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간에 걸쳐 찻잔을 몇 개나 지르고 있는지 모르겠다만 어느 정도(?)만 갖추고 나면 그만해야지 다짐하며 그 '어느 정도'에 속하는 것들을 나름대로 정해보았다. 주로 영국제 찻 잔들에 관심이 갔고 非영국제로는 딱 두 종류가 소유욕을 자극했는데, 하나는 독일 마이센(Meissen)의 Blue Onion 라인이었고 또다른 하나는 러시아 로모노소프(Lomonosov) Cobalt Net 라인이었다. 




두 종류 모두 파란색을 주제로 한 자기라는 공통점이 있는 것으로 보아 내가 파란색을 참 좋아하긴 좋아한다 싶은데, 마이센의 블루 어니언은 조선에서도 만들어내던 중국의 청화 백자를 모방한 제품임에도 유럽에서 최초로 도자기 제작에 성공했다는 역사성을 가지고 있고 오늘날에도 명품으로서의 위치가 탄탄해 다소 수수해 보이는 외모에 비해 가격도 만만치 않다. 반면 로모노소프의 코발트 넷은 파란색 그물망에 금으로 그려진 문양들이 어우러져 러시아 황실에 공급되던 자기라는 명성에 걸맞는 상당히 화려한 외모를 자랑한다. 



성격상 어차피 언젠가는 살 것 같아 이왕 살거 빨리 사자는 합리적(?) 결론을 내렸다. 마이센은 좀 더 보는 안목이 키워지면 알아보기로 하고 먼저 로모노소프를 알아보니 국내 가격은 정말 깜짝 놀랄 수준이다. 복잡한 유통과정과 관세, 프리미엄 브랜드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싶은 수입사들의 의도가 더해졌는지 모르겠지만 비싸도 너무 비싸다. 한 눈에 확 들어오는 화려한 디자인에다 이렇게 비싼 가격까지 더해지니 그릇 좀 좋아하는 일부 사람들 사이에선 거의 선망의 대상이던데 나는 그렇게 비싼 비용을 지불할 생각은 없었다. 결국 이번에도 이베이를 공략하기 시작했는데 그다지 많은 물건이 올라와있지도 않을 뿐더러 짝퉁이 아닌가 의심될 정도로 가격대가 국내에 비해 저렴했고 그리 비싸지 않은 중고제품에도 입찰자가 많지 않다. 상대적으로 물건이 많은 영국의 로얄 알버트나 파라곤 제품들에는 항상 입찰자가 많은 것과는 너무 비교되는 의외의 모습이라 로모노소프 역시 국내에서 다소 과장된 이미지의 브랜드가 아닌가 살짝 의심도 된다.. 그래도 이쁜 건 사실이라 하나를 눈여겨 보며 입찰했고 별다른 경쟁없이 수월하게 한 조를 구할 수 있었다. 





Lomonosov - Cobalt Net Tulip Tea Cup


정상적으로 소서에 올려두고는 안찍고 뒤집어서 먼저 찍었다; 미국의 셀러에게서 구입한 물건인데 적어도 배송하기 전에 한 번은 씻을 법도 한데 먼지도 제법 많고 잔 내부에 얼룩 마저 있었다. 물론 셀러의 제품 설명에 90년대말에 구입한 후 거의 쓰지 않고 보관만 해온 것이라 먼지가 앉거나 때가 묻었을 수 있다고 적혀는 있었지만 그래도 그냥 그대로 보낼 줄이야;;; 셀러도 참 대단한 사람인 듯. 하여튼 개봉 후 회사 탕비실에 들고가 깨끗이 설거지 해줬더니 다행히 반짝반짝 상태가 좋다. 잔 아랫면의 스탬프는 요즘 나오는 제품들과 차이가 있다. 





모든 페인팅은 수작업으로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손잡이에도 신경써서 금으로 무늬를 그려뒀다. 잔과 소서의 화려한 그림과 튤립 형태의 디자인에 비해 손잡이의 디자인은 너무 평범하지 않나 싶은데 금으로 그린 무늬가 심심함을 조금이나마 덜어준다.





바로 위에서 바라본 모습. 잔의 크기는 일반적인 찻잔에 비해 큰 편으로 가득 채울시 약 250ml 정도 들어가며 보기 좋게 예쁘게 담으면 220ml 정도가 들어가는 수준이다. 티포트를 쓰지 않고 간단하게 티백을 우려 마시기에는 딱 좋은 사이즈. 다만 차를 그 정도 채우면 무게가 꽤 무거워지는데 역시 저 손잡이가 뭔가 좀 어설프다. 손가락이 편하지 않고 무게감이 많이 느껴지고 잔의 옆 면에 손가락이 닿아 뜨겁기도 하다. 드는 요령이 생기면 나아질 수도 있겠지만 저 손잡이는 조금만 더 신경을 써줬으면 어땠을까 싶다.





그래도 모든게 용서되는 화려한 코발트 넷과 금장의 조화. 소서 위에 잔을 올려두고 이렇게 바라보면 정말 아름답고 화려하다. 물론 눈을 부릅뜨고 구석구석 살펴 보면 완벽하지만은 않은데, 잔 아랫 부분이나 소서의 가장 자리 등의 금장 칠 폭이나 도료의 두께가 조금씩 편차가 있긴 있다. (공식 수입업체에서도 모든 무늬가 핸드 페인팅이라 완벽하지는 않을 수 있다고 언급을 해둠) 로얄 알버트도 그렇고 금으로 칠하는 부분은 원래 다소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이해하는게 좋을 듯 하다. 개인적으로 만년필도 그렇고 시계나 등등 대부분의 물건들에 '금장'을 상당히 싫어하는 편인데 이상하게 찻 잔은 금장 무늬가 들어간 것이 좋다. 





퇴근이 다소 늦었지만 새 찻잔이 왔으니 한 잔 안마실 수 없지. 티백으로 간단히 마시고 잘까 하다가 새로산 Twinings의 Earl Grey 틴을 개봉해서 우려냈다. 확실히 잔이 크니까 우려낸 다음 티포트로 옮겨서 2번 따라 마실 필요가 없어서 좋다. 어차피 2조를 산 것도 아니니 혼자 마실 때 주력 찻잔이 될 것 같다. 



대부분의 찻잔들이 사진보단 실물이 낫던데 솔직히 말하면 얘는 사진이 나은 것 같다. 실물이 예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워낙 사진발을 잘 받는 화려한 잔이다 보니 기대가 너무너무 컸던 것일 수도. ㅎㅎ  



2015.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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