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약한 취미 오디오. 20년이 다되어가는 취미인 사진(카메라)은 그래도 스펙이 명확하고 리뷰를 보거나 하면 대강의 성능이라도 가늠이 되지만 이놈의 오디오라는 취미는 글과 사진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귀'로 하는 취미가 아닌가. 공간감이 뛰어나고 악기들의 정위감이 훌륭하며 질감이 느껴지는 두툼한 중역대와 섬세하지만 가늘지 않게 뻗어가는 고음, 풍성하면서도 단단함을 잃지 않는 저역의 양감..뭐 이런 식으로 표현된 글을 읽고 도대체 어떻게 판단하란 말이냠. 그러니 더 궁금해지고 일단 사서 들어보고 싶어 지는 욕구가 더 커지는 몹쓸 분야가 바로 오디오다. 


오디오란 녀석은 가격대도 수십에서 수천까지 다양한데 다른 분야에서라면 '잘 모르면 일단 비싼게 좋다'는 공식이 어느정도 통한다지만 오디오는 또 그렇지가 않다.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이 우선 가장 중요하고(그래서 오디오파일들의 궁극의 지름은 단독주택이라고..) 스피커와 앰프, 심지어 케이블류까지 서로간의 매칭도 무시하지 못하며 클래식이나 재즈, 팝, 락 등 자신의 음악 기호에 맞는 스피커와 앰프를 구해야 하는데다 금전적인 부분에서도 적정한 수준에서 짜맞춰야 하니 머리가 팽글팽글 돈다. 어쨌든 지금은 다른 무엇보다 공간의 문제가 가장 커서 좀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면 제대로 시스템을 구축해봐야겠단 생각으로 날마다 정보 수집과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고 있었는데. 그러던 중 장터에 물건이 하나 보였다. 바로 보스 1705-2와 101it였다.





조촐한 하이파이 시스템 : Bose 1705-2 / Bose 101it Speakers / Inkel 6030G CDP




앞서 언급했듯이 오디오 시스템에서 매칭의 중요성은 무시하기 어려운데 그 매칭 사례 중 훌륭하다고 손꼽히는 조합이 바로 이 1705와 101it이다. 손바닥만한 작은 앰프와 플라스틱 인클로저에 풀레인지 유닛을 장착한 별거 없어 보이는 이 스피커의 조합이 왜 그토록 인기가 높은지 궁금해졌고 집에서 사용중인 보스 웨이브시스템과 블루투스 모바일 스피커의 느낌과는 또 어떻게 다른지 들어보고 싶었다. 황준씨의 책과 블로그를 통해 이 둘의 조합이 엄청나게 유명세를 얻으면서 중고가도 상당히 올라간 편이었지만 역시 되팔기도 수월할 것 같아 일단 질렀다.






보스 1705-2 인티앰프의 모습. 일반적으로 1705가 조금 더 좋다고들 얘기하던데 뭐 큰 차이는 없을 것 같고 내가 산 1705-2는 1705와 달리 좌우 스피커의 볼륨을 따로 제어할 수 있다. 무광 검정으로 도색되어 있는 앰프에서 빨간색의 전원 버튼과 초록색 조명은 그나마 포인트가 되어준다. 사실 오디오 기기라기 보다는 무슨 군용 통신장비 같은 느낌이 드는 모양인데 실제로도 들어보면 손바닥만한 크기와 달리 완전 쇳덩이라 꽤나 묵직하다. 볼륨 조절은 0부터 10까지 가능한데 집에서는 2까지도 올리지 못할 정도로 소리가 크다. 누군가는 아무 생각없이 5정도에 올려두고 음악을 재생시켰다가 지진난 줄 알았다고 하던데 거기까지 올렸다간 당장에 이웃에서 난리가 날 듯. 






앰프의 뒷면. 입력단 오른쪽으로 가운데에는 101스피커 시리즈와 그 밖의 스피커로 EQ셀렉터가 있다. 101it를 물려놨으니 당연히 101쪽으로 EQ셀렉터를 위치해뒀다. 1705시리즈와 101it가 최적의 매칭이라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부분이다. 소형 앰프라 기능이나 확장성은 최소화되어 있다. 스피커도 한조만 연결할 수 있고 Input단자도 하나 뿐이다. 이 앰프가 메인이 되어 CDP나 튜너, 턴테이블등을 동시에 물려쓰고자 하자면 별도의 셀렉터를 구입해야 한다. 물건 자체도 귀하고 이 앰프에 셀렉터까지 갖추자면 다른 인티 앰프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커진다는게 문제. 하지만 1705매니아라면 구입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것 같다.





단점이라면 단점. 100V 전원 사용이라 이른바 '도란스'가 필요하다. 110V도 아닌 100V라 한일공업에서 나오는 220V -> 100V 소형 다운트랜스를 구입해서 연결했다. 






그리고 보스 101it 스피커. 101시리즈 중 약간의 별종인데 가장 인기가 높은 모델이다. 스피커의 안쪽 면엔 덕트가 있는데 이 덕트를 서로 마주보게 하고 스피커 사이에 가리는 물건이 없이 적당한 거리를 두어 설치하면 보스 특유의 음장감이 극대화된다. 사진은 촬영을 위해 스피커를 조금 더 붙혀둔 것이고 실제 음악을 들을 때는 더 벌려두고 있다. 101스피커에는 전용 스탠드도 있는데 허접한 모양새와 달리 구하기가 어렵다 보니 중고가도 상당히 높아 자작(?)해버렸다. 매틴에서 나오는 소형 삼각대 2개를 2만원 조금 넘게 주고 사서 기존의 나사를 뜯어내고 스피커 하단의 나사 구멍에 맞는 5X20 나사로 끼워줬다. 






그릴을 열고 바라본 101it의 풀레인지 유닛. 풀레인지 답게 자연스럽고 편안한 음색과 중역대의 풍부함이 훌륭하다. 측면의 덕트 덕분에 저음의 양감은 꽤나 풍성하다. 테스트차 여러가지 음원들을 들어봤는데 가장 놀랬던 곡은 김윤아 솔로 앨범의 '야상곡'이었다. 김윤아의 목소리와 숨소리가 너무나 생생하게 밀려왔는데 이건 글로써는 어떻게 표현을 할 방법이 없네. 그 밖에 스탠 겟츠의 'The Girl from Ipanema' 에서도 색소폰의 두툼한 소리와 여성 보컬의 청명함이 인상적이었다. 전체적으로 재즈나 팝에는 뭐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겠나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만족스러웠다만 클래식에서는 소나타나 현악 4중주 정도의 소편성 이상으로 넘어가면 한계가 있다. (사실 대편성은 어지간한 시스템으로도 힘들긴 하지만) 





스피커의 뒷 면. 구입 후 초반에 테스트차 들었던 이작 펄만의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에서 고음이 너무 날카롭게 느껴져 고음을 좀 완화시키고 중역대를 두툼하게 한다는 주석 도금선인 벨덴 8477을 연결했다. 문제는 선이 너무 굵어 스피커 단자에 잘 끼워지지가 않는다는 점이다. 대충 꼬아서 억지로 끼워뒀는데 불안하기 짝이 없다. 이 케이블로 계속 갈거면 단자를 사서 끼워주던지 해야겠다.




어쨌든 나의 첫 하이파이 시스템인 보스 1705-2와 101it 스피커. 팝이나 재즈를 즐겨 듣고 공간이 그리 크지 않다면 50만원 정도를 투자해 이 정도 음질을 들을 수 있다는 건 꽤 괜찮은 선택이라 생각이 든다. 디자인은 참 싼티나게 생겼지만 자꾸 보니 또 정이 든다. (와이프는 못생겼다고 이사가는 즉시 팔아버리라고 하는 중) 보스는 유독 오디오파일들로 부터 많이 까이기도 하는 브랜드이지만 또 그만큼 매니아도 많은 브랜드인데 보스 특유의 음장감과 풍성한 저역에서 오는 느낌은 칼 같은 해상도와 정위감과는 달리 스펙으로 설명이 안되는 보스만의 색깔과 매력이 있다. 가장 작은 101시리즈에서 가장 인기있는 101it를 들어보고 나니 301이나 901같은 보스의 대표적인 라인업이 또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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