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 알람 소리에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옆에서 자고 있는 와이프와 딸냄이 깰라 얼른 알람을 끄고 이불 밖으로 기어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동생도 부시시한 얼굴로 거실로 나와있다. 얼굴에 물만 바르고 카메라를 챙겨 차에 올랐다. 여름이라 벌써 밖이 환하다. 지금 가도 드라마틱한 장면을 만나기엔 늦었겠다 싶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강바람 맞으며 잠시 유유자적하면 될것인데. 상관없다.







30여분을 달려 두물머리에 도착했다. 역시나 새벽부터 부지런함을 떤 수많은 사진가들이 진을 치고 있다. 팔당호를 지나며 보니 물안개가 제법 피었던 것 같은데 저들은 늦잠을 포기한 보람이 어느정도 있었을 것 같다. 다 늦은 시간 도착해 삼각대도 없이 허접해보이는 낡은 카메라를 들고 기웃거리는 나를 보고 혀를 찼을 이도 있었으리라. '난 꼭 사진찍으러 온게 아니라니깐.' 괜히 속으로 변명해본다.







사실 저들처럼 나도 두물머리를 자주 찾은 적이 있었다. 회기역 뒷편에서 버스를 타고 '오늘은 물안개가 피어올라줄까?' 하는 부질없는 기대를 하면서 말이다. 사실 잘 찍어봐야 달력 사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겠지만 그 땐 그래도 그 한 컷을 건지고 싶었다. 일교차가 큰 늦가을, 초겨울에 주로 찾아야 했던 탓에 강가의 새벽 한기에 오들오들 떨어야 했고, 심지어 두물머리에 가면 서 있는 커다른 나무 아래 벤치에 누워 쪽잠을 자며 밤을 샌 적도 있었지만 한번도 마음에 쏙 드는 장면을 만나지 못했다.  두물머리 출사는 고생에 비해 성공 가능성이 너무 낮았다. 








해가 이미 높다. 작정하고 사진을 찍으러 왔으면 역시 더 일찍 왔어야겠다. 예쁜 풍경 사진, 이른바 달력 사진은 전형적인 아마추어들의 몫이지만 어쨌든 부지런하지 않으면 그 또한 쉽지 않다. 







동호인들의 카메라 화망 앞으로 배 한척이 지나간다. 요새 하도 만들어내는 사진들이 많다보니 저 배도 동호회에서 돈을 지불하고 연출하려고 움직이는 배가 아닌가 하는 쓸데없는 의구심이 들었다.







중년의 아줌마, 아저씨들로 구성된 동호회 회원들은 이제 철수를 시작했다. 저마다 최신의 DSLR에 짓조 삼각대 따위를 갖추고 있었다. 같은 위치에서 우루루 모여서 셔터를 눌러댔으니 얼마나 다른 컷들이 담겨 있을지 모르겠지만 모두가 기대를 안고 메모리 카드를 PC에 꽂아 오늘의 수확물을 확인하며 즐거워 하리라. 저 모임 안에서도 이른바 사진을 제일 잘 찍는다는 에이스가 있을거고 좋은 장비를 많이 가져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 이들도 있겠지. 고만고만한 아마추어들 사이에서 누가 더 잘 찍고 못 찍고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나역시 '이놈의 사진 찍어봤자 뭐하나' 하는 회의감이 들 때도 있다.







연배가 지긋해보이는 분에게 셔터를 좀 눌러달라고 부탁드렸다. '하나~두울~ 셋!' 셔터를 누르시고 나더니 버릇처럼 카메라 뒷면을 보신다. '아 이거 필름 카메라네요? 라이카네.' 내 니콘 D700은 제습함에 들어가 나오지 못한지가 1년도 넘은 것 같은데 세상의 주류는 역시 디지털인갑다.







여전히 나 하고 싶은건 하겠다며 돈지랄인 필름 사진질을 놓지 않고 있는 나와 달리 직장 생활과 육아에 지친 동생은 이제 사진을 거의 찍지 않는다. 대학교 다닐 땐 이 곳에서 찍은 슬라이드 컷으로 학교 동아리 전시회에 걸기도 했던 동생이지만 이제는 핸드폰으로나 두물머리의 풍경을 찍고 있다. 동생의 그런 모습을 보면 그렇게 어른이, 가장이 되어가는건가 싶기도 하고 피곤에 찌든 그의 모습을 볼 때면 늘 안쓰럽다. 







동생은 3군 사령부 직할 통신대에서 운전병으로 군생활을 했다. 선임들이 칼 같이 다려준 전투복을 입고 100일 휴가를 나와 할머니께 '선봉!'하고 경례를 붙이던 장면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휴가 나올 때와 달리 복귀 때는 차 안에서 아무 말도 않을 정도로 의기소침했던 동생은 부대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나서도 아직 복귀 시간이 남았다며 들어가기 싫어했다. 돌아갈 길이 먼 부모님과 나는 그냥 일찍 들어 가라고 했지만 어쩔 수 없이 복귀 시간까지 더 있어줬고 그래서 시간을 떼우러 들른 곳이 이 곳 두물머리였다. 동생의 중대는 이 근방이었다.







찾는 이가 많아지면서 주차장도 넓게 만들어져 있고 주변엔 까페도 많이 생겼다. 땅값도 제법 올랐을텐데 상수원 보호지역이라 개발이 호락호락하지 않은지 낡은 빈집은 그대로 남아있다. 변하지 않은 건 한강 뿐인가.






두물머리는 그동안 찾은 횟수에 비해 건진 사진이 그리 없어서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곳이었는데 기억을 더듬어보니 제법 많은 추억이 쌓여진 곳이었다. 이제 예전처럼 여기에 오면서 뭔가 '작품'을 건져야겠다는 욕심은 들지 않지만 서울에 오게되면 동생과 드라이브 삼아 찾고 싶은 곳은 여전히 두물머리긴 하다. 벌써 10년이 다되어 간다는 사실이 소스라치게 놀랍지만, 동생이 막 서울 생활을 시작했을 무렵, 출장 길에 서울에 들른 나는 늦은 밤에 문득 두물머리에 가보고 싶다고 했고 '지금 가보지 뭐.' 라며 동생은 차를 돌렸다. 아버지께서 물려준 구형 SM520이었다. 지금 기준으로 보자면 중형차라 하기에 실내 공간도 좁고 인테리어도 올드했지만 전형적인 세단처럼 생긴 디자인이 멋졌고 탄탄한 서스펜션의 주행감각도 나름 좋았다. (게다가 수동 미션이었다) 동생이 운전하는 그 SM520을 타고 음악을 크게 틀고 하늘만큼 캄캄한 한강을 거슬러 두물머리로 향하던 그 날 밤이 문득 그립다.





2017.06.04. 양평


Leica IIIa / Elmar 5cm f3.5 / Kodak 400TX / IVED


 
















































2017.06.03. 서울


Leica IIIa / Elmar 5cm f3.5 / Elmar 3.5cm f3.5 / Kodak 400TX / IVED








































2017.05.07. 청송


할 줄 아는거 없는 사위는 죄송한 마음에 괜히 기웃거리기만 하다 사진만 찍고.


Leica IIIa / Elmar 3.5cm f3.5 uncoated / Kodak 400TX / IVED


케케묵은 고물 카메라와 렌즈를 사용하는 일은 생각보다 꽤 성가신 일이다.




다분할 멀티측광에 초당 수컷이 촤르르 찍히는 모터드라이브, 순식간에 초점을 맞춰주는 AF기능이 기본이 된 오늘날 뭔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칠순이 훌쩍지나 팔순을 바라보는 바르낙옹을 손에 쥐고 다니는지 스스로도 가끔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노출계는 당연히 없고 셔터스피드도 유럽식이라 1/40, 1/100, 1/200 같이 애매하게 되어있다. 여기에다 오늘 붙혀둔 Elmar 3.5cm는 또 어떠한가. 코팅도 적용되어 있지 않은 맨유리알인데다 조리개 수치도 4.5, 6.3, 9, 12 등으로 희한하기 그지없다. 노출계야 외장으로 쓴다 쳐도 측광값을 카메라와 렌즈에 적용하기 참 난감하다.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이런 녀석을 데리고 다니자면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한다. 1/3스탑 단위로 브라캐팅을 하던 결벽증 따위는 저 멀리로 던져 버리고 부처님같은 관용도의 400TX를 믿고 '대충' 맞춰서 셔터를 눌러야 한다. 무코팅이라 역광에 맞서는 무모한 짓도 최소화한다. 파인더를 들여보다 영 자신이 없다 싶으면 포기하면 된다. 태양에 맞서봤자 Summicron 35mm ASPH같은 사진을 만들어줄리는 만무하다. 이 녀석으로 잘할 수 있는 장면에 그저 충실하기로. 그것이 이 오래된 카메라와 렌즈로 할 수 있는 최선의 사진질이다.




이 불편함과 명확한 성능상의 한계는 이미지 퀄리티라는 측면에서는 어쨌거나 모든 면에서 불리하게 작용한다. 하지만 취미 사진가에게는 이러한 것들이 무조건 단점으로만 작용하지는 않는다. 보다 유리한 빛의 상황을 파악하고 단점은 커버하고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장면과 피사체를 찾아나서게 한다. 그야말로 쇠붙이와 유리로만 만들어진 정직하고 단순한 기계로 세상과 1:1로 마주한다는 느낌. 여기서 오는 소탈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기름지게 번들거리는 현행 렌즈의 화려한 코팅색도 부럽지 않고 최첨단 기능이 녹아있는 멋드러진 DSLR도 부럽지 않다. 밧데리 없으면 찍지도 못하는 거. 




내 처가는 경북 청송이다. 경북에서도 산간 내륙인 이 곳은 전국적으로 봐도 가장 발전이 더딘 곳 중 하나다. 처가가 있는 마을은 청송군에서는 비교적 큰 곳인 청송읍과 진보면 사이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마을 입구에는 제법 잘 가꾸어진 너른 솔밭이 푸르고 시원한 그늘을 선물해주고 있으며 동쪽과 서쪽에 자리한 산 사이로 흐르는 작은 개천과 그 개천을 따라 이어진 논밭이 제법 너르게 자리한, 작지만 아담한 동네다. 이 곳에서 자란 나의 아내는 어릴 적 동네 오빠야들을 따라 산을 뛰어다니고 논두렁에서 뛰어내리며 슈퍼맨 놀이를 하고 개울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놀았다. 하교길에 장인어른의 경운기라도 만나면 '아빠!'하고 달려가 점방에서 산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경운기를 타고 집으로 오던게 그렇게 좋았다고 하는 나의 아내. 나는 나의 아내가 그런 소박하고 행복한 유년 시절을 겪었음이 감사했고 나의 처가가 이런 곳이라 퍽 마음에 들었었다. 




처가를 갈 때면 언제나 카메라를 챙겨간다. 넓지 않은 동네라 돌아다녀봐야 찍을 것이 많지 않지만 계절과 빛의 변화가 보다 솔직하게 드러나는 이 곳에 가면서 카메라를 챙겨가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 어버이날을 며칠 앞둔 주말 찾았던 처가에서 속닥한 카메라 하나를 손에 쥐고 논길과 농로를 따라 걷고 두리번거리며 2롤의 필름을 찍었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이 곳에서 빠르고 편리한 카메라가 장점을 발휘할 일은 없다. 정직하게 제 속도에 셔터가 끊기고 빛이 들어오는 구멍만 제대로 조절되면 그걸로 족하다.




그 다음은 나의 몫이다. 






















































2017.05.06~07 청송








Leica IIIa / Elmar 3.5cm f3.5 (uncoated) / Kodak 400TX / IVED






























2017.05.25. 경주 건천


Leica IIIa / Elmar 3.5cm f3.5 (coated) / Kodak 400TX / IVED


근대 문화 유산에 대한 개인적 흥미로 인해 오랜 모습을 간직한 곳을 방문하기를 즐긴다. 물론 우리에게 ‘근대’란 일제강점기라는 암흑기와 일치한다는 점에서 무척 혼란스럽다. 새로운 기술과 가치관이 쏟아지던 ‘모던’의 향수와는 거리가 멀었던 시대상 탓에 근대 문화 유산을 사진에 담는 작업은 그래서 또 곤혹스럽고 가슴이 무거워지는 것이었다. 아직 정리할만한 사진도, 자료도 또 그럴만큼 많은 작업을 하지도 못했지만 지난 출장 길에 들렀던 대전의 옛 충남도청 사진들을 올려본다.



대전광역시 중구 선화동에 위치한 옛 충남도청 건물. 1932년에 지어져 2012년까지 도청으로서 역할을 하였고 내포 신도시로 도청이 이전한 이후 현재는 대전 근현대사 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최초에는 2층으로 건설되었으나 해방 후 3층을 추가로 얹었다. 당당하게 자리잡은 건물은 현재 중앙로를 따라 대전역과 일직선으로 이어져 경부선과 호남선이 만나는 교통의 요지에 들어선 일제의 통치시설 답게 권위적이고 위압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벽돌로 지어진 고풍스런 이 건물에서 권위를 느껴야하는 것 또한 우리 근대사의 아픔일 수 밖에 없다.





1층 복도의 모습. 샹들리에 조명 위와 바닥에 별 문양이 보인다. 이 별 문양은 건물 벽면을 비롯한 곳곳에 장식되어 있는데 조선총독부에 있는 그것과 비슷하다고 하여 한 때 논란이 되었다고 하는데 ‘큰 의미’는 없는 것으로 밝혀져 지금껏 남아있을 수 있었다고 한다. 진짜 별 의미가 없는 것인지는 쪽국애들한테 물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지만 굳이 추론해보자면 교통의 중심지 대전이니 나침반의 방위각을 형상화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건물외벽에도 이처럼 별 문양이 장식되어 있다. 사실 이런 문양은 우리에겐 그 개념이 없던 것으로 대한제국의 상징이라 여겨지는 이화(배꽃)문양도 사실 19세기 말이 되어서야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거기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설들이 많다. 사실상 한국에 대한 영향력이 막강해진 일본이 자신들의 지방 정부와 같은 정도로 격하하기 위해 문양 사용을 강요했다는 얘기부터 그렇지 않은 자주권의 발현이었다는 얘기까지 있지만 뭐가 맞든지 간에 힘없는 나라의 슬픈 역사는 달라지지 않는다.





80년이 넘은 건물이니만치 그동안 창틀 정도는 교체되었을 만도 한데 여전히 원형 그대로인 것으로 보였다. 오래 되었어도 튼튼하게 남아있는 교량이나 건물들을 보며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하시던 얘기가 떠올랐다. ‘일본놈들이 말이야. 뭐니뭐니 해도 저런거 만들어 놓은거 보면…’





2층으로 올라가보기로 한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계단은 반들거렸고 넓은 채광창은 별다른 장식조차 없이 단조로워 사무공간다운 딱딱한 분위기를 더해준다.





계단을 오르다 뒤돌아서 입구로 누군가 들어오길 기다려봤지만 한참을 지나도 아무도 오지 않던 차에 그나마 한 분이 나타나셔서 셔터를 눌렀다. 너무 이른 시간에 찾아온지라 전시관 문도 열리지 않았고 찾는 이도 없었다.





사람이 너무 없다보니;;





2층에 오르면 한 가운데 도지사 집무실이 있다. 개방되어 실내를 구경할 수 있지만 역시 너무 이른 시간이 문이 닫혀 있었다. 결국 도지사 집무실을 등지고 한 컷.





도청 바로 옆에는 충남지방경찰청 옛 건물이 남아있다. 이 건물은 해방 후의 건물이지만 일제 당시에도 도청 바로 옆에 경찰서 건물이 자리하여 행정과 치안의 핵심이 함께 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다소 특이한 형태의 상무관이라는 건물이 있다. 이 곳은 일제 당시 일본 경찰들이 유도 등 무예를 수련하고 신체를 단련하던 ‘무덕전’이라는 일본식 건물이 있던 자리로 해방 후 원래 건물은 소실되고 1963년에 그 기초를 이용해 다시 지어진 것이다.



광주에 있던 무덕전.  1967년에 철거되던 모습이다.



일제는 이처럼 각 지방 경찰서에 무덕전이라는 건물을 지어 경찰들이 유도를 수련하게 했는데 軍도 아닌 경찰에서 ‘武’라는 단어를 굳이 사용한 것만 봐도 그들의 통치, 치안 철학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역시 아무 생각이 없다보니 해방 후에 새로 지어진 이 건물의 이름도 ‘상무관’이다. 일제가 남긴 것은 소나무의 상채기처럼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너무 이른 시간에 오는 바람에 전시관을 보지 못해 얻을 수 있었던 정보와 자료를 접하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쉬웠다. 언젠가 다시 방문할 일이 있기를 기대하며 중앙로를 따라 대전역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2017.04.15. 대전

Leica IIIa / Canon 28mm f2.8 LTM / Ilford HP5+ 400 / IVED




Leica IIIa / Elmar 5cm f3.5 (Red Scale) / Sbooi 50mm Viewfinder


1937년생 카메라와 시리얼이 없는 특이한 엘마. 외관은 일명 레드 스케일 엘마의 형태를 가지고 있고 코팅색도 그러하나 시리얼 넘버가 없고 조리개는 16까지만 조여지는 것으로 보아 초기형 엘마에 코팅을 더하고 외부 경통을 레드스케일 타입으로 개조한 Factory Upgade 버전이 아닐까 추정만 하고 있다. 













Orion-15 28mm f6.0
























Leica IIIa / Canon 28mm f/2.8 LTM / Voigtlander 28mm View Finder



바르낙 라이카를 쓰게 되면서 외장 파인더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바르낙의 뷰파인더는 매우 좁아서 쾌적하게 들여다 보기는 사실 좀 어렵다. 물론 적응하고 나니 크게 불편하진 않다고 여겨지지만 엘마 50미리를 사용할 때 실제로 파인더에서 보여지는 화각이 약 40미리라 정확한 프레이밍을 하기 어렵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결국 이 부분은 50미리 외장 파인더 'Sbooi'를 구입하는 것으로 해결했다.





Leica IIIa / Elmar 5cm f/3.5 / Sbooi (50mm View Finder)






지인에게서 무상대여한 Elmar 3.5cm f/3.5가 있다. 요녀석을 써주자면 35미리 파인더가 필요하다. 앞서 얘기했듯 바르낙 파인더가 40미리 정도라 조금 더 나오겠거니 하고 찍으면 그런대로 쓸만하긴 하지만 제대로 찍으려면 역시 외장 파인더를 써주는 편이 맘이 편하다. 다행히 내겐 Biogon 35mm용 ZeissIkon 432/5 파인더가 있었다. 별도로 또 파인더를 살 필요없이 요녀석을 쓰면 되겠다 싶었는데.





Leica IIIa / Elmar 3.5cm f/3.5 / ZeissIkon 432/5(35mm View Finder)






Contax와 Leica의 핫슈 위치가 좀 다르다 보니 파인더를 끼웠을 때 접안부가 뒤로 좀 많이 튀어나오는게 거슬리긴 하지만 그래도 쓰는데는 지장이 없겠거니 했는데 생각도 못했던 문제가 발생했다. 바르낙은 셔터스피드를 변경할 때 다이얼을 살짝 들어서 돌려야 하는데 이 때 다이얼이 파인더에 부딪혀 완전히 들리지가 않는게 아닌가. 그러니 저 파인더를 꽂은 상태에서는 셔터스피드를 변경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아놔. 결국 바르낙에 엘마 35미리를 쓰려면 다른 파인더를 사야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Voigtlander의 28/35 미니 파인더. 작은 크기에다 28미리 화각도 커버할 수 있어 이 녀석을 구한다면 딱이다. 하지만 단종되면서 가격이 엄청나게 올라서 제 정신으로 사긴 힘들다. 무척 아쉽다.







Leitz 순정 Weiso 파인더. 제 짝이니 만큼 바르낙엔 정말 딱 어울리는 모양이지만 크기 자체가 작다보니 그리 시원하게 보이지는 않는데다 가격은 또 어찌나 비싼지 저 파인더를 살 돈이면 바르낙 바디를 하나 더 살 수 있는 수준이다. 역시 제 정신으로는 살 수 없다.








Leitz 순정 Sbloo 파인더. 엄청 시원하고 밝지만 저 거대한 사이즈를 보면 아무리 그래도 바르낙에 꽂을 물건은 아닌것 같다.






이래저래 빼고 나니 막상 맘에 쏙 드는 파인더가 별로 없었다. 주피터-12용으로 나온 소련제 파인더나 니콘, 캐논의 것들도 나름의 대안이긴 했으나 썩 예쁘지도 않고 프레임 라인도 없고 그다지 밝아 보이지도 않는다. 그래도 뭔가 나타나겠지 하는 마음으로 틈나는대로 이베이에서 이런 저런 파인더들을 꾸준히 검색했고 그러던 중 우연히 일본 Petri 社의 파인더를 발견했다. 그리 예쁜 편은 아니었지만 배송비를 포함해도 40불 정도밖에 안할 정도로 가격도 저렴했고 35mm와 85mm 프레임이 같이 떠 활용성도 높아보인다. 일단 덥썩 질러봤다.







약 2주 정도의 기다림 끝에 파인더가 도착했다. 그런데 막상 받아보니 파인더 내부가 엄청 뿌연 것이 아닌가. 셀러에게 '니 설명과 다르잖아!'라면서 네가티브 피드백을 확 눌러버릴까 하다가 일단 직접 청소해보기로 했다. 전용 공구는 없었지만 멀티툴의 칼날을 홈에 집어넣고 조심조심 링을 돌려서 전면 렌즈를 빼낼 수 있었다. 







렌즈를 분해한 후 불빛에 비춰보니 역시나 안쪽에 얼룩들이 뿌옇게 묻어있었다. 이러니 파인더를 들여 봤을 때 밝고 시원한 느낌이 들 리가 있나. 







뿌옇게 묻은 얼룩들을 알콜 티슈를 이용해 닦아줬다. 







렌즈를 닦고 재조립하여 파인더를 들여다보니 이전보다 훨씬 선명해졌다. 프레임 라인은 실제로는 왜곡이 거의 없지만 아이폰으로 찍다보니 많이 휘어졌다. 파인더의 밝기는 그렇게 우수한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의외의 장점이 있었는데 바로 등배 파인더라는 점. 등배 파인더는 보기에도 시원시원하고 양눈을 뜨고 촬영하기에도 유리하다. 







프레인 라인에는 화각은 적혀있지 않고 광각(W)과 망원(T)로만 표시되어 있는데 M6의 35미리 프레임 라인과 거의 유사한 걸 보니 35미리가 맞긴 맞는 듯. 







자이스이콘의 파인더와 달리 바디의 두께를 넘지 않아 뒤로 툭 튀어나오지 않는 점도 마음에 든다.







페트리라고 하면 6-70년대까진 나름 중저가 시장에서 활약하던 일본 메이커였는데 이 파인더는 어떤 렌즈와 카메라를 위해 발매되었던 것인지 궁금해진다.







이 파인더 덕분에 이제 Elmar 3.5cm 를 편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다소 싼티나는 부분들도 없잖아 있지만 무려 등배에다 35/85미리를 커버해주는데다 뒤통수도 튀어나오지 않으니 이만하면 싼 맛에 강추다. 




2017.05.04.




빛이 좋은 오후다.


간만에 미세먼지도 황사도 없어 하늘이 청명하다. 낮은 해가 만들어주는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고 세상에 입체감이 더해지기 시작한다. 사진가들이 사랑할 수 밖에 없는 황금 시간대, 이대로 사무실에 쳐박혀 있을 수는 없겠다. 단촐한 카메라 하나를 달랑 들고 밖으로 나갔다. 저녁밥은 안먹어도 상관없다.




회사에서 차로 10분이면 올 수 있는 금척리. 경주와 건천을 동서로 잇는 도로 양편에 38기의 크고 작은 고분들이 산재한 곳이다. 금척이란 금으로 만든 자를 말하는데 이 곳에 금척이 묻힌 무덤이 있다고 하여 마을 이름도 금척리다. 금척리 고분군에는 아래와 같은 전설이 있는데.




옛날 신라에 금자를 왕에게 바친 사람이 있었다. 죽은 사람이라도 이 금자로 한번 재면 다시 살아나고, 무슨 병이라도 금자로 한번 쓰다듬으면 그 자리에서 낫는다는 신기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왕은 이 금자를 국보로 여겨 매우 깊숙한 곳에 두었다. 이런 소문이 당나라에 전해지자 당나라에서는 사신을 보내 금자를 보내달라고 요청하였다. 왕은 국보에 해당하는 금자를 달라고 하는 무뢰한 당나라 사신에게 순순히 금자를 내줄 수가 없었다. 곧 신하에게 명하여 토분을 만들고 그 속에 금자를 파묻었으며 주변에 다른 토분을 만들어 어느 곳에 금자를 묻었는지 알 수 없게 하였다. 그리하여 당나라 사신은 그 많은 토분을 헤치고 금자를 찾아낼 기력이 없었던 듯 물러나고 말았다. 왕의 지략으로 금자를 당나라에게 빼앗기지 않았으나, 이후 어느 토분에 금자가 묻혔는지는 아무도 모르게 되었다고 한다. 사적 제43호로 지정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금척리 고분군 (답사여행의 길잡이 2 - 경주, 초판 1994., 개정판 23쇄 2012., 돌베개)




금척리로 가는 길. 오후 5시가 넘자 인근 농공단지 등에서 일하는 것으로 보이는 주민들이 띄엄띄엄 퇴근해서 오고 있었다. 평소 찾는 이가 거의 없는 이 곳에 카메라를 들고 나타난 낯선 이를 홀깃 쳐다 보셨다.




금척리 고분군은 도로를 따라 좌우로 나뉘어 있는데(정확히는 도로가 신라의 국립묘지를 감히 가로질러 난 셈) 북쪽보다 남쪽에 더 많은 고분들이 산재되어 있다. 1951년 도로 확장 공사당시 파괴된 상태의 고분 2기를 급한대로 발굴 조사를 했고 금귀고리와 곡옥 등이 출토되었다. 무덤의 형태는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으로 밝혀졌다. 




51년의 조사에 이어 76년에도 밭 사이에서 소고분들이 발견되어 발굴이 이루어졌고 81년에도 민가 보수 중 발견된 파괴된 소고분들을 발굴한 적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금척리 고분군에 대한 본격적인 대규모 발굴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라 알려진 부분은 많지 않다. 비교적 도굴이 힘든 돌무지덧널무덤이긴 하다만 유물들이 멀쩡히 잘 남아있길 바란다.




공원으로 깔끔히 조성된 대릉원 쪽과 달리 금척리 고분군은 주변 정리 정도만 해둔 상태로 유지되고 있어 태고의 신비와 같은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신라 고분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는 외국인이 이 사진을 본다면 아주 특이한 지형을 찍은 것이라고만 생각할 것 같다. 얼핏 제주의 오름을 찍은 것 처럼도 보이고. 




황남대총 같은 대릉원 쪽 고분에 비하면 규모가 작지만 오늘날 고만고만한 촌동네에 불과한 이 곳에 당시에는 어떤 강성한 세력이 자리했었기에 이토록 많은 고분들을 조성할 수 있었을까 궁금해진다. 문헌 자료가 제대로 남아있지 않은 우리나라 고대사의 한계로 인해 풀리지 않는 비밀은 너무나 많은데 신라 지배층의 정체에 대한 부분 역시 마찬가지다. 금 부장품이 유독 많고 중앙아시아 및 시베리아 일대에서도 비슷한 형태를 보이는 무덤의 형식으로 인해 4-5세기 신라의 지배층은 스키타이족을 비롯한 북방 유목계가 한반도까지 남하한 무리라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이 일대가 정비되기 전에는 분명 무너져내린 봉토 사이사이에 민가와 밭들이 들어차 있고 겨울이면 동네 꼬마들이 고분 위에서 눈썰매를 타곤 했겠지만(아마 지금도?) 지금은 중간중간 멋지게 서있는 나무들 말고는 넓은 풀밭으로 정리되어 있다. 고도제한으로 인해 높은 건물이 적은 경주이긴 하지만 경주의 서쪽 변경 건천에서 만나는 넓은 하늘은 답답한 가슴을 제법 시원하게 뚫어준다. 오늘처럼 청명한 날씨라면 더할 나위없다.




주인 모를 고분에 세들어 살고 있는 묘도 있다. 사적으로 지정된 이곳에 제단석까지 놓인 묘가 쓰일 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사적 지정 전부터 있던 묘라면 이해가 간다. 천년이 넘는 세월의 간격이 있겠지만 같은 공간을 나눠쓰며 또 천년을 갈 것이다. 




필름이 거의 다 되어갈 무렵 동네 어르신 한 분이 자전거를 타고 들어오셨다. 늘상 듣게 되는 '뭐 찍는교? 어디서 나왔는교?' 따위의 질문을 예상했으나 잠시 쳐다보시곤 갈 길을 가셨다. 자전거 바퀴가 구르기도 힘든 풀밭에 왜 들어오셨나 했더니 바로 옆 대밭에서 가는 대나무 몇 그루를 잘라 가셨다. 




이 회사를 다닌지 10년이 넘었는데 이제서야 이 곳을 카메라에 담다니. 역시 가까운 곳은 언제나 홀대하기 마련인가. 해가 짧아지면 5시부터인 저녁시간에 나와서 이 곳을 찍기도 버거워 질테니 틈나는 대로 소소하게 담아봐야겠다.






2017.04.12. 경주

Leica IIIa / Canon 28mm f2.8 LTM / Ilford HP5+ 400 / IVED


















































































2017.03.30. 경주

Leica IIIa / Orion-15 28mm f6.0 / Kodak 400TX / IVED





































































































































































2017.04.02. 포항


Leica IIIa / Elmar 5cm f3.5 / Ilford HP5+ 400 / IVED



'다라이'에 담겨 있던 커다란 방어들 중 한 마리가 팔렸다. 아직 살아있는 상태이긴 하지만 방어를 회로 먹을 수 있는 철은 지났기에 누가 어떤 용도로 사가는지 궁금해진다.







방어가 움직이지 못하게 무릎으로 누르고 아가미 안 쪽에 칼을 집어넣는다. 살고자 몸부림치는 방어의 힘은 대단해서 미끄러운 바닥에서 방어가 튀어나가지 않게 하는 일도 쉽지 않아 보인다.







넓은 바다를 누비다 좁은 다라이 안에 담겨진 방어들은 견디지 못하고 파닥거려 보지만 벗어날 수 없다. 이들도 곧 앞선 동료와 같은 운명에 맞이할 것이다. 지능이 낮은 어류라고는 하지만 겪어본 적 없는 낯선 환경에서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리가 있을까.







아주머니께서 잡으신 방어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바닥을 적시고 있다. 방어는 크기가 제법 큰 어류다 보니 몸에서 나오는 피의 양도 적지 않다. 칼라였다면 더 날스러운 사진이 되었으리라.






아가미에 칼이 들어갔는데도 방어는 죽지 않고 이따금씩 발작하듯 파닥거린다. 몇차례 다시 찌르는 걸 보고 있노라니 한번에 숨통을 끊으려고 칼을 찌르는 것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완전히 죽지 않은 상태로 유지시켜 피를 빼려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움직임이 점차 뜸해지는 방어의 머리를 아주머니께서 토닥이며 뭐라고 얘기를 하시는게 아닌가. 뭐라고 하시는 건가 궁금해지던 차에 아주머니 쪽에 더 가까이 있던 일행이 내게 돌아와 얘기를 해준다. 




"아주머니께서 방어한테 '미안하다~ 미안하다~ 좋은데 가거라.' 하고 계세요."




그 얘기를 듣는 순간부터 더이상 카메라를 겨누지 못했다. 그저 그 아주머니를 바라보며 그런 마음으로 생명을 대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속으로 되뇌일 뿐. 


팔닥거리는 싱싱한 물고기들이 넘쳐나는 어시장은 그래서 활기차고 역동적인 공간으로 인식되지만 그 싱싱한 물고기들은 결국 '아직 죽지 않은, 곧 죽을' 물고기들이다. 주인이 나타나면 곧바로 도마 위에 올려져 목이 달아나고 몸통이 갈라져 살점이 발라진다. 태어나 죽기를 바라는 생명체는 그 어디에도 없다. 살고자 하고 죽지 않고자 함은 본능이다. 그래서 죽음의 공포 앞에서 몸부림치고 비명을 지르며 모든 생명체는 저항하지만 비명을 지르지 못하는 물고기의 죽음은 상대적으로 덜 처절하게 보여서인지 대부분 잔인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6년전에 제주 모슬포항에 방어회를 먹어보러 들렀었다. 여느 횟집들이 그러하듯 손님들이 주문을 하면 뜰채를 들고가 수족관에서 물고기를 잡아 건져 올린다. 그런데 그렇게 수족관에서 꺼낸 커다란 방어를 바닥에 내동댕이치더니 횟집 아주머니께서 방망이로 머리를 내려치는 것이 아닌가. 미끈거리는 물고기이니 빗맞기도 하고 제대로 맞지 않으면 한번에 기절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여러차례 방망이를 내려치는데 이 모습은 적잖이 충격으로 남고 말았다. 먹어야 하는 것이니 죽여야 하겠지만 저런 방법 밖에 없나 싶었지만, 또 생각해보니 가만히 잡고 있을 수도 없으니 때려서 기절이라도 시켜야 칼을 댈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회를 먹으려던 마음이 많이 불편해지는 것 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물론 그래도 잘 먹긴 먹었다는 ㄷ)




어업이 생업인 분들께는 사실 물고기를 죽이는 일에 복잡한 생각을 가지실 이유도 여유도 없을 것이다. 그 분들에겐 반복되는 일상이자 생계를 위한 수단일 뿐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찌른 칼에 피를 쏟으며 고통스러워하는 방어의 머리를 토닥거리며 '미안하다'고 속삭여주시는 아주머니의 모습은 정말이지 놀랍고도 아름다운 것이었다. 비록 생계를 위해 방어의 목숨을 앗아야 하지만 생명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저런 분이라면 평소 생활에도 얼마나 따스함이 가득할까 생각해 본다. 





2017.04.02. 포항 죽도시장


Leica IIIa / Elmar 5cm f3.5 / Ilford HP5+ 400 / IVED
























2017.03.25. 포항


Leica IIIa / Elmar 5cm f3.5 / Kodak 400TX / IVED



































2017.03.10~11



불금을 맞아 회장님과 함께 간단히 소주 한잔 하러 들른 참지집에서 술김에 찍은 막샷들. 


침동 엘마를 받아온 날이라 회장님 보여주려고 들고 나가긴 했는데 여기서 뭘 찍을 생각은 원래 아니었다. 그런데 술이 들어가니 괜히 셔터를 누르고 싶어져 객기로 몇장을 찍기 시작했고 그러다 바르낙을 신기하게 쳐다보던 옆자리 커플들과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알고보니 여성분이 포항시향 비올라 단원이라 한 때 클래식빠로서 감개무량하여 즉석 연주를 부탁드렸다는거 ㄷㄷ  이 분도 이미 소주를 3병 정도 헤치우신 상태라 처음에 좀 빼시다가 결국 차에서 비올라를 갖고 오셔서 즉석 독주회를 열게 되었다. 참치집에 있던 모든 손님들이 숨죽여 '섬집아기'와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곡명이 이게 맞나?)'를 감탄하며 들었고 연주가 끝나고는 열광적인 박수와 환호가 터져나왔으니... 내가 본 그 어떤 실황보다도 사실 더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연주회였다. 


사진이야 물론 뭐 보다시피 어두운 실내에서 어두운 엘마로 찍었으니 망했지만 ㅠ 


Leica IIIa / Elmar 5cm f3.5 / Kodak 400TX / IVED




1955년 라이츠사는 4군 6매 더블가우스 구조의 주마론 28미리를 출시했다. 

1935년에 출시된 28미리 Hektor로 20년이나 울궈먹은 끝에 드디어 새로운 28미리가 등장한 것이었다. 주마론은 싱글코팅이 적용되면서 해상도와 콘트라스트가 향상되었으며, 왜곡과 비네팅 억제 측면에서도 헥토르보다 개선되어 당시로서는 최고의 28미리 렌즈라 불릴만 했다. 컴팩트한 사이즈는 바르낙 라이카에 안성맞춤이었고 조리개 조절 방식도 보다 현대적인 형태로 변경되어 사용상의 편의성도 좋아졌다. 단, 여전히 최대 개방값은 어두웠는데 헥토르의 f6.3에서 겨우 반스탑 정도 밝아진 f5.6에 머물렀다는 점은 분명 아쉬운 부분이었다. 







주마론이 등장하기 전까지 28미리를 담당한 Hektor. 조리개 조절이 Elmar처럼 불편한 방식이었고 무코팅이었다. 




주마론의 어두운 개방값은 당시로선 보다 밝은 광각 렌즈를 만들어내기 위해 극복해야할 수차가 너무 많았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밖에 볼 수 없지만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캐논 Serenar 28mm f3.5라든지 28mm f2.8 같은 녀석을 보고 있자면 한숨이 절로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심지어 소련에서조차 이미 1937년에 FED 28mm f4.5가 나왔는데 말이다.







Fed 28mm f4.5 (라이츠는 뭘 한거란 말이냐)






아마 주마론이 이렇게 배짱 튕기며 등장할 수 있었던데는 경쟁상대 칼 자이즈의 방만함도 한몫 했을 것이다. Sonnar라는 걸출한 대구경 50미리 라인업으로 라이카가 나름 밝게 만들어보고자 애쓴 Summar, Summitar, Summarit 따위를 뭉개버리며 광학 기술만은 앞선다고 자타가 공인하던 칼 자이즈도 유독 28미리는 찬밥이었다. 그들 역시 라이츠 못지 않게 별다른 개선 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Tessar 28mm f8.0을 20년 이상 울궈먹고 있던 중이었으니 말이다. 







Carl Zeiss Jena 28mm f8.0 (제 짝인 콘탁스에서도 거리계 연동이 안되는 목측식이다. 어차피 8.0이니..)






사실 예전 같으면 최대 개방값이 f5.6에 불과한 주마론 따위의 렌즈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을테다. 하지만, 자꾸 보다보니 정이 들었는지 모양 만큼은 정말 예쁘다고 인정할 수 밖에 없었고 언젠가 한번쯤은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한번 사볼까?' 하고 가볍게 들이기에는 스크류 마운트 렌즈들 중에서도 유독 비싼 가격을 자랑하는데다 생산량이 그리 많지 않아 매물도 귀했다. 아, 물론 훌륭한 대안은 있었다.







라이카에서 M마운트로 복각하여 출시한 주마론 28mm






작년에 뜬금없이 주마론 복각 모델이 출시되었다. 마운트 형식이 M마운트로 바뀌었지만 광학적 구조는 거의 오리지날 그대로 복각된 이 렌즈는 한동안 각종 커뮤니티를 뜨겁게 도배했다. 아이폰 광고가 떠오를 정도로 깔끔하고 아름다운 생산 과정 이미지들로 구성된 브로셔를 보고 있노라면 당장이라도 품고 싶은 욕심이 들기 마련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제 정신으로 300만원에 가까운 돈을 지불하고 살 수는 없었다. 






그러던 중 우연찮게 기회는 찾아왔다. 나의 뜬구름 잡는 리뷰에 현혹되신 어느 팬(?) 분과 자주 연락을 주고 받게 되었고  서로가 가지고 있는 장비 호구 조사를 하다 그 분이 주마론 28미리를 갖고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너무 어두운 개방값 탓에 잘 손이 가지 않아 제습함에 들어간 후 나올 줄은 모른다고 하셨고 그럴거면 제가 한번 써보겠노라며 빌리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렌즈를 처음 받고 난 후. 헬리코이드에서 흘러나온 윤활유가 묻은 자국도 많았고 틈새의 찌든 때도 그대로 있는 등 전체적으로 약간 지저분한 상태였다. 평소 장비를 아껴쓰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이런 건 또 그냥 못지나가는 성격이라 구석구석 정성스레 닦아 주었다. 전체적인 외관 상태는 꽤 훌륭했고 전면 코팅의 상태도 양호했다. LED조명을 비춰서 내부를 보니 약간의 헤이즈가 보였지만 헤이즈가 없이 온전히 보존된 개체가 무척 드물다고 하니 어쩔 수 없으리라 생각됐다.






내 것이 아니어도 새로운 렌즈를 사용해보는 일은 무척 즐거운 일이다. 특히 성능의 가늠이 쉽지 않은 올드 렌즈의 경우는 더더욱 흥미롭다. 주마론을 빌려주신 지인께선 이미 주마론에 대한 흥미는 상실하셨고 당시 나의 뜬구름 리뷰에 끌려 다른 광각 렌즈를 구입하시는 바람에 주마론은 처분하기로 맘을 먹으신 상태로 갈 곳까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빌려쓰는 마당에 한달이고 두달이고 마냥 사용해볼 수는 없는 노릇. 눈빠지게 기다리는 새 주인이 눈에 아른거려 3롤의 필름을 후다닥 찍은 후 주마론을 새 주인에게 보냈다. 






그리고 일주일 후 드디어 주마론으로 찍은 필름들을 현상하고 스캔했다. 코팅이 적용되었다곤 하지만 역시나 역광에서는 꽝이었다. 하지만 예상외로 해상도는 훌륭했고 지나치게 날카롭지 않으면서도 오밀조밀 세밀한 묘사력이 꽤나 매력적이었다. 이건 정말 스캔 파일로만 볼게 아니라 암실에서 직접 인화한 사진으로 느끼고 싶은 렌즈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아마 주마론을 보내기 전에 결과물을 한번 봤다면 달랑 3롤만 찍어보고 그렇게 보내진 않았으리라. 어차피 새 주인이 계약금 따위를 걸어놓은 상황도 아니었는데 그냥 내가 사겠다고 가로챌 걸 그랬나 하는 생각마저 잠시 들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라이카 렌즈들이 기본적으로 비싼 편이지만 올드 렌즈들 중 인기가 좀 있다는 것들은 계속해서 값이 더 오르고 있다. 주마론 28미리 역시 복각 모델 출시로 인한 사람들의 관심이 늘어서인지 과거보다 높아진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상태가 좀 좋다 싶으면 100만원을 훌쩍 넘어가니 그 정도면 보다 뛰어난 성능의 M마운트 Elmarit 28mm f2.8도 구할 수 있을 수준이다. 그렇기에 그만한 금액을 들여 굳이 오래된 주마론 28미리를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인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올드 렌즈를 꼭 광학적 성능 측면에서만 바라볼 것은 아니지 않은가. 마냥 좋기만한 현행 렌즈들이 가지고 있지 못한 개성있는 묘사와 독특한 느낌은 광학적 수치만으로 완벽히 설명하기는 어려운 매력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그런건 잘 모르겠더라도 예쁘면 되는 거 아닌가? 예쁘다는 이유. 그것 때문에 오늘도 환자들은 괴롭다. 이왕이면 다홍치마. 그것은 진리다. 







Leitz Summaron 28mm f5.6 & Leica IIIa

















































2017.03.04. 포항 송도


Leica IIIa / Summaron 28mm f5.6 / Ilford HP5+ 400 / IVED


Leica IIIa & Elmar 3.5cm f3.5


지인께서 선물로 주시고 가신 바르낙과 역시 또 다른 지인이 그의 지인으로 부터 선물받은 엘마 35미리 렌즈의 조합. 역시 바르낙은 예쁘다.




IIIa의 정면샷. II 모델들에 비해 스트랩 고리와 저속셔터가 추가된 것이 III 모델들의 가장 큰 특징. 바르낙형 라이카는 IIIc 이후부터는 상판의 제작 방식이 기존 단조에서 주조 방식으로 바뀌고 상판의 높이가 다소 높아지게 된다. IIIa는 단조바디의 단단한 만듦새와 컴팩트함을 즐길 수 있으면서 저속과 1/1000초를 사용할 수 있는 완성에 가까운 바디라 할 수 있다. 셔터소리나 조작감 등은 물론 이후에 나온 IIIf나 IIIg가 더욱 훌륭하지만 바르낙다운 컴팩트한 매력은 역시 IIIa가 아닐까. 물론 이쁘기로 치면 IId 블랙 페인트가 최고라 생각.




상부의 모습. 오밀조밀 위치한 각종 다이얼과 레버와 노브들이 조화롭게 아름답다. 필름 이송과 셔터 장전을 위해 노브를 돌리면 셔터 다이얼과 되감기 노브가 같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상판 각인은 언제나 옳다. 저게 없는 바디들은 너무나 밋밋하다.




IIIa 부터는 드디어 1/1000초가 가능해진다. 시리얼번호를 조회해본 결과 1937년 생산분으로 확인됐다. 올해로 무려 팔순이 되신 분.. ㄷㄷ 








바르낙의 파인더는 포커싱창과 프레이밍창으로 나뉘어져 있어 왼쪽 창에서 초점을 맞추고 오른쪽 창에서 구도를 잡는다. 당시 라이벌인 Contax II는 이를 하나의 파인더에서 가능케 했지만 라이카는 M3가 등장하기까지 이같은 방식에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덕분에 초점을 맞춘 후 다시 구도 맞춤을 위해 눈을 옮겨야하는 불편함이 따르는데 인간의 적응의 동물이라 또 쓰다 보면 그러려니 하게 된다. 프레이밍창은 좁긴 하지만 맑고 밝은 편이나 프레임 라인은 별도로 표시되지 않고 보이는대로 꽉차게 찍었을 때 약 40미리 정도의 화각이다. 바르낙에 흔히 쓰는 50미리 엘마같은 걸로 찍을 경우는 파인더에서 보이는 것 보다 조금 적게 찍힌다는 걸 감안해야 한다. IIIa까지는 여전히 포커싱창과 프레이밍창의 간격이 제법 넓지만 IIIb 부터는 두 창이 가깝게 붙어서 눈을 옮기기 수월해진다. (뭐 그래도 불편하긴 매한가지;)




필름카운터는 수동으로 리셋해둬야한다. 역시 불편하지만 재미라면 재미.




Leica IIIa와 Contax IIa의 사이즈 비교. 바르낙의 컴팩트함을 다분히 의식한 듯 Contax IIa는 Contax II에 비해 제법 작아졌지만 여전히 바르낙에 비하면 크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상판의 배치는 확실히 Contax가 간결하게 설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Leica IIIa & Contax IIa



한롤도 못찍어보고 일단 오버홀하러 서울로 떠났다. 셔터속도 및 작동이 불안정했고 이중합치상의 상하가 틀어져있어서 굳이 테스트해볼 생각은 않고 오버홀 부터 해주고 제대로 써보고 싶다. 얼른얼른 돌아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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