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on-15 28mm f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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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ca M3 (DS) / Summicron-M 50mm f2.0 (Rig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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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ca M3 / Elmar-M 50mm f2.8 "Red Feet"


Rolleiflex 2.8F Xenotar 12/24 "White F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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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29.


포항 시외버스터미널은 1985년에 준공된 낡은 시설로 고속터미널과 함께 흥해 쪽으로 이전할 계획이 수립되었으나 포항시의 인구 증가가 지지부진한데다 완전 외곽 지역에다 투자하기를 꺼리는 기업들의 참여 부진으로 결국 현 자리에서 복합환승센터로 재개발하기로 수정되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원안대로 추진하라는 북구 주민들과 현재 터미널이 위치한 남구 주민들 사이에 의견 충돌이 발생하고 등등 말이 많다는데. 뭐 어쨌든 이 곳의 모습도 머지 않아 사라질테니 틈날 때 마다 찾아서 좀 남겨놔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Leica M3 / Summicron 50mm f2.0 Rigid / Kodak 400TX / I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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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0325 동네 ::

Snaps/2017 2017.04.17 08:48























2017.03.25.


Leica M3 / Orion-15 28mm f6.0 / Fujifilm C200 / I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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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라이츠사는 4군 6매 더블가우스 구조의 주마론 28미리를 출시했다. 

1935년에 출시된 28미리 Hektor로 20년이나 울궈먹은 끝에 드디어 새로운 28미리가 등장한 것이었다. 주마론은 싱글코팅이 적용되면서 해상도와 콘트라스트가 향상되었으며, 왜곡과 비네팅 억제 측면에서도 헥토르보다 개선되어 당시로서는 최고의 28미리 렌즈라 불릴만 했다. 컴팩트한 사이즈는 바르낙 라이카에 안성맞춤이었고 조리개 조절 방식도 보다 현대적인 형태로 변경되어 사용상의 편의성도 좋아졌다. 단, 여전히 최대 개방값은 어두웠는데 헥토르의 f6.3에서 겨우 반스탑 정도 밝아진 f5.6에 머물렀다는 점은 분명 아쉬운 부분이었다. 







주마론이 등장하기 전까지 28미리를 담당한 Hektor. 조리개 조절이 Elmar처럼 불편한 방식이었고 무코팅이었다. 




주마론의 어두운 개방값은 당시로선 보다 밝은 광각 렌즈를 만들어내기 위해 극복해야할 수차가 너무 많았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밖에 볼 수 없지만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캐논 Serenar 28mm f3.5라든지 28mm f2.8 같은 녀석을 보고 있자면 한숨이 절로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심지어 소련에서조차 이미 1937년에 FED 28mm f4.5가 나왔는데 말이다.







Fed 28mm f4.5 (라이츠는 뭘 한거란 말이냐)






아마 주마론이 이렇게 배짱 튕기며 등장할 수 있었던데는 경쟁상대 칼 자이즈의 방만함도 한몫 했을 것이다. Sonnar라는 걸출한 대구경 50미리 라인업으로 라이카가 나름 밝게 만들어보고자 애쓴 Summar, Summitar, Summarit 따위를 뭉개버리며 광학 기술만은 앞선다고 자타가 공인하던 칼 자이즈도 유독 28미리는 찬밥이었다. 그들 역시 라이츠 못지 않게 별다른 개선 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Tessar 28mm f8.0을 20년 이상 울궈먹고 있던 중이었으니 말이다. 







Carl Zeiss Jena 28mm f8.0 (제 짝인 콘탁스에서도 거리계 연동이 안되는 목측식이다. 어차피 8.0이니..)






사실 예전 같으면 최대 개방값이 f5.6에 불과한 주마론 따위의 렌즈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을테다. 하지만, 자꾸 보다보니 정이 들었는지 모양 만큼은 정말 예쁘다고 인정할 수 밖에 없었고 언젠가 한번쯤은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한번 사볼까?' 하고 가볍게 들이기에는 스크류 마운트 렌즈들 중에서도 유독 비싼 가격을 자랑하는데다 생산량이 그리 많지 않아 매물도 귀했다. 아, 물론 훌륭한 대안은 있었다.







라이카에서 M마운트로 복각하여 출시한 주마론 28mm






작년에 뜬금없이 주마론 복각 모델이 출시되었다. 마운트 형식이 M마운트로 바뀌었지만 광학적 구조는 거의 오리지날 그대로 복각된 이 렌즈는 한동안 각종 커뮤니티를 뜨겁게 도배했다. 아이폰 광고가 떠오를 정도로 깔끔하고 아름다운 생산 과정 이미지들로 구성된 브로셔를 보고 있노라면 당장이라도 품고 싶은 욕심이 들기 마련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제 정신으로 300만원에 가까운 돈을 지불하고 살 수는 없었다. 






그러던 중 우연찮게 기회는 찾아왔다. 나의 뜬구름 잡는 리뷰에 현혹되신 어느 팬(?) 분과 자주 연락을 주고 받게 되었고  서로가 가지고 있는 장비 호구 조사를 하다 그 분이 주마론 28미리를 갖고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너무 어두운 개방값 탓에 잘 손이 가지 않아 제습함에 들어간 후 나올 줄은 모른다고 하셨고 그럴거면 제가 한번 써보겠노라며 빌리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렌즈를 처음 받고 난 후. 헬리코이드에서 흘러나온 윤활유가 묻은 자국도 많았고 틈새의 찌든 때도 그대로 있는 등 전체적으로 약간 지저분한 상태였다. 평소 장비를 아껴쓰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이런 건 또 그냥 못지나가는 성격이라 구석구석 정성스레 닦아 주었다. 전체적인 외관 상태는 꽤 훌륭했고 전면 코팅의 상태도 양호했다. LED조명을 비춰서 내부를 보니 약간의 헤이즈가 보였지만 헤이즈가 없이 온전히 보존된 개체가 무척 드물다고 하니 어쩔 수 없으리라 생각됐다.






내 것이 아니어도 새로운 렌즈를 사용해보는 일은 무척 즐거운 일이다. 특히 성능의 가늠이 쉽지 않은 올드 렌즈의 경우는 더더욱 흥미롭다. 주마론을 빌려주신 지인께선 이미 주마론에 대한 흥미는 상실하셨고 당시 나의 뜬구름 리뷰에 끌려 다른 광각 렌즈를 구입하시는 바람에 주마론은 처분하기로 맘을 먹으신 상태로 갈 곳까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빌려쓰는 마당에 한달이고 두달이고 마냥 사용해볼 수는 없는 노릇. 눈빠지게 기다리는 새 주인이 눈에 아른거려 3롤의 필름을 후다닥 찍은 후 주마론을 새 주인에게 보냈다. 






그리고 일주일 후 드디어 주마론으로 찍은 필름들을 현상하고 스캔했다. 코팅이 적용되었다곤 하지만 역시나 역광에서는 꽝이었다. 하지만 예상외로 해상도는 훌륭했고 지나치게 날카롭지 않으면서도 오밀조밀 세밀한 묘사력이 꽤나 매력적이었다. 이건 정말 스캔 파일로만 볼게 아니라 암실에서 직접 인화한 사진으로 느끼고 싶은 렌즈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아마 주마론을 보내기 전에 결과물을 한번 봤다면 달랑 3롤만 찍어보고 그렇게 보내진 않았으리라. 어차피 새 주인이 계약금 따위를 걸어놓은 상황도 아니었는데 그냥 내가 사겠다고 가로챌 걸 그랬나 하는 생각마저 잠시 들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라이카 렌즈들이 기본적으로 비싼 편이지만 올드 렌즈들 중 인기가 좀 있다는 것들은 계속해서 값이 더 오르고 있다. 주마론 28미리 역시 복각 모델 출시로 인한 사람들의 관심이 늘어서인지 과거보다 높아진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상태가 좀 좋다 싶으면 100만원을 훌쩍 넘어가니 그 정도면 보다 뛰어난 성능의 M마운트 Elmarit 28mm f2.8도 구할 수 있을 수준이다. 그렇기에 그만한 금액을 들여 굳이 오래된 주마론 28미리를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인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올드 렌즈를 꼭 광학적 성능 측면에서만 바라볼 것은 아니지 않은가. 마냥 좋기만한 현행 렌즈들이 가지고 있지 못한 개성있는 묘사와 독특한 느낌은 광학적 수치만으로 완벽히 설명하기는 어려운 매력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그런건 잘 모르겠더라도 예쁘면 되는 거 아닌가? 예쁘다는 이유. 그것 때문에 오늘도 환자들은 괴롭다. 이왕이면 다홍치마. 그것은 진리다. 







Leitz Summaron 28mm f5.6 & Leica II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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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1. 포항


Leica M3 / Orion-15 28mm f6.0 / Ilford HP5+ 400 / I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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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6. 포항 구룡포


Leica M3 / Summaron 28mm f5.6 / Ilford HP5+ 400 / I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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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1. 포항


Leica M3 / Orion-15 28mm f6.0 / Kodak 400TX / I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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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20. 부산

Leica M3 / Elmar-M 50mm f2.8 / Kodak 400T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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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온통 라이카 뿐인가.


오늘날 레인지파인더 카메라라고 하면 누구나 라이카를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전문 사진가들을 위한 카메라 형식의 대세가 SLR이 되어버린지 50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RF카메라 특유의 장점인 저소음, 저진동, 그리고 컴팩트함은 적지않은 이들에게 어필하고 있고 작업 스타일에 따라서는 SLR에 비해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RF시장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고 정교한 레인지파인더의 생산에 많은 비용이 들어 지금도 RF카메라를 생산하고 있는 곳은 사실상 라이카가 유일하다. 신품만이 아니다. 중고로 구한다 치더라도 다양한 교환 렌즈와 모터 드라이브 혹은 접사 장치 등 시스템 카메라로서 접근해보면 라이카 말고는 더욱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RF카메라를 사용하는 이들의 십중팔구는 라이카 유저들이다. 왜 우리의 선택지는 이토록 좁은 것이란 말인가. 라이카에 견줄 상대는 과연 없었던 것일까?




ZeissIkon의 대항마 Contax IIa


라이카에 대적했던 카메라가 있었다. ZeissIkon의 Contax가 바로 그것이다. Contax IIa는 그 콘탁스 라인업 최후의 모델로 1950년 발매되어 61년경 단종되기까지 Leica IIIf, M3 등과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카메라였다. Contax IIa 이후 후속 모델이 출시되지 않으면서 역사속으로 사라진 탓에 알고 있는 이들도 드물었지만 이미지프레스에서 출간된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란 책을 통해 소개되며 비교적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중적 인지도의 상승이 인기와 비례하지는 않아 여전히 사용자는 극소수에 머물고 있다. 그나마 사용해봤다는 이들도 중고가가 저렴하니 호기심에 들였다가 금세 내친 경우가 대부분이다. M형 라이카를 쓰는 이들은 좁은 파인더 탓에 포커싱이 어렵고, 라이카와 반대인 조리개, 초점링의 회전 방향에 적응하지 못하겠다는 등 여러가지 불평을 내세우며 이래서 콘탁스가 망했다고 한다. 과연 콘탁스는 이렇게 혹평 받을 카메라였을까.




Contax의 역사


Contax IIa에 대해 본격적으로 얘기하기에 앞서 이전의 콘탁스 모델들을 먼저 간략히 알아보자. 부모없는 자식이 없듯 근본을 살펴봐야 Contax IIa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Contax I



라이츠사가 출시한 라이카의 대성공은 자이스이콘을 자극시켰다. 소형 포맷의 기술적, 품질적 한계로 소형 카메라의 개발에 대해 탐탁치않게 여기던 자이스이콘은 시장의 주도권을 라이츠에게 뺐겨 버렸지만 그 상황을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에 자이스이콘은 Leica II를 압도할 대응 모델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게 되고 1932년, 그들의 첫 시스템 RF카메라를 시장에 선보이게 된다. Contax의 등장이었다. 


라이카를 능가하겠다는 자이스이콘의 개발 의지대로 콘탁스는 라이카가 가지고 있던 문제점 내지 불편함을 상당부분 개선한 선진적 설계가 적용되었다. 뒷판은 통채로 열렸고 렌즈 마운트는 베이요닛 방식을 채택했다. 이 부분은 당시 라이카에 비해 훨씬 빠르고 편리한 필름 로딩과 렌즈 교환을 가능케 해준 선진적인 방식이었다. 최고 셔터스피드는 이미 1/1000초에 이르렀고 금속제 상하주행 셔터막을 채택하여 천으로 만들어진 라이카의 가로주행 셔터막이 햇빛에 종종 타서 구멍이 나는 문제로 부터 완전히 해방시켜 주었다. 레인지파인더의 기선장은 극단적으로 길어 초점 맞춤의 정밀성이 높았고 이 같은 장점은 특히 망원렌즈 사용시에 두드러졌다. 그리고 콘탁스 바디들의 특징인 포커싱휠이 채택되었는데 한 손(오른손)만으로도 포커싱과 셔터 릴리즈를 할 수 있도록 고안된 장치였다. 이것이 당시에 얼마나 큰 효용성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말을 탄 상태에서도 왼손은 고삐를 쥔 채 촬영할 수 있었거나 하는 장점은 있지 않았을까 싶다. 어쨌든 이 포커싱휠은 다른 카메라들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으로 콘탁스 시리즈에 계속해서 적용된다.


하지만 Contax는 유려하고 컴팩트한 디자인의 라이카에 비해 크고 둔중했다. 다소 급한 출시였는지 5년이라는 짧은 발매 기간에 비해 약 6번에 이를 정도로 잦은 성능 개선이 이루어졌고 금속제 셔터막은 햇빛에 구멍은 나지 않았지만 고장이 잦고 수리가 난해했다. 최초의 콘탁스는 여러가지 획기적인 기능을 대거 선보였지만 종합적인 완성도는 다소 떨어진 바디로 1936년 Contax II가 등장하며 단종되고 만다. 



Contax II



1936년 콘탁스의 두번째 모델 Contax II가 출시된다. 어딘가 프로토타입 같은 어설픈 디자인의 이전 모델에 비해 한결 현대적인 형태로 거듭난 Contax II는 여러가지 개선된 부분으로 당대 최고 성능을 자랑했다. 특히 하나의 뷰파인더에서 프레이밍과 포커싱이 동시에 가능해지고, 저속이 생략되거나 혹은 고속 다이얼과 분리된 라이카와 달리 하나의 다이얼에서 모든 셔터스피드의 조정이 가능했던 점은 획기적이었다. 이러한 기술은 1954년 출시된 M3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라이카에서는 가능해지는 것들이니 콘탁스의 설계가 얼마나 선진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특이하게도 최고 셔터스피드는 1/1250초였는데 이 역시 라이카에 앞선 그들의 기술력을 과시하기 위한 의도가 다분히 내포된 것이었다. 셀프타이머 역시 기본 탑재되어 IIIF모델 일부에서 처음 탑재되기 시작하는 라이카에 비해 훨씬 빠른 것이었다. Contax II에 이어 노출계를 탑재한 파생모델 Contax III도 출시되었다. 이 역시 세계 최초라 한다. (하지만 비연동식..)


이처럼 Contax II는 이미 바르낙 라이카를 압도하고 있던 Contax I에서 또 다시 발전을 이루어낸 카메라로서 프로 작가들의 고성능 카메라라는 이미지가 굳어졌고 베를린 올림픽을 맞이하여 발매된 180mm f2.8 Sonnar와 함께 스포츠 촬영에서도 역사에 남는 카메라가 된다. (손기정 선수의 마라톤 결승선 통과 사진도 Contax II와 180미리 조나가 찍었을 거란 설이 있다)




이같은 고성능을 바탕으로 Contax II는 큰 변화없이 2차대전 종전 때까지 지속적으로 생산되었다. Contax II는 특히 로버트 카파가 사용하면서 그 유명세를 떨치게 되는데 그가 찍은 유명한 사진, 1944년 6월 6일 D-Day 당일 연합군이 가장 많은 피해를 입었던 오마하 해변의 상륙 장면은 Contax II를 사용해 찍은 컷들이다. 전장의 급박함 속에서 촬영을 해야했던 그에게 콘탁스의 빠른 렌즈 교환과 필름 로딩이 크게 어필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Contax IIa



2차대전이 끝나고 5년이 지난 1950년, 콘탁스의 세번째 모델인 Contax IIa가 출시되었다. IIa의 가장 큰 특징은 전작인 II에 비해 컴팩트해졌다는 점인데 소형화는 물론 외형상의 아름다움에도 신경을 쓴 흔적이 역력하다. 크롬코팅의 개선이 이루어지고 곳곳의 금속 마무리에 화려함이 더해져 아름다운 광택을 자랑했으며 비로소 '보석같은 카메라'라는 별명이 생겨났다. 기능적인 개선 사항으로는 T셔터, 그리고 B와 1/2초 사이에 1초가 추가되었고 플래쉬 싱크 케이블 단자가 생겼다. 그보다 의미있는 개선점은 셔터스피드의 변경을 셔터를 장전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가능해졌다는 점과(Contax II나 바르낙 라이카들은 셔터 장전 후에 셔터스피드를 변경하는 순서를 지켜야 했다) 셔터막의 재설계로 고장이 잦고 수리가 난해하던 이전 모델에 비해 높은 안정성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라이카를 압도하던 성능상의 우위는 유지되었고 콘탁스의 약점이던 큰 덩치도 제법 작아지고 전체적인 디자인도 예뻐졌다. 이만하면 역대 최고의 콘탁스를, 아니 당대 최고의 카메라를 출시했다고 자이스이콘이 자신할만했다. 



1952년의 Contax IIa 광고. Contax가 내세우던 기능적 우위를 어필하고 있다.




짧은 영광과 몰락


하지만 Contax IIa의 화려한 시절은 오래가지 못했다. IIa가 출시되고 불과 5년 뒤인 1954년. 카메라 업계는 '깡패'의 출현으로 충격에 휩싸이고 만다. 그렇다. 그 유명한 라이카 M3가 등장한 것이었다. 전혀 새로운 베이요닛 마운트를 적용한 새 라이카는 렌즈의 화각에 따라 자동으로 프레임 라인이 변하는 밝고 시원한 파인더를 장착하고 있었고 그 전까지 바르낙 라이카들이 가지고 있던 여러가지 문제점들을 한방에 해결해 버린 놀라운 카메라였다. 거기에다 자동으로 리셋되는 필름 카운터와 빠른 셔터 장전이 가능한 장전 레버를 채택했고 이는 콘탁스에는 아직 없던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여전히 라이카는 아름다웠다는 점이다. 바르낙형 라이카에 비해 M3의 크기는 무척 커졌지만 아무도 이를 탓하지 않았다.  


M3의 등장으로 라이카에 대한 콘탁스의 우위는 단박에 역전되어 버렸다. Contax I 이후 20년 가량 줄곧 앞서있던 콘탁스가 한순간에 라이카에게 압도당한 것이다. 자이스이콘의 허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자료에 의하면 M3의 발매 이후 콘탁스의 시판 가격은 절반 수준으로 하락하고 말았다고도 한다. 설상가상으로 자신들의 마운트를 카피한 니콘 SP같은 카메라들도 이미 기능적으로 콘탁스를 완전히 퇴물로 만들고 있었다. 카피캣을 따돌리고 라이카를 다시 한번 압도하려면 M3 이상의 콘탁스가 필요했다. 하지만 고심끝에 자이스이콘은 콘탁스를 결국 포기하고 만다. 보석 같은 카메라는 화석이 되어버렸고 후대는 M3에 패하며 사라진 비운의 카메라로 Contax IIa를 기억하게 된다. 




Contax IIa를 위한 변명


Contax IIa는 참 운이 없는 카메라다. 발매당시 라이벌이던 Leica IIIf 등에 비해 우수했던 점은 어필되지 못하고 역대급 카메라 M3에 비교되며 혹평을 받고 있다. M3에 패했다는 것만으로 이렇게 까여야(?) 한다면 세상에서 M3 앞에 당당할 카메라가 몇 개나 있는가. Contax IIa에 대해 변명을 해주고 싶었다. Contax IIa가 조금만 더 좋은 카메라였다면, 혹은 뒤이어 새로운 Contax가 출시되었더라면 이 정도로 역사 속에 묻힌 카메라가 되지는 않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을 곧잘 하곤 했다. 도대체 왜 자이스이콘은 그러질 못했을까. 여기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추론해본 것들을 얘기해보기로 한다. 



① 이미 달성한 압도적 성능 우위, 크기만 줄이면 된다!


Contax IIa가 M3의 획기적 발전 앞에 한방에 나가 떨어지게 된 결정적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Contax I 부터 이미 바르낙 라이카를 압도하고 있던 성능상의 우위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앞서도 언급했듯 베이요닛 마운트, 프레이밍과 포커싱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뷰파인더, 저속과 고속 영역이 합쳐진 셔터스피드 다이얼, 뒷판의 열림 등은 M3가 등장하기 전까지 라이카에선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카메라의 성능 뿐만 아니라 콘탁스용 칼 자이즈의 렌즈들 또한 당대 라이카의 그것들 보다 뛰어난 화질을 자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콘탁스의 판매량이 라이카에 미치지 못하는 점에 대해 자이스이콘은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고 결국 그 원인은 콘탁스의 큰 크기 때문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Contax IIa의 개발 방향은 그래서 기능의 향상보다는 크기를 줄이고 디자인을 개선하는 쪽으로 수립되었다. 침동식 엘마를 장착한 바르낙의 컴팩트함에 매료된 애호가들의 마음을 뺐어오려면 자잘한 기능상의 우위보다는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크기에만 집착하는 동안 자이스이콘은 라이카가 준비한 강력한 한방에 대응할 거시적 시각을 가지지 못했다. M3가 제시한 방향은 그게 아니었다. 자이스이콘이 크기를 줄이는데 집착하는 대신 35미리 프레임 라인부터 시작하는 멀티 프레임을 가진 혁신적인 파인더가 탑재된 콘탁스를 개발했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실제 자이스이콘은 크기를 줄이는데 집착한 나머지 몇가지 문제점을 야기시켰는데 그렇지 않아도 좁던 파인더가 조금 더 좁아졌고 기선장의 길이가 줄어 초점 맞춤의 정밀도도 다소 떨어졌다. 하지만 이 두가지는 그럼에도 불구 바르낙보다는 여전히 우수한 부분이라 감수할 수 있었다. 유저들 입장에서 당황스런 문제는 전쟁전에 생산된 35미리 비오곤 렌즈가 장착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전전형 35미리 비오곤은 특유의 설계로 인해 후옥이 유난히 길고 컸는데 크기가 작아진 Contax IIa에는 후옥이 들어가질 않았던 것이다. 물론 칼 자이즈사는 새롭게 설계한 전후형 35미리 비오곤을 발매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지만 자이스이콘 입장에서 크기를 줄이는데 얼마나 사활을 걸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부분이다. 



② 2차 세계 대전과 독일의 분단


라이츠에 비해 자이스이콘은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굴곡을 더 많이 겪어야 했다. 전쟁 기간 동안 독일의 주요 공업도시들은 연합군 폭격기들의 공습에 시달렸고 이는 자이스이콘의 카메라 공장이 있던 드레스덴도 마찬가지였다. 자이스이콘 드레스덴 공장 역시 폭격을 맞아 가동이 중지되었고 개발 중이던 주요 시제품과 설계 자료들이 몽땅 사라지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드레스덴은 소련군 점령 지역이 되면서 자이스이콘의 공장 설비와 생산에 필요한 재료들은 소련으로 옮겨진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숙련된 기술자들도 함께였다. 거기에다 자이스이콘은 잠수함의 잠망경, 전차의 조준경 등 직접적인 전쟁 무기를 생산했다는 이유로 전범 기업으로 분류되어 고초를 치른다. 반면 라이츠사는 쌍안경 등 일반적인 광학장비만을 생산했기에 전범 기업에 포함되지는 않았다.


폭격을 맞은 자이스이콘 드레스덴 공장. 1947년경 미군에 의해 촬영된 사진이다.


상황이 이러했으니 서독 슈트르가르트의 자이스이콘은 반쪽 짜리 회사밖에 되지 못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기술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전쟁 후의 혼란스런 상황을 고려해볼 때 획기적인 새로운 콘탁스가 나올 수 있는 여건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오히려 종전 후 5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 (Contax IIa는 정확히는 49년 11월에 발표되었다고 한다) Contax IIa 같은 카메라를 만들어낸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③ 자이스이콘의 합리적(?) 상황 판단


M3의 등장을 지켜본 자이스이콘은 M3를 압도할 수 있는 새로운 콘탁스의 개발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러자면 일단 파인더의 개선이 가장 시급했을 것이다. 그리고 M3처럼 렌즈에 따라 자동으로 변환되는 프레임 라인을 적용하려면 라이츠가 그러했듯 새로운 마운트를 설계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높은 제작 비용이 드는 파인더 개선과 마운트 변경이라는 도박을 시도하기에는 성공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다. 그리고 앞으로 시장의 대세는 분명 SLR이 될 것이었다. 콘탁스 말고도 엄청난 카메라 라인업을 갖추고 있던 자이스이콘은 성공 가능성이 희박한 Contax에만 집중할 수는 없었다. 결국 자이스이콘은 Contax를 포기하고 SLR인 Contarex 개발에 집중하기로 결정한다. 이는 물론 당시로서는 지극히 합리적인 판단이었으리라 여겨진다. 실제 60년대 이후 대세는 완전히 SLR이 되어 일본 카메라 업계들이 세계 시장을 석권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라이츠 역시 심각한 경영 위기를 겪으며 망하기 직전까지 갔으니 말이다. 문제는 저렴하고 우수한 성능의 일제 SLR에 비해 자이스이콘의 Contarex는 지나치게 비싸고 고급스러웠다. 이미 일본 메이커들이 장악한 시장에서 자이스이콘의 승부수는 신통치 못했다. 결국 1972년에 이르러 자이스이콘은 모든 카메라 생산에서 손을 떼고 만다. 




오늘날 콘탁스의 매력


콘탁스는 분명 사용하기 편한 카메라는 아니다. 프레임 라인도 그려져 있지 않은 작은 뷰파인더에다 셔터 장전도 돌림식이라 속도가 느리다. 하지만 이것은 지금의 시각일 뿐이며 또 M형 라이카와의 비교일 뿐이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사랑하고 있는 바르낙 라이카에 비해서는 훨씬 사용하기 편리한 카메라가 바로 Contax IIa다. 잘 관리된 Contax IIa의 파인더는 좁긴 하나 어둡진 않고 이중상도 명확하다. 셔터 소리는 라이카(천 셔터막)에 비해서는 조금 더 크긴하나 절도있고 카랑카랑해 기계적 매력이 물씬 느껴진다. 아름다운 크롬 코팅은 갓 잡은 갈치를 연상케할 정도로 광택이 빛나고 렌즈 마운트와 다이얼 곳곳의 금속 가공 처리는 스위스 시계의 브레이슬릿을 보는 듯 유광과 반광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바디를 감싸고 있는 가죽은 모로코산 양가죽이라 하는데 그 보들보들한 감촉이 매우 좋다. 감성 품질도 훌륭한 카메라란 얘기다.


무엇보다 당대 최고 성능의 콘탁스용 칼 자이즈 렌즈들을 저렴한 가격에 사용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서 가치가 가장 중요하다 하겠다. 전쟁 후 서독에서 생산된 Zeiss-Opton 혹은 Carl Zeiss 각인의 렌즈들은 고급스런 크롬 광택 마무리와 부드러운 조작감, 그리고 T코팅이 적용된 우수한 성능을 자랑하는 명렌즈들이다. 그 중에서도 50mm f1.5 Sonnar와 21mm f4.5 Biogon은 아답터를 이용해 라이카 바디에 이용하는 이들도 많을 정도로 여전히 인기가 높으며 35mm f2.8 Biogon이나 35mm f3.5 Planar는 물론 당대 최고의 해상도를 자랑했다는 50mm f3.5 Tessar도 매니아라면 놓치기 아까운 렌즈들이다. 이 우수한 렌즈들은 사용할 바디가 극히 제한적이라는 이유로 당대 라이카 렌즈에 비해 훨씬 저렴한 가격에 거래되고 있는데 Contax IIa의 중고 가격 조차 저렴하기 그지 없으니 오리지널 독일제 시스템 RF카메라를 즐기기에 이보다 효율적인 방법이 있을까. 물론 라이카에 비해 물건이 귀하여 꽤 오랜 정성과 '운'이 필요하긴 하지만 '돈만 있으면 구하는' 라이카에 비해 그 만족감은 더욱 크다고 얘기하고 싶다. 



내가 갖고 있는 Contax IIa와 렌즈들. 다 합쳐봐야 라이카 Summicron 35mm f2.0 1st 일명 '8매' 하나는 살 수 있을까 싶은 가격이지만 보석 같은 얘네들을 8매 '따위'와 바꿀 수야 있나.



라이카에 맞섰던 또 하나의 최고의 카메라였던 콘탁스. 비록 바르낙과 M 사이, 그 어설픈 위치에서 진화를 멈추고 말았다는 점이 안타깝지만 이야기 거리 풍부한 역사적인 카메라임에는 틀림없다. 리뷰를 쓰다보니 문득 이런 생각도 든다. 

'그래도 콘탁스가 있었기에 Leica M3라는 역사에 남을 카메라가 탄생한 것이 아닐까.' 

콘탁스의 여러가지 편리함과 기능상 우위는 분명 라이카를 자극했을테고 그 결과로 탄생한 것이 M3라면 콘탁스의 쓸쓸한 오늘날의 처지가 그리 딱하게만은 여겨지지 않는다. 반세기전 독일 광학업계의 마지막 전성기, 시장의 주도권을 치열하게 다투던 전장에서 패자로 퇴장해버린 Contax IIa. 세상은 승자만 기억한다지만 그에 못지 않은 패자의 이야기도 사뭇 흥미로운 법이다. 그리고 그 상대가 하필 넘사벽 M3였다. 그를 너무 탓하지는 말자. 지금보다는 더 멋진 카메라로 기억되길 바라며 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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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ca M3 + Carl Zeiss 50mm f1.5 Sonnar






Contax IIa / Carl Zeiss 50mm f3.5 Tessar


2017.01.22

날씨는 너무 춥고 심심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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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서 며칠간 위가 쓰리다 하셨다. 

금방 괜찮겠지 했던 것이 조금 길어져 결국 검사를 다시 받아봤고 결론은 위염. 얼마전 대학원 동창들끼리의 제주도 여행에서 술을 좀 드신 것이 원인인 모양이다. 어쨌든 자극적인 음식을 피하고 당분간 죽을 드시라고 한다. 그 얘기를 듣고 아들로서 어찌 가만히 있을 수가 있나. 아버지 드릴 전북죽을 사오겠다며 사뭇 비장하게 집을 나섰다. 




나름 단골인 전복집 주차장에 도착했다. 무료한 일요일, 하릴없이 뒹굴거리다가 더없이 훌륭한 핑계로 집을 나와서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니 지끈거리던 머리 속에 시원해진다.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혔다.




저멀리 보이는 곳이 구룡포항이다. 흐린 날이었지만 바다는 비교적 잔잔했고 덕분에 갈매기들은 바위 위에서 편안한 일요일을 보내고 있었다.




전복죽을 주문해두곤 다시 밖으로 나왔더니 막 어선 한 척이 들어와 멸치를 부려놓았다.




구룡포가 기장이나 남해처럼 멸치잡이로 유명한 항구는 아니지만 이처럼 간혹 멸치가 들어오기도 한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멸치보단 고등어나 꽁치가 흔해 구룡포에서는 아직도 멸치액젓 대신 고등어로 젓을 담궈서 김장을 하기도 한다고 전복죽집 사장님이 얘기해줬다. 그 맛이 사뭇 궁금했다.




박스마다 가득가득한 멸치들. 날씨가 추운 겨울이니 저 상태로 바로 회로 먹어도 될 것 같았다. 색색의 박스들은 엘마 렌즈의 색감 테스트용으로 딱. 




상차 작업하시는 동안 서성이며 계속 셔터를 눌렀음에도 별 반응들이 없으셨다. 행색을 봐도 그렇고 손에 든 골동품 같은 카메라 꼬락서니를 봐도 별 시덥잖은 녀석이라 여겨지셨나 보다. 어쨌든 나로서는 다행이다.




방파제 옆 작은 비닐 천막 안에선 어민들이 모여 참을 드시고 계셨다. 




참을 먹었으니 커피도 한 잔! 인근 다방에서 커피 배달이 왔다. 조금 불건전하게 변질된 경우가 있어서 그렇지 커피를 배달시켜 마시는 나라가 또 있을까? 다방 문화에 대한 심도있는 고찰과 작업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불쑥 들었다.




방파제 너머 테트라포드에는 언제나 낚시꾼들이 있다. 안테나처럼 솟아있는 그들의 낚시대.




고소한 냄새가 진동하는 따끈따끈한 전복죽을 받아들고 가게를 나섰다. 가게 주차장 간판 위에는 자기도 한번 찍어달라는 듯 갈매기 한 마리가 포즈를 잡고 있었다. 차에 오르기 전, 마지막 한 컷을 눌렀다. 




Elmar 3.5cm는 예상대로 상당히 낮은 채도와 콘트라스트의 결과를 보여줬다. 물빠진 듯한 밋밋한 색감을 보며 역시나 칼라 보다는 흑백에 어울리겠다며 단정지었던 것이 사실. 그렇게 첫 인상이 약했던 엘마로 찍은 이 칼라 사진들은 희한하게도 보면 볼수록 참 편안했다. 소박한 절집에서 정갈하고 간소한 공양 한 그릇 받아든 듯한 그런 느낌이랄까. 코팅의 꼼수도 없이 유리알 그 자체로 담아낸 빛이라 생각하니 왠지 마음까지 차분해졌다. 칼라로 다시 찍어볼 일은 없을거라 생각했었지만 날씨와 빛 상황이 다를 때는 또 어떤 느낌을 보여줄지 사뭇 궁금해진다. 흐릿하고 멍청한 색감으로 나올 수도 있고 기대이상으로 화사하고 세련된 색감으로 나올 수도 있을테고, 색온도가 훅 틀어지거나 완전히 엉뚱한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모두 괜찮다. 현행처럼 완벽하지 않기에 예상이 쉽지 않고 그래서 더 재미있는 것이 올드 렌즈의 매력이니까 말이다.



2016.12.04 포항


Leica M3 / Elmar 3.5cm F3.5 / Fujifilm C200 / I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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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이 써보라며 올드 렌즈를 하나 건네줬다.

라이카 35mm의 원조격인 Elmar 3.5cm다. 1930년대 부터 발매되어 40년대 후반까지 이어진 엘마는 주마론이 등장하기 전까지 라이카의 35미리 화각을 담당했지만 성능적으로 크게 뛰어난 평가를 받지 못하다 보니 오늘날 5cm 엘마에 비해 그 인기는 높지 않은 편이다. 지인의 렌즈는 그 중 1940년산 무코팅 버전인데 경통에 상처가 많고 렌즈 내부에도 먼지와 스크래치가 적지 않은 그야말로 전투형이었다. 


LTM을 이용해 라이카 M3에 마운트하고 Zeiss Ikon의 35미리 파인더를 달아주니 제법 예쁘다. 보다시피 워낙 얇고 컴팩트한 렌즈라 침동한 5cm 엘마 못지 않다. 이왕이면 M3보다는 바르낙 바디를 하나 구해서 바디캡으로 써보고 싶은 욕심이 잠시 들지만 일단 결과물을 보고나서 생각하기로 하자. 광학적 성능에 대해서는 솔직히 기대되지 않지만 특유의 '맛'이 나는 렌즈면 좋겠다.




토요일 늦은 오후, 해가 짧은 요즘이라 지금 나가서 몇시간이나 찍을 수 있겠냐는 생각에 잠시 고민이 들었지만 그래도 토요일을 이렇게 허무하게 보낼 순 없지. 신광면에 있는 법광사지에 한번 가보기로 했다. 고즈넉한 폐사지에서 호흡긴 촬영을 할 수 있을테니 익숙하지 않은 이 렌즈로도 무리가 없으리라 생각됐다. 




큰 도로에서 벗어나 차 두대가 지나기도 버거운 좁은 마을길을 통해 한참을 올라가서야 법광사지가 나타났다. 그런데 이건 뭥미. 허허벌판에 드문드문 놓여진 주춧돌과 우뚝 솟은 당간지주 따위를 어떻게 적당히 담아볼까 생각하고 왔더니만 발굴 중이라 출입을 금한다는 안내판이 나를 맞이했다.




발굴 조사를 위해 온통 절터를 뒤집어 놓은데다 유구가 나온 곳은 방수천으로 덮어놓아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자괴감이 들 무렵 역광 테스트나 해보자고 해를 집어 넣어 찍어보았다. 무코팅 렌즈임에도 생각보다는 괜찮은 수준이다. 




해상도야 그리 높지 않지만 부드러운 콘트라스트와 그로 인해 넓은 계조를 보여준다. 대부분의 렌즈가 그러하듯 순광에서 조리개를 조였을 때의 묘사력은 부족하지 않다. 날카로운 선예도와 강한 콘트라스트 등 너무 잘나오기만하는 현행 렌즈에 비해 올드 렌즈가 흑백 사진에 좋다는 이유가 이런 느낌 때문이 아닐까.




법광사지는 완전히 허탕을 친 것이 되었지만 이대로 집에 돌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주변 마을이라도 좀 둘러보자 싶었다. 경사진 산비탈을 따라 이어진 계단식 논과 시골집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인공의 구조물임에도 자연과 하나된 듯 녹아있는 이런 따스한 풍경도 오랜만이다. 팔순이 다된 렌즈로 찍은 결과물이라 그런지 시간이 멈춘듯한 신광면의 풍경이 더욱 옛스럽게 느껴진다. 




집 가까이로 다가가 봤다. 살림 도구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봐 빈집으로 보인다. 애초에 대문은 없었던 것 같고 어설픈 목책만이 주인대신 빈집을 지키고 있다. 투박하게 쌓은 돌담과 3단으로 된 목책을 보고 지인은 제주도에서 찍은 사진이냐고 물었다. 




돌담 옆에 서 있던 감나무의 질감이 좋았다. 늦가을의 시골 정취를 표현하는데 잎이 떨어진 감나무에 달린 감 만한 소재도 없는데 요즘은 시골 마다 감을 딸 사람도, 먹을 사람도 없어 겨울이 지나도록 그대로 감이 달려 있는 경우가 많다. 어릴적 시골에 가서 키보다도 훨씬 긴 장대로 감을 따고 놀던 기억이 난다. 




길을 내려오다 마을의 당나무를 만나서 잠시 멈추었다. 





묵직한 톤이 제법 마음에 든다.




개방 조리개의 느낌은 어떨까 싶어 금줄에 초점을 맞추고 구도를 잡아봤는데 피사체에 좀 더 극적으로 다가섰어야 했나보다. 어중간한 거리 탓에 그리 심도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마을의 안녕을 기원했을 막걸리 한 병이 다소곳이 놓여 있었다.




지대가 높아 논농사보다는 밭농사를 많이 하고 있는 듯 했다. 하우스에서 자라는 시금치의 색이 생기있게 파랬다. 




지도에도 없는 촌 길. 




다시 차에 오르기 전 마을의 모습을 조금 넓게 잡아봤다. 노출을 결정하는데 신중을 기울였던 컷으로 기억된다. 3.5cm 엘마의 조리개 수치는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3.5 / 4.5 / 6.3 / 9 / 12.5 / 18 로 표기되어 있어 익숙치가 않은데다, 초기형 M3의 유럽식 셔터스피드 다이얼까지 더해지니 머리 속이 빙글빙글 돌았다. 이리저리 함수를 끼워 맞추며 겨우 한 컷을 눌렀는데 다행히 결과물은 원하던 분위기로 나와주었다. 




산길을 내려와 곧장 집으로 가려다 큰 도로변에 서있던 신광시장이라는 간판을 보고 혹시나 볼거리가 있나 하고 차를 세웠다. 골목 안쪽으로 향하니 요즘 시골에서 보기 드문 아이들의 소리가 왁자지껄하다. '어? 사진기자 아저씨다!' (노숙자로 안보여서 다행) 




카메라를 들이대자 녀석들이 좋아 날뛰기 시작한다. 법광사지에서 허탕친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밀려오지만 사실 익숙하지 않은 렌즈로 이런 상황을 맞이하고 싶지 않았다. 앞서 얘기했듯 엘마의 이상한(?) 조리개 수치 때문에 지금 내가 놓은 눈금이 조리개 몇쯤 되는지도 확신이 서지 않았고, 초점 맞추고 게눈 파인더로 눈을 옮기자니 정신이 없다. 제발 좀 가만 있어봐라 얘들아.





정신없이 움직이는 녀석들을 노출과 초점을 신경쓰며 찍기는 불가능했다. 결국 믿을건 Kodak 400TX의 부처님같은 관용도와 35미리 렌즈의 심도 뿐. 노출계 꺼낼 생각도 못하고 뇌출계로 대충 때려 잡았다. 흔들리지 않을 만큼만 최대한 느린 속도로 세팅하고 조리개는 조일 수 있을만큼 조인 후 초점을 고정시켰다. 이젠 그냥 찍는거다.




시골에 웬 아이들이 이렇게 있나 싶어 여기에 사느냐 물었더니 외갓집에 놀러온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럼 그렇지. 그래도 외갓집에서 제대로 추억을 쌓고 있는 녀석들이 부러웠다. 




귀염둥이들 :)




수레를 밀던 녀석은 부끄럽다며 한사코 얼굴을 허락하지 않았다.




신나는 한때를 보내고 있는 개구진 녀석들. 아이들은 이렇게 자라야 하는데 말이다.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헤어진 후, 다시 걸음을 옮기다가 이 장면을 마주했고 본능적으로 카메라를 눌렀다. 오른쪽에 있는 여인네와 눈이 마주치면 분위기가 깨어질거라 생각해 마음이 급했더니만 결국 흔들렸다.




면사무소 근처 도로에서도 다니는 차들을 별로 볼 수 없었다. 너무나 한적하고 조용한 동네였다.




제법 쌀쌀한 날씨임에도 신광 분식 앞 평상에 동네 할머니들이 모여 앉아 늦은 오후를 보내고 계셨고




나는 캔커피를 사러 점방에 들어갔다. 평상에 앉아계시던 할머니 중 한분이 주인이셨는지 느린 걸음으로 따라오셨다. 냉장고에는 전기도 들어오고 있지 않았지만 날씨가 추우니 괜찮았다. 동전이 없어 5천원짜리를 드렸더니 거스럼돈을 뒤적이시길래 그냥 담배 한갑도 같이 샀다. 내가 피우는 담배는 없었다.




점방의 기둥에 붙어있는 '간첩 잡자' 표어. 저런 것도 오랜만이다. 유리창에 흐릿하게 비친 아반떼가 아니었다면 시대를 가늠하기 어려운 사진이었이라. 해가 거의 떨어진 상황이라 콘트라스트 약한 엘마가 제대로 표현해줄까 걱정도 되었지만 보다시피 멋진 톤을 보여주고 있다. 




필름이 두 컷 정도 남았었다. 

'할매! 가게 앞에서 사진 한장 찍어드릴게요. 나와 보세요.'

'다 늙은 할매 뭐할라고, 안찍는다~~'

'에이, 한번 나와보세요. 할매 가게 앞에서 사진 한장도 안찍어보셨죠? 내가 좋은 카메라로 찍어드릴게요.'

그러고 보니 평생을 지내온 집이자 일터인 점방 앞에서 찍은 사진이 없다고 생각되셨는지 그제서야 할머니는 머리를 정리하시며 못이기는 척 밖으로 나와 앉으셨다. 뻣뻣한 포즈셨지만 그게 뭐가 중요한가. 남은 두 컷을 할머니에게 할애했다. 물론 그러면서도 '이 놈의 엘마가 제대로 나와줘야 할텐데.' 하는 걱정이 가시지 않았다. 처음 쓰는 렌즈를 신경쓰이는 촬영에 투입하는 건 역시나 부담스럽다. 어쨌든 여든이 넘으신 할머니를 그와 비슷한 세월을 보낸 엘마로 담아 드리면서 촬영은 마무리 되었다.  

그렇게 총알이 떨어진 나도 카메라를 내려놓고 할머니 옆에 앉았다. 신광면에 사람이 북직이던 재미나던 시절 얘기와 법광사지가 밭이었 때 밭을 갈다가 주웠던 기와조각 등의 얘기, 공부를 많이 못시켜서 미안한 자식들 얘기와 이 시골에도 대형 마트가 들어와 이제는 담배 말고는 팔리는게 없다는 점방 얘기까지. 제법 긴 시간동안 할머니와 얘기를 나눴다. 나중에 장날에 한번 다시 놀러오겠다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할머니도 저녁을 차려야겠다며 들어가셨다. 


그리고 일주일 후, 나는 다시 신광면에 들렀고 점방으로 가서 할머니를 불렀다.


'할매! 내 또 왔다!'



2016.12.03. 포항 신광면


Leica M3 / Elmar 3.5cm f3.5 / Kodak 400TX / IVED




Leitz Elmar 3.5cm f3.5

생산시기 : 1930 ~ 1949년
생산수량 : 40,000여대
최단초점거리 : 1.25m
렌즈 구성 : 3군 4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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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5. 포항

Leica M3 / Elmar-M 50mm f2.8 / Ilford HP5+ 400 / I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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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3. 포항

Leica M3 / Elmar 3.5cm f3.5 / Kodak 400TX / I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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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행은 여러가지로 참 편리하다. 

우선 생김새가 비슷하여 아무 말 않고 가만히 다니면 이방인 티가 많이 나지 않아 시선에 대한 부담이 적고(실제 나에게 길을 물어보거나 사진을 좀 찍어달라며 부탁하는 일본인들도 많았다.) 일어나 영어를 못하거나 히라가나를 몰라도 한자를 배워온 우리는 그것만으로도 필수적인 정보는 대략 식별할 수 있다.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이 잘 갖추어져 있고 치안도 좋아 돌아다니기에 불편함이 적으며, 사람들은 하나같이 친절하고 나긋나긋 조용하다. 현지식도 우리 일상에서도 친숙한 일식이라 거부감이 들 것이 거의 없다.  
그래서 나도 일본 여행을 좋아한다. 여느 관광객들처럼 대형 쇼핑몰이나 백엔샵 따위에 들러 물건을 고르며 호들갑을 떨기도 하고, 유명하다는 맛집을 찾아 줄을 서서 기다려 가며 식도락에 탐닉하기도 하고, 사진도 신나게 찍으며 즐겁게 놀다 오곤 한다. 하지만 그런 즐겁고 편리한 일본 여행의 와중에 한편으로 나는 마음 한 구석이 씁쓸하고  불편해짐을 자주 느꼈었다.

성숙해져야 할 부분이 너무나도 많은 우리의 사회 문화적 수준은 그나마 많이 따라갔다고 하는 일본과의 경제력 격차만큼 금방 따라갈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여러 경우에서 확인할 수 밖에 없었고, 강박적이라고까지 보여지는 그들의 타인에 대한 철저한 배려, 그리고 질서 의식에 대한 부러움은 괜한 반발심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그들에게서도 뭔가 못난 모습을 발견해보려는 쓸데없는 짓을 하는데 시선을 낭비하기도 했다.


무단횡단하는 아가씨1




무단횡단하는 아가씨2




그리고 간혹 다소 차갑고 고압적인 태도의 공무원 등을 마주치게 되면 일제 시대에 그들이 우리를 대했을 그런 모습이 자꾸만 오버랩되며 식민지의 2등 신민이 겪었을 기죽고 서러운 감정이 어떠했을까 하는 씁쓸한 기분이 못내 가시지 않는 것이었다. 글을 쓰면서 다시 생각해봐도 비싼 돈 들여 재미있게 놀자고 가서는 이딴 생각이나 하고 다녔으니 나도 참 피곤한 사람이다 싶다.


삐딱하게 서서 '저건 뭐냐?' 하듯 나를 쳐다보던 츠키지 시장 입구의 경비원




반면 서양 관광객들 옆에선 기죽은 듯 왜소한 일본인의 표정에서 페리 제독과 맥아더 장군을 대했던 그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런 일본을 작년 여름에 또 한번 찾았다. 어쨌든 일본 여행은 ‘편리’하니까. 도쿄는 두번째였다. 특별히 볼거리가 있어 꼭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곳은 아니었지만 2004년에는 일정상 패스했던 우에노 공원을 이번에는 들러보기로 했다. 그저 도쿄 시민들의 편안한 일상이 보고 싶었다.
























무더운 여름날, 공원의 큰 나무 그늘 아래선 가족들이 모여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잘 놀고 있다가 카메라를 겨눈 나를 보고 다소 당황한 듯한 여자아이들에게 괜시리 미안해졌고, 수돗가에서 물을 마시던 여자아이도 참 예뻤다. 자전거를 타고 산책나온 단란한 한 가정도 보기 흐뭇했고, 커피숍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과 젊은 청년이 만들어주는 막대 풍선을 구경하는 아이들도 평화로웠다. 그들을 보며 공원을 거닐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아이들도 70여년 전이었다면 오늘같은 우에노 공원의 평화로움은 누릴 수 없었을테지..’

불행했던 그 시대의 아이들은 B-29 편대의 공습을 피해 겁에 질려 방공호로 뛰어들어야 했을 거고, 소이탄을 맞아 잿더미로 변해버린 동네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려야 했을 것이다. 잠들 때 마다 ‘엄마~ 아빠는 언제 와?’ 물으며 간절히 기다리던 그 아빠는 이오지마나 콰달카날에서 반자이 돌격으로 허무하게 삶을 마감했을 수도 있고, 아이들의 큰 형은 꽃다운 나이에 해군 항공대 소위가 되어 제로센 전투기를 겨우 조종할 수 있게 되던 날, 돌아올 수 없는 연료와 폭탄을 싣고 날아올라 오키나와로 몰려오는 미해군 함대에 부딪혔을 것이다. 그런 그의 비행기를 향해 사쿠라 가지를 흔들어주며 배웅하던 여학생들은 터져나오는 울음을 삼켰겠지…

우에노 공원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나니, 행복해 보이는 오늘 그들의 모습이 새삼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여겨졌다. 모두가 살기 어렵고 힘들기만한 요즘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인간성이 파괴되고 말살되는 전쟁과 같은 그런 처절한 시대는 아니지 않은가. 그런 불행한 시대를 겪지 않았음에, 그래도 평화로운 지금에 살고 있음에 감사했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우에노 공원 사진들이 내게 의미가 있는 것은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동안, 잠시나마 일본 여행에서 느껴왔던 불편함이 사라진 순간이었고, 그 마음으로 찍었던 사진들이기 때문이다.

군국주의 일본이 저지른 수많은 죄악과 여전히 진심어린 사과를 하지 않는 그들의 몰염치성에 지금도 분노하고 있다. 그들의 악랄한 식민 지배를 겪은 불행한 나라의 후손인지라 잊어서도 안될 일이고 그렇기에 일본 여행은 편리하면서도 내게는 또 불편한 것이었지만 우에노 공원에서는 잠시 그 마음이 누그러질 수 있었다. 문득, ‘그래.. 모든 인간은 행복해야 해.’ 그런 생각이 들었다. 타인을 불행하게 만들지 않는 범위 내에서 말이다. 모두가 그랬으면 좋겠다.



2016.08.04. 도쿄

Leica M3 / Elmar-M 50mm f2.8 / Kodak 400TX / I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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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ca M3 / Elmar-M 50mm f2.8


초기형 M3를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로 더블 스트록의 재미와 더불어 '도그이어(Dog Ear)' 혹은 'Buddha Ear' 라고 불리는 스트랩 고리의 예쁜 모양을 들 수 있다. 이 도그이어 스트랩 고리는 M3에서도 후기형으로 넘어가면 보다 단순한 형태로 변하게 되고 이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좌 : 일반적인 라이카 M바디들의 스트랩 고리(M4) / 우 : 도그이어 스트랩 고리 (M3 초기형)


두가지 모양을 놓고 비교해보면 일반적인 스트랩 고리에 비해 도그이어 고리의 모양이 좀 더 유려하고 바디와의 이음 부분에도 보다 디테일이 있어 멋져 보이긴 한다. (사실 눈에 확 띄는 부분은 아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디자인 뿐 아니라 높이의 차이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 때문에 일반적인 라이카 M바디용으로 발매된 하프 케이스들 대부분이 도그이어 버전 M3에 잘 맞지 않는 문제가 발생한다. 




대부분의 라이카용 하프 케이스들이 똑딱이 방식으로 바디와 고정되는데 일반형 케이스들은 저 똑딱이와 구멍의 높이가 낮다보니 도그이어 버전에는 잘 맞지 않는 것이다. 지인들이 가지고 있는 KIMOTO, A&A 제품들 모두 마찬가지였다. (억지로 하면 겨우 똑딱이를 잠글 수는 있었지만..) 이렇다 보니 M3 도그이어 버전 사용자들은 하프 케이스 구하기가 쉽지 않은 편이었다.




그러던 차에 장터에서 좋은 물건을 발견했다. 럭스케이스에서 나온 CSE-17이란 모델명의 Leica MP3용 하프 케이스였다. 한정판으로 발매되었던 MP3는 M3 형태의 디자인을 복각한 모델로 스트랩 고리 역시 도그이어 버전이 적용되었다. 당연히 이 케이스는 M3 도그이어 버전에도 딱 맞는다. 




Leica MP3. 셀프타이머가 없다는 점을 제외하곤 도그이어 스트랩 고리까지 M3와 거의 같다. (필름카운터는 M2 스타일)




전체적인 핏팅이 상당히 좋다. 케이스를 벗기고 씌울 때도 너무 빡빡하지 않고 적당하다. A&A 제품에 비해 전면을 커버하는 면적이 더 넓어 셀프타이머 레버가 숨을 듯 말 듯 자연스럽게 커버된다. 저 부분의 디자인이 개인적으로 참 마음에 든다.




지인의 Leica M4와 A&A하프케이스. 전면을 커버하는 면적이 차이남을 알 수 있다.



후면부도 뒷덮개의 형태에 따라 자연스럽게 잘 길들었다. 




가죽의 두께는 A&A 제품보다 약간 얇은 듯하다. 덕분에 바디와의 밀착감은 더 나은 느낌.




바닥에 LUXECASE가 새겨져있다. 





가죽의 품질도 우수하고 디자인도 깔끔하며 피팅이 참 좋아 전체적으로 아주 만족스럽다. 무엇보다 하프 케이스 선택의 폭이 좁은 M3 초기형 사용자들에게는 수작업으로 의뢰하지 않아도 기성품으로 구입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 아닌가 싶다. 날씨도 추워졌으니 올해는 M3를 좀 대우해주며 데리고 다녀야겠다.


2016.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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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hoto-Nomad]

지인이 Leica M7을 팔아먹고 M4를 들였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아는 분에게 구구절절한 문자로 구애한 끝에 데리고 온 것!) M4는 M3나 M2에 비해 생산량이 적은 편이라 은근히 보기 힘들어 나도 실물은 처음 만져본다. MP와 특이한 한정판 모델들을 제외하고는 M3, M2, M6, M7 까지 두루 겪은 지인의 마지막 희망이던 M4를 아주 좋은 상태의 물건으로 구해 뿌듯하다. 렌즈는 기존에 사용하던 Summicron-M 35mm F2.0 ASPH. 




사실 구입하고 나서 며칠 지난 것이긴 한데 이제서야 첫 필름을 넣어 본단다. 이제 궁금한 것도 없는지 느긋하기만 한 지인. 나같음 도착한 날 바로 한 롤 찍었음.




평소에 카메라에 하프케이스 따위는 씌우지 않던 그였지만 이번엔 좀 곱게 써주고자 A&A 가죽케이스까지 장만해서 대우해 주기로 했다. 사실 M6 이전의 모델들의 볼커나이트는 오랜 세월이 지나 경화로 인해 갈라지거나 떨어지는 경우가 생기기에 관리해 주고 보호해 주는 것이 좋다.




필름만 안넣은게 아니라 스트랩도 아직 안달아뒀다. 카메라는 수없이 바뀌었어도 바뀌지 않고 있는 A&A의 실크 스트랩 ACAM-301. 스트랩치고 무지막지한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 눈에는 허접스러워 보이는지 우리 와이프는 '카메라는 비싸면서 줄은 왜 그런걸 끼웠어?' 라고 했다.. 



'M4의 첫 컷은 널 찍어줄게!' 영광이네유 ㄷ




M4의 파인더를 찍어 보았다. 아주 밝고 깨끗한 상태다.




이번엔 내 M3의 파인더. 일반적인 0.72배율과 다른 0.91배율로 50미리에 특화되어 있다.




M4와 M3. 이 M4는 셀프타이머 레버, 화각 변환 레버, 필름 장전 레버가 M3 스타일로 교체되어 있어 오리지날 M4의 외모와는 조금 달라졌지만 예쁘긴 더 예쁘다. 물론 오리지널리티를 중시한다면 다소 아쉬울 수도 있다.




손에 쥐고 M4를 찍어본다. 




흑백으로 바꿔서. 라이카 브로셔에 나온 그 느낌이 나게 하고 싶었으나 그냥 그렇네.


만져보니 역시 기계식 M형의 최종 진화형이라 불릴만큼 우수한 카메라임에 틀림없다. 편리한 퀵로딩 스풀과 꺾여진 리와인딩 레버는 M4를 시작으로 현행의 M바디까지 이어지고 있는 부분이며 노출계도 없는 완전 기계식의 설계와 황동 부품들이 만들어주는 조작감도 훌륭하다. 최고의 M바디는 M3라하지만 35미리가 주력이라면 M2보단 M4를 선택하고 싶어진다. 이 정도 바디가 손에 들어온 것은 인연!


2016.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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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08. 포항

Leica M3 / Elmar-M 50mm f2.8 / Kodak 400TX / I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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