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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라이플렉스는 악세사리 모으다 보니 바디 가격을 훌쩍 넘었다는 얘기들을 많이 하는 녀석이다. 나 역시 살 때부터 좀 무리해서 수많은 롤라이플렉스 중에서도 꽤나 손꼽히는 2.8f Xenotar모델에다 F최후기형인 일명 '화이트페이스'이며 220필름까지 사용가능한 12/24 모델이다. 일단 바디에 큰 돈을 투자했기에 악세사리 좀 모여봤자 바디값을 넘을 일은 없겠지라는 생각을 했건만 그럼에도 후드, 필터, 스트랩, 스크린, 롤라이너 등등 악세사리가 하나둘 모이니 정말 어지간한 롤라이플렉스 바디값 정도는 뛰어넘고야 말았으니..

그 중에서도 계륵같은 존재가 바로 근접촬영용 접사필터의 일종인 Rolleinar! 롤라이플렉스는 이안반사식이라 근접촬영시 생기는 시차를 보정해주는 뷰잉렌즈 쪽과 초점거리를 줄여주는 테이킹렌즈 쪽의 두개의 필터로 구성되어 있다. 롤라이너는 1, 2, 3의 세가지 모델이 있으며 숫자가 커질 수록 그만큼 더 근접 촬영이 가능한데 3는 지나치게 가깝고 일반적으로 1,2가 가장 무난한 편인데 2도 가까워 평범한 인물 촬영에선 좀 그렇고 꽃을 적당히 배경과 더불어 찍기 괜찮은 수준.

이 중 내가 갖고 있던 것은 롤라이너2와 1인데 롤라이플렉스 구입 후 가장 먼저 구입한 악세사리로 애착이 가던 롤라이너2는 얼마전 카드값의 압박으로 시집보내고야 말았다. 롤라이너2의 과도한 근접거리에 비해 포트레이트에 적당한 롤라이너1은 작년까지만 해도 여자친구가 존재하던 시절 나름 까페 등에서 찍기 좋을거라 생각하고 마침 샵에서 중고장터시세보다 싸게 부르기에 덜컥 구입했었다. 그러나 당시 그런걸 그 돈 주고 사냐고 구박만 이빠시 듣고 정작 찍어준 적은 없이 술먹고 난 아침 부시시한 친구들 한 장씩 찍어줘보곤 거의 쓰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구입의 목적이었던 그 여친은 서울에 자주 안 올라간 나의 무성의에 질려서 떠난건지 내가 보낸건지. 그랬다는가슴 아픈 사연이;

어쨌든 간만에 롤라이너1을 활용해 집에서 뒹굴거리다 베란다에 핀 꽃을 찍어줬다. 밖에서 좀 써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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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03

슈퍼이콘타 534/16이 보여준 나름 훌륭한 색감
롤라이플렉스 때문에 자주 못나가는 비운의 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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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3  매축지

재개발 예정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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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3  매축지

간만에 실버패스트를 이용
08. 3. 10 () - 월차를 내다!

 봄을 맞이하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내게는 역시 섬진강을 찾는 길이 최고의 선택인 것 같다. 올해로 벌써 4번째나 찾는 봄의 섬진강. 3월 중순이면 섬진강 따라 피어나는 매화꽃의 무리는 정말로 봄이 왔음을 실감할 수 있게 하는 이미지. 물론 2월부터 피어나기 시작하는 남해안과 일부 섬의 동백꽃과 복수초들도 빼놓을 수 없지만 매화의 세밀하고 야무진 꽃잎이야 말로 그 중 최고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사군자라 불리우던 매난국죽(梅蘭菊竹) 중 매화가 가장 첫째인 것도 괜한 것은 아니리라.

 아침 7시경 출근하듯이 집을 나서 포항-대구 고속도로를 통해 서대구 IC를 거쳐 마산외곽순환도로를 통해 남해안 고속도로에 합류하여 경남 하동을 향해 달렸다. 이틀전 엔진오일을 간 덕에 18만 키로의 주행기록에 달하는 내 12년된 아반테는 이날따라 아주 날아갔다. 밟으면 밟는대로 죽죽 나가는 평소답지 않은 놀라운 엔진파워를 보여주며 3시간 여의 질주 끝에 하동에 도착했다. 대학 다닐땐 여수행 마지막 무궁화호를 타고 내려오곤 했던 이 곳에서 가장 먼저 들르는 곳은 언제나 하동 송림이다. 언제부터인지 입장료를 받고 있지만 최소한의 관리비라 생각하고 기꺼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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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동 송림에서 바라본 섬진강. 이 강을 경계로 저 건너편은 전남 광양이다. 조영남의 노래에 나오는 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따라 화개장터에~의 그 섬진강. 당연히 차가 없던 대학생 시절 새벽에 도착한 섬진강가는 언제나 차가운 바람으로 몸을 움츠리게 했다. 저 다리를 건너 광양 다압면 매화마을까지 걸어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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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진강의 재첩을 건지는 아저씨. 이른 아침 갑자기 나타난 카메라를 주렁주렁맨 낯선 이의 인사도 반갑게 받아주시며 많은 얘기를 들려주셨다. 매화꽃은 아직이라며 다음주 정도는 되어야 절정에 이를 것이라는 말에 광양으로 건너가기에 앞서 약간 걱정이 든다. 재첩은 국으로 밖에 안먹냐는 질문에 숙회로도 먹는다는데 아직 먹어보진 못했다. 해마다 섬진강에 들르면 꼭 찾게되는 것이 재첩국이었다. 미각을 화려하게 자극하는 전세계의 온갖 음식들에 익숙해진 오늘날 우리의 입맛에 특별한 맛을 선사하는 음식은 되지 못할지는 모르나 특별한 양념도 없이 재첩을 고은 뽀얀 국물에 부추 몇 조각이 떠있는 재첩국을 한 숟갈 입에 넣으면 섬진강과 봄의 향기가 온 몸에 퍼져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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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진강 어민회의 낡은 컨테이너 건물. 섬진강은 아직도 그 맑은 수질이 유지되고 있는 강 중 하나로서 재첩을 비롯하여 향긋한 향이 일품인 은어, 수질이 조금만 오염되어도 적응하지 못하는 민물참게가 잡힌다. 참게는 군사지역에서 보호받는 임진강 외에는 섬진강에서만 잡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마침 군복무했던 부대가 임진강과 가까워 참게 매운탕은 몇번 맛보았다. 이번 여행길은 혼자라 양이 많은 매운탕은 먹기 뭐해 참게장 정식을 먹었는데 평소 간장게장을 즐기지 않았으나 섬진강 참게장은 향긋하고 깊은 맛이 썩 괜찮았다. 이 모든 섬진강의 혜택을 계속 누릴 수 있도록 맑은 수질이 유지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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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진강 변에 피어난 매화. 역시 아직 이른 시기라 흐드러지게 핀 상태는 아니었지만 접사를 즐긴다면 꽃 잎이 싱싱한 이 시기가 더 제격일 듯 하다. 아마 이 번이 내가 섬진강을 찾은 네 번 중 가장 이른 시기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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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리를 건너자 넓은 부지에 매화축제를 알리는 애드벌룬과 행사장 천막들이 눈에 띄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늘 찾던 그곳으로 향했다. 평일이라 역시 조용했고 서울에서 오셨다는 노부부께서 매화를 카메라에 담는데 열중이셨다. 요즘은 노인분들도 DSLR을 쓰시는 경우가 무척 많다. 그 흔한 DSLR하나 없이 20년도 넘은 Rolleiflex와 니콘 F3HP와 FM을 들고온 나는 '저 보다 더 신세대이십니다.'라며 인사를 건냈고 할아버지는 우리야 잘 못찍으니 디지털을 쓴다고 답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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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은 봄이다. 매화가 점점히 피어나는 섬진강변의 마을에서 모종을 심고 밭을 손질하는 일손이 바쁘다. 군대에 있을 땐 봄이 되면 부대 곳곳에 피어올라오는 달래를 뜯는 것도 소소한 재미 중의 하나였다. 달래를 뜯어 관사에서 후배 장교들과 모여 라면을 끓여먹으면 정말 일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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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필름에 담고 이 분은 캔버스에 담는 중. 파레트에 짜놓은 물감의 색채가 발랄하다. 학교 다닐 땐 그림은 좀 그리는 편이었는데 나중에 나이 들면 수묵화나 제대로 한번 배워봐야겠다. 돈이나 많이 벌어둬야겠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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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의 맑고 잔잔한 물, 깨끗한 백사장. 언제나 섬진강은 잔잔하고 고요하다.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휴식을 취하기 제격인 곳. 섬진강이 배출한 文人 김용택의 책을 가져갈 걸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시간나면 김용택의 글이나 다시 읽어봐야겠다.

- 하늘은 맑았으나 대기가 그리 청명하진 못했던 관계로 발색이 그다지 좋진 않은 듯. 흑백은 다음 기회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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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3  경주 안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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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2  우포늪

갈 때 마다 그냥 그런 날들.
바라는 대로 멋진 일몰만이 나타나기만 바라는 것은 욕심.
맑고 찬 바람 얼굴에 맞으며 넓은 하늘보며 담배 한대 필 수 있었던 걸로도 충분한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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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2  청도

요 근래 들어 부쩍 자주 들르고 있는 곳.

다음번엔 박유붕의 후손이 지었다는 99칸 짜리 田字古宅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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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3  안강

화려한 색을 뽐내는 딸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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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3  안강

대형할인마트와 상설장에 밀려 점점 퇴색해가고 있는 곳곳의 5일장들이지만

이 곳 안강 5일장은 언제나 활기가 넘치는 곳이다.

촬영 하다 허기질 때 들러 하나씩 사먹는 이 곳 즉석어묵의 맛은 최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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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9  몽골 울란바토르

시대가 변해가면서 이제 몽골에서도 유목민의 전통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기는 힘들지만 아직도 이들은 게르에서 많은 이가 살고 있다. 다분히 아이러니한 현상이지만 자기 집터에 나무 울타리를 쳐놓고 생활은 여전히 게르에서 하는 정착도 이동도 아닌 희한한 형태의 주거문화가 혼재되어 있는데 이는 비단 오늘날의 현실도 아닌 원나라 때도 보였던 일이다. 중원을 지배한 몽골족들은 화려한 궁궐에서도 게르를 지어두고 생활하며 유목민들이 유목정신을 잊고 정착문명에 동화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사실 중국을 지배한 수 많은 유목민족들이 멸망하게 된 것도 중국의 한족문화에 동화되며 특유의 강인한 민족성을 잃고 기동성이라는 그 들만의 장점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청나라를 지배했던 여진족조차 오늘날은 찾아보기 힘들정도이니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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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9  몽골 울란바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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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9
바이칼을 떠나며..
다시 올 수 있을지 알수 없는 곳이라 잠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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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9 
벌써부터 그리워 지는 곳.
환바이칼 열차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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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9
환바이칼 철도의 종착역.
오전부터 해질무렵까지 바이칼호를 실컷 느끼고 도착한 곳.
이 곳에서 다시 건너편의 리스트비앙카를 향해 배를 타고 건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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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11  포항

東海 / 겨울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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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9  몽골 테레지 국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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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도 마을 입구에 있는 큰 나무에 이와같이 천을 두르거나 돌을 쌓아 탑을 만드는 일은 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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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330여개의 강물이 바이칼로 흘러들어가고 오직 하나의 강으로 흘러나간다.
 그 유일한 강이 앙가라강으로 예니세이강과 만나 북극해로 빠져나가게 된다고 함.
 이 같은 이유 때문에 앙가라강에는 전설이 전해지는데 그 내용은

 "옛날옛적에 바이칼 신에게 330명의 아들과 1명의 딸이 있었는데 그 딸의 이름은 앙가라라고 하였다.
 그런데 바이칼이 시집보내려던 남자에게 시집가기를 거부하고 앙가라는 예니세이라는 남자를 사모하여
 급기야 도망을 가게 되었는데 격노한 바이칼이 던진 바위에 맞아 앙가라는 죽고 말았댄다.
 그리하야 앙가라가 흘린 눈물이 강이 되어 앙가라강이 되었고 그 강만이 유일하게 예니세이 강을 향해
 흘러가게 되었다"
 
 라는 그런 것인데..;

 어쨌든 이 조용하고 한적한 강가의 자작나무 숲에서 보낸 3일은 정말 잊기 어려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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