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15. 청송


Hexar AF / Kentmere 400 / IVED




































































2017.01.28.

Hexar AF / Kodak 400TX / IVED


아빠가 되었다.


그동안 시장 바닥이나 낡은 포구, 재개발 지역 등지를 돌아다니며 거실에도 걸어두지 못할 '쓸데없는' 사진이나 찍어오던 사진질은 그야말로 부질없는 짓이 되었다. 유행하는 말로 '뭣이 중한디?!'였다. 아빠 사진가에게 가장 중요한 임무는 결국 딸냄의 성장 기록을 남기는 일이 아닌가. 아빠가 되면서 사진 생활의 주제가 아주 단순 명확해졌다.


 


 


실내에서 최적일 것


자, 그렇다면 육아 사진은 무엇으로 찍어야할까? 지금 생각해도 좀 어이없지만 '어떻게' 찍을 것인가 보다 당장 '무슨 카메라로' 찍을지가 가장 큰 고민으로 다가왔다. (마땅치 않으면 이 기회에 하나 더 사는거다..) 하지만 이미 육아 사진을 핑계로 삼아 Nikon D700에 꽂을 SB-700과 AF 35mm f2.0D를 들인지라 카메라를 또 사기엔 명분이 서질 않았다. 책장 위에서 몇년째 놀고 있는 카메라가 한두개가 아닌데 저 중에 육아 사진을 찍을만한 카메라가 한 대도 없다는 건 내가 생각해도 통할 소리가 아니었다.

'그래 있는 걸로 찍자.'

새 카메라에 대한 욕심은 깔끔하게 포기하고 이 중요한 임무에 투입할 최적의 무기가 무엇일지 검토해보기로 했다. 육아 사진이니 당분간은 대부분 실내에서만 촬영이 이뤄질 것이다. 당연히 이 작업에 투입될 카메라의 작전 요구 성능의 기본은 '실내 촬영에 최적일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밝은 개방값과 저진동 저소음, 실내에서 빠른 포커싱, 가벼운 무게 등을 필요 조건으로 들 수 있겠다.


이 기준에 의거 갖고 있던 카메라들을 하나하나 따져봤다. 제일 먼저 SLR들이 전원 탈락헸다. 그렇잖아도 셔터스피드 확보가 어려운 실내인데 블러를 유발할 '철푸덕!'은 안될 말이었다. 반면 RF기종들이라면 이 부분에서는 유리하겠다. 하지만 내가 갖고 있는 CONTAX IIa나 LEICA M3 같은 기종들은 노출계도 없고 움직이는 딸냄이에 재빨리 포커싱하기가 쉽지않아 아무래도 셔터 찬스를 놓칠 일이 많을 것 같다.(RF는 역시 조여서 찍을 때 진정한 매력이..) 결국 얘들도 일단 보류. 똑딱이 CONTAX T3는 크기도 작고 렌즈 성능도 좋고 AF도 되니 다 좋았는데 최대개방값이 2.8로서 다소 어두운데다 결정적으로 저속 셔터스피드가 정확히 얼마인지 표시가 안되어 실내에선 불안하기 그지 없다. 1/15초인지 1/4초인지 알아야 조심을 하는데..  결국 얘도 탈락했다.


 


 


Konica Hexar AF


이것저것 빠지고 나니 남은 것이 몇년동안 쓰지도 않고 쳐박아 둔 HEXAR AF였다.

Konica에서 내놓은 이 카메라의 가장 큰 특장점으로는 구동 소음을 최소화한 '사일런트 모드'와 우수한 성능의 35mm 렌즈를 들 수 있었다. 모터 와인딩 소음의 억제에 많은 공을 기울인 '사일런트 모드'는 당시의 대다수 자동 카메라들에 비해 상당히 조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수동식 RF카메라들에 비할 바는 아니라 개인적으로는 의미를 높게 두진 않는 편이다.

하지만 섬세한 묘사력과 현대적이고 깔끔한 콘트라스트를 보여주는 렌즈의 성능 만큼은 정말 훌륭하여 예전부터 사진가들 사이에서 '주미크론'에 필적한다는 소문이 회자될 정도였다. 이 같은 호평에 힘입어 코시나에서는 이 렌즈를 스크류 마운트로 별도 제작하여 한정 발매되기도 했다.



라이카 스크류 마운트로 한정 발매되었던 UC-HEXANON 35mm f2.0. 지인의 렌즈다.


반면 HEXAR AF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최고 셔터스피드가 1/250초에 불과하다는 점이었다. 아니, 1/1000초도 대낮에 감도 400필름을 개방으로 사용하기 어려운 판에 고작 1/250초라니... 주로 조리개를 조여서 찍는 편이라 사실 셔터스피드의 한계는 촬영시에 큰 문제는 아니었지만, 막상 들고 나갈 카메라를 고르는 순간 주저하게 만드는 심리적 부담은 어쩔 수 없었다. 결국 렌즈의 우수함에도 불구하고 HEXAR AF는 그리 자주 사용되지 못하고 집에서 오랜 세월 놀고만 있던 중이었다.

그렇지만 주로 실내에서만 사진을 찍는 용도라면?

그랬다! 실내에서만 찍는다면 녀석의 치명적인 셔터스피드의 한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부분이지 않은가. 감도 400짜리 필름을 넣어도 1/60초를 넘기는 경우조차 거의 없으니 말이다. AF의 정확도도 우수하고 속도도 빠른 편이라 셔터 찬스를 잡기에도 용이하며, 렌즈 교환식 RF기종들에 비해 최단거리도 조금 더 짧은데다(0.6m) 파인더 내의 프레임 라인은 시차 보정도 거리에 연동해 이루어지니 좁은 공간에서도 활용도가 높다. 구동 소음을 최대한 억제한 사일런트 모드는 딸냄이가 자고 있는 모습을 살짝 찍기에도 부담이 적다. 게다가 데이터백도 기본으로 달려있어 기념할 만한 날에는 날짜를 찍어줄 수도 있다.


이 정도면 그야말로 육아 사진에 최적의 카메라가 아닌가?!



7개월이나 된 후에야 필름으로 사진을 담기시작했음이 후회스럽다. / Ilford Delta 400




쿠션을 좋아하는 딸냄 / Ilford Delta 400




청송 외가집에서 / Ilford Delta 400




엄마보다 먼저 일어난 아침 /  Ilford Delta 400




꽤 늦게까지 떼지 못했던 쪽쪽이 / Ilford HP5+400




걸음마 연습 중 / Kodak TMY




돌사진 찍으러 간 스튜디오에서 / Kodak TMY




아빠랑 같이 찍은 사진은 이런 것 뿐이다 / Ilford Delta 400




바나나 먹으며 신난 딸냄 / Ilford HP5+400




할미랑 영상통화 / Ilford HP5+400




엄마 따라 톡톡톡 / Ilford HP5+400




하나 둘 찰칵! / Ilford Delta 400




자동카메라 하나를 줬더니 자기거라고 잘 들고 다닌다 / Ilford Delta 400




베개 위에서 장난치며 / Ilford Delta 400




목욕하고 나서 기분좋은 딸냄 / Ilford Delta 400



4-5년간 멈췄던 필름 사진질을 다시 시작한 건 딸냄의 성장 과정을 조금은 더 '의미있는 수단'으로 기록해주고 싶어서였다. 물론 그렇게 한정적인 용도에서만 조금씩 '아껴가며' 필름을 쓰겠다는 다짐과 달리 다시 시장 바닥이나 찍고 돌아다니는 요즘이지만 그래도 역시 가장 중요한 주제는 가족의 일상을 담아내는 개인적이고도 소박한 작업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HEXAR AF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카메라는 아니겠지만 가장 고맙고 기특한 카메라라고는 말할 수 있겠다. 이 카메라가 없었다면 딸냄의 성장 과정을 편안하게 기록할 카메라를 무엇으로 대신할 수 있었을 지 선뜻 떠오르지가 않는다.


오늘날 HEXAR AF는 중고가 기준으로 50만원 내외의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 끝내주는 헥사논 35미리 렌즈의 성능을 놓고 보면 사실 렌즈를 사면 바디는 그냥 따라오는 격이나 마찬가지. 주머니 사정 가벼운 아빠 사진가들이 가족의 일상을 촬영하는데 이만한 카메라가 또 있을까. 작은 문제를 탓하며 팔아 치워 버리지 않았음이 새삼 다행스럽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듯 세상 모든 것에도 길고 짧음이 존재한다. 우리는 저마다의 잣대로 그 길고 짧음을 따져보며 인생의 여러 선택의 기로에서 방향을 결정한다. 99%가 맘에 들어도 내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1%의 문제점이 있다면 그것을 선택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남들이 손가락질 하는 못난 모습이 내 눈에는 보기 싫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덮고도 남을 정도의 매력 포인트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줏대있는' 결정을 내리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것이 물건이든 사람이든 말이다.




크게만 보였던 단점이 더이상  밉지 않자 너무나 예쁘게만 보이는 HEXAR AF




































































2016.07.30. 울진































































2016.07.03.



2016.04.16 영천





Konica Hexar AF



사실상 필름으로 사진 찍기를 그만둔지 거의 5년째인데 다시금 필름으로 사진을 좀 찍고 싶어졌다. 느닷없이 Leica M7으로 회귀한 지인의 영향이 컸는데 어차피 놀고 있는 필름 카메라야 여러대라 필름만 사서 찍음 그만이긴 했다. 하지만 거의 2배씩 올라버린 필름 및 인화지 가격 등을 고려했을 때 예전처럼 '길거리 풀떼기' 따위를 찍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결국 남길만한 사진, 특히 집에서 딸내미 사진을 찍는데 한정적으로 필름을 사용할 요량이었다. 


이제 막 기어다니는 딸내미라 주로 실내에서 찍어야 하기에 렌즈의 최대 개방값은 밝아야했고 감도 400정도로도 사실 셔터스피드 확보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미러쇼크가 있는 SLR은 모두 탈락, 움직임이 많은 딸내미인지라 수동 초점 탈락, 노출계없는 클래식 기종들도 탈락. 결국 이런 조건을 충족하는 건 이 헥사 AF가 딱이었다. 최대개방값 2.0의 헥사논 35미리 렌즈에다 저소음, 저진동, AF속도도 빠르다. 반면 이 기종의 치명적인 단점은 최고 셔터스피드가 불과 1/250초밖에 안된다는 점인데, 지금의 용도인 실내 촬영에서는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는 것도 다행이었다. 그렇게 5년만의 첫 필름 사진은 헥사 AF로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나름 간만에 들뜬 마음으로 2CR5 배터리도 새로 갈아주고 필름을 넣고 몇 컷을 찍어봤다. 그런데 AF Lock이 자꾸 풀리는 것이 아닌가. 초점을 맞추고 구도를 잡고 셔터를 누르면 초점이 풀리며 다시 초점을 잡고 셔터가 릴리즈됐다. 처음엔 너무 오랜만이라 반셔터감을 잊었나 싶었는데 몇번을 찍어도 그랬다. (아까운 내 필름..)  아무래도 이상하다 싶어 검색해보니 헥사 AF에서 종종 발생하는 고질병이라고.. 피사체를 한가운데 놓고 찍는 일이 거의 없는지라 AF Lock이 안되면 사실상 사용 불가다. -_-;;  난감해하던차 다행히 어찌어찌 자가 수리 방법을 알게 되었고 참지 못하고 바로 뜯기 시작했다. 




1. 상판 분해


상판 분해를 위해서는 총 5개의 나사를 풀어줘야하는데 뒷면의 2개와 왼쪽의 1개는 겉으로 노출되어 있으니 문제없고 전면의 2개는 레자로 덮여져있어서 렌즈 옆쪽의 레자를 살짝 벗겨내어 노출시켜야한다. 나는 어디에 나사가 있는지 몰라서 꽤 많은 부분을 뜯어냈는데 사진처럼 렌즈 좌우측 부분을 조금만 벗겨내면 된다. 



작은 일자 드라이버 같은 걸로 틈새에 넣고 살짝 들어서 벗겨내준다. 끝부분을 잡고 잡아당기거나 하면 자칫 레자가 늘어가거나 할 수 있으므로 주의.




이쪽도 마찬가지. 레자 안에는 접착제가 발라져있어서 재조립할 때도 그냥 꾹꾹 눌러주면 다시 잘 붙는편이다. 만약 좀 뜨거나 하면 일명 돼지본드나 오공본드 같은 걸 얇게 펴 발라서 살짝 마르고 난 후 붙여주면 된다. 




나사 5개를 모두 푼 후, 상판을 살짝 들어주면 요렇게 열린다. 플래쉬 접점과 전선이 열결되어 있어 완전히 떼어지진 않는다. 셔터 부분 수리와는 상관없으므로 그냥 두고 진행.




2. 셔터부 기판 열기


상판을 열고 나면 셔터 부분 쪽에 초록색 기판이 보인다. 여기에도 3개의 나사가 있는데 요걸 다 풀어준다. 





나사 3개를 풀고 기판을 옆으로 젖혀주면 아래쪽에 셔터부 접점이 보인다.





3. 접점부 WD-40 분사


헥사 AF의 AF Lock 풀림 문제는 기계적 문제가 아닌 접점부의 전기적 접촉 불량이 원인인 경우가 많아 여기에다 WD-40을 뿌려주는 것만으로도 대부분 해결이 된다고 한다. 진짜 이렇게만 해도 되나 싶은 의문이 마구 들지만 일단 뿌려본다. 워낙 좁은 부위라 그냥 한번 칙~ 




4. 재조립


당연하지만 재조립은 분해의 역순..  주의할 점은 조리개 조절 다이얼과 맞물리는 흠을 잘 맞춰줘야 한다는 거. 처음에 아무 생각없이 조립했다가 조리개 조절이 안되서 뭔가 사고친줄 알고 약간 식겁을.. 그리고 이왕 상판 분해한 김에 파인더와 접안부 유리 청소도 해주면 좋다.



수리 결과는 100% 완치! 자꾸만 풀려버리던 AF Lock도 확실히 걸리고 반셔터 감도 나아진 것 같은 느낌이다. (아마 느낌 뿐이겠지만..) 이건 뭐 손재주 축에도 못드는 초단순 자기 수리 방법이지만 효과는 확실해서 상당히 만족스럽다. 이것도 수리점에 맡기면 돈 10만원은 우습게 받을텐데..



이제 아껴가면서 잘 찍어주기만 하면 된다. 끝.



2015.06.21


08.08.10 군산 경암동

철길마을이란 낭만적인 이름으로 불리는 곳이지만 내 집 바로 뒷마당으로 우렁찬 경적소리와 함께 기차가 지나다닌다면 정말이지 아찔한 하루하루가 아닐 수 없다. 다행히 이 곳을 지나는 철로는 다른 곳으로 변경될 것이란 얘기를 들었지만 사진 찍는 사람들의 이기적인 욕심은 그렇다 하더라도 그 장면 하나 쯤은 찍고 싶은 것이다. 하루 운행 횟수가 극히 적어 시간을 일부러 맞추지 않는 이상 이 곳을 지나는 기차를 찍기 어렵지만 이 곳을 처음 찾았던 06년에는 운좋게도 때맞춰 지나는 기차를 촬영할 수 있었다. 


2008.08.10 군산

 
째보 선창의 여름, 얼음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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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07  부산

....

이제서야 스캔해서 포스팅하게 되니 좀 민망하긴 하다만 묵혀둔 필름의 이미지들을 다시금 바라보니 당장이라도 카메라를 들고 나서고 싶어진다. 이번 사진들은 지난 8월 가족들과 다녀온 여행에서 얻은 의외의 소득, 군산 새벽 도깨비 시장에서 촬영한 컷들. 역전 앞에 잠깐 서는 도깨비 시장이야 곳곳에 있는 편이지만 군산만큼 크게 서는 장은 본 적이 없다. 지난 2006년에 군산을 찾았을 때는 가보지 못했던 이 새벽시장을 촬영하고자 기어이 일어나 다녀왔다. 아무래도 상인들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도 있는 시장 촬영이라 시선을 끌기 쉬운 니콘은 두고 Hexar AF와 Contax T3만 달랑 들고서 역전앞을 누비며 마음껏 셔터를 눌렀고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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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화물역 앞에 공터에 들어서는 새벽 시장. 새벽 일찍 섰다가 사람과 차들의 왕래가 늘어나는 아침시간이 되면 자리를 피해 재빨리 사라지는 반짝 장이라 도깨비 시장이라고도 부른다. 도깨비 시장이란 말은 이런 새벽 반짝 시장이나 아님 남대문 시장이나 대구 교동 시장 처럼 온갖 수입물품을 비롯한 온갖 물건들을 파는 시장에 자주 붙는 별명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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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간에 역 앞 도로는 모두 상인들의 차지다. 도로 가득 상인들이 저마다 가지고 온 물건들을 펼쳐놓고 장보러 온 사람들로 분주하다. 내가 도착한 시간은 해가 막 뜬 직후로 도깨비 시장으로선 끝물에 가까워진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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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현재가 눈을 떼지 못하던 것 중 하나.. 싱싱한 게들. 바다와 인접한 군산답게 역시나 해산물들이 놀랄만큼 저렴하게 팔리고 있었다. 뭐 포항에 사는 입장에서 크게 다르게 느껴질 것은 아니었으나 게가 많이 잡히는 편은 아닌 동해안과 달리 서해안인 군산에서 게는 무척이나 저렴했다. 정말 한 소쿠리 사가서 쪄먹던 찌게를 끓여먹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게가 이렇게 싸니 어느 식당에 들어가도 게장이 밑반찬으로 푸짐하게 나왔던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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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에 장본 것들을 싣는 할아버지.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지 3달정도 밖에 지나지 않은 요즘 이미 2대의 자전거가 있음에도 어김없이 장비병에 빠져 날마다 새로운 자전거를 인터넷에서 알아보고 있으니..;; 어쩜 이 할아버지처럼 여유로운 페달질을 하며 장을 보러 다니고 마실다니는 자전거 생활이 더욱 바람직한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쨌거나 개인적으로 이 컷의 톤과 질감이 참 맘에 든다. Hexar AF는 고속셔터의 한계를 제외하곤 결과물 측면에서는 정말 물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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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일찍부터 장에 나와 구경도 하고 나무 그늘 주변에 앉아 노니는 할아버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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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세트에서 보일듯한 특이한 양식의 건물. 군산엔 일제시대 가옥이 많이 남아있는 곳으로도 유명한데 언젠가 한번 이에 대한 작업을 구룡포와 연계해 진행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 어쩌다 보니 남해안 일대에 산재한 임진왜란 당시 왜군들이 축성한 왜성(倭城)도 몇군데를 답사했었는데 이 것들을 주제로도 괜찮은 작업이 될 것같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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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골목길에 차가 들어오자 펼쳐놓은 물건들을 안으로 당기기에 바쁘다. 원칙적으로 도로 위의 난전으로 불법이겠지만 이런 시장에까지 까칠한 잣대를 들이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처럼 차들의 통행이 늘어날 때 쯤 되면 이미 상인들은 짐을 싸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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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되면 알아서 자리를 뜰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하나 더 있다. 일단 무력시위 중인 공무수행 차량. 매일 같이 반복되는 일상이기에 긴장감은 없다. 어차피 알아서 도깨비처럼 사라질 시장이다. 그래도 내일 새벽이면 또다시 장이 서고 또다시 불법도로 전용단속 차량이 올 것이고 그 쯤이면 또 장은 사라질 것이다.


2008. 08. 10 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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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07  통영

뜨거운 햇살을 피해 조그만 그늘이라도 들어가 숨고 싶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아침 저녁으로 쌀쌀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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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07  통영

 지난 하계휴가 기간 중 들렀던 통영. 작년을 비롯해 통영에 몇차례 와봤지만 이 곳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전국에 바다를 인접한 산비탈에 들어선 달동네가 어디 이 곳 뿐이겠냐만 미대생들에 의해 꾸며진 알록달록한 벽화들의 향연은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이 곳을 찾게 해준다. 달동네하면 왠지 떠오를 수밖에 없는 편견인 남루함, 지친 일상, 희망이 보이지 않는 내일과 달리 이 소박하고도 발랄한 벽화들로 인해 낭만과 정을 느끼게 해준다면 너무 피상적이고 이기적인 생각일까.

 어쨌거나 동피랑 마을은 벽화들로 인해 꽤나 유명세를 타는 듯, 꽤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카메라를 들고 골목골목을 누비고 있었다. 이 그림을 그렸던 미대생들의 바램대로 이 벽화들이 이 곳의 사람들의 삶을 보다 밝고 유쾌하게 해줬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통영을 찾는 관광객의 증가에 분명 일조했단 사실이 아닐까 싶다.

2006년에 이어 얼마전 다시 찾았던 군산의 해망동에도 이와 비슷한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는데 시간상 해망동 골목을 돌아다니지는 못하고 그냥 돌아와 다소 아쉽다. 해망동의 사진과 비교해본다면 재미있는 작업이 될 수도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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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07

통영 중앙시장

다양한 해산물을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매력적인 곳. 작년 여름에는 이 곳에서 새우와 조개를 사다가 한산도에 들어가서 숯불에 구워먹으며 노닐었다만 올 휴가 땐 시간과 공간의 제약으로 어쩔 수 없었다는..

역광에서 보여준 Hexar AF의 톤이 상당히 묵직하다. 소문대로 Hexar AF의 Hexanon 35mm 2.0은 쓰면 쓸수록 끌리는 뭔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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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07  부산 화교촌

국공내전에서 마우쩌둥에게 패한 국민당은 작은 섬 타이완으로 밀려났고 우리는 이들을 자유중국이라 부르며 형제와도 같은 우애를 가지고 대했었다. 반면 지금의 중국은 '중공'이라 부르며 6.25 당시 통일을 눈앞에 둔 상황에 인해전술로 밀고 내려와 분단을 고착시킨 원수의 나라로 냉전시대에 우리의 적국으로 분류되었었다.

그러나 중공의 군사력과 정치적 영향력, 무한한 시장 개척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던 국가들이 미국을 시작으로 차례차례 중공과 수교하기 시작했고 자유중국은 점차 국제적으로 고립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 하나의 중국을 천명하는 중공과 수교를 하면서 자유중국과는 국교를 단절할 수 밖에 없었고 우리도 이 같은 흐름에 따라 92년 8월에 명동에 있는 대사관까지 고스란히 넘겨주며 중국과 수교를 맺게 된다. 그 후 중공은 중국으로 자유중국은 대만으로 부르게 되었다.

대만인들은 다른 나라는 몰라도 한국이 이럴 줄은 몰랐다면 배신감과 서운함을 격렬하게 토로했지만 우리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 않을까. 어린 시절에 신문에서 본 명동의 자유중국대사관에서 '청천백일만지홍기'가 내려가던 날 모여든 대만인들이 눈물을 흘리는 사진은 그러한 자유중국이 처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 청천백일의 문양을 부산 화교촌에서 만났다. 국교 단절전에 만들어졌을 듯한 '부산화교소학'이라는 유치원정도로 보이는 건물의 현관에는 아직도 청천백일이 건재하다. 어쩌면 저 것도 곧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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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07  부산

인천의 화교촌, 일본 나가사키의 화교촌에 이은 세번째로 찾아본 부산의 화교촌.

이제까지 가본 화교촌들 중 가장 분위기가 애매했던 곳이다. 중국인들 뿐 아니라 거의 비슷한 수의 러시아인들도 거주하고 있는 곳이었는데 한자나 키릴어로 된 이국적인 간판만 놓고 본다면 다른 곳과 비슷한 느낌이지만 어둠침침한 러시아인들의 술집과 업소에서 일하는 아가씨들을 위한 드레스샵등 왠지 찝찝한 분위기였다. 이 곳에서 맛본 중국 음식은 여타 화교촌에 비해 오리지널에 가까운 형태인 듯 했지만 뭐 특별히 맛있는 편은 아닌 듯.

p.s. 흑백으로 찍은 컷들과 같이 업로드할 생각이었지만..현상도 아직 안한지라. 후 일을 기약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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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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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07  부산

마주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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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07  영도다리 부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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