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6.06. 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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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6. 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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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에서 구룡포만큼 요근래 들어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 있을까 싶다. 

호미곶 남쪽에 위치한 구룡포는 10년전만 하더라도 사실 굳이 관광차 찾는 이들은 많지 않았던 한적한 포구였다. 과메 덕분에 이름이 알려지고 일본인 가옥거리가 정비되어 볼거리도 생기면서 찾는 이가 많아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요즘같은 늦겨울에 구룡포에 사람이 붐비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이 맘 때가 제철인 대게 때문이다. 




의기양양하게 대게 한 마리를 손에 든 할아버지께서 사진을 찍어달라시기에 한 컷 눌러 드렸다. 대게가 살아 있다며 집게가 움직이는 것을 보여주시던 할아버지는 결국 집게에 손가락을 물려서 게를 떨어뜨리셨다. 주변의 일행분들은 모델이 영 별로니 사진을 지워버리라고 했지만 그럴 수야 있나. :)










밤새 차가운 동해바다에 나갔다 돌아온 배에서는 대게가 끝없이 쏟아져 나온다. 


















크기와 상태에 따라 대게는 놀라운 속도로 분류된다. 보통 새벽에 이뤄지는 죽도시장 경매와 달리 배가 들어오는 시간이 늦은 듯 구룡포에서의 대게 경매는 9시 전후는 되어야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경매 시간이 늦기 때문에 경매인들은 물론 관광객들까지 어판장 안에서 뒤섞여 정신이 없지만 그들의 손놀림은 빠르고 눈썰미는 날카롭다.







경매가 끝난 물건들은 가판에서 곧바로 판매된다. 게는 어쨌거나 껍질 까보기 전에는 상태를 알 수 없다고 하지만 상인들은 좋은 게와 그렇지 않은 게를 귀신같이 안다. 물론 우리같은 비전문가들도 경험치가 누적되면 어느 정도 판단 기준이 생기긴 하지만 게를 살 때마다 불안한 것은 어쩔 수 없다. 나 같은 경우 차라리 살이 덜 찬 걸 좀 싸게 달라고 하거나 비싸도 좋으니 제대로 된 걸 달라고 정공법으로 나가는 편이 좋았다. 그래도 속으면 어쩔 수 없다.




구룡포 어판장에서 구입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가성비가 높은 것이 백고동이 아닐까 싶다. 저 나무 한 판 가득의 백고동이 보통 2만원대. 그러다 보니 대게를 쪄가는 사람들이 별 기대없이 곁다리로 같이 사가는 경우가 많다. 먹어보면 알겠지만 사실 끼워팔기 신세에 처할 녀석이 아니다. 




경매가 끝나고 다시 트럭에 오르는 대게들. 구룡포의 대게는 이렇게 트럭에 실려 전국 각지로 나가게 되는데 상당수는 영덕으로 올라가기도 한다. 대게라고 하면 그동안 영덕이 워낙 유명하다보니 이 쪽에서 잡힌 대게도 영덕으로 팔려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과거와 달리 구룡포도 이제는 대게로 유명세가 높아진 탓에 과거에 없던 대게 식당들이 많이 생겨났다. 사실 어획량 기준으로 구룡포 쪽은 결코 영덕에 뒤지지 않는다 한다. 



 

거적에 덮혀 마구 쌓여있는 대게들도 있었다. 악취가 제법 나기에 여쭈었더니 죽어서 썩은 대게들로서 따로 모아서 비료로 쓴다고 한다. 사실 바닷가 쪽에서 이런 식의 비료는 흔했는데 냉동 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과거에 청어 따위가 많이 잡히면 다 먹지도 못하고 멀리 내다 팔수도 없으니 하니 비료로 쓰곤 했던 것이다.






















하역 작업이 끝나고 경매도 마무리되면 어판장에서 들려오던 왁자지껄하던 고함 소리와 경매종 소리가 사라지고 시간이 다시 느리게 흐르기 시작한다. 어제부터 이어진 긴 하루가 끝난 선원들이 담배를 태우며 휴식을 취한다. 볕이 따셨다.




달달한 커피 한 잔이 절로 생각날 터. 다방에서 커피를 시키면 배 위로 가져다 준다. 엄청난 서비스다.




커피 뿐이 아니다. 중국음식도 배 위로 올라온다.




고된 일을 마치고 갑판 위에서 먹는 짜장면의 맛은 어떨까? 촬영도 촬영이지만 일행과 함께 침이 넘어가는걸 참기가 어려웠다.




배에서 내릴 때 손 잡아주시는 모습이 훈훈했다.










짧은 휴식이 끝나면 배는 다시 바다로 나갈 채비를 한다. 설비를 점검하고 밧줄을 싣고 배에서 쓸 가스통도 새로 넣어야 한다.




구룡포는 그렇게 분주한 오전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평소에는 한적하기 그지 없는 곳이지만 이 때만큼은 엄청난 활기를 띄는 곳. 대게가 제철인 2월의 구룡포다. 




그리고...

사진만 찍고 도저히 그냥 올 수가 없어서 딱 두마리만 사왔다. 두마리 밖에 없으니 평소보다 더 알뜰하게 더 느긋하게 음미하면서 먹게 되는 즐거움이 있었다.



2017.02.26. 포항 구룡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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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11. 포항 신광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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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ca M3 / Elmar-M 50mm f2.8


초기형 M3를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로 더블 스트록의 재미와 더불어 '도그이어(Dog Ear)' 혹은 'Buddha Ear' 라고 불리는 스트랩 고리의 예쁜 모양을 들 수 있다. 이 도그이어 스트랩 고리는 M3에서도 후기형으로 넘어가면 보다 단순한 형태로 변하게 되고 이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좌 : 일반적인 라이카 M바디들의 스트랩 고리(M4) / 우 : 도그이어 스트랩 고리 (M3 초기형)


두가지 모양을 놓고 비교해보면 일반적인 스트랩 고리에 비해 도그이어 고리의 모양이 좀 더 유려하고 바디와의 이음 부분에도 보다 디테일이 있어 멋져 보이긴 한다. (사실 눈에 확 띄는 부분은 아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디자인 뿐 아니라 높이의 차이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 때문에 일반적인 라이카 M바디용으로 발매된 하프 케이스들 대부분이 도그이어 버전 M3에 잘 맞지 않는 문제가 발생한다. 




대부분의 라이카용 하프 케이스들이 똑딱이 방식으로 바디와 고정되는데 일반형 케이스들은 저 똑딱이와 구멍의 높이가 낮다보니 도그이어 버전에는 잘 맞지 않는 것이다. 지인들이 가지고 있는 KIMOTO, A&A 제품들 모두 마찬가지였다. (억지로 하면 겨우 똑딱이를 잠글 수는 있었지만..) 이렇다 보니 M3 도그이어 버전 사용자들은 하프 케이스 구하기가 쉽지 않은 편이었다.




그러던 차에 장터에서 좋은 물건을 발견했다. 럭스케이스에서 나온 CSE-17이란 모델명의 Leica MP3용 하프 케이스였다. 한정판으로 발매되었던 MP3는 M3 형태의 디자인을 복각한 모델로 스트랩 고리 역시 도그이어 버전이 적용되었다. 당연히 이 케이스는 M3 도그이어 버전에도 딱 맞는다. 




Leica MP3. 셀프타이머가 없다는 점을 제외하곤 도그이어 스트랩 고리까지 M3와 거의 같다. (필름카운터는 M2 스타일)




전체적인 핏팅이 상당히 좋다. 케이스를 벗기고 씌울 때도 너무 빡빡하지 않고 적당하다. A&A 제품에 비해 전면을 커버하는 면적이 더 넓어 셀프타이머 레버가 숨을 듯 말 듯 자연스럽게 커버된다. 저 부분의 디자인이 개인적으로 참 마음에 든다.




지인의 Leica M4와 A&A하프케이스. 전면을 커버하는 면적이 차이남을 알 수 있다.



후면부도 뒷덮개의 형태에 따라 자연스럽게 잘 길들었다. 




가죽의 두께는 A&A 제품보다 약간 얇은 듯하다. 덕분에 바디와의 밀착감은 더 나은 느낌.




바닥에 LUXECASE가 새겨져있다. 





가죽의 품질도 우수하고 디자인도 깔끔하며 피팅이 참 좋아 전체적으로 아주 만족스럽다. 무엇보다 하프 케이스 선택의 폭이 좁은 M3 초기형 사용자들에게는 수작업으로 의뢰하지 않아도 기성품으로 구입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 아닌가 싶다. 날씨도 추워졌으니 올해는 M3를 좀 대우해주며 데리고 다녀야겠다.


2016.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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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이 Leica M7을 팔아먹고 M4를 들였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아는 분에게 구구절절한 문자로 구애한 끝에 데리고 온 것!) M4는 M3나 M2에 비해 생산량이 적은 편이라 은근히 보기 힘들어 나도 실물은 처음 만져본다. MP와 특이한 한정판 모델들을 제외하고는 M3, M2, M6, M7 까지 두루 겪은 지인의 마지막 희망이던 M4를 아주 좋은 상태의 물건으로 구해 뿌듯하다. 렌즈는 기존에 사용하던 Summicron-M 35mm F2.0 ASPH. 




사실 구입하고 나서 며칠 지난 것이긴 한데 이제서야 첫 필름을 넣어 본단다. 이제 궁금한 것도 없는지 느긋하기만 한 지인. 나같음 도착한 날 바로 한 롤 찍었음.




평소에 카메라에 하프케이스 따위는 씌우지 않던 그였지만 이번엔 좀 곱게 써주고자 A&A 가죽케이스까지 장만해서 대우해 주기로 했다. 사실 M6 이전의 모델들의 볼커나이트는 오랜 세월이 지나 경화로 인해 갈라지거나 떨어지는 경우가 생기기에 관리해 주고 보호해 주는 것이 좋다.




필름만 안넣은게 아니라 스트랩도 아직 안달아뒀다. 카메라는 수없이 바뀌었어도 바뀌지 않고 있는 A&A의 실크 스트랩 ACAM-301. 스트랩치고 무지막지한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 눈에는 허접스러워 보이는지 우리 와이프는 '카메라는 비싸면서 줄은 왜 그런걸 끼웠어?' 라고 했다.. 



'M4의 첫 컷은 널 찍어줄게!' 영광이네유 ㄷ




M4의 파인더를 찍어 보았다. 아주 밝고 깨끗한 상태다.




이번엔 내 M3의 파인더. 일반적인 0.72배율과 다른 0.91배율로 50미리에 특화되어 있다.




M4와 M3. 이 M4는 셀프타이머 레버, 화각 변환 레버, 필름 장전 레버가 M3 스타일로 교체되어 있어 오리지날 M4의 외모와는 조금 달라졌지만 예쁘긴 더 예쁘다. 물론 오리지널리티를 중시한다면 다소 아쉬울 수도 있다.




손에 쥐고 M4를 찍어본다. 




흑백으로 바꿔서. 라이카 브로셔에 나온 그 느낌이 나게 하고 싶었으나 그냥 그렇네.


만져보니 역시 기계식 M형의 최종 진화형이라 불릴만큼 우수한 카메라임에 틀림없다. 편리한 퀵로딩 스풀과 꺾여진 리와인딩 레버는 M4를 시작으로 현행의 M바디까지 이어지고 있는 부분이며 노출계도 없는 완전 기계식의 설계와 황동 부품들이 만들어주는 조작감도 훌륭하다. 최고의 M바디는 M3라하지만 35미리가 주력이라면 M2보단 M4를 선택하고 싶어진다. 이 정도 바디가 손에 들어온 것은 인연!


2016.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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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떠보니 7시가 거의 다 되었다. 늦었다!


이번 주말에는 오랜만에 포항의 동남쪽 장기면에 위치한 장기읍성에 가보기로 맘을 먹었었다. 그리고 이왕 가는거 늦어도 6시에는 집을 나서 성 위에서 동해의 일출을 보고 싶었는데 이미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어차피 일출 촬영은 물 건너 갔음에도 괜시리 마음이 급하다. 씻지도 않고 카메라를 부랴부랴 챙겨 차에 올랐다. 동녘은 점점 밝아오고 있었다.




약 30분을 달려 장기읍성 바로 아래 주차장에 도착했다. 뒤편 언덕 위에 보이는 것이 장기읍성의 성곽이다. 이 곳은 오늘로 세번째 찾는 곳이지만 제대로 답사기를 써보고자 마음 먹고 찾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전신주에 있는 장기면의 캐릭터가 눈길을 끈다. 이 곳 특산품인 산딸기와 더불어 오늘 둘러볼 장기읍성을 모델로 하고 있다.




옛 지도에 나타난 장기읍성의 모습. 성안에는 객사를 비롯한 동헌 건물이 있었으며 보통의 4개와 달리 하나가 적은 총 3개의 문이 있었다. (지도에는 2개만 그려져있음) 남문이 가장 크고 중요한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지형의 특성상 동문이 가장 중요했으며 지금도 동문을 통해 성으로 들어갈 수 있다. 지금은 성내에 옮겨져 있는 장기향교가 과거에는 성밖에 있었음도 알 수 있다. 




동문을 통해서 성안으로 들어간다. 최근 몇년간 장기읍성 성곽의 복원 정비가 많이 진행 되었음에도 동문은 여전히 허물어진 옛 모습 그대로였다. 오히려 정감이 간다.




동문에서 부터 서쪽으로 이어진 성벽을 따라 성을 한바퀴 돌기로 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의 문헌에 따르면 성곽의 둘레는 2,980척(약 1,392m)이었다고 하니 그리 큰 규모는 아니다. 고려 현종 2년(1101년)에 북쪽의 여진족과 동쪽의 왜구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흙으로 처음 쌓았고 이후 세종 21년(1439년) 석성으로 개축하였으며 사적 386호로 지정되어 있다. 사진에 보이는 성벽을 비롯한 대부분의 구간은 최근에 복원 정비된 것이다.




동해 위로 해가 떠오르고 있다. 




장기읍성은 여전히 복원 및 보수공사가 진행 중이다.




고구려 성곽에서도 볼 수 있는 우리나라 성의 특징 중 하나인 '치'. 치는 성벽을 오르려는 적을 측면에서 공격하기 위한 방어 시설로서 치와 치의 간격은 활의 사정거리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요동성을 공격하던 당나라군이 아무것도 모르고 성벽을 기어오르다 양쪽의 치에서 쏟아지는 화살에 무참히 당하면서 크게 놀랐음이 '구당서' 등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처럼 고구려 군에게 약오르게 당한 이후 '치(雉)에서 활을 쏘았음(射)'이 오늘날 '치사하다'는 말의 어원이 되었다고 한다. (읭?) 어디가서 얘기하고 창피당해도 저를 탓하지 마시길.




파란 하늘과 붉은 깃발의 보색대비. 나무 위에 앉은 까치 암수 한쌍이 정겨웠다.




저 아래 장기면의 들판과 멀리 동해 바다가 보인다. 




동남쪽 성벽 아래 양지 바른 텃밭이 꽤 좋아 보인다. 아침 일찍부터 주민 한 분이 밭일을 시작하고 계셨다. 오늘은 서리도 내리지 않고 제법 따스한 아침이다.




12월임에도 아직 지지 않은 구절초를 만났다. 흐릿하게 뒤에 보이는 것은 남문의 옹성이다.




이와 같이 반월 형태로 둘러진 옹성은 성문을 파괴하려는 공성화기로부터 문을 보호하고 문앞에 돌입한 적을 포위 협살하기 위한 방어 시설이다. 동대문에서 볼 수 있는 그것과 같다. 남문의 옹성은 최근에 복원한 티가 많이 나는 다른 구간에 비해 비교적 원형의 모습이 잘 남아있는 곳이다.




옹성 내부에는 좌우로 길을 막아선 대전차 방호벽 같은 구조물이 있는데 짧은 지식으론 저것이 어떤 용도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옹성의 바깥쪽에서 바라본 모습




옹성 내부에서 바깥 쪽을 바라본 모습




남문을 지나니 성벽이 끊어져 마을안을 통해 돌아서 다시 성벽 쪽에 이르렀다. 아직 손을 대지 않은 옛 성벽(왼쪽)과 복원된 성벽(오른쪽)의 차이가 극명히 보인다.




아직 정비되지 않은 옛 성곽의 모습이 궁금해 뒷편 비탈진 경사로 내려가 보았다.



 

복원 정비 하기 전에 장기읍성은 대체로 이런 모습이었으리라. 무너져내린 성곽의 흔적이 안타깝다. 한양도성이나 수원화성처럼 국가적으로 구축된 견고한 성곽이 아닌 장기읍성과 같은 이런 지방 읍성의 경우 양질의 석재와 치밀한 건축기법이 동원되었을 가능성이 낮아 장기간 방치되었을 경우 이처럼 쉽게 무너지고 훼손되었을 것이다.




최근에 복원된 북문이 말끔하다. 이 곳은 실제 정서쪽 방향이지만 북문이라고 불리고 있다. (조선시대 지도에도 북문으로 표기되어 있다) 실제 방위와는 상관없이 성의 정문으로 쓰이는 곳을 남문이라 칭하고 그 반대편을 북문이라 하여서 그런 것인가 싶다가도 동쪽으로 향한 정문은 또 그대로 동문이라고 부르고 있으니 알다가도 모르겠다.




북문의 옹성에 문루의 그림자가 드리워져있다. 




북문 안쪽은 주민들의 주차장으로 쓰일만큼 제법 너른 공터가 있었다. 장기읍성의 모든 문은 개거식 구조로 별도의 지붕이 없이 문으로서 트여진 성벽 위에 문루가 바로 올라간 단순하고 소박한 형태다. 변방의 작은 읍성이다 보니 건축기법상 전문성이 필요하고 비용이 더 올라갈 홍예문은 생략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북문을 지나 다시 복원된 성벽이 이어진다. 이 사진에서 잘 드러나듯이 장기읍성은 산위에 지어진 읍성으로서 그 사례가 매우 드문 편에 속한다. 순천 낙안읍성과 서산 해미읍성을 제외하고는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읍성 유적은 거의 없는데 대부분의 읍성들이 평지에 있었던 것에 반해 산 위에 위치한 장기읍성은 왜구의 접근을 관측하고 유사시 수성전(守城戰)에도 유리한 지형적 잇점을 가지고 있었다.




동서로 긴 마름모 형태의 장기읍성 북쪽 성곽은 골짜기를 가운데 두고 경사가 제법 급하다.




갑자기 성곽이 끊어지고 험한 내리막길을 만나 당황스러웠다. 복원을 하려면 다 하지 이게 뭐냐는 생각이 들었지만..




성곽이 끊어진데는 이유가 있었다. 작은 개울이 있었던 것. 장기읍성에 하나 있었다는 수구(水口)가 이 곳이었을 듯 싶다. 이런 작은 개울에는 요즘 보기드문 가재가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겨울이 아니었다면 돌 몇개를 들춰봤을 수도 있었겠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다.



 

길도 없는 수구를 지나서 다시 이어진 성곽으로 기어 올랐다.







처음 들어왔던 동문까지 거의 다 내려왔다. 




정비되지 않은채 무너져있는 그대로인 동문터. 겉에서 보이지도 않는 북문은 번듯하게 복원해놓고 장기읍성을 찾으면 제일 먼저 들어서게 되는 동문을 이렇게 방치해둔 것이 처음에는 좀 의아했지만 생각해보니 여전히 주민들이 드나드는 통로인 이곳을 복원 한답시고 공사기간 내내 통행에 불편을 겪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나 싶었다. 그리고 제대로 복원하려면 옹성을 둘러야할텐데 그렇게 했을 땐 차량 통행이 너무 어려울테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겠다. 어쨌든 비록 허물어지긴 했어도 장기읍성의 동문은 여전히 주민들이 드나들고 있으니 현재까지 '문'으로서 기능을 하고 있는 것으로는 우리나라 유일의 성문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동문 옆에 있는 '배일대(拜日臺)'. 완벽한 역광이라 새겨진 글씨가 잘 보이지 않음이 아쉽다. 동해를 내려다 보는 이 곳은 과거부터 해맞이를 하던 장소로 정월 초하루에 제사를 지내는 곳이기도 했다. 




그리고 성안에 있는 장기향교. 글 서두에 첨부해둔 지도에서 보듯 원래는 성 아래에 있던 것인데 지금은 성안에 있다. 반대로 장기현 동헌 건물은 성안에 있던 것이 1922년 성 아래로 옮겨졌다. 




장기향교의 문은 찾을 때 마다 잠겨 있어서 한번도 내부로 들어가보지 못했다.




장기읍성 내부에는 향교 뿐 아니라 여전히 민가가 여럿 남아 성읍마을을 이루고 있다. 물론 여느 시골 마을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빈집도 많지만 관광지로서만 존재하는 다른 읍성들과 달리 살아있는 공간으로 남아있음이 인상적이다.


















유럽으로 여행간 많은 사람들이 그곳의 고색창연한 중세 고성(古城)을 보고나서 그 멋스러움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비단 건축 양식 자체가 다른 유럽의 성들이 아니라도 같은 동양권인 일본의 성들, 오사카성이나 구마모토성의 경우만 봐도 넓고 깊은 해자와 높은 축대, 화려한 지붕과 아름다운 조경에 경탄을 금치 못한다. (이는 조선통신사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우리나라의 성곽들, 그나마 멋지게 지은 수원화성도 아닌 장기읍성과 같은 변방 바닷가의 작은 성을 보고나면 이건 차라리 중국 지방 귀족이 살던 저택 담장만도 못한게 아닌가 하는 자괴감마저 드는 것도 어느정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다. 우리의 읍성과 산성들은 귀족과 영주들이 자신의 위세를 뽐내기 위해 지은 화려한 저택이 아니었고 황제 못지 않게 호화롭고 사치로운 생활을 즐기던 그들만의 작은 궁궐도 아니었다. 궁핍한 재정과 부족한 노동력으로 높고 화려한 성벽을 쌓을 수는 없었지만 야트마한 야산일지라도 험한 산세에 의지하면 낮은 담으로도 적이 쉽게 넘지 못할 요새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땅을 유린하기 위해 적이 몰려오면 고을의 백성들이 모두 성안에 들어와 하나가 되어 싸웠다. 적을 피해 성안으로 도망 했지만 더이상 도망갈 곳은 없었다. 싸우지 않으면 죽을 수 밖에 없었다. 작은 읍성은 그래서 슬프고 또 절실한 공간이다.


중국 대륙을 차지했던 청나라의 여진족은 청 멸망 후 100여년만에 만주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사실상 멸족하고 말았다. 한 때는 내로라했던 거란족, 흉노족 등의 북방 유목민족들도 마찬가지였으며 당의 변방을 위협할 정도로 강성했던 티벳은 중국의 일부로 복속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거대한 중화의 소용돌이 바로 옆에서 수천년 살아오면서도 우리의 말과 글을 지키고 살아 남았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역사 이래 끊임없이 반복된 이민족의 침략에 맞서 이런 볼품없고 작은 성에 의지하여 치열하게 싸워야 했던 것이다. 우리가 장기읍성과 같은 작은 성의 가치를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만으로 매길 수는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16.12.03. 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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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20.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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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쓰고 있던 Nexus 5가 사망하시면서 결국 아이폰으로 넘어왔다. Nexus 5x의 뻘짓을 보고는 이제 구글 레퍼런스는 버리기로. 노트7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그리로 갔을 가능성도 높았지만 폭망해버렸고 그렇다고 갤럭시나 다른 안드로이드 폰들은 통신사 어플이 덕지덕지.. 아 너무 싫었다. 결국은 깔끔하게 아이폰으로 전향했다. 




제일 핫하다는 128GB에 제트블랙인데 매장에 가니 마침 있어서 그냥 삼. 뭐 굳이 제트블랙에 환장하진 않았고 무난하게 매트블랙이나 살까 했는데 있다길래 이왕이면? 하는 심리로 샀음. 두번다시 보지 못할 깨끗한 뒷면. 이쁘긴 하다만..




어차피 의미없음.. ㄷㄷ 생폰으로 쓸 용기는 없기에 애플 정품 실리콘 케이스를 씌우고 나니 결국 매트 블랙이 됨 ㅋㅋ 케이스를 계속 씌우고 다녔는데도 뒷면엔 이미 살짝 기스 한 줄이 난 걸로 보아 약하긴 참 약한 듯. 2년 이상 잘 버텨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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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집 맛집인가 보네요? 오리지날이네."

칼국수 한 젓가락을 후루룩 입 안에 넣은 그가 뱉은 한 마디에 조금은 긴장했던 마음이 풀린다. 제법 따스해지던 4월의 마지막 토요일이었다. 회사에 가봐야 한다고 둘러대고 집을 나와 회사 근처에선 그런대로 맛이 괜찮은 칼국수 집에서 마주 앉았다. 그와는 오늘이 첫 만남이다. 

길게는 10년 이상 우리는 서로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모르는 사이였고 부러 만남을 가질 기회도 없었고 시간도 만만치 않았다. 그렇지만 만남은 아주 작은 것에서 이루어지는 법. Nikon F3용 웨이스트레벨 파인더인 DW-3를 구하신다는 P형의 글을 보고 내가 가지고 있는 DW-3를 빌려(?)드리기로 했던 것이었다. (가격 태그까지 있는 신동품이었다!) 우리 환자들에겐, 아니 남자들에겐 서로 만나보고 싶었다는 말은 차마 쑥스러운 것이다. 이럴 때 장비질은 참 좋은 핑계 거리가 된다. 




DW-3를 꽂은 Nikon F3를 들고 있는 P형


웨이스트레벨 파인더 따위야 그런 핑계에 불과했다는 듯 사진 이야기, 카메라 이야기, 오디오 이야기 등등 두서없는 잡설을 나누다 보니 국수 그릇은 어느새 바닥을 드러냈다. 초면의 남자 둘이서 칼국수 한 그릇 달랑 먹은 것 치고는 제법 시간이 걸렸다. 일행이 하나만 더 있었다면 파전이라도 한 접시 같이 대접했을 것인데 고작 둘 뿐이라 그러지 못한 마음이 불편했지만 이 정도가 딱 좋다. 배가 너무 부르면 사진 찍을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오늘 그와 같이 둘러볼 곳은 경주에 남아있는 일제시대의 흔적으로 정했다. 경주라면 그도 수없이 다녀왔을 터, 황룡사지나 분황사, 남산 곳곳의 불상과 탑들을 굳이 다시 돌아다닐 필요는 없겠다 싶었다. (물론 언제 가도 좋은 곳들이다.) '경주는 신라'라는 뻔한 공식에 대입하여 다니기 보다 그와는 좀 '학구적'으로 색다른 곳으로 다녀보기로 했다. 




첫번째로 들른 곳. 경주경찰서 맞은 편에 있는 '화랑수련원'이다. 한눈에 보기에도 근대 건축물의 느낌이 물씬나는 이 곳은 일제 시대 당시에는 '야마구치 병원'이었던 건물이다. 일제 시대 당시의 모습이 거의 원형 그대로 남아있다는 점에서도 한번쯤 찾아볼만한 곳이긴 하지만 이 병원과 간접적으로 연관된 이야기가 곁들여져야 더 의미있는 발걸음이 된다.



 

'신라의 미소'로 유명한 이른바 '얼굴무늬 수막새'


1932년 경주 영묘사터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는 이 수막새는 경주의 골동품상 구리하라에게 넘어갔고 이를 경주에서 공익의사로 근무하던 '다나카 다카노부'가 구입하게 된다. 그리고 2년 후 경주고적보존회에서 일하던 오사카 긴타로가 이를 조선총독부 기관지 [조선] 1932년 06월호에 아래와 같이 소개하게 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여자의 웃는 얼굴을 조각한 회백색 기와…신라 와당 중에서도 아직 볼 수 없는 희귀하고 섬세한 문양이 특히 이색적" 

그 후 1940년 다나카씨가 일본으로 돌아가면서 수막새도 일본으로 가져가 우리는 다시는 이 수막새를 볼 수 없게 되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수막새를 기억하고 있던 박일훈 경주박물관장은 반드시 이를 되찾고 싶어했고 수막새를 처음 소개했던 오사카 긴타로에 연락하여 수막새의 행방을 수소문하여 여전히 다나카씨가 소유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돌려받기 위해 박일훈 관장은 서신으로 연락하며 간곡히 부탁을 했고 오사카 긴타로 역시 다나카씨를 설득하여 결국 1972년 다나카씨가 방한하여 기증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 다나카씨가 근무하던 곳이 바로 위 사진의 야마구치 병원이었다.

일견 훈훈한 일화이기도 하나 곱씹어 볼 수록 씁쓸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일제시대 동안 한국의 골동품 수집에 혈안이 된 일본인들 때문에 전국의 고분들은 철저하게 도굴되었으며 이 때부터 골동품은 돈되는 물건으로 인식이 되어 해방 후에도 이 같은 도굴은 끊이지 않게 된다. 이 기간동안 우리가 잃어버린 고대사의 조각이 얼마나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이렇게 돌아온 수막새보다 돌아오지 못한 경우가 훨씬 많을 것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씁쓸한 마음을 안고 다시 발걸음을 옮겨 일본식 사찰 '구) 서경사'에 왔다. 교토도 아닌 경주 한복판에 이런 건물이 남아있다니 무척 신기하다. 전국 각지에 있던 신사는 당연하고 일본 불교 사찰건물들도 대부분 사라져 현재까지 남아있는 경우가 매우 드물어 귀한 구경에 속한다. 여담으로 현재 남아있는 일본식 사찰으로는 군산의 동국사가 가장 유명한데 동국사 역시 김영삼 정권 시절 조선총독부 폭파쇼처럼 사라질 뻔 했으나 결국 보전하기로 하여 거의 원형 그대로 지금에 이르고 있다. 




세번째 들른 곳은 경주문화원. 조선총독부 경주 분관으로도 쓰였고 현재의 국립 경주박물관이 개관되기전까지 박물관으로도 쓰였던 곳이다. 에밀레종이라 불리는 성덕대왕 신종이 새로 건축된 국립 경주박물관으로 옮겨지기 전까지 걸렸있던 종각 도 위치하고 있다. 




논어의 '온고이지신(溫古而知新)'에서 따온 '온고각'이란 건물의 현판이다. 이 곳에 온 이유는 바로 이것을 보기 위함이었다. 이 현판의 글씨를 쓴 자가 바로 초대 조선 총독 데라우치 마사다케다. 그가 1915년에 경주에 방문했을 때 기념으로 쓴 것이라고 한다. 군인 출신인 초대 총독으로 가혹적인 탄압 정치를 펼쳐 악명이 높은 그이지만 그럴수록 그가 휘갈긴 글씨를 한번 보고는 싶었다. 의도적인지 모르겠으나 현판은 번듯하게 벽에 걸어주지 않고 바닥에 내려서 대충 기대어 두었는데 보존은 하되 적당히 하대해 주고 있는 듯해 보여 기분이 흡족했다. 그래도 현판에 대한 설명문과 함께 보이지 않는 뒷면의 사진을 벽에 걸려두어 관람객에 대한 배려는 충분히 해주고 있었다. 




경주의 옛 사진들을 설명해주고 계신 해설사분. 카메라를 든 수상한 두 사내의 관등성명을 무척 확인하고 싶으셨는지 '어디서 왔느냐, 뭐하는 분들이냐' 계속 물어보셨지만 뭐라고 딱히 답할 말이 없어 그저 '재미로 사진찍고 공부하고 구경다니고 그럽니다' 라고 대답했다.

 



여기는 일제 당시의 흔적은 아니지만 일본과 관련이 전혀 없지는 않은 집경전 터다. 집경전이라 함은 조선왕조 태조 이성계의 어진(초상화)을 모시던 곳으로 조선 왕조 내내 가장 신성한 곳 중의 하나였다. 경주로 출장을 온 조정의 관료들은 아침마다 이 곳에 들러 배례를 하기도 했다고 하는데 임진왜란 때 홀랑 타버린 후 일제시대에는 그 터 마저 밀리고 어진을 걸어두던 석조 건축물만이 달랑 남아 이처럼 주택가 구석에 쳐박히게 되었다. 




저 안에 어진을 걸어두었던 것. 화재 예방의 목적으로 저렇게 돌을 쌓아 만든 것이라고는 하는데 국내에 저런 형태의 석조 건축물이 있는지 모르겠다. 아주 원시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단순한 형태의 구조물이라 무척 특이하여 어떤 의미가 담긴 형태인지 궁금하나 짧은 지식으로는 알 길이 없었다. 

여담으로 조선 왕조 역대 임금의 어진은 태조부터 모두 다 근래까지 잘 보관되고 있었으나 한국전쟁 대부분을 잃고 말았다. 종묘에 보관 중이던 어진들은 서울이 함락되면서 부산으로 피난가게 되는데 서울이 수복되고 나자 다시 서울로 옮기기로 결정이 되었다. 그런데 서울로 가기 바로 직전 어느날 밤, 창고에 화재가 발생했고 몇 점을 제외하고 모두 홀랑 불타버렸던 것이다. 화마속에서 겨우 건져낸 것은 영조와 철종 등 극소수에 불과했다. 정말 기가막힌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진은 일제시대에도 감히 무엄하게 사진으로도 찍어두질 못해서 이 화재로 우리는 영영 세종대왕의 얼굴을 확인할 수 없게 되었다. 어진이 남았다면 오늘 날 우리 만원짜리에는 인자한 모습의 세종대왕이 아니라 쳐진 눈에 디룩디룩 살찐 세종대왕의 리얼한 얼굴이 그려져 있을 수도.. 안타깝기 짝이 없는 어진의 소실이지만 그것 또한 하늘이 정한 바, 조선의 운명이고 업보였는지도 모르겠다.




만으로 35년이 조금 안되는 기간 동안 이 땅을 지배했던 일제의 흔적은 이제는 막상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도처에 세워졌던 그들의 신사는 패망 후 그들이 먼저 불살랐고, 우리 역시 그런 것들은 당연히 깨어 부수었다. 거기에 뒤이어 발생한 한국전쟁은 일제 당시의 흔적을 갈아엎어 버리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고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개발로 또 사라져 갔던 것이다. 무언가 귀해지려면 희소해야 한다. 일제의 흔적을 귀한 것이라 부를 수는 없겠으나 찾아보기 어려워진 오늘날에는 남아있는 당시의 흔적을 찾아봄도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 완전히 사라진 것 같지만 일제의 흔적은 생각보다 많은 곳에 남아있으며 이는 그런 면에서 우리의 언어, 생활, 문화 곳곳에 영향을 주고 있는 일제의 잔재와도 비슷하다. 주의깊게 살펴보지 않으면 그런 것들은 눈에 띄지 않고 자각하기 어렵다. 





곧 5월이라 날씨가 제법 더웠다. 오늘의 답사는 마치기로 하고 근처의 까페에 들어섰다. 주말이지만 손님은 우리 둘 뿐이다. 테이블에 카메라를 올려두고 보니 오늘의 만남이 원래는 F3용 웨이스트 레벨 파인더 때문이었음이 다시 한번 상기된다. 노안이라 힘드시다 하셨지만 심도 깊은 20미리를 꽂아 잘 써주시길...


유명한 명승 고적이 아닌 이처럼 볼품없고 소소한 유적을 찾아다닐 때 말동무가 될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일이다. P형과 함께 '니 맛도 내 맛도 아닌' 싸구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2016.04.30. 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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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도시장 ::

Snaps/2016 2016.10.25 14:51


2016.06.06. 포항

Ricoh G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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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바 '예술'이라는 불리는 것들 중에서 사진 만큼 진입 장벽이 낮은 분야가 또 있을까.



사진이 처음 발명되었을 때는 촬영을 위한 거대한 카메라와 현상, 인화의 까다로움으로 소수 전문가들만이 다룰 수 있는 특수한 기술이었지만 코닥 필름의 출시와 라이카를 비롯한 소형 카메라의 대중화는 보다 편리하고 신속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지난 50년간의 변화를 뒤엎어버릴 정도로 강력했던 디지털 카메라의 쓰나미가 밀려오면서 사진의 대중화는 더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일상 그 자체가 되었다. 핸드폰 카메라의 성능은 놀라울 정도로 발전했고 사진을 기반으로 한 인스타그램 같은 SNS에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을 올리고 공유하며 즐거워한다. 



이런 디지털 시대의 사진 생활에서 또 하나의 변화가 있다면 이제는 누구나 내가 찍은 사진을 쉽게 편집하고 보정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아닐까. 과거에는 사진을 찍고 나면 필름을 빼서 동네 사진관에 가져다주고 '사람수 대로 뽑아주세요.'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같은 필름도 사진관에 따라 사진의 색감과 노출이 다르게 뽑혀 나오기도 했지만 거기에 대해 불만이나 의문을 제기하는 일반인은 거의 없었다.



보다 전문적으로 사진을 하는 사람들도 자신의 사진을 다루기 위해서는 암실에서의 현상/인화 테크닉을 어렵게 배워야했고 숙달되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했다. 포토샵, 라이트룸 같은 전문 보정프로그램이 등장한 후에도 비싼 가격을 주고 구입해야했으며 능숙하게 다루는 일은 암실 테크닉 못지 않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Snapseed나 VSCO같은 어플리케이션을 핸드폰에 설치하기만 해도 아주 간단하게 자신의 사진을 보정할 수 있고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기 전 필터 효과 몇개만 이리저리 적용해보아도 훨씬 분위기 있고 멋진 사진으로 재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과거에 어렵게 익힌 테크닉들이 터치 한번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허무하기까지 할 지경이다. 



가끔 RAW 포맷으로 찍은 사진을 라이트룸에서 보정하지 않고 카메라에 내장된 현상프로그램을 통해 JPG로 변환하기도 한다. 주로 굳이 RAW로 찍을 필요가 없이 간단히 써먹을 사진들이다. 그런데 때론 라이트룸에 옮기기까지 기다리기가 귀찮아서, 빨리 결과물을 모니터로 보고 싶어서 카메라 내장 프로그램으로 현상해보기도 하는데 이게 간혹 놀라운 결과물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이 사진이 그런 경우로 Ricoh GR로 찍은 컷을 간단히 카메라의 포지티브 모드로 설정하여 JPG로 뽑아낸 컷이다. 포지티브 모드는 채도와 콘트라스트를 높여주는 방식으로 세팅이 되어 있는데 보통의 경우 그 효과가 다소 과하여 크게 선호하지는 않았는데 유독 이 컷에는 꽤 어울려 라이트룸에서 다시 손 볼 생각도 않고 그 상태 그대로 모 사진 커뮤니티에 포스팅 했었다. '뭐 나름 볼 만하네.' 그런데 이 사진이 그 날 바로 베스트갤러리에 올라 버렸다. 너무나 쉽게 만들어낸 사진이라 그런지 별 애착도 없던 컷이 뜨거운 반응을 받으니 '응? 이게?' 하며 살짝 당황했던 것도 사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렇다. 사진은 결과 그 자체로 바라봐야 하는 것이 맞거늘 나는 언제나 그 과정과 수단에도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해왔던 것은 아닌가. 아무리 좋은 사진을 봐도 그것이 핸드폰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라면 '에이 저렇게 좋은 컷을 찍을거면 카메라로 찍지.' 라며 혀를 찼고 디지털 카메라로 좋은 사진을 만드는 사람들을 보면 '아 저 사람 필름으로 찍으면 더 좋을텐데.' 라고 생각했다. 최신 DSLR과 AF렌즈를 사용해 찍은 다이내믹하면서 칼 같이 초점이 맞은 사진은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구닥다리 라이카를 이용해 찍은 결정적 순간에는 더 후한 점수를 주며 감탄해 마지 않았고, 같은 프린트물이라도 작가가 FB인화지에 직접 수동 인화했다고 하면 '아 그래요?' 하면서 그제서야 다시 눈을 가까이 들이대고 작품을 살폈다. 



모든 기술은 보다 편리하게 발전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불편함을 칭송하고 편리함을 평가절하 하는 이 못된 심보는 아날로그부터 사진을 해왔다고 자부하는 꼰대스런 자부심인지, 아니면 프로와 달리 작업의 신속성이 중요하지 않고 대량의 이미지를 처리하지 않아도 되는 취미 사진가로서 즐길 수 있는 재미가 불편함 속에 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너무 쉬우면 재미는 없지 않냔 말이지. 



저 방어 사진은 그 사진 커뮤니티가 사라지지 않는 한 베스트 갤러리에 남아 남들에게 보여지며 꾸준히 추천수가 한두개씩 더 늘어나겠지만, 너무 쉽게 얻어낸 사진이라 그런지 개인적으론 크게 의미를 두거나 애착이 가지 않는 작품으로 남아 있다. 아무도 카메라 내장 프로그램으로 보정한 줄 모르고 안다고 한들 사진이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참 희한한 심리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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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3. 회사에서



몇 년은 쓸 줄 알았던 필름이 슬슬 바닥을 보이자 불안하고 초조해졌다.



한참 열심히 찍던 시절에 비하면 많은 것도 아니지만, 한 달에 10롤 정도를 찍어대니 넉넉할 줄 알았던 수십롤의 비축 물자도 얼마 버티질 못했다. 이렇게 많이 찍을 생각은 아니었는데 필름을 다시 쓰기 시작하니 디지털에는 손이 가질 않는다.



지인과 함께 면세 한도를 꽉꽉 채워 주문한 필름은 2주일 하고도 며칠이 더 걸려 뉴욕에서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회사로 날아왔다. 박스 겉면에 무슨 이유인지 받는이의 이름이 빠져 있었는데도 내용물이 적힌 스티커에서 'Kodak Potra 160'이라고 적힌 것을 본 여직원이 알아서 가져다 준다.



통장 잔고가 줄어드는 것과 반비례하여 마음은 넉넉해졌다. 이제 또 몇 개월을 버틸 수 있겠다는 안도와 그보다 더 큰 설레임. 포장도 뜯지 않은 새 필름임에도 벌써부터 저 필름에 남길 추억과 이미지에 들뜨는 가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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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coh GR1s


Contax T3를 시집보내고 나서 결국은 다시 똑딱이를 하나 들였다. 

사실 T3 팔아서 Elmarit-M 28mm ASPH나 하나 사려고 했던건데 물건이 나오지 않는 사이 그 돈은 야금야금 생활비로 들어가버렸고 기약할 수 없는 미래가 되어버렸다. ㅠㅠ 그러던 중 28미리를 탑재한 GR1s가 나왔기에 참지 못하고 덥썩. 28미리도 해결하고 T3를 대신할 휴대용 똑딱이도 확보하고 겸사겸사. 한동안 T3를 대신해 가방에 넣고 다녔던 롤라이35SE는 재미는 있지만 아무래도 목측의 압박 때문에 주광하에서 어느정도 조리개를 조이지 못하면 어려워서..



GR시리즈의 명성이야 필름 시절부터 구축된 것이라 성능에 별 의심은 없었다. 워낙 좋다고 알려진 기종이라..  슬림한 두께 덕분에 호주머니에 넣기도 부담스럽지 않고 직관적인 조작성과 스냅포커스 모드는 역시 이 카메라의 설계 지향점이 스냅이라는 점을 잘 드러내준다. 뷰파인더도 렌즈와 동일축선상에 위치하고 있어 근거리에서의 오차도 상하만 신경쓰면되고, 데이터백과 앙증맞은 꽃무늬 후드도 기본. 



몇가지 단점은 뷰파인더가 그리 밝지 않고 파인더 내부의 프레임 라인과 촬영 정보 표시가 좀 흐릿하다는 점인데 가격대를 생각하면 이부분은 좀 아쉽다. 그리고 AF속도도 빠른 편이 아니고 컨트라스트가 낮거나 밋밋한 벽 따위에는 초점을 잘 못맞추는 경우가 많다는 점인데 출시시기가 아무래도 좀 오래된 기종이다 보니 감안해야할 듯.. 



일단 얼른 필름넣고 찍어봐야 렌즈의 성능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Ricoh GR1s & GR


마찬가지로 가방에 늘 넣어다니던 GR과 함께 찍어보았다. 필름시절부터 자리잡은 GR시리즈의 디자인이 디지털 시대에도 잘 계승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닮은 꼴이다. 아무래도 디지털인 GR이 조금 더 크긴 하다만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 덕에 늘 가지고 다니며 스냅을 찍기엔 최고의 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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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0412 송도 ::

Snaps/2015 2016.09.17 00:37





















































2015.04.12. 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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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 ::

Snaps/2016 2016.08.24 16:43













2016.08.24. 회사 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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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04. 도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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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ND NIKKO TOKYO DAI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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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04. 심바시역


















2016.08.05. 오다이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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