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coh GR1s




필름의 전성기이던 1990년대말~2000년대 초에 걸쳐 여러 카메라 제조사에서는 끝판왕급 P&S 카메라들을 시장에 선보였다. 뛰어난 성능의 단렌즈와 촬영 의도에 부합하는 다양한 수동 설정이 가능하여 프로들의 서브 카메라로 혹은 항시 휴대할 수 있는 메인 카메라로도 부족함이 없었던 이들의 등장은 분명 이전 세대의 컴팩트 카메라들과는 결이 다른 것이었다. 




Ricoh에서 내놓은 GR시리즈는 그 중에서도 가장 개성이 강한 카메라였다. 작은 크기와 고성능의 렌즈라는 측면에서 여타 브랜드의 그것과 별반 차이는 없지만 손에 쥐어보면 확연히 다름을 알 수 있다. 물리적인 크기와는 별개로 손에 딱 맞는 그립감과 조작의 편이성은 단순하게 작기만 한 다른 카메라들에서는 느낄 수 없는 GR만의 매력이다. 마그네슘 합금으로 만들어진 몸체는 무광 검정에 까슬한 질감이 살아있어 곱게 모시고 다녀야할 것 같은 Contax T3나 Leica Minilux에 비해 보다 터프하게 다뤄도 될 것 같아 심리적으로 부담이 덜해 좋다.




GR시리즈는 스냅에 특화된 카메라란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작고 가벼워 늘상 가지고 다닐 수 있어 보다 많은 셔터 찬스를 확보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경험상 작다는 것은 가지고 다니기에만 편할 뿐 그것만으로 꼭 스냅에 유리한 것과 직결되는 부분은 아니었다. 빠른 가동 시간과 AF속도도 중요하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필수 요소는 초점과 조리개를 수동으로 간편하게 설정할 수 있느냐는 부분이다. 거리에서 빠른 포착을 위해서는 그 어떤 AF방식보다 피사계심도를 이용한 과초점 방식이 가장 유리하지 않던가 말이다.




이런 측면을 고려할 때 GR1s는 스냅에 가장 적합한 P&S라 할 수 있다. 모드 버튼을 두번 누르면 AF모드는 곧바로 SNAP모드로 진입한다. 2미터 고정이다. 28미리의 깊은 심도를 고려하면 8~11이상으로 조리개를 조이면 사실상 거의 전 영역에 초점이 맞는다. ISO400 필름을 넣고 스냅모드에 조리개 11로 설정한 GR1s를 한 손에 쥐고 어슬렁거리면 더이상 신경쓸 일이 없다. 




스냅모드 뿐 아니라 수동으로 거리를 세팅할 수 있는데 AF모드를 스팟으로 놓고 원하는 위치에 반셔터를 눌러 초점을 고정시킨 후 모드 버튼을 길게 누르면 해당 거리에서 초점이 고정된다. 이때 부터는 셔터 버튼에서 손을 떼어도 초점 설정이 유지된다. 개인적으로 길거리나 골목에서 원하는 위치에서 원하는 장면(자전거가 지나간다거나)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셔터 찬스를 노리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AF-LOCK을 유지하기 위해 반셔터를 계속 누르고 있는 것은 꽤나 성가신 일이 아닐 수 없는데 GR1s의 초점 고정 모드는 이러한 귀찮음을 해소시켜준다. GR시리즈가 스냅에 특화되어 있다는 얘기는 괜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렌즈 성능은 어떨까. GR1s에 탑재된 4군 7매의 28미리 렌즈는 성능이 좋기로 유명했다. 비구면 렌즈까지 넣어준 리코의 성의가 고맙다. 성능의 판단을 해보자면 같은 28미리를 선택한 미놀타 TC-1과의 견주어보거나 RF카메라를 위해 발매된 28미리 교환 렌즈들과도 비교를 해봐야 좋겠지만 왕성한 호기심과는 별개로 그것을 실행에 옮기기엔 나의 귀차니즘이 너무 강했다. 이쯤이면 언제나 면죄부 처럼 하는 말 '그게 뭐 의미가 있나. 사진을 잘 찍어야지!'로 얼렁뚱땅 넘어가 버리곤 하지만 어쨌든 결과물에서 느껴지는 성능은 충분히 만족스럽다. 샤프니스나 콘트라스트, 어디에서도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케케묵은 올드 렌즈만 주로 쓰다보니 이 정도만 나와도 놀라울 지경이다. 리코에서는 명성이 자자한 GR의 렌즈를 라이카 스크류 마운트로 별도로 제작하여 한정 발매했고 여전히 높은 중고가를 자랑하고 있다. 이 정도면 성능에 대한 평가를 갈음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한정발매된 GR28mm f2.8 / 블랙 색상도 출시되었다.

 




세상에 완벽한 것이 없듯 GR1s에도 단점은 분명 존재한다. 


가장 고질적인 문제는 액정 번짐 현상. 촬영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발매 후 20년이 지나면서 점차 멀쩡한 녀석이 드물어지고 있다. 


두번째는 느리고 곧잘 버벅이는 AF. T3나 TC-1과 비교해보면 그 차이가 느껴진다. (스냅 포커스 모드로 극복!) 


세번째는 어둡고 좁고 흐린 뷰파인더. 파인더 내부의 각종 정보 표시의 밝기와 컨트라스트가 낮아 시인성이 높지 않고 뷰파인더 역시 시원스럽지 못하다. 컴팩트함을 얻기 위해 대부분의 P&S들의 파인더 역시 마찬가지긴 하다. 


네번째로는 수동 감도 설정이 불가능하다는 점. Contax T3 역시 마찬가지긴 하지만 감아쓰는 필름을 넣거나 증감 촬영을 하고자 할 때 아쉬움이 큰 부분이다. 이 점은 GR1v가 출시되며 개선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낮은 내구성. 이는 모든 P&S들의 숙명이다. 외장 케이스는 마그네슘이든 티타늄이든 견고한 재질로 만들어져 있지만 내부를 보면 어느 기종을 막론하고 프라스틱 부품들이 빼곡히 차있으며 좁은 케이스 안에 각종 기어와 전선, 기판들을 구겨넣느라 애초에 충격에도 강한 튼튼한 구조는 기대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렌즈가 들고 나는 베리어 부분은 이같은 기종들의 최대 취약점 중 하나로 렌즈가 나와있는 상태에서 충격을 받으면 그 길로 사망 판정을 받을 수도 있어 무척 조심해야할 부분이다.




구입 후 한동안 신나게 잘 사용하던 나의 GR1s도 어느 날 갑작스레 셔터를 눌러도 렌즈셔터가 열리지 않는 고장이 나버렸다. GR1s의 일반적인 고장 현상인 액정 번짐이나 베리어 문제도 아니라 더욱 난감했다. 최악의 경우는 기판이 나갔다며 폐기 판정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 그 길로 GR1s는 제습함에 쳐박혔고 다른 카메라들을 쓰느라 한동안 잊고 지냈다. 물론 GR1s로 찍어둔 얼마 안되는 사진들을 볼 때면 다시 생각나긴 했지만 기계식 카메라들 오버홀하는데도 적잖은 돈이 깨지고 있는 상황이라 GR1s의 수리는 그렇게 차일피일 미뤄졌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난 후, 포항지부에 유일하게 필름을 사용하지 않던 멤버 한 분이 드디어 필름을 사용해보겠노라 결정하셨다. 한번에 라이카로 가기엔 가격도 가격이거니와 필름 생활에 확신이 없으셨던 차에 GR1s같은 고성능 똑딱이는 그야말로 안성맞춤. 더군다나 디지털인 GR2를 사용 중이시니 적응에 더욱 유리할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결국 수리가 되면 구입하고 싶다는 그 분을 핑계 삼아 쳐박혀 있던 GR1s는 충무로 삼성사로 떠났다. 2주 후 돌아온 녀석은 다시 쌩쌩하게 작동되고 있었고 그렇게 새 주인의 품으로 떠났다. 




이제는 Contax T3도 내 품을 떠났고 올림푸스 뮤2는 전투형으로 군대에서 굴린 후 고장나버렸고 Ricoh GR1s 역시 한 차례 고장 후 내 품을 떠났다. 이제 내게 똑딱이는 남아있지 않다. 작은 크기로만 치자면 ROLLEI 35SE 정도만이 남은 셈. 사실 사진 찍는 재미에 푹 빠지게 되면 회사를 가든, 장을 보러 가든, 산책을 가든, 언제든 들고 다닐 수 있는 카메라가 간절해 진다. 크기는 작아도 렌즈의 화질과 카메라의 성능은 메인 카메라 못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욕심은 누구나 들게 마련. 그럴 때 마다 T-3나 TC-1, Minilux 같은 카메라들이 다시금 생각나겠지만 역시 내 촬영 용도에 가장 맞는 녀석은 GR시리즈인 것 같다. 곁에 오래 머물진 못했지만 녀석으로 찍은 사진들을 보니 역시 좋은 카메라였단 생각이 든다. 다시 만날 일은 아마도 없겠지만, 사람 일은 또 모르는 거니.. ㄷㄷ








Ricoh GR1s - Spec



Lens: GR Lens 28mm f/2.8 (7 elements, 4 groups) multi-coating aspherical glass lenses.

Focusing: Passive type multi-autofocus (with focus lock, automatic auxiliary AF light under low lighting, distance measuring range: 0.35m - infinity, Single AF mode, Fixed focus mode.

Shutter Speeds: Programed mode Approx 2 to 1/500 second.

Aperture Priority Mode: Approx. 2 to 1/250 second, 1/500 (at f/16), Time Mode.

Viewfinder: Reverse Galilean type with LCD bright frame, in-finder illumination under low lighting.

Viewfinder Field: Vertically: 81%, Horizontally: 83%

Viewfinder magnification: 0.43

Exposure Compensation: +/- 2EV (1/2EV Steps)

Film Speeds: ISO25 to ISO3200 (DX) ISO 100 for non-DX.

Flash Guide: 7 (ISO 100)

Flash Charge: Approx 5 Seconds

Battery Life: Approx 500 shots (50% flash)








































































































































































































































2017.03.29.


포항 시외버스터미널은 1985년에 준공된 낡은 시설로 고속터미널과 함께 흥해 쪽으로 이전할 계획이 수립되었으나 포항시의 인구 증가가 지지부진한데다 완전 외곽 지역에다 투자하기를 꺼리는 기업들의 참여 부진으로 결국 현 자리에서 복합환승센터로 재개발하기로 수정되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원안대로 추진하라는 북구 주민들과 현재 터미널이 위치한 남구 주민들 사이에 의견 충돌이 발생하고 등등 말이 많다는데. 뭐 어쨌든 이 곳의 모습도 머지 않아 사라질테니 틈날 때 마다 찾아서 좀 남겨놔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Leica M3 / Summicron 50mm f2.0 Rigid / Kodak 400TX / IVED


'다라이'에 담겨 있던 커다란 방어들 중 한 마리가 팔렸다. 아직 살아있는 상태이긴 하지만 방어를 회로 먹을 수 있는 철은 지났기에 누가 어떤 용도로 사가는지 궁금해진다.







방어가 움직이지 못하게 무릎으로 누르고 아가미 안 쪽에 칼을 집어넣는다. 살고자 몸부림치는 방어의 힘은 대단해서 미끄러운 바닥에서 방어가 튀어나가지 않게 하는 일도 쉽지 않아 보인다.







넓은 바다를 누비다 좁은 다라이 안에 담겨진 방어들은 견디지 못하고 파닥거려 보지만 벗어날 수 없다. 이들도 곧 앞선 동료와 같은 운명에 맞이할 것이다. 지능이 낮은 어류라고는 하지만 겪어본 적 없는 낯선 환경에서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리가 있을까.







아주머니께서 잡으신 방어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바닥을 적시고 있다. 방어는 크기가 제법 큰 어류다 보니 몸에서 나오는 피의 양도 적지 않다. 칼라였다면 더 날스러운 사진이 되었으리라.






아가미에 칼이 들어갔는데도 방어는 죽지 않고 이따금씩 발작하듯 파닥거린다. 몇차례 다시 찌르는 걸 보고 있노라니 한번에 숨통을 끊으려고 칼을 찌르는 것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완전히 죽지 않은 상태로 유지시켜 피를 빼려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움직임이 점차 뜸해지는 방어의 머리를 아주머니께서 토닥이며 뭐라고 얘기를 하시는게 아닌가. 뭐라고 하시는 건가 궁금해지던 차에 아주머니 쪽에 더 가까이 있던 일행이 내게 돌아와 얘기를 해준다. 




"아주머니께서 방어한테 '미안하다~ 미안하다~ 좋은데 가거라.' 하고 계세요."




그 얘기를 듣는 순간부터 더이상 카메라를 겨누지 못했다. 그저 그 아주머니를 바라보며 그런 마음으로 생명을 대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속으로 되뇌일 뿐. 


팔닥거리는 싱싱한 물고기들이 넘쳐나는 어시장은 그래서 활기차고 역동적인 공간으로 인식되지만 그 싱싱한 물고기들은 결국 '아직 죽지 않은, 곧 죽을' 물고기들이다. 주인이 나타나면 곧바로 도마 위에 올려져 목이 달아나고 몸통이 갈라져 살점이 발라진다. 태어나 죽기를 바라는 생명체는 그 어디에도 없다. 살고자 하고 죽지 않고자 함은 본능이다. 그래서 죽음의 공포 앞에서 몸부림치고 비명을 지르며 모든 생명체는 저항하지만 비명을 지르지 못하는 물고기의 죽음은 상대적으로 덜 처절하게 보여서인지 대부분 잔인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6년전에 제주 모슬포항에 방어회를 먹어보러 들렀었다. 여느 횟집들이 그러하듯 손님들이 주문을 하면 뜰채를 들고가 수족관에서 물고기를 잡아 건져 올린다. 그런데 그렇게 수족관에서 꺼낸 커다란 방어를 바닥에 내동댕이치더니 횟집 아주머니께서 방망이로 머리를 내려치는 것이 아닌가. 미끈거리는 물고기이니 빗맞기도 하고 제대로 맞지 않으면 한번에 기절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여러차례 방망이를 내려치는데 이 모습은 적잖이 충격으로 남고 말았다. 먹어야 하는 것이니 죽여야 하겠지만 저런 방법 밖에 없나 싶었지만, 또 생각해보니 가만히 잡고 있을 수도 없으니 때려서 기절이라도 시켜야 칼을 댈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회를 먹으려던 마음이 많이 불편해지는 것 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물론 그래도 잘 먹긴 먹었다는 ㄷ)




어업이 생업인 분들께는 사실 물고기를 죽이는 일에 복잡한 생각을 가지실 이유도 여유도 없을 것이다. 그 분들에겐 반복되는 일상이자 생계를 위한 수단일 뿐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찌른 칼에 피를 쏟으며 고통스러워하는 방어의 머리를 토닥거리며 '미안하다'고 속삭여주시는 아주머니의 모습은 정말이지 놀랍고도 아름다운 것이었다. 비록 생계를 위해 방어의 목숨을 앗아야 하지만 생명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저런 분이라면 평소 생활에도 얼마나 따스함이 가득할까 생각해 본다. 





2017.04.02. 포항 죽도시장


Leica IIIa / Elmar 5cm f3.5 / Ilford HP5+ 400 / IVED





























2017.03.25.


Leica M3 / Orion-15 28mm f6.0 / Fujifilm C200 / IVED
























2017.03.18. 청송


Leica IIIa / Elmar 5cm f3.5 / Kodak TMY / IVED



















2017.03.25. 포항


Leica IIIa / Elmar 5cm f3.5 / Kodak 400TX / IVED



































2017.03.10~11



불금을 맞아 회장님과 함께 간단히 소주 한잔 하러 들른 참지집에서 술김에 찍은 막샷들. 


침동 엘마를 받아온 날이라 회장님 보여주려고 들고 나가긴 했는데 여기서 뭘 찍을 생각은 원래 아니었다. 그런데 술이 들어가니 괜히 셔터를 누르고 싶어져 객기로 몇장을 찍기 시작했고 그러다 바르낙을 신기하게 쳐다보던 옆자리 커플들과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알고보니 여성분이 포항시향 비올라 단원이라 한 때 클래식빠로서 감개무량하여 즉석 연주를 부탁드렸다는거 ㄷㄷ  이 분도 이미 소주를 3병 정도 헤치우신 상태라 처음에 좀 빼시다가 결국 차에서 비올라를 갖고 오셔서 즉석 독주회를 열게 되었다. 참치집에 있던 모든 손님들이 숨죽여 '섬집아기'와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곡명이 이게 맞나?)'를 감탄하며 들었고 연주가 끝나고는 열광적인 박수와 환호가 터져나왔으니... 내가 본 그 어떤 실황보다도 사실 더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연주회였다. 


사진이야 물론 뭐 보다시피 어두운 실내에서 어두운 엘마로 찍었으니 망했지만 ㅠ 


Leica IIIa / Elmar 5cm f3.5 / Kodak 400TX / IVED




























































































































2017.01.13. 경주


홈그라운드에서 관광객처럼 놀기. 교토에서 돌아오신 보따리 장수 수경님과 콩고물 얻으러 정희님이랑 접선했던 날. 무려 첫 눈을 남자 셋이 함께 맞았다. ㄷㄷ 


Contax IIa / Carl Zeiss Biogon 21mm f4.5 / Kodak 400TX / IVED




1955년 라이츠사는 4군 6매 더블가우스 구조의 주마론 28미리를 출시했다. 

1935년에 출시된 28미리 Hektor로 20년이나 울궈먹은 끝에 드디어 새로운 28미리가 등장한 것이었다. 주마론은 싱글코팅이 적용되면서 해상도와 콘트라스트가 향상되었으며, 왜곡과 비네팅 억제 측면에서도 헥토르보다 개선되어 당시로서는 최고의 28미리 렌즈라 불릴만 했다. 컴팩트한 사이즈는 바르낙 라이카에 안성맞춤이었고 조리개 조절 방식도 보다 현대적인 형태로 변경되어 사용상의 편의성도 좋아졌다. 단, 여전히 최대 개방값은 어두웠는데 헥토르의 f6.3에서 겨우 반스탑 정도 밝아진 f5.6에 머물렀다는 점은 분명 아쉬운 부분이었다. 







주마론이 등장하기 전까지 28미리를 담당한 Hektor. 조리개 조절이 Elmar처럼 불편한 방식이었고 무코팅이었다. 




주마론의 어두운 개방값은 당시로선 보다 밝은 광각 렌즈를 만들어내기 위해 극복해야할 수차가 너무 많았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밖에 볼 수 없지만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캐논 Serenar 28mm f3.5라든지 28mm f2.8 같은 녀석을 보고 있자면 한숨이 절로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심지어 소련에서조차 이미 1937년에 FED 28mm f4.5가 나왔는데 말이다.







Fed 28mm f4.5 (라이츠는 뭘 한거란 말이냐)






아마 주마론이 이렇게 배짱 튕기며 등장할 수 있었던데는 경쟁상대 칼 자이즈의 방만함도 한몫 했을 것이다. Sonnar라는 걸출한 대구경 50미리 라인업으로 라이카가 나름 밝게 만들어보고자 애쓴 Summar, Summitar, Summarit 따위를 뭉개버리며 광학 기술만은 앞선다고 자타가 공인하던 칼 자이즈도 유독 28미리는 찬밥이었다. 그들 역시 라이츠 못지 않게 별다른 개선 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Tessar 28mm f8.0을 20년 이상 울궈먹고 있던 중이었으니 말이다. 







Carl Zeiss Jena 28mm f8.0 (제 짝인 콘탁스에서도 거리계 연동이 안되는 목측식이다. 어차피 8.0이니..)






사실 예전 같으면 최대 개방값이 f5.6에 불과한 주마론 따위의 렌즈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을테다. 하지만, 자꾸 보다보니 정이 들었는지 모양 만큼은 정말 예쁘다고 인정할 수 밖에 없었고 언젠가 한번쯤은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한번 사볼까?' 하고 가볍게 들이기에는 스크류 마운트 렌즈들 중에서도 유독 비싼 가격을 자랑하는데다 생산량이 그리 많지 않아 매물도 귀했다. 아, 물론 훌륭한 대안은 있었다.







라이카에서 M마운트로 복각하여 출시한 주마론 28mm






작년에 뜬금없이 주마론 복각 모델이 출시되었다. 마운트 형식이 M마운트로 바뀌었지만 광학적 구조는 거의 오리지날 그대로 복각된 이 렌즈는 한동안 각종 커뮤니티를 뜨겁게 도배했다. 아이폰 광고가 떠오를 정도로 깔끔하고 아름다운 생산 과정 이미지들로 구성된 브로셔를 보고 있노라면 당장이라도 품고 싶은 욕심이 들기 마련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제 정신으로 300만원에 가까운 돈을 지불하고 살 수는 없었다. 






그러던 중 우연찮게 기회는 찾아왔다. 나의 뜬구름 잡는 리뷰에 현혹되신 어느 팬(?) 분과 자주 연락을 주고 받게 되었고  서로가 가지고 있는 장비 호구 조사를 하다 그 분이 주마론 28미리를 갖고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너무 어두운 개방값 탓에 잘 손이 가지 않아 제습함에 들어간 후 나올 줄은 모른다고 하셨고 그럴거면 제가 한번 써보겠노라며 빌리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렌즈를 처음 받고 난 후. 헬리코이드에서 흘러나온 윤활유가 묻은 자국도 많았고 틈새의 찌든 때도 그대로 있는 등 전체적으로 약간 지저분한 상태였다. 평소 장비를 아껴쓰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이런 건 또 그냥 못지나가는 성격이라 구석구석 정성스레 닦아 주었다. 전체적인 외관 상태는 꽤 훌륭했고 전면 코팅의 상태도 양호했다. LED조명을 비춰서 내부를 보니 약간의 헤이즈가 보였지만 헤이즈가 없이 온전히 보존된 개체가 무척 드물다고 하니 어쩔 수 없으리라 생각됐다.






내 것이 아니어도 새로운 렌즈를 사용해보는 일은 무척 즐거운 일이다. 특히 성능의 가늠이 쉽지 않은 올드 렌즈의 경우는 더더욱 흥미롭다. 주마론을 빌려주신 지인께선 이미 주마론에 대한 흥미는 상실하셨고 당시 나의 뜬구름 리뷰에 끌려 다른 광각 렌즈를 구입하시는 바람에 주마론은 처분하기로 맘을 먹으신 상태로 갈 곳까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빌려쓰는 마당에 한달이고 두달이고 마냥 사용해볼 수는 없는 노릇. 눈빠지게 기다리는 새 주인이 눈에 아른거려 3롤의 필름을 후다닥 찍은 후 주마론을 새 주인에게 보냈다. 






그리고 일주일 후 드디어 주마론으로 찍은 필름들을 현상하고 스캔했다. 코팅이 적용되었다곤 하지만 역시나 역광에서는 꽝이었다. 하지만 예상외로 해상도는 훌륭했고 지나치게 날카롭지 않으면서도 오밀조밀 세밀한 묘사력이 꽤나 매력적이었다. 이건 정말 스캔 파일로만 볼게 아니라 암실에서 직접 인화한 사진으로 느끼고 싶은 렌즈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아마 주마론을 보내기 전에 결과물을 한번 봤다면 달랑 3롤만 찍어보고 그렇게 보내진 않았으리라. 어차피 새 주인이 계약금 따위를 걸어놓은 상황도 아니었는데 그냥 내가 사겠다고 가로챌 걸 그랬나 하는 생각마저 잠시 들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라이카 렌즈들이 기본적으로 비싼 편이지만 올드 렌즈들 중 인기가 좀 있다는 것들은 계속해서 값이 더 오르고 있다. 주마론 28미리 역시 복각 모델 출시로 인한 사람들의 관심이 늘어서인지 과거보다 높아진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상태가 좀 좋다 싶으면 100만원을 훌쩍 넘어가니 그 정도면 보다 뛰어난 성능의 M마운트 Elmarit 28mm f2.8도 구할 수 있을 수준이다. 그렇기에 그만한 금액을 들여 굳이 오래된 주마론 28미리를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인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올드 렌즈를 꼭 광학적 성능 측면에서만 바라볼 것은 아니지 않은가. 마냥 좋기만한 현행 렌즈들이 가지고 있지 못한 개성있는 묘사와 독특한 느낌은 광학적 수치만으로 완벽히 설명하기는 어려운 매력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그런건 잘 모르겠더라도 예쁘면 되는 거 아닌가? 예쁘다는 이유. 그것 때문에 오늘도 환자들은 괴롭다. 이왕이면 다홍치마. 그것은 진리다. 







Leitz Summaron 28mm f5.6 & Leica IIIa
















































































2017.03.01. 포항


Leica M3 / Orion-15 28mm f6.0 / Ilford HP5+ 400 / IVED












































2017.03.04. 포항 송도


Leica IIIa / Summaron 28mm f5.6 / Ilford HP5+ 400 / IVED









































































































2017.02.26. 포항 구룡포


Leica M3 / Summaron 28mm f5.6 / Ilford HP5+ 400 / IVED
















































































2017.03.01. 포항


Leica M3 / Orion-15 28mm f6.0 / Kodak 400TX / IVED




































































2017.01.28.

Hexar AF / Kodak 400TX / IVED























2017.01.22. 포항

Contax IIa / Carl Zeiss Tessar 50mm f3.5 / Kodak 400TX / IVED



Zeiss Opton Biogon 35mm f2.8 T




RF카메라를 사용하는 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화각은 단연 35미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 좁지도 넓지도 않은 화각 탓에 편안하게 두루두루 운용할 수 있는 35미리 렌즈는 거리 사진과 보도 사진 분야에서 널리 인기를 끌었고 각 메이커들은 저마다 우수한 35미리 렌즈의 개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하지만 20세기초 표준렌즈와 장초점 망원렌즈의 발전에 비해 광각렌즈의 발전은 상대적으로 더뎠고 오늘날까지도 성능을 인정받는 '제대로된' 35미리 렌즈의 출현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 


소형카메라의 선두주자이던 라이츠사는 1930년 Elmar 3.5cm를 출시했다. 당시 자이스이콘은 아직 Contax I 조차 발매하지 못했던 때였으니 라이츠의 엘마는 가장 빨리 등장한 35미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에 자존심이 상했던 것인지 Contax I이 출시되고 난 후에도 칼 자이즈는 35미리를 아예 건너 뛰어버리고 더 넓은 화각인 28미리 테사를 발매하며 그들의 기술력을 과시한다. 그리고 정작 35미리 화각은 Contax II가 발매되고 난 뒤인 1937년에 처음 출시하게되니 바로 칼 자이즈 예나 비오곤이었다. 비로소 '제대로 된' 35미리 렌즈가 사진계에 등장한 것이었다.



역사적인 첫번째 비오곤. Carl Zeiss Jena Biogon 35mm f2.8 (uncoated)


35미리 비오곤은 당시로선 대적할 상대가 없는 최고의 35미리 렌즈였다. 라이츠에 비해 한발 늦었던 만큼 성능상으로 엘마를 완전히 압도하고 있었는데 최대 개방값은 f2.8에 달했고 놀라운 해상도와 극도의 왜곡 억제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는 후옥의 크기가 극단적으로 크고 플렌지 백이 엄청나게 짧은(21미리 비오곤보다 더) 특유의 설계로 달성할 수 있었던 놀라운 성능이었다. Elmar 3.5cm의 최대개방값은 f3.5에 머물렀고 해상도는 사실상 열악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당시 비오곤과 엘마의 성능 격차가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2차대전 전에 생산되었다고 하여 전전형(pre war) 비오곤이라 불리게 되는 Carl Zeiss Jena Biogon 35mm f2.8은 종전 이후까지 생산이 지속되며 당대 최고의 35미리 렌즈라는 지위를 내려놓지 않았다. 후기에 들어서는 T코팅이 더해지는 개량이 이루어졌고 전쟁 기간 중에는 특이하게도 라이카 스크류 마운트용으로도 잠시 생산되었다. 



라이카 스크류 마운트용 35미리 비오곤. 


전쟁 중 드레스덴의 자이스이콘 공장이 폭격을 맞아 카메라 생산을 못하게 되자 예나의 렌즈 공장 역시 위기에 처한다. 렌즈를 만들어봐야 이를 장착할 카메라가 없는 것이었다. 이에 궁여지책으로 자이스이콘은 콘탁스용 렌즈들을 라이카용으로 제작하여 판매처를 뚫기로 한다. 종전 후 이같은 변종들은 더이상 생산되지 않았고 생산기간이 짧다보니 생산량도 상당히 적어 구하기는 물론 쉽지 않다. 하지만 구할 수만 있다면 마운트할 수 있는 바디가 제한적인 콘탁스용에 비해 훨씬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하지만 명성을 날리던 전전형 비오곤은 1950년, Contax IIa가 등장하면서 뜻밖의 문제에 맞딱드린다. 앞서 얘기한 커다란 후옥과 짧은 플렌지백 때문에 Contax II에 비해 소형화된 Contax IIa에 장착이 되질 않는다는 점이었다. 최고의 성능을 자랑하던 비오곤 35미리를 쓸 수 없다니, 이건 심각한 사안이었다. 물론 자이스이콘이 이같은 문제를 몰랐을리는 없고 바디의 소형화를 달성하기 위해 희생시켰을 가능성이 크다. 어쨌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원투수로 동독 칼 자이즈 예나에서 설계된 Biometar 35mm f2.8이 급히 투입되게 된다. 이때만 해도 영구적이고 완전한 분단이라 여겨지지 않았던 터라 동독과 서독의 교류는 유지되고 있었고 비오메타를 공급받을 수 있었다는 점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비오곤과 비오메타. 한 눈에 봐도 렌즈 후옥의 길이가 짧은 것을 알 수 있다.




 Zeiss Opton Biogon 35mm f2.8 T



하지만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될 수는 없었고 서독의 Zeiss Opton은 곧 새로운 비오곤을 출시하게 된다. 덕분에 위에서 언급한 비오메타 35미리는 1,614개만 생산되고 사라지게 되어 레어 아이템으로 등극하게 된다. Zeiss Opton Biogon 35mm f2.8은 이전의 비오곤과 구분하기 위해 전후형 비오곤으로 불리게 되는데 Contax IIa에 마운트 할 수 있기 위해 새롭게 설계된 것으로 후옥의 크기가 작아지고 길이가 짧아진 것이 특징이었다. 출시 초기부터 단종 때까지 코팅의 변화 외에는 구조적으로 크게 변하지 않은 50mm Sonnar와는 달리 흥미로운 변화라 할 수 있다. 아래의 그림을 통해 그 변화를 확인해보기로 하자.





최초의 비오곤은 조나 타입으로부터 파생되었는데 후옥이 크기가 전옥보다 큰 특유의 구조를 확인할 수 있다. 전전형 비오곤은 전쟁 후 두갈래로 나뉘어 발전하게 되는데 전쟁 후 소련에서 생산된 주피터-12 렌즈는 전전형 비오곤의 설계를 거의 그대로 이어받은 반면, 서독에서 생산된 전후형 비오곤은 앞서 언급했듯 Contax IIa에 사용되기 위해 후옥의 크기가 작아지고 길이도 짧아진다. 




마운트된 전후형 비오곤. 짧아졌다지만 필름면 가까이 상당히 들어와있음을 볼 수 있다.




전전형 비오곤(좌)과 전후형(우) 비오곤의 비교. 후옥의 길이가 짧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바로 이 점이 전후형 비오곤이 가지는 핸디캡이었다. 바디에 맞추기 위해 비오곤의 완벽한 설계에서 타협이 이루어졌다는 의심을 받게 된 것이다. 이때문에 전후형 비오곤은 콘탁스 마운트 비오곤 타입 35미리 렌즈들의 성능을 논할 때 주피터-12 보다도 한수 아래라는 평가를 받는 렌즈가 되고 말았다.


이것은 사실일까? 실제 전전형과 전후형 모두를 써본 유저들의 대체적인 평가는 해상도 만큼은 전전형이 탁월하다는 쪽이다. 전후형 비오곤의 짧고 작아진 후옥을 고려해 봤을 때 전전형에 비해 해상도와 왜곡 억제력이 다소 떨어졌을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 하지만 나는 아직 두 렌즈를 1:1로 비교한 결과를 보지 못해서 선뜻 수긍이 가지는 않는 것이 사실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과연 전후형의 해상도가 다소 떨어졌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확연한 차이가 날 것 같지는 않다. 엘마와 비오곤이 60:100이라면 전후형과 전전형은 90:100의 느낌은 아닐런지. 그리고 해상도 측면에서만 렌즈를 평가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더군다나 고해상도 렌즈와 고화소 이미지 센서들이 당연시된 요즘 시대에 올드 렌즈를 사용하면서 기대하는 요소는 뛰어난 해상도만은 아니란 점에서 전통적인 시각을 무조건 따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 전후형 비오곤에 대한 평가는 여러가지 개선점들을 고려하여 다시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Contax II에서 IIa로 이어지면서 이루어진 소형화, 그리고 디자인의 개선은 비오곤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루어졌다. 전전형 비오곤이 다소 투박한 디자인과 마감을 보여줬다면 전후형 비오곤은 훨씬 세련된 디자인과 컴팩트함을 이루어냈고 크롬 코팅의 품질도 개선되어 아름다운 광택을 자랑한다. 거기에다 개선된 T코팅이 적용되어 역광에서는 물론 칼라 필름 사용시에도 보다 안정적인 결과물을 보장해준다. 결국 종합적으로 고려해봤을 때 전후형이 보다 우수한 성능이라고 봄이 더 타당하지 않겠냐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 바닥이 그러하듯 객관적 성능과 정밀하게 측정된 수치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전설'은 분명 존재한다. 전전형 비오곤은 그런 면에서 전설의 대열에 오른 렌즈였지만 전후형 비오곤은 아쉽게도 그러질 못했다. 그렇게 된 이유로 두가지를 들고 싶다. 


① Biogon 21mm f4.5의 출현. 

비오곤 35미리의 출시 후 얼마지나지 않은 1954년 칼 자이즈는 21미리라는 놀라운 화각의 비오곤을 출시한다. 전에 없던 광활한 화각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충격적이었을 이 렌즈는 광학적 성능마저 뛰어났다. 비오곤하면 21미리가 먼저 떠오를 정도로 임팩트가 강한 렌즈의 등장으로 상대적으로 35미리 비오곤은 한마디로 묻히게 된다. 


② 라이츠의 약진

앞서 언급했듯 전전형 비오곤이 출시되던 당시 라이츠에서 내세울 수 있는 35미리 렌즈는 해상도 낮고 코팅도 적용되지 않고 개방값도 어두운 Elmar 뿐이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당시 비오곤의 성능은 라이츠를 포함한 여타 경쟁사들의 렌즈들을 압도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전전형 비오곤은 독보적인 위치를 확보하고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전후형 비오곤은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라이츠는 엘마에 비해 모든 면에서 성능이 향상된 Summaron 35mm를 출시하고 있었고 1958년에는 그야말로 신화가 된 렌즈, Summicron 35mm 1st, 일명 8매를 선보이게 된다. 이건 그야말로 두 회사의 35미리 경쟁에서 종지부를 찍어 버리는 일이었다. Contax IIa가 61년 단종되며 콘탁스 마운트 렌즈들 역시 같은 운명을 따르게 되면서 주미크론에 대항할 f2.0개방값의 비오곤은 결국 시장에 선보이지 못했다. 이처럼 전전형과는 달리 경쟁 상대를 압도하지 못했던 상대적 지위 역시 전후형 비오곤이 다소 박한 평가를 받게된 이유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이러쿵 저러쿵 하는 호사가들의 얘기를 별개로 치더라도 전후형 비오곤은 좋은 렌즈임에 틀림없다. 출시 당시 콘탁스용 교환렌즈 중 세번째로 비싼 가격이었고 깔끔한 외관 디자인과 고급스런 크롬 광택이 아름답고 비오곤 다운 컴팩트한 사이즈 역시 매력적이다. 초점링과 조리개링은 아주 부드럽게 작동되어 만지작 거리는 재미도 크다. 더군다나 상대적으로 구하기도 어려운 물건인 탓에 소유에 따른 만족도도 높은 렌즈라고 할 수 있다. 


21미리 비오곤과 50미리 조나라는 걸출한 두 렌즈 사이에 가려 콘탁스 마운트 렌즈들 중에서 그 이름은 드높지 않지만 역시 비오곤은 비오곤이다. 시중에 돌아다니는 물건이 많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바디가 제한적임에도 불구 여전히 만만치 않은 가격을 자랑하지만 Contax 유저들이 선택할 수 있는 35미리의 폭이 좁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 렌즈 역시 Must Have Item이다. 보이면 사야하는 렌즈다. 




Contax IIa / Zeiss Opton Biogon 35mm f2.8 T




AGFA APX1OO




AGFA APX1OO




AGFA APX1OO




AGFA APX1OO




AGFA APX1OO




AGFA APX1OO




ILFORD HP5 400




ILFORD HP5 400




KODAK 400TX




KODAK 400TX




KODAK 400TX




KODAK 400TX




KODAK 400TX




KODAK 400TX




KODAK 400TX




FUJIFILM C200




FUJIFILM C200




FUJIFILM C200




FUJIFILM C200




FUJIFILM C200




FUJIFILM C200




FUJIFILM C200




FUJIFILM C200




FUJIFILM C200





"21mm Biogon이 없었다면 Contax는 지금쯤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 것이다."


조금 극단적이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지난 리뷰에서도 언급했듯 Leica M3의 등장으로 후속기를 내놓지 못하고 단종된 자이스이콘의 콘탁스는 잊혀진 카메라가 되어 버렸다. 그럼에도 아직도 소수의 열렬한 추종자들은 콘탁스를 사랑하고 있으며 60년이 넘는 세월동안 아껴가며 사용된 적잖은 콘탁스들이 여전히 시중에 돌아다니고 있다. 바디 자체만 놓고 봤을 때 그리 매력적이지만은 않은 것도 사실인 콘탁스가 이 정도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데 큰 공헌을 한 렌즈가 있다. 바로 '20세기 최고의 광각 렌즈.'라고도 불리는 전설의 렌즈, Carl Zeiss Biogon 21mm f4.5 이다.




1954년, 자이스이콘은 당시로선 그야말로 초광각이던 90도 화각의 21미리 비오곤을 출시한다. 




당시 브로셔 표지에는 21미리 비오곤으로 촬영한 사진 위에 50미리 화각을 표시하여 21미리가 얼마나 넓은 화각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21미리가 발매됨으로써 콘탁스용 비오곤은 두 개가 되었다. 21mm f4.5와 35mm f2.8





21미리 비오곤은 총 8매의 렌즈로 구성되었으며 전면에 2개의 오목 유리를, 후면에 1개의 오목 유리를 놓은 대칭형 구조를 이루고 있는데, 백포커스가 극단적으로 짧아 렌즈의 후옥은 필름면 가까이 최대한 근접하여 장착된다. 이를 통해 최고 수준의 왜곡 억제력과 주변부까지 선명한 해상도를 자랑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비네팅 현상 역시 그리 두드러지지 않아 사용에 불편함을 초래하지 않았다. 개방값은 f4.5로 그리 밝은 편은 아니었으나 라이카 28mm 주마론이 f5.6, 칼 자이즈 28mm 테사가 무려 f8.0이었던걸 생각해보면 보다 넓은 화각을 가지고도 f4.5를 달성한 비오곤이 오히려 대단하다 여겨진다.    




21미리 비오곤의 렌즈부를 분해한 사진 




배럴 내부의 사진


배럴 내부에는 노란색이 보이는데 이는 황동의 색이 아니라 금 코팅의 색이다. 비오곤 배럴 내부에는 금이 코팅되어 있는데 이는 렌즈의 부드러운 움직임을 확보하고 정밀한 중심축 유지를 위한 것이었다. 다른 렌즈에도 이런 식으로 금을 코팅한 경우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칼 자이즈가 비오곤에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21미리 비오곤의 특이한 설계 중 하나. 렌즈 후옥에 '플레어 쉴드'가 부착되어 있다. 렌즈 전면이 아닌 바디 속에 들어가는 후면에도 후드가 있는 셈이다. 같은 구조로 설계된 Contarex용 21미리 비오곤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 있는데 이와 같은 '플레어 쉴드'는 칼 자이즈의 다른 렌즈들에서는 볼 수 없는 것으로 21미리 비오곤을 설계하며 아주 미세한 부분까지 신경쓴 그들의 집념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아답터를 이용해 라이카 바디에 마운트 하고자 할 때는 두 개의 나사를 풀어 '플레어 쉴드'를 제거해주면 된다. 제거했을 때 특별히 문제가 있다는 보고는 보지 못했다. 




가장 비싼 금속인 금까지 코팅해줄 정도로 정성을 다한 21미리 비오곤은 당시 콘탁스용으로 발매 중이던 교환렌즈들 중 가장 비싼 가격을 자랑했다. 1961년 10월 기준 가격표에 비오곤의 가격은 219달러로 나와있다. 현재 화폐 가치로 환산했을 때는 약 3,000달러 정도로 추정된다. 참고로 당시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93달러..ㅠㅠ 




콘탁스용 21미리 비오곤에 이어 자이스이콘의 SLR 라인업 Contarex용 21미리 비오곤도 발매되었다. SLR용으로 발매되었지만 구조적, 성능적으로 콘탁스용과 동일한 렌즈로 알려져 있다. 필름면 바로 앞까지 들어가는 특성상 미러업을 한 상태로 마운트해야 했고 그로 인해 프레이밍은 외장 파인더를 이용해야 했고 포커싱은 목측으로 해야하는 불편한 방식이었지만 디스타곤 같은 레트로 포커스 구조의 광각 렌즈가 개발 되지 않은 상태라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콘탁스용 비오곤의 설계를 해치지 않은 덕분에 오늘날에는 비교적 더 후기에 생산되어 코팅이나 재료의 개선이 이루어졌으리라 '예상되는' Contarex용 21미리 비오곤의 인기가 조금 더 높다. Contarex 사용자는 멸종 위기로 현재 시중에 돌아다니는 Contarex용 비오곤의 대부분은 M마운트로 개조되었거나 아답터를 포함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21미리 비오곤은 여기까지 이어진다. 바로 누구나 써보고 싶어한다는 핫셀블라드 SWC에 탑재된 38mm Biogon이다. SWC의 높은 인기를 가능케 해준 것 역시 칼 자이즈의 비오곤이었다.




SLR이 대세를 장악했던 시절. 비오곤은 간신히 명맥만을 유지해왔다. 미러 박스가 차지하고 있는 공간으로 인해 비오곤 타입의 렌즈는 설 자리가 좁았던 탓이다. 하지만 교세라의 콘탁스 G시리즈와 함께 G28과 G21이 비오곤이란 이름으로 부활했고, 최근에는 코시나에서 자이즈 브랜드로 비오곤 광각 렌즈들을 출시하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요즘의 비오곤들은 60년전 당시에 비해 설계 구조의 많은 변경이 이루어 지고 있는데 성능상의 개선은 물론 좋은 일이나 렌즈 매수가 증가하고 백포커스에 여유를 두는 설계로 인해 길이가 길어지고 있다는 점은 안타깝다.




Zeiss C-Biogon 21mm f4.5




미러리스나 D-RF카메라들이 출시되고 있는 오늘날에도 비오곤은 그리 사용하기 편한 렌즈는 아니다. 앞서 얘기했듯 비오곤 설계의 특징은 대칭형 구조와 극도로 짧은 백포커스라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가장 우수한 왜곡 억제력과 뛰어난 해상력, 그리고 컴팩트함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비오곤처럼 짧은 백포커스로 설계된 렌즈는 디지털 센서에서 비네팅과 마젠타 캐스트를 억제하기 어렵다. goliathus님의 리뷰에 의하면 A7에 마운트했을 때 의외로 마젠타 캐스트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하며 이태영님께서 Leica M-P typ240에 테스트했을 때는 약간의 마젠타 캐스트가 발생한다고 알려주셨다. 슈퍼 앵글론에 비해서는 적게 발생하는 편이라 한다. 이 같은 문제점은 이미지 센서의 발전과 함께 개선될 부분일 수도 있겠으나 최상의 광학적 성능만을 고려해 설계된 오리지날 비오곤의 제 짝은 역시 RF카메라, 그리고 필름이라 생각된다. 



14-24mm 같은 초광각 줌렌즈까지 흔해진 오늘날 21미리는 '초광각'이라는 수식어를 붙히기도 쑥스러운 수준의 화각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35미리와 50미리를 주로 사용하는 대부분의 RF카메라 유저들에게 여전히 21미리는 낯설다. 파인더의 특성상 RF카메라 유저들은 28미리 이하 광각으로 내려가는 일이 드물다. 최단 거리가 길어 강렬한 근경을 큼지막하게 넣기가 어렵고 외장 파인더를 사용해야 하는 불편함도 따른다. 

이 같은 이유로 꺼려하는 이가 많지만 막상 21미리 비오곤을 접해보면 그 자유로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렌즈는 바디에서 아주 조금 돌출되어 있을 정도로 컴팩트하며 조리개를 8.0 정도로만 조여줘도 거의 모든 구간에 초점이 맞는다. 오로지 외장 파인더만 들여다보며 신나게 셔터를 눌러주면 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135판 SWC가 되는 것이다. 아니지. 콘탁스용 비오곤이 선배이니 그렇게 불러주는 것은 예의가 아니겠다. 어쨌든 콘탁스용 비오곤을 쓴다는건 단순히 21미리 화각을 다룬다는 의미가 아니라 RF카메라에 최적의 설계를 이루어낸 다시 나올 수 없는 최고의 광각렌즈와 함께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앞에서 슈퍼 앵글론과 슈퍼 엘마를 논하지 말자. 더 좋은 렌즈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나오겠지만 그 시작은 바로 콘탁스용 비오곤이었으니까 말이다.




Carl Zeiss 21mm f4.5 Biogon for Contax (1954~1961년)















































2017.01.14. 포항


Contax IIa / 21mm f4.5 Biogon / Kodak 400TX / IVED


















































































2016.11.20. 부산

Leica M3 / Elmar-M 50mm f2.8 / Kodak 400TX



아버지께서 며칠간 위가 쓰리다 하셨다. 

금방 괜찮겠지 했던 것이 조금 길어져 결국 검사를 다시 받아봤고 결론은 위염. 얼마전 대학원 동창들끼리의 제주도 여행에서 술을 좀 드신 것이 원인인 모양이다. 어쨌든 자극적인 음식을 피하고 당분간 죽을 드시라고 한다. 그 얘기를 듣고 아들로서 어찌 가만히 있을 수가 있나. 아버지 드릴 전북죽을 사오겠다며 사뭇 비장하게 집을 나섰다. 




나름 단골인 전복집 주차장에 도착했다. 무료한 일요일, 하릴없이 뒹굴거리다가 더없이 훌륭한 핑계로 집을 나와서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니 지끈거리던 머리 속에 시원해진다.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혔다.




저멀리 보이는 곳이 구룡포항이다. 흐린 날이었지만 바다는 비교적 잔잔했고 덕분에 갈매기들은 바위 위에서 편안한 일요일을 보내고 있었다.




전복죽을 주문해두곤 다시 밖으로 나왔더니 막 어선 한 척이 들어와 멸치를 부려놓았다.




구룡포가 기장이나 남해처럼 멸치잡이로 유명한 항구는 아니지만 이처럼 간혹 멸치가 들어오기도 한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멸치보단 고등어나 꽁치가 흔해 구룡포에서는 아직도 멸치액젓 대신 고등어로 젓을 담궈서 김장을 하기도 한다고 전복죽집 사장님이 얘기해줬다. 그 맛이 사뭇 궁금했다.




박스마다 가득가득한 멸치들. 날씨가 추운 겨울이니 저 상태로 바로 회로 먹어도 될 것 같았다. 색색의 박스들은 엘마 렌즈의 색감 테스트용으로 딱. 




상차 작업하시는 동안 서성이며 계속 셔터를 눌렀음에도 별 반응들이 없으셨다. 행색을 봐도 그렇고 손에 든 골동품 같은 카메라 꼬락서니를 봐도 별 시덥잖은 녀석이라 여겨지셨나 보다. 어쨌든 나로서는 다행이다.




방파제 옆 작은 비닐 천막 안에선 어민들이 모여 참을 드시고 계셨다. 




참을 먹었으니 커피도 한 잔! 인근 다방에서 커피 배달이 왔다. 조금 불건전하게 변질된 경우가 있어서 그렇지 커피를 배달시켜 마시는 나라가 또 있을까? 다방 문화에 대한 심도있는 고찰과 작업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불쑥 들었다.




방파제 너머 테트라포드에는 언제나 낚시꾼들이 있다. 안테나처럼 솟아있는 그들의 낚시대.




고소한 냄새가 진동하는 따끈따끈한 전복죽을 받아들고 가게를 나섰다. 가게 주차장 간판 위에는 자기도 한번 찍어달라는 듯 갈매기 한 마리가 포즈를 잡고 있었다. 차에 오르기 전, 마지막 한 컷을 눌렀다. 




Elmar 3.5cm는 예상대로 상당히 낮은 채도와 콘트라스트의 결과를 보여줬다. 물빠진 듯한 밋밋한 색감을 보며 역시나 칼라 보다는 흑백에 어울리겠다며 단정지었던 것이 사실. 그렇게 첫 인상이 약했던 엘마로 찍은 이 칼라 사진들은 희한하게도 보면 볼수록 참 편안했다. 소박한 절집에서 정갈하고 간소한 공양 한 그릇 받아든 듯한 그런 느낌이랄까. 코팅의 꼼수도 없이 유리알 그 자체로 담아낸 빛이라 생각하니 왠지 마음까지 차분해졌다. 칼라로 다시 찍어볼 일은 없을거라 생각했었지만 날씨와 빛 상황이 다를 때는 또 어떤 느낌을 보여줄지 사뭇 궁금해진다. 흐릿하고 멍청한 색감으로 나올 수도 있고 기대이상으로 화사하고 세련된 색감으로 나올 수도 있을테고, 색온도가 훅 틀어지거나 완전히 엉뚱한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모두 괜찮다. 현행처럼 완벽하지 않기에 예상이 쉽지 않고 그래서 더 재미있는 것이 올드 렌즈의 매력이니까 말이다.



2016.12.04 포항


Leica M3 / Elmar 3.5cm F3.5 / Fujifilm C200 / IVED










2003.08.15. 서울 시청광장

Nikon F90X / ai-s 28mm f2.8 / Kodak TMY / I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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