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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aroid Land 350

 그동안 꽤나 많은 카메라를 거쳐왔다만 폴라로이드는 처음이다. 우연찮게 갖게된 이 녀석은 랜드 350이란 모델로 알루미늄 바디, 가죽 스트랩, 거리에 따른 구도프레임 라인도 변환되는 Zeissikon RF파인더와 현상 시간을 간편하게 체크할 수 있는 전자식 타이머가 장착된 비교적 고급 라인업이다. 대체로 만족스럽지만 조리개우선만 가능한 측광방식은 꽤나 아쉽다. 완전 기계식 랜드 180같은 모델도 있지만 거의 3-4배에 달하는 가격을 지불하기엔 이 녀석이 담당할 역할은 어차피 '즐기는 사진놀이'일 뿐이기에 나름대로의 타협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국내에서 구입하느라 이베이에 비해 비싼 듯 하지만 엔딩시간 맞춰 꼭두새벽에 일어나 비딩하기도 싫고 기약없는 배송일정과 컨디션에 대한 불안감을 덜 수 있었으니 뭐. 덤으로 이 물건은 친절히 AAA사이즈 건전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꽤 세심하게 개조되어 있다. (사실 어려운 건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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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렌즈를 잡아당긴 모습. 슈퍼이콘타, 이솔레테 등 중형 폴딩을 사용하고 있기에 낯설지 않다. 자바라 상태는 좋은 편이고 쉽게 구멍이 나거나 닳을 것 같진 않다. 하필이면 금요일 오후에 지른 덕분에 택배를 받아내겠다는 일념으로 토요일에도 출근모드를 강행했다. 마음이 콩밭에 간 채로 수 시간을 버틴 끝에 받아든 이 녀석에게선 오래된 카메라에서 흔히 맡을 수 있는 곰팡이+먼지 냄세가 가시지 않았다. 더군다나 셀러의 설명과 달리 곳곳에 먼지와 기스 등등 그 사람 기준에선 A급이었을지언정 내 기준엔 B+급. 어쨌든 이런 녀석은 손수 닦아주는 재미도 쏠쏠하기에 총기수입하던 느낌을 되새기며 칫솔로 구석구석 먼지를 털어내고 Zippo 라이터기름으로 적셔가며 때를 닦아주고 나니 그런대로 볼만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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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석구석 살펴보면 미제 답게 아주 실용적인 설계와 디자인이란 느낌이 든다. 다시 말하면 독일제 처럼 절묘한 손맛과 공예품 같은 마무리는 보이지 않는다. 뭔가 싸구려 틱한 느낌의 플라스틱으로 된 빨간 셔터버튼의 릴리즈 감도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님. 다소 힘주어 눌러야 해 핸드 블러를 주의해야 할 듯 하다. 초점 조절은 목측식이 아님에도 초보자들을 배려한 듯한 거리별 그림이 그려져 있다. 폴라로이드 사에서도 고급형 모델들의 파인더는 독일제를 쓰고 싶었는지 Zeissikon의 것이 장착되어 있어 밝고 시원하다. 거리에 따라 변환되는 프레임 라인도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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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메라 뒷 커버에 붙어있는 전자식 타이머. 시간을 셋팅해두면 필름을 뽑음과 동시에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삐~' 소리가 울린다. 그 때 필름에서 사진을 떼어내면 된다. 필름이 카메라를 빠져나올 때 롤러가 현상액을 눌러 펴주며 현상이 시작되기에 온도와 현상시간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기에 무척 유용한 기능이 아닐 수 없다. 일반 폴라로이드에 비해 까다로운 부분이지만 이 것도 재미라면 재미? 노출 조절을 정확히 할 수 있는 기계식 모델에 사실 조금은 미련이 있었자만 이 전자식 타이머를 써보고 나니 역시 편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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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입 전 알아본 정보들에 따르면 노출 감을 익히는 것부터 시작해서 필름 뽑기부터 쉬운 것이 없다는 얘기들이 대세였다. 비싼 기계식 모델 외에 모두 자동노출만 가능한 라인업이기에 역광 및 실내에서 정상적인 노출잡기가 어렵고 쉽게 쓸 수 있는 후지에서 나오는 필름들은 걸리거나 찢어지거나 혹은 여러 장이 한꺼번에 딸려 나오기도 한다는 등 궁합이 맞지 않다길래 나 역시 뭐 살짝 긴장도 했었다. 한 팩 정도 시행착오라 치고 버린다는 각오를 했건만..첫 컷부터 성공했다. -_-;   운이 좋은 듯. ㅎㅎ  카메라 자체는 크게 비싸지 않지만 문제는 역시 살인적인 가격의 필름. 온라인 최저가보다 더 싼 종로 삼성사 기준으로도 흑백인 후지 FP-3000 1팩이 12,500원인지라 장당 1,250원이란 얘기인데. 노출 성향과 현상시간에 따른 결과물의 차이를 알아볼 수 있는 테스트를 하는데도 ㄷㄷㄷ 이다. 무조건 원샷원킬만이 살 길;

 마지막으로 선뜻 이 카메라를 선물해준 ○○에게 감사를~ ㅎㅎ (말못할 사정이 -_-;;)

 2008.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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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07  통영

뜨거운 햇살을 피해 조그만 그늘이라도 들어가 숨고 싶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아침 저녁으로 쌀쌀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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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07  통영

 지난 하계휴가 기간 중 들렀던 통영. 작년을 비롯해 통영에 몇차례 와봤지만 이 곳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전국에 바다를 인접한 산비탈에 들어선 달동네가 어디 이 곳 뿐이겠냐만 미대생들에 의해 꾸며진 알록달록한 벽화들의 향연은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이 곳을 찾게 해준다. 달동네하면 왠지 떠오를 수밖에 없는 편견인 남루함, 지친 일상, 희망이 보이지 않는 내일과 달리 이 소박하고도 발랄한 벽화들로 인해 낭만과 정을 느끼게 해준다면 너무 피상적이고 이기적인 생각일까.

 어쨌거나 동피랑 마을은 벽화들로 인해 꽤나 유명세를 타는 듯, 꽤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카메라를 들고 골목골목을 누비고 있었다. 이 그림을 그렸던 미대생들의 바램대로 이 벽화들이 이 곳의 사람들의 삶을 보다 밝고 유쾌하게 해줬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통영을 찾는 관광객의 증가에 분명 일조했단 사실이 아닐까 싶다.

2006년에 이어 얼마전 다시 찾았던 군산의 해망동에도 이와 비슷한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는데 시간상 해망동 골목을 돌아다니지는 못하고 그냥 돌아와 다소 아쉽다. 해망동의 사진과 비교해본다면 재미있는 작업이 될 수도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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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07

통영 중앙시장

다양한 해산물을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매력적인 곳. 작년 여름에는 이 곳에서 새우와 조개를 사다가 한산도에 들어가서 숯불에 구워먹으며 노닐었다만 올 휴가 땐 시간과 공간의 제약으로 어쩔 수 없었다는..

역광에서 보여준 Hexar AF의 톤이 상당히 묵직하다. 소문대로 Hexar AF의 Hexanon 35mm 2.0은 쓰면 쓸수록 끌리는 뭔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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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07  부산

영도대교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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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08  서울

오늘 하루 커피숍만 세군데를 전전하며 시간을 보냈다.

충무로 흑백포토랜드에 현상을 맡겨두고 '엘빈'

서울역 앞 투썸플레이스

을지로 스타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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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08  서울

비올 듯한 하늘과 습도 높은 날씨에 지친 할머니와 고양이

노파인더 캔디드샷이다 보니 흔들리고 초점조차 안맞음이 안타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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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08 서울

지난 2월 허무하게 불탄 이후 남대문.. 그저 할 말이 없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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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08  서울

동생이 지른 EOS-1D Mk.IIN 테스트차
2008. 07.  포항

요근래 주말 중 날씨가 양호했던 7월의 마지막 일요일. 가족들과 남산에서 간단히 트래킹을 즐기고 돌아와 바로 카메라를 챙겨들고 모교인 포항체절중학교로 향했다. 스포츠토토 후원 전국 유소년야구대회가 열리고 있는 기간이었고 그 다음주엔 남해안 일대를 3일간 둘러보고 서울로 올라갈 예정이라 시간은 이 날 하루 뿐이었다.

한동안 바깥 바람을 쐬지 못한 AF85mm1.8과 AF180mm2.8ED를 챙겨들고 운동장에 도착하니 광주 화정초등학교와 순천 남산초등학교의 경기가 진행 중이었다. 아마 야구는 7회까지로 알고 있었는데 초등학교 야구는 한 이닝이 더 짧은지 나름의 전광판(?)에는 6회까지만 표시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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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투 중인 광주 화정초등학교의 투수. 조금은 자신 없는 투구로 감독의 질책을 받고 마운드를 내려오긴 했지만 수차례 위기를 넘기며 순천 남산초등학교의 타선을 중반까지 무실점으로 묶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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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펜에서 몸을 푸는 화정초등학교의 투수. 직구를 던지기 위한 그립을 한 채 투구판을 밟고 와인드업하는 모습에서 어린 나이답지 않은 비장한 표정과 진지함이 인상적이었다. 이 녀석은 첫 번째 사진의 투수에 이어 등판해 경기 종료까지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체격 조건도 좋아보였고 또래의 초등학교 선수들이 쉽사리 배트를 갖다대기 어려운 묵직한 직구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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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락 아웃! 자기 스윙을 하지 못하고 엉거주춤 당하고만 남산초등학교 타자. 시종일관 화정초등학교의 마운드에 눌린 남산초등학교는 수비에서도 매끄럽지 못한 플레이로 주지 않아도 될 실점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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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치의 사인을 주시하고 있는 화정초등학교 포수. 마스크를 썼지만 어린 나이 답지 않은 예리한 눈빛이 인상적. 투수를 리드하고 수비 라인을 조율할 수 있어야하는 포수라는 직책에 어울려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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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아직은 엄마가 보살펴줘야하는 어린이 :)   무실점으로 한 이닝을 마치고 들어와 마스크와 보호구를 벗으며 타격 준비하는 아들의 땀을 닦아주는 엄마는 아들이 대견하기도 하겠지만 학원 스포츠계에서 만연한 뒷돈 문화 등을 떠올리면 이 부모의 고생길도 훤하다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음은 슬픈 현실이 아닐까. 상위 학교 진학 혹은 프로 입단에 올인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 오는 여러 병폐를 막으려면 결국 클럽 스포츠의 형태로 변화되어야 할텐데 그것도 말처럼 한 순간에 쉬이 바뀌기는 어렵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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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도 할 건 다 한다. 다음 타순의 타자는 대기 타석에서 상대 투수의 투구 동작에 호흡을 맞추며 배팅 연습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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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시타가 터지고 1루 주자는 2루로 내달린다. 조금 의아했던 것은 생각보다 안타나 득점이 이뤄져도 선수들의 표정은 큰 변화가 없었다는 점이다. 화이팅이나 패기보다는 군기가 바짝든 그런 딱딱한 모습은 보기에 다소 안쓰러워 보이기 조차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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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죽한 전라도 사투리로 열심히 진두지휘 중인 화정초등학교 감독님. 더위 때문인지 흥분한 탓인지 얼굴까지 시뻘개져가며 수비위치부터 투수의 볼배합까지 큰 소리로 지시하고 있었다. 사실 감독님의 표정과 흥분도를 봐서는 지고 있는 팀의 감독으로 보였지만 투수들의 호투와 타선의 집중력, 상대 실책을 이용하는 효율적인 주루 플레이로 이 날 화정초등학교는 남산초등학교에게 영봉패를 안겨주며 완승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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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의 공이 날아들기 직전의 순간. 한 점도 못내고 영봉패를 당했지만 순천 남산초등학교의 선수들은 벤치에서도 쉴새없이 화이팅을 외치며 최선을 다했다. 사진으로 보니 두 학교의 유니폼이 아마 선수단임을 감안하면 참 세련된 편이라는 생각이 든다. 봉황기나 청룡기 중계를 간혹 보면 정말 너무하다 싶은 유니폼들도 많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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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야구 특유의 맞으면 '땡강~'하는 소리가 나는 알루미늄 배트들. 야구 경기를 보는 내내 만화 '까치'가 생각났다. ㅎㅎ


중학교 때 우리 학교 야구부가 결승에 진출해서 영남대학교 운동장까지 가서 응원했던 이후 아마 야구를 직접 지켜 본 것은 처음이지 않나 싶었다. 애(?)들 답게 어이없는 실수도 하고 귀여운 플레이도 하길 기대하고 찾아간 자리였지만 생각보다 실력도 뛰어나고 너무 진지해서 원하던 컨셉의 사진을 얻지는 못한 것 같다. 이 날 만난 아이들 중 10년 뒤 이름을 휘날릴 친구가 나타날지 사뭇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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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07  부산 화교촌

국공내전에서 마우쩌둥에게 패한 국민당은 작은 섬 타이완으로 밀려났고 우리는 이들을 자유중국이라 부르며 형제와도 같은 우애를 가지고 대했었다. 반면 지금의 중국은 '중공'이라 부르며 6.25 당시 통일을 눈앞에 둔 상황에 인해전술로 밀고 내려와 분단을 고착시킨 원수의 나라로 냉전시대에 우리의 적국으로 분류되었었다.

그러나 중공의 군사력과 정치적 영향력, 무한한 시장 개척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던 국가들이 미국을 시작으로 차례차례 중공과 수교하기 시작했고 자유중국은 점차 국제적으로 고립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 하나의 중국을 천명하는 중공과 수교를 하면서 자유중국과는 국교를 단절할 수 밖에 없었고 우리도 이 같은 흐름에 따라 92년 8월에 명동에 있는 대사관까지 고스란히 넘겨주며 중국과 수교를 맺게 된다. 그 후 중공은 중국으로 자유중국은 대만으로 부르게 되었다.

대만인들은 다른 나라는 몰라도 한국이 이럴 줄은 몰랐다면 배신감과 서운함을 격렬하게 토로했지만 우리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 않을까. 어린 시절에 신문에서 본 명동의 자유중국대사관에서 '청천백일만지홍기'가 내려가던 날 모여든 대만인들이 눈물을 흘리는 사진은 그러한 자유중국이 처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 청천백일의 문양을 부산 화교촌에서 만났다. 국교 단절전에 만들어졌을 듯한 '부산화교소학'이라는 유치원정도로 보이는 건물의 현관에는 아직도 청천백일이 건재하다. 어쩌면 저 것도 곧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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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07  부산

인천의 화교촌, 일본 나가사키의 화교촌에 이은 세번째로 찾아본 부산의 화교촌.

이제까지 가본 화교촌들 중 가장 분위기가 애매했던 곳이다. 중국인들 뿐 아니라 거의 비슷한 수의 러시아인들도 거주하고 있는 곳이었는데 한자나 키릴어로 된 이국적인 간판만 놓고 본다면 다른 곳과 비슷한 느낌이지만 어둠침침한 러시아인들의 술집과 업소에서 일하는 아가씨들을 위한 드레스샵등 왠지 찝찝한 분위기였다. 이 곳에서 맛본 중국 음식은 여타 화교촌에 비해 오리지널에 가까운 형태인 듯 했지만 뭐 특별히 맛있는 편은 아닌 듯.

p.s. 흑백으로 찍은 컷들과 같이 업로드할 생각이었지만..현상도 아직 안한지라. 후 일을 기약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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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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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07  부산

마주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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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07  영도다리 부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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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05  나가사키

원폭 피해 현황과 처참한 사진자료들을 보고 있는 일본인들



한국하면 아직도 한국전쟁을 떠올리는 외국인이 많다는 뉴스를 가끔 접하곤 한다. 내심 못마땅해 불쾌해 하기도 하고 올림픽 / 월드컵을 거치면서 그러한 부정적 인식을 떨쳐버리고 있음을 뿌듯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들었을 때 떠오르는 첫번째 이미지는 원자폭탄이지 않을까? 워낙에 충격적이었던 인류가 만들어낸 가공할 무기의 첫 실전 사용이었기에 그들이 원치 않더라도 타인의 인식 속에서 잊혀지기는 어려울 것 같다.

태평양 전쟁의 막바지 이오지마, 오키나와 전투에서 심각한 손실율을 경험한 미군은 일본 본토 상륙시 예상되는 인명 피해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고, 이는 때마침 개발된 신무기를 써보고 싶은 유혹을 더욱 부채질 했다. 결국 1945년 8월 6일 원폭 투하용으로 특수 개조된 4발 중폭격기 B-29 '에놀라게이'호가 날아가 작고 길쭉한 모양 때문에 '리틀보이'란 별명을 붙은 원자폭탄을 히로시마에 투하했다. 그럼에도 일본의 항복이 없자 3일이 지난 8월 9일 통통한 형태라 '팻맨'이라 별명이 붙은 두번째 원자폭탄이 나가사키에 투하되었다. 이 가공할 무기는 수 만명의 목숨과 도시를 한 순간에 새까만 재로 만들어 버렸고 이에 굴복한 일본은 결국 항복하게 되었다.

그 두번째 원폭이 투하되었던 나가사키의 평화공원과 원폭기념관에는 원폭 투하 전 평화로운 시내의 전경부터 시작해 원폭 투하 직후의 폐허가 된 시내의 모습, 불에 타 쓰러진 시신들, 생존자들의 절규, 환자 구출 및 필사의 복구 활동, 원폭의 위력과 공포, 폐허 더미에서 가져온 잔해, 원폭이 폭발한 순간 멈춘 시계 등등을 전시하여 관람객들의 가슴을 교묘하게 무겁게 만든다. 마치 일본인들이 전쟁의 피해자인양. 정말 인류에게 더 이상의 전쟁은 없어야겠단 느낌이 들도록. 더군다나 더 가관인 것은 '미국 너네가 원폭을 떨어뜨려 우리만 죽은게 아니다. 봐라 괜한 외국인들도 이만큼이나 죽었다.'라고 얘기하는 듯한 외국인 원폭 피해 현황도 있는데 그 중에 한국인이 가장 많음은 뭐라 설명해야 할런지.

아직도 끊이지 않는 헌화와 편지들에는 No War, Peace, Love 등 좋은 말은 다 적혀있었다. 과연 원폭 폭발 중심지의 평화공원에서 일본인들은 무엇을 느끼고 있었을까. 그들은 그들이 저지른 잔인한 식민지배와 중일전쟁과정에서 일어난 남경대학살 등의 참상은 알고서 저리도 침통한 표정을 짖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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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05  후쿠오카 캐널시티

그다지 흥미있는 곳은 아니었지만 간 김에 한번 들리기라도 하자며 잠깐 스쳐지나간 후쿠오카 캐널시티.
써커스 중인 곡예단인데 일본인들도 그리 흥미로운 눈길로 쳐다보진 않는 듯 했다. 요즘 같은 시대에 곡예는 큰 호응을 얻지 못하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신기하고 자극적인 것들이 지천에 널려있으니 뭐.

노출이 나올거 같지 않아 거의 쓴 적 없는 T3의 내장플래쉬를 강제 발광시켜봤는데 나름 적절한 사용이 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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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03 

구룡포에 처음 들렸을 때 무척이나 인상적이던 일본식 가옥들이 요근래들어 매스컴을 타면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 된 듯하다. 일제시대에 동해안으로 이주한 일본 어부들이 모여살면서 형성된 마을이었다는데 어떤 연유에서였는지 지금까지 원형을 보존 중인 집들이 꽤 많다. 처음 구룡포에서 제대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던 작년 초에는 신사였던 것으로 보이는 건물도 남아있어서 무척이나 흥미롭게 구석구석 살펴보며 사진을 찍어뒀는데 언제 그랬는지 깨끗이 부숴져 있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야 포항시에는 일제시대 가옥을 보존 정비해서 관광 상품으로 개발하겠다는데, 지자체에서 하는 일치고 그다지 맘에 드는 일이 없는지라 과연 얼마나 망쳐놓을 지 걱정부터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 같은 사진찍는 사람들 입장에서 번듯한 탐방로가 조성되고 번쩍번쩍 빛나는 어울리지 않은 안내판이 들어서는 것만큼이나 더한 시각 공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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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03 

잡은 고기를 냉동하기 위해 배에 넣어둘 얼음이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하던 부둣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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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04  포항

바닷가에 차 세워두고 캔커피사러 제일 먼저 들르는 슈퍼 앞
흐린 날엔 퇴락한 송도해수욕장이 어울린다. 일대에 대한 재개발 소문이 나돌면서 좀더 부지런히 찾아야할 곳으로 부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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