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드버드 구입 이후 좀 찬밥신세된 것 같은 내 첫 기계식 시계 Bulova Accutron 26C02.. 전역을 앞둔 4년전인 2006년 5월에 지를 때만 해도 $1,000가 넘는 가격 앞에서 수많은 고민을 했어야 했다. 그 정도 가격을 지불하고 산 시계라면 평생 만족하고 차고 다니리라는 귀여운 착각과 꼭 그래야한다는 자기 최면까지 걸며 질렀던 첫 기계식 시계. 제대로 된 퀄리티의 사진 한 장 찍어준 적이 없는 것 같아 몇 장 찍은 김에 간단한 리뷰를 써보기로 한다.




26C02의 전면 샷. 
용두 제외 42mm의 적당한 케이스, 날카롭고 잘 빠진 형태의 핸즈, 블랙 다이얼, 러그의 모양까지 균형이 잘 잡힌 안정적인 디자인이다. 케이스부터 핸즈까지 모두 유광이라 블링블링하지만 대신 기스에는 취약하다는 거. 한차례를 폴리싱을 거쳤음에도 기스는 대박이다;; 유리는 사파이어 크리스탈이라 전역 직전에 ATT도 뛰고 여러차례의 부딪힘을 겪었지만 기스없이 깔끔. 단면 무반사 코팅이 되어 있어 빛의 각도에 따라 보라색이나 파란색을 띈다.




핸즈의 마무리와 광태도 훌륭하고 야광 도료도 깔끔하게 발라져 있다. 1분 사이에도 5등분 눈금이 세밀하게 찍혀있는 등 인덱스의 프린트 수준도 꽤 괜찮은 편이다. 카운터의 배치는 7750 무브먼트를 사용한 전형적인 형태이며 베젤 안쪽엔 평균 속도를 측정할 수 있는 타키미터가 표시되어 있다. 브랜드 이미지 티나는 25 JEWELS 는 좀 빼주었으면 좋았으련만 자랑스레 다이얼에 찍혀있다는 거;; 굳이 중요하지도 않은 보석수가 다이얼에 적혀있단 것 만으로도 시계를 잘 알지 못하는 일반 소비자를 주 타깃으로 노리는 부로바의 현실을 알 수 있는 부분.    




케이스의 두께는 14mm정도로 두꺼운 편이지만 시각적으로 최대한 슬림하게 보이고자 케이스백과 베젤이 안쪽으로 좁아들어가있다. 덕분에 착용시에는 생각보다 두꺼워보이지 않는다는거~ 

크로노그래프 작동을 위한 두 개의 버튼과 클래식한 멋의 양파형 용두가 잘 어울리는 편이다. 캠방식의 7750이라 스탑/스타트 버튼은 상당히 딱딱하다. 처음에는 원래 이런가?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지만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오토매틱 크로노그래프 시계에 7750이 베이스 무브먼트를 차지하는 오늘의 현실에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부분이다. 크로노그래프 스타트시에는 역시 약간의 점핑 현상도 보인다. 리셋시에는 퀵리턴 방식으로 잽싸게 날아오는데 다행히 12시 방향에서 어긋나는 일은 거의 없다.




버클은 디버클로 되어있으며 부로바의 마크가 새겨져 있다. 탱버클만 사용해 본 나는 처음 이 시계를 샀을 때 디버클의 편리함에 무척 매료되었었다. 상대적으로 가죽도 덜 상하고 시계를 벗을 때도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스트랩은 구입당시엔 갈색 무광 가죽이었으며 사진의 스트랩은 3번째로 교체한 것이다. 몇년전부터 다니는 남대문의 한 가게에서 맞춘 것인데 품질은 아주 훌륭하진 않지만 어차피 스트랩은 소모품이라 큰 돈을 들이고 싶지 않다.




케이스백은 시스루백으로 되어있어 무브먼트를 감상할 수 있다. 로터의 각인 말고는 거의 수정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밸쥬7750이 보인다. 시계를 좀 알게 되고 나면 이런 수정도 되지 않은 별 볼 것 없는 무브먼트를 보는 것 보다 차라리 야무진 솔리드 케이스백이 낫다고 얘기들을 하지만 입문자들에게 시스루백은 정말 매력적이지 아닐 수 없다. 살아 숨쉬는 듯한 무브먼트의 움직임을 직접 보며 기계 자체에서 공예품과 같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보통 시계와 도대체 뭐가 다른냐는 주변 사람들의 질문에 간단하게 시계를 풀어 뒷면을 보여줄 수도 있다. 뒷면의 유리는 전면과 달리 사파이어 크리스탈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기스가 꽤 낫기 때문)




7750의 특징인 박력있는 로터 회전의 모습! 7750은 단방향 감기 로터라 역방향으로 헛돌때는 빠른 속도로 웅웅 돌아간다. 이 때 들리는 소리와 느껴지는 진동이 꽤나 남성적인데 로터가 헛돌면서 느껴지는 박력이 좋아 괜히 손목을 튕기곤 했다. 어느 모델이 되었건 7750 무브먼트는 한번 정도는 느껴볼만한 것 같다. 단방향 감기 로터라 감기 효율이 떨어질 것도 같은데 조금만 착용해도 금방 풀 와인딩이 되는 듯 이틀정도 차지 않아도 무사히 잘 굴러간다. 스펙상 7750의 파워리저브는 42시간 정도 된다.




기계식 입문자에게 100만원 정도의 예산으로 크로노그래프를 원한다면 추천할 만한 모델이 아닐까 싶다. 같은 7750을 넣고 꽤나 인기를 끄는 해밀턴의 재즈 마스터나 카키 X-wind보다 가격도 저렴하며 더욱 고전적이고 우아한 느낌을 주는 드레스워치로도 괜찮은 선택이 될 수 있을듯.




오늘도 다른 많은 시계들을 눈요기했지만 지금도 4년전 5월로 돌아가 100만원의 돈을 가지고 하나의 기계식 시계를 고르라고 한다면 이 녀석만한 시계도 없을 것 같다. 일오차도 -5초 정도로 생각보다 양호해 기본이 탄탄한 시계라 새삼 느끼게 된다. 부로바의 말아먹을 이미지 때문에 인기도 없는데다 이미 한번 폴리싱을 거친지라 리세일하기도 글러먹었고 천상 이 녀석은 내가 평생 안고 갈 시계일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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