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6. 포항 송도


Nikon F3HP / ai-s 28mm f2.8 & 50mm f1.4 / Fujifilm Reala / IVED











2003.08.15. 서울 시청광장

Nikon F90X / ai-s 28mm f2.8 / Kodak TMY / IVED




2003.07.23. 서울

청계고가 철거 당시











































2016.07.16. 포항



















































2016.07.16. 포항



2011.08.01. 티베트 라사














2016.07.16. 여남부두에서


뭐니뭐니해도 결국 가장 손에 익고 가장 중요한 순간에 선택하게 되는 카메라와 렌즈는 얘네 둘이더라.


Nikon F3HP & ai-s 28mm f2.8















































































































































































































































































2016.06.11. 포항


2롤의 TMAX400에서 추린(?) 무려 47컷. 셀렉팅 안하고 이렇게 막 올리긴 또 처음인 듯. 뭔가 글과 함께 버무려보고 싶으나 나중에 모아서 해보기로..




































































2016.05.28. 포항


어쩌다 보니 요즘 죽도시장만 한달여에 걸쳐 네 번이나 찾아가 사진을 찍고 있는데 역시 시장은 언제나 활기넘치는 곳이다. 이 날은 간만에 니콘 F3HP에 ai-s 28mm f2.8을 가지고 나섰다. 역시 스냅에서는 28미리란 화각이 가장 좋은 것 같다. 복잡한 상황을 정리하는 프레이밍을 하는데는 50미리가 적합한 것 같지만, 좀 더 과감해서 접근했을 때 표현할 수 있는 원근감 강조의 효과와 깊은 심도로 인한 포커싱의 편리함이 좋다. 단, SLR은 역시 미러쇼크를 무시할 수 없어 노출이 잘 나오지 않는 어판장 내부에서의 촬영이 좀..


























2003.12.10 서울 이문동



2003.07.23 서울


































2003.08.15 서울


광복절날 열린 두 개의 집회. 두 군데 모두 가긴 어렵고 하나를 선택해 그 중 우파의 집회에서 찍었던 사진들. 당시까진 기자들에게 애용되던 고감도 필름 후지 프레스800을 용도에 적합한 현장에서 난사해댔다. 소화기 분말도 뒤집어 쓰고 경찰 방패에도 밀려며 남긴 분열과 갈등의 기록. 기타 멘트는 생략. 정치적 답글 달리면 삭제합니다. 나도 정치적 의도로 찍은 사진이 아니고 그러려고 올리는 것도 아님. 





2010.08.22 포항


현역에서 당당히 활동하던 포항함(PCC-756)이 09.06.24 퇴역 후 함명을 따라 포항 동빈내항으로 와서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 

대한조선공사(現 한진중공업)에서 건조하여1984년에 취역한 포항함은 이후 동일 제원의 초계함들이 건조되면서 그 1번함으로 이 시리즈를 포항급 프리기트함이라 부른다. 격침된 천안함도 역시 포항급 프리기트에 속하는 함정이다. 보다 한단계 상위 클래스의 프리기트가 울산급 프리기트이며 이후 대공미사일과 대잠헬기를 탑재하고 스텔스성을 염두에 둔 현대적인 프리기트인 KDX-1 광개토대왕함을 시작으로 KDX-2를 거쳐 현재 KDX-3급까지 배치되어 우리나라도 대양해군의 모양새를 조금이나마 갖춰가고 있다. 포항급과 울산급은 배수량 3천톤 규모의 KDX-1이 다수 건조되어 대체되어야 하나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문제이므로 당분간은 현역에서 활약해야 할 것이며 서해에서의 수차례 교전에서 보듯 적 고속정에 대해 원거리에서 76미리 함포를 퍼부으며 아군 고속정의 후위에서 엄호하는 등 북한 해군의 수상 전력을 상대하기에는 아직 유용할 듯 싶다.





먼저 무장부터 살펴보자. 포함함의 주포인 76미리 함포. 전함(Battle Ship)의 어마어마한 함포에 비하면 76미리 함포는 진짜 포로도 보이지 않을 수준이지만 현대 해군 함정에는 과거와 같이 함포가 주렁주렁 달려 있지도 않을 뿐더러 이런 작은 프리기트함에서는 가장 일반적인 구경의 함포로 속사가 가능하고 대함/대공도 가능한 활용도가 높은 화기다. 천안함 침몰 당시 근거리에서 초계 중이던 동일 클래스의 속초함이 미상의 물체에 열심히 쏘아댔으나 새떼로 판명됐다는 말도 안되는 발표를 했을 때 쏘아댔다는 함포가 바로 이거다. 대공 사격이었다면 뒤에 보이는 쌍열 30미리 기관포가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이것이 쌍열 30미리 기관포. 선체 앞뒤로 각 2문씩 탑재되어 있다. 울산급에는 대부분 40미리 보포스 기관포가 달려 있지만 포항함에는 이처럼 30미리 기관포가 탑재되어 있다. 주로 대공 방어용으로 쓰이지만 적 소형 함정을 대상으로 속사를 퍼붓기에도 유용하다.





함미 쪽에 있는 MM38 엑조세 대함 미사일 발사대. 1982년 포클랜드 분쟁 당시 아르헨티나 공군의 슈퍼 에탕다르 전투기가 발사한 엑조세 미사일에 영국 해군 최신예 구축함 쉐필드호가 격침되면서 엄청난 유명세를 탄 엑조세 미사일. 포항급 프리기트 초기형에는 이처럼 프랑스제 엑조세 미사일이 장착되었고 후기형에는 미국제 하푼이 장착되었고 초기형도 일부 하푼으로 교체하였다고 한다만 포항급은 엑조세를 계속 장착했던 것 같다.





이건 어뢰발사관. 선체 좌우에 각 3개의 발사관이 있어 6발이 상시 장전되어 있다. 함포로는 적함의 상부 구조물을 파괴하고 무력화시켜 전투불능의 상태로 만들 수 있지만 격침은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어뢰라면 한방에 격침도 가능하다. 물론 적함의 크기와 선체 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단 북한에는 어뢰를 맞고도 견딜만한 함선은 거의 없다.





자체 대공방어를 위한 미스트랄 발사대. 30미리 기관포로 대공 방어를 한다는 것은 2차세계대전 때에나 통할 방법이지 요즘에는 정말 어이없는 일이다. 우리나라의 무기 체계에 극히 소홀한 부분 중의 하나가 방공이 아닐까한다. 한미 연합군이 제공권 하나는 확실히 장악한다는 자신감 속에서 대공 방어의 필요성을 중요하게 생각치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어쨌거나 불안은 했던지 명중률 형편없다는 미국제 스팅거보다 훨씬 괜찮다는 프랑스제 휴대용 대공미사일 미스트랄 발사기를 거치했던 자리도 있다. 그나마 이것도 사거리가 짧아 본격적인 대공 방어용으론 부족하기에 KDX-1이후부터는 수직발사대에 대공미사일이 탑재되고 20미리 벌컨과 30미리 골키퍼 시스템등 우수한 대공 방어 체계가 갖추어지게 된다.





폭뢰 투하대. 물 속의 적 잠수함을 파괴하기 위한 폭뢰를 투하하는 곳이다. 잠수함 승무원들에게 가장 공포스러운 무기인 폭뢰. 자신들을 찾는 소나의 탐지음과 폭뢰가 여기저기서 터지는 소리는 정말 무시무시할 거 같다.



 


 일단 오늘은 포항함에 탑재된 주요 무기체계만 보고 다음 편엔 포항함의 실내의 모습을 올릴 예정. 잠온다~


2010.08.07 포항



해바라기 축제장에서 나와 매봉산 산길을 따라 오르면 고랭지 배추밭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고 정상부에는 풍력발전단지가 있다. 굽이굽이 배추밭 사이길을 따라 오르던 중에 약간의 갓길(?)이 있어 차를 세우고 내리자 후덥지근한 한여름이라는 사실을 잊게 할 만큼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높긴 높은가 보다.





매봉산 풍력단지. 사실 풍력단지의 경관만을 놓고 보자면 동해바다를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영덕의 그것이 더 멋지지 않나 싶다.





뭐 나도 마찬가지지만 해질 무렵인데도 이렇게 많은 차들이 찾아왔다. 어릴적부터 여행이라면 정말 많이 다녀온 나지만 요즘은 다들 차도 있고 인터넷도 발달하고 좋은 곳이란 곳은 다들 찾아다니니 어딜가도 사람들이 없는 곳은 없다. 나라가 좁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우리나라 사람들도 이제 여가와 레저 문화가 없는 삶은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정말 놀라운 광경이었던 고랭지 배추밭. 우리나라 배추가 다 여기 있는 것만 같았다. 예전에 산 하나가 전부 차 밭이라는 중국의 사진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는데 여기도 그에 못지 않은 것 같다. 어쨌든 탁 트인 공간에서 약간은 추울 정도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이 곳에서의 시간은 여유로웠다. 시간이 여의치 않아 긴 휴가 기간 중 이틀을 활용하여 태백만을 다녀왔는데 사진으로 보니 당시에 느꼈던 것 보단 괜찮아 보이니 다행이다. 후덥지근한 열대야가 이어지는 오늘밤도 저 곳에서의 바람이 그리워진다;

2010.08.05 태백























2010.08.05 태백

정암사 일주문. 열목어 서식지로서 천연기념물에 지정되어 있을 정도로 맑은 계곡을 끼고 있는 정암사. 적멸보궁으로 유명한 절이며 만항재 고갯길로 오르기 전에 들를 수 있었다.





땔감으로 쓰일듯한 장작더미. 저마다 다른 둘레와 색상과 질감이 재미있다. 촌에 가서 군불 떼고 딱 누워 푹 잤음 싶은 요즘이다.





정암사 적멸궁. 정암사에는 이 적멸궁 뒷산에 세워진 석탑 안에 부처님 정골(頂骨 : 정수리뼈)사리를 모셨으므로 법당 안에 불상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팔작지붕의 형태도 좀 그렇지만 전면이 모두 문으로 열리지 않고 가운데 출입구 좌우로 창문 형식으로 되어 있는 등 일반적인 법당과는 다소 차이점이 보인다. 지붕의 기와는 파란색이지만 청기와는 아니고 색칠한 기와로 보이는데 개인적으론 절에 동(銅)기와나 이런 번쩍이는 청기와보다 우리 전통 기와가 훨씬 단아해보인다고 생각한다. 적멸궁에는 청기와를 써야하는 이유나 사찰 건축 기법상 유행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정암사 수마노탑. 사실 정암사의 백미는 이 7층 석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벽돌로 만든 탑은 아니기에 전탑은 아니며 돌을 벽돌모양으로 깎아 만든 형태로 경주 분황사에 있는 그것과 같이 모전탑이라고 불러야할거 같다. 이 탑에는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었으며 특이하게도 탑 제일 꼭대기의 청동제 상륜부가 거의 원형 그대로 남아있다. 대부분의 탑들에서 상륜부는 온전히 남아있는 경우가 드문데 잘 보존되어 있다.





수마노탑에서 내려다 본 정암사 전경. 강원도 산중이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절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고 송광사에서 떠오르는 장엄한 가람배치와도 거리가 멀다. 적멸보궁 오른 편에는 현대식으로 지은 건물들과 공양간 등이 난무(난 좀 그렇게 느꼈다)하고 있어 적멸보궁에 어울리는 정갈한 느낌을 받기 어려운 것이 좀 안타깝다.


2010.08.05 정선

한국에서 제일 높은 역이라기에 찾은 추전역.

해발 855미터라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태백의 해발고도가 높은 탓에 그리 높은 곳에 있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도로가 발달되면서 버스와 승용차의 폭발적인 증가로 여객 운송으로서의 철도의 기능은 이제 최소화되었고 작은 시골역들은 대부분 승객들 없이 조용하지만 추전역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는 상징성으로 관광객들이 드문드문 찾아오는 특혜(?)를 누리고 있다.





굽이굽이 철길의 모습. 73년 태백선이 개통되면서 영업을 시작했다는 추전역. 험준한 강원도를 가로지르는 이 구간은 5.16 이후 군 복무를 하지 않은 장정들을 대상으로 군복무에 준하여 조직된 국토건설단원들이 동원되어 건설하였다고 되어 있다. 오늘날이라면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당시엔 뭐 시대가 시대인지라 부르면 갈 수 밖에 없지 않았나 싶다. 말이 국토건설단이지 조선시대 백성들이 노역에 불려가는거나 뭐 다를바가 있었을까 싶고 군대가 아니다 뿐이지 공병대 처럼 일했을 것 같다.

실제 건설단원들은 신분상 현역병에 준하여 취급되었고 사고시 군법에 의거해 처리되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도 폭압적인 정책이었다 생각되지만 당시에도 무리가 따랐던지 군대식의 강압적 조직과 규율은 단원들로 부터 잦은 반발과 저항을 샀고 부족한 장비와 무리한 공사 강행으로 인한 부상자가 속출하는 등 여러 문제가 드러나 결국 1년 만에 해체하게 되었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개발 시대에는 공병대들 역시 국토 개발에 많이 동원되었는데 따로 돈이 들지 않는 공병대는 민간 업체에서 맡기를 꺼리는 위험한 구간의 공사를 맡을 일이 많았을 것이고 그만큼 사고도 따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경부 고속도로 역시 공병대가 작전을 수행했고 울진 불영계곡을 통과하는 도로 변에도 공병대 순직장병 위령비가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역사속에서 저마다 맡게될 역할은 인간의 의지로 어찌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가지고 온 렌즈 중 그나마 망원인 85미리를 끼우고 이리저리 휘둘러 본다만 이미 작업 반장 쯤으로 보이는 아저씨는 자꾸 나를 째려보고 있었다. 기차역, 특히 이런 작은 시골역은 사진 찍는 사람이라면 소재로 삼아보고 싶을 매력적인 소재이지만 정식으로 사진을 찍기는 그리 쉽지 않다.

관광객들이 넘쳐나는 경춘선의 강촌역이나 가평역 같은 곳에서는 사진을 찍어대도 신경쓰지 않지만 찾는 이가 거의 없는 이런 한적한 역에서 카메라를 들고 어슬렁거리다가는 금방 눈에 띄고 십중팔구 몇 컷 찍어보지도 못하고 제지당하게 된다. 불편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다가와서는 국가 중요 시설이라 관할 상부역의 정식 허가를 득해야 사진을 찍을 수 있다며 촬영을 금지 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그 말도 안되는 규정은 지금이 어느 시대인지 헷갈리게 한다.

88올림픽 전만 해도 남산 타워에서 사진 촬영이 금지 되어 있었다.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 땐 그랬다. 경복궁 뒷편의 청와대도 내려다볼 수 있는 등 보안상으로 문제가 있다는게 이유였다. -_-;;  지금 군사 시설도 아닌 이딴 철길 하나 찍는데 내가 어딘지도 모르는 추전역의 관할역에 가서 허가를 득해야 한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냔 말이다.

어쨌든 자꾸 눈치를 주기에 대충 몇 장 찍고 말았다. 소탈하게 웃으며 역을 안내해주며 역에 얽힌 옛날 얘기를 들려주는 푸근하고 인상좋고 인심좋은 시골역장님은 '6시 내고향'에서만 볼 수 있나 보다. 물론 일하고 있는데 카메라 들고 나타나 이것저것 찍어대는 관광객이 짜증스러울 것이라 충분히 이해는 한다.





한 켠에 전시된 광차(鑛車 : Mine Tube). 광산에서 채굴한 석탄 등을 운반하는데 쓰였던 것이다. 자원 하나 없는 우리나라라고 얘기하지만 석탄과 시멘트는 풍부했던 것만 해도 천만 다행이리라.





추전역에서 바라본 매봉산 풍력단지. 해질 무렵에 올라갈 예정이다.





굉음을 내며 지나는 기차 한 대. 석탄 산업이 호황을 누리던 예전만은 아니겠지만 여전히 뭔가를 실은 기차들은 잠깐 머무는 동안에도 2대나 지나갔다.





추전역에 오니 문득 ROTC 1년차 시절 TMO를 타고 강원도로 향하던 때가 떠오른다. 4주간의 하계 훈련 중 3주차를 마치고 마지막 주에 있을 전방실습으로 양양의 000여단으로 가게 되어 청량리 역에서 승차해 강릉역까지 갔었으니 이 추전역도 분명히 지났으리라. 군복을 입고 불편한 전투화를 신은 상태였지만 차창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강원도 산골의 풍경은 훈련 중이라는 생각마저 잊게 해주었다. 훈련을 마치고 퇴소하면 사진 찍으러 반드시 다시 오겠다는 생각만 계속 했었다.

그 때의 감정이 떠올라 이번에 들렀던 추전역. 역시 청량리에서 출발해 여기저기 다 정차하며 느려터지게 한참을 가던 무궁화호를 타고 온 것이 아니어서인지 그 때의 호젓한 감정을 다시 느끼긴 무리였다. 없는 돈을 쪼개어 필름을 사고 기차표는 입석으로 끊어 메뚜기를 하다 그것도 귀찮아 지면 아예 연결통로에 쪼그려 앉아 잠을 자며 태백으로 향했던 대학생 시절. 역시 여행은 그렇게 해야 하는 것 같다.


2010.08.05 태백











통리 5일장을 구경하고 떠나기 전 잠깐 둘러본 한보 사택. 석탄 산업이 급격히 쇠퇴하면서 태백을 비롯한 탄광촌 지역 곳곳에는 이처럼 텅빈 집들을 보기 어렵지 않다. 예전에 잘 나갔지만 지금은 쇠퇴해버린 도시들을 찾게 되면 마치 속담처럼 널리 쓰이는 말을 듣게 된다. '그 때는 개들도 만원 짜리를 물고 다녔다'라고  ㅎㅎ   석탄 산업이 호황을 누리던 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태백에도 개들이 만원 짜리를 물고 다녔다고 한다. 지금은 사람들이 떠나 발길이 닿지 않는 계단에는 잡초만이 무성하다.





계단에는 버려진 인형도 있고.. 내가 올려둔거 절대 아님;;





거대한 흉물로 남은 텅빈 아파트. 아파트는 개발 시대에 서민들의 꿈이자 최고의 재산이었지만 참 멋없고 운치없는 집일 수 밖에 없는것 같다. 좁은 국토와 높은 인구밀도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불가피한 선택이었겠지만 이렇게 남은 콘크리트 덩어리를 보니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마치 소비에트에 온듯한 딱딱하고 멋없는 콘크리트 건물들이 너무 많다고 혹평을 하는 것이 어느정도 이해가 간다.





국가도 산업도 도시도 그리고 사람도. 언제나 전성기일 수는 없다. 다 때가 있는 법. 얼마나 그것을 품위있게 지켜나갈 것인가. 그리고 언젠가 찾아올 쇠락의 시기에 얼마나 슬기롭게 대비하는가. 그것이 제일 중요한 것이 아닐까..


신리 너와집을 보고 태백으로 이동 중 우연히 들른 통리. 마침 장날이라 시끌벅적했다.
작년 5월의 강원도 여행에서도 운좋게 전국적으로 유명하다는 정선 5일장 날짜를 잘 맞춰서 구경했는데 5일장과 좀 인연이 되는 듯. ㅎㅎ  일단 점심 먹고 시장 구경하기로 결정.





태백 여행 전 사전 정보 수집시 맛집에 검색된 이 설렁탕 집이 마침 통리에 딱 있었다. 딱히 먹을 만한 데도 없는데 설렁탕 정도면 무난하고 장날이라 그런지 맛집이라 그런지 사람들도 많았다.





기본 세팅 밑반찬. 뭐 설렁탕집이라면 기본적으로 볼 수 있는 반찬들이다.





국물은 서울의 설렁탕들에 비해 꽤나 진한 편에 속했는데 고기의 양은 특을 시켰음에도 불구 적다. 그리고 일반적인 설렁탕 고기 처럼 편육 형태로 썬 것이 아닌 저런 형태인 것도 특이했다는.. 설렁탕은 역시 을지로 이남장이 최고인 것 같다. 맛이 없진 않았지만 특을 시켜서 먹기엔 돈 값을 못한다고 해야하나. 뭐 그래도 시장이 반찬이라 잘 먹었고 더 시켜먹진 않았지만 원한다면 국물과 공기밥은 무한 리필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을 덜어준다.





꼭 뭐 이 식당에서만 볼 수 있는건 아니지만 태백에서 연탄을 보니 탄광촌이라는 느낌이 물씬 나는 거 같은 착각도 든다.





가마솥 옆에서 배추를 다듬는 아주머니들. 설렁탕집의 기본은 김치와 깍뚜기라 할 정도로 설렁탕이라는 담백한 음식에 곁들이는 반찬으로서 김치와 깍뚜기 담그는 솜씨는 중요한 부분이다. 이 집은 일부 프랜차이즈 설렁탕집의 조미료 듬뿍 달달한 그런 맛은 아니었지만 좀 투박하다고 해야할까. 기교있는 맛은 아니었다.





어쨌든 그렇게 한 끼 잘 먹고 통리 5일장을 구경한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조용하고 띄엄띄엄한 산골 마을을 보다 갑자기 번잡한 장에 들어서니 활기가 넘친다.





구경 다니다가 낚여서 지른 목수건(?)  찬물에 담궈두면 5분 정도 후 수분을 흡수해서 내부의 특수 파우더가 팽창하며 시원한 기운을 유지하며 목에 감아두면 좋다는데 아저씨의 현란한 말빨과 잠깐의 착용에 혹해 많은 사람들이 지르고 있었다. 뭐 이런데 오면 속는 셈 치고 재미삼아 살 만한 것들 중 하나지만 어쨌든 낚인건 낚인거;  아이스팩 처럼 차가운 온도가 유지되는 것이 아닌지라 물 적셔 수건 목에 감는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여행 중에 우연찮게 만나는 5일장은 언제나 재미있다. 그 지역의 특산물과 먹거리, 사투리가 어울어져 그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기 때문. 2007년 초 몇가지 사진 프로젝트를 구상하며 여러 주제들을 써내려가며 메모했던 적이 있는데 그 중에 당연히 5일장도 있었건만 역시 이 사진들 처럼 수박 겉핧기식 사진들만 찍어왔지 제대로 된 작업을 해보지 못함이 아쉽고 게으름을 자책하게 된다.


2010.08.05  통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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