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07.  포항

요근래 주말 중 날씨가 양호했던 7월의 마지막 일요일. 가족들과 남산에서 간단히 트래킹을 즐기고 돌아와 바로 카메라를 챙겨들고 모교인 포항체절중학교로 향했다. 스포츠토토 후원 전국 유소년야구대회가 열리고 있는 기간이었고 그 다음주엔 남해안 일대를 3일간 둘러보고 서울로 올라갈 예정이라 시간은 이 날 하루 뿐이었다.

한동안 바깥 바람을 쐬지 못한 AF85mm1.8과 AF180mm2.8ED를 챙겨들고 운동장에 도착하니 광주 화정초등학교와 순천 남산초등학교의 경기가 진행 중이었다. 아마 야구는 7회까지로 알고 있었는데 초등학교 야구는 한 이닝이 더 짧은지 나름의 전광판(?)에는 6회까지만 표시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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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투 중인 광주 화정초등학교의 투수. 조금은 자신 없는 투구로 감독의 질책을 받고 마운드를 내려오긴 했지만 수차례 위기를 넘기며 순천 남산초등학교의 타선을 중반까지 무실점으로 묶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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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펜에서 몸을 푸는 화정초등학교의 투수. 직구를 던지기 위한 그립을 한 채 투구판을 밟고 와인드업하는 모습에서 어린 나이답지 않은 비장한 표정과 진지함이 인상적이었다. 이 녀석은 첫 번째 사진의 투수에 이어 등판해 경기 종료까지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체격 조건도 좋아보였고 또래의 초등학교 선수들이 쉽사리 배트를 갖다대기 어려운 묵직한 직구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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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락 아웃! 자기 스윙을 하지 못하고 엉거주춤 당하고만 남산초등학교 타자. 시종일관 화정초등학교의 마운드에 눌린 남산초등학교는 수비에서도 매끄럽지 못한 플레이로 주지 않아도 될 실점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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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치의 사인을 주시하고 있는 화정초등학교 포수. 마스크를 썼지만 어린 나이 답지 않은 예리한 눈빛이 인상적. 투수를 리드하고 수비 라인을 조율할 수 있어야하는 포수라는 직책에 어울려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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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아직은 엄마가 보살펴줘야하는 어린이 :)   무실점으로 한 이닝을 마치고 들어와 마스크와 보호구를 벗으며 타격 준비하는 아들의 땀을 닦아주는 엄마는 아들이 대견하기도 하겠지만 학원 스포츠계에서 만연한 뒷돈 문화 등을 떠올리면 이 부모의 고생길도 훤하다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음은 슬픈 현실이 아닐까. 상위 학교 진학 혹은 프로 입단에 올인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 오는 여러 병폐를 막으려면 결국 클럽 스포츠의 형태로 변화되어야 할텐데 그것도 말처럼 한 순간에 쉬이 바뀌기는 어렵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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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도 할 건 다 한다. 다음 타순의 타자는 대기 타석에서 상대 투수의 투구 동작에 호흡을 맞추며 배팅 연습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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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시타가 터지고 1루 주자는 2루로 내달린다. 조금 의아했던 것은 생각보다 안타나 득점이 이뤄져도 선수들의 표정은 큰 변화가 없었다는 점이다. 화이팅이나 패기보다는 군기가 바짝든 그런 딱딱한 모습은 보기에 다소 안쓰러워 보이기 조차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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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죽한 전라도 사투리로 열심히 진두지휘 중인 화정초등학교 감독님. 더위 때문인지 흥분한 탓인지 얼굴까지 시뻘개져가며 수비위치부터 투수의 볼배합까지 큰 소리로 지시하고 있었다. 사실 감독님의 표정과 흥분도를 봐서는 지고 있는 팀의 감독으로 보였지만 투수들의 호투와 타선의 집중력, 상대 실책을 이용하는 효율적인 주루 플레이로 이 날 화정초등학교는 남산초등학교에게 영봉패를 안겨주며 완승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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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의 공이 날아들기 직전의 순간. 한 점도 못내고 영봉패를 당했지만 순천 남산초등학교의 선수들은 벤치에서도 쉴새없이 화이팅을 외치며 최선을 다했다. 사진으로 보니 두 학교의 유니폼이 아마 선수단임을 감안하면 참 세련된 편이라는 생각이 든다. 봉황기나 청룡기 중계를 간혹 보면 정말 너무하다 싶은 유니폼들도 많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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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야구 특유의 맞으면 '땡강~'하는 소리가 나는 알루미늄 배트들. 야구 경기를 보는 내내 만화 '까치'가 생각났다. ㅎㅎ


중학교 때 우리 학교 야구부가 결승에 진출해서 영남대학교 운동장까지 가서 응원했던 이후 아마 야구를 직접 지켜 본 것은 처음이지 않나 싶었다. 애(?)들 답게 어이없는 실수도 하고 귀여운 플레이도 하길 기대하고 찾아간 자리였지만 생각보다 실력도 뛰어나고 너무 진지해서 원하던 컨셉의 사진을 얻지는 못한 것 같다. 이 날 만난 아이들 중 10년 뒤 이름을 휘날릴 친구가 나타날지 사뭇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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