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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1 안동 풍산장터

술마시던 중 갑자기 안동가자는 동기녀석의 말에 따라 자리를 박차고 나와 카메라를 챙겨들고 청량리 역으로 달려가 마지막 무궁화호에 몸을 실었다. 흐린 아침에 찾은 풍산장에서 유명인사라는 할아버지의 말씀에 모델료(?)로 소주 한병과 새우깡 한봉지를 드린 후에야 촬영 협조를 얻을 수 있었다. 주변의 할아버지들은 '영감쟁이 사진 찍는데 뭐하러 그런걸 주냐?'며 그냥 찍으라고 하셨고.. 뻥하는 소리에 놀라 엉겁결에 셔터를 눌렀는데 찍혔는지도 몰랐다. 필름을 와인딩하니 돌아가기에 찍혔었구나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사실 이 사진은 내가 중2때 이후 10여년 이상 사진을 찍어오며 가장 맘에 드는 사진이었지만 아쉬운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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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9  몽골 울란바토르

시대가 변해가면서 이제 몽골에서도 유목민의 전통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기는 힘들지만 아직도 이들은 게르에서 많은 이가 살고 있다. 다분히 아이러니한 현상이지만 자기 집터에 나무 울타리를 쳐놓고 생활은 여전히 게르에서 하는 정착도 이동도 아닌 희한한 형태의 주거문화가 혼재되어 있는데 이는 비단 오늘날의 현실도 아닌 원나라 때도 보였던 일이다. 중원을 지배한 몽골족들은 화려한 궁궐에서도 게르를 지어두고 생활하며 유목민들이 유목정신을 잊고 정착문명에 동화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사실 중국을 지배한 수 많은 유목민족들이 멸망하게 된 것도 중국의 한족문화에 동화되며 특유의 강인한 민족성을 잃고 기동성이라는 그 들만의 장점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청나라를 지배했던 여진족조차 오늘날은 찾아보기 힘들정도이니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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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1  베트남

월남전 때 미군이 버리고 갔을 듯한 1/4t Jeep를 잡아타고 사막처럼 넓은 Muine해변의 유명한 해안 사구를 보기 위해 달렸다. 굽이굽이 해안도로를 돌자 마자 눈 앞에 펼쳐지는 이 어촌 마을의 모습을 보는 순간 탄성을 지를 수 밖에 없었고 센스있는 운전기사 아저씨는 차를 세워주었다.

2007. 12. 31. 포항-동대구간 통일호의 마지막 운행

2008년 부터는 무궁화호가 대신하게 되지만 요금은 거의 2배로 올랐고
지하철같은 구조의 통일호에 비해 내부 여유공간이 부족한 무궁화호 객실이
많은 짐을 가지고 기차에 오르는 시골 할머니들에게 과연 어울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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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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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9  몽골 울란바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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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9
바이칼을 떠나며..
다시 올 수 있을지 알수 없는 곳이라 잠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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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9 
벌써부터 그리워 지는 곳.
환바이칼 열차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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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6  서울역

아마 나의 마지막 휴가였던가..
아직도 그 때를 생각하면 짠해질 때가 있다.
그래도 간절하게 기다리던 뭔가가 있어서 견딜 수 있었던 시기였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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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9  몽골 테레지 국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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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도 마을 입구에 있는 큰 나무에 이와같이 천을 두르거나 돌을 쌓아 탑을 만드는 일은 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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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330여개의 강물이 바이칼로 흘러들어가고 오직 하나의 강으로 흘러나간다.
 그 유일한 강이 앙가라강으로 예니세이강과 만나 북극해로 빠져나가게 된다고 함.
 이 같은 이유 때문에 앙가라강에는 전설이 전해지는데 그 내용은

 "옛날옛적에 바이칼 신에게 330명의 아들과 1명의 딸이 있었는데 그 딸의 이름은 앙가라라고 하였다.
 그런데 바이칼이 시집보내려던 남자에게 시집가기를 거부하고 앙가라는 예니세이라는 남자를 사모하여
 급기야 도망을 가게 되었는데 격노한 바이칼이 던진 바위에 맞아 앙가라는 죽고 말았댄다.
 그리하야 앙가라가 흘린 눈물이 강이 되어 앙가라강이 되었고 그 강만이 유일하게 예니세이 강을 향해
 흘러가게 되었다"
 
 라는 그런 것인데..;

 어쨌든 이 조용하고 한적한 강가의 자작나무 숲에서 보낸 3일은 정말 잊기 어려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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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9   앙가라 강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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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9  앙가라 강변

꽃은 내가 올려놓은것 아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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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9  스파스카야 교회 내부
손각대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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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9  이르쿠츠크

 2차대전 전몰장병 위령공원(?)에는 꺼지지 않는 횃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고 그곳에는 보이스카웃단원같은 청소년들이 교대로 근무 중이다. 약 천만명 정도의 막대한 인명손실과 우랄산맥 서쪽 전 국토가 쑥대밭이 되었지만 전쟁의 결과로 전세계의 반을 차지하게된 소련은 내부의 반발과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2차대전 전몰장병들에 대한 영웅화 시도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 총 한 자루 제대로 없이 끌려나와 독일군의 기관총 앞으로 돌격하다 앞의 동료가 쓰러지면 총을 주워 계속 달리게 하는 등 무자비하고 비이성적인 작전 형태에 따른 필요이상의 무모한 희생이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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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9  몽골 테레지

역시 기마민족인가..애어른 할 것없이 말타는데 너무나 익숙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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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9  몽골, 울란바타르에서 테레지로 가던 길
실제 본 낙타는 동물원에서 보던 것보다 무서웠다. 20미리라 너무 접근한 탓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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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9  몽골. 테레지로 향하던 길에서 만난 장면
정말 키워보고 싶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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