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릉원의 동쪽에 위치한 경주 쪽샘지구. 4∼6세기에 걸쳐 조성된 삼국시대 신라 왕족과 귀족들의 묘역으로 사적지구로 지정된 경주시 황오·황남·인왕동 일대에 해당하며, 총면적 38만 4,000㎡ 이다. 1960년대 이후 주택이 많이 들어서면서 고분의 훼손이 심해지자 2002년부터 문화재청과 경주시가 680억 원을 들여 일대 민가 359가구와 사유지 등을 매입하고 2007년 3월 본격적으로 발굴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쪽샘지구에 대한 발굴 조사는 근래 들어 최대의 규모라고 할 수 있는데 2009년 6월 현재 적석목곽분과 목곽묘·석곽묘 등의 고분 150여 기가 확인되었고 3,000여 점의 유물이 수습되었다고 한다. 사실 경주에 사는 사람들은 입버릇처럼 얘기하는 것 중의 하나가 땅만 파면 뭐가 나온다는 것인데 천마총으로 유명한 대릉원 바로 옆인 쪽샘지구는 당연히 땅만 파면 뭔가가 쏟아질 것으로 대단한 기대를 모았던 곳이었으나 현재까지의 발굴 성과는 기대에 비해 다소 초라하다고 한다. (신라중장기병의 갑옷은 완벽한 세트로 출토되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대부분의 집들이 헐리고 없지만 아직 남아있는 집들도 있다. 아직 보상 절차가 마무리되지 않아 떠나지 않은 집인지 철거를 기다리는 집인지는 모른다. 사진을 찍다보면 이야기보다 이미지에 치중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동네를 돌아다니며 건물의 잘린 단면이 왜 그렇게 색다르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폐가에서 나왔던 것으로 보이는 쓰레기더미들. 




대학교 시절 간혹 찾던 서울의 달동네 난곡에서도 봤던 붉은 스프레이로 휘갈긴 숫자들. 철거를 앞둔 집들이다. 문화재 발굴 때문에 정든 집을 떠나야 했던 주민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자기 집 공사하다가 땅 밑에서 유적이 나오면 그냥 파묻어 버렸다는 얘기도 종종 들었으니 그따위 문화재가 무슨 소용인지 싶은 사람들도 있었을 것 같다. 여담이지만 경주의 한 주택가에서 발견된 문무왕릉비의 일부를 수돗가에서 빨래판으로 쓰던 것이 우연히 발견되었음에도 집주인은 포상금에 눈이 어두워 쉽게 내놓지를 않고 장장 9개월간이나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경찰까지 동원하여 강제로 박물관으로 옮겨지는 웃기지도 않는 일도 있었다.




역시 철거를 앞둔 집들. 전반적으로 AF20-35mm2.8D는 Nikkor렌즈의 일반적인 특성과 달리 다소 부드러운 콘트라스트와 색감을 보여주는 거 같다. 




경주의 다른 구시가지와 마찬가지로 단층 가옥들과 좁은 골목길이 이어졌던 이 곳은 이제 넓은 공터가 되어 버렸다. 고도제한 때때문에 높은 건물이 별로 없는 곳이긴 하지만 그나마도 건물이 없으니 하늘이 탁 트이며 경주는 참 평평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형산강을 제외하고 그렇게 큰 강을 끼고 있지는 경주는 인근의 건천, 안강, 흥해와 더불어 꽤나 들이 넓어 한 국가의 도읍으로 괜찮은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뜨거운 오후의 햇살을 양산으로 가리며 어디론가로 마실 나가시는 두 할머니. 쪽샘지구에 대한 발굴은 앞으로도 20년간 계속 될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가 잃어버린 고대사의 조각들을 다시 찾을 수 있는 발굴 성과가 있기를 기대하며..




2010.08.29 경주 쪽샘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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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5 영덕


전형적인 풍경사진을 찍으러 갈 때마다 늘 그렇지만 별 기대도 않고 바람이나 쐬자는 취지로 나섰고 역시나 특별할 것 없는 사진들을 건져왔다. 그래도 일주일 동안 학수고대하던 늦잠까지 포기하며 새벽부터 설쳐야 하는 일요일 아침 출사는 쏜살같이 지나가는 주말을 그나마 알뜰하게 보내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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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02 정선 5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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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INIQUE moisture surge extended thirst relief (이름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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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CCITANE  Hand Cream Trio Set

서울 출장길에 구해온 혜정이 생일 '늦은' 선물 겸 크리스마스 '미리' 선물~


갖고 싶어하는 두 상품의 이름을 완벽히 외워 매장에서 자연스레 달라고 하고 싶었으나 몇번이고 봐도 외워지지 않는 크리닉의 저 모이스춰 크림과 록시땅의 핸드크림의 이름~;;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러하듯 여자 화장품에 문외한인 나로선 어쩔 수 없는 것이었으니.. 결국 영구보관함에 옮겨둔 문자메세지를 보면서 물건을 달라고 할 수 밖에 없었다.

저 정도면 비싼건지 얼마나 좋은건지 개념조차 안잡히지만 무척이나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롯데 잠실점의 탁하고 더운 공기 속에서 이마에 땀 송글송글 맺혔던 잠깐의 고생에 대한 위안이 된다. 어릴 적에도 잠실 롯데(롯데월드 마찬가지)의 탁한 실내 공기는 참 적응하기 어려웠는데 수 년만에 다시 찾은 지금도 달라지지 않는다.

※ 그리고 간만의 ai-s 28mm 2.8을 이용한 접사~ 굳이 힘들게 구했던 이 28mm는 Nikkor 28mm 중 CRC설계가 되어 0.2m의 근접 촬영이 가능하단 거~ ㅎㅎ  맘에 들어~


2009.12.13 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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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1 서울 강남역

오랜만에 만난 형석군 :)



2009.12.11  서울 이문동

D700 첫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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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6 서울대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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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5  서울놀이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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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5 서울놀이공원


할아버지가 안계셔서 그런가 2000년도에 별 생각없이 찍었던 이 사진들을 다시 보니 왜일케 애뜻한건지 모르겠다. 이게 핏줄의 정인가 싶은것이..ㅠㅁㅠ    저렇게 눈에 넣어도 안아픈 손자 손녀들을 데리고 다니시던 할아버지 분들의 마음은 어떨까. 나 왜 이러지? 나이가 들었나 정말 이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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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곡의 골목길에서 만난 아이. 눈을 감았지만 그 때는 인화도 하지 않았던 이 사진이 왜 이렇게 맘에 드는지 모르겠다. 노출 완전 오버에 현상도 오버라 톤은 개판이지만 투박한 느낌이 나쁘지 않다. 흑백 사진을 처음 시작하던 초기의 네가티브들은 지금에 와서 새로운 가르침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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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지 다듬던 할머니. 난곡의 좁은 골목에서는 할머니, 아줌마들이 나와서 마주보고 앉아 얘기를 나누며 나물을 다듬거나 하는 모습들이 흔했다. 집안이 좁고 어두워서이기도 했겠지만 재개발의 열풍이 몰아치기 전 난곡은 사람사는 냄새가 풍기는 정가는 동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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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곡의 경사가 심한 골목길은 노인들이 다니기에 절대 편하지 않았고 겨울에 눈이라도 와서 얼어붙으면 자빠지기 딱 좋았다. 골목을 지나다보면 염화칼슘 보관하는 집이라고 써진 집들이 한 두군데씩 있었다. 지금와서 보니 이 사진을 찍은 것도 가상하다. 사실 이 때는 왜 난곡에서 못사는 사람들 사진을 찍어야하는지에 대한 개념정립이 안된채로 헤매이기만 했다. 도대체 왜 이런 사진들을 찍어야 하는지 왜 좋은 사진인지 이해가 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중학교 때 부터 사진을 찍어왔지만 대학교 1,2학년 때 난 내가 어떤 사진을 해야하는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작가도 아니고 내가 어떤 철학을 가지고 사진을 대해야한다고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지만 난 내 사진의 색깔을 찾고 싶었고 여러가지 시도를 해봤고 다양한 책들을 읽어 나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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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촉 사고. 세월의 힘이란 이런 것인가. 이런 장면 조차도 아련한 추억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흑백 사진으로 담은 스냅들은 꽤나 오래전의 장면을 보는듯한 착각을 준다. 그래도 21세기인 2000년도의 사진인데 무척이나 오래된 모습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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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름한 간판의 오락실. 오락실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모습이지만 안타깝게도 난 학창시절 오락실을 들락거린 기억이 별로 없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도 그다지 게임을 즐기는 편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학교 앞 문방구 등에서 많이들 사먹었다는 달고나, 뽑기 등과 더불어 보편적인 추억을 공유하지 못하는 것 중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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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난곡에서 만난 희망들. 이 아이들을 만나기 전만 해도 난곡이라면 우울한 달동네..이거 하나만 생각했었다. 뭔가 진지한 태도로 뭔가의 스토리를 담아야겠다는 강박관념이 강했던 난곡 촬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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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에 들러서 쭈볏쭈볏 기웃거리다 선생님에게 애들 사진 좀 찍어도 되겠냐고 물었을 때 허락해주시면서 했던 말이 있었다.

"사진 제목에 달동네 아이들. 이런 식으로 안하실거죠?"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나올 수 없는 당부를 하던 그 유치원 선생님에게서 자란 아이들은 복된 인연을 만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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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져간 필름도 하필 감도 100인 TMX라 노출도 안나오는 상황에 이 녀석들은 부지런히 카메라 앞에 모여든다. 여기저기서 '나도 찍어주세요~','저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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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이렇게 부대끼며 어울리고 장난칠 수 있는 친구들과 그러한 환경이 갖춰질 수 있다는 것은 아이들에게나 이 사회에게나 행복한 일이다. 어린 나이에 맞지 않게 학원에서 시달리고 노는 시간엔 놀이터가 아닌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요즘 아이들의 성격 형성은 분명 앞으로 큰 사회적 문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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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을 나서며...또 오라고 인사를 하던 아이들. 사진 인화해서 또 올게~ 라며 약속했지만 1년 후  내가 다시 찾았을 때 유치원은 벽돌 더미로 변해있었고 아이들은 어디로 갔는지 알길이 없었다. 재개발 결정이 내려진 후 난곡엔 빨간 스프레이로 '철거'란 두 글자가 휘갈겨졌고 분위기는 흉흉했다. 그렇게 난곡에 대한 재개발 결정이 내려지고 집들이 철거되기 시작하자 그제서야 나는 번쩍 드는 생각이 있었다. 왜 그동안 난곡에 대한 사진을 더 많이 찍어두지 않았는가 하는 후회와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바로 그거였다. 기록. 내게 있어 가장 가치있는 작업은 기록으로서의 사진이었다. 이 후 몇년간 나는 아마추어임에도 아마추어로서의 한계를 벗어넘고 싶었고 다큐 사진에 푹 빠져 많은 시도와 고민을 하게 되었는데 그 시발점이 된 사건이 바로 난곡의 재개발이었다. 난곡은 어쩌면 내 사진의 방향이 된 기록으로서의 가치를 알려주고 사라진 소중한 공간일지도 모른다.

2000.05.17 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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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5.14

날씨가 서서히 더워지기 시작하던 5월의 주말, 공원을 찾은 사람들의 여유
8년도 넘게 지난 이 필름들을 들여다보니 사람에게 다가가 사진을 찍어본 지가 언제인가 싶다. 현상, 노출도 엉망일 만큼 기교도 부족하던 시절의 사진들이지만 필름 속에 사람이 담겨있다는 이유로 새롭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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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4.16  덕수궁

지금은 경복궁, 창덕궁은 물론 남한산성을 비롯한 성곽유적에서도 이와 같은 행사가 흔해졌지만 내가 대학에 갓 입학했던 2000년에는 아마 덕수궁에서의 수문장 교대식이 처음이었던걸로 기억한다. 혹자들은 규모의 화려함과 절도의 엄격함도 없는 옷입고 줄지어 왔다갔다 하는 엉성한 병정놀이같은 코스프레라고도 혹평하지만 조금만 더 신경쓴다면 충분히 구경거리로 통할 수 있는 문화 상품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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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4.05 경복궁

서울에서 무척 좋아하던 곳 중 하나였던 경복궁. 식목일을 맞아 촬영을 갔을 때 만났던 어느 꼬마. 벌써 8년이 훨씬 지난 이 시점에서 보니 좀 촌스러워보이기도 하다만 같이 온 엄마와 함께 꽤나 멋 좀 부린 차림이었다. 한 컷 찍어도 되겠냐고 물어보자 엄마는 그러라고 했고 꼬마는 알아서 포즈를 취했었다.


p.s. 필름에 기스와 먼지가 꽤나 생겼는데 대학시절 필름들은 왠만하면 그 분위기 그대로 놔두고 스캔하고자 한다. 물론 ICE가 되지 않는 흑백필름이라 일일히 작업해서 없애기도 귀찮기도 하고..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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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08  전북 고창

간만에 훈훈한 사진인가..


자우림 전국투어 콘서트 "MIDNIGHT EXPRESS"
2008.12.20 19:00 EXCO 컨벤션홀 5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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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부터 대학가면 보러 가려던 자우림 콘서트를 7집까지 나온 이제야 다녀왔다.
멤버들의 말대로 이제는 같이 늙어가는 처지가 된 팬들을 보니 거의 30대;;  하긴 1집이 나왔던 97년이 내가 고1이었으니 그럴만도..감회가 새롭다. 사실 자우림의 라이브를 처음 접한 것은 대학교 3학년 때였던 것으로 기억되는 '윤도현의 러브레터' 녹화할 때였다. 그때도 놀랐었지만 역시나 김윤아의 가창력은 쵝오; 더군다나 결혼하고 애기까지 낳고도 더 이뻐지니 ㄷㄷ

혹시나 해서 가져간 D60은 그런대로 괜찮은 결과물을 만들어줬다. 애초에 AF180mm2.8ED를 들고 갔음 좋았을 뻔 했다만 프레스석이 아닌 관람석에서 이정도면 양호하지 뭐.
2008. 07.  포항

요근래 주말 중 날씨가 양호했던 7월의 마지막 일요일. 가족들과 남산에서 간단히 트래킹을 즐기고 돌아와 바로 카메라를 챙겨들고 모교인 포항체절중학교로 향했다. 스포츠토토 후원 전국 유소년야구대회가 열리고 있는 기간이었고 그 다음주엔 남해안 일대를 3일간 둘러보고 서울로 올라갈 예정이라 시간은 이 날 하루 뿐이었다.

한동안 바깥 바람을 쐬지 못한 AF85mm1.8과 AF180mm2.8ED를 챙겨들고 운동장에 도착하니 광주 화정초등학교와 순천 남산초등학교의 경기가 진행 중이었다. 아마 야구는 7회까지로 알고 있었는데 초등학교 야구는 한 이닝이 더 짧은지 나름의 전광판(?)에는 6회까지만 표시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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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투 중인 광주 화정초등학교의 투수. 조금은 자신 없는 투구로 감독의 질책을 받고 마운드를 내려오긴 했지만 수차례 위기를 넘기며 순천 남산초등학교의 타선을 중반까지 무실점으로 묶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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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펜에서 몸을 푸는 화정초등학교의 투수. 직구를 던지기 위한 그립을 한 채 투구판을 밟고 와인드업하는 모습에서 어린 나이답지 않은 비장한 표정과 진지함이 인상적이었다. 이 녀석은 첫 번째 사진의 투수에 이어 등판해 경기 종료까지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체격 조건도 좋아보였고 또래의 초등학교 선수들이 쉽사리 배트를 갖다대기 어려운 묵직한 직구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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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락 아웃! 자기 스윙을 하지 못하고 엉거주춤 당하고만 남산초등학교 타자. 시종일관 화정초등학교의 마운드에 눌린 남산초등학교는 수비에서도 매끄럽지 못한 플레이로 주지 않아도 될 실점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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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치의 사인을 주시하고 있는 화정초등학교 포수. 마스크를 썼지만 어린 나이 답지 않은 예리한 눈빛이 인상적. 투수를 리드하고 수비 라인을 조율할 수 있어야하는 포수라는 직책에 어울려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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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아직은 엄마가 보살펴줘야하는 어린이 :)   무실점으로 한 이닝을 마치고 들어와 마스크와 보호구를 벗으며 타격 준비하는 아들의 땀을 닦아주는 엄마는 아들이 대견하기도 하겠지만 학원 스포츠계에서 만연한 뒷돈 문화 등을 떠올리면 이 부모의 고생길도 훤하다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음은 슬픈 현실이 아닐까. 상위 학교 진학 혹은 프로 입단에 올인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 오는 여러 병폐를 막으려면 결국 클럽 스포츠의 형태로 변화되어야 할텐데 그것도 말처럼 한 순간에 쉬이 바뀌기는 어렵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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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도 할 건 다 한다. 다음 타순의 타자는 대기 타석에서 상대 투수의 투구 동작에 호흡을 맞추며 배팅 연습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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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시타가 터지고 1루 주자는 2루로 내달린다. 조금 의아했던 것은 생각보다 안타나 득점이 이뤄져도 선수들의 표정은 큰 변화가 없었다는 점이다. 화이팅이나 패기보다는 군기가 바짝든 그런 딱딱한 모습은 보기에 다소 안쓰러워 보이기 조차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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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죽한 전라도 사투리로 열심히 진두지휘 중인 화정초등학교 감독님. 더위 때문인지 흥분한 탓인지 얼굴까지 시뻘개져가며 수비위치부터 투수의 볼배합까지 큰 소리로 지시하고 있었다. 사실 감독님의 표정과 흥분도를 봐서는 지고 있는 팀의 감독으로 보였지만 투수들의 호투와 타선의 집중력, 상대 실책을 이용하는 효율적인 주루 플레이로 이 날 화정초등학교는 남산초등학교에게 영봉패를 안겨주며 완승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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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의 공이 날아들기 직전의 순간. 한 점도 못내고 영봉패를 당했지만 순천 남산초등학교의 선수들은 벤치에서도 쉴새없이 화이팅을 외치며 최선을 다했다. 사진으로 보니 두 학교의 유니폼이 아마 선수단임을 감안하면 참 세련된 편이라는 생각이 든다. 봉황기나 청룡기 중계를 간혹 보면 정말 너무하다 싶은 유니폼들도 많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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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야구 특유의 맞으면 '땡강~'하는 소리가 나는 알루미늄 배트들. 야구 경기를 보는 내내 만화 '까치'가 생각났다. ㅎㅎ


중학교 때 우리 학교 야구부가 결승에 진출해서 영남대학교 운동장까지 가서 응원했던 이후 아마 야구를 직접 지켜 본 것은 처음이지 않나 싶었다. 애(?)들 답게 어이없는 실수도 하고 귀여운 플레이도 하길 기대하고 찾아간 자리였지만 생각보다 실력도 뛰어나고 너무 진지해서 원하던 컨셉의 사진을 얻지는 못한 것 같다. 이 날 만난 아이들 중 10년 뒤 이름을 휘날릴 친구가 나타날지 사뭇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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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03  하동


3월에 월차신공으로 평일에 조용히 다녀왔던 섬진강.

하동을 빠져나와 남해안고속도로로 진입하기 위해 달리던 중 보이는 간판 '최참판댁'
적어도 운치있는 고택과 최참판이 하동 마을 주민들에게 베풀었던 넉넉한 마음씀씀이 등의 훈훈한 일화를 떠올리며 핸들을 꺾었던 나의 기대를 무참히 깨준 곳이었다. 드라마 '토지' 세트장이었다는 민속촌 비스무리한 초가집들과 각진 목재로 새로 깨끗이 만들어진 최참판댁과 이런 것들을 대상으로 입장료를 받는 어이없는 상황에 고개를 설레설레 저어야했다. 더군다나 수많은 관광버스에서 쏟아져 나온 단체 관광객들의 왁자지껄함에 질려버렸음은 물론이다. 박경리의 '토지'를 읽고 소설의 감흥을 느끼고자 찾은 애독자는 있기나 했을까.

어쨌든 괜히 왔다라는 생각을 되뇌이며 세트장을 빠져나오며 만난 마을은 그나마 위안을 주는 모습이었다. 요즘 농촌 답게 빈 집이 드문드문 있었지만 섬진강변의 넓은 들을 끼고 있는 곡창의 마을답게 여유가 느껴지는 한적한 마을이었으며 돌담도 예전 그대로의 형태를 보존하고 있었다. 요즘은 이런 돌담을 보기도 어려워져 돌담도 보존해야할 향토 유적으로 분류될 정도이니 자연스럽게 남아있는 이런 골목길을 만나게 된 것은 참 다행스런 일이었다.

골목을 돌아다니며 TMX가 들어있는 Nikon FM과 내가 제일 좋아했던 렌즈 ai-s 28mm2.8로 몇 컷을 담았다. 어딜가나 골목길은 셔터를 누르게하는 묘한 매력이 가득한 공간이다. 괜찮다 싶은 곳에선 누군가 지나가기를 기다려 재빨리 셔터를 누르곤 하지만 뭐 사실 딱히 대단한 사진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그저 정감이 느껴지는 골목길에 사람이 없다면 허전하다는 나름의 고정관념으로 해마다 이 같은 사진을 수십장 남기게 하는 듯 하다. 작고한 김기찬 작가는 골목길만을 평생동안 필름에 담았다고 하니 골목길의 매력은 사진가들에게 남다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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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03  구룡포


대학 시절부터 군시절까지 이어진 약 7년 정도의 서울/경기권 생활을 정리하고 직장 덕에 다시 포항에 내려와서 좋은 점이 있다면 바다가 가깝다는 것이 아닐까. 간혹 갑갑하거나 하면 늦은 밤에도 송도 해수욕장으로 차를 몰아 바다 바람을 쐬며 담배 한대 피우며 걸을 수 있고 날씨가 좋을 듯한 날 저녁이면 다음 날 새벽 동해안으로 달려가 일출을 볼 수도 있으니 여의도 한강 고수부지를 걷던 기분도 낼 수 있다.

3월의 네번째 토요일 나른한 오후 바닷 바람이나 쐬러 구룡포로 갔다. 그나마 가까운 어항인 구룡포에 가면 언제나 찍을 거리는 있다. 자주 가다보니 더이상 특이한 앵글이 나오지 않지만 제대로 된 작업을 해보고 싶은 소재는 많은 곳. 이 날은 몽골에서 활약한 후 전설의 명렌즈 Carl Zeiss Biogon 21mm4.5에 밀려 좀처럼 빛을 못본 니콘 ai-s 20mm2.8를 데려갔다. 사실 동일한 구도와 노출값으로 비오곤과 동시에 촬영해 비오곤의 명성을 새삼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 억지로 우겨야 비오곤이 조금 더 좋아보이는 수준이라고 결론내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인데 확대 인화시에 해상도가 얼마나 차이가 날런지 모르겠지만 사실 올드 렌즈들에 비해 현행렌즈의 해상도가 나쁠리도 없고 비오곤의 자랑인 왜곡억제능력도 크게 차이나는 편은 아니었다. 주변부 해상도는 확실히 비오곤이 훌륭해 보였지만 그런 세세한 차이를 확인하고자 필름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있노라니 드는 생각은 '객관적으론 돈지랄이다..' 이거 뿐.

이왕이면 좋은 카메라, 좋은 렌즈를 갖고 싶은 것이 누구나의 욕심이겠지만 새삼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Rolleiflex와 Contax IIa에 밀려 찬밥이 되버린 나의 니콘 라인업들. 어쨌거나 가장 신뢰가 가는 10년지기 니콘에 Tri-X를 넣고 거리로 나가고 싶은 밤이다.



그러나 지금은 숙직 中      

젠장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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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여름

해질 무렵의 낮은 색온도가 만들어주는 따스함
이럴 때는 역시 최대개방의 부드러움을 더해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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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여름

20mm로 접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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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3  하동

하동 송림 밑 섬진강 변에서 재첩을 잡으시던 아저씨와 한참을 얘기하며 사진을 찍었다.
외지에서 온 낯선 녀석이 들이대는 카메라에 거부반응을 일으키실 만도 했건만 그다지
의식하지 않으시고 간간히 던지는 질문에 답변해 주셨다. 사진 나오면 한장 보내드릴까요? 하고
물었지만 됐다며 손사레치셨는데..사실 사진 보내주기로 하고 보내준 것이 몇 장 안되는 것이 현실.
08. 3. 10 () - 월차를 내다!

 봄을 맞이하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내게는 역시 섬진강을 찾는 길이 최고의 선택인 것 같다. 올해로 벌써 4번째나 찾는 봄의 섬진강. 3월 중순이면 섬진강 따라 피어나는 매화꽃의 무리는 정말로 봄이 왔음을 실감할 수 있게 하는 이미지. 물론 2월부터 피어나기 시작하는 남해안과 일부 섬의 동백꽃과 복수초들도 빼놓을 수 없지만 매화의 세밀하고 야무진 꽃잎이야 말로 그 중 최고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사군자라 불리우던 매난국죽(梅蘭菊竹) 중 매화가 가장 첫째인 것도 괜한 것은 아니리라.

 아침 7시경 출근하듯이 집을 나서 포항-대구 고속도로를 통해 서대구 IC를 거쳐 마산외곽순환도로를 통해 남해안 고속도로에 합류하여 경남 하동을 향해 달렸다. 이틀전 엔진오일을 간 덕에 18만 키로의 주행기록에 달하는 내 12년된 아반테는 이날따라 아주 날아갔다. 밟으면 밟는대로 죽죽 나가는 평소답지 않은 놀라운 엔진파워를 보여주며 3시간 여의 질주 끝에 하동에 도착했다. 대학 다닐땐 여수행 마지막 무궁화호를 타고 내려오곤 했던 이 곳에서 가장 먼저 들르는 곳은 언제나 하동 송림이다. 언제부터인지 입장료를 받고 있지만 최소한의 관리비라 생각하고 기꺼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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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동 송림에서 바라본 섬진강. 이 강을 경계로 저 건너편은 전남 광양이다. 조영남의 노래에 나오는 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따라 화개장터에~의 그 섬진강. 당연히 차가 없던 대학생 시절 새벽에 도착한 섬진강가는 언제나 차가운 바람으로 몸을 움츠리게 했다. 저 다리를 건너 광양 다압면 매화마을까지 걸어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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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진강의 재첩을 건지는 아저씨. 이른 아침 갑자기 나타난 카메라를 주렁주렁맨 낯선 이의 인사도 반갑게 받아주시며 많은 얘기를 들려주셨다. 매화꽃은 아직이라며 다음주 정도는 되어야 절정에 이를 것이라는 말에 광양으로 건너가기에 앞서 약간 걱정이 든다. 재첩은 국으로 밖에 안먹냐는 질문에 숙회로도 먹는다는데 아직 먹어보진 못했다. 해마다 섬진강에 들르면 꼭 찾게되는 것이 재첩국이었다. 미각을 화려하게 자극하는 전세계의 온갖 음식들에 익숙해진 오늘날 우리의 입맛에 특별한 맛을 선사하는 음식은 되지 못할지는 모르나 특별한 양념도 없이 재첩을 고은 뽀얀 국물에 부추 몇 조각이 떠있는 재첩국을 한 숟갈 입에 넣으면 섬진강과 봄의 향기가 온 몸에 퍼져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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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진강 어민회의 낡은 컨테이너 건물. 섬진강은 아직도 그 맑은 수질이 유지되고 있는 강 중 하나로서 재첩을 비롯하여 향긋한 향이 일품인 은어, 수질이 조금만 오염되어도 적응하지 못하는 민물참게가 잡힌다. 참게는 군사지역에서 보호받는 임진강 외에는 섬진강에서만 잡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마침 군복무했던 부대가 임진강과 가까워 참게 매운탕은 몇번 맛보았다. 이번 여행길은 혼자라 양이 많은 매운탕은 먹기 뭐해 참게장 정식을 먹었는데 평소 간장게장을 즐기지 않았으나 섬진강 참게장은 향긋하고 깊은 맛이 썩 괜찮았다. 이 모든 섬진강의 혜택을 계속 누릴 수 있도록 맑은 수질이 유지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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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진강 변에 피어난 매화. 역시 아직 이른 시기라 흐드러지게 핀 상태는 아니었지만 접사를 즐긴다면 꽃 잎이 싱싱한 이 시기가 더 제격일 듯 하다. 아마 이 번이 내가 섬진강을 찾은 네 번 중 가장 이른 시기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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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리를 건너자 넓은 부지에 매화축제를 알리는 애드벌룬과 행사장 천막들이 눈에 띄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늘 찾던 그곳으로 향했다. 평일이라 역시 조용했고 서울에서 오셨다는 노부부께서 매화를 카메라에 담는데 열중이셨다. 요즘은 노인분들도 DSLR을 쓰시는 경우가 무척 많다. 그 흔한 DSLR하나 없이 20년도 넘은 Rolleiflex와 니콘 F3HP와 FM을 들고온 나는 '저 보다 더 신세대이십니다.'라며 인사를 건냈고 할아버지는 우리야 잘 못찍으니 디지털을 쓴다고 답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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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은 봄이다. 매화가 점점히 피어나는 섬진강변의 마을에서 모종을 심고 밭을 손질하는 일손이 바쁘다. 군대에 있을 땐 봄이 되면 부대 곳곳에 피어올라오는 달래를 뜯는 것도 소소한 재미 중의 하나였다. 달래를 뜯어 관사에서 후배 장교들과 모여 라면을 끓여먹으면 정말 일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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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필름에 담고 이 분은 캔버스에 담는 중. 파레트에 짜놓은 물감의 색채가 발랄하다. 학교 다닐 땐 그림은 좀 그리는 편이었는데 나중에 나이 들면 수묵화나 제대로 한번 배워봐야겠다. 돈이나 많이 벌어둬야겠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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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의 맑고 잔잔한 물, 깨끗한 백사장. 언제나 섬진강은 잔잔하고 고요하다.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휴식을 취하기 제격인 곳. 섬진강이 배출한 文人 김용택의 책을 가져갈 걸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시간나면 김용택의 글이나 다시 읽어봐야겠다.

- 하늘은 맑았으나 대기가 그리 청명하진 못했던 관계로 발색이 그다지 좋진 않은 듯. 흑백은 다음 기회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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