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8.08 포항

죽도시장




2009.10.02 경북 예천

경상북도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에 있는 조선 말기의 전통주막 '삼강주막'


경북 지방 출신이 아니면 이름조차 생소할 듯한 예천군에 있는 삼강 주막은 1박 2일에 소개되면서 인기가 급상승하며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사실 마지막 남은 주막이라 하여 예전에 몇 차례 매체에 보도된 것을 보았으나 기사에서 본 주막은 허름하면서도 소탈한 그런 모습이 아닌 복원된 느낌이 너무 나는 그것이었기에 굳이 먼 걸음을 하고 싶진 않았었다.
 
그러던 중 어느날 뜬금없이 빌려온 내비게이션 사용에 서툰 어느 아저씨가 차를 세우고는 내비게이션을 쓸 줄 몰라 못찾아가겠다며 도움을 요청하여  어딜 가시느냐 했더니 바로 삼강주막을 가고자 하노라고 대답했었다. 그 분은 신문기사까지 스크랩해서 보여주었는데 그 날 이후 삼강주막을 나도 한번은 가봐야겠다고 생각이 들었고 추석을 앞둔 휴일 잠시 다녀올 짬을 낼 수 있었다.




삼강 주막이 위치한 삼강나루터. 낙동강과 그 지류인 내성천, 금천이 만나는 곳이라 삼강 나루터라 하고 이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없던 시절에는 이 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건너기 위해 많은 길손들이 머물 수 밖에 없는 목이다. 자연스레 주막이 생겨났을거고 유명세를 타게 되었을 것이다. 사실 어찌보면 오늘날의 고속도로 휴게소와도 같은 곳이었을텐데 주막이라고 하면 왠지 우악스럽게 팔뚝을 걷어 붙히고 대낮부터  술상앞에 앉아 막사발에 술잔을 벌컥벌컥 들이키며(입에선 술이 줄줄 새어 흘러야하고) '주모!! 여기 술 한병 더~!!' 를 외치는 수염 덥수룩한 사내들과 탐욕스러운면서도 간사해보이기도 하고 요염하기도 한 분위기로 눈웃음을 치는 주모가  살랑거리며 술을 들고 여기저기 왔다갔다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이 건물은 원래의 건물을 복원차 보수한 것인데 1900년대에 지어진 나름 100년이 넘은 건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134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흑백으로 찍어두니 그럴싸하지만 선명한 황토빛은 조금 어색하단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처마 밑의 액자는 복원전의 모습들. 초가지붕이 아닌 슬레트 지붕이 덮어져 있고 담배를 태우는 마지막 주모 유옥련 할머니의 모습도 담겨져 있다.




보부상 숙소라고 재현해둔 건물. 뭐 어쩔 수 없단 생각이 들지만 저 반듯한 목재와 깨끗하고 편편한 황토벽은 크게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궁궐이나 사찰이 아닌 이상 조선시대 서민들의 집, 특히나 주막에 저렇게 각진 반듯한 목재가 사용되었을리는 없다. 그리고 아무 곳에나 걸리는 저 현수막~ 비단 여기 뿐이 아니라 사찰이든 길거리든 넘쳐나는 현수막은 정말 시각 공해다.




뒤에 있는 컨테이너와 쇠파이프 구조물이 참 맘에 안들지만 어쨌거나 나름 주막의 풍경이 이러했지 않을까 싶다. 요즘 처럼 세상이 바쁘지도 않고 복잡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물건 팔러 다니는 보부상들이나 먼 길 가는 나그네들이 좋은 풍광을 만나 하루쯤 늦으면 어떠리오~하면서 강바람에 취해 술에 취해 유유자적한 시간을 보냈을 것도 같다. 여기 들른 사람들이 거의 다 촌두부나 부침개, 도토리묵 정도는 다들 맛보던데 가격은 싼 편이었다.




요건 예전에 있던 간이 화장실을 복원한거라는데 뭐 ㅎㅎㅎ  군대 있을 때 숙영지에 설치하던 간이 화장실같은 그런 방식이다. 남자들이야 까짓거 들어갈지 몰라도 여자들은 엄두도 못 낼 화장실. 하기야 조선시대에 조신한 여인네들이 주막에서 얼쩡거릴 일도 없었겠지만;




강둑에서 바라본 삼강 주막.

어쨌거나 삼강주막은 방송을 탄 이후 많은 관광객들이 몰리며 유명세를 타고 있다. 회룡포, 용문사와 함께 예천을 찾으면 들러볼만한 관광코스가 개발됨으로써 예천군 입장에서도 삼강 주막의 가치는 클 것이다. 하찮아 보이는 이런 곳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문화와 옛 것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는 방증이기도 하고 방송이 대중에 미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보여주는 것이다. 다만 예전과 달리 지나는 길손이 쉬어가는 주막이 아닌 일부러 들러야 하는 곳이 된 관광지로서 복원된 주막이 얼마나 자생력을 갖추고 오랫동안 사람들을 끌어모을 수 있을지는 더 오랫동안 지켜봐야 할 것이다. 단순히 촌두부 한 점에 막걸리 한 사발 마셔보고자 여기까지 찾을 사람들이 언제까지나 이렇게 북적이라는 보장은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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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1.01  서울 세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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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부산투어를 향하며 조금은 색다르게 가덕도를 가보기로 했다. 곧 연육교가 완성되면 더이상 섬이 아닌 섬이 되는 곳이기에 다리가 완공되기 전에 섬으로서의 가덕도를 보고 필름에 담고 싶었다. 위 사진의 선착장에서는 배에 차를 못 싣고 간댄다. 섬도 크지 않고 도로 사정도 좋지 않아 섬주민들의 차량 외에는 출입이 허가되지 않고 어차피 이 곳 선착장에서 탈 수 있는 배는 사람밖에 못 탄다. 한적한 여행을 기대하던 중이라 차는 없어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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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장의 낡은 쇼파와 부부. 그리고 그 들의 뒤 쪽에 지금 한창 공사중인 부산과 가덕도를 연결하는 연육교가 보인다. 이제 곧 가덕도는 섬이 아니라 육지가 된다. 섬사람들은 이제 부산으로 나오기 편해졌고 땅값은 오르고 있다. 전역 후 대학원 과정을 밟고 있는 가덕도가 고향인 학군단 동기 녀석에게 전화를 했더니 한다는 소리가 '니도 땅보러 가나?' 였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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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항 시간이 다가오고 배 안에는 몇몇의 관광객을 제외하곤 모두 주민들 같다. 뭍의 사람들은 배를 탄다는 재미도 느끼겠지만 그냥 시골마을의 버스와 다를게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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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안되는 뱃길을 왕복하는 운전기사도 아니고 뱃사공(?)도 어색하고.. 어쨌든 할아버지. 이 좁은 바다를 오가며 평생을 살아오셨겠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저 다리가 완공되어 차들이 달려들어가게 되면 그 때도 이 배를 탈 수 있을까. 배에서 내리며 살짝 여쭤볼까도 싶었는데 왁자지껄한 배 안 분위기에서 그런 심각한 질문은 너무나 뜬금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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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2.14 가덕도


흑백사진은 여기까지가 끝이다. 섬에 도착하고 나서 공사로 인해 난장판이 되어 있는 섬의 모습과 질퍽질퍽한 도로, 섬을 돌아다니는 셔틀버스 외에 가용한 이동수단은 거의 없었고 의욕적으로 섬에 상륙했을 때와는 달리 도저히 이곳저곳을 걸어 다니면서 찾아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보고 싶은 것들은 다리나 완공되면 편하게 다녀와야겠다. 혼자서 여유로운 일정이라면 모르겠으나 공사 중으로 어수선한 작은 섬에서 반나절 이상을 소모하고 싶진 않았다. 별 맛없던 회 한접시 먹고 바로 덜컹거리는 버스 타고 선착장으로 돌아와 배타고 부산으로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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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0 포항

일제시대에는 조선 10경에 들만큼 솔밭과 모래사장이 끝내줬다는 송도해수욕장의 퇴락한 마지막 모습들. 이미 해수욕장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지만 간혹 바다를 보고 싶을 땐 가장 금방 도착해서 바람을 쐴 수 있던 곳이었으나 이제 그마저도 어렵게 되었다. 모래사장을 뒤엎고 해안을 따라 일주도로가 건설 중에 있다. 송도해수욕장은 이제 예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p.s. 몇개월만의 현상, 그리고 몇 개월만의 스캔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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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07  해인사

여름휴가를 절에서 보내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 단순한 템플스테이일 수도 있고 짧은 휴식기간 동안 마음을 수양하고 영적인 재충전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지만 한국 불교(비단 불교만의 문제는 아니지만)에도 나와 내 가족의 안녕과 발전을 기원하는 것 보다 참선을 통한 자기 수양을 중요시하는 일반 신도들이 많이 늘었났으면 하는 바램이다.

문득 고 3때 나름의 스트레스 속에서 간절히 바랬던 산속 암자에서의 며칠간의 휴식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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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08  전북 고창

간만에 훈훈한 사진인가..

이제서야 스캔해서 포스팅하게 되니 좀 민망하긴 하다만 묵혀둔 필름의 이미지들을 다시금 바라보니 당장이라도 카메라를 들고 나서고 싶어진다. 이번 사진들은 지난 8월 가족들과 다녀온 여행에서 얻은 의외의 소득, 군산 새벽 도깨비 시장에서 촬영한 컷들. 역전 앞에 잠깐 서는 도깨비 시장이야 곳곳에 있는 편이지만 군산만큼 크게 서는 장은 본 적이 없다. 지난 2006년에 군산을 찾았을 때는 가보지 못했던 이 새벽시장을 촬영하고자 기어이 일어나 다녀왔다. 아무래도 상인들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도 있는 시장 촬영이라 시선을 끌기 쉬운 니콘은 두고 Hexar AF와 Contax T3만 달랑 들고서 역전앞을 누비며 마음껏 셔터를 눌렀고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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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화물역 앞에 공터에 들어서는 새벽 시장. 새벽 일찍 섰다가 사람과 차들의 왕래가 늘어나는 아침시간이 되면 자리를 피해 재빨리 사라지는 반짝 장이라 도깨비 시장이라고도 부른다. 도깨비 시장이란 말은 이런 새벽 반짝 시장이나 아님 남대문 시장이나 대구 교동 시장 처럼 온갖 수입물품을 비롯한 온갖 물건들을 파는 시장에 자주 붙는 별명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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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간에 역 앞 도로는 모두 상인들의 차지다. 도로 가득 상인들이 저마다 가지고 온 물건들을 펼쳐놓고 장보러 온 사람들로 분주하다. 내가 도착한 시간은 해가 막 뜬 직후로 도깨비 시장으로선 끝물에 가까워진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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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현재가 눈을 떼지 못하던 것 중 하나.. 싱싱한 게들. 바다와 인접한 군산답게 역시나 해산물들이 놀랄만큼 저렴하게 팔리고 있었다. 뭐 포항에 사는 입장에서 크게 다르게 느껴질 것은 아니었으나 게가 많이 잡히는 편은 아닌 동해안과 달리 서해안인 군산에서 게는 무척이나 저렴했다. 정말 한 소쿠리 사가서 쪄먹던 찌게를 끓여먹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게가 이렇게 싸니 어느 식당에 들어가도 게장이 밑반찬으로 푸짐하게 나왔던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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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에 장본 것들을 싣는 할아버지.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지 3달정도 밖에 지나지 않은 요즘 이미 2대의 자전거가 있음에도 어김없이 장비병에 빠져 날마다 새로운 자전거를 인터넷에서 알아보고 있으니..;; 어쩜 이 할아버지처럼 여유로운 페달질을 하며 장을 보러 다니고 마실다니는 자전거 생활이 더욱 바람직한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쨌거나 개인적으로 이 컷의 톤과 질감이 참 맘에 든다. Hexar AF는 고속셔터의 한계를 제외하곤 결과물 측면에서는 정말 물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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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일찍부터 장에 나와 구경도 하고 나무 그늘 주변에 앉아 노니는 할아버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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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세트에서 보일듯한 특이한 양식의 건물. 군산엔 일제시대 가옥이 많이 남아있는 곳으로도 유명한데 언젠가 한번 이에 대한 작업을 구룡포와 연계해 진행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 어쩌다 보니 남해안 일대에 산재한 임진왜란 당시 왜군들이 축성한 왜성(倭城)도 몇군데를 답사했었는데 이 것들을 주제로도 괜찮은 작업이 될 것같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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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골목길에 차가 들어오자 펼쳐놓은 물건들을 안으로 당기기에 바쁘다. 원칙적으로 도로 위의 난전으로 불법이겠지만 이런 시장에까지 까칠한 잣대를 들이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처럼 차들의 통행이 늘어날 때 쯤 되면 이미 상인들은 짐을 싸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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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되면 알아서 자리를 뜰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하나 더 있다. 일단 무력시위 중인 공무수행 차량. 매일 같이 반복되는 일상이기에 긴장감은 없다. 어차피 알아서 도깨비처럼 사라질 시장이다. 그래도 내일 새벽이면 또다시 장이 서고 또다시 불법도로 전용단속 차량이 올 것이고 그 쯤이면 또 장은 사라질 것이다.


2008. 08. 10 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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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05  나가사키

원폭 피해 현황과 처참한 사진자료들을 보고 있는 일본인들



한국하면 아직도 한국전쟁을 떠올리는 외국인이 많다는 뉴스를 가끔 접하곤 한다. 내심 못마땅해 불쾌해 하기도 하고 올림픽 / 월드컵을 거치면서 그러한 부정적 인식을 떨쳐버리고 있음을 뿌듯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들었을 때 떠오르는 첫번째 이미지는 원자폭탄이지 않을까? 워낙에 충격적이었던 인류가 만들어낸 가공할 무기의 첫 실전 사용이었기에 그들이 원치 않더라도 타인의 인식 속에서 잊혀지기는 어려울 것 같다.

태평양 전쟁의 막바지 이오지마, 오키나와 전투에서 심각한 손실율을 경험한 미군은 일본 본토 상륙시 예상되는 인명 피해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고, 이는 때마침 개발된 신무기를 써보고 싶은 유혹을 더욱 부채질 했다. 결국 1945년 8월 6일 원폭 투하용으로 특수 개조된 4발 중폭격기 B-29 '에놀라게이'호가 날아가 작고 길쭉한 모양 때문에 '리틀보이'란 별명을 붙은 원자폭탄을 히로시마에 투하했다. 그럼에도 일본의 항복이 없자 3일이 지난 8월 9일 통통한 형태라 '팻맨'이라 별명이 붙은 두번째 원자폭탄이 나가사키에 투하되었다. 이 가공할 무기는 수 만명의 목숨과 도시를 한 순간에 새까만 재로 만들어 버렸고 이에 굴복한 일본은 결국 항복하게 되었다.

그 두번째 원폭이 투하되었던 나가사키의 평화공원과 원폭기념관에는 원폭 투하 전 평화로운 시내의 전경부터 시작해 원폭 투하 직후의 폐허가 된 시내의 모습, 불에 타 쓰러진 시신들, 생존자들의 절규, 환자 구출 및 필사의 복구 활동, 원폭의 위력과 공포, 폐허 더미에서 가져온 잔해, 원폭이 폭발한 순간 멈춘 시계 등등을 전시하여 관람객들의 가슴을 교묘하게 무겁게 만든다. 마치 일본인들이 전쟁의 피해자인양. 정말 인류에게 더 이상의 전쟁은 없어야겠단 느낌이 들도록. 더군다나 더 가관인 것은 '미국 너네가 원폭을 떨어뜨려 우리만 죽은게 아니다. 봐라 괜한 외국인들도 이만큼이나 죽었다.'라고 얘기하는 듯한 외국인 원폭 피해 현황도 있는데 그 중에 한국인이 가장 많음은 뭐라 설명해야 할런지.

아직도 끊이지 않는 헌화와 편지들에는 No War, Peace, Love 등 좋은 말은 다 적혀있었다. 과연 원폭 폭발 중심지의 평화공원에서 일본인들은 무엇을 느끼고 있었을까. 그들은 그들이 저지른 잔인한 식민지배와 중일전쟁과정에서 일어난 남경대학살 등의 참상은 알고서 저리도 침통한 표정을 짖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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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05  후쿠오카

정말 일본'틱'했던 母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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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05  구마모토(熊本)

완전 역광이 되는 상황에서 보여준 비오곤의 플레어. 그다지 보기 싫지는 않다. 전용 후드를 구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구하기도 어렵고 있다해도 가격은 ㅎ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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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05  나가사키
메가네바시(めがね橋)를 찾아가던 중.

나가사키 시내를 가르는 청계천 만한 개울에는 오래된 홍예교들이 여럿 놓여있는데 더 인상적인 것은 다리 아래 개울에는 잉어들이 돌아다니고 있더라는 점이다. 사실 구마모토성의 해자에도 잉어들이 노닐고 있었는데 도심을 흐르는 개울도 관리가 잘되고 있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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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05  나가사키(長崎)

스와신사의 휴일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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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05  구마모토(熊本) / 나가사키(長崎)


우리나라에서는 60년대에 사라졌다는 전차가 아직도 유효한 교통수단으로 애용되고 있는 일본.

우리의 버스 중앙차선제와 비슷한 형태로 운용중인데 분명히 구식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전차를 아주 효율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일본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걷기엔 멀고 버스를 타기엔 가까운 정도의 거리를 타기에 제격. 요금은 구간 상관없이 100엔으로 저렴한 편이다. 더군다나 나가사키 역에서 1일 500엔 패스를 끊으면 하루종일 무제한으로 탈 수 있다. 5번만 타면 된다며 충분히 본전을 뽑으리라 자신했건만 6번을 타며 겨우 손익분기점을 넘었었다.

국내의 철도 매니아들이 전차를 타보기 위해서 일본까지 가는 경우도 많다고 하니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이 전차와 같은 감성적 사회 인프라도 관광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비단 이 전차뿐이 아니라 전통과 현대의 공존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는 일본의 사회 분위기는 근본없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우리나라의 모습과는 정말 대조되는 부러운 모습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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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05  나가사키(長崎)  메가네바시(めがね橋) 근처

일본 젊은이들의 머리 속에 들어가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2년이라는 시간을 군에서 보내야 하는 우리와 비교해볼 때 그들은 더욱 자유롭고 여유로운 자신의 인생설계와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적어도 이 두 사람의 앞날에 '군대를 가게 된다면..' 이라는 걱정은 없을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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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03  구마모토

가토 기요마사 동상 앞에서 기념 촬영하는 일본인들.

가토 기요마사는 임진왜란 당시 가장 인상적인 무장으로 우리에겐 악명이 드높았지만
일본에서는 전국시대는 물론 도요토미 사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의 무공으로 유명한 영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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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05. 02  후쿠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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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05. 03  구마모토

하카타역에서 1시간 반 정도 쓰바메 특급을 타고 도착한 구마모토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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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3  부산

천덕이의 새로운 카메라 Exakta를 갖고 노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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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3  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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