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도착 후 이틀째 날 첫번째 일정은 압록강 유람선.  안개가 많이 끼면 건너편의 신의주가 보이지 않는다지만 다행히 전 날과 달리 날씨가 맑다. 




매표소 직원 비슷한 사람들. 제복을 입고 무표정한데다 꼭 감시당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입국 심사 때 부터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여권의 사진과 내 얼굴을 대조하며 아래위로 훓어보던 직원을 포함해 중국에서 만난 제복들은 인상이 너무 딱딱하다.




어디선가 중국에선 공안들 사진을 찍다가 걸리면 카메라 채로 압수한단 얘기를 들었는데 공안만 보이면 카메라를 근처에도 들이대지 않았다. 이 아저씨는 유람선 타는 곳에 관련된 분이니 크게 문제되지는 않을거라 생각하고 그냥 180미리로 당겨 찍은 것. 




유람선 내부. 의외로 유람선은 깔끔했다. 우리나라의 섬 지역을 운행하는 유람선들 보다 더욱 쾌적한 편. 그러고 보니 강에서 유람선을 타본적이 있었나 싶다. 서울에 있을 때도 한강 유람선을 타본적이 없으니 호수를 제외하고 강에서 유람선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한다. 




압록강 상류 쪽으로 가는 중. 오른쪽 편이 바로 북한의 신의주다. 중국의 단동(丹東)과 북한의 신의주를 가로지는 이 곳은 압록강의 최하류 지점인데도 강폭은 생각보다 좁았고 물은 탁했다.




'중조우의교'를 지나는 중에 현재 사진 한 컷. 다리 이름의 뜻은 말그대로 중국과 조선의 우의의 다리인데 그 뒤로는 6.25 당시 미군 폭격으로 끊어진 구 철교를 그대로 두었다. 저 다리 끝 쪽에 가면 미공군이 폭격에 사용했던 불발탄 등이 전시되어 있다고 하는데 베트남에 갔을 때 들렀던 박물관에도 그런 전시물들이 한가득이었다.
 
6.25 전쟁을 '항미원조전쟁(抗美援朝戰爭)'이라 부르는 중국은 말 그대로 미국에 대항하고 조선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어마어마한 대군을 파병했고 엄청난 인명 손실에도 불구하고 전세를 한 방에 역전시켰다.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진출했던 연합군은 미 해병대의 '장진호 전투'로 대표되는 혹한 속에서의 사투를 벌이며 남쪽으로 밀려났고 군인과 피난민이 뒤섞여 제2의 덩케르크 철수라고도 불리는 흥남 철수 작전을 통해 탈출해야했다. 급기야 서울을 다시 뺐기는 1.4후퇴마저 일어나는데 어쨌든 중국은 6.25 참전의 대가로 역사 이래 이어져온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확고히 하고 북한의 큰 형님 역할을 지금까지 해오고 있다.

사실 6.25 당시 중국은 국공내전에서 승리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혼란스러운 시기로 대규모 참전, 더군다나 미국과의 전쟁에 대해서는 내부적으로도 불가하다는 의견이 대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국의 거시적인 안보 안정과 한반도를 비롯한 국제 세계에 영향력 행사 등의 국익을 위해 세계 최강국 미국과 전쟁도 불사한 마우쩌둥의 결정은 대국적이라고 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을 것 같다. 결국 우리만 통일을 눈앞에서 날려버렸다. 




위화도 근처에서 배는 다시 하류쪽으로 뱃머리를 돌린다. 저기 평평한 섬이 위화도로 압록강 위에는 의외로 크고 작은 섬들이 꽤 있다. 이 중 대다수는 북한 영토로 되어 있고 일부는 중국 영토인데 위화도는 지금도 북한 소속이다. 섬에는 가옥들도 보이고 면적은 여의도 못지 않은 정도라고 하니 고려말 요동정벌을 떠난 고려군이 주둔할 만했다. 요동 정벌 당시 위화도에는 이미 부교가 부설되어 도하 준비가 끝난 상태였으며 선발대로 소규모 부대가 강을 건너가 노략질 비슷한 약간의 전과를 올리고 복귀하기도 했다고 한다. 4불가론을 내세우며 이 섬에서 군대를 돌린 이성계는 결국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건국하게 되는데 역사에 가정이란 없다지만 실현 가능성이 낮은 요동정벌을 위해 정예군을 쥐어주고 출병을 강요한 고려 조정의 무리수가 결국 망국을 재촉하지 않았나 싶다. 원명교체기의 혼란을 틈타 요동 지역을 일시적으로 차지한다 하더라도 한반도와 달리 너무나도 넓은 그 지역을 우리가 추후 방어해내기란 거의 불가능했으리라 본다. 




배는 하류 쪽으로 이동하며 북한 쪽과 더욱 가까워졌다. ROTC 시절 판문점 회담장안에서 금을 넘어가서 명백한 '북한영토'를 '합법적'으로 밟은 적은 있지만 군인이 아닌 북한 주민들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기는 처음이다. 얼마전 엄청난 수해를 입은 신의주는 어쨌든 겉으로 보기엔 평온해 보였다. 유독 낚시를 하러 나온 주민들이 많이 보였는데 옷차림은 남루하고 얼굴에는 생기가 없다.



 
압록강의 모래를 퍼가는 것으로 보이는 작업 현장. 여기는 그래도 중장비들이 오가며 활력이 좀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한국 관광객들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텐데 손을 흔들어주는 북한 주민들... 촬영 당시에는 파인더를 통해 표정까지는 볼 수가 없었지만 호텔방에서 노트북을 통해 확인해보고는 그만 찡해버렸다. 허옇게 살찌고 좋은 옷을 입은 남한 사람들이 구경거리인 마냥 뱃전에 붙어서 카메라를 들이대고 손을 흔들면 기분 나쁘고 배알 꼬일 법도 하건만 이렇게 반갑게 손을 흔들어주는 모습이 너무나 짠하다. 냉전 시대도 끝난 지금에도 우리는 아직도 이렇게 멀리서 손 흔드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다.




을씨년하고 우중충한 건물들과 비웃기 보다 안타깝기만한 허황된 구호만이 가득한 신의주 쪽과 달리 중국의 단동은 이렇다. 제방부터 다르고 상큼한 색깔의 건물들은 멋들어졌다. 그 뒤로 새로운 고층 빌딩들도 쭉쭉 올라가고 있다.




교과서에 나왔던 민통선에서 펼쳐진 남북한의 각각의 선전 마을의 국기게양대 경쟁도 이 정도쯤 격차가 되면 이미 게임 끝이리라. 신의주와 단동은 이미 차원이 다른 도시가 되어 있다. 밤이면 강건너 휘황 찬란을 조명을 보는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어떨까 싶다. 그나마 중국과 이렇게 연한 북한 도시들은 다른 곳보다 비교적 생활 수준이 괜찮은 편이라고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기념품들. 위조임이 뻔한 북한 화폐와 북한 담배들. 가짜인줄 알면서도 호기심 반 애뜻함 반에 사가는 우리 나라 사람들 덕분에 돈을 버는 이들도 있다. 북한을 통해 가볼 수 없는 백두산과 만주 일대의 고구려 유적들을 보기 위해 찾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뿌린 돈으로 인해 중국의 동북 3성(요녕,길림,흑룡강)이 발전했다고 한다.

우리도 얼른 다시 하나가 되어야 할 뿐이다.

2010.09.22 중국 단동(丹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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