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콘탁스 그거 정말 좋은 카메라였는데!"


내 목에 걸린 카메라를 보시자 마자 최민식 작가께서 내뱉으신 말씀이었다. 해운대에 있는 고은사진미술관에서 그의 전시회를 관람하고 나오던 길에 우연히 마침 전시회장에 나와계시던 작가를 마주쳤던 것. 연예인이라도 만난 듯 흥분하여 사인을 받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헤어졌었다. 그리고 얼마 후 작가께선 세상을 떠나셨으니 그 만남이 새삼 얼마나 소중한 기회였나 싶다. 최민식 작가께서도 한 눈에 알아보신 콘탁스. 작가께서는 주로 라이카와 니콘을 사용하셨던 걸로 알고 있는데 그에게도 콘탁스는 참 좋은 카메라로 각인되어 있었나보다. 







2006년 구입당시 처음 찍어줬던 증명사진. 칼라다이얼의 후기형에 T코팅 Carl Zeiss Jena 50mm 2.0




보석같은 카메라?


사실 흔히 얘기되는 '보석같은 카메라'라는 표현에 크게 공감해본 적은 없다. 어디서부터 유래된 말인지 모르지만 해외 사이트에서도 종종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 혹은 일본에서만 통용되는 표현만은 아닌듯 하다. 하지만 나는 보석보다는 오히려 딱 카메라다운, 오로지 기능을 위해 설계된 듯한 공학적 아름다움을 느꼈다. 물론 그렇다고 미국제 공산품 같은 투박하고 실용적인 느낌만의 디자인은 아니다. 





우아한 라이카와 달리 다부진 콘탁스는 왠지 흑백으로 다큐를 찍으면 저절로 기가 막힌 작품을 만들어줄 것만 같았다.



보석같은 카메라라는 별명은 아마도 콘탁스 곳곳의 아름다운 가공 처리 때문일 것이다. 2차대전 전의 Contax II에 비해 전쟁 후의 IIa는 크기가 작아지고 몇가지 소소한 기능의 개선이 이루어졌는데 특히 외관의 크롬처리와 소재의 고급스러움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수준이었다. 보통 오랜 전쟁을 겪고 난 후 공산품의 품질이 열악해지거나 원가절감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반해 다소 의외다.





아름다운 실버 크롬의 Contax IIa


콘탁스의 실버크롬은 갓 잡은 갈치 마냥 반짝이는 광택을 자랑하는데 이는 어느 다른 카메라 보다도 아름답게 반짝인다. 다만 코팅의 두께는 다소 얇은 듯하다. 일반적으로 실버크롬 바디들은 황동이 드러나기 쉽지 않은데 Contax IIa는 모서리 부분의 황동이 드러난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매끈하게 폴리싱 처리된 독특한 구조의 마운트


렌즈 마운트부와 다이얼 곳곳에는 바디의 크롬코팅과는 또 달리 매끈하게 폴리싱 처리되어 있어 단조로울 수 있는 표면에 포인트를 준다. 마치 스위스 시계의 브레이슬릿을 보는 듯한데 적지 않은 가공 비용이 들었음이 짐작된다. 콘탁스의 마운트는 특이하게도 내부는 50mm용, 외부는 광각과 망원용으로 이중 설계되어 있고 초점 조절 또한 렌즈를 직접 돌리거나 바디 전면의 톱니바퀴를 돌려서도 가능하다. 이렇게 설계한 까닭이야 있었겠지만 그냥 나사식으로 돌려끼우던 바르낙에 비해 생산 단가를 올리는데 큰 영향을 줬을 것 같다. 





양가죽 커버와 조금씩 솟아오른 '자이즈의 혹'


바디를 감싸고 있는 가죽은 모로코산 양가죽이라고 하는데 라이카의 볼커나이트도 당시로선 최첨단 소재였다고 하나 이쯤되면 사치스럽다고 여겨질 정도다. 오늘날에는 가죽을 붙힌 접착제 성분이 오래되면서 부풀어올라 '자이즈의 혹'을 만들어내는 문제가 있다. 심하지 않으면 '애교'로 넘어갈 수 있는 부분. 





라이카를 압도했던 성능적 우위


콘탁스는 동시대의 라이카의 바르낙보다 성능적으로 우월한 부분들이 많았다. 


일단 통채로 열리는 뒷덮개와 편리하게 끼울 수 있는 필름 스풀로 인해 바르낙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편리하고 빠른 필름 로딩이 가능했다. 또한 초점 맞춤과 구도 확인이 하나의 파인더에서 가능한 점과 하나의 다이얼에서 전 구간의 셔터스피드를 설정할 수 있다는 점도 초점 맞추고 구도 맞추고, 저속따로 고속따로 맞춰야하던 바르낙에 비해 훨씬 편리한 촬영을 가능케한 부분이었다. 바르낙 III모델 이전까지 1/500초가 한계였던 시기 콘탁스는 이미 1/1250초가 가능했다. (근데 굳이 1/1250초는 무슨 의미였을까..)


설계 부분을 보더라도 셔터스피드 다이얼, 셔터릴리즈 버튼, 필름 카운터, 필름 진행 와인더가 하나의 축에 붙어 있고 이는 필름타입 설정 다이얼이 있는 필름 되감기 놉과 좌우대칭을 이루며 간결한 상판 디자인을 구성하고 있다. 이것저것 다 따로 놀고 있는 바르낙의 상판과 비교되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필름 리와인딩 해제 버튼도 바닥에 깔끔하게 함몰되어 있어 깔끔하다. 또한 Contax II에 비해서는 짧아졌다지만 여전히 긴 Contax IIa의 기선장은 초점 맞춤의 정밀도에서도 바르낙에 비해 유리했다.





이처럼 통채로 열리는 뒷판으로 인해 좁은 홈을 통해 필름을 쑤셔넣는 수고따위 없이 현행 카메라처럼 쉽게 필름 장착이 가능했다.





필름 스풀에는 이같은 돌기가 있어 쉽고 빠르게 필름을 걸 수 있고 절대 풀리지 않는다. 다만 되감을 때 무리하게 잡아당겨서 필름이 뜯기면 그 조각이 간혹 셔터막으로 들어가 고장의 유발할 수도 있다고 하니 주의. 적당히 감다가 멈추면 그대로 뒷판을 열고 빼는 것이 좋다.





바르낙의 미학적인 아름다움은 둘째로 하고 콘탁스가 얼마나 간결하게 설계된 카메라인지 알수 있는 상판 배치



깡패의 등장. Leica M3, 그리고 화석이 되어버린 보석


하지만 바르낙에 대한 콘탁스의 비교 우위는 너무나도 유명한 라이카 M3 등장으로 한방에 역전되고 만다. M3는 뭐 어디에서도 얘기가 빠지지 않는 그야말로 RF카메라계의 깡패인 듯. 흔히 M3의 등장이 니콘과 캐논의 RF카메라 개발 의지를 꺾어 SLR로 집중하게 했다고 하는데 자이스이콘도 마찬가지가 아니었나 싶다.  


3개의 프레임을 지원하는 밝고 시원한 파인더는 그야말로 충격적이었고, 뒷판도 이제 열려 바르낙의 대표적 불편함을 해결했다. 돌려감기식이 아닌 레버식의 채용으로 빠른 필름 장전이 가능해졌고, 필름 카운터도 자동으로 리셋됐다. 새로운 베이요넷 M마운트의 채용과 오늘날도 인기가 식을 줄 모르는 1세대 주미크론 등의 우수한 렌즈 라인업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기가 막힌 조작감과 정숙한 셔터음, 우수한 내구성 등등 뭐 그야말로 역사적 명기의 등장이었던 것. 이후에 나온 모든 라이카 M라인업도 M3 앞에서는 한두가지씩 모자랄 정도니 말 다한 듯. 


이렇듯 완벽한 카메라의 등장 이후 자이스이콘은 기가 질렸는지 더이상 콘탁스의 후속기를 내놓지 못했고 Contarex와 같은 SLR 라인업을 출시하며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는가 했지만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자이스이콘 입장에서 대세는 이제 SLR이라고 판단했었던 걸수도 있지만 콘탁스의 후속이 더이상 나오지 않았다는 점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바르낙과 M사이. 콘탁스는 그렇게 어중간한 위치에서 결국 진화를 멈추고 말았다.



오늘날 가장 저렴하게 사용할 수 있는 오리지날 독일제 시스템 RF카메라로서의 가치


자이스이콘도 망하고 그렇게 잊혀진 옛 명기가 돼버린 콘탁스가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계기는 뭐니뭐니해도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라는 책의 출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중적 인지도의 상승이 꼭 인기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 오늘날에도 콘탁스 매니아는 소수일 뿐이다. RF카메라는 어쩌면 '라이카와 나머지들'로 분류할 수 있을 정도로 라이카 M의 위상이 워낙 독보적이라 콘탁스의 존재감은 약할 수 밖에 없고 막상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도 아니다. 보관 상태가 좋은 콘탁스는 드물고 50mm Sonnar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교환 렌즈들은 구경하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대체품이 많지도 않아 라이카 스크류 마운트나 M마운트와 달리 호환되는 렌즈나 바디도 거의 없다. 물론 전혀 없지는 않아서 코시나에서 발매했던 R2C/S와 니콘의 S2, SP같은 기종과 2차대전 승전의 전리품이 된 소련의 키에프를 들 수 있는데 문제는 얘네들도 그리 흔하지는 않다는 거다.





매니악한 기질의 코시나에서 내놓은 R2C. 미묘하게 다른 니콘 마운트용 R2S도 함께 발매됐다. 구입하진 않았지만 이런게 세상에 나온 것만으로도 당시 너무 고마워 했었다.





콘탁스 마운트를 기본으로 많은 부분을 개선해서 내놓았던 니콘의 S시리즈 중 S2 모델. 니콘의 F시리즈보다도 더 야무지고 솔직하게 생겼다. 남대문을 뻔질나게 다니던 대학교 시절 쇼윈도 넘어 처음 보았던 이 카메라가 콘탁스에 꽂히게 되는 신호탄이 되기도 했다.





마지막 대안은 소련에서 생산한 Contax II의 카피 Kiev. 50년대 초반까지의 생산제품들은 오리지널 Conatx II의 부품을 그대로 썼다고 해 품질 차이가 없어 가격대도 꽤 비싸게 거래되고 있지만 그 이후로 갈수록 품질이 조악해진다. 내가 써본 사진의 것은 플라스틱 부품이 많이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품질이 저하되기 시작한 후기형과 초기형의 사이 정도. 생각보다 렌즈의 성능은 괜찮았다. 키에프는 Contax II와 기본적으로 같은 카메라라 Contax II를 사용하는 이들이 서브로 쓰거나 부품용으로 가지고 있기도 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콘탁스의 가격은 번들 렌즈처럼 따라다니는 우수한 성능의 50미리 조나 렌즈를 포함해도 4~50만원대로 저렴하게 형성되어 있다. 이는 오히려 구입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유리하게도 작용하고 있다. 라이카는 언감생심 꿈도 못꿀 형편이라면 오리지널 독일제 RF카메라를 저렴하게 쓸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할까. 그것도 한 때 광학적, 성능적으로 라이카를 압도했던 자이스이콘의 카메라와 렌즈를 말이다. 





50미리를 애용한 것으로 유명한 브레송의 경우도 콘탁스용 50mm 1.5 Sonnar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아마도 그의 초창기 작업 시절에는 라이카의 빠른 50mm가 마땅치 않아서였을지도. 아쉽게도 그가 조나를 사용하는 사진은 찾지 못했다. 대부분 1세대 주미크론 침동식과 1.5 주마리트를 사용하고 있는 사진으로 보이는데 M마운트의 밝은 50mm 렌즈들이 나오면서부터 아답터를 사용해야하는 불편한 자이즈 렌즈는 더이상 많이 사용하지 않았던게 아닐까 추측된다.



- 해외 어느 포럼에서 본 댓글 -





브레송도 사용했다니 다시 보이는 50mm 1.5 Sonnar




Conatx를 쓴다면 꼭 가져봐야할 전설의 광각렌즈. 21mm 4.5 Biogon


앞서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독일제 RF라고 했는데 저렴하게 누릴 수 있는 재미는 딱 50미리까지! 

50미리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교환렌즈들은 모두다 구하기 어렵고 되팔기 어렵고 가격도 저렴하지 않은 금단의 영역들이다. 50mm중에서는 유독 엄청난 가격에 거래되는 50mm 3.5 Tessar라든지 35mm 2.8 Biogon, 35mm 3.5 Planar, 21mm 4.5 Biogon등이 대표적인 명렌즈들. 그 중에서 내가 소유한 것은 21미리 비오곤이다.





21mm 4.5 Biogon과 전용 파인더를 장착한 Contax IIa


전설도 많고 명기도 많은 카메라/렌즈의 세계에서도 20세기 최고의 광각 렌즈로 손꼽히는 21미리 비오곤이다. 렌즈 후면이 필름면 근처까지 바짝 붙는데 이로 인해 왜곡 억제력이 우수하다고 한다. 사실 개인적으로 렌즈의 광학적 성능을 논할 전문적 지식도 없고 대형 인화를 자주 하지도 않기에 성능을 체감할 경우가 많지는 않다. (자가 인화를 하던 시절이 그립다) 


하지만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칭송하는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란 '종교적 신념'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결과물 역시 언제나 만족스러웠다. 21미리라는 화각이 다소 부담스러울 때도 있지만 적응되자 의외로 편안하고 시원한 화각이었고, 스냅에서도 상당히 편리한 면이 있다. 깊은 심도로 인해 초점 맞춤에 신경을 덜 써도 되고 어차피 외장 파인더로 구도를 잡으니 어둠침침하고 흐린 카메라의 파인더도 상관이 없었다. 감도 400이상의 필름을 넣고 조리개 팍 조이고 돌아다니다 게눈 파인더로 보고 그냥 찰칵 하면 끝이다. 부드러운 조리개와 묵직하면서 적당한 저항이 느껴지는 초점링, 견고하게 체결되는 마운트의 조작감까지 단연 최고다. 




M의 그림자만 벗어난다면 행복하다.

콘탁스에 대해 혹평하는 이들은 대부분 M형 라이카를 사용하는 이들이다. M시리즈를 한번이라도 사용해본 사람이라면 아마 대부분 비슷할 것이다. 다행히 나는 라이카보다 콘탁스를 먼저 사용했기에 어둡고 작은 뷰파인더가 불편한지 몰랐고(안경을 안쓰기에 가능했을 수도..) 유럽식 셔터스피드 다이얼도 상관없었다. 자그마한 크기에 반짝이는 크롬 코팅이 더해진 멋진 디자인과 금속제 셔터막이 내주는 카랑카랑한 셔터소리와 양가죽의 부드러운 질감은 시각적 청각적 촉각적 만족을 주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라이카 M을 부러워하지 않고 충분히 만족하며 콘탁스를 휘두르고 다녔던 시절이 참 즐거웠고 60년이 다된 카메라를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감탄했었다. M과 비교하자면 부족한 부분이 없지 않은 카메라지만 패자와 약자에겐 어차피 조금은 너그러운 잣대를 들이대는게 보통의 심리가 아닐까. 기백만원을 주고 산 카메라가 아니기에 '그래 괜찮네.' 그렇게 만족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




꼽사리로 등장하는 나의 Leica M3. 한번은 써보고 죽자며 뒤늦게 들였는데 의외로 받아들고 나서 별 감흥이 없었다. 한 롤도 찍기 전에 'Elmar가 좋아봐야 Sonnar 보다 못할 거 같은데 그냥 다시 팔아버릴까?' 하며 고민을 꽤 하긴 했었다. 



그리고 Robert Capa


브레송이 라이카와 자연스레 연상되는 작가라면 콘탁스를 사용한 작가로는 단연 로버트 카파가 유명하다. 스페인 내전부터 2차세계대전과 베트남전쟁까지 전장을 주로 누빈 그에게는 콘탁스의 편리함이 크게 어필했던 것일까. 한 때 카파에 푹 빠져 그의 사진집을 주구장창 보던 시절도 있던 나였기에 그가 사용했던 카메라를 쓰고 싶었던 것은 당연한 수순이기도 했다. 





미군 공수부대 점프 수트를 입은 카파(왼쪽)와 조지 로저(오른쪽)가 얘기를 나누고 있는 사진. 카파의 목에 걸린 Contax II가 보인다. 그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가장 피해가 컸던 오마하 해변에서 목숨을 내놓고 귀중한 상륙작전 1진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겼고 그 날의 소중한 기록은 훗날 '라이언 일병 구하기' 상륙작전 씬을 연출하는데 결정적 자료가 되기도.. 





카파가 남긴 마지막 컷. 1차 베트남 전쟁 중이던 1954년 5월, 노르망디 해변에서도 무사했던 그의 운명이 다한 날이 찾아왔다. 정찰 부대를 따라 이동하던 카파는 사진을 찍기 위해 지프에서 내려 움직였고 얼마 뒤 지뢰를 밟고 쓰러졌다. 그의 손에는 Contax IIa와 Nikon S가 들려있었다고 한다.





카파의 사진집과 내 콘탁스들. 교환렌즈를 갈아끼우는 것이 귀찮다는 이유로 21mm Biogon용 바디를 하나 더 들여 2대가 되었다. 




역사상 다시 나올 수 없는 카메라에 대한 애도


역사는 승자만 기억한다고 하지만 패자의 비장한 이야기에 더 많은 관심이 가고 대중적으로 선호되지 않는 것을 소유할 때는 더 많은 애착이 가기 마련이다. SEIKO의 쿼츠 시계가 스위스 기계식 시계 산업을 고사 직전으로 몰아붙여 인하우스 무브먼트를 만들던 명가 여럿을 망하게 만들었 듯, 니콘, 캐논 등의 일본 메이커들로 인해 어차피 자이스이콘, 그리고 콘탁스의 명줄은 그리 길게 가지 못했을 것이다. 제품 원가와 생산 효율만을 앞세우지 않고 장인 정신을 쏟아내던 마지막 시대를 장식한 콘탁스라는 명기는 라이카와 굳이 비교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아름답고 훌륭한 카메라로 기억되기 충분하다.


내게 와있는 2대의 콘탁스는 서독 슈트르가르트에서 태어나 60년의 세월동안 전 세계 어디에서 누구의 손에서 무엇을 찍다가 나에게 왔을까? 오랜 세월에도 곱게 늙은 상태로 별 탈없이 내 손까지 온 얘들의 마지막 주인은 내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오버홀 해줘야 되는데..)



마무리 안되는 사용기는 몇몇 작례들을 늘어놓으며 슬쩍 끝내겠다. 2010년 이후 한동안 필름으로 사진을 안찍다보니 다 예전 사진;





2008.03 부산 / 21mm 4.5 Biogon / TMY





2008.03 부산 / 50mm 1.5 Sonnar / 400TX





2008.03 부산 / 21mm 4.5 Biogon / TMY





2008.03 부산 / 50mm 1.5 Sonnar / 400TX





2008.03 부산 / 21mm 4.5 Biogon / 400TX





2007.08 대구 / 50mm 2.0 Sonnar / Delta100





2007.10 경주 / 50mm 2.0 Sonnar / Agfa ULTRA100





2007.11 포항 / 50mm 2.0 Sonnar / Agfa ULTRA100





2007.12 포항 / 50mm 2.0 Sonnar / Reala



2007.12 포항 / 50mm 2.0 Sonnar / Reala





2007.12 포항 / 50mm 2.0 Sonnar / Reala





2007.12 포항 / 50mm 2.0 Sonnar / Reala





2007.12 포항 / 50mm 2.0 Sonnar / Reala





2007.12 포항 / 50mm 2.0 Sonnar / Reala





2008.02 청도 / 50mm 1.5 Sonnar / Autoauto200





2008.02 포항 / 21mm 4.5 Biogon / TMX





2008.03 포항 / 21mm 4.5 Biogon / 400TX





2008.05 나가사키 / 21mm 4.5 Biogon / 400TX





2008.05 나가사키 / 21mm 4.5 Biogon / 400TX





2008.05 구마모토 / 50mm 1.5 Sonnar / 400TX





2008.09 경주 / 21mm 4.5 Biogon / Agfa ULTRA100




2008.10 포항 / 21mm 4.5 Biogon / RVP





2010.03 포항 / 21mm 4.5 Biogon / TMX





2010.03 포항 / 21mm 4.5 Biogon / TMX





2015.07 경주 / 50mm 1.5 Sonnar / TMX





2015.07 경주 / 50mm 1.5 Sonnar / TMX





2009.01 포항 / 50mm 1.5 Sonnar / 400TX





2015.09 경주 / 21mm 4.5 Biogon / APX100





2015.09 경주 / 21mm 4.5 Biogon / APX100




-끝-


















롤라이35SE의 매뉴얼 中. 5.6V의 PX27을 사용한다. 다만 요즘은 이 규격의 배터리가 생산되지 않아 한동안 대안으로 쓰였던 것이 4LR43이다.





이게 4LR43인데 요즘은 이것마저 구하기가 쉽지 않다. 그 결과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LR44 3알 + LR43 1알을 조합하여 사용하는 것인데, LR44만 4개를 넣으면 좀 커서 한개만 조금 작은 LR43을 넣어주는 것. 





LR44는 웬만한 카메라에 대부분 들어가니 갖고 있었다만 LR43은 없어서 결국 별도로 주문.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배송비가 아까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롤라이35SE의 상판. 가운데 검정 플라스틱 부분이 배터리가 들어가는 곳이다. Rollei35나 Rollei35S, Rollei35T 모델들은 저 부분에 지침식 노출계창이 위치하나 전자식 노출계인 35SE/TE는 저렇게 생겼다. 디자인상의 호불호가 좀 갈리는 부분. 개인적으로는 과거에 썼던 Rollei 35S의 지침식 노출계는 반응이 좀 무뎌서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았다. 





배터리를 넣기 위해 후면부의 동그란 버튼을 화살표 방향으로 밀어주면 저렇게 톡 하고 배터리 홀더가 위로 나온다. 간만에 저걸 열려고 하니 튀어 나오질 않아 겨우 뺐는데 안에는 수명이 다되어 부풀어 오른 4LR43이 들어가 있었다. 더 많이 부풀어 올랐으면 쉽게 빼지도 못했을 듯. 오랫동안 안쓰는 카메라의 배터리는 꼭 빼두자.





원래 1개짜리의 PX27을 넣는 배터리 홀더지만 이처럼 LR44 3알과 LR43 1알을 포개어 넣으면 된다. 단, 이렇게만 하면 다소 높이가 낮고 둘레가 작아 배터리가 놀고 배터리 홀더가 카메라에 꽉 끼지 않아 쉽게 빠져버리는지라 배터리사이에 알루미늄 쿠킹호일을 1~2mm 정도 두께로 납작하게 접어서 끼워주고 테잎으로 돌돌 감아 둘레를 좀 늘려주면 된다.





배터리를 넣고 반셔터를 눌러 노출계 LED가 들어오는지 확인. 꽤 오래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정상적으로 불이 들어온다. 아래쪽 빨간불은 부족, 가운데 초록불이 들어오면 적정, 위쪽 빨간불은 오버. 이런 식으로 표시되는 간단한 방식이다. (니콘 FM2같은 방식) 여타의 모델들이 상판에 노출계창이 있어 파인더에 눈을 대지 않고 노출을 조절할 수 있는 반면, 35SE는 구도를 잡은채로 노출을 조절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상대적으로 노출계가 여전히 잘 살아있는 모델이 많다. 생산시기가 비교적 최근인 이유도 있고.



불은 들어오지만 노출이 제대로 맞는지가 중요하기에 Ricoh GR의 측정값과 비교를 해보니 거의 일치한다. 전반적으로 -1/3~-2/3스탑 정도 언더로 측정되는 것 같긴 한데 그 정도는 카메라의 측광 방식과 범위에 따른 차이로 봐도 무방할 듯. 원래 5.6V전원을 사용하는 노출계라 1.5V의 LR44 3개와 LR43 1개의 조합으로 만든 6V 전원으로 인해 다소의 노출 차이가 날 수도 있다고 하지만 네가티브 필름의 관용도를 생각하면 무시해도 될 수준. 



너무 오랜만에 배터리를 넣어본 녀석이라 그동안 노출계가 죽었으면 어쩌나 했는데 여전히 쌩쌩한 걸 보니 기분이 좋다. 완전 기계식 카메라라 노출계가 죽어도 외장 노출계를 사용하거나 다른 카메라의 측정값을 이용해도 되고, 요즘은 핸드폰에도 노출계 어플이 많아 그걸 이용해도 되지만 역시 자체 노출계를 사용할 수 있다는 건 롤라이35만 달랑 들고 나가도 된다는 편리함을 준다. 



배터리도 넣어줬겠다 조만간 다시 필름 넣고 찍어줘야겠음. 끝. 



Konica Hexar AF



사실상 필름으로 사진 찍기를 그만둔지 거의 5년째인데 다시금 필름으로 사진을 좀 찍고 싶어졌다. 느닷없이 Leica M7으로 회귀한 지인의 영향이 컸는데 어차피 놀고 있는 필름 카메라야 여러대라 필름만 사서 찍음 그만이긴 했다. 하지만 거의 2배씩 올라버린 필름 및 인화지 가격 등을 고려했을 때 예전처럼 '길거리 풀떼기' 따위를 찍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결국 남길만한 사진, 특히 집에서 딸내미 사진을 찍는데 한정적으로 필름을 사용할 요량이었다. 


이제 막 기어다니는 딸내미라 주로 실내에서 찍어야 하기에 렌즈의 최대 개방값은 밝아야했고 감도 400정도로도 사실 셔터스피드 확보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미러쇼크가 있는 SLR은 모두 탈락, 움직임이 많은 딸내미인지라 수동 초점 탈락, 노출계없는 클래식 기종들도 탈락. 결국 이런 조건을 충족하는 건 이 헥사 AF가 딱이었다. 최대개방값 2.0의 헥사논 35미리 렌즈에다 저소음, 저진동, AF속도도 빠르다. 반면 이 기종의 치명적인 단점은 최고 셔터스피드가 불과 1/250초밖에 안된다는 점인데, 지금의 용도인 실내 촬영에서는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는 것도 다행이었다. 그렇게 5년만의 첫 필름 사진은 헥사 AF로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나름 간만에 들뜬 마음으로 2CR5 배터리도 새로 갈아주고 필름을 넣고 몇 컷을 찍어봤다. 그런데 AF Lock이 자꾸 풀리는 것이 아닌가. 초점을 맞추고 구도를 잡고 셔터를 누르면 초점이 풀리며 다시 초점을 잡고 셔터가 릴리즈됐다. 처음엔 너무 오랜만이라 반셔터감을 잊었나 싶었는데 몇번을 찍어도 그랬다. (아까운 내 필름..)  아무래도 이상하다 싶어 검색해보니 헥사 AF에서 종종 발생하는 고질병이라고.. 피사체를 한가운데 놓고 찍는 일이 거의 없는지라 AF Lock이 안되면 사실상 사용 불가다. -_-;;  난감해하던차 다행히 어찌어찌 자가 수리 방법을 알게 되었고 참지 못하고 바로 뜯기 시작했다. 




1. 상판 분해


상판 분해를 위해서는 총 5개의 나사를 풀어줘야하는데 뒷면의 2개와 왼쪽의 1개는 겉으로 노출되어 있으니 문제없고 전면의 2개는 레자로 덮여져있어서 렌즈 옆쪽의 레자를 살짝 벗겨내어 노출시켜야한다. 나는 어디에 나사가 있는지 몰라서 꽤 많은 부분을 뜯어냈는데 사진처럼 렌즈 좌우측 부분을 조금만 벗겨내면 된다. 



작은 일자 드라이버 같은 걸로 틈새에 넣고 살짝 들어서 벗겨내준다. 끝부분을 잡고 잡아당기거나 하면 자칫 레자가 늘어가거나 할 수 있으므로 주의.




이쪽도 마찬가지. 레자 안에는 접착제가 발라져있어서 재조립할 때도 그냥 꾹꾹 눌러주면 다시 잘 붙는편이다. 만약 좀 뜨거나 하면 일명 돼지본드나 오공본드 같은 걸 얇게 펴 발라서 살짝 마르고 난 후 붙여주면 된다. 




나사 5개를 모두 푼 후, 상판을 살짝 들어주면 요렇게 열린다. 플래쉬 접점과 전선이 열결되어 있어 완전히 떼어지진 않는다. 셔터 부분 수리와는 상관없으므로 그냥 두고 진행.




2. 셔터부 기판 열기


상판을 열고 나면 셔터 부분 쪽에 초록색 기판이 보인다. 여기에도 3개의 나사가 있는데 요걸 다 풀어준다. 





나사 3개를 풀고 기판을 옆으로 젖혀주면 아래쪽에 셔터부 접점이 보인다.





3. 접점부 WD-40 분사


헥사 AF의 AF Lock 풀림 문제는 기계적 문제가 아닌 접점부의 전기적 접촉 불량이 원인인 경우가 많아 여기에다 WD-40을 뿌려주는 것만으로도 대부분 해결이 된다고 한다. 진짜 이렇게만 해도 되나 싶은 의문이 마구 들지만 일단 뿌려본다. 워낙 좁은 부위라 그냥 한번 칙~ 




4. 재조립


당연하지만 재조립은 분해의 역순..  주의할 점은 조리개 조절 다이얼과 맞물리는 흠을 잘 맞춰줘야 한다는 거. 처음에 아무 생각없이 조립했다가 조리개 조절이 안되서 뭔가 사고친줄 알고 약간 식겁을.. 그리고 이왕 상판 분해한 김에 파인더와 접안부 유리 청소도 해주면 좋다.



수리 결과는 100% 완치! 자꾸만 풀려버리던 AF Lock도 확실히 걸리고 반셔터 감도 나아진 것 같은 느낌이다. (아마 느낌 뿐이겠지만..) 이건 뭐 손재주 축에도 못드는 초단순 자기 수리 방법이지만 효과는 확실해서 상당히 만족스럽다. 이것도 수리점에 맡기면 돈 10만원은 우습게 받을텐데..



이제 아껴가면서 잘 찍어주기만 하면 된다. 끝.



2015.06.21




필름 시대는 이제 사실상 끝이 났다. 


필름으로 사진을 하기에는 엄청나게 올라버린 필름값과 현상비용, 그리고 웹 포스팅을 위한 스캔작업 소요시간 등 모든 것이 부담스러워졌다. 2009년 Nikon D700 구입 이후 나도 결국 필름에서 거의 손을 뗀 상태고 이제는 필름으로 다시 사진을 하고 싶은 생각이 크게 들지는 않는다. 



비교적 길게 이어온 나의 필름 사진 생활을 정리하게 만든 Nikon D700




물론 디지털 시대의 아쉬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흑백 필름의 풍부한 계조와 입자감은 디지털에서는 아직도 2% 부족하게 느껴짐을 어찌할 수가 없고, 벨비아나 E100VS의 쨍한 채도가 그리울 때도 많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우수한 이미지 퀄리티의 컴팩트 카메라가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필름 시절에는 '필름'이라는 ‘평등한’ 감광물질로 사진을 찍어왔기에 비싼 플래그쉽 카메라나 저가 똑딱이나 이미지 퀄리티 자체의 차이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래서 컴팩트 카메라로도 잘만 쓰면 얼마든지 훌륭한 사진을 얻을 수 있었고 수십년 된 클래식 카메라들도 당당히 현역에서 활약할 수 있었다. 


하지만 디지털 카메라는 이미지 센서의 크기가 천차만별이고 컴팩트 카메라에 들어가는 CCD는 이른바 풀프레임 사이즈의 면적에 비해 형편없이 작아 이 같은 물리적인 한계로 이미지 퀄리티와 심도 표현에서 있어 고가의 풀프레임 디지털 카메라를 절대 따라잡을 수가 없다. 똑딱이는 말그대로 똑딱이를 넘어서기 어려운, 그리고 카메라 가격과 출시년도에 따라 이미지 품질의 차이가 나버리는 불평등한 시대, 이게 가장 큰 불만이었다. 





필름 시절 내가 가방에 늘 넣어 가지고 다니던 Contax T3


담배갑만한 작은 크기에도 불구하고 칼자이즈 35미리 렌즈가 장착되어 우수한 해상도와 색감을 자랑했다. 필름 시절이 끝나면서 더 이상 T3를 쓰기 어려워진 나는 이렇게 언제나 휴대 가능하면서도 우수한 성능을 갖춘 컴팩트 카메라가 간절했다. 내가 원하는 조건은 대략 이러했다. 



 1. 최소한 APS-C 이상 크기의 이미지 센서를 채택할 것


 2. 35미리 이하 광각의 밝은 단렌즈


 3. 크기가 작고 침동식 렌즈로 어딘가 튀어나온 곳이 없을 것



GR이전에는 사실상 이 조건을 충족하는 디지털 컴팩트는 거의 없었다. APS-C를 채택한 라이카 X시리즈는 이 조건들을 대부분 충족했지만 일단 가격이 너무 비싸고, 후지 X100은 35mm2.0의 밝은 렌즈와 광학식 뷰파인더라는 절대적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휴대와는 거리가 멀었다. 파나소닉 LX시리즈나 소니 RX100시리즈 같은 인기많은 하이엔드 똑딱이들은 휴대성은 뛰어났지만 줌렌즈의 탑재로 촬영시 렌즈가 너무 튀어나왔고 결정적으로 센서가 작았다. 


이러던 차에 기존보다 훨씬 커진 APS-C 센서를 탑재하여 새롭게 출시된 리코 GR은 내 입장에선 기다려오던 바로 그것이었다. 나같이 이런 카메라를 기다렸던 사람들이 많았던 듯. 국내 출시와 함께 GR은 초기 물량이 금세 동날 정도로 인기가 높았고 나역시 휴가전에 물건을 받고자 각고의 노력을 거쳐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 후 GR은 365일 중 300일 이상은 가지고 다니는 나의 진정한 에버레디 카메라가 되었고 지인들에게 ‘내가 지금까지 산 카메라 중 만족도는 최고! 가격을 떠나 단 한 개의 카메라만 남겨야한다면 GR!' 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는 종합적인 성능이나 가격, 뽀다구를 떠나서 우수한 휴대성과 스냅에 특화되었다는 점에 큰 가치를 두어서인데, 그 세부적인 내용을 대략 얘기해본다면.



1. 항상 휴대할 수 있는 에버레디 카메라 - GR


앞서 얘기했듯 GR은 Contax T3를 대체할 디지털 컴팩트였다. 회사에 갈 때 들고 다니는 서류 가방에 늘 넣어 다녀야 하므로 휴대성은 무엇보다 중요한 우선 고려 요소였고 GR은 그 용도에 더할나위 없이 적합하다. 렌즈는 침동식이라 전원을 껐을 때 바디 속에 들어가 있고, 버튼과 다이얼 등 대부분의 조작계들도 돌출되어 있지 않다. 굳이 카메라 가방이 아니라 주머니에 넣기에도 크게 두껍지 않아 부담스럽지 않고, 튀어나온 부분이 없으니 갑자기 뺄 때도 걸리는 부분이 없다. 



군더더기 없는 GR의 디자인. 필름 시절부터 이어져오는 GR의 디자인이 잘 계승되었다.





2015.01 포항 - 출산을 앞두고 있던 와중에도 부담없이 들고간 GR로 틈틈히 그 날의 과정을 기록할 수 있었다.




2. APS-C 센서


앞서 휴대성을 최우선 조건으로 거론했지만 사실 휴대성만 놓고 따지자면 핸드폰 카메라가 최고가 아닐까. 하지만 휴대 가능하면서 이미지 품질이 우수해야 했고, 그래서 개인적으로 센서 크기의 하한선은 APS-C로 본다. 그 이하는 아무래도 계조가 좁을 수 밖에 없고(특히 하이라이트 부의 무너짐을 아주 싫어함) 심도 표현에서 자유롭지 못해 메인 카메라로서 역할을 하기에 무리가 있다. 이런 면에서 APS-C를 가진 GR은 휴대성과 이미지 품질면에서 두 마리 토끼를 잡아줬다. 



2013.08 방콕 - 화이트밸런스나 저조도 상황에서의 노이즈도 괜찮다.





2015.02 포항 - 28미리 광각이라도 근접 촬영에 최대 개방시 꽤 부드러운 배경흐림을 볼 수 있다. 역시 센서는 커야..




3. 철저히 스냅에 특화된 기능들


스냅 사진의 특성상 재빠른 가동 시간과 초점 맞춤, 편리한 조작 방식은 필수적인데 GR은 전원 ON시에 렌즈가 나오는 시간도 일반적인 똑딱이에 비해 상당히 빠른 편이며 노출보정 및 조리개 조절도 별도 메뉴 진입없이 직관적으로 한손으로 조절이 가능하다. AF속도는 똑딱이치고 나쁘지 않은 수준이지만 그 무엇보다 TAV모드와 스냅포커스 설정은 그먀말로 GR을 GR답게 만들어주는 최고의 기능이 아닐까 싶다. 이 두가지 기능을 처음 알게 됐을 때  ‘이건 진짜 스냅을 아는 사람이 만든 카메라다!’ 라는 생각이 절로 들 수 밖에 없었다.




2014.01 포항




스냅 특화 기능 1. TAV모드 


일반적인 TV / AV모드가 아닌 TAV모드는 조리개값과 셔터스피드를 설정하면 그 두 개의 값은 고정되고 ISO의 자동조절을 통해 노출값을 잡아주는 방식인데 이 기발한 모드에 적지않은 충격을 받았다. 펜탁스에서는 원래 있던 기능이라고 하던데 나는 처음 경험한 방식이라 '이런게 있었다니!' 하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스냅 촬영시에 보통 조리개를 조여서 심도를 확보하는 가초점 방식을 사용하는 스냅 작가들이 많은데 조리개 우선 모드에서는 갑작스런 상황에서 셔터스피드 확보가 안되어 흔들린 사진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TAV모드는 조리개와 셔터스피드 양쪽 모두를 설정가능하니 조리개 11 정도에 셔터스피드 1/125로 세팅해두면 갑작스런 상황에서도 심도와 셔터스피드 모두를 확보할 수 있다. 



2013.08 방콕




스냅 특화 기능 2 . 스냅포커스 설정


TAV모드와 함께 스냅 특화 기능의 주요 핵심이 스냅포커스 설정이다. 똑딱이들도 대부분 수동 초점 설정이 가능하지만 GR만큼 빠르게 적용할 수 있는 카메라는 많지 않다. 스냅포커스는 미리 일정한 거리로 포커스를 설정해두는 기능으로 거리를 미리 설정해두고 펑션버튼 하나로 AF와 MACRO, 스냅포커스를 오갈 수 있어 일반 AF로 촬영 중이더라도 바로 스냅포커스로 전환할 수 있다. APS-C센서는 과거 필름(혹은 풀프레임 디카)에 비해 같은 화각일 때 심도가 더 깊으며 GR의 18mm렌즈는 135기준 28mm 광각 렌즈으로 심도가 깊어 조리개를 11정도에 놓으면 1미터 안쪽부터 무한대까지 거의 초점이 맞는다. 이렇게 설정해두면 AF잡는 시간없이 바로 셔터를 누를 수 있어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 





2013.07 방콕





4. 주목받지 않는 카메라


GR은 그냥 똑딱이다. 누가 봐도 똑딱이고 자세히 보면 좀 비싸보이기도 한 라이카에 비해 자세히 봐도 싸보이게 생겼다. 리코라는데서 카메라가 나온다는 것도 사람들은 모른다. 마그네슘 합금 바디에 무광 검정으로 칠해진 카메라에는 그 흔한 마크도 없다. 오로지 GR이라는 모델명만 한쪽 구석에 있을 뿐. 웅장한 위용을 자랑하는 DSLR에 비해 GR을 들고 사진을 찍을 때는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다. 혹여 보더라도 별 시덥잖은 녀석이거니 하고 관심을 주지 않기에 스냅 촬영시 없어보이는 외관은 스펙으로 드러나지 않는 큰 장점이 되어준다. 



2014.01 통도사





2013.12 포항




5. 상시 표시가능한 전자식 수직수평계


별거 아니라면 아니지만 구도를 잡을 때 수평 수직에 은근히 예민한 편이라 이처럼 액정에 상시 표시가능한 수직수평계를 갖춘 GR은 구도 설정에 큰 도움이 된다. 특히 광각 렌즈의 특성상 정확한 수평이 맞춰지지 않았을 때 왜곡 현상이 두드러질 수 있어 GR의 상시 표시 가능 수평계는 개인적으로 ‘완소’ 기능이다.




2013.07 방콕





2013.08 포항




6. 일부 아쉬운 점들


위와 같은 이유들로 만족도가 정말 높은 카메라라 개인적으로는 거의 불만이 없는데 일부에서 단점으로 지적하는 것 중 몇 가지를 들어본다면 손떨림 방지 기능이 없다는 점, 틸트식 액정이 아니라는 점, 135기준 35mm 화각이 아니라는 점인데, 손떨림 방지 기능이 없음은 나 역시 조금은 아쉽지만 광각 렌즈라 1/30초 정도까지는 크게 주의하지 않아도 버틸만해서 문제가 되진 않는다. 



2013.12 포항




그리고 틸트식 액정을 채용했다면 단가도 올라갔을거고 (이미 충분히 비싼 똑딱이다) 조작 부가 많아져 바디의 견고함만 떨어졌을테고, 무엇보다 카메라 두께가 증가했을 게 뻔하다. 휴대성이 우선인 카메라에서 두께의 증가는 전혀 반갑지 않다. 다음 세대의 GR이 나오더라도 틸트식 액정은 채택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요즘의 LCD화면은 시야각이 넓어 로우앵글을 잡는데도 별 문제가 없다. 



2013.08 서울




그리고 35mm화각이 아니라는 점에 대해서는 개인 취향이라 별 달리 언급할 건 없지만 내 인생에 가장 사진을 많이 찍고 많이 발전했던 시절이라 추억하는 대학교 3,4학년 시절의 주력 렌즈가 니콘 28mm였다. 그만큼 나는 28mm화각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GR의 28mm는 만족스럽다. 



2014.04 서울




지난 2년간 GR은 내게는 핸드폰 만큼이나 평소에 들고 다니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에버레디 카메라가 되었다. 리뷰를 쓰려고 하던 것을 차일피일 몇차례 미루다가 이제야 써보지만 많은 사람들이 호평하는 GR의 이펙트 효과라든지 별 의미없는 기계적 성능 같은건 어차피 다른 리뷰에도 많아서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GR은 다소 매니악한 측면이 없지 않아 일반적으로 쉽게 남에게 권할 수 있는 카메라는 아니지만 설계 철학이 지향하는 바가 명확해 스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만한 카메라가 있을까 싶다. 스냅을 좋아한다면 꼭 사용해보길.



몇몇 샘플샷으로 리뷰는 마침. 


참. 모든 사진은 나름의 방식으로 보정이 되어 있으므로 판단은 각자가. 보정은 장난질이 아니라 암실에서 인화하듯 작품의 최종 마무리 단계라 생각하므로 JPEG무보정 리사이즈 같은 건 관심이 없다. 





2013.08 방콕






2013.08 포항







2014.11 포항






2014.11 장가계





2013.12 포항





2015.04 포항







그냥 딱 파커스러운 디자인의 만년필. Parker 21. 

Parker 21은 Parker 51의 대성공 이후 일종의 보급형으로 1948년에 첫 출시된 모델로 디자인상의 차이는 거의 없고 파커 51의 레진 계열에서 재질이 플라스틱으로 바뀌면서 좀 더 저렴해졌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단순하고 둥글둥글한 외형이 P-47 Thunderbolt를 보는 듯해 처음에는 참 멋없다 싶었는데 자꾸 보니 이 단순함에서 실용이 느껴진달까? 은근히 매력적이기도 하다. 





이게 2차대전 당시 강력한 엔진과 두터운 철판으로 인한 맷집을 자랑하며 활약한 P-47 썬더볼트. 단순무식한 디자인이 파커 21과 비슷한 느낌. 





뚜껑은 부드럽게 체결되지만, 워터맨처럼 딸깍하지도 않고 스크류식도 아니라 열리기 쉬워 주머니에 넣고 다니기는 상당히 부담스럽다.





몸통안에는 요렇게 생겼다. 펜촉을 잉크병에 담그고 뒷부분을 4차례 누르라고 되어있다. 요즘 만년필들의 스크류식에 비해 누를 때마다 들어간 잉크가 다시 새어나가서 제대로 들어가긴 하는지 못미덥지만 한번 넣고 나면 꽤 오래 쓰는걸로 봐서 잘 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 





펜촉은 노출된 면이 거의 없는 후드닙 타입. 뚜껑을 열어두고 오래있어도 잉크가 잘 마르지 않도록 하기 위함인데 요즘은 이런 형태의 만년필이 많지 않다. 닙 정보가 따로 표기되어 있지 않은데 적어도 M 이상일 것으로 예상될 만큼 글씨가 아주 굵다. 다이어리나 수첩에 작은 글씨를 쓰기는 거의 불가능하고 이면지 따위에 뭔가를 기안하며 휙휙 갈겨 쓰기에 좋다. 닙의 느낌은 상당히 둥글둥글하고 잉크 흐름도 줄줄줄 원활하다. 잉크 소모량도 상당히 많은 것 같다.





대략 악필이지만 시필샷. 저기 써진대로 잉크는 파커 큉크 블랙. 글씨가 워낙 굵다 보니 얘는 결재용으로만 사용 중인데 그 용도로는 딱 인듯 하다. 너무 굵어 마땅히 용도를 못찾던 중 얼마전부터 뜬금없이 날인대신 전 직원 서명으로 바꾸라는 지시가 내려져 신나게 사인해주는 중. 복사본 확인 차원에서라 사인용으로는 블루블랙 잉크로 하나 주문해뒀다.



Waterman Expert F Nib & Waterman Ink Serenity Blue



가장 오래쓰고 있는 만년필인 Waterman Expert. 그동안은 흔하디 흔한 Parker Quink Black만 넣고 써왔는데 워터맨엔 워터맨 잉크를 써보고 싶어 병잉크를 하나 들였다. 블루 계통에서 상당히 인기있는 Serenity Blue. 과거에 플로리다 블루로 나온 색인데 이름과 포장이 다소 바뀌었다. (예전게 더 이쁜듯)


어쨌든 칙칙한 Black과 Blueblack만 쓰다가 파란색을 넣어보니 산뜻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이다. 본격 필기용보다는 회사에서 흑백으로 출력된 서류에 첨삭하거나 하는 용도로 쓰면 좋을듯.



2015.01.23

웨지우드는 그 오랜 역사 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브랜드라 하나 정도는 갖고 싶었는데 그 유명한 Jasper 라인은 그 아름다움은 별개로 실사용하기에 그리 끌리지 않았다. 식기류의 파란색은 음식이 맛있게 보이지 않았고 찻잔만 구하고 있는 나에게 홍차의 수색을 보려면 찻잔은 일단 흰색이어야했다.





웨지우드의 대표작. Portland 항아리



그러나 이런 웨지우드 전통의 아이템과 달리 비교적 최근인 1964년에 첫 등장하여 베스트셀러로 등극한 라인업이 있으니 바로 와일드 스트로베리 시리즈다. 영국제 도자기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미 문양이 아닌 산딸기 그림을 그려넣은 이 라인업은 처음 봤을 때는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포트메리온이 떠올라 그다지 매력이 느껴지지 않았는데, 이게 보면 볼 수록 수수한 듯 하면서도 참 산뜻하고 예뻐 보이는 것이었다. 찻잔의 모양도 내가 선호하는 넓고 얕은 Peony Shape에 1st Quality의 Made in England. 일단 한 조만 사보기로 했고 3주가 거의 다되어 영국에서 도착했다.





Wild Strawberry라는 이름 처럼 잔과 소서에 산딸기 그림이 그려져 있다. Minton의 Haddon Hall 라인업 보다 그림은 전체적으로 듬성듬성한데 그래서 더 깔끔하고 마치 산뜻한 풀내음이 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림의 채도는 의도적인지 다소 낮은 편인데 그래서 덩쿨의 녹색과 산딸기의 빨강, 꽃의 분홍색이 그 어느 하나 튀지 않고 전체적으로 차분한 조화를 이룬다. 찻잔과 소서의 테두리는 22K 금으로 입혀져 조금이나마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물론 빅토리아 여왕 시절의 금장이 엄청나게 들어간 화려한 찻잔들에 비교할 수는 없지만 오히려 평소에 자주 쓰기엔 딱 적당해 보이고 부담스럽지 않아 좋다.  





위에서 바라본 모습. 잔에다 차를 따르면 찻속에 산딸기 풀을 담궈놓은 듯한 느낌도 든다. 손잡이의 홀딩감도 좋고 무게 배분, 촉감 등 모든 면에서 만족스럽다. 





찻잔의 아랫면에는 웨지우드의 마크가 스탬핑 되어 있고..





소서의 아랫면에서는 포틀랜드 항아리 그림의 웨지우드 마크가 스탬핑되어 있다. 찻잔과 소서의 웨지우드 마크 스탬핑이 다른데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제작 시기가 서로 다른 찻잔과 소서로 이루어진 한 조일 가능성도 있을 듯. 자세히 보면 산딸기 그림의 색감도 찻잔과 소서가 조금 다르다. 상태는 매우 훌륭하므로 굳이 신경안쓰기로. 패스~






마지막 사진은 차를 따라둔 것으로 올리고 싶었으나 사진을 찍어두질 않아서 그냥 이걸로 끝낸다. 사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찻잔인데 실물을 보니 한조를 더 사고 티포트와 플레이트까지 사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쏙 든다. 64년에 발매된 이후 지금까지 인기를 누리는 건 역시 유행을 타지 않는 깔끔함에 있지 않나 싶다. 



2015.03.22

단기간에 걸쳐 찻잔을 몇 개나 지르고 있는지 모르겠다만 어느 정도(?)만 갖추고 나면 그만해야지 다짐하며 그 '어느 정도'에 속하는 것들을 나름대로 정해보았다. 주로 영국제 찻 잔들에 관심이 갔고 非영국제로는 딱 두 종류가 소유욕을 자극했는데, 하나는 독일 마이센(Meissen)의 Blue Onion 라인이었고 또다른 하나는 러시아 로모노소프(Lomonosov) Cobalt Net 라인이었다. 




두 종류 모두 파란색을 주제로 한 자기라는 공통점이 있는 것으로 보아 내가 파란색을 참 좋아하긴 좋아한다 싶은데, 마이센의 블루 어니언은 조선에서도 만들어내던 중국의 청화 백자를 모방한 제품임에도 유럽에서 최초로 도자기 제작에 성공했다는 역사성을 가지고 있고 오늘날에도 명품으로서의 위치가 탄탄해 다소 수수해 보이는 외모에 비해 가격도 만만치 않다. 반면 로모노소프의 코발트 넷은 파란색 그물망에 금으로 그려진 문양들이 어우러져 러시아 황실에 공급되던 자기라는 명성에 걸맞는 상당히 화려한 외모를 자랑한다. 



성격상 어차피 언젠가는 살 것 같아 이왕 살거 빨리 사자는 합리적(?) 결론을 내렸다. 마이센은 좀 더 보는 안목이 키워지면 알아보기로 하고 먼저 로모노소프를 알아보니 국내 가격은 정말 깜짝 놀랄 수준이다. 복잡한 유통과정과 관세, 프리미엄 브랜드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싶은 수입사들의 의도가 더해졌는지 모르겠지만 비싸도 너무 비싸다. 한 눈에 확 들어오는 화려한 디자인에다 이렇게 비싼 가격까지 더해지니 그릇 좀 좋아하는 일부 사람들 사이에선 거의 선망의 대상이던데 나는 그렇게 비싼 비용을 지불할 생각은 없었다. 결국 이번에도 이베이를 공략하기 시작했는데 그다지 많은 물건이 올라와있지도 않을 뿐더러 짝퉁이 아닌가 의심될 정도로 가격대가 국내에 비해 저렴했고 그리 비싸지 않은 중고제품에도 입찰자가 많지 않다. 상대적으로 물건이 많은 영국의 로얄 알버트나 파라곤 제품들에는 항상 입찰자가 많은 것과는 너무 비교되는 의외의 모습이라 로모노소프 역시 국내에서 다소 과장된 이미지의 브랜드가 아닌가 살짝 의심도 된다.. 그래도 이쁜 건 사실이라 하나를 눈여겨 보며 입찰했고 별다른 경쟁없이 수월하게 한 조를 구할 수 있었다. 





Lomonosov - Cobalt Net Tulip Tea Cup


정상적으로 소서에 올려두고는 안찍고 뒤집어서 먼저 찍었다; 미국의 셀러에게서 구입한 물건인데 적어도 배송하기 전에 한 번은 씻을 법도 한데 먼지도 제법 많고 잔 내부에 얼룩 마저 있었다. 물론 셀러의 제품 설명에 90년대말에 구입한 후 거의 쓰지 않고 보관만 해온 것이라 먼지가 앉거나 때가 묻었을 수 있다고 적혀는 있었지만 그래도 그냥 그대로 보낼 줄이야;;; 셀러도 참 대단한 사람인 듯. 하여튼 개봉 후 회사 탕비실에 들고가 깨끗이 설거지 해줬더니 다행히 반짝반짝 상태가 좋다. 잔 아랫면의 스탬프는 요즘 나오는 제품들과 차이가 있다. 





모든 페인팅은 수작업으로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손잡이에도 신경써서 금으로 무늬를 그려뒀다. 잔과 소서의 화려한 그림과 튤립 형태의 디자인에 비해 손잡이의 디자인은 너무 평범하지 않나 싶은데 금으로 그린 무늬가 심심함을 조금이나마 덜어준다.





바로 위에서 바라본 모습. 잔의 크기는 일반적인 찻잔에 비해 큰 편으로 가득 채울시 약 250ml 정도 들어가며 보기 좋게 예쁘게 담으면 220ml 정도가 들어가는 수준이다. 티포트를 쓰지 않고 간단하게 티백을 우려 마시기에는 딱 좋은 사이즈. 다만 차를 그 정도 채우면 무게가 꽤 무거워지는데 역시 저 손잡이가 뭔가 좀 어설프다. 손가락이 편하지 않고 무게감이 많이 느껴지고 잔의 옆 면에 손가락이 닿아 뜨겁기도 하다. 드는 요령이 생기면 나아질 수도 있겠지만 저 손잡이는 조금만 더 신경을 써줬으면 어땠을까 싶다.





그래도 모든게 용서되는 화려한 코발트 넷과 금장의 조화. 소서 위에 잔을 올려두고 이렇게 바라보면 정말 아름답고 화려하다. 물론 눈을 부릅뜨고 구석구석 살펴 보면 완벽하지만은 않은데, 잔 아랫 부분이나 소서의 가장 자리 등의 금장 칠 폭이나 도료의 두께가 조금씩 편차가 있긴 있다. (공식 수입업체에서도 모든 무늬가 핸드 페인팅이라 완벽하지는 않을 수 있다고 언급을 해둠) 로얄 알버트도 그렇고 금으로 칠하는 부분은 원래 다소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이해하는게 좋을 듯 하다. 개인적으로 만년필도 그렇고 시계나 등등 대부분의 물건들에 '금장'을 상당히 싫어하는 편인데 이상하게 찻 잔은 금장 무늬가 들어간 것이 좋다. 





퇴근이 다소 늦었지만 새 찻잔이 왔으니 한 잔 안마실 수 없지. 티백으로 간단히 마시고 잘까 하다가 새로산 Twinings의 Earl Grey 틴을 개봉해서 우려냈다. 확실히 잔이 크니까 우려낸 다음 티포트로 옮겨서 2번 따라 마실 필요가 없어서 좋다. 어차피 2조를 산 것도 아니니 혼자 마실 때 주력 찻잔이 될 것 같다. 



대부분의 찻잔들이 사진보단 실물이 낫던데 솔직히 말하면 얘는 사진이 나은 것 같다. 실물이 예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워낙 사진발을 잘 받는 화려한 잔이다 보니 기대가 너무너무 컸던 것일 수도. ㅎㅎ  



2015.03.17

찻잔에 빠진 이후 날마다 ebay를 수시로 들락거리며 괜찮은 찻잔이 없나 살펴보는 요즘인데 얼마전에 덤볐다가 놓친 물건이 하나 있었다. 






바로 위 사진의 웨지우드의 찻잔 2조 세트였는데 'Queen of Hearts'라는 이름처럼 곳곳에 하트가 뿅뿅 박혀있다. 하트가 들어간 디자인인데도 너무 여성스럽기만 하거나 유치하지 않은 품위가 느껴졌고 컵과 소서의 무늬와 반복적인 패턴도 단정하면서도 화려한 매력이 있어서 이건 다소 출혈이 있더라도 한번 덤벼봐야겠다 싶어 Watch List에 올려두고 주시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경매가가 높지 않더니 꽤 많은 입찰자들이 나타났고 마감 10여분을 남겨두고는 거의 US $60까지 올라가기 시작했다. 배송료를 감안해도 아직은 괜찮은 가격이라 매복을 끝내고 기습적으로 끼어들었더니 금방 다시 가격이 올라가버린다. 한번 해보자 싶어 나도 다시 올려서 입찰하니 또 올라가고 한번 더 올리니 아예 덤빌 생각하지 말라는 듯 훌쩍 높은 금액을 던지는 녀석이 하나 있길래 추격을 포기해버렸다. 매복해 있다가 마지막에 등장한 나를 의식한 듯 그 입찰자는 계속 가격을 올려서 불렀고(나는 추격 의지를 이미 상실했는데 ㅋ) 결국 위 캡쳐에 있는 것 처럼 US $108.73에 가져갔다. (셀러는 나한테 고마워해야할 듯)




하여튼 그 후 국내 인터넷 최저가 기준으로는 약 7만원 전후로 새 것도 살 수 있는데 굳이 위험한 이베이에서 무리하여 사지 않은게 현명했다 스스로 위안을 삼으며 사려면 나중에 새거로 사야겠다 생각 하던 중, 어제밤에 내가 찻잔 구경하는 걸 보던 와이프가 친정에 이 찻잔이 있다는 게 아니가! 예전에 처제가 회사 다닐 때 부회장이 처제에게 선물해줬고, 처제는 그걸 다시 친정에 드렸다는 것. ㅎㄷㄷ 그리하야 오늘 처가에 갔다가 찬장에 들어있던 요놈들을 데리고 집에 왔다. (찻잔가지러 간 건 아님..) 처가 장농에서 카메라가 출토(?)되서 들고 왔다는 이야기나, 미래의 사위를 위해서 장인이 만년필을 미리 사뒀다가 줬다는 얘기나 등등 처가 득템 얘기들은 은근한 로망이었는데 나도 뜻밖의 이런 득템의 날이 오다니. 사실 찻잔에 관심없었다면 봐도 몰랐겠지만.





Wedgwood - Queen of Hearts Tea Cup


당연하겠지만 상태좋고 깨끗한 민트급. 이런게 처갓집에 있었다니! 깊이가 얕고 폭이 넓은 전형적인 홍찻잔의 형태고 화려한 문양이 있지만 잔 내부는 흰색이라 홍차의 수색을 감상하는데 지장이 없다. 홍찻잔의 내부는 무조건 흰색이어야 한다는 개인적 신념.





소서의 한 가운데도 하트가 딱~ 반복적인 패턴과 금장의 조화가 화려하고 아름답다. 





위에서 바라본 모습. 보기좋게 잔의 흰 색 부분까지 차를 채웠을 때 대략 130ml 정도 들어가는 일반적인 크기이다. 






잔의 아랫면. Wedgwood의 가장 최근 로고가 스탬핑되어있다. 마크로 렌즈가 없어서 더 크게는 못찍었다만 W 사이에 웨지우드의 대표작 포틀랜드 항아리 모양이 있다. 






마크로 렌즈가 없어서 크롭해서 올려본다. 요렇게 되어 있는데 꽤 귀여운 듯. 





대부분의 영국 도자기 업체들이 요즘 그러하듯 웨지우드도 이제 대부분 해외 공장 생산이다. 그래서 얘도 뒷 면에 ENGLAND 스탬핑은 보이지 않는다. (태국 생산) 퀄리티의 차이야 없다고 말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그래도 웨지우드의 이름을 생각한다면 다소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사진 다 찍고 Twinings의 Darjeeling을 우려서 마셨다. 3g에 300ml 우려냈더니 딱 2잔 나온다. 



어쨌든 뜻밖의 득템으로 횡재한 기분인 주말이다. 다음 주 중으로는 아마도 이베이에서 지른 Wedgwood의 대표 라인 Wild Strawberry 찻 잔도 하나 날아올텐데 안전하게 잘 날아오길. 



2015.03.15





퇴근 후 본가에 잠시 들러서 노닐다가 책상 위에 엄마 만년필이 놓여 있는 걸 발견했다. 요즘 만년필로 금강경 필사를 하신다더니 그 만년필인가보다. 어릴 적부터 봐왔던 만년필이었지만 그 때는 크게 관심이 없다가 오늘은 좀 유심히 살펴보며 이면지 위에 몇 자 휙휙 갈겨봤다. 파커답지 않게 글씨가 제법 가늘게 써지기에 닙을 봤더니 14K에 XF. 이정도면 분명 그 당시엔 제법 고가의 만년필이었으리란 예감이 든다. 


만지작 거리고 있으니 아버지께서 '그거 하나 더 있다.'고 하시며 서랍장을 뒤지기 시작하셨다. 어릴 적 부터 '엄마 만년필'로만 알고 봐왔던 만년필인데 이게 하나가 더 있었다니. 궁금 하다고 찾아 달라고 했더니 아버지도 오랫만에 생각이 나셨는지 서재 부터 안방 서랍장까지 뒤지시기 시작하셨다. 내려놓은 커피는 다 식어가는데 한참을 뒤지시더니 안방에서 가지고 나오신 주머니 안에는 부모님이 학창 시절에 쓰셨던 Parker, Pilot 같은 여러자루의 만년필이 들어있었고 그 중에 엄마 만년필과 똑같은 이 만년필이 한 자루 있었다.


바로 요 녀석.





구글을 통해 확인한 모델명 : Parker 75 - Stering Silver Cisele



좀 낡았다 뿐이지 요즘 나오는 파커 소네트 라인과 비슷한 음각 처리된 격자 무늬의 베럴과 늘씬한 라인은 세월이 지나도 무척 세련된 느낌이다. 거기에다 베럴과 뚜껑의 재질이 무려 은! 순은 다음으로 불순물이 적으면서 가공성을 갖춘 표준은(Stering Silver)을 사용한 모델이다. 예상대로 꽤 고가의 모델인 듯 구글에 자료도 엄청나게 나온다. 이베이를 뒤져보니 여전히 거래가 꽤 활발한데 제일 비싸게 올라온건 무려 $349. 상태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150~200사이에 형성된 매물들이 제일 많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가격대로 거래되고 있는데 4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정도 가격을 유지하고 있는걸 보면 70년대 말 당시 우리나라 소득수준과 물가수준을 논외로 하고라도 꽤 고가였을듯 하다. 이 비싼 만년필이 왜 똑같은 것으로 두 자루나 있냐고 여쭤봤더니 대학원 시절 두 분이 사귀실 때 똑같이 사서 사용하시던 즉, 요즘 말로하면 '커플 만년필'이었다고 한다. ㅎㅎ





요즘도 어지간해서는 EF Nib 이하로는 보기가 어려운데 얘는 무려 XF Nib이다. 부모님이 학생 시절이었던 때 산 것이라 깨알같은 노트 필기를 염두에 뒀던 것일까.




두 분의 추억이 어린 40년이 다되가는 만년필을 내가 가져와도 되나 싶었지만 호기심이 발동해 가져가서 써보겠다고 세척을 시작했다. 펜촉을 물에 담그니 검은 잉크가 끝도 없이 나온다. 보통 여러차례 컨버터로 물을 빨아줬다 빼내면 더이상 잉크가 안나오는데 얘는 정말 한참을 반복해야 했다. 이 잉크는 언제 마지막으로 들어갔던 잉크였을지도 궁금했고 멀쩡히 잘 써질까도 걱정됐다. 내가 그렇게 촉을 청소하는 동안 아버지는 베럴을 치약으로 닦아 광택을 살리고 계셨다. 






청소를 다 하고 제 짝인 Parker Quink Black을 넣어주고 집에 돌아와 로디아 노트에 오늘자 일기 비슷한 내 잡설을 또 몇자 끄적여봤다. 초반에는 오래 안써서 그런지 다소 흐름이 원활하지 않더니 금세 부드럽게 술술 잘 나온다. XF Nib이라 그런지 파커 치고는 글씨도 가늘게 써져서 이런 줄 노트나 다이어리에도 충분히 쓸만한 것이 맘에 든다.지금도 세 자루의 만년필을 쓰고 있지만 이 파커 75는 메인으로 쓰기에도 손색이 없는 디자인과 필기감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나로서는 알 수 없는 두 분의 젊은 시절 아름다운 추억과 이야기가 깃들어있을 소중한 만년필이라 더욱 가치가 느껴지는 이 만년필. 나도 오래오래 간직해야겠다..



p.s. 너무 간만의 포스팅이라 글도 안써진다. 



2015.03.10. 





Nib 부분 접사샷 추가.













※ 작년 8월쯤에 써두고 저장해둔 걸 이제서야 발견하고 포스팅.. 



 광복절 기념으로 읽을 만한 책이 없을까하고 알아보던 중 눈에 띈 책이 있었다. 바로 이연석이 쓴 "조선을 떠나며"라는 이 책이다. 부제로 '역사 논픽션 - 1945년 패전을 맞은 일본인들의 최후'가 붙어 있는데 말 그대로 식민지 조선의 지배자였던 일본인들이 패망과 함께 어떤 일을 겪으며 일본으로 돌아갔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다. 서울시립대에서 한국현대사와 한일관계사를 공부한 저자는 20여년간 해방 후 한반도로 돌아온 이들과 떠난 사람들에 대해 연구하며 그 중 일본으로 돌아간 조선의 일본인들의 에피소드를 엮어 이 책을 쓰게 되었는데 통속적인 역사서가 아닌 개개인의 일기나 회고담, 신문기사 등을 통해 상당히 피부에 와닿는 세밀한 묘사를 보여준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우수저작 및 출판지원사업 당선작이라는 영예도 안은 우수작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광복 당시의 모습은 그저 좋아서 만세를 외치며 길거리에서 환호하는 군중들.. 이게 다 아닐까? 하지만 그 이상의 뭔가 현실적인 모습은 그려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항복이라는 표현을 애둘러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여 전쟁을 마쳐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겠다..'고 중얼거린 일왕의 이른바 '옥음방송' (옥음은 무슨 ㅋ)을 들은 조선인 중 그것이 일본의 패전 소식으로 알아들은 사람은 의외로 상당히 적었다고 한다. 당시 경성의 조선인들의 라디오 보유율은 일본인 보유율 70%의 1/10수준으로 그만큼 라디오를 가진 사람도 적었고 설사 들었다 해도 포츠담 선언을 수락한다는 것이 무슨 소리인 줄도 몰랐던 것이 현실이었다. 그래서인지 광복 당일의 서울 거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이 대부분의 증언이고 다음날이 되어서야 일장기 위에 덧대어 그린 제각각의 태극기가 나붓기고 만세를 외치는 군중들이 길거리에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어쨌든 조금 늦게라도 일본이 항복했다는 사실을 알게된 우리는 그 후 도대체 무엇을 했던 것일까? 그리고 패망한 이 땅의 일본인들은 어떻게 되었던 것일까? 1944년 독일로부터 해방된 파리에서는 레지스탕스들에 의해 자행되었던 독일 협력자에 대한 즉결 처분과 독일군의 애인이었던 여성들에 대한 조리돌림과 삭발 등의 다소 잔인하기까지 했던 처단들과 달리, 우리는 언제 조선의 일본인들이 학살당했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나 있었는가. 우리는 그냥 아무것도 않고 곱게 그들을 보내줬던 것인가. 이러한 의문을 해소하기에 결론적으로 이 책은 적격이었다.


이 책은 크게 7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래와 같다.

1장. 뜻하지 않은 재앙, 패전

2장. 사면초가에 처한 조선총독부

3장. 잔류와 귀환의 갈림길에 선 일본인들

4장. 억류,압송,탈출의 극한체험

5장. 뒤집어진 세상을 원망하며

6장. 모국 일본의 배신

7장.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다른 기억들


 보다시피 목차만 봐도 이 책의 내용은 감이 온다. 하지만 각 장을 읽다보면 근현대사에서 우리가 갖게 되는 여러 의문점들에 대한 답을 어느정도 찾을 수 있다. 이 과정은 물론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만약 지금 나라면, 우리라면 과연 어떠했을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졌을 때 그 누가 자신있게 답할 수 있을까. 후세의 평가는 단호하고 명료하게 내릴 수 있지만 역사의 거대한 소용돌이에 처한 현실 속에서 가치판단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다.

 이 책을 통하여 깨닫게 된 사실 중의 하나는 바로 일본애들도 결국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언제나 질서정연하고 도덕과 예의를 중시하고 집단의 가치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거라 여겨지던 일본인들도 극한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는 나약하고 추하며 이기적인 인간의 본성을 여과없이 보여주더라는 점이다. 8월 15일 항복 이후 조선총독부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총독 부인 일행이 귀국(도주)할 배편을 확보하는 것이었으며 우습게도 이 배는 부산을 출발하였다가 다시 부산으로 돌아온다. 그 이유는 이들 일행이 너무 많은 재산을 갖고 가려다 과적으로 배가 기울자 상당량의 물건을 바다에 버려야했고 급기야 기관 고장으로 부산으로 다시 돌아왔던 것인데 이 처럼 권력과 부를 지닌 일본인들은 미군정의 행정력이 미치기 전에 미리 갖은 꾀를 부려 재산을 일본으로 반출하고 탈출하려 했고 이 사실은 조선의 일본인들에게 적잖은 충격과 배신감을 주었다. 

 하지만 이들의 추한 모습은 곧 나머지 일본인들에게서도 재현되게 되는데 미군이 진주한 이후 미군정은 일본으로 돌아갈 일본인들의 반출 재산의 부피를 한 사람당 짊어질 수 있는 정도로 통제하고 현금 역시 일정액을 이상의 소지를 금해버렸다. 결국 수많은 일본인들이 짐을 쌌다 풀고를 반복하며 최대한의 재산을 가져가기 위해 연습까지 해가며 기를 쓰게 되고 밀선을 통한 탈출도 이어진다. 또한 그 동안은 거래대상으로도 여기지 않았던 조선인들에게 그들의 살던 일본식 가옥과 부피 큰 가재도구와 사치품들을 팔아넘기는데 혈안이 된다.

  이 와중에 우리의 추한 모습도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일본인들이 내놓은 고급 물품들을 조선의 부호들이 눈독을 들이며 사다 모았고 이는 결국 조선내에서 유통될 화폐의 유출로 이어져 경제 질서를 교란시키는 요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환수하거나 몰수해야할 적의 재산을 유상으로 사들이는 부끄러운 모습을 연출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에 대해 미군정의 하지 중장에게 일본인들의 재산 매도 행위를 금지 시켜달라는 요청을 하자 하지 중장의 답변은 '조선인들이 안사면 될 것인데 자꾸 사니 그런 것 아니냐' 였다. 결국 '니 들도 참 무지하고 답답하다' 라는 짜증이 섞여 있다고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日帝는 증오하면서도 日製에는 환장하던 당시의 모습은 오늘날과도 사뭇 다르지 않았다. 

 무엇보다 놀라운 사실은 일본의 항복 후에도 대다수의 일본인들은 곧바로 귀국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역시 당연히 그들이 패망했으니 모두 돌아간 것이 아니었겠나... 아니 아예 그런 생각조차 해본적이 없었다. 하지만 일본의 2차대전 패전이 곧 우리의 해방이라는 공식은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조선의 일본인들은 전쟁에서 패했더라도 해외 식민지는 유지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놓지 않았다. 특히 조선은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통해 점령한 지역과 달리 이미 그 전부터 일본에 병합된 곳이었기에 조선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은 더욱 그런 희망이 강했다. 더군다나 이미 조선에서 태어나 조선에서만 자란 2세들은 그들이 내지라고 부르는 일본 본토에는 가본적 조차 없어 조선은 그들에게 당연한 고향이었으며 이미 경제적 기반과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한 그들이 갑자기 생면부지의 본토로 돌아가는 것 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들 중 대다수는 정국을 지켜보며 설사 한국이 독립하더라도 외국인 신분으로라도 남아있고자 희망했다. 

 거기에다 일본 정부는 패전과 동시에 해외식민지와 전장에서 수백만의 일본인이 일시에 본토로 귀국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폐허가 된 좁은 국토에 갑작스러운 인구 유입은 그렇지 않아도 힘든 전후 일본에게 큰 부담이 될 것이 분명했기에 조선총독부에 될 수 있는한 현지에 남을 수 있게 조치하라는 애매한 지시를 내렸고 이에 조선총독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채 그야말로 멘붕에 빠져든다. 이같은 일본의 소극적인 송환 노력은 결국 사할린에 남아 돌아오지 못한 우리 동포들의 처지와도 무관할 수 없다. 자국민도 나몰라라 했던 그들이 식민지 징용자들에게 쏟을 정성은 더더욱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일본인들이 조선에 계속 머물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던 것은 돌이켜 생각할 수록 아찔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의 바램대로 일본이 비록 패전은 했다지만 협상을 통해 인도차이나와 태평양 일대의 군도와 만주나 대만등 승전국의 식민지나 영토만을 반환하고 중일전쟁 이전의 영토는 보장받았다면 우리는 광복도 없이 2차 대전의 종전을 맞이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그랬더라도 영국이나 프랑스의 식민지들처럼 50년대 말부터 60년대를 즈음해 독립했을 가능성이 크지만 그 국가들처럼 여전히 일본의 강력한 정치적, 경제적 영향력 속에 허덕이고 있었을 것은 분명하다.

 어쨌든 이러한 헛된 희망과 오판으로 조선에 남아있던 일본인들은 순식간에 역전된 그들의 처지를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길거리에 쏟아져 나와 만세를 부르는 조선인들을 보고 일본인들은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공포감을 느끼고 두문불출하기에 이르렀고 경찰서나 관공서 등에 대한 공격과 테러도 이어졌다. 이 같은 이른바 '불상사건'이 수백건 정도 기록되어 있는데 이 책은 물론 다른 곳에서도 그 상세한 내용과 정확한 피해 현황은 찾을 길이 없었다. (무조건 곱게 보내주지는 않았구나 라는 생각에 고소한 마음이 든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각종 공장과 회사, 관공서 등에서는 하루아침에 조선인 직원들이 일본인 상급자들을 몰아내고 '자주관리'에 들어갔으며 개인적 원한에 의한 일본인들에 대한 공격과 테러도 빈번했으며 특히 경찰서 같은 곳은 많은 습격을 받았다. 재미있는 것은 일본인 상급자 밑에서 일하던 조선인들이 해방과 동시에 그들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앉았다는 것인데 이들은 과연 친일파로 단죄해야할 대상인가 아니면 해방 초기 행정력 회복과 건국 준비 과정에 공헌한 자들인가에 대한 판단은 정말 쉽지 않은 문제이다.

 적극적인 친일에 앞장서고 일제로부터 남작등의 작위를 받은 인물들이야 변명의 여지도 없지만 일제 치하에서 어딘가의 자리에 앉아 있었단 것 만으로 친일로 몰기에 이 땅에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남을지도 고민이고 그렇다고 예외를 봐주기 시작하면 친일이 누가 있겠냐는 반문이 든다. 적극 가담한 자들에게는 엄벌을, 그 정도가 약했던 자들은 그들대로 적어도 어떠한 형태로든 약간의 죄값을 통해 갱생할 수 있는 절차가 있었어야 하지 않나 싶다. 이 같은 친일 청산이 제대로 되지 못한데는 우리 정치 세력의 분열과 미숙한 행정력을 믿지 못한 미군정의 독단적인 정책(기존 총독부 체제를 통한 행정 관리를 선호했던)이 그 원인이지 않을까.

 하여튼 해방 후 알다시피 38도선을 경계로 미군과 소련군이 분할 점령하게 되는데 특히 소련군이 진주한 38도선 이북의 일본인들은 비참한 1945년 겨울을 보내야했다. 미군과 달리 소련군은 진주하면서 일본인들을 격리 수용하고 재산을 압류했으며 남자들은 시베리아 등지로 보내 강제 노동에 종사하게 했으며 일본인 여성들은 능욕을 당하기도 했다. 이는 독일을 점령한 소련군의 만행과 별 다를 것이 없었는데 이 와중에 일본인들은 보통의 선량한 대다수의 일본 여성 보호를 위해 차라리 위안대를 꾸려 소련군에게 보내기도 했다. 직업 여성들을 우선 선발되었다고는 하지만 일반 여성들도 포함되었고 집답 수용소에 수용된 16세 이상의 일본 여성의 숫자와 이름을 소련군은 파악하여 관리하였다. 이를 피하기 위해 나이를 속이기도 하고 머리를 잘라 남장을 하기도 했으며 끌려간 딸의 이름을 부르며 절규하는 부모들과 소련군에게 능욕을 피하기 위해 자결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도 있다. 

 자기 동포 여성들 마저 자체적으로 선발하여 위안대를 만들어 소련군에게 넣어줬던 그들이 식민지 조선의 여자들을 정신대로 보내면서 과연 얼마나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까 생각해본다. 군의 사기를 높이고 현지에서 성군기 사고를 예방하기 위함이라는 논리로 동원된 정신대에게 그들이 진심으로 사죄하지 않는 이유는 어쩌면 이처럼 자신들에게 가장 쉬운 해결책이자 소수의 희생을 통해 다수의 안전을 도모할 수 있는 필요악이었다는 자기 합리화가 너무 강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소련군에 의한 가옥에서의 강제 퇴거 조치, 재산 압류 등으로 45년 겨울에는 북한 지역의 일본인들 사이에서 다수의 동사자와 아사자가 발생했으며 소련군의 약탈 행위도 빈번하여 시계나 만년필, 라디오 등을 빼앗기기 부지기수였다. 이 역시 그들에게는 서럽기 짝이 없는 일이었지만 대동아공영권을 외치며 벌였던 태평양전쟁에서 수세에 몰리자 무기 생산에 필요한 구리 확보를 위해 제사사 때 사용해야할 제기 마저 약탈해 간 일제의 악랄함을 생각하면 자업자득, 인과응보 이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하여튼 이처럼 북한 지역의 일본인들은 남쪽에 비해 상당한 고초를 겪어야 했는데 그 이유는 소련군의 군기가 미군처럼 엄정치 못한데서 발생한 빈번한 약탈과 성폭행, 전쟁 보상의 명목으로 공식적으로 실시된 소련의 물자 반출, 그리고 공산주의 진영의 민족주의자들의 정권 장악으로 인한 일본인 및 친일파에 대한 과감한 청산이 이루어진 탓이었다. 

그에 반해 남쪽은 미군의 행패가 거의 없었으며, 한국 임시정부를 비롯한 독립운동 진영의 능력을 불신한 미군정의 정책에 따라 일제시절의 일본인 및 조선인 관료들이 대부분 그 위치를 유지하며 행정력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사정이 나을 수 있었다. 우리의 정권이 아닌 미군정 하에서 우리 스스로가 뭔가를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으며 극단적인 사회 혼란을 원치 않는 미군정은 행정력 장악과 효율적 통치를 위해 기존의 인재들을 그대로 활용하는 편의를 선택했다. 

 제조업 시설과 철도등 기간 산업 부분에서 일본인 간부들을 밀어내고 이를 접수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인들로부터 고급 기술을 전수받지 못하고 단순 노무 및 하급 관리자들이었던 탓에 생산능력이 급감했고 기차도 운행되지 못하거나 정상적인 운영이 되지 못했다. 다른건 몰라도 우리에 비해 일제 청산은 잘했다고 평가받는 북한도 공장이 안돌아가자 결국 다시 일본인 기술자들을 후한 조건으로 복직시켜 공장을 재가동할 수 밖에 없었고 이들이 일본으로 돌아갈 때 화려한 환송회까지 열어주었으니 결국 이는 우리의 능력 부족으로 밖에 볼 수 없다. 그렇지만 단 몇년간 점령당했던 프랑스가 나치 협력자들을 엄중 처단한 것과 너무나도 대조되는 우리의 친일 청산은 편의성이라는 논리에 눌려 너무나도 어물쩡 지나가 버렸으니 안타깝기만 할 뿐이다. 

 어쨌든 패전 후 이처럼 자기들 딴에는 고초를 겪던 일본인들은 먹고 살기 위해 결국 자존심을 버리기 시작한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약한 자에게 강하고 강한 자에게 약하다는 일본인들의 특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고 해야 할까. 일본인들은 업신여기던 조선인의 집에 하녀로 들어가 일하기도 하고 잡역에 동원되어 길거리를 청소하기도 했다. 이 와중에 오물을 싣고 지나가던 조선인이 일부러 오물을 길에 흘리며 웃고 지나가기도 하고 귀하신 일본 나으리가 이런 일도 하시네요? 라는 비아냥을 들어도 꾹꾹 참아낸다. 더럽다고 손님으로 받지도 않던 조선인들이 일본인들이 운영하는 목욕탕을 빼앗아 운영하자 그 밑에서 일을 하기도 하던 모습에서는 사실 '고소하다'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는 통쾌함마저 들지만 일개 개인의 운명에서만 한정해서 보자면 연민의 정이 전혀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결국 국가가 힘이 없을 때 그 국민들의 비참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은 우리나 일본이나 마찬가지일 뿐이다. 

 그렇게 고생 끝에 일본으로 돌아간 조선의 일본인들은 본토로 돌아가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다. 전쟁 내내 지속된 공습으로 일본의 대도시는 잿더미였으며 해외 전선과 식민지에서 귀국하는 수많은 군인들과 민간인들로 인해 일본의 인구는 급증했고 주택과 식량 등 모든 것이 부족했다. 이 때문에 일본은 항복 당시 조선총독부와 만주등에 최대한 현지에서 버티라며 그 곳의 일본인들이 본토로 귀환하는 것을 걱정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본토인들은 식민지에서 돌아온 일본인들에게 식민지에서 호의호식한 부류로 취급하며 전쟁 때 날마다 공습과 전시 동원에 시달린 자신들에 비해 그 정도는 고생도 아니라는 차가운 시선을 보냈고 그들로 인해 부족해질 일자리와 식량, 주택 등을 이유로 문제아 취급했다. 여성들의 경우는 기타규슈의 하카타항에 내리자 마자 항구에 설치된 부인과에서 검진을 받고 필요시 강제 낙태 시술을 받아야 했는데 이는 식민지에서 소련군이나 미군에게 정조 마저 잃은 여성들이라는 낙인마저 씌운 행위였다. 마치 청나라에 끌려갔다 돌아온 공녀들이 화냥년이라 불리며 오히려 멸시받았던 우리의 과거와도 꼭 닮은 모습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조선에서도 본토에서도 미운 털이 박힌 그들은 일본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살하거나 범죄를 일으키는 등 사회 문제도 만만치 않았으며 60년대에 들어서는 일본의 무모한 전쟁으로 인해 패전하고 그로 인해 자신들이 식민지 조선에서 잃어야했던 재산에 대한 보상을 청구했다가 패소하기도 한다. 전쟁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예측불가능한 전 국민이 입은 피해의 하나로서 헌법이 그 부분까지 보장할 수는 없다는 논리인데 이처럼 자국민들의 요구마저 묵살하는 일본이니 우리 강제 징용자들의 보상 요구를 무시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는 경성에 살았던 일본인들이 경성을 그리워하고 돌아가고 싶어하는 이야기도 많이 언급된다. 명동, 충무로 일대에 살던 일본인들은 신식 문물과 함께 풍족한 삶을 즐겼으며 충무로 일대는 당시 도쿄의 긴자 거리 못지 않게 화려했다고 하니 경성의 일본인들은 좋았던 시절을 지금도 추억하는 이가 많은 모양이다. 그 시절이 그리워 한국의 서울로 딸을 데리고 여행온 일본 할머니의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충무로, 명동 일대를 딸들 앞에 서서 자신있게 안내하며 '아 이 건물은 아직 남아있네. 엄마가 어릴 때..' 뭐 이런식으로 돌아다니던 그 할머니가 종로와 청계천에 이르러서는 어디로 가야할 줄 모르더라는 것이다. 그녀는 종로와 청계천 쪽의 조선인 거주지로는 나와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조선의 일본인들은 그들의 집단 거주촌에서 그들끼리 어울렸고 더럽고 지저분한 조선인들이 많은 곳에는 갈 일도 가본 일도 별로 없으며 조선인들과 얘기를 하고 지내는 경우는 그 쪽이 부유하고 세도가 있어 상당히 일본화된 경우였을 뿐이었다. 애초에 그들은 조선인들에게 관심조차 없으며 존재 자체에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그들끼리의 신천지에서 1등 신민으로 여유롭고 행복한 삶을 영위했으며 그러니 광복과 동시에 갑자기 숨죽여있던 조선인들의 등장에 적잖이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이처럼 이 책은 여러 개인들의 다양한 관점과 경험들을 아주 짜임새있게 배치하고 활용하여 광복 후 몇 년간 일본인들이 겪었던 일들을 피부에 와닿게 얘기해준다. 그러나 이 책이 진정 가치있는 이유는 일본인들의 이야기와 기록에 바탕을 두어 글을 풀어 나가되, 우리의 관점을 잃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개인의 증언에 기반한 책은 자칫 잘못하면 감상에 치우쳐 동정을 느끼게 하거나 일본이 전쟁의 피해자라는 인식을 나도 모르고 하게 만들 수 있는데 그렇게 살짝 정신줄을 놓을만 할 때 저자는 준엄하게 심판하듯이 무게추를 바로 잡아 준다. 개개인의 비극은 안된 일이긴 하지만 36년간 우리 민족이 겪었던 비극과 설움에 비하면 그 정도는 무겁지 않으며 그 기간도 대단히 짧았으며 그 무엇보다 그 원인은 다른 누구도 아닌 일본 그들에게 있음을 이 책은 분명히 얘기해준다. 





지난 6월 이사를 했다. 


이사하면서 당연히 가구 배치나 여러가지가 변경되었는데 내게 있어 가장 큰 변화는 오디오 시스템의 거실 점령이 불가능해진 것.






요렇게 세팅되어 있던 오디오 시스템들이..






이렇게 골방으로 이동..


사실 음악 듣기엔 골방이 좋긴 한데 좌우 폭이 좁아지니 스테이징이 좁아져 대편성을 들을 때 뭔가 맘에 안든다. 좌측은 책꽂이 우측은 벽면이라 아무래도 반사의 차이도 있고 앰프의 밸런스 단을 조정해도 왠지 균형감이 떨어진다. 소편성이나 보컬 곡들은 괜찮은데..  흠.. 하여튼 각설하고.






이사후 거실의 모습.


예전 집엔 오디오 시스템을 둬서 꽉찬(지저분한..) 느낌이 들었는데 TV만 달랑있으니 뭔가 허전하다. 와이프는 내 오디오들을 골방으로 쫓아내고 나니 속이 시원한 듯 하지만 난 이 허전한 공간을 채우고 싶어졌고 한동안 잊고 있던 5.1채널 사운드에 대한 열망이 슬금슬금 살아나기 시작했다. 블루레이 플레이어에는 그에 걸맞는 훌륭한 사운드가 보태져야 훨씬 진가를 발휘하지 않겠냐며. 


하지만


1. 5.1ch로 구축시 프론트/센터/우퍼/리어스피커에다 거기에 연결될 케이블 등등은 곧 태어날 아기에게 위험천만한 것들이고


2. 아파트에서는 층간 소음 문제로 어차피 우퍼 쾅쾅 울리며 시원하게 듣기가 어렵고 볼륨을 낮추자니 그럴거면 이걸 왜 샀나 싶고


3. 생각해보니 난 영화 보는 걸 크게 즐기지도 않는다는 거 (쓸데없이 사운드 욕심만)



그래서 5.1ch에 비해 리어 스피커가 없어 덜 거추장스러운 2.1ch 보스 시네메이트 GS2도 고려했는데 결국은 그냥 가장 깔끔하게 가기로 했다. TV 스피커의 쨍쨍거리는 사운드보단 괜찮게 들어보자. 심플하게. 그래서 택한 것이 보스의 솔로 티비 사운드 시스템이다. 제품설명은 보스 홈피에 있던 내용 참고.










요약하자면 '간단한 설치로 보다 훌륭한 TV사운드를 즐길 수 있는 것'이 컨셉인 제품이다. 사운드는 사실 들어보고 구입하는게 맞지만 집에 Wave Music System ll, Soundlink Wireless Mobile Speaker, 101it까지 세 종류의 보스 스피커가 있다보니 얘도 딱 특유의 보스 느낌이 아닐까 싶었고 몇몇 리뷰들을 읽어보고 대충 감이 잡혔다. 어쨌든 호불호는 갈려도 기본 이상은 하는 Bose니까 믿고 고고.





그리고 물건 도착. 보스 공식 쇼핑몰은 배송도 나름 빨라서 좋다. 

택배 포장 개봉용치고는 좀 살벌하게 생긴 거버 나이프. 같은 멀티툴이라도 스위스의 빅토리녹스는 선물용으로도 인기일 정도로 예쁘지만 미국제 거버는 그냥 딱 공구의 느낌이다.






겉 박스를 여니 나타나는 본 포장. 납작하지만 꽤 넓다. 보증서는 보스 제품들이 늘 그렇듯 저렇게 박스 바깥에 붙어있다.






포장을 여니 전원버튼/음량조절/음소거 기능만 있는 단촐한 리모컨과 매뉴얼, TV와 연결하는 옵티컬 케이블이 놓여있다.






그리고 그 밑에는 이렇게 보스 솔로 티비 사운드 시스템 본체가 들어있다. 저렇게 두라고 해도 안할 것 같은데 TV를 가운데 잘 맞춰서 올리라고 친절히 그림이 그려져 있다.






보스답게 만국에서 사용가능하도록 다양한 전원 코드가 들어있다. 애플은 이런 것도 트래블킷이라고 따로 파는데. 






제품의 전면. 그릴 망 사이로 내부에 스피커 유닛이 보인다. 좌우 각 2발씩 총 4개의 유닛이 들어있다. 






제품의 후면. 저음을 내주는 덕트가 좌우에 있고 가운데로 각종 입력 단자들이 보인다.






각종 입력단의 모습.

좌측부터 전통적인 RCA  / 옵티컬  / 코액시얼. 요즘 TV들은 RCA 출력 단자가 없는 경우도 많아 대부분의 경우 가운데의 옵티컬 단자끼리 연결해주면 된다. 별도의 AV리시버나 앰프처럼 소스 셀렉트 기능은 없기 때문에 3개의 입력단 중 사실상 하나만 사용할 수 있다고 보면 된다. 어차피 셋톱박스나 DVD/블루레이 플레이어는 TV의 입력단에 연결하고 이 제품은 TV하고만 연결하면 되기 때문에 전혀 문제없다.


입력단 우측의 서비스나 데이터 단자 쪽은 실사용에 필요가 없고 맨 우측이 전원 단자. 보다시피 프리볼트 제품이라 해외직구를 해도 변압기가 필요없다. 나는 해외배송 기다리기도 싫고 이 녀석은 다른 보스 제품들에 비해서 해외와 가격 차이가 크지 않아 정품으로 구입했지만 한 푼이라도 아끼려면 보스는 해외직구가 답인 듯 하다. (가격 차이가 꽤 심한 제품들이 많다.)






연결할 선이 달랑 2개라 뭐 특별히 할 것도 없이 간단히 설치하고 위에 TV를 올려봤다. 이사하고 나니 좁은 집에서 쓰던 TV가 좀 작아보여(42인치) 불만이었는데 마침 위 사진처럼 제품 위에 직접 올릴 수 있는 최대 사이즈로 보스에서는 42인치까지를 권장하고 있다. 그 이상의 경우는 무게 때문에 문제가 있고 스탠드 자체도 커서 힘들 것 같다.






BOSE 로고 아래의 초록색 불이 전원 표시등. 뭔가가 표시되는 것은 저 불빛이 유일하고 보스 웨이브 뮤직 시스템(III 이전 버전)과 마찬가지로 본체에 아무런 버튼도 없어서 디자인상의 깔끔함을 추구하고 있다. 반면 전원 ON/OFF, 볼륨 조절이 오직 리모컨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잃어버리면 난감해진다. (분실시 별도 구입은 가능, 말도 안되는 가격 33,000원)






전체적인 샷. 보다시피 있는 듯 없는 듯 별 티가 나지 않는다. 어느 거실에 배치해도 이것으로 인해 인테리어가 확~ 산다거나 얘만 동동 튀지도 않고 아주 무난하고 심플하다. 벽걸이를 하지 않은 우리 집인지라 쇼파에 앉았을 때 티비가 조금 낮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조금이나마 높아진 장점은 있다. 



지금까지 디자인이랑 별 것도 없는 기능들을 대략 적어봤다만 스피커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사운드!


글로써 전달함이 불가능한 부분이지만 대략적인 느낌을 적어본다면 TV 스피커에 비해서는 확실히 개선효과가 있다. 후면 덕트 덕분에 영화를 볼 때도 꽤 둥둥거려주고(보스하면 역시 둥둥둥) 대사 전달력이 보다 명확해져서 야구 중계 볼 때도 산만함이 줄었다. 특히 음악이 주가 되는 방송에서는 확실히 위력을 발휘한다. 뮤직 비디오 혹은 공연 실황을 즐겨 보거나 나가수/슈스케/히든싱어 등 음악프로, 그리고 영화 중에서도 맘마미아, 드림걸스 같은 뮤지컬 영화를 보는 비중이 높은 사람들에게 가장 어필할 수 있는 제품일 듯 하다.


하지만 박진감 넘치는 전쟁 영화를 보면서 총알이 핑핑 날아가고 뒤에서 폭탄이 터지고 이런 입체 음향을 추구한다면 이 제품으로 만족하기는 어렵다. 영화를 우선시 하는 사람들은 그냥 5.1채널로 가는게 백번 옳고 리어 스피커가 부담스럽다면 가상 5.1채널을 지원하는 2.1채널 제품들도 좋은게 많이 나오고 있으니 그런 걸 사는게 낫겠다 싶다. 


종합적으로 판단했을 때 약간 애매한 제품이 아닌가 싶다. 홈시어터로서의 입체 음향 효과는 거의 없고 TV사운드의 개선 효과에 투자하기에는 가격이 만만치 않다. 그래서인지 해외 어느 블로그에서는 이 사진으로 마무리하고 있던데.






ㅋㅋㅋ 


이왕 산거 열심히 잘 써야겠다. 안사봤으면 궁금했을거야. -_- 






마지막으로 친구 사진 하나. 편하게 듣기는 얘만한 것도 없다. Bose Wave Music System ll





산수이 70년대 명기 7070리시버. 7070, 8080, 9090까지 출력별로 거의 같은 디자인으로 출시되었던 70년대의 명기다. 이 중 7070이 출력은 가장 작지만 소리는 가장 예쁘단 평들도 많은데 구입한 물건의 우드케이스가 영 맘에 들지 않았다. 일단 제짝이 아닌 새로 주문 제작한 것 같으며 주문 제작치곤 만듦새도 훌륭하지 않은데다 보다시피 검정색 시트지를 붙여둬 영 빈티지 같은 운치가 살지 않는다. 


이런 우드케이스를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보이스우드에 의뢰하면 정말 멋지게 만들어주겠지만 일단 가격이 18만원 정도 하는지라 이 리시버 구입 가격 + 빌라소리사에서의 오버홀 비용까지 감안하면 얘한테 거의 70만원이상을 투자하게 되는 셈이라 망설여지던 차에 아예 저 검정 시트지를 벗겨버리고 무늬목 시트지를 새로 입혀보면 어떨까 하는데 생각이 이르렀고 결국 과감히 실행에 옮기기로 결정했다. 만약 망치면 보이스우드에 주문 제작할 생각으로.






케이스에서 빼낸 산수이7070과 검정시트지를 모조리 뜯어낸 우드 케이스. 진짜 저거 뜯는데만도 한참이 걸렸다. 손도 아프고.. 어찌나 잘 붙어있는지; 예상대로 뜯어보니 대충 합판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전문적인 곳에 의뢰했다기 보단 손재주 조금 좋은 전 주인이 직접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싶은 딱 그 정도의 퀄리티다. 좀 좋은 품질의 원목이거나 했으면 사포로 한번 샌딩하고 어찌 해볼까 했다만 역시 예정대로 무늬목 시트로 덮어버려야겠다. 흉하다.






적당히 잘라낸 시트지를 앞뒤좌우 충분한 여유 길이를 확보하여 상판부터 덮어버렸다. 핸드폰 액정 필름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면적이라 잘못하면 끝이단 생각에 긴장도 되었다만 기본적으로 두께가 있는지라 잘 울거나 하진 않았다. 일단 상판부터 좍좍 펴 눌러주고..






각이 생명이기에 모서리 부분은 열심히 손으로 문지르고 눌러주고 당겨가며 붙히는 수 밖에 없다. 헤라 같은거나 없음 다른 걸로라도 펴주면 될텐데 귀찮아서 손으로 열심히 했더만 손이 다 따끈따끈하다.






확실히 이런 접합 부분은 스킬이 필요한 듯. 가구 리폼하는 사람들이 보면 아무 것도 아니겠지만 넓직한 면적은 나름 잘 붙였다만 역시 이 쪽은 실력이 드러난다.






한시간 조금 넘게 걸렸나. 드디어 다 작업하고 새 집에 들어가는 산수이7070. 어찌나 무거운지..






완성! 사실 이거 보단 좀 더 붉은 색상이었으면 했는데 생각보다 그렇지 않은 것 같아 살짝 아쉽지만 이만하면 된 것 같다. 확실히 시꺼먼 시트지 붙어있을 때 보단 훨씬 예쁘구만.






빛 좀 받는 곳으로 옮겨서 다시. 확실히 이젠 집안 분위기랑 좀 더 매칭이 잘 되는 것 같다. 오디오는 소리도 소리지만 눈으로 듣는 소리도 무시못하는 지라 아무래도 모양도 이뻐야 더 맘에 드는 법. 처음해본 것 치곤 나름 만족스럽게 작업이 되었다. 뒤편에 어렴풋이 보이는 애들은 우리집은 좁아서 둘데가 없어 본가에서 테스트 중인 산수이2000과 AR4. 얼른 이사가야 하는데..







2014.03.22 포항





고약한 취미 오디오. 20년이 다되어가는 취미인 사진(카메라)은 그래도 스펙이 명확하고 리뷰를 보거나 하면 대강의 성능이라도 가늠이 되지만 이놈의 오디오라는 취미는 글과 사진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귀'로 하는 취미가 아닌가. 공간감이 뛰어나고 악기들의 정위감이 훌륭하며 질감이 느껴지는 두툼한 중역대와 섬세하지만 가늘지 않게 뻗어가는 고음, 풍성하면서도 단단함을 잃지 않는 저역의 양감..뭐 이런 식으로 표현된 글을 읽고 도대체 어떻게 판단하란 말이냠. 그러니 더 궁금해지고 일단 사서 들어보고 싶어 지는 욕구가 더 커지는 몹쓸 분야가 바로 오디오다. 


오디오란 녀석은 가격대도 수십에서 수천까지 다양한데 다른 분야에서라면 '잘 모르면 일단 비싼게 좋다'는 공식이 어느정도 통한다지만 오디오는 또 그렇지가 않다.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이 우선 가장 중요하고(그래서 오디오파일들의 궁극의 지름은 단독주택이라고..) 스피커와 앰프, 심지어 케이블류까지 서로간의 매칭도 무시하지 못하며 클래식이나 재즈, 팝, 락 등 자신의 음악 기호에 맞는 스피커와 앰프를 구해야 하는데다 금전적인 부분에서도 적정한 수준에서 짜맞춰야 하니 머리가 팽글팽글 돈다. 어쨌든 지금은 다른 무엇보다 공간의 문제가 가장 커서 좀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면 제대로 시스템을 구축해봐야겠단 생각으로 날마다 정보 수집과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고 있었는데. 그러던 중 장터에 물건이 하나 보였다. 바로 보스 1705-2와 101it였다.





조촐한 하이파이 시스템 : Bose 1705-2 / Bose 101it Speakers / Inkel 6030G CDP




앞서 언급했듯이 오디오 시스템에서 매칭의 중요성은 무시하기 어려운데 그 매칭 사례 중 훌륭하다고 손꼽히는 조합이 바로 이 1705와 101it이다. 손바닥만한 작은 앰프와 플라스틱 인클로저에 풀레인지 유닛을 장착한 별거 없어 보이는 이 스피커의 조합이 왜 그토록 인기가 높은지 궁금해졌고 집에서 사용중인 보스 웨이브시스템과 블루투스 모바일 스피커의 느낌과는 또 어떻게 다른지 들어보고 싶었다. 황준씨의 책과 블로그를 통해 이 둘의 조합이 엄청나게 유명세를 얻으면서 중고가도 상당히 올라간 편이었지만 역시 되팔기도 수월할 것 같아 일단 질렀다.






보스 1705-2 인티앰프의 모습. 일반적으로 1705가 조금 더 좋다고들 얘기하던데 뭐 큰 차이는 없을 것 같고 내가 산 1705-2는 1705와 달리 좌우 스피커의 볼륨을 따로 제어할 수 있다. 무광 검정으로 도색되어 있는 앰프에서 빨간색의 전원 버튼과 초록색 조명은 그나마 포인트가 되어준다. 사실 오디오 기기라기 보다는 무슨 군용 통신장비 같은 느낌이 드는 모양인데 실제로도 들어보면 손바닥만한 크기와 달리 완전 쇳덩이라 꽤나 묵직하다. 볼륨 조절은 0부터 10까지 가능한데 집에서는 2까지도 올리지 못할 정도로 소리가 크다. 누군가는 아무 생각없이 5정도에 올려두고 음악을 재생시켰다가 지진난 줄 알았다고 하던데 거기까지 올렸다간 당장에 이웃에서 난리가 날 듯. 






앰프의 뒷면. 입력단 오른쪽으로 가운데에는 101스피커 시리즈와 그 밖의 스피커로 EQ셀렉터가 있다. 101it를 물려놨으니 당연히 101쪽으로 EQ셀렉터를 위치해뒀다. 1705시리즈와 101it가 최적의 매칭이라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부분이다. 소형 앰프라 기능이나 확장성은 최소화되어 있다. 스피커도 한조만 연결할 수 있고 Input단자도 하나 뿐이다. 이 앰프가 메인이 되어 CDP나 튜너, 턴테이블등을 동시에 물려쓰고자 하자면 별도의 셀렉터를 구입해야 한다. 물건 자체도 귀하고 이 앰프에 셀렉터까지 갖추자면 다른 인티 앰프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커진다는게 문제. 하지만 1705매니아라면 구입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것 같다.





단점이라면 단점. 100V 전원 사용이라 이른바 '도란스'가 필요하다. 110V도 아닌 100V라 한일공업에서 나오는 220V -> 100V 소형 다운트랜스를 구입해서 연결했다. 






그리고 보스 101it 스피커. 101시리즈 중 약간의 별종인데 가장 인기가 높은 모델이다. 스피커의 안쪽 면엔 덕트가 있는데 이 덕트를 서로 마주보게 하고 스피커 사이에 가리는 물건이 없이 적당한 거리를 두어 설치하면 보스 특유의 음장감이 극대화된다. 사진은 촬영을 위해 스피커를 조금 더 붙혀둔 것이고 실제 음악을 들을 때는 더 벌려두고 있다. 101스피커에는 전용 스탠드도 있는데 허접한 모양새와 달리 구하기가 어렵다 보니 중고가도 상당히 높아 자작(?)해버렸다. 매틴에서 나오는 소형 삼각대 2개를 2만원 조금 넘게 주고 사서 기존의 나사를 뜯어내고 스피커 하단의 나사 구멍에 맞는 5X20 나사로 끼워줬다. 






그릴을 열고 바라본 101it의 풀레인지 유닛. 풀레인지 답게 자연스럽고 편안한 음색과 중역대의 풍부함이 훌륭하다. 측면의 덕트 덕분에 저음의 양감은 꽤나 풍성하다. 테스트차 여러가지 음원들을 들어봤는데 가장 놀랬던 곡은 김윤아 솔로 앨범의 '야상곡'이었다. 김윤아의 목소리와 숨소리가 너무나 생생하게 밀려왔는데 이건 글로써는 어떻게 표현을 할 방법이 없네. 그 밖에 스탠 겟츠의 'The Girl from Ipanema' 에서도 색소폰의 두툼한 소리와 여성 보컬의 청명함이 인상적이었다. 전체적으로 재즈나 팝에는 뭐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겠나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만족스러웠다만 클래식에서는 소나타나 현악 4중주 정도의 소편성 이상으로 넘어가면 한계가 있다. (사실 대편성은 어지간한 시스템으로도 힘들긴 하지만) 





스피커의 뒷 면. 구입 후 초반에 테스트차 들었던 이작 펄만의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에서 고음이 너무 날카롭게 느껴져 고음을 좀 완화시키고 중역대를 두툼하게 한다는 주석 도금선인 벨덴 8477을 연결했다. 문제는 선이 너무 굵어 스피커 단자에 잘 끼워지지가 않는다는 점이다. 대충 꼬아서 억지로 끼워뒀는데 불안하기 짝이 없다. 이 케이블로 계속 갈거면 단자를 사서 끼워주던지 해야겠다.




어쨌든 나의 첫 하이파이 시스템인 보스 1705-2와 101it 스피커. 팝이나 재즈를 즐겨 듣고 공간이 그리 크지 않다면 50만원 정도를 투자해 이 정도 음질을 들을 수 있다는 건 꽤 괜찮은 선택이라 생각이 든다. 디자인은 참 싼티나게 생겼지만 자꾸 보니 또 정이 든다. (와이프는 못생겼다고 이사가는 즉시 팔아버리라고 하는 중) 보스는 유독 오디오파일들로 부터 많이 까이기도 하는 브랜드이지만 또 그만큼 매니아도 많은 브랜드인데 보스 특유의 음장감과 풍성한 저역에서 오는 느낌은 칼 같은 해상도와 정위감과는 달리 스펙으로 설명이 안되는 보스만의 색깔과 매력이 있다. 가장 작은 101시리즈에서 가장 인기있는 101it를 들어보고 나니 301이나 901같은 보스의 대표적인 라인업이 또 궁금해진다. 



 





본가에 산수이 리시버 7070을 들인 후 턴테이블을 연결하니 도저히 들어줄 수 없는 소리가 났다.
늘어난 테이프, 혹은 엄청 잘 안잡히는 라디오의 소리로 느껴질 정도로 상당히 심각했는데 턴테이블은 계속해서 쓰던 것이었고 리시버의 AUX단자를 통한 CD재생음은 훌륭했기에 나는 당연히 포노단의 문제일 것으로 생각했다. 튜너의 수신감도도 훌륭한 것 같지 않고 주파수 바늘도 잘 움직이지 않아 겸사겸사 대구의 수리명가 '빌라소리사'에 수리를 의뢰했다. 어차피 이런 빈티지 기기들은 구입한 후 오버홀 한 번 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




처음 도착한 날 사무실에 놓아두고 바라보기만 했던 산수이 7070. 스피커나 소스기기가 없으니 문제가 있는지 여부의 확인은 불가능했다. 그냥 '이쁘다~ 이쁘다~'를 연발하며 바라만 보던 숙직서던 날의 긴긴 밤.




어쨌든 그렇게 수리를 맡긴 산수이는 일주일 가량 지난 이번 금요일에 퇴근하고 달려가 찾아왔는데 말끔히 고쳐져 튜너의 스테레오 분리도 확실해 졌고 수신력도 좋아졌다. 그런데 문제라 생각했던 포노단은 전혀 이상이 없었고 턴테이블의 소리가 이상했던 것은 살 때 달려있었던 바늘의 수명이 다한 것이었다. 애꿎은 판매자에게 포노단이 이상한 것 같다고 따졌던 것이 좀 미안해졌지만 어쨌든 튜너 부분 수리하고 전체적으로 오버홀하는데 10만원이 들었으니 나도 적지않은 수업료를 들였다.




턴테이블의 문제는 결국 바늘의 마모로 밝혀졌으니 집에 돌아오자 마자 카트리지 교체를 시도했다. 이 때가 거의 저녁 9시 반 정도로 저녁도 안먹고 퇴근하자 마자 대구까지 달려갔다 돌아온 상태였지만 당장 해보고 싶단 생각이 앞서니 배도 안고프더라는;; 언젠가 오이스터 카트리지 바늘의 수명이 다하면 교체하려고 사둔 DENON DL-110 카트리지를 꺼냈다. 결국 돈들여 산건데 왜 나의 준비성(?)이 왜그리 흐뭇하던지 -_-; 





DENON DL-110. 일반적으로 MM형에 비해 보다 섬세하다는 MC카트리지인데 고출력이라 MC포노단을 지원하지 않는 앰프의 MM단자에도 바로 연결이 가능하다. 신품기준 16만원 정도 하는 것 같던데 미개봉 신품을 10만원에 사둔 것. (정말 잘한 짓인듯)




카트리지 교체 과정은 사진으로 좀 찍어둘까 했으나 일단 시작하니 긴장되서 그런 건 못했다..  책이나 웹상에서 어떻게 하는지 이론만 익혔지 막상 해보려니 손이 바들바들. 리드선이 어찌나 가늘고 불안한지 카트리지에서 빼내다가 끊어지기라도 할까봐 조심조심 겨우 빼냈다. 





일단 장착하긴 했는데 이게 제대로 맞추긴 한건지..칩압이랑 안티스테이팅 조절하고 일단 판부터 올려본다. 내가 처음으로 샀던 LP인 Lola Bobesco의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다행히 소리가 난다!





이것으로 본가 오디오 시스템 변경이 거의 완료되었다. 턴테이블만 빼고 다 바꾼 것이었는데 카트리지를 바꿨으니 턴테이블에도 변경이 생겼다. 켄우드 시스템을 대구로 쫓아낸 산수이 7070과 보스 121 스피커. 보스 121은 여타의 보스(Bose) 스피커들과 달리 좀 더 맑고 저음의 양감이 적은 편인데 산수이와의 매칭은 꽤 괜찮은 듯 하다. 크기도 작은데다 풀레인지의 이 스피커에서 어찌 이런 소리가 나는지. 





그리고 사두고는 턴테이블 문제로 듣지도 못했던 Bill Evans Trio의 "Waltz for Debby"를 드디어 올려본다. 180g중량반으로 새롭게 리마스터링되서 발매된 판으로 기존에 듣던 음원보다 해상도나 공간감이 좋아진 느낌이다. 





교체과정은 안찍어두고 너저분한 작업 후의 장면. 마침 -자 드라이버가 작은게 없어서 애먹었는데 빅토리녹스의 저 작은 멀티툴이 나름 큰 역할을 해줬다. 맥가이버가 왜 쟤를 좋아했는지 알 것 같다. 가지고 다니다 보면 요긴하게 쓰일데가 많다.





10만원대 카트리지도 이만하면 들을만 한데 수십만원짜리 카트리지에선 어떤 소리가 나오는걸까. 안들어보는게 행복의 지름길이라...



2014.03.07 포항







미국의 친구에게 부탁한 크롬캐스트 도착. 개당 35달러 밖에 안하는 저렴한 가격이라 배송료가 더 비싼 지경이라 친구와 합쳐서 3개를 주문했다. 






박스 옆면. HDMI 단자에 꽂아 와이파이에 연결하여 공유하는 개념이 심플하게 표기되어있다.






박스 뒷면. 아직까지는 구글 서비스 외에는 디바이스에 저장된 동영상 재생은 지원하지는 않는다. (앞으로도 안될 듯?) 그렇지만 유튜브라는 무궁무진한 컨텐츠와 이제 제법 볼만한 영화들이 많아진 구글 무비를 시원시원한 화면으로 즐길 수 있다.






이렇게 옆으로 쏙 안쪽의 박스가 나온다. 패키지는 역시 애플이 예술이지만 구글의 포장과 디자인도 깔끔하고 산뜻한 것 같다. 





예쁘다. 넥서스4, 넥서스7(2012) 때는 검정색을 위주로 한 패키지였다면 넥서스5, 넥서스7(2013)부터는 흰색과 파란색의 조합으로 밀고 나가는 듯. 





박스를 열면 요렇게 들어있다. 왼쪽의 '시작하기' 설명은 3단계로 간단하다. 





다시 들춰보면 연결선과 110볼트 전원선이 자리잡고 있다. TV의 USB단자를 통해서 전원을 공급받을 수 있으면 저 전원 단자는 필요없고 저걸 쓰려면 110V → 220V 아답터가 필요하다. 





크롬캐스트를 TV의 HDMI단자와 USB단자에 연결했다.





연결이 되면 위와 같은 화면이 나타난다. 크롬캐스트의 세팅과정은 간단하면서도 아름다운 화면이 이어져 그 자체로 상당히 즐거운 경험이 되어 준다.





이제 Nexus4에 미리 apk파일로 설치해둔 크롬캐스트 어플을 열고 셋업을 시작한다.  





셋업이 진행되고 크롬캐스트가 인식한 와이파이의 비밀번호를 입력해주는 등의 절차를 거친다. 사실 이 과정은 동영상으로 찍어뒀으면 정말 쉽게 이해하기 쉬울텐데 이 때는 그 생각을 못했음.





크롬캐스트 설치가 끝났다. 다시한번 재부팅이 필요하다.





요렇게. 정말 다양하게 화면이 변하는데 몇개는 못찍고 지나간 듯.





연결완료된 핸드폰 스크린 샷. 저 영상의 재생 버튼을 터치하면 대략적인 크롬캐스트의 사용법을 동영상으로 볼 수 있다.





연결 완료된 TV화면. 크롬캐스트 고유번호9240. 연결된 와이파이도 표시된다. 이제 핸드폰에서 유투브나 구글무비, 구글뮤직을 열고 원하는 컨텐츠를 공유하면 된다.





이것도 연결완료 화면..하여튼 연결과정 내내 TV화면은 수시로 바뀌고 예쁜 영상들을 보여준다.





동영상이야 당연히 깨끗하게 잘나와서 별도로 사진 찍지 않았고 버벅이거나 끊김도 없이 잘 재생된다. 재생시켜두고 나서 전화, 문자, 웹서핑 등 다른 작업도 계속해서 가능하단 점이 큰 장점. 구글 뮤직은 어떤 식으로 되나 싶어 해봤더니 그냥 음악만 나오는게 아니라 앨범 아트와 곡명, 아티스트명, 앨범명이 표시된다. 



크롬캐스트는 아직 국내 출시가 되지 않고 있고 앞으로도 될지는 불확실하지만 저렴한 가격으로 재미있게 활용할 수 있는 제품인 듯 하다. 유투브의 영상들을 즐겨보는 사람들이라면 본전을 뽑고도 남을 것 같다. 나는 유투브에 넘쳐나는 클래식 공연 감상에 주로 애용할 듯.



2013.10.31





안드로이드 4.4의 닉네임으로 결정된 키캣. 젤리빈에 이어 다음 버전은 키라임파이라는 얘기가 거의 확실시 되었으나 결론은 네슬레에서 나오는 쵸콜릿바 '키캣'으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이를 기념하여 네슬레에서는 안드로이드 버전 키캣을 한정판으로 출시하였는데 9월 말경부터 풀렸다는 이 녀석을 찾기는 생각보다 어려웠다. 그러다 마침 동네 편의점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7개를 사온 것이 이 녀석들.






평소 즐기지도 않는 단 것을 7개나 사온 것은 바로 이 것 때문이다. 안드로이드 키캣은 안쪽에 이렇게 10자리의 코드가 적혀있는데 이걸 구글 이벤트 페이지에 입력하여 당첨되면 신형 넥서스7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럭키7, 넥서스7이라 7개나 사왔던 것, 먹지도 않고 7개를 모조리 다 까서 입력해봤으나 결론은 전부 다 꽝 ㅋㅋ  하나 정도는 걸리겠지 하던 플레이스토어 5천원 이용권 조차 걸리지 않았고 구글+의 레퍼런스 커뮤니티에서도 당첨됐다는 사람을 못봤다. 일단 이 한정판 키캣 자체가 상당히 구하기 어려운 듯 하니 제보자는 더욱 드문 듯. 






어쨌든 뭐 버릴 수도 없고 비닐에 몽창 담아 냉장고에 넣어뒀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네슬레와 구글의 합작 마케팅에 놀아나고 있지만 이것도 뭐 소소한 재미라면 재미랄까.. 아마 일주일 정도면 안드로이드 4.4 키캣과 Nexus5가 공개될 것 같은데 과연 무엇이 얼마나 바뀐 새로운 OS가 소개될지 궁금하다. 



2013.10.07



 

Beethoven Masterworks / Deutsche Grammophon  / 50CDs + Bonus CD / Original Jacket Covers / 2013

 

 

최근 몇년간 클래식 음반 시장에는 이런 박스세트가 넘쳐나는 듯 하다. 최근 국내 회사에서 기획한 카라얀 60 / 70 시리즈를 비롯하여 데카 사운드, DG111, 빈필 교향곡집, 뭐 등등 이루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박스반들이 쏟아져나오고 있는데 단점이라면 일단 한번에 지르기는 가격이 부담스럽고 불필요하거나 기존의 음반과 겹치는 레파토리가 생긴다는 점과 앨범 한장 한장에 대한 애착이 덜하게 되고 결국 잘 안듣게 된다는 점인데 

 

반면 가장 큰 장점은 저렴한 가격으로 상당한 레파토리를 구축할 수 있다는 점. Go Classic에서 WAVE음원으로 구입하면 물론 이보다 저렴하지만 CD 1장에 3천원 정도밖에 들지 않으니 클래식 입문자들에게 박스반은 축복이지 않을까 싶다. 특히 이것처럼 오리지날 커버를 사용한 시리즈는 낱장으로 구입했을 때와 앨범 커버까지 같으므로 완전 편집반보다는 만족감이 더 높은 편. 사실 베토벤의 곡들은 음원으로나 음반으로나 이미 어느정도 가지고 있는데 막상 CD나 LP로 가지고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Go Classic에서 구입한 WAVE파일들은 사실 굽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만 역시 ALAC로 변환하여 아이팟 클래식에서만 듣게되더라는.. 

 

결국 계속 듣게될 음악은 CD로 구하는게 좋을 거 같단 생각에 이번에 DG에서 출시한 베토벤 마스터웍스 정도는 구해둬도 나쁘지 않을 거 같단 생각이 들었고 결국 어제 배송받았다. 한달도 전에 빌헬름 켐프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집과 바렌보임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전집을 지른지라 억울했지만 남아있는 바이올린 소나타 전 곡, 첼로 소나타 전 곡, 현악4중주 전 곡, 피아노3중주 전 곡, 아직 구입못한 교향곡 1,2,8번 등등을 따로 사는 거에 비하면 그래도 이게 남는 거 같았다는 자위를 하며..ㅠ

 

 

 

 



 

박스를 개봉하면 이렇게 LP미니어쳐로 담겨진 CD 51장이 빼곡히 들어있다. 요즘은 화려한 박스세트도 많은데 얘는 그다지 볼 건 없다. 그냥 음반만 빼곡히..

 

 

 

 



 

베토벤이 살아나서 사인해줬을리도 없고 그냥 인쇄된 베토벤의 사인.. 이 박스반도 나름 한정판이다만 어차피 이런 전집류는 앞으로 어떻게든 다시 나올 것이기에 목맬 필요는 없다. 워낙 박스반들이 많이 나오기에 냉철한 판단으로 지를 것과 패스할 것을 골라야하는 시대인듯 하다. 클래식에 막 관심갖는 사람이 있다면 그냥 무조건 박스반 사라고 하고 싶다.

 

 

 

 



 

안에 들어있는 얄팍한 책자. 별로 두껍지 않은 걸로 보아 별 내용없겠구나 싶었는데..

 

 

 

 



 

역시 별 내용없다. CD 순으로 트랙 및 녹음 정보가 담겨져있다. 

 

 

 

 



 

교향곡 전 곡. 아바도의 1,2번과 전설의 명반인 클라이버의 5,7번. 가디너의 3번 '영웅'과 4번, 번스타인의 6번 '전원'과 8번, 그리고 카라얀의 80년대 녹음 9번이다. 이 중에서도 이미 클라이버와 카라얀의 녹음은 기존에 갖고 있던 녹음과 완전히 겹쳐 버렸다. 알고 샀지만 좀 억울하다. 리마스터링의 차이가 있을리도 만무하고. 흠.. 9번은 카라얀 말고 다른 걸로 넣어주지. 

 

 

 

 



 

똑같은 녹음의 카라얀 지휘의 교향곡 9번. -_-;   같은 카라얀 지휘라도 60년대나 70년대 녹음이었음 좋았을텐데 같은 80년대 녹음이다. 

 

 

 

 



 

CD는 오리지널과 차이가 많다. 박스반이다 보니 CD의 디자인은 모두 통일이고 넘버링이 되어 있다. CD에 프린트된 녹음 정보도 개별 발매반이 당연히 더 풍부하다. 

 

 

 

 



 

다음으로 겹치는 음반 중 하나인 에밀 길렐스의 피아노 소나타. 원래 음반에는 8번 '비창', 13번,  14번 '월광'인데 여기에는 8,12,13,14가 들어있다. 좀 헷갈리는 부분. 그래도 DG 본사에서 직접 발매한 박스반인데 커버만 오리지널을 사용하고 음원은 멋대로 편집하진 않았을거라 생각해본다. 

 

 

 

 



 

한가지 참고해야 할 점. 베토벤 마스터 웍스를 판매 중인 일부 국내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피아노 소나타 전 곡이 수록되있다는 표기를 해두었는데 보니까 아니다. 사실 DG 홈페이지에도 'Complete'라는 표현이 없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위 사진의 8장 짜리 빌헬름 켐프 연주 전곡 녹음 음반과 비교해보니 비는게 제법된다. 뭐 물론 제일 유명한 8번, 14번, 17번, 23번 같은 유명 곡들은 누락되지 않았기에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매니아가 아니면 크게 문제되진 않을 것 같지만 교향곡, 바이올린 소나타, 현악 4중주 등등이 모두 Complete임에 반해 피아노 소나타에만 누락이 있는 건 다분히 고의적이라 보여진다. 

 

뭐 어쨌든 16만원 정도에 베토벤 레파토리를 끝냈다. 정말 좋아하는 곡은 어차피 개별 음반을 사서 더 들어보는게 정답이고 박스반은 한방에 빠르고 편하게 레파토리 구축을 해주는 것 같다. 얘네 리핑은 언제 하나.

 

 

                                                                             2013.03.02




※ 아래 문의 주신 분을 위해 피아노 3중주 CD 자켓 사진 추가



 

 

나의 첫 턴테이블 Victor QL-Y5


 

언젠가는 이렇게 될 줄 알았지만 결국 턴테이블을 들이게 되었다. CD나 MP3가 나오기 전에는 오로지 테이프로만 음악을 즐겨왔기에 사실 난 LP세대라고는 할 수가 없다. 그래서 LP매니아들이 가지는 옛 소리에 대한 향수나 아날로그의 따스함 따위는 느껴본 적이 없었는데도 굳이 이렇게 턴테이블을 들이게 된 것은 결국 '호기심'이 아니었나 싶다.

 

CD가 음질이 나으냐 LP가 나으냐 따위의 케케묵은 논쟁은 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위에 언급했듯 LP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기에 논할 자격도 없다. 대체적으로 보자면 LP로도 아주 우수한 음질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상당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게 정설인 듯 한데 턴테이블만 해도 몇백만원 짜리도 있는데다 카트리지와 바늘만 해도 수십~기백 만원이 즐비하니 분명 만만치는 않아 보인다. 이래저래 CD는 비교적 저렴하게 훌륭한 음질을 들을 수 있으나 LP로 그만한 음질을 구현하자면 아무래도 일이 커질 것은 뻔했다. 그래서 LP에서 지나친 음질 욕심은 버리기로 하고 시작~~

 

턴테이블 부터 구하기 시작하니 의외로 새제품이 요즘도 나온다는 걸 알게 됐다. 요즘 새롭게 LP붐이 일다보니 인켈(수출브랜드로는 셔우드)을 비롯해 데논, 마란츠 등에서도 저렴한 턴테이블들이 신품으로 발매 중이고 개중에는 LP음원을 MP3 포맷으로 USB에 저장할 수도 있고 포노앰프가 없는 요즘 앰프들을 고려하여 포노앰프까지 내장된 기종들도 있었다. 하지만 본가에 있는 켄우드 인티앰프에 포노입력단이 있는지라 포노앰프 내장형은 불필요한 가격인상 요인일 뿐이며 MP3변환 기능은 정말 블필요. 어차피 LP는 LP로서 즐기는 게 목적이며 굳이 디지털화할 거면 도이치그라모폰이나 데카에서 나오는 LP음반 리마스터링 버전 CD를 사는게 낫다. 일단 이러저러한 거 다 떠나 요즘 모델들은 너무 말끔하거나 아니면 가전제품 같은 느낌이 강한 디자인이었다. 어차피 불편을 감수하고 사용해보자는 것인데 모양이라도 맘에 드는 걸로 구하고 싶었다.

 

 

 

 

잠시 고려했던 인켈의 턴테이블. 테크닉스 제품을 많이 참고한 디자인으로 모양 자체는 맘에 들었지만 중고로 구하기로 해서 탈락.

 

 

 

어쨌든 요즘 나오는 턴테이블들은 모두 패스. 같은 값이면 중고 명기를 구하는게 나을 듯 해서 열심히 장터 매복 시작. 30만원대에서 적당한 물건을 구하기로 했고 조건은 이왕이면 고풍스러운 우드 베이스, 벨트 교체 걱정안해도 되고 회전 속도 정확한 다이렉트 드라이브 방식, 고출력 MC카트리지인 데논 DL-110 장착 가능할 것(이것때문에 프로젝트 오디오의 데뷰 시리즈는 탈락), 더스트커버 있을 것. 뭐 이 정도였는데 걸려든 것이 바로 Victor QL-Y5였다.

 

 

 

 

 

Victor QL-Y5

 

81년 발매 당시 기준으로 69,800엔이니 당시엔 그래도 비싼 모델이이었다. 위에 적은 요구사항을 대부분 충족하며 톤암의 이동부터 업다운, 재생 종료 후 톤암의 원위치 등이 자동으로 이루어져 사용에 편리하다. 사실 고장날 부분이 없는 수동 모델이 더 좋지 않을까 했는데 써보니 역시 자동이 편하긴 편하다. 완전 수동의 경우 재생이 끝나도 LP는 계속 돌고 톤암도 그자리에 계속 있으니 음악 듣다 잠이라도 들까봐 여간 신경쓰이는 것이 아닐 듯 하다.

 

 

 

 

부분부분 사진을 보자. 구입할 때 같이 따라온 카트리지는 Sumiko의 엔트리급 MM타입 Oyster. 제조사 권장 침압은 2.3g~ 바늘 상태는 거의 새 것이라 몇 년은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신품 기준 10만원 정도의 가격이지만 가격대비 성능이 좋다고 알려진 제품으로 비록 저가형이지만 보통 번들로 많이 붙어 나오는 5만원대 미만의 오디오테크니카 제품이 아닌 것만으로도 일단 만족. 카트리지를 바꾸면 훨씬 좋은 소리를 들려주겠지만 일단 이걸로 충분히 들어봐야 좋아져도 좋아진 걸 느끼지 싶다. 환상적인 음질보단 LP자체의 소리로 만족하기에 아직 큰 불만은 없다. 카트리지만 해도 몇백만원씩 하는 것들도 있으니 큰 욕심은 부리지 않는 것이 좋을 듯.

 

 

 

 

 

이 턴테이블 QL-Y5와 좀 더 고급형인 QL-Y7의 특징인 'Electro-Dynamic Servo Tone Arm' 시스템. 톤암의 상하좌우 움직임 및 침압 및 안티스케이팅 조정 등이 모두 전자식으로 이루어 지는 방식이다. 사실 30년이 넘은 모델인지라 전자식 구동 방식이 왠지 불안했지만 해외 사이트에서 고장이 정말 안난다는 글들을 보고 믿어보기로 했다. 어차피 같은 수치로 맞추어야 하는 침압과 안티스케이팅은 전자식이다 보니 하나의 다이얼로 같이 조정되며 재생 중에도 조정이 가능하다. 어쨌든 이 전자식 톤암이 당시로서는 꽤나 자랑스런 기술이었는지 제품 카달로그의 양면을 할애하여 자세히 소개해뒀다. 





 

 

 

 톤암의 높이도 노브를 돌려 상하로 +-3mm 범위에서 조정할 수 있다. 다양한 카트리지와 플래터 사용이 가능하단 점에서 기능의 한계로 턴을 굳이 업그레이드 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아래 우측 하단 사진)







 

지금부터는 간단 사용 방법. 턴테이블이 연결된 앰프의 전원을 켜주고 소스 기기를 포노로 선택한다. .

 

 

 

 

그 다음은 턴테이블의 전원을 켜주고 음반을 올린 다음 스타트 버튼을 눌러주면 LP판이 돌기 시작한다.

 

 

 

 

이제 톤암을 움직여 바늘을 음반 위로 위치시킨다. 수동모델이면 그냥 손으로 옮겨주면 되고 이 모델은 좌우방향 버튼을 눌러주면 움직인다. 난 LP를 거의 구경도 못했던지라 그냥 닥치고 첨부터 들어야 하는 줄 알았는데 음반에 골을 보면 트랙을 확인할 수 있어서 원하는 곡 부터 재생할 수 있다. 물론 정확히 한번에 딱 맞추기는 아직 좀 어렵다;;

 

 

 

 

 

바늘을 원하는 위치에 두고 업/다운 버튼을 누르면 톤암이 내려가며 바늘이 LP의 소리골을 읽기 시작한다. 스피커를 통해 음악이 흘러나오며 간간히 먼지 덕분에 타닥타닥 장작타는 소리도 들려온다. 사실 LP의 단점 중 하나는 먼지나 습기 등으로부터 관리를 철저히 해줘야한다는 점인데 난 장작타는 소리도 그냥 그러려니 하니 별로 신경쓰이지 않더라는.

 

 

 

 

재생이 되면서 바늘은 음반의 안쪽으로 점점 흘러가고 이걸 보고만 있어도 즐겁다. 소리는 확실히 CD에 비해 날카롭지 않고 오래 들어도 귀가 피곤하지 않다. (음질이 더 좋다는 얘기는 아님) 이런게 LP의 매력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최근 한 달동안 구한 음반들. 이 중 제일 처음으로 산 Lola Bobesco의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좌측 맨 위)을 제외하고는 모두 중고다. LP는 한 장에 거의 3-5만원대라 웬만해선 중고로 구하는게 나을 듯 하다. 이제 겨우 16장 인데 솔티가 지휘한 말러 교향곡 8번이랑 칼뵘 지휘의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은 보유하고 있는 CD와 겹쳐버렸다. 시간나면 원반인 LP와 리마스터링을 거친 CD를 비교해 보고 싶은데 시간도 없고 사실 뻘짓이라.. -_-;  이 중 먼지도 많고 가장 상태가 안좋은 것이 빌헬름 켐프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14번/23번 앨범인데 CD로 갖고 있는 에밀 길렐스의 연주에 비해 무척 편안하고 부드러워 가장 손이 많이 간다. 결국 켐프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집 CD를 주문해버리고 말았다..

 

 

 

 

 

미개봉 중고로 구한 뒤 무한 대기 중인 데논 DL-110 고출력 MC카트리지. MM단자만 있는 앰프에도 물릴 수 있는 고출력 MC카트리지다. MC카트리지의 음질을 느껴보고 싶지만 일단 참는 중. 지금 달려 있는 카트리지로 충분히 들은 후 투입 예정.

 

 

 

 

 

금단의 영역.. 그래도 행복하다.. ㅠㅁㅠ

 

 

13.02.11 포항

 

 

 

 

 

 

 

 

 

 

 

 

 

 



 오징어 잡이에 쓰는 건가. 원색의 화려함이 끌렸다. 똑딱이 중 센서 크기로는 거의 갑인지라 어느정도 얕은 심도 표현이 가능하다. 최대 개방값이 망원 쪽에서는 어두워지는 점이 아쉽다만 이 정도도 훌륭하다.







 정박 중의 어선의 노란 전구. 전구 쪽의 하이라이트도 급격하게 무너져 내리지 않고 안정적이다. 2000년대 초반 디카들이 시장에 쏟아져 나올 당시 몹쓸 것이라 여겼던 가장 큰 이유가 하이라이트 부분의 좁디 좁은 계조였는데 요즘은 똑딱이로도 이 정도는 되어 준다는 점. 






 센서도 크고 화소도 높고 똑딱이에서 이정도 디테일이라. 이미지 품질 자체는 나무랄 데가 없다. 꽤 어둑우둑한 때에 찍었는데 노이즈 억제도 훌륭하다. 







 물에 젖은 사물의 채도는 높아지게 마련이고 물의 반사는 단조로운 평면을 입체감있게 꾸며준다. 튜브의 파란색은 바닥의 붉은색과 선명하게 보색 대비를 이끌어내어 셔터를 눌러보고 싶게 만든다.






 흑백 변환 테스트. 어차피 흑백 모드로 찍는 경우는 거의 없어서 흑백 모드 따위는 테스트 안했고 찍은 사진 중 하나 골라 포토샵에서 변환. 레벨값 조정, 닷징, 버닝 해줌. 






 이번엔 근접샷 테스트. 노르웨이의 Helle에서 만든 아웃도어용 나이프 'Temagami'

칼날의 두께도 두툼한데다 자작나무로 만든 손잡이 끝까지 날이 이어지며 3개의 리벳으로 고정되어 무척이나 듬직하다. 어차피 저걸로 산에 가서 사과 깎아먹는 거 말고 대단한 걸 하진 않겠지만 남자들의 쓸데없는 소유욕을 자극하게 할 만큼 멋진 칼이다. 반사가 심한 칼날 부분의 계조도 급격히 무너지는 부분 없이 안정적이다. 난 사실 디지털 카메라에서 가장 예민하게 보는 부분이 계조다. -_-; 



마지막으로 파노라마 테스트. 파노라마 설정을 하고 LCD의 안내에 따라 좌에서 우로 돌리며 연이어 찍으면 자동으로 합쳐주고 보정해준다. 요즘 스마트폰들도 대부분 가능한 기능이지만 신기하긴 신기하다. 예전엔 파노라마 사진을 제대로 찍으려면 핫셀브라드 XPAN같은 '특수 카메라'에다가 주변부와의 노출차를 보정해주는 Center ND 필터에 수평계 등등 별게 다 필요했는데 세상 참 좋아진 듯. 



막샷은 여기까지. 아직 제대로 써보지 못해서 더이상 올릴만한 샘플샷이 없다. 일단 가볍고 작고 화질 좋고 거의 대부분 맘에 든다. 망원에서의 최대 개방값만 조금 좋았다면..물론 가격이 더 올라갔겠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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