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서 부터



1. Lamy Safari EF Nib


국민 만년필, 입문용 만년필의 대표 주자 사파리. 다양한 칼라가 있지만 역시 펜촉까지 까만 챠콜이 제일 멋있다. 가격이 저렴하다보니 필기감도 약간 서걱거리고 플라스틱 재질 등 전체적으로 고급스런 느낌은 아니지만 획을 긋는 듯한 필기감이 꽤 괜찮고 종이도 별로 안가리는데다 잉크 흐름도 적당하고 디자인도 깔끔하고 여러가지 면에서 아주 실용적이고 만족스런 만년필. 아버지께서는 몽블랑보다 오히려 더 쓰는 맛이 있다고 평하시기도 하셨다. 블랙잉크 카트리지를 넣고 수기로 작성해야하는 공식적인 문서에 주로 사용하고 있다.



2. Parker 21


Parker 51의 염가형으로 나온 제품으로 기본적으로 큰 차이는 없다. 후드닙 방식으로 뚜껑을 연 상태에서도 잉크가 조금은 덜 빨리 마르긴 하는데 촉이 너무 굵어서(닙 정보가 표기되어 있지 않은데 MF정도는 될 듯) 필기는 불가능하고 사인용으로 좀 썼는데 요즘은 잉크를 빼뒀다. 아무래도 아래의 파커 75가 너무 훌륭하다보니 얘는 손이 안간다. 



3. Parker 75 XF Nib


부모님이 대학원 커플 시절 커플 만년필로 사셨던 것으로 배럴이 은으로 된 당시로서 꽤 고가형이었다. 잉크 흐름이 부드럽고 필기감이 매끈하고 XF닙이라 작은 글씨에도 유리해서 로디아 노트에 메모하는 용도로 사용 중. 여기에는 파커 Quink Blue Black을 넣어뒀는데 약간 푸른빛이 도는 남색에 가까운 색이라 결재 문서에 사인을 해도 튀지 않고 복사했을 때만 복사본임을 인식할 수 있는 수준이라 사인용으로도 애용 중. 개인적으로 가장 아끼는 만년필.



4. Waterman Expert F Nib


워터맨의 스테디셀러. 금촉이 아닌 금도금촉임에도 상당히 부드러운 필기감을 보여주고 잉크 흐름도 좋다. 황동으로 만들어진 배럴은 묵직하니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긴 하는데 다른 만년필들보다 종이를 좀 가리는 것 같다. 여기는 워터맨 Serenity Blue 잉크를 넣어서 인쇄본 위에 첨삭이나 메모를 하는 용도로 주로 사용하고 있다.



그냥 딱 파커스러운 디자인의 만년필. Parker 21. 

Parker 21은 Parker 51의 대성공 이후 일종의 보급형으로 1948년에 첫 출시된 모델로 디자인상의 차이는 거의 없고 파커 51의 레진 계열에서 재질이 플라스틱으로 바뀌면서 좀 더 저렴해졌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단순하고 둥글둥글한 외형이 P-47 Thunderbolt를 보는 듯해 처음에는 참 멋없다 싶었는데 자꾸 보니 이 단순함에서 실용이 느껴진달까? 은근히 매력적이기도 하다. 





이게 2차대전 당시 강력한 엔진과 두터운 철판으로 인한 맷집을 자랑하며 활약한 P-47 썬더볼트. 단순무식한 디자인이 파커 21과 비슷한 느낌. 





뚜껑은 부드럽게 체결되지만, 워터맨처럼 딸깍하지도 않고 스크류식도 아니라 열리기 쉬워 주머니에 넣고 다니기는 상당히 부담스럽다.





몸통안에는 요렇게 생겼다. 펜촉을 잉크병에 담그고 뒷부분을 4차례 누르라고 되어있다. 요즘 만년필들의 스크류식에 비해 누를 때마다 들어간 잉크가 다시 새어나가서 제대로 들어가긴 하는지 못미덥지만 한번 넣고 나면 꽤 오래 쓰는걸로 봐서 잘 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 





펜촉은 노출된 면이 거의 없는 후드닙 타입. 뚜껑을 열어두고 오래있어도 잉크가 잘 마르지 않도록 하기 위함인데 요즘은 이런 형태의 만년필이 많지 않다. 닙 정보가 따로 표기되어 있지 않은데 적어도 M 이상일 것으로 예상될 만큼 글씨가 아주 굵다. 다이어리나 수첩에 작은 글씨를 쓰기는 거의 불가능하고 이면지 따위에 뭔가를 기안하며 휙휙 갈겨 쓰기에 좋다. 닙의 느낌은 상당히 둥글둥글하고 잉크 흐름도 줄줄줄 원활하다. 잉크 소모량도 상당히 많은 것 같다.





대략 악필이지만 시필샷. 저기 써진대로 잉크는 파커 큉크 블랙. 글씨가 워낙 굵다 보니 얘는 결재용으로만 사용 중인데 그 용도로는 딱 인듯 하다. 너무 굵어 마땅히 용도를 못찾던 중 얼마전부터 뜬금없이 날인대신 전 직원 서명으로 바꾸라는 지시가 내려져 신나게 사인해주는 중. 복사본 확인 차원에서라 사인용으로는 블루블랙 잉크로 하나 주문해뒀다.



Waterman Expert F Nib & Waterman Ink Serenity Blue



가장 오래쓰고 있는 만년필인 Waterman Expert. 그동안은 흔하디 흔한 Parker Quink Black만 넣고 써왔는데 워터맨엔 워터맨 잉크를 써보고 싶어 병잉크를 하나 들였다. 블루 계통에서 상당히 인기있는 Serenity Blue. 과거에 플로리다 블루로 나온 색인데 이름과 포장이 다소 바뀌었다. (예전게 더 이쁜듯)


어쨌든 칙칙한 Black과 Blueblack만 쓰다가 파란색을 넣어보니 산뜻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이다. 본격 필기용보다는 회사에서 흑백으로 출력된 서류에 첨삭하거나 하는 용도로 쓰면 좋을듯.



2015.01.23

퇴근 후 본가에 잠시 들러서 노닐다가 책상 위에 엄마 만년필이 놓여 있는 걸 발견했다. 요즘 만년필로 금강경 필사를 하신다더니 그 만년필인가보다. 어릴 적부터 봐왔던 만년필이었지만 그 때는 크게 관심이 없다가 오늘은 좀 유심히 살펴보며 이면지 위에 몇 자 휙휙 갈겨봤다. 파커답지 않게 글씨가 제법 가늘게 써지기에 닙을 봤더니 14K에 XF. 이정도면 분명 그 당시엔 제법 고가의 만년필이었으리란 예감이 든다. 


만지작 거리고 있으니 아버지께서 '그거 하나 더 있다.'고 하시며 서랍장을 뒤지기 시작하셨다. 어릴 적 부터 '엄마 만년필'로만 알고 봐왔던 만년필인데 이게 하나가 더 있었다니. 궁금 하다고 찾아 달라고 했더니 아버지도 오랫만에 생각이 나셨는지 서재 부터 안방 서랍장까지 뒤지시기 시작하셨다. 내려놓은 커피는 다 식어가는데 한참을 뒤지시더니 안방에서 가지고 나오신 주머니 안에는 부모님이 학창 시절에 쓰셨던 Parker, Pilot 같은 여러자루의 만년필이 들어있었고 그 중에 엄마 만년필과 똑같은 이 만년필이 한 자루 있었다.


바로 요 녀석.





구글을 통해 확인한 모델명 : Parker 75 - Stering Silver Cisele



좀 낡았다 뿐이지 요즘 나오는 파커 소네트 라인과 비슷한 음각 처리된 격자 무늬의 베럴과 늘씬한 라인은 세월이 지나도 무척 세련된 느낌이다. 거기에다 베럴과 뚜껑의 재질이 무려 은! 순은 다음으로 불순물이 적으면서 가공성을 갖춘 표준은(Stering Silver)을 사용한 모델이다. 예상대로 꽤 고가의 모델인 듯 구글에 자료도 엄청나게 나온다. 이베이를 뒤져보니 여전히 거래가 꽤 활발한데 제일 비싸게 올라온건 무려 $349. 상태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150~200사이에 형성된 매물들이 제일 많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가격대로 거래되고 있는데 4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정도 가격을 유지하고 있는걸 보면 70년대 말 당시 우리나라 소득수준과 물가수준을 논외로 하고라도 꽤 고가였을듯 하다. 이 비싼 만년필이 왜 똑같은 것으로 두 자루나 있냐고 여쭤봤더니 대학원 시절 두 분이 사귀실 때 똑같이 사서 사용하시던 즉, 요즘 말로하면 '커플 만년필'이었다고 한다. ㅎㅎ





요즘도 어지간해서는 EF Nib 이하로는 보기가 어려운데 얘는 무려 XF Nib이다. 부모님이 학생 시절이었던 때 산 것이라 깨알같은 노트 필기를 염두에 뒀던 것일까.




두 분의 추억이 어린 40년이 다되가는 만년필을 내가 가져와도 되나 싶었지만 호기심이 발동해 가져가서 써보겠다고 세척을 시작했다. 펜촉을 물에 담그니 검은 잉크가 끝도 없이 나온다. 보통 여러차례 컨버터로 물을 빨아줬다 빼내면 더이상 잉크가 안나오는데 얘는 정말 한참을 반복해야 했다. 이 잉크는 언제 마지막으로 들어갔던 잉크였을지도 궁금했고 멀쩡히 잘 써질까도 걱정됐다. 내가 그렇게 촉을 청소하는 동안 아버지는 베럴을 치약으로 닦아 광택을 살리고 계셨다. 






청소를 다 하고 제 짝인 Parker Quink Black을 넣어주고 집에 돌아와 로디아 노트에 오늘자 일기 비슷한 내 잡설을 또 몇자 끄적여봤다. 초반에는 오래 안써서 그런지 다소 흐름이 원활하지 않더니 금세 부드럽게 술술 잘 나온다. XF Nib이라 그런지 파커 치고는 글씨도 가늘게 써져서 이런 줄 노트나 다이어리에도 충분히 쓸만한 것이 맘에 든다.지금도 세 자루의 만년필을 쓰고 있지만 이 파커 75는 메인으로 쓰기에도 손색이 없는 디자인과 필기감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나로서는 알 수 없는 두 분의 젊은 시절 아름다운 추억과 이야기가 깃들어있을 소중한 만년필이라 더욱 가치가 느껴지는 이 만년필. 나도 오래오래 간직해야겠다..



p.s. 너무 간만의 포스팅이라 글도 안써진다. 



2015.03.10. 





Nib 부분 접사샷 추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09.12.12  서울


새로 구입한 MOLESKINE Weekly Notebook Planner 2010 과 2년된 Ruled Notebook..둘다 포켓사이즈 하드커버

2007년 연말에 처음 구입한 MOLESKIN Ruled Notebook. 고무 밴드로 여며진 단단한 검정 하드커버의 몰스킨을 손에 쥐면 왠지 느낌이 참 좋았다. 처음엔 만년필로 써보려다 워터맨 F촉의 투박한 굵은 선에 좌절하고 파커 볼펜으로 바꿨다가 작은 글씨를 쓰기에 좀 더 유리한 제트스트림으로, 필기구까지 여러번 바꿔가며 애착을 가졌었다. 몰스킨을 펼치면 뭔가를 쓰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들었고 그다지 두껍지도 않은 이 수첩에 08년도의 많은 이야기들과 생각을 적어두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한 08년에는 틈틈히 촬영일지와 여행담, 간략한 감상문들을 적어두며 나름대로 목적에 부합하게 잘 사용 중이었는데 09년부터는 이상하게 몰스킨에 손이 가지 않았다. 몰스킨에는 항상 정리된 내용들이 적혀야 할 것 같단 강박관념이 생기다 보니 출사시나 여행에는 니콘에서 제작한 부담없는 수첩을 휴대했고 여기에 휘갈겨 쓴 메모와 촬영기록들은 정작 몰스킨에 정리하여 옮겨 적지 않은 것이다. 결국 2년간 불과 몇 페이지 사용하지 않은 몰스킨, 나도 역시 기록과 정리의 생활화에 실패한 것인가라는 자괴감이 살짝 드는 와중이었는데..

연말이 되자 다시금 몰스킨을 지르면 내년은 정말 알차고 보람찬 체계적이고 계획적인 한 해가 될 것만 같은 부질없는 생각이 마구 들기 시작했다. 09년도에 몰스킨 사용횟수가 급감하게 된 이유는 일자에 맞게 제 때 작성해야한다는 심리적 압박을 주지 않는 룰드노트북의 형식 때문이라는 자위적인 결론에 이르렀고 때 맞춰 기록하되 매일매일 한 장을 가득 적어야하는 압박이 없는 위클리로 구입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판단이 들었고, 결국 질렀다는 거;;

위클리노트북 포켓 하드커버에는 블랙이 없어 결국 레드로 구입할 수 밖에 없었는데 다소 부담스럽지 않을까라는 걱정과 달리 꽤나 산뜻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이다. 내지 구성은 왼쪽에는 간략한 메모가 가능한 주간일정표가 오른쪽엔 줄노트가 있어 그 주에 읽은 책에 대한 얘기나 여행담 등 다소 긴 문장도 여유있게 적을 수 있다. 양면이 다 주간 일정으로 구성되어 다소 건조한 위클리 플래너와 달리 위클리 노트북 플래너는 개인적으로 딱 좋은 구성이라 생각된다.
 
요즘은 몰스킨과 유사한 제품들이 시중에 많이 나왔고 디자인적으로 더 뛰어난 것들도 많이 보인다. 가격마저 저렴하며 몰스킨이 자랑하는 100년의 보존성과 튼튼한 제본기술에 비해 그 것들이라고 크게 떨어져 보이지도 않는다. 가격대 비 성능으로 보자면 당연히 몰스킨은 최악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이 '그냥 수첩'이 27,000원이라고 하면 쉽게 납득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올해도 몰스킨을 지른 것은 2011년에도 2012년에도 그 후에도 동일한 디자인과 동일한 사이즈의 제품을 구할 수 있다는 매력 때문이지 않을까. 그렇게 몇년의 기록이 쌓이면 뿌듯할 거 같긴한데 원래 다이어리 류는 항상 1년 후 빽빽하게 적혀있을 훗날의 모습을 상상하며 즐거워하는 이 때가 제일 좋은 것 같다. ㅎㅎ  뭐 일단 질렀으니 2010년에는 많은 기록을 담아둘 수 있길 바라며~

2010년은 2009년보다 계획적으로 살 수 있길! (제발 좀 그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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