤다. 제일 먼저 SLR들이 전원 탈락헸다. 그렇잖아도 셔터스피드 확보가 어려운 실내인데 블러를 유발할 '철푸덕!'은 안될 말이었다. 반면 RF기종들이라면 이 부분에서는 유리하겠다. 하지만 내가 갖고 있는 CONTAX IIa나 LEICA M3 같은 기종들은 노출계도 없고 움직이는 딸냄이에 재빨리 포커싱하기가 쉽지않아 아무래도 셔터 찬스를 놓칠 일이 많을 것 같다.(RF는 역시 조여서 찍을 때 진정한 매력이..) 결국 얘들도 일단 보류. 똑딱이 CONTAX T3는 크기도 작고 렌즈 성능도 좋고 AF도 되니 다 좋았는데 최대개방값이 2.8로서 다소 어두운데다 결정적으로 저속 셔터스피드가 정확히 얼마인지 표시가 안되어 실내에선 불안하기 그지 없다. 1/15초인지 1/4초인지 알아야 조심을 하는데.. 결국 얘도 탈락했다.
Konica Hexar AF
이것저것 빠지고 나니 남은 것이 몇년동안 쓰지도 않고 쳐박아 둔 HEXAR AF였다.
Konica에서 내놓은 이 카메라의 가장 큰 특장점으로는 구동 소음을 최소화한 '사일런트 모드'와 우수한 성능의 35mm 렌즈를 들 수 있었다. 모터 와인딩 소음의 억제에 많은 공을 기울인 '사일런트 모드'는 당시의 대다수 자동 카메라들에 비해 상당히 조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수동식 RF카메라들에 비할 바는 아니라 개인적으로는 의미를 높게 두진 않는 편이다.
하지만 섬세한 묘사력과 현대적이고 깔끔한 콘트라스트를 보여주는 렌즈의 성능 만큼은 정말 훌륭하여 예전부터 사진가들 사이에서 '주미크론'에 필적한다는 소문이 회자될 정도였다. 이 같은 호평에 힘입어 코시나에서는 이 렌즈를 스크류 마운트로 별도 제작하여 한정 발매되기도 했다.
라이카 스크류 마운트로 한정 발매되었던 UC-HEXANON 35mm f2.0. 지인의 렌즈다.
반면 HEXAR AF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최고 셔터스피드가 1/250초에 불과하다는 점이었다. 아니, 1/1000초도 대낮에 감도 400필름을 개방으로 사용하기 어려운 판에 고작 1/250초라니... 주로 조리개를 조여서 찍는 편이라 사실 셔터스피드의 한계는 촬영시에 큰 문제는 아니었지만, 막상 들고 나갈 카메라를 고르는 순간 주저하게 만드는 심리적 부담은 어쩔 수 없었다. 결국 렌즈의 우수함에도 불구하고 HEXAR AF는 그리 자주 사용되지 못하고 집에서 오랜 세월 놀고만 있던 중이었다.
그렇지만 주로 실내에서만 사진을 찍는 용도라면?
그랬다! 실내에서만 찍는다면 녀석의 치명적인 셔터스피드의 한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부분이지 않은가. 감도 400짜리 필름을 넣어도 1/60초를 넘기는 경우조차 거의 없으니 말이다. AF의 정확도도 우수하고 속도도 빠른 편이라 셔터 찬스를 잡기에도 용이하며, 렌즈 교환식 RF기종들에 비해 최단거리도 조금 더 짧은데다(0.6m) 파인더 내의 프레임 라인은 시차 보정도 거리에 연동해 이루어지니 좁은 공간에서도 활용도가 높다. 구동 소음을 최대한 억제한 사일런트 모드는 딸냄이가 자고 있는 모습을 살짝 찍기에도 부담이 적다. 게다가 데이터백도 기본으로 달려있어 기념할 만한 날에는 날짜를 찍어줄 수도 있다.
이 정도면 그야말로 육아 사진에 최적의 카메라가 아닌가?!
7개월이나 된 후에야 필름으로 사진을 담기시작했음이 후회스럽다. / Ilford Delta 400
쿠션을 좋아하는 딸냄 / Ilford Delta 400
청송 외가집에서 / Ilford Delta 400
엄마보다 먼저 일어난 아침 / Ilford Delta 400
꽤 늦게까지 떼지 못했던 쪽쪽이 / Ilford HP5+400
걸음마 연습 중 / Kodak TMY
돌사진 찍으러 간 스튜디오에서 / Kodak TMY
아빠랑 같이 찍은 사진은 이런 것 뿐이다 / Ilford Delta 400
바나나 먹으며 신난 딸냄 / Ilford HP5+400
할미랑 영상통화 / Ilford HP5+400
엄마 따라 톡톡톡 / Ilford HP5+400
하나 둘 찰칵! / Ilford Delta 400
자동카메라 하나를 줬더니 자기거라고 잘 들고 다닌다 / Ilford Delta 400
베개 위에서 장난치며 / Ilford Delta 400
목욕하고 나서 기분좋은 딸냄 / Ilford Delta 400
4-5년간 멈췄던 필름 사진질을 다시 시작한 건 딸냄의 성장 과정을 조금은 더 '의미있는 수단'으로 기록해주고 싶어서였다. 물론 그렇게 한정적인 용도에서만 조금씩 '아껴가며' 필름을 쓰겠다는 다짐과 달리 다시 시장 바닥이나 찍고 돌아다니는 요즘이지만 그래도 역시 가장 중요한 주제는 가족의 일상을 담아내는 개인적이고도 소박한 작업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HEXAR AF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카메라는 아니겠지만 가장 고맙고 기특한 카메라라고는 말할 수 있겠다. 이 카메라가 없었다면 딸냄의 성장 과정을 편안하게 기록할 카메라를 무엇으로 대신할 수 있었을 지 선뜻 떠오르지가 않는다.
오늘날 HEXAR AF는 중고가 기준으로 50만원 내외의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 끝내주는 헥사논 35미리 렌즈의 성능을 놓고 보면 사실 렌즈를 사면 바디는 그냥 따라오는 격이나 마찬가지. 주머니 사정 가벼운 아빠 사진가들이 가족의 일상을 촬영하는데 이만한 카메라가 또 있을까. 작은 문제를 탓하며 팔아 치워 버리지 않았음이 새삼 다행스럽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듯 세상 모든 것에도 길고 짧음이 존재한다. 우리는 저마다의 잣대로 그 길고 짧음을 따져보며 인생의 여러 선택의 기로에서 방향을 결정한다. 99%가 맘에 들어도 내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1%의 문제점이 있다면 그것을 선택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남들이 손가락질 하는 못난 모습이 내 눈에는 보기 싫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덮고도 남을 정도의 매력 포인트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줏대있는' 결정을 내리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것이 물건이든 사람이든 말이다.
크게만 보였던 단점이 더이상 밉지 않자 너무나 예쁘게만 보이는 HEXAR AF
2016.07.30. 울진
2016.07.03.
2016.04.16 영천
Konica Hexar AF
사실상 필름으로 사진 찍기를 그만둔지 거의 5년째인데 다시금 필름으로 사진을 좀 찍고 싶어졌다. 느닷없이 Leica M7으로 회귀한 지인의 영향이 컸는데 어차피 놀고 있는 필름 카메라야 여러대라 필름만 사서 찍음 그만이긴 했다. 하지만 거의 2배씩 올라버린 필름 및 인화지 가격 등을 고려했을 때 예전처럼 '길거리 풀떼기' 따위를 찍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결국 남길만한 사진, 특히 집에서 딸내미 사진을 찍는데 한정적으로 필름을 사용할 요량이었다.
이제 막 기어다니는 딸내미라 주로 실내에서 찍어야 하기에 렌즈의 최대 개방값은 밝아야했고 감도 400정도로도 사실 셔터스피드 확보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미러쇼크가 있는 SLR은 모두 탈락, 움직임이 많은 딸내미인지라 수동 초점 탈락, 노출계없는 클래식 기종들도 탈락. 결국 이런 조건을 충족하는 건 이 헥사 AF가 딱이었다. 최대개방값 2.0의 헥사논 35미리 렌즈에다 저소음, 저진동, AF속도도 빠르다. 반면 이 기종의 치명적인 단점은 최고 셔터스피드가 불과 1/250초밖에 안된다는 점인데, 지금의 용도인 실내 촬영에서는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는 것도 다행이었다. 그렇게 5년만의 첫 필름 사진은 헥사 AF로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나름 간만에 들뜬 마음으로 2CR5 배터리도 새로 갈아주고 필름을 넣고 몇 컷을 찍어봤다. 그런데 AF Lock이 자꾸 풀리는 것이 아닌가. 초점을 맞추고 구도를 잡고 셔터를 누르면 초점이 풀리며 다시 초점을 잡고 셔터가 릴리즈됐다. 처음엔 너무 오랜만이라 반셔터감을 잊었나 싶었는데 몇번을 찍어도 그랬다. (아까운 내 필름..) 아무래도 이상하다 싶어 검색해보니 헥사 AF에서 종종 발생하는 고질병이라고.. 피사체를 한가운데 놓고 찍는 일이 거의 없는지라 AF Lock이 안되면 사실상 사용 불가다. -_-;; 난감해하던차 다행히 어찌어찌 자가 수리 방법을 알게 되었고 참지 못하고 바로 뜯기 시작했다.
1. 상판 분해
상판 분해를 위해서는 총 5개의 나사를 풀어줘야하는데 뒷면의 2개와 왼쪽의 1개는 겉으로 노출되어 있으니 문제없고 전면의 2개는 레자로 덮여져있어서 렌즈 옆쪽의 레자를 살짝 벗겨내어 노출시켜야한다. 나는 어디에 나사가 있는지 몰라서 꽤 많은 부분을 뜯어냈는데 사진처럼 렌즈 좌우측 부분을 조금만 벗겨내면 된다.
작은 일자 드라이버 같은 걸로 틈새에 넣고 살짝 들어서 벗겨내준다. 끝부분을 잡고 잡아당기거나 하면 자칫 레자가 늘어가거나 할 수 있으므로 주의.
이쪽도 마찬가지. 레자 안에는 접착제가 발라져있어서 재조립할 때도 그냥 꾹꾹 눌러주면 다시 잘 붙는편이다. 만약 좀 뜨거나 하면 일명 돼지본드나 오공본드 같은 걸 얇게 펴 발라서 살짝 마르고 난 후 붙여주면 된다.
나사 5개를 모두 푼 후, 상판을 살짝 들어주면 요렇게 열린다. 플래쉬 접점과 전선이 열결되어 있어 완전히 떼어지진 않는다. 셔터 부분 수리와는 상관없으므로 그냥 두고 진행.
2. 셔터부 기판 열기
상판을 열고 나면 셔터 부분 쪽에 초록색 기판이 보인다. 여기에도 3개의 나사가 있는데 요걸 다 풀어준다.
나사 3개를 풀고 기판을 옆으로 젖혀주면 아래쪽에 셔터부 접점이 보인다.
3. 접점부 WD-40 분사
헥사 AF의 AF Lock 풀림 문제는 기계적 문제가 아닌 접점부의 전기적 접촉 불량이 원인인 경우가 많아 여기에다 WD-40을 뿌려주는 것만으로도 대부분 해결이 된다고 한다. 진짜 이렇게만 해도 되나 싶은 의문이 마구 들지만 일단 뿌려본다. 워낙 좁은 부위라 그냥 한번 칙~
4. 재조립
당연하지만 재조립은 분해의 역순.. 주의할 점은 조리개 조절 다이얼과 맞물리는 흠을 잘 맞춰줘야 한다는 거. 처음에 아무 생각없이 조립했다가 조리개 조절이 안되서 뭔가 사고친줄 알고 약간 식겁을.. 그리고 이왕 상판 분해한 김에 파인더와 접안부 유리 청소도 해주면 좋다.
수리 결과는 100% 완치! 자꾸만 풀려버리던 AF Lock도 확실히 걸리고 반셔터 감도 나아진 것 같은 느낌이다. (아마 느낌 뿐이겠지만..) 이건 뭐 손재주 축에도 못드는 초단순 자기 수리 방법이지만 효과는 확실해서 상당히 만족스럽다. 이것도 수리점에 맡기면 돈 10만원은 우습게 받을텐데..
이제 아껴가면서 잘 찍어주기만 하면 된다. 끝.
2015.06.21
이제서야 스캔해서 포스팅하게 되니 좀 민망하긴 하다만 묵혀둔 필름의 이미지들을 다시금 바라보니 당장이라도 카메라를 들고 나서고 싶어진다. 이번 사진들은 지난 8월 가족들과 다녀온 여행에서 얻은 의외의 소득, 군산 새벽 도깨비 시장에서 촬영한 컷들. 역전 앞에 잠깐 서는 도깨비 시장이야 곳곳에 있는 편이지만 군산만큼 크게 서는 장은 본 적이 없다. 지난 2006년에 군산을 찾았을 때는 가보지 못했던 이 새벽시장을 촬영하고자 기어이 일어나 다녀왔다. 아무래도 상인들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도 있는 시장 촬영이라 시선을 끌기 쉬운 니콘은 두고 Hexar AF와 Contax T3만 달랑 들고서 역전앞을 누비며 마음껏 셔터를 눌렀고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