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라이츠사는 4군 6매 더블가우스 구조의 주마론 28미리를 출시했다. 

1935년에 출시된 28미리 Hektor로 20년이나 울궈먹은 끝에 드디어 새로운 28미리가 등장한 것이었다. 주마론은 싱글코팅이 적용되면서 해상도와 콘트라스트가 향상되었으며, 왜곡과 비네팅 억제 측면에서도 헥토르보다 개선되어 당시로서는 최고의 28미리 렌즈라 불릴만 했다. 컴팩트한 사이즈는 바르낙 라이카에 안성맞춤이었고 조리개 조절 방식도 보다 현대적인 형태로 변경되어 사용상의 편의성도 좋아졌다. 단, 여전히 최대 개방값은 어두웠는데 헥토르의 f6.3에서 겨우 반스탑 정도 밝아진 f5.6에 머물렀다는 점은 분명 아쉬운 부분이었다. 







주마론이 등장하기 전까지 28미리를 담당한 Hektor. 조리개 조절이 Elmar처럼 불편한 방식이었고 무코팅이었다. 




주마론의 어두운 개방값은 당시로선 보다 밝은 광각 렌즈를 만들어내기 위해 극복해야할 수차가 너무 많았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밖에 볼 수 없지만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캐논 Serenar 28mm f3.5라든지 28mm f2.8 같은 녀석을 보고 있자면 한숨이 절로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심지어 소련에서조차 이미 1937년에 FED 28mm f4.5가 나왔는데 말이다.







Fed 28mm f4.5 (라이츠는 뭘 한거란 말이냐)






아마 주마론이 이렇게 배짱 튕기며 등장할 수 있었던데는 경쟁상대 칼 자이즈의 방만함도 한몫 했을 것이다. Sonnar라는 걸출한 대구경 50미리 라인업으로 라이카가 나름 밝게 만들어보고자 애쓴 Summar, Summitar, Summarit 따위를 뭉개버리며 광학 기술만은 앞선다고 자타가 공인하던 칼 자이즈도 유독 28미리는 찬밥이었다. 그들 역시 라이츠 못지 않게 별다른 개선 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Tessar 28mm f8.0을 20년 이상 울궈먹고 있던 중이었으니 말이다. 







Carl Zeiss Jena 28mm f8.0 (제 짝인 콘탁스에서도 거리계 연동이 안되는 목측식이다. 어차피 8.0이니..)






사실 예전 같으면 최대 개방값이 f5.6에 불과한 주마론 따위의 렌즈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을테다. 하지만, 자꾸 보다보니 정이 들었는지 모양 만큼은 정말 예쁘다고 인정할 수 밖에 없었고 언젠가 한번쯤은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한번 사볼까?' 하고 가볍게 들이기에는 스크류 마운트 렌즈들 중에서도 유독 비싼 가격을 자랑하는데다 생산량이 그리 많지 않아 매물도 귀했다. 아, 물론 훌륭한 대안은 있었다.







라이카에서 M마운트로 복각하여 출시한 주마론 28mm






작년에 뜬금없이 주마론 복각 모델이 출시되었다. 마운트 형식이 M마운트로 바뀌었지만 광학적 구조는 거의 오리지날 그대로 복각된 이 렌즈는 한동안 각종 커뮤니티를 뜨겁게 도배했다. 아이폰 광고가 떠오를 정도로 깔끔하고 아름다운 생산 과정 이미지들로 구성된 브로셔를 보고 있노라면 당장이라도 품고 싶은 욕심이 들기 마련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제 정신으로 300만원에 가까운 돈을 지불하고 살 수는 없었다. 






그러던 중 우연찮게 기회는 찾아왔다. 나의 뜬구름 잡는 리뷰에 현혹되신 어느 팬(?) 분과 자주 연락을 주고 받게 되었고  서로가 가지고 있는 장비 호구 조사를 하다 그 분이 주마론 28미리를 갖고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너무 어두운 개방값 탓에 잘 손이 가지 않아 제습함에 들어간 후 나올 줄은 모른다고 하셨고 그럴거면 제가 한번 써보겠노라며 빌리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렌즈를 처음 받고 난 후. 헬리코이드에서 흘러나온 윤활유가 묻은 자국도 많았고 틈새의 찌든 때도 그대로 있는 등 전체적으로 약간 지저분한 상태였다. 평소 장비를 아껴쓰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이런 건 또 그냥 못지나가는 성격이라 구석구석 정성스레 닦아 주었다. 전체적인 외관 상태는 꽤 훌륭했고 전면 코팅의 상태도 양호했다. LED조명을 비춰서 내부를 보니 약간의 헤이즈가 보였지만 헤이즈가 없이 온전히 보존된 개체가 무척 드물다고 하니 어쩔 수 없으리라 생각됐다.






내 것이 아니어도 새로운 렌즈를 사용해보는 일은 무척 즐거운 일이다. 특히 성능의 가늠이 쉽지 않은 올드 렌즈의 경우는 더더욱 흥미롭다. 주마론을 빌려주신 지인께선 이미 주마론에 대한 흥미는 상실하셨고 당시 나의 뜬구름 리뷰에 끌려 다른 광각 렌즈를 구입하시는 바람에 주마론은 처분하기로 맘을 먹으신 상태로 갈 곳까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빌려쓰는 마당에 한달이고 두달이고 마냥 사용해볼 수는 없는 노릇. 눈빠지게 기다리는 새 주인이 눈에 아른거려 3롤의 필름을 후다닥 찍은 후 주마론을 새 주인에게 보냈다. 






그리고 일주일 후 드디어 주마론으로 찍은 필름들을 현상하고 스캔했다. 코팅이 적용되었다곤 하지만 역시나 역광에서는 꽝이었다. 하지만 예상외로 해상도는 훌륭했고 지나치게 날카롭지 않으면서도 오밀조밀 세밀한 묘사력이 꽤나 매력적이었다. 이건 정말 스캔 파일로만 볼게 아니라 암실에서 직접 인화한 사진으로 느끼고 싶은 렌즈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아마 주마론을 보내기 전에 결과물을 한번 봤다면 달랑 3롤만 찍어보고 그렇게 보내진 않았으리라. 어차피 새 주인이 계약금 따위를 걸어놓은 상황도 아니었는데 그냥 내가 사겠다고 가로챌 걸 그랬나 하는 생각마저 잠시 들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라이카 렌즈들이 기본적으로 비싼 편이지만 올드 렌즈들 중 인기가 좀 있다는 것들은 계속해서 값이 더 오르고 있다. 주마론 28미리 역시 복각 모델 출시로 인한 사람들의 관심이 늘어서인지 과거보다 높아진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상태가 좀 좋다 싶으면 100만원을 훌쩍 넘어가니 그 정도면 보다 뛰어난 성능의 M마운트 Elmarit 28mm f2.8도 구할 수 있을 수준이다. 그렇기에 그만한 금액을 들여 굳이 오래된 주마론 28미리를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인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올드 렌즈를 꼭 광학적 성능 측면에서만 바라볼 것은 아니지 않은가. 마냥 좋기만한 현행 렌즈들이 가지고 있지 못한 개성있는 묘사와 독특한 느낌은 광학적 수치만으로 완벽히 설명하기는 어려운 매력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그런건 잘 모르겠더라도 예쁘면 되는 거 아닌가? 예쁘다는 이유. 그것 때문에 오늘도 환자들은 괴롭다. 이왕이면 다홍치마. 그것은 진리다. 







Leitz Summaron 28mm f5.6 & Leica IIIa

















































2017.03.04. 포항 송도


Leica IIIa / Summaron 28mm f5.6 / Ilford HP5+ 400 / IVED









































































































2017.02.26. 포항 구룡포


Leica M3 / Summaron 28mm f5.6 / Ilford HP5+ 400 / I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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