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10.19 녹천





2000년 가을 영종도


이 때만 해도 인천공항을 건설 중인 때라 월미도에서 배를 타고 건너 갔었다. 요즘도 이렇게 갯벌에서 조개를 캘 수 있는지.

사진찍고 아주머니들이 주시는 소주를 두어잔 받아마셨다. 진흙이 묻은 호미로 콕 찍어 주시던 사과 한조각이 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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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6 서울대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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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5  서울놀이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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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5 서울놀이공원


할아버지가 안계셔서 그런가 2000년도에 별 생각없이 찍었던 이 사진들을 다시 보니 왜일케 애뜻한건지 모르겠다. 이게 핏줄의 정인가 싶은것이..ㅠㅁㅠ    저렇게 눈에 넣어도 안아픈 손자 손녀들을 데리고 다니시던 할아버지 분들의 마음은 어떨까. 나 왜 이러지? 나이가 들었나 정말 이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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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곡의 골목길에서 만난 아이. 눈을 감았지만 그 때는 인화도 하지 않았던 이 사진이 왜 이렇게 맘에 드는지 모르겠다. 노출 완전 오버에 현상도 오버라 톤은 개판이지만 투박한 느낌이 나쁘지 않다. 흑백 사진을 처음 시작하던 초기의 네가티브들은 지금에 와서 새로운 가르침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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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지 다듬던 할머니. 난곡의 좁은 골목에서는 할머니, 아줌마들이 나와서 마주보고 앉아 얘기를 나누며 나물을 다듬거나 하는 모습들이 흔했다. 집안이 좁고 어두워서이기도 했겠지만 재개발의 열풍이 몰아치기 전 난곡은 사람사는 냄새가 풍기는 정가는 동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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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곡의 경사가 심한 골목길은 노인들이 다니기에 절대 편하지 않았고 겨울에 눈이라도 와서 얼어붙으면 자빠지기 딱 좋았다. 골목을 지나다보면 염화칼슘 보관하는 집이라고 써진 집들이 한 두군데씩 있었다. 지금와서 보니 이 사진을 찍은 것도 가상하다. 사실 이 때는 왜 난곡에서 못사는 사람들 사진을 찍어야하는지에 대한 개념정립이 안된채로 헤매이기만 했다. 도대체 왜 이런 사진들을 찍어야 하는지 왜 좋은 사진인지 이해가 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중학교 때 부터 사진을 찍어왔지만 대학교 1,2학년 때 난 내가 어떤 사진을 해야하는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작가도 아니고 내가 어떤 철학을 가지고 사진을 대해야한다고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지만 난 내 사진의 색깔을 찾고 싶었고 여러가지 시도를 해봤고 다양한 책들을 읽어 나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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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촉 사고. 세월의 힘이란 이런 것인가. 이런 장면 조차도 아련한 추억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흑백 사진으로 담은 스냅들은 꽤나 오래전의 장면을 보는듯한 착각을 준다. 그래도 21세기인 2000년도의 사진인데 무척이나 오래된 모습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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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름한 간판의 오락실. 오락실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모습이지만 안타깝게도 난 학창시절 오락실을 들락거린 기억이 별로 없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도 그다지 게임을 즐기는 편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학교 앞 문방구 등에서 많이들 사먹었다는 달고나, 뽑기 등과 더불어 보편적인 추억을 공유하지 못하는 것 중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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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난곡에서 만난 희망들. 이 아이들을 만나기 전만 해도 난곡이라면 우울한 달동네..이거 하나만 생각했었다. 뭔가 진지한 태도로 뭔가의 스토리를 담아야겠다는 강박관념이 강했던 난곡 촬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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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에 들러서 쭈볏쭈볏 기웃거리다 선생님에게 애들 사진 좀 찍어도 되겠냐고 물었을 때 허락해주시면서 했던 말이 있었다.

"사진 제목에 달동네 아이들. 이런 식으로 안하실거죠?"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나올 수 없는 당부를 하던 그 유치원 선생님에게서 자란 아이들은 복된 인연을 만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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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져간 필름도 하필 감도 100인 TMX라 노출도 안나오는 상황에 이 녀석들은 부지런히 카메라 앞에 모여든다. 여기저기서 '나도 찍어주세요~','저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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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이렇게 부대끼며 어울리고 장난칠 수 있는 친구들과 그러한 환경이 갖춰질 수 있다는 것은 아이들에게나 이 사회에게나 행복한 일이다. 어린 나이에 맞지 않게 학원에서 시달리고 노는 시간엔 놀이터가 아닌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요즘 아이들의 성격 형성은 분명 앞으로 큰 사회적 문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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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을 나서며...또 오라고 인사를 하던 아이들. 사진 인화해서 또 올게~ 라며 약속했지만 1년 후  내가 다시 찾았을 때 유치원은 벽돌 더미로 변해있었고 아이들은 어디로 갔는지 알길이 없었다. 재개발 결정이 내려진 후 난곡엔 빨간 스프레이로 '철거'란 두 글자가 휘갈겨졌고 분위기는 흉흉했다. 그렇게 난곡에 대한 재개발 결정이 내려지고 집들이 철거되기 시작하자 그제서야 나는 번쩍 드는 생각이 있었다. 왜 그동안 난곡에 대한 사진을 더 많이 찍어두지 않았는가 하는 후회와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바로 그거였다. 기록. 내게 있어 가장 가치있는 작업은 기록으로서의 사진이었다. 이 후 몇년간 나는 아마추어임에도 아마추어로서의 한계를 벗어넘고 싶었고 다큐 사진에 푹 빠져 많은 시도와 고민을 하게 되었는데 그 시발점이 된 사건이 바로 난곡의 재개발이었다. 난곡은 어쩌면 내 사진의 방향이 된 기록으로서의 가치를 알려주고 사라진 소중한 공간일지도 모른다.

2000.05.17 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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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5.14

날씨가 서서히 더워지기 시작하던 5월의 주말, 공원을 찾은 사람들의 여유
8년도 넘게 지난 이 필름들을 들여다보니 사람에게 다가가 사진을 찍어본 지가 언제인가 싶다. 현상, 노출도 엉망일 만큼 기교도 부족하던 시절의 사진들이지만 필름 속에 사람이 담겨있다는 이유로 새롭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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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4.16  덕수궁

지금은 경복궁, 창덕궁은 물론 남한산성을 비롯한 성곽유적에서도 이와 같은 행사가 흔해졌지만 내가 대학에 갓 입학했던 2000년에는 아마 덕수궁에서의 수문장 교대식이 처음이었던걸로 기억한다. 혹자들은 규모의 화려함과 절도의 엄격함도 없는 옷입고 줄지어 왔다갔다 하는 엉성한 병정놀이같은 코스프레라고도 혹평하지만 조금만 더 신경쓴다면 충분히 구경거리로 통할 수 있는 문화 상품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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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4.05 경복궁

서울에서 무척 좋아하던 곳 중 하나였던 경복궁. 식목일을 맞아 촬영을 갔을 때 만났던 어느 꼬마. 벌써 8년이 훨씬 지난 이 시점에서 보니 좀 촌스러워보이기도 하다만 같이 온 엄마와 함께 꽤나 멋 좀 부린 차림이었다. 한 컷 찍어도 되겠냐고 물어보자 엄마는 그러라고 했고 꼬마는 알아서 포즈를 취했었다.


p.s. 필름에 기스와 먼지가 꽤나 생겼는데 대학시절 필름들은 왠만하면 그 분위기 그대로 놔두고 스캔하고자 한다. 물론 ICE가 되지 않는 흑백필름이라 일일히 작업해서 없애기도 귀찮기도 하고..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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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가을  인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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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가을  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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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0월 안국동
근육질 몸매에 썩소까지 겸비한 될성싶은 떡잎을 만나다.

이 날의 촬영 메모
"안국동 근처 동네..별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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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4월 회기역

 구걸하는 할머니라곤 생각도 못할 정도로 꽤 말쑥하신 분이셨는데 두 손엔 몇 푼의 동전이 들어있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난 다짜고짜 카메라를 들이대고 사진을 좀 찍겠다고 말씀드렸고 앞 뒤로 오가며 3-4컷을 눌렀다. 그리고 인사를 하고 천원짜리 한장을 드렸던 것 같다. 할머니는 화를 내지도 슬퍼하지도 그냥 처음과 같은 표정으로 카메라를 대했다.

상당히 부끄러워 지는 사진이다. 앞에서 찍은 컷은 차마 올릴수도 없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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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4월 2일  인사동

 서울로 상경 후 일찍부터 다녔던 곳. 곳곳에 카메라를 들이댈 거리들이 있었고 가벼운 마음으로 걷기 좋은 곳이었다. 문제는 맛있는 밥집이 드물다는 것이었는데 그 것을 알 때쯤 부터 인사동에서 처음 느꼈던 감회도 사라지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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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3월 26일 올림픽공원

 처음으로 흑백 사진을 찍었던 날. 필름이 흑백이라는 점외에 전혀 새로운 기분이 들지 않았던 날이었다. 벌써 7년이나 지난 이제와 생각해보니 모르는 사람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기 시작한 첫 날이었다. 그 전에 절대 생각도 못하던 일이었는데.  이 다정한 남매는 얼마나 자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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