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제일 높은 역이라기에 찾은 추전역.

해발 855미터라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태백의 해발고도가 높은 탓에 그리 높은 곳에 있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도로가 발달되면서 버스와 승용차의 폭발적인 증가로 여객 운송으로서의 철도의 기능은 이제 최소화되었고 작은 시골역들은 대부분 승객들 없이 조용하지만 추전역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는 상징성으로 관광객들이 드문드문 찾아오는 특혜(?)를 누리고 있다.





굽이굽이 철길의 모습. 73년 태백선이 개통되면서 영업을 시작했다는 추전역. 험준한 강원도를 가로지르는 이 구간은 5.16 이후 군 복무를 하지 않은 장정들을 대상으로 군복무에 준하여 조직된 국토건설단원들이 동원되어 건설하였다고 되어 있다. 오늘날이라면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당시엔 뭐 시대가 시대인지라 부르면 갈 수 밖에 없지 않았나 싶다. 말이 국토건설단이지 조선시대 백성들이 노역에 불려가는거나 뭐 다를바가 있었을까 싶고 군대가 아니다 뿐이지 공병대 처럼 일했을 것 같다.

실제 건설단원들은 신분상 현역병에 준하여 취급되었고 사고시 군법에 의거해 처리되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도 폭압적인 정책이었다 생각되지만 당시에도 무리가 따랐던지 군대식의 강압적 조직과 규율은 단원들로 부터 잦은 반발과 저항을 샀고 부족한 장비와 무리한 공사 강행으로 인한 부상자가 속출하는 등 여러 문제가 드러나 결국 1년 만에 해체하게 되었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개발 시대에는 공병대들 역시 국토 개발에 많이 동원되었는데 따로 돈이 들지 않는 공병대는 민간 업체에서 맡기를 꺼리는 위험한 구간의 공사를 맡을 일이 많았을 것이고 그만큼 사고도 따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경부 고속도로 역시 공병대가 작전을 수행했고 울진 불영계곡을 통과하는 도로 변에도 공병대 순직장병 위령비가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역사속에서 저마다 맡게될 역할은 인간의 의지로 어찌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가지고 온 렌즈 중 그나마 망원인 85미리를 끼우고 이리저리 휘둘러 본다만 이미 작업 반장 쯤으로 보이는 아저씨는 자꾸 나를 째려보고 있었다. 기차역, 특히 이런 작은 시골역은 사진 찍는 사람이라면 소재로 삼아보고 싶을 매력적인 소재이지만 정식으로 사진을 찍기는 그리 쉽지 않다.

관광객들이 넘쳐나는 경춘선의 강촌역이나 가평역 같은 곳에서는 사진을 찍어대도 신경쓰지 않지만 찾는 이가 거의 없는 이런 한적한 역에서 카메라를 들고 어슬렁거리다가는 금방 눈에 띄고 십중팔구 몇 컷 찍어보지도 못하고 제지당하게 된다. 불편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다가와서는 국가 중요 시설이라 관할 상부역의 정식 허가를 득해야 사진을 찍을 수 있다며 촬영을 금지 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그 말도 안되는 규정은 지금이 어느 시대인지 헷갈리게 한다.

88올림픽 전만 해도 남산 타워에서 사진 촬영이 금지 되어 있었다.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 땐 그랬다. 경복궁 뒷편의 청와대도 내려다볼 수 있는 등 보안상으로 문제가 있다는게 이유였다. -_-;;  지금 군사 시설도 아닌 이딴 철길 하나 찍는데 내가 어딘지도 모르는 추전역의 관할역에 가서 허가를 득해야 한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냔 말이다.

어쨌든 자꾸 눈치를 주기에 대충 몇 장 찍고 말았다. 소탈하게 웃으며 역을 안내해주며 역에 얽힌 옛날 얘기를 들려주는 푸근하고 인상좋고 인심좋은 시골역장님은 '6시 내고향'에서만 볼 수 있나 보다. 물론 일하고 있는데 카메라 들고 나타나 이것저것 찍어대는 관광객이 짜증스러울 것이라 충분히 이해는 한다.





한 켠에 전시된 광차(鑛車 : Mine Tube). 광산에서 채굴한 석탄 등을 운반하는데 쓰였던 것이다. 자원 하나 없는 우리나라라고 얘기하지만 석탄과 시멘트는 풍부했던 것만 해도 천만 다행이리라.





추전역에서 바라본 매봉산 풍력단지. 해질 무렵에 올라갈 예정이다.





굉음을 내며 지나는 기차 한 대. 석탄 산업이 호황을 누리던 예전만은 아니겠지만 여전히 뭔가를 실은 기차들은 잠깐 머무는 동안에도 2대나 지나갔다.





추전역에 오니 문득 ROTC 1년차 시절 TMO를 타고 강원도로 향하던 때가 떠오른다. 4주간의 하계 훈련 중 3주차를 마치고 마지막 주에 있을 전방실습으로 양양의 000여단으로 가게 되어 청량리 역에서 승차해 강릉역까지 갔었으니 이 추전역도 분명히 지났으리라. 군복을 입고 불편한 전투화를 신은 상태였지만 차창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강원도 산골의 풍경은 훈련 중이라는 생각마저 잊게 해주었다. 훈련을 마치고 퇴소하면 사진 찍으러 반드시 다시 오겠다는 생각만 계속 했었다.

그 때의 감정이 떠올라 이번에 들렀던 추전역. 역시 청량리에서 출발해 여기저기 다 정차하며 느려터지게 한참을 가던 무궁화호를 타고 온 것이 아니어서인지 그 때의 호젓한 감정을 다시 느끼긴 무리였다. 없는 돈을 쪼개어 필름을 사고 기차표는 입석으로 끊어 메뚜기를 하다 그것도 귀찮아 지면 아예 연결통로에 쪼그려 앉아 잠을 자며 태백으로 향했던 대학생 시절. 역시 여행은 그렇게 해야 하는 것 같다.


2010.08.05 태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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