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8.08. 포항

Contax IIa / Carl Zeiss Sonnar 50mm f1.5 / Kodak 400TX / IVED


















































2017.08.11 건천


Contax IIa / Carl Zeiss Jena Orthometar 35mm f4.5 / Kodak 400TX / IVED





















































































2017.08.20. 경주 안강


Contax IIa / Carl Zeiss Jena Orthometar 35mm f4.5 / Kodak 400TX / IVED





































































































2017.06.25. 포항 신광면 마북리


Leica IIIa / Elmar 3.5cm f3.5(coated) / Kodak 400TX / IVED



사실 창고가 되어가고 있지만 아직은 '서재'라고 부르고 싶은 내 방 책꽂이 한 켠에는 상자 하나가 놓여 있다. 


그 안에는 수백롤의 필름이 차곡차곡 담겨져 있는데 여기저기 널려있는 필름들을 보다 못한 와이프가 넣어준 것들이다. 내 저것들을 언젠가는 정리해야 할텐데 하며 가끔 노려보기도 하지만 이내 시선을 돌리고 만다.


'에이, 나중에 하자.'


그러다 지난 금요일밤 괜히 한번 상자를 열어봤다. 마구잡이로 섞인 필름들을 천장의 형광등에 비추어보며 간만에 추억에 젖다가 송도 해수욕장을 촬영한 필름 하나를 발견했다. 36컷을 모두 살펴봐도 그 필름에서 기억나는 이미지는 단 한 컷도 없었다. 메모조차 해두지 않아 언제 찍은 건지도 알 수 없는 필름 속 이미지들은 전혀 기억 속에 남아있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대학교 시절에는 누구나 그랬듯 빠듯한 용돈 사정으로 인해 인화지 한 장이 아쉬웠다. 그래서 굳이 '불필요한' 밀착 인화는 생략했고 확대 인화 역시 한 롤에서 고르고 고른 몇 컷 외에는 하지 않았다. 이 버릇은 나중에도 그대로 이어져 스캔할 때도 한 롤 전체를 긁지 않고 네가티브를 비추어 보다 괜찮다 싶은 몇 컷만 추려 스캔을 해왔기에 네가티브를 보다가 새롭게 눈에 띄는 컷이 있는 경우는 그리 드문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처럼 한 롤에서 한 컷도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다시 한번 찬찬히 살펴보아도 이 건 단 한 컷도 스캔하지 않은채 쳐박힌 필름이라는 것이 확실했다. 


도대체 이 필름은 왜 버림받았을까? 일단 한롤을 채로 긁어보기로 했다. 







송도의 뒷골목 입구에서 부터 내 발걸음은 시작되고 있었다. 







모래사장의 유실로 해수욕장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송도 해변의 회생을 포기하고 해안 도로가 건설되던 때의 막바지 모습이 담겨 있었다. 산책로는 거의 다 되었고 아스팔트 도로가 깔리던 시점이다. 







지금 평화의 여신상이 있는 광장 해안 축대 옆의 테트라포드들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산책로에는 아직 모래가 많이 남아 있다. 강아지를 데리고 나와 산책하는 아이들이 두꺼운 차림에 장갑까지 끼고 있는 걸 보니 제법 추운 날이었나보다. 







우리의 기억은 이미지와 글에 얼마나 의존적인가. 21미리로 강아지를 이렇게 가까이서 찍었을 정도면 기억이 날 법도 한데, 현상 후 스캔조차 하지 않았던 탓에 이날 촬영에 대한 기억은 전혀 남아있지 않다. 







송도 해변 일주도로 건설을 맡았던 청구 건설의 현장 사무소







송도 해변 방파제 위에는 허름하고 어설픈 포장마차촌이 있었다. 송도 해수욕장 정비 사업의 일환으로 이 곳도 사라졌다. 당연히 무허가 불법이었을테고 태풍이라도 오는 날엔 위험하기 그지 없었을테니 어쩔 수 없었겠지만 아쉽기도 하다.







동남아의 수상가옥 마냥 방파제 한 귀퉁에 의지하여 바다 위에 자리 잡았던 포장마차들. 자리에 앉으면 판자로 만든 바닥과 천막 틈 사이로 파도가 출렁였다. 철썩철썩 파도 소리를 들으며 회 한 접시에 소주를 마시고 모래사장에 세워둔 차에서 눈을 붙히고 아침에 바로 출근했던 날도 있었다.







천막을 뒤집어 씌웠던 철골과 계단의 녹물이 방파제 바닥 곳곳을 붉게 물들였던 것이 기억난다.







배에서 내린 해산물을 손질하고 있는 손길들. 포장마차가 사라진 지금, 더이상 배들은 이 곳에 접안하지 않는다.







방파제 왼쪽의 풍경. 송도 해변과 포항 구항이 멀리 보인다. 늘상 보는 장면이라 새롭지 않지만 이곳이 동해안에 몇 없는 지형인 영일만이라는 점을 새삼 깨닫게 한다.







다소 과다현상이 되어 콘트라스트가 강한 네가티브가 되었다. 암부가 많이 죽었음이 느껴진다만 평소 사진의 톤에 비해 칼칼한 것이 또 나쁘지 않다. 







방파제에서 굿이 있었던 모양이다. 시간이 맞지 않아서인가, 요즘은 송도에서 굿하는 장면을 거의 보지 못했다.







변해버린 방파제 위 풍경과 달리 송도의 퇴락한 뒷골목은 이때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골목 사이를 누비면서 정적인 사진에 동감을 불어 넣고자 누군가 지나가기를 한참을 기다리기도 했지만 그래본들 무어 그리 큰 의미가 있는 사진이 되겠나 싶다. 부질없다.







앙상한 나뭇가지가 낡은 하얀 벽 위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흑백인데도 차갑고 투명한 겨울 공기가 느껴진다. 왠지 모르게 가슴이 시려온다. 늙은 듯 ㄷㄷ







이 사진 덕분에 이 필름이 언제 찍은 것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8년전의 블로그 포스팅에는 Nikon D700으로 같은 위치에서 찍은 사진과 함께 이 날 찍은 파일은 모두 지워 버렸다는 내용이 있었다. 찍은 사진도 맘에 안들고 앞으로 어떤 사진을 해야할지도 모르겠다는 이유와 함께. 아마 그래서 이 날 찍은 필름도 스캔조차 하지 않고 던져뒀던 듯 싶다. 





같은 위치에서 찍은던 사진. 이 컷을 제외하고 RAW파일은 모두 삭제됐다.






8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이 날 느꼈던 회의감은 여전히 유효하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뭘 찍어야 하고 뭘 표현해야 하고 무엇을 위해 찍어야 하는가. 아니 그런 것에 답은 있는가. 답을 찾을 필요는 또 있는 것인가. 여전히 머리 속은 복잡하지만 이렇게 출토된 사진을 보고 있자니, 이도저도 아닌 어설픈 사진들이라도 시간의 무게가 더해지니 기록으로라도 가치가 있겠다 싶으니 그건 또 다행이라 해야하나. 아직도 모르겠다. 





2009.12.26. 포항 송도


Contax IIa / Carl Zeiss Biogon 21mm f4.5 / Kodak 400TX / IVED


Nippon Kogaku W-Nikkor 2.5cm f4.0 (LTM버전)



거침없이 달리시는 L형님 덕분에 관심있던 렌즈를 빌려 써보게 됐다. 54년에 발매된 W-Nikkor 2.5cm f4.0이 그 주인공. 환갑이 넘었음에도 여전히 어마무시한 몸값을 자랑하는 귀한 녀석이다. 원래는 Zeiss Ikon의 Contax와 같은 형태의 니콘 S마운트로 발매되었지만 라이카에서도 사용가능한 M39(LTM) 마운트로도 발매되었다. 


오늘날 기준으로 25mm라는 화각은 다소 낯설긴 하지만 당시로서는 거의 초광각에 해당하는 것이라 사진가들의 환호를 받았으리라. 이 렌즈에 대한 매니아층은 오늘날도 제법 두터운데 그 이유는 우수한 성능도 성능이지만 특이한 구조에 기인한다. 






보다시피 이 렌즈는 4군 4매 구성된 완벽한 좌우대칭의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같은 극단적인 좌우 대칭 구조를 통해 광각 렌즈에서 왜곡을 비롯한 각종 수차를 물리적으로 억제할 수 있었다. 마치 구슬과도 같은 렌즈 알을 보고 있자면 영롱한 매력에 빠져드는데 이같은 설계의 원조는 사실 Carl Zeiss의 Topogon이었다. 







요것이 오리지날 Carl Zeiss Jena Topogon 25mm. 화각부터 최대개방값까지 똑같다. 50년대 니폰 코가쿠, 캐논 등의 일본 메이커들은 독일 메이커들의 설계를 다분히 참고한 제품들을 출시하는 한편 그들의 성능을 뛰어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런 면에서 뭐 하나라도 개선된 점을 어필하는 것이 중요했던지라 오리지날 Topogon이 거리계와 연동되지 않는 목측식이었던 것에 반해 W-Nikkor 2.5cm는 거리계 연동이 가능하게 출시되었다. (캐논의 25mm f3.5는 최대 개방값도 아주 조금 더 밝아졌다.)







코팅 역시 당대 독일 렌즈들보다 두터워 보이는데 역시나 역광에서 버티는 능력도 제법 준수하다. 







Topogon 타입임을 증명하듯 렌즈알이 반구형으로 볼록하게 나와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뒷면에서는 더욱 그 형태를 잘 확인할 수 있다. 정말 구슬을 하나 박아넣은 듯한 모양이라 가만히 들여다 보고만 있어도 감탄이 절로 나온다. 







다만 Topogon 타입은 급격하게 꺾인 렌즈 끝단의 곡률로 인해 주변부의 화질이 많이 떨어지고 비네팅이 심하게 발생하는 단점을 가지는데 이때문에 최대 개방시에도 조리개는 완전히 다 열리지 않게 설계함으로써 그 문제를 최대한 억제하는 경우가 많다. 위 사진에서도 최대 개방에서 조리개날이 완전히 열리지 않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렌즈는 비네팅이 제법 발생하며 개방시에는 더욱 심해진다. 반면 오리지날의 위엄은 역시 무시할 수 없는지 칼 자이즈의 Topogon은 조리개가 거의 대부분 열리면서도 W-Nikkor에 비해 비네팅이 적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편이다. 







거리계의 단위는 FEET로만 적혀있고 라이카 스크류 렌즈들과 같은 형태의 무한대 잠금 장치를 가지고 있다. 크롬 코팅이나 레터링 각인의 수준은 훌륭하다. 코팅된 렌즈임을 표기해주는 빨간색 "C"마킹도 적당한 시각적 포인트가 되어준다. Carl Zeiss 렌즈들의 "T"마킹을 보는 듯 하다.







필터 구경은 상당히 특이한 34.5mm로 오늘날 해당하는 사이즈의 필터를 구하기가 거의 불가능해 중앙카메라 수리실에 제작을 의뢰해 만들었다. 앞으로 애매한 사이즈의 필터는 비싸게 구할 생각하지 말고 애초에 부탁드려 만드는 것이 더 좋을 듯. 







얇은 필터링에다가 광택도 최대한 비슷하게 제작되어 제짝인 듯 잘 어울린다. 







단단하고 야무진 렌즈에 어울리지 않는 플라스틱이라 좀 깬다만 올드 렌즈에서 일반적인 금속제 슬립온 방식에 비해 훨씬 안정적인 클립온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앞캡.







바디와의 매칭. 슬림한 경통에 짧은 길이의 컴팩트한 렌즈로 바르낙 바디에 제법 잘 어울린다. 25미리 파인더가 없어서 일단 Voigtlander 28mm 파인더로..ㄷ





많은 롤을 찍어보지 못해 렌즈의 특성에 대해 평가를 내리기 조심스럽지만 니콘은 니콘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이 말에는 물론 장단이 존재하는데 흔히 니콘 렌즈의 특성으로 평가받는 높은 선예도와 강한 콘트라스트는 이미 이 시절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느껴진다. 칼라 색감 역시 화사하고 예쁜 쪽은 아니지만 Topogon타입의 특징에 기인하는 강한 비네팅 효과와 왜곡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쭉쭉 뻗는 시원시원함은 렌즈의 개성을 확실히 드러내준다. 






B/W Neagtive : Kodak 400TX





































































Positive : Fujifilm RVP 100







































귀한 렌즈 빌려주신 L형님과 렌즈 뒷캡으로 IIIf를 보내준 K군에게 감사를! 


보다 훌륭한 리뷰를 보려면


Qunaj님의 'W-NIKKOR C 2.5cm 1:4 LTM'


Goliathus님의 '[Nikon]W-Nikkor 2.5cm F4'















2017.06.04. 서울 이문동


Leica IIIa / Elmar 3.5cm F3.5 / Kodak 400TX / IVED


요새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그런가 사진도 치열하게 찍기 보다 풀떼기 찍는게 너무 좋다. 특히 Elmar 3.5cm같은 올드 렌즈로 찍으면 제법 맛깔스런 느낌의 사진들이 나오기도 하고.





2017.05.23. 경주 건천


Leica IIIa / Elmar 3.5cm f3.5(coated) / Kodak 400TX / IVED


개방에서 수차로 인해 약간의 회오리 보케가 느껴진다.



■ 전쟁의 종말


1945년 04월 30일 베를린. 


일체의 정규 방송이 모두 중지된 베를린 라디오에서는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겐의 반지' 중 '신들의 황혼'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독일군은 파죽지세로 밀려오는 소련군에 맞서 절망적인 전투를 이어가고 있었다. 이길 수 없는 전투였다. 그럼에도 그들은 항복할 수 없었다. 그들이 소련군을 저지하는 동안 보다 많은 민간인들과 패잔병들이 미,영 연합군이 있는 엘베강 너머로 투항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의미없는 '현진지 사수'와 같은 명령보다 더욱 절박한 이유였다. 


이미 와해돼버려 존재하지도 않는 사단들을 가지고 '이리 보내라, 저리 보내라' 심지어 역습을 가해 공세로 전환하라고 미친듯이 지시하던 히틀러도 더이상 무의미한 작전 지휘를 그만두었고 벙커 속은 침묵만이 흘렀다. 그는 이 날 발터 권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쏘았고 오랜 연인 에바 브라운은 청산가리 캡슐을 깨물었다. 소련은 베를린 함락의 상징적 장면을 연출하고 싶었고 베를린 국회의사당은 그에 걸맞는 장소였다. 죽기를 각오한 독일군 수비대 6천여명이 이에 맞섰고 치열한 교전끝에 늦은 밤이 되어서야 소련군은 국회의사당을 점령할 수 있었다. 날이 밝고 국회의사당에 소련 국기가 걸렸다. 노동절을 맞아 가장 극적인 승리의 장면을 묘사하고 싶던 스탈린의 바램이 이루어졌다. 


1945년 05월 02일. 베를린을 수비하던 독일군은 항복을 선언했다. 









■ 독일에서의 달콤한 전리품들


전쟁 중에 독일이라는 공동의 적에 맞서기 위해 비록 손을 잡았지만 애초부터 미국,영국과 소련은 서로가 친구가 될 수 없으리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패튼은 소련을 의식하는 아이젠하워의 조심스런 전략에 불만이 많았고 '그렇게 소련이 무서우면 이대로 전차군단을 계속 몰아 모스크바까지 점령해버리면 될 것 아니냐.'는 막말을 걸핏하면 내뱉었을 정도로 소련에 대한 감정을 노골적으로 표출했다. 미,영 폭격기들이 학살 수준의 공습을 가했던 드레스덴 폭격은 진격하는 소련군의 전방에 가해지던 압박을 해소하기 위한다는 명분으로 포장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미,영이 보유한 무시무시한 공군력을 소련에게 보여주려는 정치적 의도도 포함되어 있었다. 소련은 전쟁이 끝난 후 재무장한 독일군을 앞세워 미,영이 쳐들어올까 두려워했고 서방은 소련에 의한 공산주의 진영 확산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냉전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의 종전이 가까워 올 수록 양측은 앞으로의 전쟁에 대비해야했고 독일의 군사 기술은 승전국들이 노리는 최고의 전리품이었다. Me262 제트전투기와 V1, V2 로켓은 특히나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었고 미처 실전 배치되지 못하거나 연구,개발 과정에 있었던 다양한 무기들의 자료들을 먼저 차지하기 위해 승전국들은 혈안이 되었다. 그리고 소련이 탐을 낸 것이 더 있었으니 바로 세계 최고의 독일 광학 기술이었다.





■ Zeiss Ikon을 내놔라.


승전의 대가로 소련은 Zeiss Ikon의 생산 설비와 기술을 요구했다. 1차 세계대전 후 독일이 부담해야했던 가혹한 전쟁 배상금의 규모에 비할 바는 못되었지만 전쟁 기간 동안 참전국 중 가장 큰 인명 피해를 입은 소련 입장에서 '본전' 생각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소련군 점령지에 속한 예나와 드레스덴의 Zeiss Ikon 공장 설비들이 열차에 실려 소련으로 옮겨진다. Contax와 교환렌즈의 생산 라인들이 포함되어 있었고 이를 생산할 엔지니어와 숙련공들도 함께였다. 





패전과 함께 생산이 중지되고 소련으로 생산 설비가 옮겨진 Contax II. Biogon 35mm가 장착되어 있다.




그렇게 옮겨진 설비들은 모스크바 근교의 Krasnogorsk와 우크라이나의 Kiev 등지의 공장에 설치되어 국산화 과정을 거쳐 대량 생산 체제를 갖추게 된다. 승전의 대가로 소련은 당대 최고의 카메라와 렌즈를 생산할 수 있게된 것이었다. 그리고 Zeiss Ikon에서 획득한 광학 기술을 통해 조준경, 잠망경, 정찰용 카메라 등 군사용 광학 장비의 성능 향상도 꾀할 수 있었을 것이다.






■ Soviet's Carl Zeiss - Jupiter의 탄생


Kiev에서 Contax II/III의 카피 모델이 생산되면서 Krasnogorsk에서는 Contax용 렌즈들을 카피하여 생산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독일에서 가져온 칼 자이즈의 부품 재고를 이용해 조립이 이루어졌는데 이 때문에 이 시기의 제품들은 칼 자이즈 오리지날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다 독일에서 가져온 부품들이 모두 소진된 1950년 이후부터는 유리알을 비롯한 모든 부품이 국산화되며 100% 소련제로 본격 대량 생산이 시작된다. 이처럼 칼 자이즈에서 원설계하고 소련에서 재생산한 렌즈들에는 새로운 이름이 붙혀지게 된다. 바로 Jupiter였다. 


로마 신화에서 최고의 신으로 여겨지는 Jupiter는 승리의 주피터라고 불리기도 했으며 집정권들이 취임하거나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들이 개선할 때 반드시 참배하는 대상이었고 로마의 스타틀 신전은 로물루스가 주피터에게 기원한 후 전쟁에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세워진 것이었다. 2차 세계대전 승리의 대가로 얻어낸 렌즈에 썩 잘 어울리는 이름이 아닐 수 없었다. 


소련은 Jupiter 시리즈의 본격 출시에 나서면서 오리지날인 Contax 베이요닛 마운트와 함께 LTM버전도 병행하여 생산했는데 자국의 Zorki나 Fed 카메라에도 사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사실 이는 소련의 자체적인 재설계로 볼 수는 없고 전쟁 기간 중 Carl Zeiss에서 아주 극소량으로 생산했던 LTM버전 렌즈들을 자국의 필요에 의해 대량으로 생산해낸 것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겠다. 


Carl Zeiss에서 자사의 Contax용이 아닌 경쟁사인 Leica에 맞는 LTM버전의 렌즈들을 만들어 낸 것에는 사연이 있다. 전쟁 기간 중 드레스덴의 Contax 제조 시설이 폭격을 맞아 생산이 중단되자 Carl Zeiss는 렌즈를 생산해도 함께 판매할 카메라의 공급이 끊어져 버렸고 이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경쟁기종이던 라이카에 사용할 수 있는 LTM버전 렌즈들을 잠시 생산했던 것이다. 


오늘날 전쟁 기간 중 생산된 오리지날 Carl Zeiss LTM버전 렌즈들은 극히 귀하고 비싼 가격에 거래되는 물건이라 현실적으로 구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기에 Jupiter LTM 버전 렌즈들은 Carl Zeiss가 설계한 올드 렌즈들을 가볍게 즐겨보고 싶은 라이카 유저들에게 고마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Carl Zeiss에서 생산된 LTM버전 렌즈들. 소련은 이 중 5종류를 Jupiter라인으로 생산하게 되는데 Jupiter-3, 8, 9, 11, 12가 그것인데 순서대로 각각 Sonnar 50mm f1.5, Sonnar 50mm f2.0, Sonnar 85mm f2.0, Sonnar 135mm f4.0, 그리고 Biogon 35mm f2.8이었다. 






■ Jupiter-12에 대한 재인식



Jupiter-12 35mm f2.8 (for Contax/Kiev)


5종류의 Jupiter렌즈 중 현재까지도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렌즈는 단연 Jupiter-12가 아닐까 싶다. RF에서 가장 대중적인 35미리 화각이라는 점, 명성이 자자하던 비오곤의 카피라는 점을 그 이유로 들 수 있겠다. 1950년대 당시 자국에서 생산된 세계 최고 수준의 35미리 렌즈를 손에 넣을 수 있었던 소련의 사진가들은 얼마나 흥분되었을지 상상해본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오늘날의 처지는 그저 '싼맛'에 쓸만한 그냥 그런 렌즈일 뿐, 애정을 갖고 대하는 이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나마 미러리스 디지털 카메라들이 대세가 되면서 이종교배용으로 알음알음 유저들이 제법 늘어나고 있기는 하나, 깊이 있는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는 여전히 드물다. 개인적으로 Biogon 타입에 대해 애정이 많아 그 영혼이 담긴 Jupiter-12에도 많은 관심이 있었던지라 이번 리뷰를 통해 조금 자세히 소개해보고자 한다.


관심을 가지다 보니 Jupiter-12의 넘버링에 대해 궁금증을 가져본 적이 있다. 다른 Jupiter 시리즈들은 화각 순으로 번호가 진행되는데 반해 Jupiter-12는 35mm임에도 왜 맨 마지막인 12번을 얻게 되었을까? (쓸데없는 의문..ㄷㄷ) 나름의 논리로 추론해본 결과는 다른 Jupiter 시리즈들이 모두 Sonnar타입이니 Biogon타입에는 뭔가 다른 이름을 붙여 주려다가 '그냥 얘도 주피터로 해라!' 하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거나, 아니면 제조가 까다로운 탓에 가장 늦게 재설계가 이루어졌던 탓에 가장 늦게 번호를 부여받았던게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일각에서는 Biogon이 원래 Sonnar 설계에서 파생된 형식이니 소련에서 Jupiter라는 이름을 붙힌 것 자체가 광학설계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는 방증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그래도 12번이라는 가장 늦은 번호가 붙은 이유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별로 중요하지 않.. 넘어가자. ㄷㄷ) 





■ Sonnar에서 Biogon으로 다시 Juputer-12까지




위 자료를 보면 Sonnar부터 Biogon, 그리고 Jupiter-12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이 잘 정리되어 있다. Sonnar에서 파생된 Biogon 35mm는 전쟁 후 서독의 Zeiss Opton Biogon 35mm와 소련의 Jupiter-12로 나뉘어지게 된다. 서독의 비오곤은 새롭게 개발된 Contax IIa에 사용할 수 있도록 비오곤의 상징과도 같았던 엄청나게 큰 후옥의 크기가 작아지고 백포커스가 조금 길어지는 여유있는 설계를 택하게 되는 반면 Jupiter-12는 오리지날 비오곤의 설계를 크게 변경하지 않아 여전히 큰 후옥과 짧은 백포커스를 유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Jupiter-12는 전전형 비오곤과 같은 설계라는 일반적인 평가를 얻게 되었는데 위 그림을 살펴보면 그렇다고 완전히 같은 설계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Jupiter-12는 렌즈 구성이 Biogon의 4군 7매에서 4군 6매로 간략화 되었고 각매의 렌즈알 크기나 곡률도 변경되었는데 이것이 소련제 렌즈알에 따라 최적화 설계를 다시해낸 것인지 원가절감인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혹은 소련에 끌려간 독일 기술진에 의해 보다 향상된 성능을 낼 수 있도록 새로운 설계가 이뤄진 것일 수도 있고. 어쨌든 일본에서는 Jupiter-12를 전후 서독에서 생산된 Zeiss Opton Biogon보다 높게 친다고 하니 성능의 저하도 없었다고 봐도 될 것 같다. (물론 호들갑스런 일본애들의 평가에 지나치게 의존할 필요는 없겠지만 또 걔들만큼 집요한 애들도 없기에...)  





입사부보다 훨씬 큰 후옥과 필름면 가까이 들어오는 짧은 백포커스를 가진 Jupiter-12, Biogon의 설계가 충실히 계승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점 때문에 오리지날인 Contax용은 아답터를 이용해도 라이카 바디에서 사용할 수 없었는데 소련에서 LTM버전을 대량으로 생산해준 탓에 라이카에서도 Biogon 설계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Carl Zeiss Sonnar나 Biogon에는 일명 '자이즈 버블'이라는 기포가 한두개씩 흔히 발견되는데 Jupiter-12 역시 이러한 기포가 발견된다. 화질에 영향은 전혀 없기에 구매시 결격 사유가 되지는 않고 역설적으로 이로 인해 오리지날 칼 자이즈와 유사한 재료를 이용해 동일 제조 공법으로 생산되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발가락도 닮은 셈.






■ Jupiter-12의 세대별 구분



Contax II의 카피 Kiev II와 Biogon 35mm의 카피 Jupiter-12. 위 사진과 같은 50년대 Kiev는 오리지날 Contax II와 거의 같아 거래가격이 제법 높다.




Jupiter-12는 1950년부터 90년대까지 무려 40여년에 걸쳐 생산될 정도로 생산 기간이 긴데다 2개의 제조사(KMZ, LZOS)에서 생산되었던 탓에 자잘한 여러가지 버전이 존재한다. 이로 인해 이베이에 떠있는 수많은 매물 중 어느 것을 구해야할지 구매자들은 난감해 지곤 하는데, 사실 뭐 열심히 공부해서 족보를 꾀야할 필요가 있을 정도로 비싸게 거래되는 렌즈는 아니다. 그래도 명색이 리뷰이니 이참에 한번 정리를 해보도록 하자. 우선 마운트에 따라 Contax/Kiev용과 LTM 버전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이 경우는 마운트만 다를 뿐이니 사실상 같은 렌즈로 보는 것이 맞겠고 이번 리뷰에서는 LTM버전에 한정하여 생산 시기에 따라 크게 3가지로 분류해 보겠다. 





1. KMZ제조 BK (Biogon-Krasnogorsk) : 1947~50년



Jupiter라는 이름이 붙기 전의 최초기 버전이다. KMZ에서 오리지날 자이즈의 부품과 유리알을 사용해 조립한 것으로 알려져있으며 외관상으로도 오리지날 비오곤 LTM버전과 거의 동일하다. 이중 47~48년에 생산된 PT0805 버전은 100% 자이즈 유리알이 사용되었다고 하며 49~50년의  PT0810은 100% 혹은 부분적으로 자이즈 유리알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외관상 이를 확인할 방법은 거의 없으며 시리얼넘버가 00으로 나가는 것은 PT0805, 49 혹은 50으로 시작하는 년도가 앞에 붙으면 PT0810이라 볼 수 있다. 어쨌든 이들은 본격 양산형이라기 보단 Jupiter-12를 생산하기에 앞서 이루어진 과도기적인 시기의 렌즈라 자료가 명확하지 않고 생산 수량도 적어 오늘날 구하기가 쉽지 않다.


위 사진의 왼쪽이 50년에 생산된 이른바 BK렌즈이며 우측이 55년에 생산된 Jupiter-12다. 내가 가진 BK는 각인은 BK이지만 경통의 형태가 Jupiter-12와 거의 같고 최초기형임에도 렌즈의 코팅이 더 두터워보여 각인을 조작한 짝퉁이 아닌가 의심도 들지만, 그렇게 해봐야 이게 100만원짜리가 되는 것도 아닌데 굳이 그랬을까 싶기도 하고.. 여튼 괜히 이런거 구하려고 애쓰지 마시라;;






2. KMZ 생산 Jupiter-12 (1950~60년대 초)



두번째는 50년부터 생산된 버전으로 이때부터 비로소 Jupiter-12라는 이름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렌즈에는 엷은 블루톤의 코팅이 되어 있는데 전쟁 전 자이즈의 T코팅과 아주 유사한 느낌이다. 코팅이 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붉은 색 'n' 마킹이 찍혀있는데 이는 키릴어로 'P'에 해당한다. 이 마킹은 BK부터 60년대 초반 생산 렌즈에만 존재하는데 칼 자이즈의 빨간색 'T'코팅 표기와 같이 검정과 흰색 뿐인 밋밋한 렌즈 전면부에서 확실한 포인트가 되어주어 예쁘다. 그래서인지 이베이에서도 매물 설명에 굳이 'Red P'를 강조하는 문구를 많이 볼 수 있다.


KMZ생산 버전은 PT0815와 PT0820으로 나뉘는데 PT0815는 앞선 BK와 마찬가지로 경통의 형태가 오리지날 비오곤과 유사한 형태로 1950-52년 사이 적은 수량이 생산되어 오늘날 매우 드물고 흔히 보이는 버전은 PT0820으로서 경통이 다소 길어지고 지름이 조금 늘었다. 이 시기의 생산 제품들은 소련 공산품 수준이 막장이 되기 전이라 가장 만듦새가 좋고 품질 관리가 잘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가장 인기가 높고 상대적으로 비싼 편이다. 그래봤자 200불 미만이지만..






3. LZOS 생산 Jupiter-12 (1950년대 말 ~ 90년대)



세번째는 LZOS 생산 버전이다. 50년대 후반부터 60년대초반에 걸쳐 Jupiter-12는 KMZ와 LZOS 양쪽에서 병행 생산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후 62년쯤 부터는 LZOS에서만 생산되게 된다. 이때부터 빨간색 'n'코팅 마킹이 사라지게 되고 본격적으로 품질이 떨어지기 시작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뭐 그게 꼭 그렇다고 보기도 어렵고 오래된 렌즈니만치 관리 잘된 개체면 크게 문제는 없지 않을까 싶다. 


PT0825, 0833, 0835 등에 해당하는 버전으로 KMZ 생산 시절과 비교해 외관상 달라진 부분은 거의 없고 코팅이 다소 진해지고 키릴어로 표기되었던 Jupiter 표기가 수출을 염두에 둔 듯 영문으로 바뀌기도 했다. 71년부터는 크롬 버전을 대신해 검정 페인트로 마감된 버전(PT0835)이 생산되게 된다. (물론 블랙 페인트라고 해서 라이카의 멋진 도장 상태 따위를 생각하면 곤란하다;;)


위 사진의 렌즈는 91년 시리얼 블랙 페인트 버전인데 코팅이 두터워져 제일 바깥 쪽 렌즈에는 노란색이 선명하고 안쪽은 분홍, 보라, 주황 등 코팅색이 아주 유치찬란하고 요란하다. 어쨌든 그 덕분에 역광에서의 성능은 앞선 버전들에 비해 더욱 좋아졌다고 하며 비교적 최근까지 생산된 탓에 상대적으로 상태가 좋은 물건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혼이 부족하다는 인식을 극복하지 못했는지 50년대 시리얼에 비해 가격이 낮아 가장 가성비가 높은 버전이기도 하다. 지인 한 분이 얼마전 이 버전의 렌즈를 블랙 페인트 Leica III에 마운트하여 가지고 오신걸 보았는데 제법 잘 어울렸다. 





지인의 Leica III와 88년 시리얼 Jupiter-12





대략 이렇게 크게 세가지로 분류를 해보았지만 막상 이베이에서 만나는 물건들은 천차만별의 상태와 외관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60년 시리얼인데도 붉은 색 'n'마킹이 없는 경우도 있고 조리개 수치 폰트나 눈금선의 형태도 제각각이고 세대별 순서와 상관없이 뒤죽박죽 섞인 경우도 많다. 이래서 소련제의 진정한 문제는 광학적 성능이 아니라 믿을 수 없는 QC라는 말이 나왔나 싶기도 하다.




각 세대에 속하는 다양한 타입들에 대해 더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링크에 가보시면 되겠다.


http://www.sovietcams.com/index.php?-736220353






■ Juputer-12의 성능


그렇다면 이 렌즈의 성능은 어떨까. 태생 자체가 Carl Zeiss Biogon 35mm이니 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다. Carl Zeiss Biogon 35mm는 당시로서 놀라운 해상도로 유명했고 f2.8이라는 밝은 개방값을 가지고도 수차를 효과적으로 억제한 한마디로 당대 최고의 렌즈였다. (같은 시기 라이츠의 Elmar 3.5cm와 비교해보라 ㄷㄷ) 그런 Biogon의 설계를 이어받았다는 점이 오늘날까지도 애호가들이 Jupiter-12에 관심을 가지는 결정적 이유라고 할 수 있다.  


화면 중앙부는 최대 개방에서도 제법 높은 해상도를 보여주며 대부분의 렌즈가 그러하듯 f8.0~11 정도에서 최대 해상도에 도달한다. 비네팅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 수준이며 약간의 실패형 왜곡을 보인다. 주변부 빛망울의 흐려짐은 쐐기형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Sonnar와도 유사하다. 초기형부터 모두 코팅이 적용되어있어 역광에 버티는 능력도 괜찮으며 색감과 콘트라스트는 과하지 않고 중립적이다.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무척 안정적인 성능을 보여준다고 여겨지는데 한눈에 느껴지는 확실한 개성은 그리 두드러지지 않는다. 사실 올드 렌즈의 개성이라는 부분은 제어되지 못한 각종 수차와 비네팅, 떨어지는 해상도 등이 어울어진 이른바 '병신력'에서 기인하기 마련인데 그런 결점이 크게 눈에 띄지 않는 Biogon, 그리고 Jupiter-12를 보면 당시 칼 자이즈의 렌즈 설계가 얼마나 우수했는지 알 수 있다.






■ 못생긴 외모와 허접한 Build Quality


사실 Jupiter를 구입하는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못생긴 외모와 허접한 빌드 퀄리티가 아닐까 싶다. 아무리 좋다고 한들 모양도 예뻐야 쓰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 아닌가. 게다가 후기형으로 갈수록 레터링 각인의 수준도 떨어지고 경통 표면은 부식되거나 때가 잔뜩 끼어 지저분한 경우도 많다. 가격이 싸다 보니 돈들여 오버홀하는 이들도 드물어 윤활유는 떡져 포커스링을 돌리는 느낌도 싼티가 철철 넘치기 십상이다. 소련도 나름 할말은 있다. 못생긴 디자인은 애초에 칼 자이즈의 LTM버전이 그렇게 생겨먹었고 전쟁 중에 생산된 것들이라 고급스럽고 화려한 크롬 코팅이 아닌 알루미늄 혹은 두랄루민으로 제작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낸 것이 Jupier-12였기에 '소련제라서 그렇다'라는 평가는 조금 억울할 수도 있겠다. 





오리지날도 요따구로 생겼다. -_-




위와 같은 이유에 더해, 너무나 저렴한 가격에서 오는 불신(주피터가 좋아봤자지..), 그리고 '소련제'라는 편견 때문에 비싸고 고급진 카메라(라이카?)를 사용하는 유저들의 눈에 찰리가 없었다. 역시나 마찬가지였던 주변 지인 몇분이 나의 권유에 못이겨 Jupiter-12를 구입하셨는데 몇롤을 찍어보시고는 렌즈 성능에 모두들 놀라 예찬론자가 되셨다. 개인 취향차이도 물론 있겠지만 Jupiter-12 때문에 Summaron 3.5cm f3.5를 내친 분도 계시고 80불 짜리 렌즈가 아니라 800불 정도의 가치는 하는 렌즈라고 평가하신 분도 계시다. 그 중 한분이 못생긴 외모를 빗대어 '양동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셨고 그 이후 우리는 양동이 만쉐이를 외치고 다니고 있다. 정말 비싸봐야 20만원도 안하는 가격으로 이 정도 성능의 35미리 f2.8이라니. 이건 사실 거저라고 봐야한다. (요즘 Summaron 35mm f2.8 LTM버전 구하려면 100만원 이상을 줘야한다)






■ Biogon 35mm 역사의 마지막 페이지, Juputer-12


Jupiter-12는 1950년부터 무려 40여년간 생산되었다. 자본주의 진영에서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겠지만 소련에서는 가능했다. 경쟁이 사라진 경제 체제에서 굳이 더 좋은 렌즈를 개발해야할 동기가 충분할리가 없었다. 물론 그 필요성이 절실하지 않을 만큼 Biogon의 탄탄한 기본 설계을 이어받은 Jupiter-12의 성능이 우수했던 탓도 있었으리라. 오리지날인 Carl Zeiss Biogon 35mm는 서독에서 새로운 버전으로 60년대까지 그 명맥을 이어가게 되지만 Contax IIa의 단종과 함께 결국 역사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이후 카메라 시장의 대세는 SLR이 되었고 퀵 리턴 미러가 자리잡은 공간에 Biogon처럼 필름면 가까이 들어가는 광각렌즈는 들어갈 수 없었다. 


비록 전쟁이라는 아픈 역사에서 비롯된 일이었지만 철의 장막 속으로 들어간 Biogon은 Jupiter-12로 다시 태어나 오랜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Jupiter-12는 단순히 '소련제 짝퉁 비오곤'으로만 취급할 것이 아니라 Biogon 35mm 역사의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한 렌즈로 평가해줘야 함이 더 옳지 않을까? 





Jupiter-12 35mm f2.8 (1950~1990's)


Elements/Gropus : 6/4

Number of Aperture Blades : 5

Close Focus Distance : 1m

Filter Diameter : 40.5mm

Weight : 130g

Mount : Contax Bayonet or LTM






■ 작례 




1. B/W Negative (Kodak TMY & 400TX)



















































2. Colar Negative (Kodak Color Plus 200)



























3. Positive (Fujifilm RDPIII)



























끝. 



이른 새벽 알람 소리에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옆에서 자고 있는 와이프와 딸냄이 깰라 얼른 알람을 끄고 이불 밖으로 기어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동생도 부시시한 얼굴로 거실로 나와있다. 얼굴에 물만 바르고 카메라를 챙겨 차에 올랐다. 여름이라 벌써 밖이 환하다. 지금 가도 드라마틱한 장면을 만나기엔 늦었겠다 싶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강바람 맞으며 잠시 유유자적하면 될것인데. 상관없다.







30여분을 달려 두물머리에 도착했다. 역시나 새벽부터 부지런함을 떤 수많은 사진가들이 진을 치고 있다. 팔당호를 지나며 보니 물안개가 제법 피었던 것 같은데 저들은 늦잠을 포기한 보람이 어느정도 있었을 것 같다. 다 늦은 시간 도착해 삼각대도 없이 허접해보이는 낡은 카메라를 들고 기웃거리는 나를 보고 혀를 찼을 이도 있었으리라. '난 꼭 사진찍으러 온게 아니라니깐.' 괜히 속으로 변명해본다.







사실 저들처럼 나도 두물머리를 자주 찾은 적이 있었다. 회기역 뒷편에서 버스를 타고 '오늘은 물안개가 피어올라줄까?' 하는 부질없는 기대를 하면서 말이다. 사실 잘 찍어봐야 달력 사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겠지만 그 땐 그래도 그 한 컷을 건지고 싶었다. 일교차가 큰 늦가을, 초겨울에 주로 찾아야 했던 탓에 강가의 새벽 한기에 오들오들 떨어야 했고, 심지어 두물머리에 가면 서 있는 커다른 나무 아래 벤치에 누워 쪽잠을 자며 밤을 샌 적도 있었지만 한번도 마음에 쏙 드는 장면을 만나지 못했다.  두물머리 출사는 고생에 비해 성공 가능성이 너무 낮았다. 








해가 이미 높다. 작정하고 사진을 찍으러 왔으면 역시 더 일찍 왔어야겠다. 예쁜 풍경 사진, 이른바 달력 사진은 전형적인 아마추어들의 몫이지만 어쨌든 부지런하지 않으면 그 또한 쉽지 않다. 







동호인들의 카메라 화망 앞으로 배 한척이 지나간다. 요새 하도 만들어내는 사진들이 많다보니 저 배도 동호회에서 돈을 지불하고 연출하려고 움직이는 배가 아닌가 하는 쓸데없는 의구심이 들었다.







중년의 아줌마, 아저씨들로 구성된 동호회 회원들은 이제 철수를 시작했다. 저마다 최신의 DSLR에 짓조 삼각대 따위를 갖추고 있었다. 같은 위치에서 우루루 모여서 셔터를 눌러댔으니 얼마나 다른 컷들이 담겨 있을지 모르겠지만 모두가 기대를 안고 메모리 카드를 PC에 꽂아 오늘의 수확물을 확인하며 즐거워 하리라. 저 모임 안에서도 이른바 사진을 제일 잘 찍는다는 에이스가 있을거고 좋은 장비를 많이 가져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 이들도 있겠지. 고만고만한 아마추어들 사이에서 누가 더 잘 찍고 못 찍고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나역시 '이놈의 사진 찍어봤자 뭐하나' 하는 회의감이 들 때도 있다.







연배가 지긋해보이는 분에게 셔터를 좀 눌러달라고 부탁드렸다. '하나~두울~ 셋!' 셔터를 누르시고 나더니 버릇처럼 카메라 뒷면을 보신다. '아 이거 필름 카메라네요? 라이카네.' 내 니콘 D700은 제습함에 들어가 나오지 못한지가 1년도 넘은 것 같은데 세상의 주류는 역시 디지털인갑다.







여전히 나 하고 싶은건 하겠다며 돈지랄인 필름 사진질을 놓지 않고 있는 나와 달리 직장 생활과 육아에 지친 동생은 이제 사진을 거의 찍지 않는다. 대학교 다닐 땐 이 곳에서 찍은 슬라이드 컷으로 학교 동아리 전시회에 걸기도 했던 동생이지만 이제는 핸드폰으로나 두물머리의 풍경을 찍고 있다. 동생의 그런 모습을 보면 그렇게 어른이, 가장이 되어가는건가 싶기도 하고 피곤에 찌든 그의 모습을 볼 때면 늘 안쓰럽다. 







동생은 3군 사령부 직할 통신대에서 운전병으로 군생활을 했다. 선임들이 칼 같이 다려준 전투복을 입고 100일 휴가를 나와 할머니께 '선봉!'하고 경례를 붙이던 장면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휴가 나올 때와 달리 복귀 때는 차 안에서 아무 말도 않을 정도로 의기소침했던 동생은 부대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나서도 아직 복귀 시간이 남았다며 들어가기 싫어했다. 돌아갈 길이 먼 부모님과 나는 그냥 일찍 들어 가라고 했지만 어쩔 수 없이 복귀 시간까지 더 있어줬고 그래서 시간을 떼우러 들른 곳이 이 곳 두물머리였다. 동생의 중대는 이 근방이었다.







찾는 이가 많아지면서 주차장도 넓게 만들어져 있고 주변엔 까페도 많이 생겼다. 땅값도 제법 올랐을텐데 상수원 보호지역이라 개발이 호락호락하지 않은지 낡은 빈집은 그대로 남아있다. 변하지 않은 건 한강 뿐인가.






두물머리는 그동안 찾은 횟수에 비해 건진 사진이 그리 없어서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곳이었는데 기억을 더듬어보니 제법 많은 추억이 쌓여진 곳이었다. 이제 예전처럼 여기에 오면서 뭔가 '작품'을 건져야겠다는 욕심은 들지 않지만 서울에 오게되면 동생과 드라이브 삼아 찾고 싶은 곳은 여전히 두물머리긴 하다. 벌써 10년이 다되어 간다는 사실이 소스라치게 놀랍지만, 동생이 막 서울 생활을 시작했을 무렵, 출장 길에 서울에 들른 나는 늦은 밤에 문득 두물머리에 가보고 싶다고 했고 '지금 가보지 뭐.' 라며 동생은 차를 돌렸다. 아버지께서 물려준 구형 SM520이었다. 지금 기준으로 보자면 중형차라 하기에 실내 공간도 좁고 인테리어도 올드했지만 전형적인 세단처럼 생긴 디자인이 멋졌고 탄탄한 서스펜션의 주행감각도 나름 좋았다. (게다가 수동 미션이었다) 동생이 운전하는 그 SM520을 타고 음악을 크게 틀고 하늘만큼 캄캄한 한강을 거슬러 두물머리로 향하던 그 날 밤이 문득 그립다.





2017.06.04. 양평


Leica IIIa / Elmar 5cm f3.5 / Kodak 400TX / IVED


 
















































2017.06.03. 서울


Leica IIIa / Elmar 5cm f3.5 / Elmar 3.5cm f3.5 / Kodak 400TX / IVED











































































2017.05.20. 경주 건천


Leica IId / Elmar 5cm f3.5 (uncoated) / Kodak 400TX / IVED


























































































2017.06.09. 경주


Leica M6 / Jupiter-12 35mm f2.8 / Kodak 400TX / IVED








































2017.05.07. 청송


할 줄 아는거 없는 사위는 죄송한 마음에 괜히 기웃거리기만 하다 사진만 찍고.


Leica IIIa / Elmar 3.5cm f3.5 uncoated / Kodak 400TX / IVED



Leica Super-Elmar 21mm f3.4 ASPH (2011 ~ 現)




친구 K군이 어느날 이 렌즈를 보내주었다. 필름 사진을 거의 찍지 않고 있는지라 이 렌즈를 필름에서 테스트할 여유가 부족하니 한번 써봐주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과연 이 정도의 해상력이 필름에서 의미가 있을지 묘사력은 어떨지 궁금하다는 것이었는데 처음에는 다소 의아한 생각이 되었다. 꽤나 고가의 렌즈를 선뜻 써보라고 보내주는 것은 환자들에겐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곱게 쓴다 해도 쓰다보면 이래저래 자잘한 스크래치도 나게 마련이라 빌려주는 이나 받아쓰는 이나 부담스럽기는 매한가지다. 그럼에도 빌려달라고도 하지 않은 렌즈를 써보라며 빌려주는 그의 진짜 의도는 뭘까. (뽐뿌?) 화두라도 받은 것처럼 그렇게 슈퍼 엘마를 택배로 받았다. 




Leica Super-Elmar 21mm f3.4 ASPH는 그전까지 21mm 화각을 담당하던 Elmarit 21mm 대신해 2011년 6월에 등장했다. 7군 8매의 구성에 비구면렌즈가 포함된 이 새로운 렌즈는 고해상도 디지털 카메라들에 발 맞추어 해상도가 훨씬 향상되어 거의 모든 조리개 영역에서 극도로 샤프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현존 최고의 21미리 렌즈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전 세대의 엘마리트에 필터 구경을 비롯한 전체적인 사이즈는 보다 컴팩트해졌고 그로인해 최대개방값은 다소 어두워져 f2.8에서 f3.4가 되었다. f3.4? 이 어중간한 수치는 그리 낯설지 않다. Carl Zeiss Biogon에 맞섰던 라이카의 Super Angulon 21mm의 2세대가 바로 f3.4였다. 슈퍼 엘마의 등장은 오랜 라이카 유저들에겐 슈퍼 앵글론의 귀환으로 느껴질만한 일이었다. 




슈퍼 엘마의 렌즈 구성을 보면 3군 4매의 간단한 설계의 Elmar와는 전혀 상관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아마 라이카는 이 신형 21미리 렌즈에 슈퍼 앵글론이란 이름을 다시 붙혀주고 싶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슈나이더와 혐업하여 탄생한 이전 렌즈들과 달리 독자적으로 새롭게 개발된 이 렌즈에 그 이름을 사용할 수는 없었을 것이고, 왠지 모르게 보급형, 2선급의 느낌이 드는 Elmarit의 이름을 다시 쓰기는 싫고, 결국 그래서 렌즈 설계와는 무관한 슈퍼 '엘마'가 되지 않았을까.




6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Carl Zeiss Biogon 21mm나 Leitz Super Angulon 21mm에 대한 매니아들의 지지는 열렬한데 이 녀석들은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며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나게 된다. 렌즈 뒷면이 바디 안쪽으로 깊숙히 들어가는 설계 특성상 디지털 바디에서는 측광이 안되거나 비네팅과 마젠타 캐스트가 심각하게 발생했던 것. 이 같은 문제가 발생치 않도록 렌즈 후면이 셔터막에서부터 충분한 여유를 갖도록 설계된 Super-Elmar는 덕분에 전자들에 비해 길이가 제법 길어질 수 밖에 없었다. 컴팩트한 비오곤에 익숙한 내게는 무척이나 어색하고 어딘지 꼼수를 부렸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엘마릿에 비해 작아졌다지만 길이가 길다보니 실제보다 더 크고 무겁게 느껴졌고 현행 라이카 렌즈 특유의 고운 반광택 도장면에 흠집이라도 날까 여간 조심스럽지가 않았다. 그래서 이 렌즈를 받아들고 나서도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것이 사실. 한롤을 겨우 꾸역꾸역 찍고는 책상 위에 고이 모셔두었다. 


















꾸역꾸역 샷들. 필름을 넣고 빼기까지 무려 2주가 걸렸다.





렌즈를 빌려준 K군은 한참이 지나도 결과물이 나오지 않자 약간 서운해 하는 듯 느껴졌고 나역시 괜시리 미안한 날들이 이어졌다. 친구가 큰맘먹고 렌즈를 빌려줬으면 신이 나서 마구 찍어서 '이거 해상도가 끝내주네?!', '왜곡도 거의 없어!' 등등의 호들갑을 떨어줘야 그도 재미있을터. 밍기적 거리는 나의 반응이 못내 심심했으리라. 그래도 어쩌랴. 이 렌즈가 '내 것'이었다면 부담없이 휘두르고 다녔겠지만 어쨌든 잠시 빌려 써보는 렌즈인 것을. 이 곱게 자란 렌즈를 가지고 '야전'에 뛰어들기는 어려웠다. 결국 두번째 필름도 슬라이드를 넣고 금척리 고분군을 살랑살랑 찍어대는데 사용됐다. 































그럼에도 뭔가 아쉬움은 가시지 않았다. 곱게만 찍으려니 이 렌즈가 보여줄 수 있는 힘이 느껴지지가 않았다. 문득 친구가 바랬던 것은 이런 테스트 샷이 아니라 필름 유저가 실전에 투입한 슈퍼 엘마의 결과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멋대로의 생각이었겠지만(ㅋㅋ) 생각이 그렇게 이르자 21미리가 가장 잘 활약할 수 있는 전장으로 데려가 실전 데뷔를 해보자는 욕심이 생겼다. 새로운 렌즈가 생기고 어느 정도 손에 익고 특성 파악을 간략히 하고 나면 데려가는 곳이 있다. 바로 어판장이다. 어판장에서 정밀한 구도와 노출, 포커싱을 할 여유는 많지 않다. 복잡한 현장에서 부대끼며 순간순간의 장면을 재빨리 잡아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버벅이지 않고 촬영을 하고 그 결과물 또한 만족스러웠을 때 그제서야 그 렌즈, 혹은 그 카메라는 비로소 '내 것'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5월의 어느 토요일 새벽. 송도의 수협 위판장을 찾았다. 자주 갔던 죽도시장 어판장과 달리 제대로 촬영차 가본 적은 없는 곳이라 손에 익지 않은 렌즈로 가당키나 할지 처음엔 조금 걱정도 되었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슈퍼 엘마는 빠른 속도로 현장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넓은 렌즈는 넓은 공간에서 오히려 힘을 잃는다. 21미리가 어울리는 곳은 그런 곳이 아니라 모든 것이 뒤엉킨 좁고 한정된 공간이다. 이런 곳에서 21미리의 다이나믹한 앵글은 평범한 장면을 비범한하게 바꾸어 주고 현장의 싱싱한 활력을 생생하게 극대화 해줄 수 있다. 비로소 물을 만났듯 나는 신나게 셔터를 눌러댔다. 두 롤의 필름을 난사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실 그동안 잔재주 없이 최선의 광학적 설계만으로 최상의 화질을 구현하고자했던 슈퍼 앵글론이나 비오곤을 열렬히 추종해왔던 나였던지라 '영혼없는' 슈퍼 엘마나 엘마리트 21미리 따위에는 영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이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찾았던 송도 어판장에서 맹활약한 슈퍼 엘마의 결과물을 보고 나니 그런 생각도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다. 한눈에 봐도 높은 해상도와 콘트라스트는 슈퍼 엘마가 녀석의 선배 슈퍼 앵글론과는 확연히 다른 신세대 21미리임을 강하게 증명하고 있었다. 물론 이것이 취향이냐 아니냐는 별개의 문제겠지만 말이다. 




마지막 송도 어판장 필름을 스캔하고 나서야 나는 솔직하고 시원하게 K군에게 소감을 얘기할 수 있었다.




'야 슈엘 겁나 좋은데?!'





2017.05.20. 포항


Leica M6 / Super Elmar 21mm f3.4 ASPH / Kodak 400TX / IVED




Specail Thnaks to Qunaj!

케케묵은 고물 카메라와 렌즈를 사용하는 일은 생각보다 꽤 성가신 일이다.




다분할 멀티측광에 초당 수컷이 촤르르 찍히는 모터드라이브, 순식간에 초점을 맞춰주는 AF기능이 기본이 된 오늘날 뭔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칠순이 훌쩍지나 팔순을 바라보는 바르낙옹을 손에 쥐고 다니는지 스스로도 가끔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노출계는 당연히 없고 셔터스피드도 유럽식이라 1/40, 1/100, 1/200 같이 애매하게 되어있다. 여기에다 오늘 붙혀둔 Elmar 3.5cm는 또 어떠한가. 코팅도 적용되어 있지 않은 맨유리알인데다 조리개 수치도 4.5, 6.3, 9, 12 등으로 희한하기 그지없다. 노출계야 외장으로 쓴다 쳐도 측광값을 카메라와 렌즈에 적용하기 참 난감하다.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이런 녀석을 데리고 다니자면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한다. 1/3스탑 단위로 브라캐팅을 하던 결벽증 따위는 저 멀리로 던져 버리고 부처님같은 관용도의 400TX를 믿고 '대충' 맞춰서 셔터를 눌러야 한다. 무코팅이라 역광에 맞서는 무모한 짓도 최소화한다. 파인더를 들여보다 영 자신이 없다 싶으면 포기하면 된다. 태양에 맞서봤자 Summicron 35mm ASPH같은 사진을 만들어줄리는 만무하다. 이 녀석으로 잘할 수 있는 장면에 그저 충실하기로. 그것이 이 오래된 카메라와 렌즈로 할 수 있는 최선의 사진질이다.




이 불편함과 명확한 성능상의 한계는 이미지 퀄리티라는 측면에서는 어쨌거나 모든 면에서 불리하게 작용한다. 하지만 취미 사진가에게는 이러한 것들이 무조건 단점으로만 작용하지는 않는다. 보다 유리한 빛의 상황을 파악하고 단점은 커버하고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장면과 피사체를 찾아나서게 한다. 그야말로 쇠붙이와 유리로만 만들어진 정직하고 단순한 기계로 세상과 1:1로 마주한다는 느낌. 여기서 오는 소탈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기름지게 번들거리는 현행 렌즈의 화려한 코팅색도 부럽지 않고 최첨단 기능이 녹아있는 멋드러진 DSLR도 부럽지 않다. 밧데리 없으면 찍지도 못하는 거. 




내 처가는 경북 청송이다. 경북에서도 산간 내륙인 이 곳은 전국적으로 봐도 가장 발전이 더딘 곳 중 하나다. 처가가 있는 마을은 청송군에서는 비교적 큰 곳인 청송읍과 진보면 사이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마을 입구에는 제법 잘 가꾸어진 너른 솔밭이 푸르고 시원한 그늘을 선물해주고 있으며 동쪽과 서쪽에 자리한 산 사이로 흐르는 작은 개천과 그 개천을 따라 이어진 논밭이 제법 너르게 자리한, 작지만 아담한 동네다. 이 곳에서 자란 나의 아내는 어릴 적 동네 오빠야들을 따라 산을 뛰어다니고 논두렁에서 뛰어내리며 슈퍼맨 놀이를 하고 개울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놀았다. 하교길에 장인어른의 경운기라도 만나면 '아빠!'하고 달려가 점방에서 산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경운기를 타고 집으로 오던게 그렇게 좋았다고 하는 나의 아내. 나는 나의 아내가 그런 소박하고 행복한 유년 시절을 겪었음이 감사했고 나의 처가가 이런 곳이라 퍽 마음에 들었었다. 




처가를 갈 때면 언제나 카메라를 챙겨간다. 넓지 않은 동네라 돌아다녀봐야 찍을 것이 많지 않지만 계절과 빛의 변화가 보다 솔직하게 드러나는 이 곳에 가면서 카메라를 챙겨가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 어버이날을 며칠 앞둔 주말 찾았던 처가에서 속닥한 카메라 하나를 손에 쥐고 논길과 농로를 따라 걷고 두리번거리며 2롤의 필름을 찍었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이 곳에서 빠르고 편리한 카메라가 장점을 발휘할 일은 없다. 정직하게 제 속도에 셔터가 끊기고 빛이 들어오는 구멍만 제대로 조절되면 그걸로 족하다.




그 다음은 나의 몫이다. 






















































2017.05.06~07 청송








Leica IIIa / Elmar 3.5cm f3.5 (uncoated) / Kodak 400TX / IVED






























2017.05.25. 경주 건천


Leica IIIa / Elmar 3.5cm f3.5 (coated) / Kodak 400TX / IVED





















































































2017.05.06. 포항


Rollei 35SE / Kodak 400TX / IVED




























































2017.05.03. 경주 건천

Contax IIa / Carl Zeiss Tessar 50mm f3.5 / Kodak 400TX / IVED































2017.05.02. 경주 건천

Contax IIa / Carl Zeiss Tessar 50mm f3.5 / Kodak 400TX / I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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