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3.25.


Leica M3 / Orion-15 28mm f6.0 / Fujifilm C200 / IVED


Zeiss Opton Biogon 35mm f2.8 T




RF카메라를 사용하는 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화각은 단연 35미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 좁지도 넓지도 않은 화각 탓에 편안하게 두루두루 운용할 수 있는 35미리 렌즈는 거리 사진과 보도 사진 분야에서 널리 인기를 끌었고 각 메이커들은 저마다 우수한 35미리 렌즈의 개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하지만 20세기초 표준렌즈와 장초점 망원렌즈의 발전에 비해 광각렌즈의 발전은 상대적으로 더뎠고 오늘날까지도 성능을 인정받는 '제대로된' 35미리 렌즈의 출현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 


소형카메라의 선두주자이던 라이츠사는 1930년 Elmar 3.5cm를 출시했다. 당시 자이스이콘은 아직 Contax I 조차 발매하지 못했던 때였으니 라이츠의 엘마는 가장 빨리 등장한 35미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에 자존심이 상했던 것인지 Contax I이 출시되고 난 후에도 칼 자이즈는 35미리를 아예 건너 뛰어버리고 더 넓은 화각인 28미리 테사를 발매하며 그들의 기술력을 과시한다. 그리고 정작 35미리 화각은 Contax II가 발매되고 난 뒤인 1937년에 처음 출시하게되니 바로 칼 자이즈 예나 비오곤이었다. 비로소 '제대로 된' 35미리 렌즈가 사진계에 등장한 것이었다.



역사적인 첫번째 비오곤. Carl Zeiss Jena Biogon 35mm f2.8 (uncoated)


35미리 비오곤은 당시로선 대적할 상대가 없는 최고의 35미리 렌즈였다. 라이츠에 비해 한발 늦었던 만큼 성능상으로 엘마를 완전히 압도하고 있었는데 최대 개방값은 f2.8에 달했고 놀라운 해상도와 극도의 왜곡 억제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는 후옥의 크기가 극단적으로 크고 플렌지 백이 엄청나게 짧은(21미리 비오곤보다 더) 특유의 설계로 달성할 수 있었던 놀라운 성능이었다. Elmar 3.5cm의 최대개방값은 f3.5에 머물렀고 해상도는 사실상 열악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당시 비오곤과 엘마의 성능 격차가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2차대전 전에 생산되었다고 하여 전전형(pre war) 비오곤이라 불리게 되는 Carl Zeiss Jena Biogon 35mm f2.8은 종전 이후까지 생산이 지속되며 당대 최고의 35미리 렌즈라는 지위를 내려놓지 않았다. 후기에 들어서는 T코팅이 더해지는 개량이 이루어졌고 전쟁 기간 중에는 특이하게도 라이카 스크류 마운트용으로도 잠시 생산되었다. 



라이카 스크류 마운트용 35미리 비오곤. 


전쟁 중 드레스덴의 자이스이콘 공장이 폭격을 맞아 카메라 생산을 못하게 되자 예나의 렌즈 공장 역시 위기에 처한다. 렌즈를 만들어봐야 이를 장착할 카메라가 없는 것이었다. 이에 궁여지책으로 자이스이콘은 콘탁스용 렌즈들을 라이카용으로 제작하여 판매처를 뚫기로 한다. 종전 후 이같은 변종들은 더이상 생산되지 않았고 생산기간이 짧다보니 생산량도 상당히 적어 구하기는 물론 쉽지 않다. 하지만 구할 수만 있다면 마운트할 수 있는 바디가 제한적인 콘탁스용에 비해 훨씬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하지만 명성을 날리던 전전형 비오곤은 1950년, Contax IIa가 등장하면서 뜻밖의 문제에 맞딱드린다. 앞서 얘기한 커다란 후옥과 짧은 플렌지백 때문에 Contax II에 비해 소형화된 Contax IIa에 장착이 되질 않는다는 점이었다. 최고의 성능을 자랑하던 비오곤 35미리를 쓸 수 없다니, 이건 심각한 사안이었다. 물론 자이스이콘이 이같은 문제를 몰랐을리는 없고 바디의 소형화를 달성하기 위해 희생시켰을 가능성이 크다. 어쨌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원투수로 동독 칼 자이즈 예나에서 설계된 Biometar 35mm f2.8이 급히 투입되게 된다. 이때만 해도 영구적이고 완전한 분단이라 여겨지지 않았던 터라 동독과 서독의 교류는 유지되고 있었고 비오메타를 공급받을 수 있었다는 점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비오곤과 비오메타. 한 눈에 봐도 렌즈 후옥의 길이가 짧은 것을 알 수 있다.




 Zeiss Opton Biogon 35mm f2.8 T



하지만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될 수는 없었고 서독의 Zeiss Opton은 곧 새로운 비오곤을 출시하게 된다. 덕분에 위에서 언급한 비오메타 35미리는 1,614개만 생산되고 사라지게 되어 레어 아이템으로 등극하게 된다. Zeiss Opton Biogon 35mm f2.8은 이전의 비오곤과 구분하기 위해 전후형 비오곤으로 불리게 되는데 Contax IIa에 마운트 할 수 있기 위해 새롭게 설계된 것으로 후옥의 크기가 작아지고 길이가 짧아진 것이 특징이었다. 출시 초기부터 단종 때까지 코팅의 변화 외에는 구조적으로 크게 변하지 않은 50mm Sonnar와는 달리 흥미로운 변화라 할 수 있다. 아래의 그림을 통해 그 변화를 확인해보기로 하자.





최초의 비오곤은 조나 타입으로부터 파생되었는데 후옥이 크기가 전옥보다 큰 특유의 구조를 확인할 수 있다. 전전형 비오곤은 전쟁 후 두갈래로 나뉘어 발전하게 되는데 전쟁 후 소련에서 생산된 주피터-12 렌즈는 전전형 비오곤의 설계를 거의 그대로 이어받은 반면, 서독에서 생산된 전후형 비오곤은 앞서 언급했듯 Contax IIa에 사용되기 위해 후옥의 크기가 작아지고 길이도 짧아진다. 




마운트된 전후형 비오곤. 짧아졌다지만 필름면 가까이 상당히 들어와있음을 볼 수 있다.




전전형 비오곤(좌)과 전후형(우) 비오곤의 비교. 후옥의 길이가 짧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바로 이 점이 전후형 비오곤이 가지는 핸디캡이었다. 바디에 맞추기 위해 비오곤의 완벽한 설계에서 타협이 이루어졌다는 의심을 받게 된 것이다. 이때문에 전후형 비오곤은 콘탁스 마운트 비오곤 타입 35미리 렌즈들의 성능을 논할 때 주피터-12 보다도 한수 아래라는 평가를 받는 렌즈가 되고 말았다.


이것은 사실일까? 실제 전전형과 전후형 모두를 써본 유저들의 대체적인 평가는 해상도 만큼은 전전형이 탁월하다는 쪽이다. 전후형 비오곤의 짧고 작아진 후옥을 고려해 봤을 때 전전형에 비해 해상도와 왜곡 억제력이 다소 떨어졌을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 하지만 나는 아직 두 렌즈를 1:1로 비교한 결과를 보지 못해서 선뜻 수긍이 가지는 않는 것이 사실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과연 전후형의 해상도가 다소 떨어졌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확연한 차이가 날 것 같지는 않다. 엘마와 비오곤이 60:100이라면 전후형과 전전형은 90:100의 느낌은 아닐런지. 그리고 해상도 측면에서만 렌즈를 평가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더군다나 고해상도 렌즈와 고화소 이미지 센서들이 당연시된 요즘 시대에 올드 렌즈를 사용하면서 기대하는 요소는 뛰어난 해상도만은 아니란 점에서 전통적인 시각을 무조건 따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 전후형 비오곤에 대한 평가는 여러가지 개선점들을 고려하여 다시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Contax II에서 IIa로 이어지면서 이루어진 소형화, 그리고 디자인의 개선은 비오곤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루어졌다. 전전형 비오곤이 다소 투박한 디자인과 마감을 보여줬다면 전후형 비오곤은 훨씬 세련된 디자인과 컴팩트함을 이루어냈고 크롬 코팅의 품질도 개선되어 아름다운 광택을 자랑한다. 거기에다 개선된 T코팅이 적용되어 역광에서는 물론 칼라 필름 사용시에도 보다 안정적인 결과물을 보장해준다. 결국 종합적으로 고려해봤을 때 전후형이 보다 우수한 성능이라고 봄이 더 타당하지 않겠냐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 바닥이 그러하듯 객관적 성능과 정밀하게 측정된 수치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전설'은 분명 존재한다. 전전형 비오곤은 그런 면에서 전설의 대열에 오른 렌즈였지만 전후형 비오곤은 아쉽게도 그러질 못했다. 그렇게 된 이유로 두가지를 들고 싶다. 


① Biogon 21mm f4.5의 출현. 

비오곤 35미리의 출시 후 얼마지나지 않은 1954년 칼 자이즈는 21미리라는 놀라운 화각의 비오곤을 출시한다. 전에 없던 광활한 화각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충격적이었을 이 렌즈는 광학적 성능마저 뛰어났다. 비오곤하면 21미리가 먼저 떠오를 정도로 임팩트가 강한 렌즈의 등장으로 상대적으로 35미리 비오곤은 한마디로 묻히게 된다. 


② 라이츠의 약진

앞서 언급했듯 전전형 비오곤이 출시되던 당시 라이츠에서 내세울 수 있는 35미리 렌즈는 해상도 낮고 코팅도 적용되지 않고 개방값도 어두운 Elmar 뿐이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당시 비오곤의 성능은 라이츠를 포함한 여타 경쟁사들의 렌즈들을 압도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전전형 비오곤은 독보적인 위치를 확보하고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전후형 비오곤은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라이츠는 엘마에 비해 모든 면에서 성능이 향상된 Summaron 35mm를 출시하고 있었고 1958년에는 그야말로 신화가 된 렌즈, Summicron 35mm 1st, 일명 8매를 선보이게 된다. 이건 그야말로 두 회사의 35미리 경쟁에서 종지부를 찍어 버리는 일이었다. Contax IIa가 61년 단종되며 콘탁스 마운트 렌즈들 역시 같은 운명을 따르게 되면서 주미크론에 대항할 f2.0개방값의 비오곤은 결국 시장에 선보이지 못했다. 이처럼 전전형과는 달리 경쟁 상대를 압도하지 못했던 상대적 지위 역시 전후형 비오곤이 다소 박한 평가를 받게된 이유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이러쿵 저러쿵 하는 호사가들의 얘기를 별개로 치더라도 전후형 비오곤은 좋은 렌즈임에 틀림없다. 출시 당시 콘탁스용 교환렌즈 중 세번째로 비싼 가격이었고 깔끔한 외관 디자인과 고급스런 크롬 광택이 아름답고 비오곤 다운 컴팩트한 사이즈 역시 매력적이다. 초점링과 조리개링은 아주 부드럽게 작동되어 만지작 거리는 재미도 크다. 더군다나 상대적으로 구하기도 어려운 물건인 탓에 소유에 따른 만족도도 높은 렌즈라고 할 수 있다. 


21미리 비오곤과 50미리 조나라는 걸출한 두 렌즈 사이에 가려 콘탁스 마운트 렌즈들 중에서 그 이름은 드높지 않지만 역시 비오곤은 비오곤이다. 시중에 돌아다니는 물건이 많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바디가 제한적임에도 불구 여전히 만만치 않은 가격을 자랑하지만 Contax 유저들이 선택할 수 있는 35미리의 폭이 좁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 렌즈 역시 Must Have Item이다. 보이면 사야하는 렌즈다. 




Contax IIa / Zeiss Opton Biogon 35mm f2.8 T




AGFA APX1OO




AGFA APX1OO




AGFA APX1OO




AGFA APX1OO




AGFA APX1OO




AGFA APX1OO




ILFORD HP5 400




ILFORD HP5 400




KODAK 400TX




KODAK 400TX




KODAK 400TX




KODAK 400T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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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DAK 400T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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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JIFILM C200




FUJIFILM C200




FUJIFILM C200




FUJIFILM C200




FUJIFILM C200




FUJIFILM C200




FUJIFILM C200




FUJIFILM C200




FUJIFILM C200


아버지께서 며칠간 위가 쓰리다 하셨다. 

금방 괜찮겠지 했던 것이 조금 길어져 결국 검사를 다시 받아봤고 결론은 위염. 얼마전 대학원 동창들끼리의 제주도 여행에서 술을 좀 드신 것이 원인인 모양이다. 어쨌든 자극적인 음식을 피하고 당분간 죽을 드시라고 한다. 그 얘기를 듣고 아들로서 어찌 가만히 있을 수가 있나. 아버지 드릴 전북죽을 사오겠다며 사뭇 비장하게 집을 나섰다. 




나름 단골인 전복집 주차장에 도착했다. 무료한 일요일, 하릴없이 뒹굴거리다가 더없이 훌륭한 핑계로 집을 나와서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니 지끈거리던 머리 속에 시원해진다.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혔다.




저멀리 보이는 곳이 구룡포항이다. 흐린 날이었지만 바다는 비교적 잔잔했고 덕분에 갈매기들은 바위 위에서 편안한 일요일을 보내고 있었다.




전복죽을 주문해두곤 다시 밖으로 나왔더니 막 어선 한 척이 들어와 멸치를 부려놓았다.




구룡포가 기장이나 남해처럼 멸치잡이로 유명한 항구는 아니지만 이처럼 간혹 멸치가 들어오기도 한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멸치보단 고등어나 꽁치가 흔해 구룡포에서는 아직도 멸치액젓 대신 고등어로 젓을 담궈서 김장을 하기도 한다고 전복죽집 사장님이 얘기해줬다. 그 맛이 사뭇 궁금했다.




박스마다 가득가득한 멸치들. 날씨가 추운 겨울이니 저 상태로 바로 회로 먹어도 될 것 같았다. 색색의 박스들은 엘마 렌즈의 색감 테스트용으로 딱. 




상차 작업하시는 동안 서성이며 계속 셔터를 눌렀음에도 별 반응들이 없으셨다. 행색을 봐도 그렇고 손에 든 골동품 같은 카메라 꼬락서니를 봐도 별 시덥잖은 녀석이라 여겨지셨나 보다. 어쨌든 나로서는 다행이다.




방파제 옆 작은 비닐 천막 안에선 어민들이 모여 참을 드시고 계셨다. 




참을 먹었으니 커피도 한 잔! 인근 다방에서 커피 배달이 왔다. 조금 불건전하게 변질된 경우가 있어서 그렇지 커피를 배달시켜 마시는 나라가 또 있을까? 다방 문화에 대한 심도있는 고찰과 작업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불쑥 들었다.




방파제 너머 테트라포드에는 언제나 낚시꾼들이 있다. 안테나처럼 솟아있는 그들의 낚시대.




고소한 냄새가 진동하는 따끈따끈한 전복죽을 받아들고 가게를 나섰다. 가게 주차장 간판 위에는 자기도 한번 찍어달라는 듯 갈매기 한 마리가 포즈를 잡고 있었다. 차에 오르기 전, 마지막 한 컷을 눌렀다. 




Elmar 3.5cm는 예상대로 상당히 낮은 채도와 콘트라스트의 결과를 보여줬다. 물빠진 듯한 밋밋한 색감을 보며 역시나 칼라 보다는 흑백에 어울리겠다며 단정지었던 것이 사실. 그렇게 첫 인상이 약했던 엘마로 찍은 이 칼라 사진들은 희한하게도 보면 볼수록 참 편안했다. 소박한 절집에서 정갈하고 간소한 공양 한 그릇 받아든 듯한 그런 느낌이랄까. 코팅의 꼼수도 없이 유리알 그 자체로 담아낸 빛이라 생각하니 왠지 마음까지 차분해졌다. 칼라로 다시 찍어볼 일은 없을거라 생각했었지만 날씨와 빛 상황이 다를 때는 또 어떤 느낌을 보여줄지 사뭇 궁금해진다. 흐릿하고 멍청한 색감으로 나올 수도 있고 기대이상으로 화사하고 세련된 색감으로 나올 수도 있을테고, 색온도가 훅 틀어지거나 완전히 엉뚱한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모두 괜찮다. 현행처럼 완벽하지 않기에 예상이 쉽지 않고 그래서 더 재미있는 것이 올드 렌즈의 매력이니까 말이다.



2016.12.04 포항


Leica M3 / Elmar 3.5cm F3.5 / Fujifilm C200 / IVED


2016.05.22.

Rolleiflex 2.8F Xenotar / Kodak Ektar 100 / Epson3200

"오빠 시장에 가서 쇠고기 안심이랑 감자랑 호박이랑 춘장 좀 사와요."



토요일 오후, 와이프가 심부름을 시킨다. 비싼 한우 안심은 내 입에 들어갈 것이 아니다. 딸냄이 태어나기 전 맞벌이 하던 때야 호기롭게 안심 한 근 정도 두툼하게 썰어와서 스테이크도 구워 먹고 했지만 이제 안심은 귀하신 딸냄이 입에만 들어가는 고급 식자재가 되었다. 감자랑 호박과 춘장은 와이프가 잘 하는 몇 안되는 요리 중 하나인 짜장을 만들기 위함이다. 얼마전 있었던 처남의 생일을 식구 모두가 (심지어 처남 본인마저..) 까먹은 것이 미안해 처남이 좋아하는 짜장을 만들어 담아 줘야겠다고 한다. (처남이 얼른 연애를 했음 좋겠다.)



아, 잡설이 길었다. 어쨌든, 이 심부름에서 내게 중요한 것은 어떤걸 사오라는게 아니라 '시장에 가서' 사오라는 부분이다. 집에서 걸어서 5분이면 대기업의 대형 마트도 있지만 몇몇 종목들은(딸냄이 전용 안심이라든지..) 마트보다 시장에 있는 가게에서 사오는 것이 낫더라는 경험치가 쌓였다. 그래서 오늘도 와이프는 내게 '시장에 가서' 그것들을 사오라는 거다. 괜시리 귀찮은 듯한 표정으로 '알았어~' 라고 대답했다. 오빠는 뭐 먹고 싶은게 없냐고 물었지만 와이프가 할 줄 아는 요리가 거기서 거기인지라 특별히 없다고 대답하곤 옷을 챙겨입고 나섰다. (먹고 싶은 건 없고 찍고 싶은 건 많았다 ㄷ)



시장은 걸어서 5분인 대형마트와 달리 차로 5분이면 가는 거리에 있다. 시장에 도착한 나는 심부름 따위는 금세 잊고 지갑 대신 카메라를 꺼냈다. 시장에 심부름을 오는 것이 내게 의미있는 이유다. 이 곳은 슬슬 돌아다니며 스냅을 찍기에 나쁘지 않은 곳이다. 아파트 단지와 인접하여 이제 재래시장의 느낌은 그다지 나질 않지만 여전히 이 곳은 '시장'이라고 불리는 곳이며 시장 뒤로 이어진 골목을 따라 30분 정도 한 바퀴 돌며 10여컷 정도는 셔터를 누를 만한 그런 곳이다. 



내 손엔 새로운 똑딱이 하나가 들려있다. 바로 Ricoh GR1s! 라이카 28미리나 하나 사볼까 해서 Contax T3를 팔아 먹었지만 원하는 매물이 나오지 않았고 그 사이 T3를 팔아 마련한 목돈은 야금야금 생활비로 흔적도 없이 녹아 사라져 버렸다. 생각해보니 억울하기 짝이 없는 짓이었다. 신품으로까서 10년도 넘게 멀쩡히 잘 사용하던 T3의 희생이 너무 의미없지 않은가! 더군다나 늘 휴대할 수 있던 똑딱이의 부재에서 오는 허전함은 생각보다 그 빈자리가 컸다. 자려고 침대에 누웠다가 '마지막으로 장터나 한 번 보고 와야지.' 하다가 마침 괜찮은 가격에 올라온 GR1s를 발견했고 결국 길게 고민하지도 않고 바로 사버렸던 것이다. 써보고 별로면 다시 팔면 되지란 생각으로.. (다 이런 식으로 사놓고 정작 되판 경우는 극히 드물다.)



주중에 택배로 받은 녀석에게 첫 필름을 넣어줬다. 흑백 위주로 사용할 카메라지만 마침 후배가 새로 산 Summaron 3.5cm를 대신 테스트하는 중이라 Leica M6에 흑백이 들어가 있는 상태였고 그래서 GR1s에는 첫 롤을 칼라 네가티브로 넣어주기로 했다. 앞서 얘기했듯 써보고 별로면 다시 팔려 나갈 수도 있는 카메라이기에 녀석은 명성대로 뭔가를 나에게 보여줘야 할 것이다. (내가 잘 찍어야 하는게 아니고??)





노란 원색에 끌려 한 컷을 눌러봤다. 청명한 늦은 오후의 낮은 빛이 꽤나 강한 콘트라스트를 만들어줬다.





이 시간대에 이 곳을 오면 꼭 한번쯤은 카메라를 들이대게 되는 꽃집 비닐하우스와 담벼락. 왼쪽 편에 좀 지워져서 식별이 잘 안되는 'SEX'란 글씨에 매칭될만한 어떤 피사체가 지나가길 늘 기다려보지만 오늘도 아닌 것 같다.





스냅 사진에서 사람이 없는 컷을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이렇게 한적한 골목에서 기다리고 있는 시간이 가장 뻘쭘하다. 누가 나를 보고 있다면 '저 자식은 뭐하는 놈일까?' 라고 생각할 것만 같아 괜히 뒤통수가 따갑다. 애꿎은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며 방금 전에 확인한 페이스북도 또 새로고침하고.. 그러면서 곁눈질로는 양쪽에 누가 오지 않는지 살펴야 한다. 아, 카메라의 초점은 원하는 위치에 고정해 뒀음은 물론이다. 


GR1s의 완소 기능으로 초점 고정 기능을 들고 싶다. 반셔터를 눌러 초점을 잡은 채로 mode 버튼을 길게 누르면 그 거리로 초점이 고정되는데, 카메라를 내린 채 쉬고 있다가도 타이밍이 오면 징징거리며 다시 초점을 잡을 필요없이 즉각 셔터를 누를 수 있다. 구도를 잡아두고 매복을 주로 하는 나에게 정말 유용한 기능이 아닐 수 없다. GR1v의 수동초점 기능이 조금 부러웠는데 이거면 됐다 싶다. 





세로컷으로 왜곡 정도는 어떤지 좀 확인해 볼까 싶었다. 하지만 그냥 찍기는 필름이 아까워 또 누군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다 보니 같은 구도로 쓸데없이 3컷이나 찍었다. 오토바이 한 대, 아저씨 한 분, 그리고 이 자전거. 이게 제일 나았다. 더 기다리긴 싫었다.





해가 점점 뉘엇뉘엇해진다. 아마 장사를 하지 않은지 오래 되었을 간판도 없는 빈 상가들의 이미지 덕에 실제 보다 더 오래되고 더 시골스러운 느낌이 드는 곳이다. 여기서 부턴 초점을 맞추지 않고 스냅 포커스 모드를 써보기로 했다. 앞서 언급한 초점 고정 기능이 원하는 곳에 초점을 맞춘 후 고정시키는 방식이라면 스냅 포커스 모드는 2미터로 고정된 방식이라는 점이 다르다. 28미리의 깊은 심도를 적극 활용하는 것으로 조리개를 조여두면 어지간한 거리는 웬만큼 초점이 맞으니 걸어다니며 찍는 길거리 스냅에서 아주 유용하다. 실제 GR1s의 AF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고 조금 어둡거나 콘트라스트가 낮은 환경에서는 버벅임이 심하기에 더욱 활용성이 높다. 





낡고 오래된 이미지와 달리 시장 너머 형산강 건너편엔 브랜드 있는 고층 아파트들이 쭉쭉 솟아 있다. 누구라도 생각할 수 있는 진부한 시선의 사진이지만 그래도 이 곳에 오면 꼭 한 컷씩은 찍게 되는 것 같다.





가게 한 곳이 다른 매장으로 바뀔 모양인지 내부 공사를 대대적으로 하고 있었다. 당연하겠지만 현대의 렌즈답게 역광에서도 플레어나 콘트라스트의 저하가 거의 없다. 이 렌즈가 호평을 받아 L마운트로 출시되기도 했으니 광학적 성능은 믿고 산 카메라였다.



"어디예요?"


와이프에게서 전화가 왔다. 장은 안보고 테스트를 하느라 시간이 조금 지체되긴 했다. 뜨끔하다. 왜 안오냐고 와이프가 묻지도 않았는데 오늘따라 시장에 감자 팔러 나온 할머니들이 없어서 몇 바퀴 돌면서 찾고 있다고 먼저 얘기하며 버벅인다. 그런데 와이프의 본론은 '빨리와!'가 아니라 '빵 먹고 싶다~ 빵도 좀 사와요.' 였다. 내심 안도하며 얼른 사서 가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이만하면 테스트는 대충 된 것 같다. 해상도와 콘트라스트도 괜찮고 GR 라인업다운 슬림한 디자인과 스냅 특화 기능들이 보여주는 이 카메라의 정체성은 역시 매력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28미리 화각이 아닌가. 다소 부족한 AF성능과 어둡고 흐릿한 뷰파인더가 좀 아쉽지만 완벽한 똑딱이는 결국 없기에 양보하기로 했다. (T3, TC-1, MINILUX 등등 이것들이 짜기라도 한 마냥 크고 작은 문제들이 꼭 한두개씩 있으니...)


이제 시장으로 심부름을 올 때면 카메라를 챙겨 나오는 날이 더 잦아질 것 같다. 그리고 와이프가 시킨 주문 중 그 날따라 꼭 못찾는 물건이 있어 난 30분 정도 더 늦을테고 말이다.



2016.09.24. 포항 효자시장




앙증맞은 후드까지 있는 Ricoh GR1s






2016.08.15.





























2016.05.06 포항


동생과 조카. 스벅을 너무 좋아하는 父子

































































2016.05.06 포항


간만에 Contax T3에 칼라필름을 넣고 찍어봤다. 자주 쓰지는 않기에 팔아버릴까 하다가도 결과물을 보고 나면 역시 그냥 두자는 결론으로 항상 이어지는 T3. 













































2015.12.25 포항


정말 오랜만에 롤라이 35에 칼라 필름을 넣고 돌아다녀봤다. 촬영 후 거의 4달만에 스캔을 떴다는 사실이 좀 머쓱하지만 어차피 필름으로 즐기는 사진 생활에 속도가 뭐 크게 중요하지 않아서..  




2015.10.17 제주도


아침 일찍 기어나와 라떼 한잔하던 재미


































2003.08.15 서울


광복절날 열린 두 개의 집회. 두 군데 모두 가긴 어렵고 하나를 선택해 그 중 우파의 집회에서 찍었던 사진들. 당시까진 기자들에게 애용되던 고감도 필름 후지 프레스800을 용도에 적합한 현장에서 난사해댔다. 소화기 분말도 뒤집어 쓰고 경찰 방패에도 밀려며 남긴 분열과 갈등의 기록. 기타 멘트는 생략. 정치적 답글 달리면 삭제합니다. 나도 정치적 의도로 찍은 사진이 아니고 그러려고 올리는 것도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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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5.31 구룡포


일요일 아침에 늦잠을 포기하고 찾아간 구룡포엔 평소와 다른 활기가 느껴졌고 가져간 필름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카메라를 들이댈 소재가 넘쳐나고 있었다. 한동안 놀고있던 Rollei35SE가 바람 좀 쐰 날. 톤이나 질감 맘에 들어 역시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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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4.12  강구항

대게철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던 지난 4월의 강구항. 대게를 맛보려는 수많은 사람들로 발디딜틈 없었고 어디서 그렇게 많이 잡히는지 수없이 많은 게들이 수족관에 겹겹히 포개져 담겨있었고 그 중에 몇 마리는 또 우리 식구들의 뱃속으로~ ㅎㅎ 

기본적으로 흑백필름을 선호하지만 가져간 카메라에 칼라네가만이 들어가있을 땐 스캔 후에 많은 갈등의 순간들이 온다. 칼라로 포스팅할 것이냐 흑백 전환하여 그럴 것이냐. 오늘은 그냥 둘다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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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08  군산






2008. 08  군산

군산화물역 앞에 서는 새벽 도깨비 시장 촬영을 위해 이동하던 중..

군산은 옛 흔적이 많이 남은 곳이라 작업해볼 소재가 많다.


2008. 08  구룡포



2008.12.10 도착

역시 롤라이 35이 최대 미덕은 작고 이쁘다는거. ㅎㅎ
대학교 3학년 때였나 Contax T3 구입을 위해 팔려나갔던 Rollei35S 이후 거의 6-7년만에 다시 손에 쥔 롤라이35. Rollei-HFT 코팅이 된 Sonnar렌즈는 예전에 보유했던 것과 동일하나 이번엔 전자식 노출계가 들어간 SE모델이다. 그리고 원하던 실버바디. 롤라이는 역시 블랙 페인트보단 실버 크롬이 이쁜거 같다.

최대의 단점이자 롤라이35시리즈의 특징인 목측식 초점 조절은 예전에 사용해봐서인지 심도를 활용하면 크게 어렵지 않다. 물론 대형인화에서는 아무래도 보다 정밀한 초점 조절이 필요하겠지만 일반적인 4*6인화 혹은 웹포스팅용 이미지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초점을 맞출 수 있는 거리감각은 갖고 있다고 자부하며(?) 몇 컷의 샘플을 나열해보기로 한다.



창밖을 보며 뭔가를 대화 중인 부장님과 김대리님. 일단 색감은 좀 맘에 안든다. 오토오토 200의 한계인지 뭔지 모르겠다만 예전에 썼던 롤라이35s의 화사한 색감을 기대했던 것과는 좀 거리가 있네. 하긴 풍경 자체가 칙칙한 탓일수도..



휴게실에서 이대리님. 부드럽게 들어온 빛을 받아 톤이 맘에 드는 편. 목측임에도 눈에 칼 같이 맞은 초점을 보며 혼자 흐뭇~ 언샵마스크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샤프한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다.



목측식에서 가장 부담스러운 근접 촬영. 다행히 요것도 초점을 잘 잡은 편. 색감이 좀 이상한데 레벨 맞추기 귀찮아서 니콘스캔이 긁어준 값을 크게 바꾸지 않았다. 해질 무렵이라 색온도도 낮은 편.



OEM창고 앞에 선적된 배터리들. 일단 내장 노출계도 네가티브 필름이라면 그런대로 신뢰할 만하다. 포지티브를 넣어봐야 정확하겠지만 뭐 굳이 이 녀석에 포지티브를 넣을 일은 그다지 없을 듯. 주로 흑백과 컬러네가가 주가 될테니 노출계에 너무 까칠한 잣대를 들이대지 않기로 했다.



지게차 운전하는 중국애. 카메라를 들이대니 순간 긴장하던데 알아듣던 말든 셔터를 누르곤 '사진 나중에 줄게~' 그랬더니 웃는다. 요건 하나 인화해서 갖다줘야지. 목측식의 최대 장점은 역시 충분한 심도를 확보한 상태에서 재빨리 누르는 스냅에 있다. 렌즈 의 톤이나 해상도는 맘에 드는데 아무래도 디스토션이 꽤나 생기는게 보인다.



블라인드를 투과한 확산광이 꽤나 근사해서 강제로 세워두고 찍은 샷. 실내에선 노출부족에 주의해야할 듯한 노출계. TTL방식이 아니니 측광에 좀 신경을 써야할 듯 하다.



마지막으로 거울 셀프샷. 어림짐작 거리 x 2를 해주어야하는 나름 고난이도의 초점 맞춤. ㅋㅋ 의외로 잘 맞았다. 아기자기한 조작감과 귀여운 디자인, 훌륭한 렌즈에 대한 신뢰와 불편하지만 목측만의 매력이 더해져 갖고 노는 재미가 쏠쏠하다. 겨울들어 라이딩 횟수가 줄면서 다시 사진에 대한 열정이 피어오르는 중. 다음엔 흑백 테스트를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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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09  경주 불국사

요새 정말 사진에 소홀했던 것 같다. 정말 간만의 포스팅인 듯.
스캔할 필름은 쌓여있음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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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07  통영

뜨거운 햇살을 피해 조그만 그늘이라도 들어가 숨고 싶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아침 저녁으로 쌀쌀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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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07  통영

 지난 하계휴가 기간 중 들렀던 통영. 작년을 비롯해 통영에 몇차례 와봤지만 이 곳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전국에 바다를 인접한 산비탈에 들어선 달동네가 어디 이 곳 뿐이겠냐만 미대생들에 의해 꾸며진 알록달록한 벽화들의 향연은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이 곳을 찾게 해준다. 달동네하면 왠지 떠오를 수밖에 없는 편견인 남루함, 지친 일상, 희망이 보이지 않는 내일과 달리 이 소박하고도 발랄한 벽화들로 인해 낭만과 정을 느끼게 해준다면 너무 피상적이고 이기적인 생각일까.

 어쨌거나 동피랑 마을은 벽화들로 인해 꽤나 유명세를 타는 듯, 꽤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카메라를 들고 골목골목을 누비고 있었다. 이 그림을 그렸던 미대생들의 바램대로 이 벽화들이 이 곳의 사람들의 삶을 보다 밝고 유쾌하게 해줬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통영을 찾는 관광객의 증가에 분명 일조했단 사실이 아닐까 싶다.

2006년에 이어 얼마전 다시 찾았던 군산의 해망동에도 이와 비슷한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는데 시간상 해망동 골목을 돌아다니지는 못하고 그냥 돌아와 다소 아쉽다. 해망동의 사진과 비교해본다면 재미있는 작업이 될 수도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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