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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31 영주

순흥 읍내리 벽화 고분 - 사적 313호



2009년의 마지막 여행지로 영주를 택했다.
언제가도 좋은 부석사와 그 외 몇군데를 들를 생각이었는데 코스를 짜며 지도를 보던 중에 우연히 신라시대 벽화 고분이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이던 1993년 겨울 당시 과천 현대미술관까지 올라가 고구려 고분 벽화전을 봤던 강렬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와중에 남한 지역에 남아있는 몇 안되는 벽화 고분들 중 보존 상태도 그런대로 양호한 편이라니 들르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부석사로 향하는 길 가에 위치해 동선이 꼬이지도 않으니 금상첨화. 사진에 보이는 고분은 원형 그대로 복제한 것으로 일반인들도 저 돌 문을 열고 들어가 구경해볼 수 있다. 실제 벽화는 보존 관계상 들어가볼 수 없는데 아무리 복제한 모형이라지만 무덤 속에 들어가는 기분은 꽤나 깨름칙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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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터운 석문을 열면 '┌ ' 으로 꺾어지는 입구가 나온다. 입구 양쪽 벽면에는 무덤을 수호하는 듯한 우람한 사내들이 그려져 있다. 이 좁은 문을 통해 허리를 숙이고 들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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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쪽으로 들어와서 바라본 모습. 고구려의 고분 벽화에는 당시의 시대상을 알 수 있는 무용 장면이라던지 사냥 장면, 씨름 장면 등이 많이 나와 사료적인 가치도 뛰어날 뿐더러 북두칠성은 물론 삼족오(三足烏)나 주작, 백호, 청룡, 현무 등등 종교적인 관념도 볼 수 있으나 이 그림은 상당히 특이하다.

무덤을 지키는 무사(?) 쯤으로 보이는 이 사내는 뱀을 맨손으로 때려잡는 용맹을 보여주고 있는데 신기한 헤어스타일은 물론이며 우람한 체격과 큰 코와 구릿빛 피부는 아무리 봐도 동양인인 신라인의 모습이 아니다. 아래위로 심하게 돌출되어 그려진 송곳니도 그렇고 무섭고 강한 인상으로써 악한 기운을 몰아내고 무덤을 지키기 위한 과장된 표현으로 볼 수도 있지만 왠지 경주 괘릉에서 본 아랍인의 모습을 본 뜬 석상이 자꾸만 떠오른다.

이국적이고 특이한 인물의 모습도 그렇지만 마치 펜으로 그린 듯한 그림의 스타일이 오히려 현대적인 느낌마저 주는데 그림 하나하나에서 눈을 떼기 어려울 정도로 놀라웠던 고구려 벽화들과 달리 이 고분의 벽화는 조선시대 민화를 보는 듯한 투박하고 어설픈 서민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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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 통로 안쪽의 꺾이는 부분 상단에 있는 이 그림은 작지만 눈길을 끈다. 벽면의 보존 상태가 좋지 않아 많은 부분이 떨어져 나갔지만 이 곱상한 여성분의 얼굴은 살아남았다. 바로 옆의 구름 그림도 있어 선녀를 그린 것으로도 생각되는데 앞서 우락부락하기만 한 사내의 그림과 달리 이 여성의 얼굴은 참 곱게도 그렸다. 낮은 코와 작은 눈, 통통한 볼과 작지만 도톰한 입술과 기품있어 보이는 긴 목.. 당 현종 때 양귀비도 그랬다고 하지만 그 당시에는 지금보다 얼굴이 통통한 편을 좋아했다고 하니 신라에서도 꽤 괜찮은 미모였으리라 짐작된다. 어쨌든 이 그림은 마치 오늘날 만화를 보는 듯한 획 놀림을 보여주는데 정말 요즘 그림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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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이건 뭐 낙서인지 뭔지;; 그리다 만 것인지. 뭘 그린 것인지도 모르겠고 도무지 계획적으로 그림을 그렸다고는 보이지 않는 무질서가 혼란스럽다. 신라의 중심이던 경주와 다소 거리가 있는 이 곳에 존재했던 지방세력의 무덤이었을테니 세련된 기법과 웅장한 규모를 바래선 안되겠지만 고개가 계속 갸우뚱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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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관이 놓여졌던 곳이다. 편편한 바닥에는 적어도 관 2개 정도는 들어갈 만한 공간이 나온다. 벽면의 벽화는 훼손이 심해 거의 알아볼 수 없고 단서가 될 만한 유물은 토기 파편 5개만 남고 모두 도굴당했다고 한다. 또 피가 끓어오르는데 벽화는 거의 지워지고 유물은 다 사라지고 뒷받침할만 사료도 없으니 이 고분의 주인이 누구였는지는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비단 이 작은 고분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도굴로 인해 잃어버린 역사의 조각이 얼마나 될지, 또 그 것들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우리 역사책의 어느 페이지가 어떻게 바뀔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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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몇평 되지도 않는 좁은 무덤에서 이제 산 사람 세상으로 나가야겠다~ 무섭다고 안들어오고 있다가 내가 나오자 카메라를 들이대는 혜정이~ ㅎ


좁은 무덤 안에서 비록 복제한 벽화들이지만 꽤나 리얼해서 실제 고분을 발견하여 발굴하는 듯한 느낌을 가져볼 수 있는 괜찮은 경험이었다. 이 투박한 작은 벽화 고분을 들여다봐도 놀랍고 흥미로운데 중국 집안(集安)에 있는 고구려의 고분들을 직접 들어가본다면 어떤 느낌일지 실감이 안난다.

시간내서 고구려고분벽화 도록이나 오랜만에 펼쳐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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