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는 노트북 지름신이 오셔서 2주 가량 치열한 교전 끝에 결국 패배. 지르고야 말았다. 심사숙고 끝에 고른 녀석은 바로 DELL의 XPS15.

사실 게임도 하지 않으니 그다지 높은 스펙의 기종은 필요가 없었지만 사진 작업이 주가 되다 보니 LCD는 좀 신경을 쓰고 싶었다. 그런데 스펙 낮은 저가형에는 대부분 LCD사양도 떨어져 막상 가성비를 갖춘 녀석을 찾기는 어려웠다. 현재 국내에서 출시된 노트북 중 시야각을 극복한 IPS패널이 장착한 씽크패드 X220과 엑스노트 P220에 일단 마음이 갔지만 둘다 12인치급의 작은 디스플레이가 아무래도 걸렸다. 사실 씽크패드가 가격만 적당했다면 유력했겠지만 가격에 비해 스펙이 그다지 훌륭하지 못했다. 아무리 비지니스용 랩탑이라지만 인텔 내장 그래픽만으로는 좀 아쉽다. (발수 키보드와 180도 젖혀지는 LCD, 윈도우7 프로페셔널은 확실히 당겼지만..;;)

그러다 찾게된 모델이 바로 DELL의 XPS15인데 DELL답게 원하는 사양을 다양하게 조합할 수 있었다. LCD사이즈도 위에 언급한 두 모델에 비해 광활한 15.6인치에다 여타의 모델들을 압도하는 해상도 1920 X 1080. 일반 LED백라이트 LCD에 비해 색재현율이 높은 B+RGLED LCD. 랩탑용 치고는 훌륭한 GT540 그래픽카드에 그래픽메모리가 2GB. CPU는 하는김에 아싸리 Intel Core i7 2670QM, RAM은 평이하게 4GB로 결정. 메모리는 곧 4GB짜리를 하나 더 꽂아 8GB로 만들 예정이고..아직은 범용성에서 떨어지지만 USB3.0포트도 2개. HDD는 500GB. 뭐 이정도면 충분하겠다 싶었다. 뭐 이만한 스펙이 필요하냐고 물어보면 굳이 필요는 없겠지만 이 보다 못한 스펙을 가지고도 훨씬 비싸게 책정된 다른 모델들에 비해 DELL의 XPS15는 정말 가성비 하나는 최고인 듯. 가격이나 스펙은 델 공식 홈페이지 참조~




그리고 스피커! 바로 JBL의 제픔이다. 키보드 양쪽은 물론 바닥면에 우퍼까지 달려 있어 제법 빵빵한 사운드를 자랑한다. 영화 감상시에도 굳이 외장 스피커를 구비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훌륭한 편이다. 사실 이 모델로 결정하는데 스피커도 크게 작용했다. 키보드는 아직 적응이 되지 않았지만 타자감은 나쁘지 않다. 스피커가 양쪽에 위치하다 보니 공간이 부족했겠지만 숫자키패드가 조금 아쉽다. 키보드는 백라이트가 지원되어 무척 예쁘다. 사실 모델 선정 과정에서 굳이 없어도 될 기능이라 여겼던 것이 키보드 백라이트였는데 없으면 이제 불편할 것 같다.




2세대 샌드브릿지 코어 i7, 그리고 윈도우7. 일반적으로 랩탑에 들어가는 샌드브릿지 CPU들이 듀얼코어임에 반해 이 녀석은 쿼드코어인 2670QM. 사실 내가 하는 작업 따위로는 성능 차이를 느끼기도 어렵다. 그냥 기분이랄까. i7이니 더 오랫동안 현역에서 안꿀리고 버텨줄 수 있을 것 같은 심리적 안정감은 든다. 사실 서재에 있는 PC(코어 i3)보다 윈도우 체험지수는 오히려 낮게 나왔다. 인텔 내장 HD3000으로 측정되었는지 그래픽 점수 쪽에서 깎아먹음. 




어쨌거나 애플을 제외하고 크게 개성이 느껴지지 않던(씽크패드 제외) 고만고만한 노트북들 중에서 그래도 DELL의 디자인이 간결하고 마음에 드는 것 같다. 금속재질로 마감된 팜레스트를 비롯한 커버등의 질감과 만듦새도 만족스럽다. 요즘 추세에 비하면 크고 두껍고 무거운 편이지만 어차피 휴대용으로 산 것이 아니기에 문제없다. (휴대는 아이패드로!)

고질적인 문제라고 델 커뮤니티 등에서도 난리라는 전기오름 문제도 없고 생각했던 것보다 소음이나 발열도 적다. 산지 1년밖에 안된 내 서재의 PC가 당분간 놀게 생겨서 안타깝지만 올 겨울에는 보일러 넣기 아까워 냉방이 된 서재에 들어가서 오들거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다행스럽다.


2011.11.27



















2011.10 영주


















2011.10.23 포항

2011.08.02 티베트



유채꽃이 만발하던 어느 작은 마을에서..

장이라도 보고 온 듯한 아빠가 돌아오자 카메라를 신기해하며 만지작거리던 두 꼬마는 달려가버렸다.

남쵸가 내려다 보이는 고갯마루. 어김없이 타르쵸가 휘날리고 있다. 해발 4천미터가 넘다보니 바람이 장난아니었다.




티벳의 3대 성호 중의 하나라는 남쵸호수. 바다와도 같은 호수지만 2007년에 바이칼을 보고 와서인지 큰 감흥은 아쉽게도 없었다. 관광코스로 이렇게 짧게 구경하고 돌아가서는 괜찮은 사진을 얻기 어렵다.




야크를 타보길 자꾸만 권하는 현지인. 수많은 관광객들이 야크를 타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남쵸호수 보다는 주변의 사원들과 타르쵸들, 그리고 바위들이 어우러진 풍경에 더 눈이 갔다.




거대한 호수를 바라보며 마니차를 돌리며 천천히 걷고 사진찍는 여유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색색의 타르쵸.



마니차를 돌리며 걷는 사람




그리고 관광객들에게서 돈을 받고 사진을 찍혀주는 티벳인들. 10위안 쥐어주고 몇 컷 찍긴 했다만 안타깝다.




여기도 찍을 때는 몰랐는데 야크 고기를 팔러 나왔다기 보다는 야크를 해체하는 모습을 신기해하며 카메라를 들이대는 관광객들에게 돈을 받는 것이 주목적인 티벳인들이었다.












사실 이 척박한 땅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유목말고는 크게 없다. 도시가 아닌 지역에서 만나게 되는 티벳인들은 아직도 남루한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경제적 풍요로움이 반드시 행복을 가져오지는 않겠지만 어쨌거나 '같은 나라 사람'인 한족들의 모습을 보는 티벳인들의 생각은 어떤 것일까.




어린애들은 푼 돈이 생기면 이렇게 야외 당구대에서 당구를 치며 논다.




남쵸호수에서 가장 맘에 들었던 것. 유료 화장실을 운영하며 돈 받던 티벳 청년에게서 얻어 마신 수유차. 비리거나 느끼할 것으로 생각했던 것과 달리 베지밀 같은 맛이라고 해야 하나 무척 고소했다. 찬 바람 맞으며 좀 떨었던 차에 일행들과 나눠 다 마셔버렸다.


2011.08.02 남쵸호수



죽방렴으로 유명한 지족해협




몇 번씩이나 와본 곳이지만 한 번도 조업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물건 방조어부림의 당산나무.




독일 마을. 예쁘긴 한데 정말 돈 많이 번다면 난 한옥을 멋지게 짓고 살고 싶다.




독일마을 어느 화단에서 만난 꽃무릇.




해오름예술촌에서




그래.. 적당히 골이 아파야 살 맛은 나겠지만 적당하지 않았을 때가 문제다.







정말 오랜만에 와본 보리암




ㅎㅎ




보리암에 내려다 본 남해 바다. 독일마을과 물건 방조어부림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서서히 가을색이 들어가는 계곡.




해 질 무렵에 다되어 다시 지족 해협으로 왔다. 온 김에 늦어도 일몰은 보고 가야지.










뭐 그냥 그런 일몰이었지만 다리 위에서 찬 바람 맞으며 여유로운 시간 보낸 것에 만족. 아 정말 간만에 둘 만의 여행이었구나;




집에 가쟈~~

2011.09.24 남해



옛부터 티벳에서 주식이나 다를 것 없었던 야크 버터. 사진으로 보니 노란 색감이 더욱 두드러지는 것 같다. 호기심에 조금 사고 싶었지만 막상 사도 다 먹지도 못할 것 같아 구경만 하고 있으니 칼로 조금 베어서 맛보라고 건네주길래 받아 먹어보았다. 엄청 비리거나 느끼할거란 예상과 달리 의외로 꽤나 먹을만했다. 티벳 여행 동안 입에 도저히 맞지 않는 중국 음식 때문에 곤욕을 치루고 있던 중이라 식빵에 이거만 발라 먹으며 버틸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밑에는 덩어리 차들도 팔고 있었다. 뜨거운 물에 이 차와 야크 버터를 넣고 잘 저어서 만든 수유차를 티벳 사람들은 엄청 즐기는데 그에 따라 차 소비량도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사실 척박한 티벳에서는 비타민을 섭취하기가 어려웠던지라 차는 비타민을 섭취할 수 있는 필수 식품이기도 했다. 티벳 사람들에겐 기호 식품이 아닌 생명을 위한 약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차였는데 이 점을 이용해 중국은 티벳을 효과적으로 길들일 수도 있었다. 중국의 국력이 강해질 수록 티벳은 더 많은 말(馬)을 갖다주고서야 차와 바꿀 수 있었고 이는 기마전력의 약화를 가져올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지금도 티벳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차를 소비하는 곳 중 하나이다. 윈난에서 출발한 마방들이 설산을 넘고 협곡을 건너 차를 운반하는 장면을 담은 다큐멘터리 '차마고도'는 정말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이제는 예전의 마방들도 대부분 사라지고 도로 사정이 좋아고 교통이 편해지면서 쓰촨성의 차들이 훨씬 저렴한 가격에 들어와 티벳에서 팔린다고 한다. 사실 예전에도 윈난성의 푸얼차 중에서 제일 하급이 대량으로 티벳에 공급되었다고 하니 티벳 사람들은 품질보다 싸고 양 많은 차를 최고로 치는지도 모르겠다.



2011.08.01 라사









2011.08.01 라사




포탈라궁 광장..
 
포장된 광장은 깨끗하고 잘 정돈되어 있었고 넓은 도로 위로는 자동차들이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다가서지 못하는 아스팔트 도로는 포탈라궁을 막아선 해자와 다름없다. 빌딩과 로타리에 둘러싸여 외롭게 서있던 우리 숭례문도 그렇지만 위풍당당하리라 예상했던 포탈라궁은 의외로 안스러웠다.




오전에 약간은 흐렸던 날씨가 갑자기 개이는 것이 다행스러웠지만 포탈라궁의 웅장한 모습을 담기에 마땅한 앵글을 잡기가 쉽지가 않았다. 그 이유는 바로..




이 흉측스런 건축물 때문인데. 중국의 티베트 침공 60주년을 서장평화해방 60주년이라 부르며 성대한 축제를 했던 흔적이다. 이제 막 해체되는 중으로 보였는데 저 흉물 때문에 포탈라궁을 시원하게 찍기가 무척 어려웠다. 잘 찍어봐야 달력 사진이었겠지만 그래도 저런 것 때문에 방해를 받다니 기분이 좋지 않다.




포탈라궁 앞은 물론 라사 곳곳에는 아예 소총을 든 군인들이 경비를 서고 있다. 겉으로 평화로워 보이지만 언제든지 2008년과 같은 소요사태가 발생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포탈라궁을 마주한 곳에는 이처럼 뾰족한 탑이 하늘로 치솟아있고 공안들이 부동자세로 경비를 서고 있다. 광화문을 부수고 경복궁을 가로 막아섰던 조선총독부와 다를게 뭐냐.




어쨌거나 포탈라궁은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하루 출입 인원에 통제가 있음에도 입장하기까지 꽤나 줄이 길었고 시끄러운 듕국 관광객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치여야 했다. 티베트는 중국인들 사이에서도 상당히 인기있는 관광지라는데 원체 변방인데다 교통도 불편해 적잖은 비용이 들어 티베트에 오는 관광객들은 중국에서도 꽤 잘사는 층이라고 한다. 티베트를 관광하는 그들의 기분이 나는 몹시도 궁금했다.




멀리서 봤을 때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막상 궁으로 들어오니 그 규모에 더욱 압도된다. 그렇잖아도 기본 해발고도가 3천미터가 넘는 라사인데 이 많은 계단을 오르자니 절로 숨이 가빠온다. 남들처럼 손가방하나에 똑딱이 디카 하나만 달랑달랑 들고가도 힘들 판에 목에 건 롤라이플렉스는 흔들거리며 휘청이고 어깨의 카메라 가방은 끈은 살점을 파고 드는 것 같다;

그나저나 이 엄청난 건물을 17세기에 지었다니 17세기에 우리나라는? 이라는 생각이 솔직히 들지 않을 수가 없다. 17세기면 임진왜란의 충격에서 간신히 벗어나려던 차에 또 정신 못차리고 여진족들한테 짓밟히며 국력이 바닥을 치던 때가 아닌가. 임진왜란 때 왜적도 아닌 열받은 백성들한테 불탄 경복궁도 복원하지 못하고 있던 조선에 비해 이런 웅장한 건물을 지어낸 티베트는 과연 어떠했던걸까.




티베트에서 대부분의 사원을 비롯한 유적 내부에서의 촬영은 금지되어있었다. 뭐 우리나라 사찰에서도 마찬가지지만 두 번 다시 못올지도 모르는 곳에서 맞딱드린 촬영 금지는 정말 야속하긴 하다. 여기까지는 별다른 말이 없었기에 찍었다만 이후로는 눈으로 보고 마음 속에 담아올 수 밖에 없었다.




포탈라궁에서 내려단 본 라사 시내 전경. 티베트인들이 우러러 올려보던 포탈라궁에 더이상 달라이 라마는 살지 않는다. 대신 이제 그 들의 나라가 된 중국의 자랑스런 문화유산이 되어 유네스코에 등재되어 전 세계의 수많은 관광객들이 숨을 헐떡이며 계단을 오르내리고 사진을 찍고 웃고 떠드는 곳이 되버렸을 뿐이다.


2011.08.01 라사





































2011.08.01 라사





2011.07.31 라사 노블링카 궁전

문을 드나들 때 마다 복을 기원하며 만지고 지나간다기에 열심히 만져보고 다녔었다. 다른 것 보다 원색의 화려한 발색이 좋아서 여러 곳에서 카메라를 들이대봤는데 라사에서의 첫 날에 들른 노블링카 궁전에서 찍은 것들이 제일 맘에 든다. 첫 날이라 뭐든 신기해서 좀 더 관심있게 보고 성의있게 찍어서인가.

비행기 시간 때문에 청두에서 새벽 5시에 일어나 설쳐대며 라사 공고르 공항까지 날아왔다. 호텔 조식도 못챙겨먹고 나온지라 기내식을 기대했건만 아무 것도 들지 않고 심지어 간도 되지 않은 허연 죽이 달랑 나와서 황당하게 했던 AIR CHINA~ 무사히 날아와준 것에 감사하다;




공항의 벽면에 그림만 봐도 드디어 티벳에 왔다는 것이 실감난다.




누구 귀하신 분 마중할 일이 있었는지 전통복장을 입고 공항에 나와있던 처자들. 노란 옷 입은 애는 티벳인이 맞을 거 같은데 빨간 옷 입은 애는 漢族일 것 같다.




티벳에 도착했다는 들뜬 기분에 찬 물을 끼얹는 듯한 '서장평화해방60주년' 깃발들~ 
중국에선 티벳을 서장이라고 부르며 1951년의 침공을 신분제도에서 신음하는 티벳인들을 해방시키고 영국 제국주의 침략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티벳 사람들도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어쨌든 그러고 보니 올해가 60주년이다. 잠시나마 잊고 있던 티벳의 현실을 공항 도착과 함께 저 깃발들이 확실히 상기시켜줬다.




그리고 왁자지껄 시끄러운 듕국인들로 혼잡스런 수하물 찾는 곳. 우리를 비롯한 외국인들은 약간은 짜증스런 표정으로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가 듕국인들 빠지고 나면 덩그라니 남아있는 몇 안되는 짐 중에서 자기 것을 찾아갔다.




한국에서 티벳 지역 일기예보를 확인했을 때 계속 비가 올 예정이라고는 했지만 늘 그렇듯 예보가 빗나가길 바랬는데 어째 이번엔 딱 맞아버렸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공항에서 앞으로의 일정에서 날씨가 계속해서 이 모양이면 어쩌나 걱정했던 라사에서의 첫 날. 구름이랑 비 보기가 그렇게 어렵다는 곳인데 귀한 풍경 구경하는구나;

2011.07.31 라사


그냥 올라가도 힘든 계단을 무거운 짐을 들고 오르는 분. 천지 주변에서는 뭔지 모를 작은 토목공사가 이뤄지고 있었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기 힘든 노인들은 이렇게 가마를 타고 오르기도 하던데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해발 2700미터를 헥헥 거리며 오르다보니 나도 돈 내고 타고 싶은 생각도 없잖아 들었다.




오르다 힘들 때면 잠시 서서 뒤돌아보면 이처럼 탁 트인 풍경이 펼쳐지고..




하늘에 구름이 드문드문 끼었지만 천지를 볼 수 있을까하는 걱정에 자꾸만 발걸음을 재촉하게 된다. 1년에 천지를 볼 수 있는 날이 많지 않다는 얘기가 천지를 못봐도 원성을 덜 들으려는 가이드나 여행사의 얘기인 것 같은 의구심이 강하게 들지만 재수없게 내가 못보게 될까 하는 걱정이 전혀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행히! 천지는 모습을 드러내 주었다. 기대했던 것 보다 크지 않아서 약간 실망한 것도 없잖아 있지만 힘든 계단을 올라 눈앞에 짠하고 나타난 천지를 본 순간 나도 모르게 '천지다!'하고 소리를 질렀으니.. 이상하게 짠해오는 벅찬 감동. 우리 땅인데도 중국을 통해 와야한다는 안타까움과 사실 천지를 신성시 여기는 것은 우리 민족 말고도 여진족을 비롯한 만주 일대의 많은 유목민족들이 그러했으니 중국에서도 포기하고 싶지 않을 것이 이해는 간다.


그래도 우리 민족에게 백두산 천지는 남다른 감동을 주는 곳임에는 틀림없다. 태극기를 꺼내거나 무슨 구호를 외치거나 하면 절대 안된다는 주의를 받으면서도 심히 기분이 나빴고 돈을 쓰더라도 북한 땅을 통해 들어갈 수만 있다면 아마 대부분 중국에 돈 주면서 백두산을 오르진 않으리라.


함께한 일행 중에 미국에서 사업을 하시는 고종호님께서 자작시를 한편 쓰셨는데 화려한 문체와 음율은 아니었지만 백두산에 오른 벅찬 감동을 전하기에 더할 나위 없었다. 사업으로 크게 성공하시며 아쉬울 것 없이 하고자 하는 것을 이루시고 전 세계의 명소를 두루 다니셨을텐데도 백두산은 백두산이라 천지를 보는 순간 눈물이 맺혔다고 하시는데..  양해를 얻어 그 시를 여기 옮겨 적어본다.


백두산

한민족의 성산이 백두산이라네
철이 들고 나이 들어
그렇게 보고 싶고 오르고 싶던 백두산

이제는 반 쪽되어 장백산이라 한다네
이 뼈 아픈 역사
누군들 좋아하리

삼팔선 가로막혀 중국땅 밟고
압록강 줄기따라
삼 일을 달려

백두산에 오르니
9월인데 벌써 하얀 눈이 마중하네

큰 호흡하며 감격하니
눈가에 이슬이 맺히고

천지 내려다 보며
마음으로 대한만세 부르니
소원 풀었네


2010.09.23 백두산

 중국에서 스타벅스나 맥도날드, KFC 같은 프랜차이즈를 만나면 참 반갑다. 특유의 향이 너무 거북스러워 입에 맞지 않고 길거리에서 파는 먹거리들의 위생 상태나 재료가 뭔지 알수가 없어서인지도.
 



 신천지 까페거리는 무덥고 습한 상하이에서 만난 청량제와도 같았다. 어딜가도 복잡하고 불필요하게 클락션을 울려대는 자동차들 때문에 짜증이 치솟을 무렵 들른 신천지는 정말 마음에 쏙 들었다. 시간이 부족해 이 사람들처럼 여유롭게 커피나 맥주 한 잔 마시지 못한 것이 아쉽다. 쓸데없이 남경로 따위에서 시간을 허비했다;;




 동양인의 입장에서 신천지의 거리는 다분히 이국적이라 흥미로웠지만 상하이에서 단위 면적당 가장 많은 외국인을 볼 수 있는 곳 또한 신천지였다. 이국적인 거리에 서양인들이 많다보니 유럽에 온 듯한 착각마저 드는 곳.





무슨 아파트 공사장 간판도 아니고 벽면을 가득채운 블랑팡의 광고판. 경제 성장과 더불어 손 큰 부호들이 즐비한 상하이답다. 남경로에서 들른 백화점 롤렉스 매장에도 사람들이 바글바글 거렸으니 뭐.


2011.07.30 상하이(上海)





















2011.07.30  상하이(上海)

서울의 명동같은 분위기라는 남경로, 복건로 일대..뭐 그다지 감흥있는 곳은 아니었다. 덥고 습한 날씨에 이미 지쳐가던 중.


















2011.07.30 상하이(上海)


















2011.07.30 상하이(上海)





집안의 고구려 고분군. 엄청나게 많은 고분들이 산재해 있지만 대부분의 무덤들이 이미 깔끔하게 도굴당해 누구의 무덤인지 알수 없는 것이 허다하다. 남의 땅이 되버린지 천 년 동안 이 고분들처럼 고구려의 역사를 증명해줄 증거들은 너무나 희미해졌다.




삼륜차를 끌고 먼지를 날리며 다리를 건너는 현지인.




과거의 우리의 땅이었던 이 일대에는 조선 말기부터 건너간 우리 동포들도 많이 살지만 한족과 만족들도 많이 살고 있다. 우리 동포 말고는 이 곳의 고구려 유적들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으리라. 지금은 펜스가 둘러쳐지고 출입이 통제되고 있지만 그 전엔 무너진 고분 안으로 들어가 노숙자들이 잠을 자고 술을 마시기도 했다니..

더 얘기해봐야 속만 탈 뿐이다.



2010.09.24 지안(集安)시







무척이나 뜨겁고 시끄럽고 복잡했던 예원 상가. 비행기 시간상 대부분 몇시간 못잔 상태에서 진을 빼기에 충분한 다소 부담스러웠던 첫 날 일정.

2011.07.30 上海


해도 뜨지 않은 꼭두새벽에 인천공항에 도착. 보딩까지는 아직도 한참 남았고 잠을 제대로 못잔 피로함이 밀려온다.




지루한 사람들은 담배도 피우고..




두 다리 쭉 뻗고 스마트폰과 놀기도 하고..




이번 티벳 여행을 함께할 녀석들. 현재와 현재 친구들인 은국, 강남, 자준. 다 동생 친구들에 내가 꼽사리가 된 격이지만 사실 티벳은 내가 몇년째 노래를 부르던 곳. ㅎㅎ  이번 여행은 2007년 몽골-바이칼 여행 때 함께한 여행사 사장님이 아직 우리를 기억하는 덕에 촬영에 보다 유리한 일정으로 계획을 수립할 수 있었다. 다들 사진이 취미인 녀석들이라 적격이다.




오늘이 가장 출국자가 많다고 했던가. 어느 게이트나 줄이 장난이 아니다. 올해도 여행수지 적자에 기여하는구나.




Take off ~~

항공편 사정상 티벳에 앞서 첫날은 상해로~ 


2011.07.30 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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