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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4.12  강구항

대게철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던 지난 4월의 강구항. 대게를 맛보려는 수많은 사람들로 발디딜틈 없었고 어디서 그렇게 많이 잡히는지 수없이 많은 게들이 수족관에 겹겹히 포개져 담겨있었고 그 중에 몇 마리는 또 우리 식구들의 뱃속으로~ ㅎㅎ 

기본적으로 흑백필름을 선호하지만 가져간 카메라에 칼라네가만이 들어가있을 땐 스캔 후에 많은 갈등의 순간들이 온다. 칼라로 포스팅할 것이냐 흑백 전환하여 그럴 것이냐. 오늘은 그냥 둘다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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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초반 사라진 전차 모형 앞의 애기들~ 일본에서는 아직도 유용하게 쓰이고 있는 전차와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드라마 세트장에서 밖에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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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먹던 시절의 현수막. 요즘은 건강과 영양을 위해 잡곡을 섞어 밥을 짓지만 저 당시엔 차원이 다른 이유에서 혼식을 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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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천연색이란 단어도 참 오랜만에 본다. 만화영화이던 그냥 영화이던 모든게 칼라는 당연한 것이 되었다. 흑백 텔레비젼은 사라졌지만 흑백 필름은 살아남은 것은 사진에서 만큼은 흑백만의 매력이 너무나 강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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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시대의 경성역(서울역). 다소 어설퍼 보이긴 하지만 어차피 촬영 후에 요즘은 다 CG처리하고 조명도 맞추고 하니 크게 무리 없을 것이다. KTX역사가 생긴 뒤 저 구 서울역 건물엔 들어가보지도 않았는데 새삼 고풍스럽던 그 역사가 운치있었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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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곳에 방치된 것 처럼 모여있던 군장비들. 뭐 지프부터 M110 8인치 자주포까지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전역후 만나게 되는 자주포는 정말 반갑다. 비록 우리 대대에서 운용하던 장비는 아니지만 영천 호국원에 전시되어 있는 M107 175mm자주포와 이 곳의 M110 8인치 자주포는 군단 포병에서만 운용되었던 것이라 우리 여단 예하 대대의 것이었을 확률이 매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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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어느 동네의 하숙집 앞 골목길의 모습인 듯. 서울에 상경하기 전만해도 하숙집이라면 왠지 낡은 개량한옥의 한 칸이 방을 차지하고 수북히 쌓아올린 전공 서적과 접이식 책상을 하나 놓고 전등갓 달린 스탠드를 켜고 공부를 할 것만 같았다. 물론 현실은 그만큼 운치있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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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시청 근처의 옛모습인 듯. 원구단은 고층 빌딩과 호텔에 둘러쌓여 일부러 찾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는다. 일제시대를 거치며 많은 문화유산이 훼손되고 위엄있는 모습은 초라하게 낮춰졌다.

09.05.09  합천

이런 곳 그닥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비교적 리얼하고 규모도 큰 편이라 생각보다 재미있는 곳이었다. 일제 시대부터 해방 직후 그리고 7-80년대 초반정도까지의 모습들이 믹스되어 있어 모델의 능력과 찍사의 연출에 따라 나름대로 재미있는 '사진놀이'가 가능할 듯 하며 어른들과 같이 간다면 당시의 재미있는 추억담들도 들을 수 있을만한 곳이다. 어설프기 그지 없고 고증에 문제는 없는지 의심스럽기 그지 없는 역사극세트장보다는 훨 나아 보인다. 흐린날 흑백 필름으로 진득하게 담아보는 것도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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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5.04 청산도

한참 농번기라 바쁜 모습들이었다. 따뜻한 햇살 아래 작은 섬은 평화로워 보였고 주민들 역시 카메라 들고 다니는 외지인에게 무척이나 호의적이었다. 전국에서 4군데가 선정된 슬로우 시티 중의 하나인 이곳 청산도는 한 1박 2일쯤 아무 생각없이 머물며 걷고 사진찍고 싶은 곳이었다.

p.s. 흑백 현상/인화를 배웠던 대학 시절의 추억과 열정을 떠올리니 이렇게 포토샵에서의 흑백 전환만으로 만들어지는 흑백사진을 포스팅한단 사실이 무척이나 어색하고 왠지모를 양심의 가책마저 느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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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04 청산도

모내기 준비가 한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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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부산투어를 향하며 조금은 색다르게 가덕도를 가보기로 했다. 곧 연육교가 완성되면 더이상 섬이 아닌 섬이 되는 곳이기에 다리가 완공되기 전에 섬으로서의 가덕도를 보고 필름에 담고 싶었다. 위 사진의 선착장에서는 배에 차를 못 싣고 간댄다. 섬도 크지 않고 도로 사정도 좋지 않아 섬주민들의 차량 외에는 출입이 허가되지 않고 어차피 이 곳 선착장에서 탈 수 있는 배는 사람밖에 못 탄다. 한적한 여행을 기대하던 중이라 차는 없어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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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장의 낡은 쇼파와 부부. 그리고 그 들의 뒤 쪽에 지금 한창 공사중인 부산과 가덕도를 연결하는 연육교가 보인다. 이제 곧 가덕도는 섬이 아니라 육지가 된다. 섬사람들은 이제 부산으로 나오기 편해졌고 땅값은 오르고 있다. 전역 후 대학원 과정을 밟고 있는 가덕도가 고향인 학군단 동기 녀석에게 전화를 했더니 한다는 소리가 '니도 땅보러 가나?' 였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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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항 시간이 다가오고 배 안에는 몇몇의 관광객을 제외하곤 모두 주민들 같다. 뭍의 사람들은 배를 탄다는 재미도 느끼겠지만 그냥 시골마을의 버스와 다를게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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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안되는 뱃길을 왕복하는 운전기사도 아니고 뱃사공(?)도 어색하고.. 어쨌든 할아버지. 이 좁은 바다를 오가며 평생을 살아오셨겠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저 다리가 완공되어 차들이 달려들어가게 되면 그 때도 이 배를 탈 수 있을까. 배에서 내리며 살짝 여쭤볼까도 싶었는데 왁자지껄한 배 안 분위기에서 그런 심각한 질문은 너무나 뜬금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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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2.14 가덕도


흑백사진은 여기까지가 끝이다. 섬에 도착하고 나서 공사로 인해 난장판이 되어 있는 섬의 모습과 질퍽질퍽한 도로, 섬을 돌아다니는 셔틀버스 외에 가용한 이동수단은 거의 없었고 의욕적으로 섬에 상륙했을 때와는 달리 도저히 이곳저곳을 걸어 다니면서 찾아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보고 싶은 것들은 다리나 완공되면 편하게 다녀와야겠다. 혼자서 여유로운 일정이라면 모르겠으나 공사 중으로 어수선한 작은 섬에서 반나절 이상을 소모하고 싶진 않았다. 별 맛없던 회 한접시 먹고 바로 덜컹거리는 버스 타고 선착장으로 돌아와 배타고 부산으로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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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0 포항

일제시대에는 조선 10경에 들만큼 솔밭과 모래사장이 끝내줬다는 송도해수욕장의 퇴락한 마지막 모습들. 이미 해수욕장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지만 간혹 바다를 보고 싶을 땐 가장 금방 도착해서 바람을 쐴 수 있던 곳이었으나 이제 그마저도 어렵게 되었다. 모래사장을 뒤엎고 해안을 따라 일주도로가 건설 중에 있다. 송도해수욕장은 이제 예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p.s. 몇개월만의 현상, 그리고 몇 개월만의 스캔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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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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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7

이틀전 양도해간 내 옛 애마 아반테를 끌고 포항으로 온 철호랑 이마트에 들러 핸드폰 홀더와 멀티 시거잭 등 자동차 용품을 충동적으로 지르고 들렀던 막창집. 형님 막창이었나;; 가게 이름이 잘..

여튼 오늘 도착한 폴라로이드 셀프 타이머를 보여주려 꺼냈다가 내친김에 필름도 장전해서 한 컷 찍었다가 일이 커졌다. 사장님을 비롯한 일하는 이모들이 신기한지 막 찍어달라고 난리를 치는 바람에 거절하지 못하고 두 장이나 찍어주고야 말았다. 사실 받는 사람 입장에선 별거 아닌 사진 한 장이지만 이게 한 장당 얼마인지 알면 그리 쉽게 달라고 할 수는 없을것인뎁 -_-; 그래두 Land350을 보고 신기해하고 부담없이 구수하게 손님을 대하는 사람들이라 거절할 순 없었다.
 
셔터를 누르고 필름을 잡아 당겨 뺀 뒤 30초가 지나 사진을 딱 떼어주니 감탄사를 다들 연발했다. ㅎㅎ 더군다나 흑백 폴라로이드는 본적이 없으니 더욱 신기해했다.  누구가에게 이제까지 찍어준 사진 중 가장 폭발적인 반응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호들갑을 떨며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니 나도 기분이 좋다. 이 처럼 사진 찍히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땡큐다.

그리고..사진값이라며 소주 한병은 서비스로 받았다. ㅋㅋ 막창 맛이 사실 거기서 거기다만 오늘같은 유쾌한 사람들이 일하는 가게를 만나니 다시 가고 싶어진다. 다른집들은 텅텅 비었던데 이 집은 사람이 바글바글대는 이유가 다 있는거였다. 그리고 비싸긴 하지만 폴라로이드는 참 매력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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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6 서울대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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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5  서울놀이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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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5 서울놀이공원


할아버지가 안계셔서 그런가 2000년도에 별 생각없이 찍었던 이 사진들을 다시 보니 왜일케 애뜻한건지 모르겠다. 이게 핏줄의 정인가 싶은것이..ㅠㅁㅠ    저렇게 눈에 넣어도 안아픈 손자 손녀들을 데리고 다니시던 할아버지 분들의 마음은 어떨까. 나 왜 이러지? 나이가 들었나 정말 이젠;;


Polaroid Land 350을 구입할 당시에는 흑백만 사용할 생각이었다. FP-3000B는 감도 3200이라 실내에서도 플래쉬 없이 촬영이 가능했고 입자감 역시 전혀 느껴지지 않아 이 필름만 있어도 실내외에서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러다 T600필름으로 찍은 칼라 사진들을 요근래 보다 보니 나도 갑자기 칼라 필름이 땡겼다; 노출 관용도가 좁아 실패확률이 높고 온도와 현상 시간도 흑백에 비해 엄격한 칼라 필름이라 걱정도 좀 됐지만 일단 한번은 겪여 보고자 필름부터 질러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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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후지 FP-100C(칼라) / FP-3000B(흑백) / 폴라로이드 690(칼라)


전용 필름은 씨가 마르고 감도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ND필터를 끼우거나 회로개조를 하는 등 변칙적으로 T600/700필름을 사용해야하는 SX-70이나 레인보우 모델들과 달리 랜드 오토매틱 모델들은 다행히 후지에서도 동일 규격의 필름이 생산되고 있다. 가격도 폴라로이드의 것이 2만3천원 정도인 것에 비해 종로의 삼성사에서는 만3천원 정도에 구할 수 있다. 후지의 것이 해상도나 색감이 더욱 훌륭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이었으나 단종되어 앞으로 구하기 어려울 폴라로이드의 690를 한번은 써보기로 하고 비싼 가격임에도 일단 같이 질러뒀다. 내가 사용중인 랜드 350은 고맙게도 후지 필름과도 궁합이 잘 맞아 필름이 걸리거나 하는 경우가 한번도 없었다 :)


오후의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거실에서 롤라이플렉스의 너덜해진 레자를 뜯어내고 오래된 본드 자국을 긁어준 후 다시 본드로 깨끗하게 접착을 하던 중 이 장면을 폴라로이드로 찍고 싶어졌다. 필름도 많이 사뒀겠다 한번 찍어보자 싶어 결국 한 팩을 과감이 뜯었다. 귀한 폴라로이드 690은 두고 쉽게 구할 수 있는 후지 FP-100C으로 선택. 랜드 350에 필름팩을 장전하는 일은 언제나 설렌다. 장당 1,300원이 넘는 가격도 가격이거니와 결과물의 불확실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한 컷 한 컷에도 무척이나 신중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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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스트레벨 파인더와 후드, UV필터를 빼고 스크린도 열어서 간만에 일광욕 중인 Rolleiflex와 그 장면이 찍힌 FP-100C 첫 컷. 아무래도 최단거리가 길어서 이런 장면의 촬영에는 제약이 많다. 포트레이트 킷과 셀프타이머 정도는 구해둬야겠다. 위 사진의 원본 스캔 본은 아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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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을 조금 잘못 끼워 살짝 뒷 판을 열었더니 빛이 조금 들어간 것이 보인다. 예상했던 것보다 색감이나 톤이 상당히 훌륭하다. 폴라로이드 사진이라고 하면 뭔가 좀 덜떨어진 해상도와 색감에만 익숙했지만 역시 랜드350이 만들어주는 결과물은 만족스럽다. 자동노출밖에 되지 않아 불만이던 노출 측정도 이제 어느정도 감이 잡혀서인지 적절한 노출 보정값을 찾아가며 실패율이 줄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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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역광의 상태인 내 방

일부러 이런 상황을 노리긴 했지만 역광 상황에서는 아무리 노출 보정을 해도 암부를 살릴만큼 적절한 노출을 맞추기는 어려울 것 같다. 랜드350의 매뉴얼에도 역광에선 촬영을 권하지 않는다고 되어 있다.. 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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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창밖 동네 풍경

실외 사진에선 실내 보다 노출 보정 폭을 조금 좁혀도 될 듯 하다. 의도보다 조금 노출이 오버된 것 같긴 하지만 상당히 깔끔한 색감과 톤이다. 맘에 듬. ㅎㅎ  렌즈의 왜곡은 어쩔 수 없는지 바로 앞의 아파트는 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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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해수욕장에서 현재

해질 무렵이라 감도 100의 FP-100C는 여지없이 흔들렸다. 칼라필름도 고감도로 나와준다면 좋을텐데 안타깝다. 400정도로만 나와줘도 좋을텐데. 후지에서 제발 좀 만들어달란 말이야; 이 사진은 촬영만 해두고 필름은 집에 와서 뽑았다. 겨울철의 실외온도에서는 적정현상이 되기 어렵기에 그대로 들고와 16도의 온도를 유지 중인 거실에서 뽑고 150초 정도를 기다린 끝에 얻었다.



일단 오늘 찍은 4장의 사진은 나름대로 만족스럽다. 오히려 흑백인 FP-3000B보다 노출관용도가 넓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노출에서도 크게 실패하지 않았다. 감도만 좀 높았더라면 정말 좋을텐데 아쉽다는; 이렇게 4장 달랑 찍었을 뿐인데 5천원이상이 그냥 날아갔고나 -_-;;  필름을 뽑을 때의 짜릿함이 너무 좋아 여기서 헤어나지 못하면 필름값 감당이 안될텐데 큰일이다.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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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곡의 골목길에서 만난 아이. 눈을 감았지만 그 때는 인화도 하지 않았던 이 사진이 왜 이렇게 맘에 드는지 모르겠다. 노출 완전 오버에 현상도 오버라 톤은 개판이지만 투박한 느낌이 나쁘지 않다. 흑백 사진을 처음 시작하던 초기의 네가티브들은 지금에 와서 새로운 가르침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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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지 다듬던 할머니. 난곡의 좁은 골목에서는 할머니, 아줌마들이 나와서 마주보고 앉아 얘기를 나누며 나물을 다듬거나 하는 모습들이 흔했다. 집안이 좁고 어두워서이기도 했겠지만 재개발의 열풍이 몰아치기 전 난곡은 사람사는 냄새가 풍기는 정가는 동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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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곡의 경사가 심한 골목길은 노인들이 다니기에 절대 편하지 않았고 겨울에 눈이라도 와서 얼어붙으면 자빠지기 딱 좋았다. 골목을 지나다보면 염화칼슘 보관하는 집이라고 써진 집들이 한 두군데씩 있었다. 지금와서 보니 이 사진을 찍은 것도 가상하다. 사실 이 때는 왜 난곡에서 못사는 사람들 사진을 찍어야하는지에 대한 개념정립이 안된채로 헤매이기만 했다. 도대체 왜 이런 사진들을 찍어야 하는지 왜 좋은 사진인지 이해가 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중학교 때 부터 사진을 찍어왔지만 대학교 1,2학년 때 난 내가 어떤 사진을 해야하는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작가도 아니고 내가 어떤 철학을 가지고 사진을 대해야한다고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지만 난 내 사진의 색깔을 찾고 싶었고 여러가지 시도를 해봤고 다양한 책들을 읽어 나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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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촉 사고. 세월의 힘이란 이런 것인가. 이런 장면 조차도 아련한 추억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흑백 사진으로 담은 스냅들은 꽤나 오래전의 장면을 보는듯한 착각을 준다. 그래도 21세기인 2000년도의 사진인데 무척이나 오래된 모습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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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름한 간판의 오락실. 오락실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모습이지만 안타깝게도 난 학창시절 오락실을 들락거린 기억이 별로 없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도 그다지 게임을 즐기는 편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학교 앞 문방구 등에서 많이들 사먹었다는 달고나, 뽑기 등과 더불어 보편적인 추억을 공유하지 못하는 것 중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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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난곡에서 만난 희망들. 이 아이들을 만나기 전만 해도 난곡이라면 우울한 달동네..이거 하나만 생각했었다. 뭔가 진지한 태도로 뭔가의 스토리를 담아야겠다는 강박관념이 강했던 난곡 촬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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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에 들러서 쭈볏쭈볏 기웃거리다 선생님에게 애들 사진 좀 찍어도 되겠냐고 물었을 때 허락해주시면서 했던 말이 있었다.

"사진 제목에 달동네 아이들. 이런 식으로 안하실거죠?"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나올 수 없는 당부를 하던 그 유치원 선생님에게서 자란 아이들은 복된 인연을 만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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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져간 필름도 하필 감도 100인 TMX라 노출도 안나오는 상황에 이 녀석들은 부지런히 카메라 앞에 모여든다. 여기저기서 '나도 찍어주세요~','저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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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이렇게 부대끼며 어울리고 장난칠 수 있는 친구들과 그러한 환경이 갖춰질 수 있다는 것은 아이들에게나 이 사회에게나 행복한 일이다. 어린 나이에 맞지 않게 학원에서 시달리고 노는 시간엔 놀이터가 아닌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요즘 아이들의 성격 형성은 분명 앞으로 큰 사회적 문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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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을 나서며...또 오라고 인사를 하던 아이들. 사진 인화해서 또 올게~ 라며 약속했지만 1년 후  내가 다시 찾았을 때 유치원은 벽돌 더미로 변해있었고 아이들은 어디로 갔는지 알길이 없었다. 재개발 결정이 내려진 후 난곡엔 빨간 스프레이로 '철거'란 두 글자가 휘갈겨졌고 분위기는 흉흉했다. 그렇게 난곡에 대한 재개발 결정이 내려지고 집들이 철거되기 시작하자 그제서야 나는 번쩍 드는 생각이 있었다. 왜 그동안 난곡에 대한 사진을 더 많이 찍어두지 않았는가 하는 후회와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바로 그거였다. 기록. 내게 있어 가장 가치있는 작업은 기록으로서의 사진이었다. 이 후 몇년간 나는 아마추어임에도 아마추어로서의 한계를 벗어넘고 싶었고 다큐 사진에 푹 빠져 많은 시도와 고민을 하게 되었는데 그 시발점이 된 사건이 바로 난곡의 재개발이었다. 난곡은 어쩌면 내 사진의 방향이 된 기록으로서의 가치를 알려주고 사라진 소중한 공간일지도 모른다.

2000.05.17 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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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5.14

날씨가 서서히 더워지기 시작하던 5월의 주말, 공원을 찾은 사람들의 여유
8년도 넘게 지난 이 필름들을 들여다보니 사람에게 다가가 사진을 찍어본 지가 언제인가 싶다. 현상, 노출도 엉망일 만큼 기교도 부족하던 시절의 사진들이지만 필름 속에 사람이 담겨있다는 이유로 새롭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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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4.16  덕수궁

지금은 경복궁, 창덕궁은 물론 남한산성을 비롯한 성곽유적에서도 이와 같은 행사가 흔해졌지만 내가 대학에 갓 입학했던 2000년에는 아마 덕수궁에서의 수문장 교대식이 처음이었던걸로 기억한다. 혹자들은 규모의 화려함과 절도의 엄격함도 없는 옷입고 줄지어 왔다갔다 하는 엉성한 병정놀이같은 코스프레라고도 혹평하지만 조금만 더 신경쓴다면 충분히 구경거리로 통할 수 있는 문화 상품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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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4.05 경복궁

서울에서 무척 좋아하던 곳 중 하나였던 경복궁. 식목일을 맞아 촬영을 갔을 때 만났던 어느 꼬마. 벌써 8년이 훨씬 지난 이 시점에서 보니 좀 촌스러워보이기도 하다만 같이 온 엄마와 함께 꽤나 멋 좀 부린 차림이었다. 한 컷 찍어도 되겠냐고 물어보자 엄마는 그러라고 했고 꼬마는 알아서 포즈를 취했었다.


p.s. 필름에 기스와 먼지가 꽤나 생겼는데 대학시절 필름들은 왠만하면 그 분위기 그대로 놔두고 스캔하고자 한다. 물론 ICE가 되지 않는 흑백필름이라 일일히 작업해서 없애기도 귀찮기도 하고..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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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07  해인사

여름휴가를 절에서 보내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 단순한 템플스테이일 수도 있고 짧은 휴식기간 동안 마음을 수양하고 영적인 재충전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지만 한국 불교(비단 불교만의 문제는 아니지만)에도 나와 내 가족의 안녕과 발전을 기원하는 것 보다 참선을 통한 자기 수양을 중요시하는 일반 신도들이 많이 늘었났으면 하는 바램이다.

문득 고 3때 나름의 스트레스 속에서 간절히 바랬던 산속 암자에서의 며칠간의 휴식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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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08  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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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07  부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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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08  전북 고창

간만에 훈훈한 사진인가..

이제서야 스캔해서 포스팅하게 되니 좀 민망하긴 하다만 묵혀둔 필름의 이미지들을 다시금 바라보니 당장이라도 카메라를 들고 나서고 싶어진다. 이번 사진들은 지난 8월 가족들과 다녀온 여행에서 얻은 의외의 소득, 군산 새벽 도깨비 시장에서 촬영한 컷들. 역전 앞에 잠깐 서는 도깨비 시장이야 곳곳에 있는 편이지만 군산만큼 크게 서는 장은 본 적이 없다. 지난 2006년에 군산을 찾았을 때는 가보지 못했던 이 새벽시장을 촬영하고자 기어이 일어나 다녀왔다. 아무래도 상인들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도 있는 시장 촬영이라 시선을 끌기 쉬운 니콘은 두고 Hexar AF와 Contax T3만 달랑 들고서 역전앞을 누비며 마음껏 셔터를 눌렀고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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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화물역 앞에 공터에 들어서는 새벽 시장. 새벽 일찍 섰다가 사람과 차들의 왕래가 늘어나는 아침시간이 되면 자리를 피해 재빨리 사라지는 반짝 장이라 도깨비 시장이라고도 부른다. 도깨비 시장이란 말은 이런 새벽 반짝 시장이나 아님 남대문 시장이나 대구 교동 시장 처럼 온갖 수입물품을 비롯한 온갖 물건들을 파는 시장에 자주 붙는 별명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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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간에 역 앞 도로는 모두 상인들의 차지다. 도로 가득 상인들이 저마다 가지고 온 물건들을 펼쳐놓고 장보러 온 사람들로 분주하다. 내가 도착한 시간은 해가 막 뜬 직후로 도깨비 시장으로선 끝물에 가까워진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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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현재가 눈을 떼지 못하던 것 중 하나.. 싱싱한 게들. 바다와 인접한 군산답게 역시나 해산물들이 놀랄만큼 저렴하게 팔리고 있었다. 뭐 포항에 사는 입장에서 크게 다르게 느껴질 것은 아니었으나 게가 많이 잡히는 편은 아닌 동해안과 달리 서해안인 군산에서 게는 무척이나 저렴했다. 정말 한 소쿠리 사가서 쪄먹던 찌게를 끓여먹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게가 이렇게 싸니 어느 식당에 들어가도 게장이 밑반찬으로 푸짐하게 나왔던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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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에 장본 것들을 싣는 할아버지.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지 3달정도 밖에 지나지 않은 요즘 이미 2대의 자전거가 있음에도 어김없이 장비병에 빠져 날마다 새로운 자전거를 인터넷에서 알아보고 있으니..;; 어쩜 이 할아버지처럼 여유로운 페달질을 하며 장을 보러 다니고 마실다니는 자전거 생활이 더욱 바람직한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쨌거나 개인적으로 이 컷의 톤과 질감이 참 맘에 든다. Hexar AF는 고속셔터의 한계를 제외하곤 결과물 측면에서는 정말 물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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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일찍부터 장에 나와 구경도 하고 나무 그늘 주변에 앉아 노니는 할아버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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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세트에서 보일듯한 특이한 양식의 건물. 군산엔 일제시대 가옥이 많이 남아있는 곳으로도 유명한데 언젠가 한번 이에 대한 작업을 구룡포와 연계해 진행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 어쩌다 보니 남해안 일대에 산재한 임진왜란 당시 왜군들이 축성한 왜성(倭城)도 몇군데를 답사했었는데 이 것들을 주제로도 괜찮은 작업이 될 것같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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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골목길에 차가 들어오자 펼쳐놓은 물건들을 안으로 당기기에 바쁘다. 원칙적으로 도로 위의 난전으로 불법이겠지만 이런 시장에까지 까칠한 잣대를 들이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처럼 차들의 통행이 늘어날 때 쯤 되면 이미 상인들은 짐을 싸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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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되면 알아서 자리를 뜰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하나 더 있다. 일단 무력시위 중인 공무수행 차량. 매일 같이 반복되는 일상이기에 긴장감은 없다. 어차피 알아서 도깨비처럼 사라질 시장이다. 그래도 내일 새벽이면 또다시 장이 서고 또다시 불법도로 전용단속 차량이 올 것이고 그 쯤이면 또 장은 사라질 것이다.


2008. 08. 10 군산








2008. 08  군산

군산화물역 앞에 서는 새벽 도깨비 시장 촬영을 위해 이동하던 중..

군산은 옛 흔적이 많이 남은 곳이라 작업해볼 소재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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