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coh GR1s




필름의 전성기이던 1990년대말~2000년대 초에 걸쳐 여러 카메라 제조사에서는 끝판왕급 P&S 카메라들을 시장에 선보였다. 뛰어난 성능의 단렌즈와 촬영 의도에 부합하는 다양한 수동 설정이 가능하여 프로들의 서브 카메라로 혹은 항시 휴대할 수 있는 메인 카메라로도 부족함이 없었던 이들의 등장은 분명 이전 세대의 컴팩트 카메라들과는 결이 다른 것이었다. 




Ricoh에서 내놓은 GR시리즈는 그 중에서도 가장 개성이 강한 카메라였다. 작은 크기와 고성능의 렌즈라는 측면에서 여타 브랜드의 그것과 별반 차이는 없지만 손에 쥐어보면 확연히 다름을 알 수 있다. 물리적인 크기와는 별개로 손에 딱 맞는 그립감과 조작의 편이성은 단순하게 작기만 한 다른 카메라들에서는 느낄 수 없는 GR만의 매력이다. 마그네슘 합금으로 만들어진 몸체는 무광 검정에 까슬한 질감이 살아있어 곱게 모시고 다녀야할 것 같은 Contax T3나 Leica Minilux에 비해 보다 터프하게 다뤄도 될 것 같아 심리적으로 부담이 덜해 좋다.




GR시리즈는 스냅에 특화된 카메라란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작고 가벼워 늘상 가지고 다닐 수 있어 보다 많은 셔터 찬스를 확보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경험상 작다는 것은 가지고 다니기에만 편할 뿐 그것만으로 꼭 스냅에 유리한 것과 직결되는 부분은 아니었다. 빠른 가동 시간과 AF속도도 중요하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필수 요소는 초점과 조리개를 수동으로 간편하게 설정할 수 있느냐는 부분이다. 거리에서 빠른 포착을 위해서는 그 어떤 AF방식보다 피사계심도를 이용한 과초점 방식이 가장 유리하지 않던가 말이다.




이런 측면을 고려할 때 GR1s는 스냅에 가장 적합한 P&S라 할 수 있다. 모드 버튼을 두번 누르면 AF모드는 곧바로 SNAP모드로 진입한다. 2미터 고정이다. 28미리의 깊은 심도를 고려하면 8~11이상으로 조리개를 조이면 사실상 거의 전 영역에 초점이 맞는다. ISO400 필름을 넣고 스냅모드에 조리개 11로 설정한 GR1s를 한 손에 쥐고 어슬렁거리면 더이상 신경쓸 일이 없다. 




스냅모드 뿐 아니라 수동으로 거리를 세팅할 수 있는데 AF모드를 스팟으로 놓고 원하는 위치에 반셔터를 눌러 초점을 고정시킨 후 모드 버튼을 길게 누르면 해당 거리에서 초점이 고정된다. 이때 부터는 셔터 버튼에서 손을 떼어도 초점 설정이 유지된다. 개인적으로 길거리나 골목에서 원하는 위치에서 원하는 장면(자전거가 지나간다거나)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셔터 찬스를 노리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AF-LOCK을 유지하기 위해 반셔터를 계속 누르고 있는 것은 꽤나 성가신 일이 아닐 수 없는데 GR1s의 초점 고정 모드는 이러한 귀찮음을 해소시켜준다. GR시리즈가 스냅에 특화되어 있다는 얘기는 괜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렌즈 성능은 어떨까. GR1s에 탑재된 4군 7매의 28미리 렌즈는 성능이 좋기로 유명했다. 비구면 렌즈까지 넣어준 리코의 성의가 고맙다. 성능의 판단을 해보자면 같은 28미리를 선택한 미놀타 TC-1과의 견주어보거나 RF카메라를 위해 발매된 28미리 교환 렌즈들과도 비교를 해봐야 좋겠지만 왕성한 호기심과는 별개로 그것을 실행에 옮기기엔 나의 귀차니즘이 너무 강했다. 이쯤이면 언제나 면죄부 처럼 하는 말 '그게 뭐 의미가 있나. 사진을 잘 찍어야지!'로 얼렁뚱땅 넘어가 버리곤 하지만 어쨌든 결과물에서 느껴지는 성능은 충분히 만족스럽다. 샤프니스나 콘트라스트, 어디에서도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케케묵은 올드 렌즈만 주로 쓰다보니 이 정도만 나와도 놀라울 지경이다. 리코에서는 명성이 자자한 GR의 렌즈를 라이카 스크류 마운트로 별도로 제작하여 한정 발매했고 여전히 높은 중고가를 자랑하고 있다. 이 정도면 성능에 대한 평가를 갈음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한정발매된 GR28mm f2.8 / 블랙 색상도 출시되었다.

 




세상에 완벽한 것이 없듯 GR1s에도 단점은 분명 존재한다. 


가장 고질적인 문제는 액정 번짐 현상. 촬영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발매 후 20년이 지나면서 점차 멀쩡한 녀석이 드물어지고 있다. 


두번째는 느리고 곧잘 버벅이는 AF. T3나 TC-1과 비교해보면 그 차이가 느껴진다. (스냅 포커스 모드로 극복!) 


세번째는 어둡고 좁고 흐린 뷰파인더. 파인더 내부의 각종 정보 표시의 밝기와 컨트라스트가 낮아 시인성이 높지 않고 뷰파인더 역시 시원스럽지 못하다. 컴팩트함을 얻기 위해 대부분의 P&S들의 파인더 역시 마찬가지긴 하다. 


네번째로는 수동 감도 설정이 불가능하다는 점. Contax T3 역시 마찬가지긴 하지만 감아쓰는 필름을 넣거나 증감 촬영을 하고자 할 때 아쉬움이 큰 부분이다. 이 점은 GR1v가 출시되며 개선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낮은 내구성. 이는 모든 P&S들의 숙명이다. 외장 케이스는 마그네슘이든 티타늄이든 견고한 재질로 만들어져 있지만 내부를 보면 어느 기종을 막론하고 프라스틱 부품들이 빼곡히 차있으며 좁은 케이스 안에 각종 기어와 전선, 기판들을 구겨넣느라 애초에 충격에도 강한 튼튼한 구조는 기대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렌즈가 들고 나는 베리어 부분은 이같은 기종들의 최대 취약점 중 하나로 렌즈가 나와있는 상태에서 충격을 받으면 그 길로 사망 판정을 받을 수도 있어 무척 조심해야할 부분이다.




구입 후 한동안 신나게 잘 사용하던 나의 GR1s도 어느 날 갑작스레 셔터를 눌러도 렌즈셔터가 열리지 않는 고장이 나버렸다. GR1s의 일반적인 고장 현상인 액정 번짐이나 베리어 문제도 아니라 더욱 난감했다. 최악의 경우는 기판이 나갔다며 폐기 판정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 그 길로 GR1s는 제습함에 쳐박혔고 다른 카메라들을 쓰느라 한동안 잊고 지냈다. 물론 GR1s로 찍어둔 얼마 안되는 사진들을 볼 때면 다시 생각나긴 했지만 기계식 카메라들 오버홀하는데도 적잖은 돈이 깨지고 있는 상황이라 GR1s의 수리는 그렇게 차일피일 미뤄졌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난 후, 포항지부에 유일하게 필름을 사용하지 않던 멤버 한 분이 드디어 필름을 사용해보겠노라 결정하셨다. 한번에 라이카로 가기엔 가격도 가격이거니와 필름 생활에 확신이 없으셨던 차에 GR1s같은 고성능 똑딱이는 그야말로 안성맞춤. 더군다나 디지털인 GR2를 사용 중이시니 적응에 더욱 유리할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결국 수리가 되면 구입하고 싶다는 그 분을 핑계 삼아 쳐박혀 있던 GR1s는 충무로 삼성사로 떠났다. 2주 후 돌아온 녀석은 다시 쌩쌩하게 작동되고 있었고 그렇게 새 주인의 품으로 떠났다. 




이제는 Contax T3도 내 품을 떠났고 올림푸스 뮤2는 전투형으로 군대에서 굴린 후 고장나버렸고 Ricoh GR1s 역시 한 차례 고장 후 내 품을 떠났다. 이제 내게 똑딱이는 남아있지 않다. 작은 크기로만 치자면 ROLLEI 35SE 정도만이 남은 셈. 사실 사진 찍는 재미에 푹 빠지게 되면 회사를 가든, 장을 보러 가든, 산책을 가든, 언제든 들고 다닐 수 있는 카메라가 간절해 진다. 크기는 작아도 렌즈의 화질과 카메라의 성능은 메인 카메라 못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욕심은 누구나 들게 마련. 그럴 때 마다 T-3나 TC-1, Minilux 같은 카메라들이 다시금 생각나겠지만 역시 내 촬영 용도에 가장 맞는 녀석은 GR시리즈인 것 같다. 곁에 오래 머물진 못했지만 녀석으로 찍은 사진들을 보니 역시 좋은 카메라였단 생각이 든다. 다시 만날 일은 아마도 없겠지만, 사람 일은 또 모르는 거니.. ㄷㄷ








Ricoh GR1s - Spec



Lens: GR Lens 28mm f/2.8 (7 elements, 4 groups) multi-coating aspherical glass lenses.

Focusing: Passive type multi-autofocus (with focus lock, automatic auxiliary AF light under low lighting, distance measuring range: 0.35m - infinity, Single AF mode, Fixed focus mode.

Shutter Speeds: Programed mode Approx 2 to 1/500 second.

Aperture Priority Mode: Approx. 2 to 1/250 second, 1/500 (at f/16), Time Mode.

Viewfinder: Reverse Galilean type with LCD bright frame, in-finder illumination under low lighting.

Viewfinder Field: Vertically: 81%, Horizontally: 83%

Viewfinder magnification: 0.43

Exposure Compensation: +/- 2EV (1/2EV Steps)

Film Speeds: ISO25 to ISO3200 (DX) ISO 100 for non-DX.

Flash Guide: 7 (ISO 100)

Flash Charge: Approx 5 Seconds

Battery Life: Approx 500 shots (50% flash)























































































































































































































2016.10.08. 포항

Ricoh GR1s / Kodak 400TX / IVED












2016.10.08. 포항

Ricoh GR1s / Kodak 400TX / IVED















2016.10.03. 포항

Ricoh GR1s / Kodak 400TX / IVED



2016.10.03.

동네 편의점에서 밤마실 중이면 자주 마주치는 녀석

Ricoh GR1s / Kodak 400TX / IVED

"오빠 시장에 가서 쇠고기 안심이랑 감자랑 호박이랑 춘장 좀 사와요."



토요일 오후, 와이프가 심부름을 시킨다. 비싼 한우 안심은 내 입에 들어갈 것이 아니다. 딸냄이 태어나기 전 맞벌이 하던 때야 호기롭게 안심 한 근 정도 두툼하게 썰어와서 스테이크도 구워 먹고 했지만 이제 안심은 귀하신 딸냄이 입에만 들어가는 고급 식자재가 되었다. 감자랑 호박과 춘장은 와이프가 잘 하는 몇 안되는 요리 중 하나인 짜장을 만들기 위함이다. 얼마전 있었던 처남의 생일을 식구 모두가 (심지어 처남 본인마저..) 까먹은 것이 미안해 처남이 좋아하는 짜장을 만들어 담아 줘야겠다고 한다. (처남이 얼른 연애를 했음 좋겠다.)



아, 잡설이 길었다. 어쨌든, 이 심부름에서 내게 중요한 것은 어떤걸 사오라는게 아니라 '시장에 가서' 사오라는 부분이다. 집에서 걸어서 5분이면 대기업의 대형 마트도 있지만 몇몇 종목들은(딸냄이 전용 안심이라든지..) 마트보다 시장에 있는 가게에서 사오는 것이 낫더라는 경험치가 쌓였다. 그래서 오늘도 와이프는 내게 '시장에 가서' 그것들을 사오라는 거다. 괜시리 귀찮은 듯한 표정으로 '알았어~' 라고 대답했다. 오빠는 뭐 먹고 싶은게 없냐고 물었지만 와이프가 할 줄 아는 요리가 거기서 거기인지라 특별히 없다고 대답하곤 옷을 챙겨입고 나섰다. (먹고 싶은 건 없고 찍고 싶은 건 많았다 ㄷ)



시장은 걸어서 5분인 대형마트와 달리 차로 5분이면 가는 거리에 있다. 시장에 도착한 나는 심부름 따위는 금세 잊고 지갑 대신 카메라를 꺼냈다. 시장에 심부름을 오는 것이 내게 의미있는 이유다. 이 곳은 슬슬 돌아다니며 스냅을 찍기에 나쁘지 않은 곳이다. 아파트 단지와 인접하여 이제 재래시장의 느낌은 그다지 나질 않지만 여전히 이 곳은 '시장'이라고 불리는 곳이며 시장 뒤로 이어진 골목을 따라 30분 정도 한 바퀴 돌며 10여컷 정도는 셔터를 누를 만한 그런 곳이다. 



내 손엔 새로운 똑딱이 하나가 들려있다. 바로 Ricoh GR1s! 라이카 28미리나 하나 사볼까 해서 Contax T3를 팔아 먹었지만 원하는 매물이 나오지 않았고 그 사이 T3를 팔아 마련한 목돈은 야금야금 생활비로 흔적도 없이 녹아 사라져 버렸다. 생각해보니 억울하기 짝이 없는 짓이었다. 신품으로까서 10년도 넘게 멀쩡히 잘 사용하던 T3의 희생이 너무 의미없지 않은가! 더군다나 늘 휴대할 수 있던 똑딱이의 부재에서 오는 허전함은 생각보다 그 빈자리가 컸다. 자려고 침대에 누웠다가 '마지막으로 장터나 한 번 보고 와야지.' 하다가 마침 괜찮은 가격에 올라온 GR1s를 발견했고 결국 길게 고민하지도 않고 바로 사버렸던 것이다. 써보고 별로면 다시 팔면 되지란 생각으로.. (다 이런 식으로 사놓고 정작 되판 경우는 극히 드물다.)



주중에 택배로 받은 녀석에게 첫 필름을 넣어줬다. 흑백 위주로 사용할 카메라지만 마침 후배가 새로 산 Summaron 3.5cm를 대신 테스트하는 중이라 Leica M6에 흑백이 들어가 있는 상태였고 그래서 GR1s에는 첫 롤을 칼라 네가티브로 넣어주기로 했다. 앞서 얘기했듯 써보고 별로면 다시 팔려 나갈 수도 있는 카메라이기에 녀석은 명성대로 뭔가를 나에게 보여줘야 할 것이다. (내가 잘 찍어야 하는게 아니고??)





노란 원색에 끌려 한 컷을 눌러봤다. 청명한 늦은 오후의 낮은 빛이 꽤나 강한 콘트라스트를 만들어줬다.





이 시간대에 이 곳을 오면 꼭 한번쯤은 카메라를 들이대게 되는 꽃집 비닐하우스와 담벼락. 왼쪽 편에 좀 지워져서 식별이 잘 안되는 'SEX'란 글씨에 매칭될만한 어떤 피사체가 지나가길 늘 기다려보지만 오늘도 아닌 것 같다.





스냅 사진에서 사람이 없는 컷을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이렇게 한적한 골목에서 기다리고 있는 시간이 가장 뻘쭘하다. 누가 나를 보고 있다면 '저 자식은 뭐하는 놈일까?' 라고 생각할 것만 같아 괜히 뒤통수가 따갑다. 애꿎은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며 방금 전에 확인한 페이스북도 또 새로고침하고.. 그러면서 곁눈질로는 양쪽에 누가 오지 않는지 살펴야 한다. 아, 카메라의 초점은 원하는 위치에 고정해 뒀음은 물론이다. 


GR1s의 완소 기능으로 초점 고정 기능을 들고 싶다. 반셔터를 눌러 초점을 잡은 채로 mode 버튼을 길게 누르면 그 거리로 초점이 고정되는데, 카메라를 내린 채 쉬고 있다가도 타이밍이 오면 징징거리며 다시 초점을 잡을 필요없이 즉각 셔터를 누를 수 있다. 구도를 잡아두고 매복을 주로 하는 나에게 정말 유용한 기능이 아닐 수 없다. GR1v의 수동초점 기능이 조금 부러웠는데 이거면 됐다 싶다. 





세로컷으로 왜곡 정도는 어떤지 좀 확인해 볼까 싶었다. 하지만 그냥 찍기는 필름이 아까워 또 누군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다 보니 같은 구도로 쓸데없이 3컷이나 찍었다. 오토바이 한 대, 아저씨 한 분, 그리고 이 자전거. 이게 제일 나았다. 더 기다리긴 싫었다.





해가 점점 뉘엇뉘엇해진다. 아마 장사를 하지 않은지 오래 되었을 간판도 없는 빈 상가들의 이미지 덕에 실제 보다 더 오래되고 더 시골스러운 느낌이 드는 곳이다. 여기서 부턴 초점을 맞추지 않고 스냅 포커스 모드를 써보기로 했다. 앞서 언급한 초점 고정 기능이 원하는 곳에 초점을 맞춘 후 고정시키는 방식이라면 스냅 포커스 모드는 2미터로 고정된 방식이라는 점이 다르다. 28미리의 깊은 심도를 적극 활용하는 것으로 조리개를 조여두면 어지간한 거리는 웬만큼 초점이 맞으니 걸어다니며 찍는 길거리 스냅에서 아주 유용하다. 실제 GR1s의 AF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고 조금 어둡거나 콘트라스트가 낮은 환경에서는 버벅임이 심하기에 더욱 활용성이 높다. 





낡고 오래된 이미지와 달리 시장 너머 형산강 건너편엔 브랜드 있는 고층 아파트들이 쭉쭉 솟아 있다. 누구라도 생각할 수 있는 진부한 시선의 사진이지만 그래도 이 곳에 오면 꼭 한 컷씩은 찍게 되는 것 같다.





가게 한 곳이 다른 매장으로 바뀔 모양인지 내부 공사를 대대적으로 하고 있었다. 당연하겠지만 현대의 렌즈답게 역광에서도 플레어나 콘트라스트의 저하가 거의 없다. 이 렌즈가 호평을 받아 L마운트로 출시되기도 했으니 광학적 성능은 믿고 산 카메라였다.



"어디예요?"


와이프에게서 전화가 왔다. 장은 안보고 테스트를 하느라 시간이 조금 지체되긴 했다. 뜨끔하다. 왜 안오냐고 와이프가 묻지도 않았는데 오늘따라 시장에 감자 팔러 나온 할머니들이 없어서 몇 바퀴 돌면서 찾고 있다고 먼저 얘기하며 버벅인다. 그런데 와이프의 본론은 '빨리와!'가 아니라 '빵 먹고 싶다~ 빵도 좀 사와요.' 였다. 내심 안도하며 얼른 사서 가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이만하면 테스트는 대충 된 것 같다. 해상도와 콘트라스트도 괜찮고 GR 라인업다운 슬림한 디자인과 스냅 특화 기능들이 보여주는 이 카메라의 정체성은 역시 매력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28미리 화각이 아닌가. 다소 부족한 AF성능과 어둡고 흐릿한 뷰파인더가 좀 아쉽지만 완벽한 똑딱이는 결국 없기에 양보하기로 했다. (T3, TC-1, MINILUX 등등 이것들이 짜기라도 한 마냥 크고 작은 문제들이 꼭 한두개씩 있으니...)


이제 시장으로 심부름을 올 때면 카메라를 챙겨 나오는 날이 더 잦아질 것 같다. 그리고 와이프가 시킨 주문 중 그 날따라 꼭 못찾는 물건이 있어 난 30분 정도 더 늦을테고 말이다.



2016.09.24. 포항 효자시장




앙증맞은 후드까지 있는 Ricoh GR1s





Ricoh GR1s


Contax T3를 시집보내고 나서 결국은 다시 똑딱이를 하나 들였다. 

사실 T3 팔아서 Elmarit-M 28mm ASPH나 하나 사려고 했던건데 물건이 나오지 않는 사이 그 돈은 야금야금 생활비로 들어가버렸고 기약할 수 없는 미래가 되어버렸다. ㅠㅠ 그러던 중 28미리를 탑재한 GR1s가 나왔기에 참지 못하고 덥썩. 28미리도 해결하고 T3를 대신할 휴대용 똑딱이도 확보하고 겸사겸사. 한동안 T3를 대신해 가방에 넣고 다녔던 롤라이35SE는 재미는 있지만 아무래도 목측의 압박 때문에 주광하에서 어느정도 조리개를 조이지 못하면 어려워서..



GR시리즈의 명성이야 필름 시절부터 구축된 것이라 성능에 별 의심은 없었다. 워낙 좋다고 알려진 기종이라..  슬림한 두께 덕분에 호주머니에 넣기도 부담스럽지 않고 직관적인 조작성과 스냅포커스 모드는 역시 이 카메라의 설계 지향점이 스냅이라는 점을 잘 드러내준다. 뷰파인더도 렌즈와 동일축선상에 위치하고 있어 근거리에서의 오차도 상하만 신경쓰면되고, 데이터백과 앙증맞은 꽃무늬 후드도 기본. 



몇가지 단점은 뷰파인더가 그리 밝지 않고 파인더 내부의 프레임 라인과 촬영 정보 표시가 좀 흐릿하다는 점인데 가격대를 생각하면 이부분은 좀 아쉽다. 그리고 AF속도도 빠른 편이 아니고 컨트라스트가 낮거나 밋밋한 벽 따위에는 초점을 잘 못맞추는 경우가 많다는 점인데 출시시기가 아무래도 좀 오래된 기종이다 보니 감안해야할 듯.. 



일단 얼른 필름넣고 찍어봐야 렌즈의 성능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Ricoh GR1s & GR


마찬가지로 가방에 늘 넣어다니던 GR과 함께 찍어보았다. 필름시절부터 자리잡은 GR시리즈의 디자인이 디지털 시대에도 잘 계승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닮은 꼴이다. 아무래도 디지털인 GR이 조금 더 크긴 하다만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 덕에 늘 가지고 다니며 스냅을 찍기엔 최고의 조합.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