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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2  동경 황성

전형적인 일본식 축성법을 보여주는 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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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02  일본 도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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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01  일본 도쿄

그래도 젊었던 시절이었나부다.
야경이 있는 걸 보니 삼각대를 대낮부터 들고 다녔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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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01  일본 도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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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01  일본 도쿄

일본스럽던 느낌의 거리.
사실 도쿄나 오사카는 서울과 다를바가 없어 별로 흥미롭지 않았다.
다음엔 규슈나 훗카이도를 가봐야겠다. 일본은 시골 여행이 더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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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 01  베트남 호치민시

호치민에서 지내는 동안 자주 만나서 놀던 친구들.
호치민 정보대학교 한국어학과 3학년이던 얘들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한국말을 잘했다.
귀국하고 나서도 메일을 자주 주고 받았는데 사진을 보내준다는 약속을 아직도 못지키고 있으니 미안할 뿐이다.


2003.07.23 청계천 삼일아파트


2003년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에 의한 청계고가 철거와 청계천 복원 사업은 단연 나의 관심을 사던 사건이었다. 마침 발표수업 과제로 청계고가 철거에 관한 조사를 해왔던 터라 충분한 back data도 수집된 상태였다. 하계훈련을 들어가기 전에 틈틈히 청계8가 일대를 돌아다니며 고가가 사라지기 전의 모습을 남겨두었다. 다만 청계고가의 철거 시작일에는 꼼짝없이 성남 학군교에서 군사훈련을 받던 중이라 국방일보를 보며 안타까워할 뿐이었다. 훈련을 퇴소하자마자 다시 카메라를 들고 청계천을 찾았다. 청계고가는 이미 철거작업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다. 청계천 일대를 좀더 높은 곳에서 조망하고자 삼일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갔다가 이 할아버지를 만났다. 고향이 전주라는 이 할아버지는 청계천에서만 30여년을 살아오신 분이셨다. 80이 넘으셨지만 정정하셨던 할아버지의 말씀은 이가 많이 빠졌던 관계로 모두 알아듣기는 어려웠지만 아주 담담한 입장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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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1 안동 풍산장터

술마시던 중 갑자기 안동가자는 동기녀석의 말에 따라 자리를 박차고 나와 카메라를 챙겨들고 청량리 역으로 달려가 마지막 무궁화호에 몸을 실었다. 흐린 아침에 찾은 풍산장에서 유명인사라는 할아버지의 말씀에 모델료(?)로 소주 한병과 새우깡 한봉지를 드린 후에야 촬영 협조를 얻을 수 있었다. 주변의 할아버지들은 '영감쟁이 사진 찍는데 뭐하러 그런걸 주냐?'며 그냥 찍으라고 하셨고.. 뻥하는 소리에 놀라 엉겁결에 셔터를 눌렀는데 찍혔는지도 몰랐다. 필름을 와인딩하니 돌아가기에 찍혔었구나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사실 이 사진은 내가 중2때 이후 10여년 이상 사진을 찍어오며 가장 맘에 드는 사진이었지만 아쉬운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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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1 호치민시

우리로 치면 캐러비안베이 비슷한 곳에서 놀던 애들.
180미리로 멀리서 겨눴음에도 카메라를 인지하고 포즈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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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1  베트남

월남전 때 미군이 버리고 갔을 듯한 1/4t Jeep를 잡아타고 사막처럼 넓은 Muine해변의 유명한 해안 사구를 보기 위해 달렸다. 굽이굽이 해안도로를 돌자 마자 눈 앞에 펼쳐지는 이 어촌 마을의 모습을 보는 순간 탄성을 지를 수 밖에 없었고 센스있는 운전기사 아저씨는 차를 세워주었다.

2007. 12. 31. 포항-동대구간 통일호의 마지막 운행

2008년 부터는 무궁화호가 대신하게 되지만 요금은 거의 2배로 올랐고
지하철같은 구조의 통일호에 비해 내부 여유공간이 부족한 무궁화호 객실이
많은 짐을 가지고 기차에 오르는 시골 할머니들에게 과연 어울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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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1  호치민시

대부분의 개발도상국들이 그러하듯 자동차보다는 오토바이가 가장 대중적인 교통수단이다. 길거리에서 신호등을 찾기는 쉽지 않고 교차로에서도 마찬가지다. 인구밀도가 상당히 높은 편인 호치민시에서 수많은 오토바이들로 인해 공기는 좋지 않은 편이고 이처럼 뒤엉켜 도로를 질주해도 내가 본 교통사고는 한 건도 없었다. 뭐 이런 나라가 다 있나 할 수 있지만 그 들 나름의 질서 속에 오토바이들은 제 갈 길을 달려가고 있었다. 다만 불안한 마음에 베트남 친구들에게 제발 헬멧 쓰고 다니라고 했지만 더운 나라에서 그 것은 상당히 귀찮은 일인듯 그다지 귀담아 듣는 것 같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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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1  호치민시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았으나 여전히 베트남에는 불교인구가 가장 많은 듯 하다.
우리와 자주 만났던 한 여대생은 교회에 다닌다는 친구의 얘기를 듣자 이해를 못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만 베트남 사람들은 그다지 종교에 대해 심취하지 않는 모습이었는데 사실 현실에 충실한 삶이 어쩌면 가장 바람직하지 않나 싶다.

 반면 티벳 사람들이 그들의 티벳불교(라마불교)에 지나치게 심취한 나머지 생업을 포기하고 오체투지에 나서는 모습은 사뭇 감동적이고 영적으로 아름다워 보이지만 당나라의 공주가 시집올 만큼 강성했던 토번왕국이 쇠약해진것도 어쩌면 불교의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동일하게 불교를 받아들였어도 '살생유택'이라 하여 필요하면 살생도 가능하다고 자기식대로 해석하여 통일 전쟁을 수행한 신라와 비교되는 부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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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1. 12 호치민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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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1  베트남 호치민市

짬을 내어 베트남 전통 수중공연을 보러갔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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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1  베트남
다랏을 둘러보고 돌아오던 길.
어둑어둑해진 밤이 되어서야 숙소에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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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9  몽골 울란바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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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11. 포항 득량동. 곧 사라질 모습들

어릴적엔 이렇게 낡았던 13평짜리 아파트에서 살았었다.
그래도 좁은 줄 몰랐고 불편한 줄 몰랐었던 시절이었는데..
요즘은 삶의 눈높이를 어느 정도로 잡아야할 지 헷갈리는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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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9   울란바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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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횡단 구간에서 환바이칼 철도 구간으로 나뉘는 작은 역. 슬로쟌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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