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낙 라이카를 쓰게 되면서 외장 파인더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바르낙의 뷰파인더는 매우 좁아서 쾌적하게 들여다 보기는 사실 좀 어렵다. 물론 적응하고 나니 크게 불편하진 않다고 여겨지지만 엘마 50미리를 사용할 때 실제로 파인더에서 보여지는 화각이 약 40미리라 정확한 프레이밍을 하기 어렵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결국 이 부분은 50미리 외장 파인더 'Sbooi'를 구입하는 것으로 해결했다.





Leica IIIa / Elmar 5cm f/3.5 / Sbooi (50mm View Finder)






지인에게서 무상대여한 Elmar 3.5cm f/3.5가 있다. 요녀석을 써주자면 35미리 파인더가 필요하다. 앞서 얘기했듯 바르낙 파인더가 40미리 정도라 조금 더 나오겠거니 하고 찍으면 그런대로 쓸만하긴 하지만 제대로 찍으려면 역시 외장 파인더를 써주는 편이 맘이 편하다. 다행히 내겐 Biogon 35mm용 ZeissIkon 432/5 파인더가 있었다. 별도로 또 파인더를 살 필요없이 요녀석을 쓰면 되겠다 싶었는데.





Leica IIIa / Elmar 3.5cm f/3.5 / ZeissIkon 432/5(35mm View Finder)






Contax와 Leica의 핫슈 위치가 좀 다르다 보니 파인더를 끼웠을 때 접안부가 뒤로 좀 많이 튀어나오는게 거슬리긴 하지만 그래도 쓰는데는 지장이 없겠거니 했는데 생각도 못했던 문제가 발생했다. 바르낙은 셔터스피드를 변경할 때 다이얼을 살짝 들어서 돌려야 하는데 이 때 다이얼이 파인더에 부딪혀 완전히 들리지가 않는게 아닌가. 그러니 저 파인더를 꽂은 상태에서는 셔터스피드를 변경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아놔. 결국 바르낙에 엘마 35미리를 쓰려면 다른 파인더를 사야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Voigtlander의 28/35 미니 파인더. 작은 크기에다 28미리 화각도 커버할 수 있어 이 녀석을 구한다면 딱이다. 하지만 단종되면서 가격이 엄청나게 올라서 제 정신으로 사긴 힘들다. 무척 아쉽다.







Leitz 순정 Weiso 파인더. 제 짝이니 만큼 바르낙엔 정말 딱 어울리는 모양이지만 크기 자체가 작다보니 그리 시원하게 보이지는 않는데다 가격은 또 어찌나 비싼지 저 파인더를 살 돈이면 바르낙 바디를 하나 더 살 수 있는 수준이다. 역시 제 정신으로는 살 수 없다.








Leitz 순정 Sbloo 파인더. 엄청 시원하고 밝지만 저 거대한 사이즈를 보면 아무리 그래도 바르낙에 꽂을 물건은 아닌것 같다.






이래저래 빼고 나니 막상 맘에 쏙 드는 파인더가 별로 없었다. 주피터-12용으로 나온 소련제 파인더나 니콘, 캐논의 것들도 나름의 대안이긴 했으나 썩 예쁘지도 않고 프레임 라인도 없고 그다지 밝아 보이지도 않는다. 그래도 뭔가 나타나겠지 하는 마음으로 틈나는대로 이베이에서 이런 저런 파인더들을 꾸준히 검색했고 그러던 중 우연히 일본 Petri 社의 파인더를 발견했다. 그리 예쁜 편은 아니었지만 배송비를 포함해도 40불 정도밖에 안할 정도로 가격도 저렴했고 35mm와 85mm 프레임이 같이 떠 활용성도 높아보인다. 일단 덥썩 질러봤다.







약 2주 정도의 기다림 끝에 파인더가 도착했다. 그런데 막상 받아보니 파인더 내부가 엄청 뿌연 것이 아닌가. 셀러에게 '니 설명과 다르잖아!'라면서 네가티브 피드백을 확 눌러버릴까 하다가 일단 직접 청소해보기로 했다. 전용 공구는 없었지만 멀티툴의 칼날을 홈에 집어넣고 조심조심 링을 돌려서 전면 렌즈를 빼낼 수 있었다. 







렌즈를 분해한 후 불빛에 비춰보니 역시나 안쪽에 얼룩들이 뿌옇게 묻어있었다. 이러니 파인더를 들여 봤을 때 밝고 시원한 느낌이 들 리가 있나. 







뿌옇게 묻은 얼룩들을 알콜 티슈를 이용해 닦아줬다. 







렌즈를 닦고 재조립하여 파인더를 들여다보니 이전보다 훨씬 선명해졌다. 프레임 라인은 실제로는 왜곡이 거의 없지만 아이폰으로 찍다보니 많이 휘어졌다. 파인더의 밝기는 그렇게 우수한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의외의 장점이 있었는데 바로 등배 파인더라는 점. 등배 파인더는 보기에도 시원시원하고 양눈을 뜨고 촬영하기에도 유리하다. 







프레인 라인에는 화각은 적혀있지 않고 광각(W)과 망원(T)로만 표시되어 있는데 M6의 35미리 프레임 라인과 거의 유사한 걸 보니 35미리가 맞긴 맞는 듯. 







자이스이콘의 파인더와 달리 바디의 두께를 넘지 않아 뒤로 툭 튀어나오지 않는 점도 마음에 든다.







페트리라고 하면 6-70년대까진 나름 중저가 시장에서 활약하던 일본 메이커였는데 이 파인더는 어떤 렌즈와 카메라를 위해 발매되었던 것인지 궁금해진다.







이 파인더 덕분에 이제 Elmar 3.5cm 를 편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다소 싼티나는 부분들도 없잖아 있지만 무려 등배에다 35/85미리를 커버해주는데다 뒤통수도 튀어나오지 않으니 이만하면 싼 맛에 강추다. 




2017.05.04.




빛이 좋은 오후다.


간만에 미세먼지도 황사도 없어 하늘이 청명하다. 낮은 해가 만들어주는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고 세상에 입체감이 더해지기 시작한다. 사진가들이 사랑할 수 밖에 없는 황금 시간대, 이대로 사무실에 쳐박혀 있을 수는 없겠다. 단촐한 카메라 하나를 달랑 들고 밖으로 나갔다. 저녁밥은 안먹어도 상관없다.




회사에서 차로 10분이면 올 수 있는 금척리. 경주와 건천을 동서로 잇는 도로 양편에 38기의 크고 작은 고분들이 산재한 곳이다. 금척이란 금으로 만든 자를 말하는데 이 곳에 금척이 묻힌 무덤이 있다고 하여 마을 이름도 금척리다. 금척리 고분군에는 아래와 같은 전설이 있는데.




옛날 신라에 금자를 왕에게 바친 사람이 있었다. 죽은 사람이라도 이 금자로 한번 재면 다시 살아나고, 무슨 병이라도 금자로 한번 쓰다듬으면 그 자리에서 낫는다는 신기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왕은 이 금자를 국보로 여겨 매우 깊숙한 곳에 두었다. 이런 소문이 당나라에 전해지자 당나라에서는 사신을 보내 금자를 보내달라고 요청하였다. 왕은 국보에 해당하는 금자를 달라고 하는 무뢰한 당나라 사신에게 순순히 금자를 내줄 수가 없었다. 곧 신하에게 명하여 토분을 만들고 그 속에 금자를 파묻었으며 주변에 다른 토분을 만들어 어느 곳에 금자를 묻었는지 알 수 없게 하였다. 그리하여 당나라 사신은 그 많은 토분을 헤치고 금자를 찾아낼 기력이 없었던 듯 물러나고 말았다. 왕의 지략으로 금자를 당나라에게 빼앗기지 않았으나, 이후 어느 토분에 금자가 묻혔는지는 아무도 모르게 되었다고 한다. 사적 제43호로 지정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금척리 고분군 (답사여행의 길잡이 2 - 경주, 초판 1994., 개정판 23쇄 2012., 돌베개)




금척리로 가는 길. 오후 5시가 넘자 인근 농공단지 등에서 일하는 것으로 보이는 주민들이 띄엄띄엄 퇴근해서 오고 있었다. 평소 찾는 이가 거의 없는 이 곳에 카메라를 들고 나타난 낯선 이를 홀깃 쳐다 보셨다.




금척리 고분군은 도로를 따라 좌우로 나뉘어 있는데(정확히는 도로가 신라의 국립묘지를 감히 가로질러 난 셈) 북쪽보다 남쪽에 더 많은 고분들이 산재되어 있다. 1951년 도로 확장 공사당시 파괴된 상태의 고분 2기를 급한대로 발굴 조사를 했고 금귀고리와 곡옥 등이 출토되었다. 무덤의 형태는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으로 밝혀졌다. 




51년의 조사에 이어 76년에도 밭 사이에서 소고분들이 발견되어 발굴이 이루어졌고 81년에도 민가 보수 중 발견된 파괴된 소고분들을 발굴한 적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금척리 고분군에 대한 본격적인 대규모 발굴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라 알려진 부분은 많지 않다. 비교적 도굴이 힘든 돌무지덧널무덤이긴 하다만 유물들이 멀쩡히 잘 남아있길 바란다.




공원으로 깔끔히 조성된 대릉원 쪽과 달리 금척리 고분군은 주변 정리 정도만 해둔 상태로 유지되고 있어 태고의 신비와 같은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신라 고분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는 외국인이 이 사진을 본다면 아주 특이한 지형을 찍은 것이라고만 생각할 것 같다. 얼핏 제주의 오름을 찍은 것 처럼도 보이고. 




황남대총 같은 대릉원 쪽 고분에 비하면 규모가 작지만 오늘날 고만고만한 촌동네에 불과한 이 곳에 당시에는 어떤 강성한 세력이 자리했었기에 이토록 많은 고분들을 조성할 수 있었을까 궁금해진다. 문헌 자료가 제대로 남아있지 않은 우리나라 고대사의 한계로 인해 풀리지 않는 비밀은 너무나 많은데 신라 지배층의 정체에 대한 부분 역시 마찬가지다. 금 부장품이 유독 많고 중앙아시아 및 시베리아 일대에서도 비슷한 형태를 보이는 무덤의 형식으로 인해 4-5세기 신라의 지배층은 스키타이족을 비롯한 북방 유목계가 한반도까지 남하한 무리라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이 일대가 정비되기 전에는 분명 무너져내린 봉토 사이사이에 민가와 밭들이 들어차 있고 겨울이면 동네 꼬마들이 고분 위에서 눈썰매를 타곤 했겠지만(아마 지금도?) 지금은 중간중간 멋지게 서있는 나무들 말고는 넓은 풀밭으로 정리되어 있다. 고도제한으로 인해 높은 건물이 적은 경주이긴 하지만 경주의 서쪽 변경 건천에서 만나는 넓은 하늘은 답답한 가슴을 제법 시원하게 뚫어준다. 오늘처럼 청명한 날씨라면 더할 나위없다.




주인 모를 고분에 세들어 살고 있는 묘도 있다. 사적으로 지정된 이곳에 제단석까지 놓인 묘가 쓰일 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사적 지정 전부터 있던 묘라면 이해가 간다. 천년이 넘는 세월의 간격이 있겠지만 같은 공간을 나눠쓰며 또 천년을 갈 것이다. 




필름이 거의 다 되어갈 무렵 동네 어르신 한 분이 자전거를 타고 들어오셨다. 늘상 듣게 되는 '뭐 찍는교? 어디서 나왔는교?' 따위의 질문을 예상했으나 잠시 쳐다보시곤 갈 길을 가셨다. 자전거 바퀴가 구르기도 힘든 풀밭에 왜 들어오셨나 했더니 바로 옆 대밭에서 가는 대나무 몇 그루를 잘라 가셨다. 




이 회사를 다닌지 10년이 넘었는데 이제서야 이 곳을 카메라에 담다니. 역시 가까운 곳은 언제나 홀대하기 마련인가. 해가 짧아지면 5시부터인 저녁시간에 나와서 이 곳을 찍기도 버거워 질테니 틈나는 대로 소소하게 담아봐야겠다.






2017.04.12. 경주

Leica IIIa / Canon 28mm f2.8 LTM / Ilford HP5+ 400 / IVED






Leica M3 & Carl Zeiss Sonnar 50mm f1.5(전후형 최후기) / Carl Zeiss Jena Sonnar 50mm f2.0T (전전형 최후기) / Summicron 50mm f2.0 Rigid




30~50년대에 라이카와 쌍벽을 이루었던 ZeissIkon의 Contax용 교환 렌즈들을 라이카 바디에서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Amedeo 아답터는 현존하는 제품 중 가장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것이라 알려져 있으나 복불복으로 제품에 따라 약간씩 초점이 맞지 않는 경우가 있다. 아답터 자체가 아무래도 개인이 제작한 것이다 보니 조금씩 오차가 있는 듯 한데 지인의 것과 내 것 모두 혹시나 해서 중앙카메라에 의뢰하여 점검을 맡겼는데 내 것은 조정을 거쳐도 약간의 전핀이라는 판정을 받았고 지인의 것은 칼핀이라고. 미세한 조정 과정에서 디지털 M바디가 없는 김학원 선생님은 꽤 애를 먹으셨고 고마운 친구 quanj님이 수차례 중앙카메라를 들락거리며 M10으로 확인해주어 그나마 최선의 조정이 가능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인사를!




최종적으로 조정된 상태에서 M10에서 찍어본 결과물에선 약 2~3cm 정도 전핀이 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단 극도의 해상력의 디지털 이미지라는 점, 얕은 심도를 이용한 정밀한 초점 확인을 위해 근거리에서 최대개방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실제 내가 사용할 환경과는 다소 차이가 있기에 과연 필름에서 얼마나 두드러질지 테스트를 해보기로 했다. 아메데오 아답터에 내 것인 전후형 조나와 지인의 전전형 조나를,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종의 레퍼런스로 라이카 렌즈인 주미크론 리지드를 끼워서 찍어봤다. 삼각대 따위는 쓰지 않았고 1.5미터 정도 거리에서 45도 정도 각도의 위치에서 찍어봤다. 초점을 맞춘 곳은 '위생문화' 중 '위' 글씨. 각 렌즈별로 최대 개방부터 2.8까지 찍었고 그 이상의 조리개는 심도가 깊어지기에 패스했다.  





1. Carl Zeiss Sonnar 50mm f1.5




① f1.5








② f2.0








③ f2.8






전핀 판정을 받은 상태였지만 필름에서는 명확히 확인하기가 어렵다. 다소 전핀인 것으로 보이지만 이 정도 차이면 문제없을 듯 하다. 파인더가 시원한 M3라지만 RF의 특성상 초점을 맞출 때 마다 조금씩 달라졌을 가능성도..




2. Carl Zeiss Jena Sonnar 50mm f2.0T




① f2.0








② f2,8






지인의 전전형 조나의 결과물은 내 아메데오에선 약간의 후핀을 보이는 것 같다. 본인의 아메데오와는 궁합이 잘 맞아 칼핀이라고 하니 다행이다. 1.5 조나에 비해 해상도가 제법 떨어져보이는데 2.8에서도 그런 것으로 보아 내가 찍으면서 흔들렸을 것 같기도 하다.




3. Summicron 50mm f2.0 Rigid




① f2.0








② f2.8





원래 라이카 렌즈인 주미크론은 두 조나 렌즈에 비해 비교적 정확한 렌즈에 초점이 맞아 보인다. 당연히 그러해야지;




이리저리 해봤으나 역시 필름으로보니 그리 차이를 느끼지 못하겠다. qunaj님의 판정대로 1.5 조나는 살짝 전핀인 것 같고 2.0 조나는 조금 후핀인거 같지만 어차피 내 아답터에 물릴 렌즈는 아니라 의미없고 리지드는 당연히 정확해 보인다.  어쨌든 이 모든 테스트는 삼각대도 안세우고 들고 찍은거라 정확하다고 보장은 못하겠고 별 문제없이 잘 조정되었다는데 의의를.


대충 확인했으니 이런 짓은 다신 안하기로.




2017.04.26. 회사 화장실에서 ㄷ




















































































2017.03.30. 경주

Leica IIIa / Orion-15 28mm f6.0 / Kodak 400TX / IVED







































2017.02.12. 포항


Leica M3 / Carl Zeiss Tessar 50mm f3.5 / Kodak 400TX / IVED





































































































































































2017.04.02. 포항


Leica IIIa / Elmar 5cm f3.5 / Ilford HP5+ 400 / IVED



























































2017.03.29.


포항 시외버스터미널은 1985년에 준공된 낡은 시설로 고속터미널과 함께 흥해 쪽으로 이전할 계획이 수립되었으나 포항시의 인구 증가가 지지부진한데다 완전 외곽 지역에다 투자하기를 꺼리는 기업들의 참여 부진으로 결국 현 자리에서 복합환승센터로 재개발하기로 수정되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원안대로 추진하라는 북구 주민들과 현재 터미널이 위치한 남구 주민들 사이에 의견 충돌이 발생하고 등등 말이 많다는데. 뭐 어쨌든 이 곳의 모습도 머지 않아 사라질테니 틈날 때 마다 찾아서 좀 남겨놔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Leica M3 / Summicron 50mm f2.0 Rigid / Kodak 400TX / IVED


'다라이'에 담겨 있던 커다란 방어들 중 한 마리가 팔렸다. 아직 살아있는 상태이긴 하지만 방어를 회로 먹을 수 있는 철은 지났기에 누가 어떤 용도로 사가는지 궁금해진다.







방어가 움직이지 못하게 무릎으로 누르고 아가미 안 쪽에 칼을 집어넣는다. 살고자 몸부림치는 방어의 힘은 대단해서 미끄러운 바닥에서 방어가 튀어나가지 않게 하는 일도 쉽지 않아 보인다.







넓은 바다를 누비다 좁은 다라이 안에 담겨진 방어들은 견디지 못하고 파닥거려 보지만 벗어날 수 없다. 이들도 곧 앞선 동료와 같은 운명에 맞이할 것이다. 지능이 낮은 어류라고는 하지만 겪어본 적 없는 낯선 환경에서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리가 있을까.







아주머니께서 잡으신 방어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바닥을 적시고 있다. 방어는 크기가 제법 큰 어류다 보니 몸에서 나오는 피의 양도 적지 않다. 칼라였다면 더 날스러운 사진이 되었으리라.






아가미에 칼이 들어갔는데도 방어는 죽지 않고 이따금씩 발작하듯 파닥거린다. 몇차례 다시 찌르는 걸 보고 있노라니 한번에 숨통을 끊으려고 칼을 찌르는 것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완전히 죽지 않은 상태로 유지시켜 피를 빼려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움직임이 점차 뜸해지는 방어의 머리를 아주머니께서 토닥이며 뭐라고 얘기를 하시는게 아닌가. 뭐라고 하시는 건가 궁금해지던 차에 아주머니 쪽에 더 가까이 있던 일행이 내게 돌아와 얘기를 해준다. 




"아주머니께서 방어한테 '미안하다~ 미안하다~ 좋은데 가거라.' 하고 계세요."




그 얘기를 듣는 순간부터 더이상 카메라를 겨누지 못했다. 그저 그 아주머니를 바라보며 그런 마음으로 생명을 대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속으로 되뇌일 뿐. 


팔닥거리는 싱싱한 물고기들이 넘쳐나는 어시장은 그래서 활기차고 역동적인 공간으로 인식되지만 그 싱싱한 물고기들은 결국 '아직 죽지 않은, 곧 죽을' 물고기들이다. 주인이 나타나면 곧바로 도마 위에 올려져 목이 달아나고 몸통이 갈라져 살점이 발라진다. 태어나 죽기를 바라는 생명체는 그 어디에도 없다. 살고자 하고 죽지 않고자 함은 본능이다. 그래서 죽음의 공포 앞에서 몸부림치고 비명을 지르며 모든 생명체는 저항하지만 비명을 지르지 못하는 물고기의 죽음은 상대적으로 덜 처절하게 보여서인지 대부분 잔인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6년전에 제주 모슬포항에 방어회를 먹어보러 들렀었다. 여느 횟집들이 그러하듯 손님들이 주문을 하면 뜰채를 들고가 수족관에서 물고기를 잡아 건져 올린다. 그런데 그렇게 수족관에서 꺼낸 커다란 방어를 바닥에 내동댕이치더니 횟집 아주머니께서 방망이로 머리를 내려치는 것이 아닌가. 미끈거리는 물고기이니 빗맞기도 하고 제대로 맞지 않으면 한번에 기절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여러차례 방망이를 내려치는데 이 모습은 적잖이 충격으로 남고 말았다. 먹어야 하는 것이니 죽여야 하겠지만 저런 방법 밖에 없나 싶었지만, 또 생각해보니 가만히 잡고 있을 수도 없으니 때려서 기절이라도 시켜야 칼을 댈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회를 먹으려던 마음이 많이 불편해지는 것 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물론 그래도 잘 먹긴 먹었다는 ㄷ)




어업이 생업인 분들께는 사실 물고기를 죽이는 일에 복잡한 생각을 가지실 이유도 여유도 없을 것이다. 그 분들에겐 반복되는 일상이자 생계를 위한 수단일 뿐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찌른 칼에 피를 쏟으며 고통스러워하는 방어의 머리를 토닥거리며 '미안하다'고 속삭여주시는 아주머니의 모습은 정말이지 놀랍고도 아름다운 것이었다. 비록 생계를 위해 방어의 목숨을 앗아야 하지만 생명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저런 분이라면 평소 생활에도 얼마나 따스함이 가득할까 생각해 본다. 





2017.04.02. 포항 죽도시장


Leica IIIa / Elmar 5cm f3.5 / Ilford HP5+ 400 / IVED





























2017.03.25.


Leica M3 / Orion-15 28mm f6.0 / Fujifilm C200 / IVED
























2017.03.18. 청송


Leica IIIa / Elmar 5cm f3.5 / Kodak TMY / IVED



















2017.03.25. 포항


Leica IIIa / Elmar 5cm f3.5 / Kodak 400TX / IVED




1955년 라이츠사는 4군 6매 더블가우스 구조의 주마론 28미리를 출시했다. 

1935년에 출시된 28미리 Hektor로 20년이나 울궈먹은 끝에 드디어 새로운 28미리가 등장한 것이었다. 주마론은 싱글코팅이 적용되면서 해상도와 콘트라스트가 향상되었으며, 왜곡과 비네팅 억제 측면에서도 헥토르보다 개선되어 당시로서는 최고의 28미리 렌즈라 불릴만 했다. 컴팩트한 사이즈는 바르낙 라이카에 안성맞춤이었고 조리개 조절 방식도 보다 현대적인 형태로 변경되어 사용상의 편의성도 좋아졌다. 단, 여전히 최대 개방값은 어두웠는데 헥토르의 f6.3에서 겨우 반스탑 정도 밝아진 f5.6에 머물렀다는 점은 분명 아쉬운 부분이었다. 







주마론이 등장하기 전까지 28미리를 담당한 Hektor. 조리개 조절이 Elmar처럼 불편한 방식이었고 무코팅이었다. 




주마론의 어두운 개방값은 당시로선 보다 밝은 광각 렌즈를 만들어내기 위해 극복해야할 수차가 너무 많았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밖에 볼 수 없지만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캐논 Serenar 28mm f3.5라든지 28mm f2.8 같은 녀석을 보고 있자면 한숨이 절로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심지어 소련에서조차 이미 1937년에 FED 28mm f4.5가 나왔는데 말이다.







Fed 28mm f4.5 (라이츠는 뭘 한거란 말이냐)






아마 주마론이 이렇게 배짱 튕기며 등장할 수 있었던데는 경쟁상대 칼 자이즈의 방만함도 한몫 했을 것이다. Sonnar라는 걸출한 대구경 50미리 라인업으로 라이카가 나름 밝게 만들어보고자 애쓴 Summar, Summitar, Summarit 따위를 뭉개버리며 광학 기술만은 앞선다고 자타가 공인하던 칼 자이즈도 유독 28미리는 찬밥이었다. 그들 역시 라이츠 못지 않게 별다른 개선 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Tessar 28mm f8.0을 20년 이상 울궈먹고 있던 중이었으니 말이다. 







Carl Zeiss Jena 28mm f8.0 (제 짝인 콘탁스에서도 거리계 연동이 안되는 목측식이다. 어차피 8.0이니..)






사실 예전 같으면 최대 개방값이 f5.6에 불과한 주마론 따위의 렌즈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을테다. 하지만, 자꾸 보다보니 정이 들었는지 모양 만큼은 정말 예쁘다고 인정할 수 밖에 없었고 언젠가 한번쯤은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한번 사볼까?' 하고 가볍게 들이기에는 스크류 마운트 렌즈들 중에서도 유독 비싼 가격을 자랑하는데다 생산량이 그리 많지 않아 매물도 귀했다. 아, 물론 훌륭한 대안은 있었다.







라이카에서 M마운트로 복각하여 출시한 주마론 28mm






작년에 뜬금없이 주마론 복각 모델이 출시되었다. 마운트 형식이 M마운트로 바뀌었지만 광학적 구조는 거의 오리지날 그대로 복각된 이 렌즈는 한동안 각종 커뮤니티를 뜨겁게 도배했다. 아이폰 광고가 떠오를 정도로 깔끔하고 아름다운 생산 과정 이미지들로 구성된 브로셔를 보고 있노라면 당장이라도 품고 싶은 욕심이 들기 마련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제 정신으로 300만원에 가까운 돈을 지불하고 살 수는 없었다. 






그러던 중 우연찮게 기회는 찾아왔다. 나의 뜬구름 잡는 리뷰에 현혹되신 어느 팬(?) 분과 자주 연락을 주고 받게 되었고  서로가 가지고 있는 장비 호구 조사를 하다 그 분이 주마론 28미리를 갖고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너무 어두운 개방값 탓에 잘 손이 가지 않아 제습함에 들어간 후 나올 줄은 모른다고 하셨고 그럴거면 제가 한번 써보겠노라며 빌리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렌즈를 처음 받고 난 후. 헬리코이드에서 흘러나온 윤활유가 묻은 자국도 많았고 틈새의 찌든 때도 그대로 있는 등 전체적으로 약간 지저분한 상태였다. 평소 장비를 아껴쓰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이런 건 또 그냥 못지나가는 성격이라 구석구석 정성스레 닦아 주었다. 전체적인 외관 상태는 꽤 훌륭했고 전면 코팅의 상태도 양호했다. LED조명을 비춰서 내부를 보니 약간의 헤이즈가 보였지만 헤이즈가 없이 온전히 보존된 개체가 무척 드물다고 하니 어쩔 수 없으리라 생각됐다.






내 것이 아니어도 새로운 렌즈를 사용해보는 일은 무척 즐거운 일이다. 특히 성능의 가늠이 쉽지 않은 올드 렌즈의 경우는 더더욱 흥미롭다. 주마론을 빌려주신 지인께선 이미 주마론에 대한 흥미는 상실하셨고 당시 나의 뜬구름 리뷰에 끌려 다른 광각 렌즈를 구입하시는 바람에 주마론은 처분하기로 맘을 먹으신 상태로 갈 곳까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빌려쓰는 마당에 한달이고 두달이고 마냥 사용해볼 수는 없는 노릇. 눈빠지게 기다리는 새 주인이 눈에 아른거려 3롤의 필름을 후다닥 찍은 후 주마론을 새 주인에게 보냈다. 






그리고 일주일 후 드디어 주마론으로 찍은 필름들을 현상하고 스캔했다. 코팅이 적용되었다곤 하지만 역시나 역광에서는 꽝이었다. 하지만 예상외로 해상도는 훌륭했고 지나치게 날카롭지 않으면서도 오밀조밀 세밀한 묘사력이 꽤나 매력적이었다. 이건 정말 스캔 파일로만 볼게 아니라 암실에서 직접 인화한 사진으로 느끼고 싶은 렌즈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아마 주마론을 보내기 전에 결과물을 한번 봤다면 달랑 3롤만 찍어보고 그렇게 보내진 않았으리라. 어차피 새 주인이 계약금 따위를 걸어놓은 상황도 아니었는데 그냥 내가 사겠다고 가로챌 걸 그랬나 하는 생각마저 잠시 들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라이카 렌즈들이 기본적으로 비싼 편이지만 올드 렌즈들 중 인기가 좀 있다는 것들은 계속해서 값이 더 오르고 있다. 주마론 28미리 역시 복각 모델 출시로 인한 사람들의 관심이 늘어서인지 과거보다 높아진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상태가 좀 좋다 싶으면 100만원을 훌쩍 넘어가니 그 정도면 보다 뛰어난 성능의 M마운트 Elmarit 28mm f2.8도 구할 수 있을 수준이다. 그렇기에 그만한 금액을 들여 굳이 오래된 주마론 28미리를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인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올드 렌즈를 꼭 광학적 성능 측면에서만 바라볼 것은 아니지 않은가. 마냥 좋기만한 현행 렌즈들이 가지고 있지 못한 개성있는 묘사와 독특한 느낌은 광학적 수치만으로 완벽히 설명하기는 어려운 매력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그런건 잘 모르겠더라도 예쁘면 되는 거 아닌가? 예쁘다는 이유. 그것 때문에 오늘도 환자들은 괴롭다. 이왕이면 다홍치마. 그것은 진리다. 







Leitz Summaron 28mm f5.6 & Leica IIIa
















































































2017.03.01. 포항


Leica M3 / Orion-15 28mm f6.0 / Ilford HP5+ 400 / IVED












































2017.03.04. 포항 송도


Leica IIIa / Summaron 28mm f5.6 / Ilford HP5+ 400 / IVED
















































































2017.03.01. 포항


Leica M3 / Orion-15 28mm f6.0 / Kodak 400TX / IVED


Leica IIIa & Elmar 3.5cm f3.5


지인께서 선물로 주시고 가신 바르낙과 역시 또 다른 지인이 그의 지인으로 부터 선물받은 엘마 35미리 렌즈의 조합. 역시 바르낙은 예쁘다.




IIIa의 정면샷. II 모델들에 비해 스트랩 고리와 저속셔터가 추가된 것이 III 모델들의 가장 큰 특징. 바르낙형 라이카는 IIIc 이후부터는 상판의 제작 방식이 기존 단조에서 주조 방식으로 바뀌고 상판의 높이가 다소 높아지게 된다. IIIa는 단조바디의 단단한 만듦새와 컴팩트함을 즐길 수 있으면서 저속과 1/1000초를 사용할 수 있는 완성에 가까운 바디라 할 수 있다. 셔터소리나 조작감 등은 물론 이후에 나온 IIIf나 IIIg가 더욱 훌륭하지만 바르낙다운 컴팩트한 매력은 역시 IIIa가 아닐까. 물론 이쁘기로 치면 IId 블랙 페인트가 최고라 생각.




상부의 모습. 오밀조밀 위치한 각종 다이얼과 레버와 노브들이 조화롭게 아름답다. 필름 이송과 셔터 장전을 위해 노브를 돌리면 셔터 다이얼과 되감기 노브가 같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상판 각인은 언제나 옳다. 저게 없는 바디들은 너무나 밋밋하다.




IIIa 부터는 드디어 1/1000초가 가능해진다. 시리얼번호를 조회해본 결과 1937년 생산분으로 확인됐다. 올해로 무려 팔순이 되신 분.. ㄷㄷ 








바르낙의 파인더는 포커싱창과 프레이밍창으로 나뉘어져 있어 왼쪽 창에서 초점을 맞추고 오른쪽 창에서 구도를 잡는다. 당시 라이벌인 Contax II는 이를 하나의 파인더에서 가능케 했지만 라이카는 M3가 등장하기까지 이같은 방식에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덕분에 초점을 맞춘 후 다시 구도 맞춤을 위해 눈을 옮겨야하는 불편함이 따르는데 인간의 적응의 동물이라 또 쓰다 보면 그러려니 하게 된다. 프레이밍창은 좁긴 하지만 맑고 밝은 편이나 프레임 라인은 별도로 표시되지 않고 보이는대로 꽉차게 찍었을 때 약 40미리 정도의 화각이다. 바르낙에 흔히 쓰는 50미리 엘마같은 걸로 찍을 경우는 파인더에서 보이는 것 보다 조금 적게 찍힌다는 걸 감안해야 한다. IIIa까지는 여전히 포커싱창과 프레이밍창의 간격이 제법 넓지만 IIIb 부터는 두 창이 가깝게 붙어서 눈을 옮기기 수월해진다. (뭐 그래도 불편하긴 매한가지;)




필름카운터는 수동으로 리셋해둬야한다. 역시 불편하지만 재미라면 재미.




Leica IIIa와 Contax IIa의 사이즈 비교. 바르낙의 컴팩트함을 다분히 의식한 듯 Contax IIa는 Contax II에 비해 제법 작아졌지만 여전히 바르낙에 비하면 크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상판의 배치는 확실히 Contax가 간결하게 설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Leica IIIa & Contax IIa



한롤도 못찍어보고 일단 오버홀하러 서울로 떠났다. 셔터속도 및 작동이 불안정했고 이중합치상의 상하가 틀어져있어서 굳이 테스트해볼 생각은 않고 오버홀 부터 해주고 제대로 써보고 싶다. 얼른얼른 돌아오길.















































































2016.11.20. 부산

Leica M3 / Elmar-M 50mm f2.8 / Kodak 400TX



왜 온통 라이카 뿐인가.


오늘날 레인지파인더 카메라라고 하면 누구나 라이카를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전문 사진가들을 위한 카메라 형식의 대세가 SLR이 되어버린지 50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RF카메라 특유의 장점인 저소음, 저진동, 그리고 컴팩트함은 적지않은 이들에게 어필하고 있고 작업 스타일에 따라서는 SLR에 비해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RF시장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고 정교한 레인지파인더의 생산에 많은 비용이 들어 지금도 RF카메라를 생산하고 있는 곳은 사실상 라이카가 유일하다. 신품만이 아니다. 중고로 구한다 치더라도 다양한 교환 렌즈와 모터 드라이브 혹은 접사 장치 등 시스템 카메라로서 접근해보면 라이카 말고는 더욱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RF카메라를 사용하는 이들의 십중팔구는 라이카 유저들이다. 왜 우리의 선택지는 이토록 좁은 것이란 말인가. 라이카에 견줄 상대는 과연 없었던 것일까?




ZeissIkon의 대항마 Contax IIa


라이카에 대적했던 카메라가 있었다. ZeissIkon의 Contax가 바로 그것이다. Contax IIa는 그 콘탁스 라인업 최후의 모델로 1950년 발매되어 61년경 단종되기까지 Leica IIIf, M3 등과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카메라였다. Contax IIa 이후 후속 모델이 출시되지 않으면서 역사속으로 사라진 탓에 알고 있는 이들도 드물었지만 이미지프레스에서 출간된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란 책을 통해 소개되며 비교적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중적 인지도의 상승이 인기와 비례하지는 않아 여전히 사용자는 극소수에 머물고 있다. 그나마 사용해봤다는 이들도 중고가가 저렴하니 호기심에 들였다가 금세 내친 경우가 대부분이다. M형 라이카를 쓰는 이들은 좁은 파인더 탓에 포커싱이 어렵고, 라이카와 반대인 조리개, 초점링의 회전 방향에 적응하지 못하겠다는 등 여러가지 불평을 내세우며 이래서 콘탁스가 망했다고 한다. 과연 콘탁스는 이렇게 혹평 받을 카메라였을까.




Contax의 역사


Contax IIa에 대해 본격적으로 얘기하기에 앞서 이전의 콘탁스 모델들을 먼저 간략히 알아보자. 부모없는 자식이 없듯 근본을 살펴봐야 Contax IIa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Contax I



라이츠사가 출시한 라이카의 대성공은 자이스이콘을 자극시켰다. 소형 포맷의 기술적, 품질적 한계로 소형 카메라의 개발에 대해 탐탁치않게 여기던 자이스이콘은 시장의 주도권을 라이츠에게 뺐겨 버렸지만 그 상황을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에 자이스이콘은 Leica II를 압도할 대응 모델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게 되고 1932년, 그들의 첫 시스템 RF카메라를 시장에 선보이게 된다. Contax의 등장이었다. 


라이카를 능가하겠다는 자이스이콘의 개발 의지대로 콘탁스는 라이카가 가지고 있던 문제점 내지 불편함을 상당부분 개선한 선진적 설계가 적용되었다. 뒷판은 통채로 열렸고 렌즈 마운트는 베이요닛 방식을 채택했다. 이 부분은 당시 라이카에 비해 훨씬 빠르고 편리한 필름 로딩과 렌즈 교환을 가능케 해준 선진적인 방식이었다. 최고 셔터스피드는 이미 1/1000초에 이르렀고 금속제 상하주행 셔터막을 채택하여 천으로 만들어진 라이카의 가로주행 셔터막이 햇빛에 종종 타서 구멍이 나는 문제로 부터 완전히 해방시켜 주었다. 레인지파인더의 기선장은 극단적으로 길어 초점 맞춤의 정밀성이 높았고 이 같은 장점은 특히 망원렌즈 사용시에 두드러졌다. 그리고 콘탁스 바디들의 특징인 포커싱휠이 채택되었는데 한 손(오른손)만으로도 포커싱과 셔터 릴리즈를 할 수 있도록 고안된 장치였다. 이것이 당시에 얼마나 큰 효용성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말을 탄 상태에서도 왼손은 고삐를 쥔 채 촬영할 수 있었거나 하는 장점은 있지 않았을까 싶다. 어쨌든 이 포커싱휠은 다른 카메라들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으로 콘탁스 시리즈에 계속해서 적용된다.


하지만 Contax는 유려하고 컴팩트한 디자인의 라이카에 비해 크고 둔중했다. 다소 급한 출시였는지 5년이라는 짧은 발매 기간에 비해 약 6번에 이를 정도로 잦은 성능 개선이 이루어졌고 금속제 셔터막은 햇빛에 구멍은 나지 않았지만 고장이 잦고 수리가 난해했다. 최초의 콘탁스는 여러가지 획기적인 기능을 대거 선보였지만 종합적인 완성도는 다소 떨어진 바디로 1936년 Contax II가 등장하며 단종되고 만다. 



Contax II



1936년 콘탁스의 두번째 모델 Contax II가 출시된다. 어딘가 프로토타입 같은 어설픈 디자인의 이전 모델에 비해 한결 현대적인 형태로 거듭난 Contax II는 여러가지 개선된 부분으로 당대 최고 성능을 자랑했다. 특히 하나의 뷰파인더에서 프레이밍과 포커싱이 동시에 가능해지고, 저속이 생략되거나 혹은 고속 다이얼과 분리된 라이카와 달리 하나의 다이얼에서 모든 셔터스피드의 조정이 가능했던 점은 획기적이었다. 이러한 기술은 1954년 출시된 M3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라이카에서는 가능해지는 것들이니 콘탁스의 설계가 얼마나 선진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특이하게도 최고 셔터스피드는 1/1250초였는데 이 역시 라이카에 앞선 그들의 기술력을 과시하기 위한 의도가 다분히 내포된 것이었다. 셀프타이머 역시 기본 탑재되어 IIIF모델 일부에서 처음 탑재되기 시작하는 라이카에 비해 훨씬 빠른 것이었다. Contax II에 이어 노출계를 탑재한 파생모델 Contax III도 출시되었다. 이 역시 세계 최초라 한다. (하지만 비연동식..)


이처럼 Contax II는 이미 바르낙 라이카를 압도하고 있던 Contax I에서 또 다시 발전을 이루어낸 카메라로서 프로 작가들의 고성능 카메라라는 이미지가 굳어졌고 베를린 올림픽을 맞이하여 발매된 180mm f2.8 Sonnar와 함께 스포츠 촬영에서도 역사에 남는 카메라가 된다. (손기정 선수의 마라톤 결승선 통과 사진도 Contax II와 180미리 조나가 찍었을 거란 설이 있다)




이같은 고성능을 바탕으로 Contax II는 큰 변화없이 2차대전 종전 때까지 지속적으로 생산되었다. Contax II는 특히 로버트 카파가 사용하면서 그 유명세를 떨치게 되는데 그가 찍은 유명한 사진, 1944년 6월 6일 D-Day 당일 연합군이 가장 많은 피해를 입었던 오마하 해변의 상륙 장면은 Contax II를 사용해 찍은 컷들이다. 전장의 급박함 속에서 촬영을 해야했던 그에게 콘탁스의 빠른 렌즈 교환과 필름 로딩이 크게 어필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Contax IIa



2차대전이 끝나고 5년이 지난 1950년, 콘탁스의 세번째 모델인 Contax IIa가 출시되었다. IIa의 가장 큰 특징은 전작인 II에 비해 컴팩트해졌다는 점인데 소형화는 물론 외형상의 아름다움에도 신경을 쓴 흔적이 역력하다. 크롬코팅의 개선이 이루어지고 곳곳의 금속 마무리에 화려함이 더해져 아름다운 광택을 자랑했으며 비로소 '보석같은 카메라'라는 별명이 생겨났다. 기능적인 개선 사항으로는 T셔터, 그리고 B와 1/2초 사이에 1초가 추가되었고 플래쉬 싱크 케이블 단자가 생겼다. 그보다 의미있는 개선점은 셔터스피드의 변경을 셔터를 장전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가능해졌다는 점과(Contax II나 바르낙 라이카들은 셔터 장전 후에 셔터스피드를 변경하는 순서를 지켜야 했다) 셔터막의 재설계로 고장이 잦고 수리가 난해하던 이전 모델에 비해 높은 안정성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라이카를 압도하던 성능상의 우위는 유지되었고 콘탁스의 약점이던 큰 덩치도 제법 작아지고 전체적인 디자인도 예뻐졌다. 이만하면 역대 최고의 콘탁스를, 아니 당대 최고의 카메라를 출시했다고 자이스이콘이 자신할만했다. 



1952년의 Contax IIa 광고. Contax가 내세우던 기능적 우위를 어필하고 있다.




짧은 영광과 몰락


하지만 Contax IIa의 화려한 시절은 오래가지 못했다. IIa가 출시되고 불과 5년 뒤인 1954년. 카메라 업계는 '깡패'의 출현으로 충격에 휩싸이고 만다. 그렇다. 그 유명한 라이카 M3가 등장한 것이었다. 전혀 새로운 베이요닛 마운트를 적용한 새 라이카는 렌즈의 화각에 따라 자동으로 프레임 라인이 변하는 밝고 시원한 파인더를 장착하고 있었고 그 전까지 바르낙 라이카들이 가지고 있던 여러가지 문제점들을 한방에 해결해 버린 놀라운 카메라였다. 거기에다 자동으로 리셋되는 필름 카운터와 빠른 셔터 장전이 가능한 장전 레버를 채택했고 이는 콘탁스에는 아직 없던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여전히 라이카는 아름다웠다는 점이다. 바르낙형 라이카에 비해 M3의 크기는 무척 커졌지만 아무도 이를 탓하지 않았다.  


M3의 등장으로 라이카에 대한 콘탁스의 우위는 단박에 역전되어 버렸다. Contax I 이후 20년 가량 줄곧 앞서있던 콘탁스가 한순간에 라이카에게 압도당한 것이다. 자이스이콘의 허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자료에 의하면 M3의 발매 이후 콘탁스의 시판 가격은 절반 수준으로 하락하고 말았다고도 한다. 설상가상으로 자신들의 마운트를 카피한 니콘 SP같은 카메라들도 이미 기능적으로 콘탁스를 완전히 퇴물로 만들고 있었다. 카피캣을 따돌리고 라이카를 다시 한번 압도하려면 M3 이상의 콘탁스가 필요했다. 하지만 고심끝에 자이스이콘은 콘탁스를 결국 포기하고 만다. 보석 같은 카메라는 화석이 되어버렸고 후대는 M3에 패하며 사라진 비운의 카메라로 Contax IIa를 기억하게 된다. 




Contax IIa를 위한 변명


Contax IIa는 참 운이 없는 카메라다. 발매당시 라이벌이던 Leica IIIf 등에 비해 우수했던 점은 어필되지 못하고 역대급 카메라 M3에 비교되며 혹평을 받고 있다. M3에 패했다는 것만으로 이렇게 까여야(?) 한다면 세상에서 M3 앞에 당당할 카메라가 몇 개나 있는가. Contax IIa에 대해 변명을 해주고 싶었다. Contax IIa가 조금만 더 좋은 카메라였다면, 혹은 뒤이어 새로운 Contax가 출시되었더라면 이 정도로 역사 속에 묻힌 카메라가 되지는 않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을 곧잘 하곤 했다. 도대체 왜 자이스이콘은 그러질 못했을까. 여기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추론해본 것들을 얘기해보기로 한다. 



① 이미 달성한 압도적 성능 우위, 크기만 줄이면 된다!


Contax IIa가 M3의 획기적 발전 앞에 한방에 나가 떨어지게 된 결정적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Contax I 부터 이미 바르낙 라이카를 압도하고 있던 성능상의 우위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앞서도 언급했듯 베이요닛 마운트, 프레이밍과 포커싱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뷰파인더, 저속과 고속 영역이 합쳐진 셔터스피드 다이얼, 뒷판의 열림 등은 M3가 등장하기 전까지 라이카에선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카메라의 성능 뿐만 아니라 콘탁스용 칼 자이즈의 렌즈들 또한 당대 라이카의 그것들 보다 뛰어난 화질을 자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콘탁스의 판매량이 라이카에 미치지 못하는 점에 대해 자이스이콘은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고 결국 그 원인은 콘탁스의 큰 크기 때문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Contax IIa의 개발 방향은 그래서 기능의 향상보다는 크기를 줄이고 디자인을 개선하는 쪽으로 수립되었다. 침동식 엘마를 장착한 바르낙의 컴팩트함에 매료된 애호가들의 마음을 뺐어오려면 자잘한 기능상의 우위보다는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크기에만 집착하는 동안 자이스이콘은 라이카가 준비한 강력한 한방에 대응할 거시적 시각을 가지지 못했다. M3가 제시한 방향은 그게 아니었다. 자이스이콘이 크기를 줄이는데 집착하는 대신 35미리 프레임 라인부터 시작하는 멀티 프레임을 가진 혁신적인 파인더가 탑재된 콘탁스를 개발했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실제 자이스이콘은 크기를 줄이는데 집착한 나머지 몇가지 문제점을 야기시켰는데 그렇지 않아도 좁던 파인더가 조금 더 좁아졌고 기선장의 길이가 줄어 초점 맞춤의 정밀도도 다소 떨어졌다. 하지만 이 두가지는 그럼에도 불구 바르낙보다는 여전히 우수한 부분이라 감수할 수 있었다. 유저들 입장에서 당황스런 문제는 전쟁전에 생산된 35미리 비오곤 렌즈가 장착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전전형 35미리 비오곤은 특유의 설계로 인해 후옥이 유난히 길고 컸는데 크기가 작아진 Contax IIa에는 후옥이 들어가질 않았던 것이다. 물론 칼 자이즈사는 새롭게 설계한 전후형 35미리 비오곤을 발매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지만 자이스이콘 입장에서 크기를 줄이는데 얼마나 사활을 걸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부분이다. 



② 2차 세계 대전과 독일의 분단


라이츠에 비해 자이스이콘은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굴곡을 더 많이 겪어야 했다. 전쟁 기간 동안 독일의 주요 공업도시들은 연합군 폭격기들의 공습에 시달렸고 이는 자이스이콘의 카메라 공장이 있던 드레스덴도 마찬가지였다. 자이스이콘 드레스덴 공장 역시 폭격을 맞아 가동이 중지되었고 개발 중이던 주요 시제품과 설계 자료들이 몽땅 사라지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드레스덴은 소련군 점령 지역이 되면서 자이스이콘의 공장 설비와 생산에 필요한 재료들은 소련으로 옮겨진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숙련된 기술자들도 함께였다. 거기에다 자이스이콘은 잠수함의 잠망경, 전차의 조준경 등 직접적인 전쟁 무기를 생산했다는 이유로 전범 기업으로 분류되어 고초를 치른다. 반면 라이츠사는 쌍안경 등 일반적인 광학장비만을 생산했기에 전범 기업에 포함되지는 않았다.


폭격을 맞은 자이스이콘 드레스덴 공장. 1947년경 미군에 의해 촬영된 사진이다.


상황이 이러했으니 서독 슈트르가르트의 자이스이콘은 반쪽 짜리 회사밖에 되지 못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기술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전쟁 후의 혼란스런 상황을 고려해볼 때 획기적인 새로운 콘탁스가 나올 수 있는 여건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오히려 종전 후 5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 (Contax IIa는 정확히는 49년 11월에 발표되었다고 한다) Contax IIa 같은 카메라를 만들어낸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③ 자이스이콘의 합리적(?) 상황 판단


M3의 등장을 지켜본 자이스이콘은 M3를 압도할 수 있는 새로운 콘탁스의 개발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러자면 일단 파인더의 개선이 가장 시급했을 것이다. 그리고 M3처럼 렌즈에 따라 자동으로 변환되는 프레임 라인을 적용하려면 라이츠가 그러했듯 새로운 마운트를 설계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높은 제작 비용이 드는 파인더 개선과 마운트 변경이라는 도박을 시도하기에는 성공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다. 그리고 앞으로 시장의 대세는 분명 SLR이 될 것이었다. 콘탁스 말고도 엄청난 카메라 라인업을 갖추고 있던 자이스이콘은 성공 가능성이 희박한 Contax에만 집중할 수는 없었다. 결국 자이스이콘은 Contax를 포기하고 SLR인 Contarex 개발에 집중하기로 결정한다. 이는 물론 당시로서는 지극히 합리적인 판단이었으리라 여겨진다. 실제 60년대 이후 대세는 완전히 SLR이 되어 일본 카메라 업계들이 세계 시장을 석권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라이츠 역시 심각한 경영 위기를 겪으며 망하기 직전까지 갔으니 말이다. 문제는 저렴하고 우수한 성능의 일제 SLR에 비해 자이스이콘의 Contarex는 지나치게 비싸고 고급스러웠다. 이미 일본 메이커들이 장악한 시장에서 자이스이콘의 승부수는 신통치 못했다. 결국 1972년에 이르러 자이스이콘은 모든 카메라 생산에서 손을 떼고 만다. 




오늘날 콘탁스의 매력


콘탁스는 분명 사용하기 편한 카메라는 아니다. 프레임 라인도 그려져 있지 않은 작은 뷰파인더에다 셔터 장전도 돌림식이라 속도가 느리다. 하지만 이것은 지금의 시각일 뿐이며 또 M형 라이카와의 비교일 뿐이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사랑하고 있는 바르낙 라이카에 비해서는 훨씬 사용하기 편리한 카메라가 바로 Contax IIa다. 잘 관리된 Contax IIa의 파인더는 좁긴 하나 어둡진 않고 이중상도 명확하다. 셔터 소리는 라이카(천 셔터막)에 비해서는 조금 더 크긴하나 절도있고 카랑카랑해 기계적 매력이 물씬 느껴진다. 아름다운 크롬 코팅은 갓 잡은 갈치를 연상케할 정도로 광택이 빛나고 렌즈 마운트와 다이얼 곳곳의 금속 가공 처리는 스위스 시계의 브레이슬릿을 보는 듯 유광과 반광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바디를 감싸고 있는 가죽은 모로코산 양가죽이라 하는데 그 보들보들한 감촉이 매우 좋다. 감성 품질도 훌륭한 카메라란 얘기다.


무엇보다 당대 최고 성능의 콘탁스용 칼 자이즈 렌즈들을 저렴한 가격에 사용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서 가치가 가장 중요하다 하겠다. 전쟁 후 서독에서 생산된 Zeiss-Opton 혹은 Carl Zeiss 각인의 렌즈들은 고급스런 크롬 광택 마무리와 부드러운 조작감, 그리고 T코팅이 적용된 우수한 성능을 자랑하는 명렌즈들이다. 그 중에서도 50mm f1.5 Sonnar와 21mm f4.5 Biogon은 아답터를 이용해 라이카 바디에 이용하는 이들도 많을 정도로 여전히 인기가 높으며 35mm f2.8 Biogon이나 35mm f3.5 Planar는 물론 당대 최고의 해상도를 자랑했다는 50mm f3.5 Tessar도 매니아라면 놓치기 아까운 렌즈들이다. 이 우수한 렌즈들은 사용할 바디가 극히 제한적이라는 이유로 당대 라이카 렌즈에 비해 훨씬 저렴한 가격에 거래되고 있는데 Contax IIa의 중고 가격 조차 저렴하기 그지 없으니 오리지널 독일제 시스템 RF카메라를 즐기기에 이보다 효율적인 방법이 있을까. 물론 라이카에 비해 물건이 귀하여 꽤 오랜 정성과 '운'이 필요하긴 하지만 '돈만 있으면 구하는' 라이카에 비해 그 만족감은 더욱 크다고 얘기하고 싶다. 



내가 갖고 있는 Contax IIa와 렌즈들. 다 합쳐봐야 라이카 Summicron 35mm f2.0 1st 일명 '8매' 하나는 살 수 있을까 싶은 가격이지만 보석 같은 얘네들을 8매 '따위'와 바꿀 수야 있나.



라이카에 맞섰던 또 하나의 최고의 카메라였던 콘탁스. 비록 바르낙과 M 사이, 그 어설픈 위치에서 진화를 멈추고 말았다는 점이 안타깝지만 이야기 거리 풍부한 역사적인 카메라임에는 틀림없다. 리뷰를 쓰다보니 문득 이런 생각도 든다. 

'그래도 콘탁스가 있었기에 Leica M3라는 역사에 남을 카메라가 탄생한 것이 아닐까.' 

콘탁스의 여러가지 편리함과 기능상 우위는 분명 라이카를 자극했을테고 그 결과로 탄생한 것이 M3라면 콘탁스의 쓸쓸한 오늘날의 처지가 그리 딱하게만은 여겨지지 않는다. 반세기전 독일 광학업계의 마지막 전성기, 시장의 주도권을 치열하게 다투던 전장에서 패자로 퇴장해버린 Contax IIa. 세상은 승자만 기억한다지만 그에 못지 않은 패자의 이야기도 사뭇 흥미로운 법이다. 그리고 그 상대가 하필 넘사벽 M3였다. 그를 너무 탓하지는 말자. 지금보다는 더 멋진 카메라로 기억되길 바라며 긴 글을 마친다.

Leica M3 / Elmar-M 50mm f2.8


초기형 M3를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로 더블 스트록의 재미와 더불어 '도그이어(Dog Ear)' 혹은 'Buddha Ear' 라고 불리는 스트랩 고리의 예쁜 모양을 들 수 있다. 이 도그이어 스트랩 고리는 M3에서도 후기형으로 넘어가면 보다 단순한 형태로 변하게 되고 이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좌 : 일반적인 라이카 M바디들의 스트랩 고리(M4) / 우 : 도그이어 스트랩 고리 (M3 초기형)


두가지 모양을 놓고 비교해보면 일반적인 스트랩 고리에 비해 도그이어 고리의 모양이 좀 더 유려하고 바디와의 이음 부분에도 보다 디테일이 있어 멋져 보이긴 한다. (사실 눈에 확 띄는 부분은 아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디자인 뿐 아니라 높이의 차이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 때문에 일반적인 라이카 M바디용으로 발매된 하프 케이스들 대부분이 도그이어 버전 M3에 잘 맞지 않는 문제가 발생한다. 




대부분의 라이카용 하프 케이스들이 똑딱이 방식으로 바디와 고정되는데 일반형 케이스들은 저 똑딱이와 구멍의 높이가 낮다보니 도그이어 버전에는 잘 맞지 않는 것이다. 지인들이 가지고 있는 KIMOTO, A&A 제품들 모두 마찬가지였다. (억지로 하면 겨우 똑딱이를 잠글 수는 있었지만..) 이렇다 보니 M3 도그이어 버전 사용자들은 하프 케이스 구하기가 쉽지 않은 편이었다.




그러던 차에 장터에서 좋은 물건을 발견했다. 럭스케이스에서 나온 CSE-17이란 모델명의 Leica MP3용 하프 케이스였다. 한정판으로 발매되었던 MP3는 M3 형태의 디자인을 복각한 모델로 스트랩 고리 역시 도그이어 버전이 적용되었다. 당연히 이 케이스는 M3 도그이어 버전에도 딱 맞는다. 




Leica MP3. 셀프타이머가 없다는 점을 제외하곤 도그이어 스트랩 고리까지 M3와 거의 같다. (필름카운터는 M2 스타일)




전체적인 핏팅이 상당히 좋다. 케이스를 벗기고 씌울 때도 너무 빡빡하지 않고 적당하다. A&A 제품에 비해 전면을 커버하는 면적이 더 넓어 셀프타이머 레버가 숨을 듯 말 듯 자연스럽게 커버된다. 저 부분의 디자인이 개인적으로 참 마음에 든다.




지인의 Leica M4와 A&A하프케이스. 전면을 커버하는 면적이 차이남을 알 수 있다.



후면부도 뒷덮개의 형태에 따라 자연스럽게 잘 길들었다. 




가죽의 두께는 A&A 제품보다 약간 얇은 듯하다. 덕분에 바디와의 밀착감은 더 나은 느낌.




바닥에 LUXECASE가 새겨져있다. 





가죽의 품질도 우수하고 디자인도 깔끔하며 피팅이 참 좋아 전체적으로 아주 만족스럽다. 무엇보다 하프 케이스 선택의 폭이 좁은 M3 초기형 사용자들에게는 수작업으로 의뢰하지 않아도 기성품으로 구입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 아닌가 싶다. 날씨도 추워졌으니 올해는 M3를 좀 대우해주며 데리고 다녀야겠다.


2016.12.09








2016.10.08. 포항

Leica M3 / Elmar-M 50mm f2.8 / Kodak 400TX / I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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