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f1.5 (최대 개방)








2. f2.0







3. f2.8







2017.01.13.


어느 렌즈건 간에 '눈으로 봐서' 별 문제없으면 크게 따지지 않는 성격이라 조리개별 묘사력 따위의 테스트는 해본 적도, 해볼 생각도 없었다. 사실 이번 것도 그런거 해보려고 찍은 건 아니었고 올드 콘탁스 렌즈를 라이카 바디에서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아메데오 아답터'의 초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해보려고 지인의 M Typ240에 물려서 찍어본 결과물인데 마침 조리개별로 특성 차이가 보이기에 은근 슬쩍 올려본다. 1.5 최대 개방일 때는 약간의 글로우 현상이 발생하나 콘트라스트의 저하는 거의 느껴지지 않고 2.0부터는 사실상 글로우 현상이 없어짐을 확인할 수 있다. 


*라이카 렌즈도 아니고 아답터에 6비트 코딩이 되어 있지 않아 메타정보에 나온 조리개 수치는 다소 정확치 못한 듯 하다.. 실제 촬영은 1.5(최대개방) - 2.0 - 2.8 순으로 진행


지인이 써보라며 올드 렌즈를 하나 건네줬다.

라이카 35mm의 원조격인 Elmar 3.5cm다. 1930년대 부터 발매되어 40년대 후반까지 이어진 엘마는 주마론이 등장하기 전까지 라이카의 35미리 화각을 담당했지만 성능적으로 크게 뛰어난 평가를 받지 못하다 보니 오늘날 5cm 엘마에 비해 그 인기는 높지 않은 편이다. 지인의 렌즈는 그 중 1940년산 무코팅 버전인데 경통에 상처가 많고 렌즈 내부에도 먼지와 스크래치가 적지 않은 그야말로 전투형이었다. 


LTM을 이용해 라이카 M3에 마운트하고 Zeiss Ikon의 35미리 파인더를 달아주니 제법 예쁘다. 보다시피 워낙 얇고 컴팩트한 렌즈라 침동한 5cm 엘마 못지 않다. 이왕이면 M3보다는 바르낙 바디를 하나 구해서 바디캡으로 써보고 싶은 욕심이 잠시 들지만 일단 결과물을 보고나서 생각하기로 하자. 광학적 성능에 대해서는 솔직히 기대되지 않지만 특유의 '맛'이 나는 렌즈면 좋겠다.




토요일 늦은 오후, 해가 짧은 요즘이라 지금 나가서 몇시간이나 찍을 수 있겠냐는 생각에 잠시 고민이 들었지만 그래도 토요일을 이렇게 허무하게 보낼 순 없지. 신광면에 있는 법광사지에 한번 가보기로 했다. 고즈넉한 폐사지에서 호흡긴 촬영을 할 수 있을테니 익숙하지 않은 이 렌즈로도 무리가 없으리라 생각됐다. 




큰 도로에서 벗어나 차 두대가 지나기도 버거운 좁은 마을길을 통해 한참을 올라가서야 법광사지가 나타났다. 그런데 이건 뭥미. 허허벌판에 드문드문 놓여진 주춧돌과 우뚝 솟은 당간지주 따위를 어떻게 적당히 담아볼까 생각하고 왔더니만 발굴 중이라 출입을 금한다는 안내판이 나를 맞이했다.




발굴 조사를 위해 온통 절터를 뒤집어 놓은데다 유구가 나온 곳은 방수천으로 덮어놓아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자괴감이 들 무렵 역광 테스트나 해보자고 해를 집어 넣어 찍어보았다. 무코팅 렌즈임에도 생각보다는 괜찮은 수준이다. 




해상도야 그리 높지 않지만 부드러운 콘트라스트와 그로 인해 넓은 계조를 보여준다. 대부분의 렌즈가 그러하듯 순광에서 조리개를 조였을 때의 묘사력은 부족하지 않다. 날카로운 선예도와 강한 콘트라스트 등 너무 잘나오기만하는 현행 렌즈에 비해 올드 렌즈가 흑백 사진에 좋다는 이유가 이런 느낌 때문이 아닐까.




법광사지는 완전히 허탕을 친 것이 되었지만 이대로 집에 돌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주변 마을이라도 좀 둘러보자 싶었다. 경사진 산비탈을 따라 이어진 계단식 논과 시골집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인공의 구조물임에도 자연과 하나된 듯 녹아있는 이런 따스한 풍경도 오랜만이다. 팔순이 다된 렌즈로 찍은 결과물이라 그런지 시간이 멈춘듯한 신광면의 풍경이 더욱 옛스럽게 느껴진다. 




집 가까이로 다가가 봤다. 살림 도구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봐 빈집으로 보인다. 애초에 대문은 없었던 것 같고 어설픈 목책만이 주인대신 빈집을 지키고 있다. 투박하게 쌓은 돌담과 3단으로 된 목책을 보고 지인은 제주도에서 찍은 사진이냐고 물었다. 




돌담 옆에 서 있던 감나무의 질감이 좋았다. 늦가을의 시골 정취를 표현하는데 잎이 떨어진 감나무에 달린 감 만한 소재도 없는데 요즘은 시골 마다 감을 딸 사람도, 먹을 사람도 없어 겨울이 지나도록 그대로 감이 달려 있는 경우가 많다. 어릴적 시골에 가서 키보다도 훨씬 긴 장대로 감을 따고 놀던 기억이 난다. 




길을 내려오다 마을의 당나무를 만나서 잠시 멈추었다. 





묵직한 톤이 제법 마음에 든다.




개방 조리개의 느낌은 어떨까 싶어 금줄에 초점을 맞추고 구도를 잡아봤는데 피사체에 좀 더 극적으로 다가섰어야 했나보다. 어중간한 거리 탓에 그리 심도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마을의 안녕을 기원했을 막걸리 한 병이 다소곳이 놓여 있었다.




지대가 높아 논농사보다는 밭농사를 많이 하고 있는 듯 했다. 하우스에서 자라는 시금치의 색이 생기있게 파랬다. 




지도에도 없는 촌 길. 




다시 차에 오르기 전 마을의 모습을 조금 넓게 잡아봤다. 노출을 결정하는데 신중을 기울였던 컷으로 기억된다. 3.5cm 엘마의 조리개 수치는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3.5 / 4.5 / 6.3 / 9 / 12.5 / 18 로 표기되어 있어 익숙치가 않은데다, 초기형 M3의 유럽식 셔터스피드 다이얼까지 더해지니 머리 속이 빙글빙글 돌았다. 이리저리 함수를 끼워 맞추며 겨우 한 컷을 눌렀는데 다행히 결과물은 원하던 분위기로 나와주었다. 




산길을 내려와 곧장 집으로 가려다 큰 도로변에 서있던 신광시장이라는 간판을 보고 혹시나 볼거리가 있나 하고 차를 세웠다. 골목 안쪽으로 향하니 요즘 시골에서 보기 드문 아이들의 소리가 왁자지껄하다. '어? 사진기자 아저씨다!' (노숙자로 안보여서 다행) 




카메라를 들이대자 녀석들이 좋아 날뛰기 시작한다. 법광사지에서 허탕친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밀려오지만 사실 익숙하지 않은 렌즈로 이런 상황을 맞이하고 싶지 않았다. 앞서 얘기했듯 엘마의 이상한(?) 조리개 수치 때문에 지금 내가 놓은 눈금이 조리개 몇쯤 되는지도 확신이 서지 않았고, 초점 맞추고 게눈 파인더로 눈을 옮기자니 정신이 없다. 제발 좀 가만 있어봐라 얘들아.





정신없이 움직이는 녀석들을 노출과 초점을 신경쓰며 찍기는 불가능했다. 결국 믿을건 Kodak 400TX의 부처님같은 관용도와 35미리 렌즈의 심도 뿐. 노출계 꺼낼 생각도 못하고 뇌출계로 대충 때려 잡았다. 흔들리지 않을 만큼만 최대한 느린 속도로 세팅하고 조리개는 조일 수 있을만큼 조인 후 초점을 고정시켰다. 이젠 그냥 찍는거다.




시골에 웬 아이들이 이렇게 있나 싶어 여기에 사느냐 물었더니 외갓집에 놀러온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럼 그렇지. 그래도 외갓집에서 제대로 추억을 쌓고 있는 녀석들이 부러웠다. 




귀염둥이들 :)




수레를 밀던 녀석은 부끄럽다며 한사코 얼굴을 허락하지 않았다.




신나는 한때를 보내고 있는 개구진 녀석들. 아이들은 이렇게 자라야 하는데 말이다.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헤어진 후, 다시 걸음을 옮기다가 이 장면을 마주했고 본능적으로 카메라를 눌렀다. 오른쪽에 있는 여인네와 눈이 마주치면 분위기가 깨어질거라 생각해 마음이 급했더니만 결국 흔들렸다.




면사무소 근처 도로에서도 다니는 차들을 별로 볼 수 없었다. 너무나 한적하고 조용한 동네였다.




제법 쌀쌀한 날씨임에도 신광 분식 앞 평상에 동네 할머니들이 모여 앉아 늦은 오후를 보내고 계셨고




나는 캔커피를 사러 점방에 들어갔다. 평상에 앉아계시던 할머니 중 한분이 주인이셨는지 느린 걸음으로 따라오셨다. 냉장고에는 전기도 들어오고 있지 않았지만 날씨가 추우니 괜찮았다. 동전이 없어 5천원짜리를 드렸더니 거스럼돈을 뒤적이시길래 그냥 담배 한갑도 같이 샀다. 내가 피우는 담배는 없었다.




점방의 기둥에 붙어있는 '간첩 잡자' 표어. 저런 것도 오랜만이다. 유리창에 흐릿하게 비친 아반떼가 아니었다면 시대를 가늠하기 어려운 사진이었이라. 해가 거의 떨어진 상황이라 콘트라스트 약한 엘마가 제대로 표현해줄까 걱정도 되었지만 보다시피 멋진 톤을 보여주고 있다. 




필름이 두 컷 정도 남았었다. 

'할매! 가게 앞에서 사진 한장 찍어드릴게요. 나와 보세요.'

'다 늙은 할매 뭐할라고, 안찍는다~~'

'에이, 한번 나와보세요. 할매 가게 앞에서 사진 한장도 안찍어보셨죠? 내가 좋은 카메라로 찍어드릴게요.'

그러고 보니 평생을 지내온 집이자 일터인 점방 앞에서 찍은 사진이 없다고 생각되셨는지 그제서야 할머니는 머리를 정리하시며 못이기는 척 밖으로 나와 앉으셨다. 뻣뻣한 포즈셨지만 그게 뭐가 중요한가. 남은 두 컷을 할머니에게 할애했다. 물론 그러면서도 '이 놈의 엘마가 제대로 나와줘야 할텐데.' 하는 걱정이 가시지 않았다. 처음 쓰는 렌즈를 신경쓰이는 촬영에 투입하는 건 역시나 부담스럽다. 어쨌든 여든이 넘으신 할머니를 그와 비슷한 세월을 보낸 엘마로 담아 드리면서 촬영은 마무리 되었다.  

그렇게 총알이 떨어진 나도 카메라를 내려놓고 할머니 옆에 앉았다. 신광면에 사람이 북직이던 재미나던 시절 얘기와 법광사지가 밭이었 때 밭을 갈다가 주웠던 기와조각 등의 얘기, 공부를 많이 못시켜서 미안한 자식들 얘기와 이 시골에도 대형 마트가 들어와 이제는 담배 말고는 팔리는게 없다는 점방 얘기까지. 제법 긴 시간동안 할머니와 얘기를 나눴다. 나중에 장날에 한번 다시 놀러오겠다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할머니도 저녁을 차려야겠다며 들어가셨다. 


그리고 일주일 후, 나는 다시 신광면에 들렀고 점방으로 가서 할머니를 불렀다.


'할매! 내 또 왔다!'



2016.12.03. 포항 신광면


Leica M3 / Elmar 3.5cm f3.5 / Kodak 400TX / IVED




Leitz Elmar 3.5cm f3.5

생산시기 : 1930 ~ 1949년
생산수량 : 40,000여대
최단초점거리 : 1.25m
렌즈 구성 : 3군 4매




Contax IIa / Carl Zeiss 50mm f1.5 Sonnar / Zeiss-Opton 35mm f2.8 Biogon / Carl Zeiss 21mm f4.5 Biogon


구입한지 거의 10년이 지난 Contax IIa에 슬슬 문제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저속셔터가 늘어지고 고속에서 상단끝부분의 노광이 제대로 되지 않는 상태. 심지어 11월 마지막 주 죽도시장 새벽 출사에서 한파를 견디지 못하고 셔터가 작동하지 않기를 몇 회. 더이상 버틸 재간은 없었다. 오버홀을 다시 해줄 때가 된 것이다.


다른건 몰라도 Contax는 무조건 중앙카메라에 맡기고 싶었다. 금속날로 이루어진 Contax의 셔터막은 손을 대기가 까다로워 제대로 하는 곳이 몇 없다. 사장님 연세도 있으시고 슬픈 얘기지만 사장님이 일을 그만하시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앞섰다. 무뚝뚝하기 그지 없는 사장님과 통화를 나누고 카메라를 포장했다. 직접 찾아가서 뵙고 부탁드리고 싶었지만 변방에 사는 사람이 이 것 하나 때문에 한양으로 올라갈 수는 없었다. 기왕 보내는 김에 초점링 돌림이 너무 빡빡하던 35mm 비오곤이랑 조리개 지침이 눈금과 다소 어긋난 상태이던 21mm 비오곤도 함께 넣었다. 


약 2주만에 돌아온 녀석들은 아주 건강해져 있었다. 셔터속도는 당연히 정상으로 돌아왔고, 약간 맥없이 풀어지는 듯한 느낌의 셔터는 아주 야무지고 절도있게 작동된다. 파인더도 아주 맑고 깨끗해졌고 와인딩 놉과 헬리코이드 등 곳곳의 조작감도 매우 부드러워졌다. 35미리 비오곤도 적당한 저항이 묵직하게 느껴지는 딱 좋은 정도로 윤활 작업이 잘 되었고 볼 때 마다 개운치 않던 21미리 비오곤의 조리개 지침도 눈금과 맞아 떨어지니 속이 시원하다. 


상대적으로 중고가가 그리 비싸지 않은 Contax IIa를 위해 상당한 오버홀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사실 그리 효율적인 선택은 아니다. 같은 가격으로 오버홀 대신 바디를 새로 구할 수도 있을 정도니까. 장터에 Contax IIa 매물이 나올 때 마다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손 때 묻은 내 카메라이기에, 이 녀석이 남겨준 필름과 추억들 때문에 이렇게 고쳐주며 쓰는 것이다. 어쨌거나 내년이면 딱 60년이 되는 할아버지 카메라가 주기적 관리만 해주어도 이렇게 멀쩡히 현역으로 활약할 수 있다니.. 이런 카메라는 단순히 기계, 도구, 물질이라고만 부르기 미안할 정도다. 


2016.12.15.

Leica M3 / Elmar-M 50mm f2.8


초기형 M3를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로 더블 스트록의 재미와 더불어 '도그이어(Dog Ear)' 혹은 'Buddha Ear' 라고 불리는 스트랩 고리의 예쁜 모양을 들 수 있다. 이 도그이어 스트랩 고리는 M3에서도 후기형으로 넘어가면 보다 단순한 형태로 변하게 되고 이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좌 : 일반적인 라이카 M바디들의 스트랩 고리(M4) / 우 : 도그이어 스트랩 고리 (M3 초기형)


두가지 모양을 놓고 비교해보면 일반적인 스트랩 고리에 비해 도그이어 고리의 모양이 좀 더 유려하고 바디와의 이음 부분에도 보다 디테일이 있어 멋져 보이긴 한다. (사실 눈에 확 띄는 부분은 아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디자인 뿐 아니라 높이의 차이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 때문에 일반적인 라이카 M바디용으로 발매된 하프 케이스들 대부분이 도그이어 버전 M3에 잘 맞지 않는 문제가 발생한다. 




대부분의 라이카용 하프 케이스들이 똑딱이 방식으로 바디와 고정되는데 일반형 케이스들은 저 똑딱이와 구멍의 높이가 낮다보니 도그이어 버전에는 잘 맞지 않는 것이다. 지인들이 가지고 있는 KIMOTO, A&A 제품들 모두 마찬가지였다. (억지로 하면 겨우 똑딱이를 잠글 수는 있었지만..) 이렇다 보니 M3 도그이어 버전 사용자들은 하프 케이스 구하기가 쉽지 않은 편이었다.




그러던 차에 장터에서 좋은 물건을 발견했다. 럭스케이스에서 나온 CSE-17이란 모델명의 Leica MP3용 하프 케이스였다. 한정판으로 발매되었던 MP3는 M3 형태의 디자인을 복각한 모델로 스트랩 고리 역시 도그이어 버전이 적용되었다. 당연히 이 케이스는 M3 도그이어 버전에도 딱 맞는다. 




Leica MP3. 셀프타이머가 없다는 점을 제외하곤 도그이어 스트랩 고리까지 M3와 거의 같다. (필름카운터는 M2 스타일)




전체적인 핏팅이 상당히 좋다. 케이스를 벗기고 씌울 때도 너무 빡빡하지 않고 적당하다. A&A 제품에 비해 전면을 커버하는 면적이 더 넓어 셀프타이머 레버가 숨을 듯 말 듯 자연스럽게 커버된다. 저 부분의 디자인이 개인적으로 참 마음에 든다.




지인의 Leica M4와 A&A하프케이스. 전면을 커버하는 면적이 차이남을 알 수 있다.



후면부도 뒷덮개의 형태에 따라 자연스럽게 잘 길들었다. 




가죽의 두께는 A&A 제품보다 약간 얇은 듯하다. 덕분에 바디와의 밀착감은 더 나은 느낌.




바닥에 LUXECASE가 새겨져있다. 





가죽의 품질도 우수하고 디자인도 깔끔하며 피팅이 참 좋아 전체적으로 아주 만족스럽다. 무엇보다 하프 케이스 선택의 폭이 좁은 M3 초기형 사용자들에게는 수작업으로 의뢰하지 않아도 기성품으로 구입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 아닌가 싶다. 날씨도 추워졌으니 올해는 M3를 좀 대우해주며 데리고 다녀야겠다.


2016.12.09

지인이 Leica M7을 팔아먹고 M4를 들였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아는 분에게 구구절절한 문자로 구애한 끝에 데리고 온 것!) M4는 M3나 M2에 비해 생산량이 적은 편이라 은근히 보기 힘들어 나도 실물은 처음 만져본다. MP와 특이한 한정판 모델들을 제외하고는 M3, M2, M6, M7 까지 두루 겪은 지인의 마지막 희망이던 M4를 아주 좋은 상태의 물건으로 구해 뿌듯하다. 렌즈는 기존에 사용하던 Summicron-M 35mm F2.0 ASPH. 




사실 구입하고 나서 며칠 지난 것이긴 한데 이제서야 첫 필름을 넣어 본단다. 이제 궁금한 것도 없는지 느긋하기만 한 지인. 나같음 도착한 날 바로 한 롤 찍었음.




평소에 카메라에 하프케이스 따위는 씌우지 않던 그였지만 이번엔 좀 곱게 써주고자 A&A 가죽케이스까지 장만해서 대우해 주기로 했다. 사실 M6 이전의 모델들의 볼커나이트는 오랜 세월이 지나 경화로 인해 갈라지거나 떨어지는 경우가 생기기에 관리해 주고 보호해 주는 것이 좋다.




필름만 안넣은게 아니라 스트랩도 아직 안달아뒀다. 카메라는 수없이 바뀌었어도 바뀌지 않고 있는 A&A의 실크 스트랩 ACAM-301. 스트랩치고 무지막지한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 눈에는 허접스러워 보이는지 우리 와이프는 '카메라는 비싸면서 줄은 왜 그런걸 끼웠어?' 라고 했다.. 



'M4의 첫 컷은 널 찍어줄게!' 영광이네유 ㄷ




M4의 파인더를 찍어 보았다. 아주 밝고 깨끗한 상태다.




이번엔 내 M3의 파인더. 일반적인 0.72배율과 다른 0.91배율로 50미리에 특화되어 있다.




M4와 M3. 이 M4는 셀프타이머 레버, 화각 변환 레버, 필름 장전 레버가 M3 스타일로 교체되어 있어 오리지날 M4의 외모와는 조금 달라졌지만 예쁘긴 더 예쁘다. 물론 오리지널리티를 중시한다면 다소 아쉬울 수도 있다.




손에 쥐고 M4를 찍어본다. 




흑백으로 바꿔서. 라이카 브로셔에 나온 그 느낌이 나게 하고 싶었으나 그냥 그렇네.


만져보니 역시 기계식 M형의 최종 진화형이라 불릴만큼 우수한 카메라임에 틀림없다. 편리한 퀵로딩 스풀과 꺾여진 리와인딩 레버는 M4를 시작으로 현행의 M바디까지 이어지고 있는 부분이며 노출계도 없는 완전 기계식의 설계와 황동 부품들이 만들어주는 조작감도 훌륭하다. 최고의 M바디는 M3라하지만 35미리가 주력이라면 M2보단 M4를 선택하고 싶어진다. 이 정도 바디가 손에 들어온 것은 인연!


2016.08.10.

 


지인에게서 묻지마 무상, 무기한으로 라이카 Elmar 3.5cm f3.5를 데리고 왔다. 렌즈 상태는 그리 좋은 편은 아니지만 찍히기만 하면 되니깐 뭐. Summaron 3.5cm가 출시되기 전까지 바르낙 라이카에서 35mm 화각을 담당했던 녀석의 결과물이 제법 궁금해진다. 그러고 보니 무코팅 렌즈는 처음 써보는 건가? 지난 주말동안 흑백과 칼라네가를 한롤씩 테스트차 찍어두고 대기 중. 




3.5cm엘마의 가장 큰 매력은 컴팩트함이다. Elmar 5cm 같은 침동식도 아닌데 튀어나온게 저게 다라는 거. Summaron 3.5cm도 제법 짧지만 Elmar가 더 짧다. 겨울에는 코트 주머니에 쏙 넣기에도 부담이 없다. LTM을 이용해 M3에 마운트했고 35미리 파인더는 ZeissIkon의 것이라 짬뽕 조합이 되어버렸지만 의외로 예쁘다. 바르낙 바디를 하나 구하면 제격이겠다 싶지만 더이상의 카메라 지름은 자제해야.. ㄷ


Canon의 컴팩트 RF카메라 Canonet GIII QL17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였다. 방학 동안 토익 공부는 하지 않았지만 내가 끼고 살던 책이 있었으니 이 바닥에서 바이블이라 통하던 '바바라 런던의 사진'이었다. 알던 내용도 다시 보고 존 시스템처럼 단박에 이해가 되지 않던 부분은 몇번이고 다시 읽으며 독파해나갔다. 이 책의 모든 것을 방학 기간동안 마스터하리라는 욕심이 들던 때였다.


그런데 늘 그렇듯 환자들의 생리란 뻔해서 존 시스템 보다는 카메라의 종류를 언급한 부분에서 보았던 레인지 파인더 방식의 카메라가 느닷없이 궁금해지는 것이 아닌가. 아버지 친구분의 라이카 M6를 만져본 적이야 있었지만 내가 직접 써본게 아니니 그 찰나의 기억은 그리 선명하지 못했다. 뭐라도 하나는 써봐야 느낄거 아닌가. 학기 중이었다면 곧바로 남대문으로 달려갔겠지만 방학을 맞아 집에 내려와있는 와중이었으므로 그럴 수도 없다. 물론 가봐야 헐벗고 굶주리고 다니던 내 형편에 살 수 있는 물건도 없겠지만.


그러고보니 지역에 '나름' 인지도 있는 카메라 가게 하나가 떠올랐다. '그래 거기나 한번 가보자.' 별 기대는 안했지만 심심하기도 하니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가게에 들어서니 마침 중년의 아저씨 한 분이 사장님과 열심히 장비 얘기 중이다. 들고 있는 카메라는 당시 캐논의 대히트작 EOS-5의 한단계 아래 보급기였던 EOS-55였다.


'아 이번에 내가 백두산에 가서 천지를 좀 찍으려고 해서.. 이거 갖고 찍을 수 있겠는교?'


번들처럼 흔하디 흔하던 캐논 EF28-105 줌렌즈를 들어 보이며 그 분은 사장님께 질문했다. 장사하는 사람한테 저렇게 물어보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기가 무섭게 사장님이 썰을 풀어댄다.


'아이고 선생님, 이번에는 작품 제대로 찍으러 가시나보네요. 이 렌즈도 나쁘지 않은데 천지 가보시면 아시겠지만 28미리로는 이게 다 안들어와요. 워낙에 넓으니까. 이걸로는 좀 그렇고 이거 함 보이소. 이거 갖고 가면 마 끝이지예.'


사장님은 꽤나 비싸던 EF20-35 F2.8L렌즈를 꺼내보였다.


'이거 하나믄 마 풍경은 끝입니다. 이거 빨간 줄 보이시지예? 이게 캐논서 제일 좋은 L렌즈 표시 아입니까? 선생님 정도 활동하셨으면 이제 렌즈도 좋은 거 하나 장만하셔야지요.'


'이기 비싸다 아이가. 너무 비싸가지고.. 좋기야 한데..'


'아따 선생님요. 28미리가꼬 천지 한방에 안들어와가 후회하고 다시 갈라캅니까? 그 돈 생각하면 비싼 것도 아니지예. 그리고 카메라야 나중에 바꿔도 렌즈는 평생쓰는거 아인교. 백두산까지 가시는데 맘 먹은 김에 좋은 걸로 사가서 찍으이소.'


'생각해보니 그거는 또 그렇네요. 그럼 그거 하나 주소. 그리고 삼각대는 내거 이걸로 가져가도 괜찮겠지요?'


'선생님 내가 장사할라고 하는게 아이고 솔직히 천지 올라가면 바람이 진짜 장난이 아입니데이. 이것도 뭐 카메라 올릴 수는 있지예. 근데 이래 약해가지곤 바람 불어가 휙 넘어가뿌면 비싼 카메라 렌즈 다 깨묵는다 아입니까? 삼각대는 알면 알수록 좋은걸 써야지. 초보들이야 뭐 아는교. 서이 가가 서이 사진 찍을 때나 세우는게 삼각대인줄 알지. 작가들 함 보소. 머할라고 그 사람들이 짓조 같은거 쓰겠는교. 삼각대도 하나 하소. 하는김에.'


적당히 띄워주고 협박(?)하고 회유하여 결국 사장님은 EF20-35 L렌즈와 짓조 삼각대와 많이 사셨으니 싸게 준다며 카메라 가방까지 하나 파실 수 있었다. 옆에서 바라보며 '아 나도 학교 때려치우고 카메라 장사나 해볼까. 나도 잘할 수 있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쨌든 한건 올린 사장님 기분이 좋을테니 나에게도 나쁘지 않은 상황이다. 천군만마를 얻은 표정으로 아저씨가 가게를 나가고 나서야 사장님은 나에게 관심을 주신다.


'어 학생은 뭐 살라고?'


'그냥 구경 좀 하려구요.'


'뭐 찾는거 있나?'


'RF카메라 중고 뭐 없나 싶어서요.'


'젊은 사람들이 그런 것도 쓰나? 우리는 몇개 없는데 그런거.'


그런거 뿐 아니래도 지방 카메라 가게가 그렇듯이 물건이 많지는 않았다. 그저 '눈 먼' 매물이 하나 없나 싶어 왔던 것인데 역시나 별게 없다. 그런데 쇼윈도 쪽에 먼지를 케케묵은 작은 RF카메라가 하나 눈에 띄었다. 바로 캐논 GIII QL17이었다. 먼지가 뽀얗게 앉은 것이 딱 봐도 사기 싫게 생겼었지만 가격이나 물어보기로 했다.


'이거는 얼마예요? 파시는거예요?'


'이거? 이거를 뭐 얼마를 받아야되노..'


애초에 별 팔 생각이 없었던 물건이었던지 잠시 고민하시던 사장님은


'학생이니 내 싸게 줄게. 7만원!'


그리 비싼 가격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달 용돈이 20만원도 채 안되던 나에게 7만원은 나름 큰 돈이었다. 깎아야한다.


'에이 이거 먼지도 많고 상태도 그냥 그런데 5만원 해주세요.'


'5만원은 안되지~ 우리도 매입한 가격이 있는데.. 학생이니까 그럼 6만원.'


'아 5만원 해주세요. 어차피 이거 제가 안사가면 또 누가 사갈 것 같지도 않은데.'


나름 솔깃한 멘트였으리라.


'그럼 5만 5천원! 됐재? 더는 안된데이.'


이 정도면 OK!


'네 그럼 제가 살게요. 케이스랑 이런건 주시는거죠?'


당시만 해도 남대문에서 니콘 FM2 따위를 사면 서비스랍시며 노란 니콘 스트랩과 정품은 아니겠지만 레자로 된 케이스를 대부분 줬었기에 뱉은 말이었다. 하지만 먼지 케케묵은 이 카메라에 맞는 케이스가 있으리라 기대는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의외로 새 것같은 레자 케이스가 있었고 사장님은 '학생이니까'를 자꾸 강조하며 그것도 끼워주셨다. 그렇게 나에게도 처음으로 RF카메라가 생긴 것이었다. 집에 와서 엄마 매니큐어 지우는 아세톤으로 구석구석 닦아주니 새것처럼 반짝였다.




70년대부터 80년대 초까지 일본의 카메라 제조사들은 이와 비슷한 컴팩트 RF 카메라들을 우후죽순 쏟아냈다. '가난한 자의 라이카'로 유명한 야시카 35GN부터 올림푸스 35시리즈, 미놀타의 하이매틱 시리즈 등이 대표적이었다. 이들의 대체적인 공통점은 35미리 전후의 붙박이 광각 단렌즈가 탑재되고 셔터스피드 우선AE 등의 자동노출이 가능해 사용이 간편했고 플라스틱이 본격적으로 공산품에 많이 사용되던 시절이 아니라 바디의 대부분이 금속으로 만들어져 나름 탄탄한 내구성을 자랑했다는 점이었다. 이 기종들은 80년대 들어 AF가 되는 본격 똑딱이들이 등장하기 전까지 대중적인 카메라로 큰 인기를 끌었다. 그 중에서도 캐논의 GIII QL17은 약 120만대나 팔려나갈 정도로 히트를 친 기종이다. 초반에는 일본에서 생산되나 후에는 대만에서 생산이 되었고 내것도 대만제였다. 중고가는 일본산이 조금 더 비싸다고 하나 롤라이35의 독일제냐 싱가폴제냐 정도의 갭은 아니다. 그 놈이 그 놈인 수준이다.


이 카메라의 최대 장점은 모델명 QL에서 알 수 있는 신기한 Quick Loading 방식이다. M4 이후의 라이카 M바디의 퀵로딩 스풀도 편하다지만 QL17은 그냥 자동카메라에 필름을 넣듯 빨간점까지 필름을 뽑아 뒷두껑을 닫아준 후 와인딩 레버를 감기만 하면 실패없이 로딩이 된다. 필름 넣기에 서툰 일반인들을 배려한 아주 편리한 방식이다. 이후에는 왜 이런 방식의 카메라가 나오지 않았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그리고 이 카메라에 캐논이 꽤 많은 공을 들였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은 시차보정이 되는 프레임 라인이 내장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M형 라이카에서나 볼 수 있는 이런 장치를 보급형 카메라에서 구현 해줬다니 놀라운 일이다. 노출은 셔터스피드 우선 AE가 가능하고 반셔터를 누른채로 있으면 AE-LOCK도 가능하며 렌즈셔터 방식이라 소음도 진동도 아주 작으며 덕분에 전 셔터스피드 영역에서 플래쉬 동조가 가능하다. 셔터스피드 우선 AE 외에 매뉴얼로도 사용할 수 있고 이 때는 노출계가 OFF되는 대신 완전 기계식으로 작동된다. 나름 기계적 신뢰성도 갖춘 셈이다.


처음에는 제법 예쁘고 클래식컬한 모양 때문에 애지중지하며 자주 들고 다녔다. 하지만 결국 몇롤 찍지 않고 장식품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는데 결정적 이유는 4군 6매의 40mm f1.7 렌즈 성능의 한계 때문이었다. '가난한 자의 라이카' 부류에 속하는 카메라들에 대한 사람들의 후한 평가는 지금도 여전한데 사실 '가성비'로 놓고 보면 부족하지 않은 기종들이지만 보급형이니 만치 그 한계는 명확했다. 이 녀석으로 찍은 필름을 확대기에 걸어놓고 보면 니콘 렌즈와 차이가 제법 났다. 선예도, 콘트라스트 모두 부족했고 역광에서도 강하지 못했다.




2001.01.04 안동, 자전거를 끌고오던 다정한 형제를 만났었다 / Kodak TMX




2001.01.05. 안동, 안동포 짜는 마을 / Kodak TMX




구입 초반을 제외하곤 별로 찍지도 않아서 예제 사진을 찾기가 좀 힘들었다. 그나마 쓸만한 것이 이 두 컷이 전부로 학교 앞에서 술을 마시던 중 '야 우리 지금 안동 안갈래?' 라는 동기의 말에 무작정 청량리역으로 달려가 막차를 타고 내려갔던 안동에서 3일동안 돌아다니며 찍었던 사진들 중에서 골랐다. 그 이후로는 이 녀석을 제대로 써본 기억이 별로 없다.


그렇게 별로 사랑받지 못하던 GIII QL17은 몇년이 지난 후, 군시절 절친했던 계원에게 선물로 주면서 내 곁을 떠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싸구려 카메라를 잊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한 장의 사진때문이다.




2001. 1월 어느날, 대구 / Kodak TMX


할머니께서는 우리가 당신을 찾아왔다가 돌아갈 때면 항상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개울가 바위 밑에 가셔서 누군가를 향해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하셨다. 아마 돌아가는 길에 우리 가족 안전하게 잘 가라고 산신령이거나 누구에게 간절히 비셨을 것이다. 늘상 있었던 일이므로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던 장면, 그 장면을 무심코 눌렀을 때 내 손에 있던 카메라가 바로 GIII QL17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한참 후 우연히 옛 필름들을 들춰보다가 이 컷을 스캐너에 걸었다. 당시엔 확대 인화조차 하지 않았던 컷이었기에 어떻게 찍힌 건지 좀 궁금했다. 잠시 후 4000픽셀로 스캔된 이미지가 모니터를 가득 채웠다. 그러나 곧 그 이미지는 뿌옇게 흐려지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종종 걸음이 만들어낸 눈 밭의 발자국을 보며 한참을 눈물을 흘렸다. 당신께서는 언제나 우리가 간절했구나. 이 사진에서만큼은 해상도니 콘트라스트니 뭐니 아무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이 장면을 남겼음이 너무 소중했고 할머니가 건강히 살아 계실 때 왜 더 많은 사진을 남겨두지 못했나 하는 후회만이 가슴을 후볐다.


환자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나에게도 버릇, 혹은 목표란 것이 있다. 어떤 카메라나 렌즈를 새로 구입하게 되면 이것으로 일명 '일면'이라든지 '베스트갤러리'라든지로 대표되는 '걸작' 하나는 만들어야겠다는 욕심이다. 타인의 시선이 중요한 것만은 아니지만 그래도 비싼 돈을 주고 샀으니 본전 생각이 나는건 어쩔 수 없나보다. 사진으로 돈벌어 먹고 사는 프로가 아닌지라 나에게 본전이란 그런 것이다.


그런면에서 보자면 5만 5천원 주고 산 GIII QL17은 본전의 백배쯤은 남겨준건가? 아니 그런 물질적인 가치로는 환산할 수 없겠다. 이곳을 통해 처음 공개하는 사진이라 어딘가에서 '일면'이나 '베갤'을 간 적도 없고 갈 사진도 아니겠지만 내게는 다시는 얻을 수 없는 귀중한 사진이다. 내 가슴에 와서 박힌 할머니의 모습을 아로새겨준 소중한 카메라로 기억되고 있는 카메라가 바로 GIII QL17이다.


사진 한장으로 기억되는 카메라라니. 녀석은 나의 장비 편력에서도 특이한 케이스로 남았다.





아빠가 되었다.


그동안 시장 바닥이나 낡은 포구, 재개발 지역 등지를 돌아다니며 거실에도 걸어두지 못할 '쓸데없는' 사진이나 찍어오던 사진질은 그야말로 부질없는 짓이 되었다. 유행하는 말로 '뭣이 중한디?!'였다. 아빠 사진가에게 가장 중요한 임무는 결국 딸냄의 성장 기록을 남기는 일이 아닌가. 아빠가 되면서 사진 생활의 주제가 아주 단순 명확해졌다.


 


 


실내에서 최적일 것


자, 그렇다면 육아 사진은 무엇으로 찍어야할까? 지금 생각해도 좀 어이없지만 '어떻게' 찍을 것인가 보다 당장 '무슨 카메라로' 찍을지가 가장 큰 고민으로 다가왔다. (마땅치 않으면 이 기회에 하나 더 사는거다..) 하지만 이미 육아 사진을 핑계로 삼아 Nikon D700에 꽂을 SB-700과 AF 35mm f2.0D를 들인지라 카메라를 또 사기엔 명분이 서질 않았다. 책장 위에서 몇년째 놀고 있는 카메라가 한두개가 아닌데 저 중에 육아 사진을 찍을만한 카메라가 한 대도 없다는 건 내가 생각해도 통할 소리가 아니었다.

'그래 있는 걸로 찍자.'

새 카메라에 대한 욕심은 깔끔하게 포기하고 이 중요한 임무에 투입할 최적의 무기가 무엇일지 검토해보기로 했다. 육아 사진이니 당분간은 대부분 실내에서만 촬영이 이뤄질 것이다. 당연히 이 작업에 투입될 카메라의 작전 요구 성능의 기본은 '실내 촬영에 최적일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밝은 개방값과 저진동 저소음, 실내에서 빠른 포커싱, 가벼운 무게 등을 필요 조건으로 들 수 있겠다.


이 기준에 의거 갖고 있던 카메라들을 하나하나 따져봤다. 제일 먼저 SLR들이 전원 탈락헸다. 그렇잖아도 셔터스피드 확보가 어려운 실내인데 블러를 유발할 '철푸덕!'은 안될 말이었다. 반면 RF기종들이라면 이 부분에서는 유리하겠다. 하지만 내가 갖고 있는 CONTAX IIa나 LEICA M3 같은 기종들은 노출계도 없고 움직이는 딸냄이에 재빨리 포커싱하기가 쉽지않아 아무래도 셔터 찬스를 놓칠 일이 많을 것 같다.(RF는 역시 조여서 찍을 때 진정한 매력이..) 결국 얘들도 일단 보류. 똑딱이 CONTAX T3는 크기도 작고 렌즈 성능도 좋고 AF도 되니 다 좋았는데 최대개방값이 2.8로서 다소 어두운데다 결정적으로 저속 셔터스피드가 정확히 얼마인지 표시가 안되어 실내에선 불안하기 그지 없다. 1/15초인지 1/4초인지 알아야 조심을 하는데..  결국 얘도 탈락했다.


 


 


Konica Hexar AF


이것저것 빠지고 나니 남은 것이 몇년동안 쓰지도 않고 쳐박아 둔 HEXAR AF였다.

Konica에서 내놓은 이 카메라의 가장 큰 특장점으로는 구동 소음을 최소화한 '사일런트 모드'와 우수한 성능의 35mm 렌즈를 들 수 있었다. 모터 와인딩 소음의 억제에 많은 공을 기울인 '사일런트 모드'는 당시의 대다수 자동 카메라들에 비해 상당히 조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수동식 RF카메라들에 비할 바는 아니라 개인적으로는 의미를 높게 두진 않는 편이다.

하지만 섬세한 묘사력과 현대적이고 깔끔한 콘트라스트를 보여주는 렌즈의 성능 만큼은 정말 훌륭하여 예전부터 사진가들 사이에서 '주미크론'에 필적한다는 소문이 회자될 정도였다. 이 같은 호평에 힘입어 코시나에서는 이 렌즈를 스크류 마운트로 별도 제작하여 한정 발매되기도 했다.



라이카 스크류 마운트로 한정 발매되었던 UC-HEXANON 35mm f2.0. 지인의 렌즈다.


반면 HEXAR AF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최고 셔터스피드가 1/250초에 불과하다는 점이었다. 아니, 1/1000초도 대낮에 감도 400필름을 개방으로 사용하기 어려운 판에 고작 1/250초라니... 주로 조리개를 조여서 찍는 편이라 사실 셔터스피드의 한계는 촬영시에 큰 문제는 아니었지만, 막상 들고 나갈 카메라를 고르는 순간 주저하게 만드는 심리적 부담은 어쩔 수 없었다. 결국 렌즈의 우수함에도 불구하고 HEXAR AF는 그리 자주 사용되지 못하고 집에서 오랜 세월 놀고만 있던 중이었다.

그렇지만 주로 실내에서만 사진을 찍는 용도라면?

그랬다! 실내에서만 찍는다면 녀석의 치명적인 셔터스피드의 한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부분이지 않은가. 감도 400짜리 필름을 넣어도 1/60초를 넘기는 경우조차 거의 없으니 말이다. AF의 정확도도 우수하고 속도도 빠른 편이라 셔터 찬스를 잡기에도 용이하며, 렌즈 교환식 RF기종들에 비해 최단거리도 조금 더 짧은데다(0.6m) 파인더 내의 프레임 라인은 시차 보정도 거리에 연동해 이루어지니 좁은 공간에서도 활용도가 높다. 구동 소음을 최대한 억제한 사일런트 모드는 딸냄이가 자고 있는 모습을 살짝 찍기에도 부담이 적다. 게다가 데이터백도 기본으로 달려있어 기념할 만한 날에는 날짜를 찍어줄 수도 있다.


이 정도면 그야말로 육아 사진에 최적의 카메라가 아닌가?!



7개월이나 된 후에야 필름으로 사진을 담기시작했음이 후회스럽다. / Ilford Delta 400




쿠션을 좋아하는 딸냄 / Ilford Delta 400




청송 외가집에서 / Ilford Delta 400




엄마보다 먼저 일어난 아침 /  Ilford Delta 400




꽤 늦게까지 떼지 못했던 쪽쪽이 / Ilford HP5+400




걸음마 연습 중 / Kodak TMY




돌사진 찍으러 간 스튜디오에서 / Kodak TMY




아빠랑 같이 찍은 사진은 이런 것 뿐이다 / Ilford Delta 400




바나나 먹으며 신난 딸냄 / Ilford HP5+400




할미랑 영상통화 / Ilford HP5+400




엄마 따라 톡톡톡 / Ilford HP5+400




하나 둘 찰칵! / Ilford Delta 400




자동카메라 하나를 줬더니 자기거라고 잘 들고 다닌다 / Ilford Delta 400




베개 위에서 장난치며 / Ilford Delta 400




목욕하고 나서 기분좋은 딸냄 / Ilford Delta 400



4-5년간 멈췄던 필름 사진질을 다시 시작한 건 딸냄의 성장 과정을 조금은 더 '의미있는 수단'으로 기록해주고 싶어서였다. 물론 그렇게 한정적인 용도에서만 조금씩 '아껴가며' 필름을 쓰겠다는 다짐과 달리 다시 시장 바닥이나 찍고 돌아다니는 요즘이지만 그래도 역시 가장 중요한 주제는 가족의 일상을 담아내는 개인적이고도 소박한 작업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HEXAR AF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카메라는 아니겠지만 가장 고맙고 기특한 카메라라고는 말할 수 있겠다. 이 카메라가 없었다면 딸냄의 성장 과정을 편안하게 기록할 카메라를 무엇으로 대신할 수 있었을 지 선뜻 떠오르지가 않는다.


오늘날 HEXAR AF는 중고가 기준으로 50만원 내외의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 끝내주는 헥사논 35미리 렌즈의 성능을 놓고 보면 사실 렌즈를 사면 바디는 그냥 따라오는 격이나 마찬가지. 주머니 사정 가벼운 아빠 사진가들이 가족의 일상을 촬영하는데 이만한 카메라가 또 있을까. 작은 문제를 탓하며 팔아 치워 버리지 않았음이 새삼 다행스럽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듯 세상 모든 것에도 길고 짧음이 존재한다. 우리는 저마다의 잣대로 그 길고 짧음을 따져보며 인생의 여러 선택의 기로에서 방향을 결정한다. 99%가 맘에 들어도 내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1%의 문제점이 있다면 그것을 선택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남들이 손가락질 하는 못난 모습이 내 눈에는 보기 싫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덮고도 남을 정도의 매력 포인트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줏대있는' 결정을 내리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것이 물건이든 사람이든 말이다.




크게만 보였던 단점이 더이상  밉지 않자 너무나 예쁘게만 보이는 HEXAR AF

“라이카 바디에 왜 다른 렌즈를 꽂아?”


사진을 하며 알고 지낸지 오래된 후배는 작년에 M6와 현행 50미리 엘마를 손을 떨며 겨우 마련했다.  50미리를 좀 쓰다보니 역시 0.72배율의 M6에게 최적인 35미리 라이카 렌즈가 간절해졌다. 하지만 그의 작은 간과 가벼운 주머니 사정으로는 쉽사리 Summicron ASPH 따위를 덜컥 지를 수는 없었다. 결국 Voigtlander의 렌즈들 따위를 사면 어떻겠냐고 나에게 종종 물어봤지만 나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그런거 쓰려면 M6는 뭐하러 샀냐? 성능이 좋아서 라이카 쓰냐? 그냥 라이카라서 쓰지.”


솔직히 나는 그랬다. 라이카를 쓰는건 그냥 라이카니까 쓰는 거였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예쁘다는 거? 토이 카메라 따위가 아니라면 내 눈에 광학적으로 몹쓸 렌즈는 별로 보질 못했고 해상도나 콘트라스트, 색감, 왜곡 억제력 등은 예민하고 냉철한 분들이 리뷰에서 친절하게 분석해주시면 ‘음 그렇군.’ 하는 정도였고, 결국 내가 사진을 찍고 나면 어느 렌즈, 어느 카메라든지 나름대로 괜찮았다. (나는 사실 장비 쪽엔 상당히 박애 주의자였던?) 그렇지만 어차피 라이카 바디를 쓴다면 라이카 렌즈가 맞다고 봤다. 이미 라이카를 쓴다는 것 부터가 어쩌면 ‘실용’과는 거리가 먼 것 아닌가.


그런데 M6를 쓰면서 굳이 타사의 렌즈라니. 성능이야 좋겠지. 값도 싸지. 모양도 나름 어울려. 하지만 라이카가 아니야. 그런건 사면 결국 바꾸게 돼. 그를 말렸다. 총알을 좀 더 모으거나 Summicron보다 저렴한 Summaron 괜찮은 물건이 나오길 기다려보자고.




Summaron 3.5cm f3.5


그러던 차에 라이카 쪽에서는 나름 전문성을 가지고 오랜기간 비교적 신뢰가 축적됐다고 하는 ‘ㅈ카메라’와 ‘ㅇ카메라’에 거의 동시에 주마론 매물이 올라왔다. 아쉽게도 M마운트가 아닌 스크류 마운트였지만 우리에겐 LTM이라는 간단한 해결책이 있다. ‘ㅈ카메라’의 매물엔 마침 LTM아답터도 포함되어 있었고 상태도 괜찮아 보였다. 가격도 저렴해서 주미크론 ASPH 중고가의 25% 정도 수준이었다. 이 정도면 달려 보는거다. 후배에게 연락했다. 이거나 사봐라.




"쓸 시간도 없는데 나한테 보내."


위탁상품이라 현금 박치기를 해도 한 푼도 안깎아주더라며 후배는 볼멘 소리를 했지만 거기서 깎아봐야 얼마나 깎겠느냐고 상태만 좋으면 몇만원 더 준건 아까워하지 말라며 녀석의 말을 잘라 버렸다. 며칠 후 택배로 물건을 받은 후배가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상태를 보여줬다. 사진 찍는다는 녀석이 찍은 제품 사진치곤 너무 X판이라 짜증이 밀려왔다. ‘아 잘 좀 찍어서 보내봐. 렌즈 알 좀 보이게.’


녀석의 허접한 제품 사진으로도 일단 렌즈의 상태는 꽤 좋아 보였다. 주마론이야 이쁘기로 치면 주미크론 1st 8매와 같은 디자인의 2.8 주마론이 최고지만 얘는 엄청 구닥다리처럼 생긴 스크류 마운트 3.5cm 주마론이다. 사실 비슷한 시기에 생산된 올드 자이즈 렌즈는 그렇게나 좋아했으면서 스크류 마운트 라이카 렌즈들에 관심이 없었던 건 뭔가 덜 떨어져 보이는 외관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나의 편견도 50미리 엘마를 쓰면서 사라졌고 라이카 올드 렌즈 특유의 굵은 표현력과 질감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 주마론도 참 궁금해졌다.


주말에 나가서 얼른 찍고 결과물 좀 보여달라고 후배를 재촉했건만 주말에도 연이어 출근이 잡힌 그는 좀처럼 사진을 찍지 못하고 있었다. 나같으면 회사에 들고 가서라도, 점심을 굶고 나가서라도 후딱 찍어볼텐데 이 녀석은 궁금하지도 않은지 천하태평이다. 결국 안달이 난 내가 (근데 왜 내가 안달이..) 연락을 다시 했다.


“야 쓸 시간도 없는데 그냥 나한테 보내라. 내가 자~알 테스트 해줄게. 그리고 M6도 같이 보내. 알다시피 내 M3에는 35미리 프레임이 없어.”




주인보다 먼저 써보게 된 렌즈.


순둥이 후배는 형의 말에 별 대꾸도 않고 카메라를 다음 날 보냈다. 물론 한 마디를 하긴 했다. 경주에 지진 자꾸 나는데 자기 카메라 잘 지켜달라며… -_-  어쨌든 평일에 무조건 도착하게 하라는 지시를 잘 지켜 금요일 오후에 택배가 도착했다. 사무실에서 박스를 호들갑스럽게 뜯어봐야 ‘저건 또 뭘 샀나?’ 하는 팀장의 눈초리만 받을 것 같아 박스를 안고 차로 쏙 들어와서 뜯었다. ‘자식, 딴에 엄청 아끼네.’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과하게 완충제가 들어간 포장을 풀자 그의 M6와 주마론이 나타났다.





가까이 있는 지인은 늘 블랙 바디에 실버 올드 렌즈의 조합이 참 예쁘다고 얘길 했었다. 깔맞춤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리 공감가지 않는 말이었지만 이렇게 보니 나쁘지 않다. (물론 블랙페인트 IId였어야 더 멋질 듯..)





렌즈 상태도 꽤 괜찮아 보인다. 외관은 아주 깨끗하고 렌즈 알의 코팅이 상한 부분도 없어 보인다. 밝은 빛에 비춰보면 내부의 헤이즈나 클리닝 기스가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내 것이 아니므로 그렇게까진 해보지 않았다.




Summaron으로 찍은 두 롤의 흑백 필름


새 카메라, 새 렌즈를 만져보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비록 내 것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별로 흥미롭지도 않은 M6를 가지고 놀며 책상 위에 놓아두고 감상하며 금요일 오후를 버텼다. 내일 좀 찍어줘야지. 당장 찍을 것도 아니면서 AGFA APX100 한 롤을 넣었다. 역시 퀵로딩이 편하긴 하구나. M3가 갑자기 조금 원망스럽다.




첫 테스트 : 2016.09.24. 포항 / Agfa APX100


토요일 오전, 집에 놀러온 처제네와 함께 포항 환호해맞이공원에 나들이를 가서 M6와 주마론을 꺼냈다. 카메라 보는 눈이 이제 예리해진 와이프가 ‘그건 또 뭐야?’ 라고 물었지만 준비했듯이 당당하게 후배의 카메라라고 얘길했다. ‘이젠 카메라도 돌려 써?’ 라고 했지만 그 이상 잔소리는 없었다. 가족들과 산책을 하며 유유자적 몇 컷을 찍고 오후에 장보러 간 효자시장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한 롤을 모두 소진했다. (그렇다. 지난 포스팅에 썼던 GR1s 테스트와 같은 날이다.)





환호해맞이 공원에서 내려다 본 영일만 바다. 노출차가 극명한 상황을 일부러 택해보았는데 역광에서의 빛 번짐도 없고 넓은 계조를 보여준다.





오후의 테스트는 장보러 효자시장에 온 김에 주변을 돌아다녔다.
저 쪽 골목 끝에서 자전거 한 대가 오는 것을 봤다. 건물 뒤에 몸을 숨기고 렌즈의 거리를 5피트(약 1.5미터) 정도에 맞춰두고 조리개를 조였다. 그리고 잠시 뒤 자전거가 다가온 순간 카메라를 들어 바로 셔터를 눌렀다. 약간 흔들렸는데 의도치 않게 패닝효과가 되어 다행이다.





늦은 오후의 낮은 햇살이 만들어주는 그림자는 별 것 아님을 알아도 자꾸만 찍게 되는 매력이 있다. 자신의 그림자 사진을 즐겨 찍는 사람의 심리는 무엇일까. 거울에 비친 나를 바로 보지 못하는 자신감 부족? 아니면 은연 중에 나를 보이고 싶은 욕망? 일단은 흑백에 어울리는 질감이 좋아 찍었다. 계조가 참 좋다.





누가 지나가길 기다렸으나 실패.





위의 컷을 찍고 자리를 옮기니 이런 타이밍이 온다. 역시 급하게 눌러서 흔들렸으나 아까보다 더 패닝이 잘 됐다. 패닝 전문작가로 나서볼까 하는 1%의 객기가 잠시 솟았다. 하지만 이거슨 필름. 비싼 필름으로 이제 그런 짓은 못하겠다. 그리고 원래 이런 컷은 하려고 하면 잘 안되더라는 건 이미 경험으로 체득한 진실이다.




두번째 테스트 : 2016.09.26. 경주 / Kodak 400TX





회사에서는 저녁도 준다. 고맙게도. 그리고 저녁을 먹는다는 건 칼퇴를 하지 않겠다는 암묵적 의사표시가 되버린다. 저녁을 먹지 않기로 했다. 물론 그렇다고 칼퇴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저녁 먹는 대신 나는 카메라를 들고 회사 뒷 길을 빠져나와 인근 촌 동네로 왔다. 용명리사지 삼층석탑이 있는 곳이다.





차에서 내려 시골길을 따라 걸었다. 저 덩쿨은 더 올라갈 줄이 있다면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라는 쓸데없는 궁금증이 들었다. 평소라면 이런 건 찍지도 않았을테지만 흐린 날의 희뿌연 풍경들이 이 날따라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이런 날씨의 풍경은 ‘덜 떨어진’ 주마론의 성능과 어울어져 뭔가 회화적 이미지가 되어주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기대도 있었다.




이 곳은 몇년전 경주개 ‘동경이’ 마을로 지정된 곳이다. 동경이는 진돗개와 비슷한 생김새이나 꼬리가 아주 짧은 것이 특징으로 경주 지역 토종견으로 인정받아 천연기념물로 보호되고 있다. 아쉽게도 마을에서 개 그림만 잔뜩 보았을 뿐 정작 동경이는 한 마리도 보질 못했다.





용명리사지 삼층석탑. 그리 큰 탑은 아니나 균형미를 갖춘 세련된 탑이다. 탑에는 아주머니 한 분이 앉아서 쉬고 계셨다.





평소 조리개를 개방해서 사진 찍을 일이 많이 없지만 그래도 명색이 렌즈 테스트차 빌려온 것인데 이런 컷은 하나 찍어봐야하지 않나 싶었다. 보들보들 예쁘기만 한 현행 렌즈들의 보케에 비해 더 아련하고 따스한 느낌이 참 좋다.





요즘은 해가 짧다. 흐린 날이라 더 어둡고 더 이상 찍기는 힘들것 같다. 그래도 400TX를 넣길 잘 했다 생각하며 길을 내려간다.




세번째 테스트 : 2016.09.27. 경주 / Kodak 400TX





오늘은 해가 나왔다. 그래서 또 저녁을 안먹기로 했다. 이렇게 밥까지 굶어가며 사진질을 하고 있노라니 진작 공부를.. 아니 공부가 아닌 다른 무엇이라도 이렇게 열정을 다했다면 대성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사진으로 대성할 수 있을까?) 지나다니면서 꼭 찍고 싶던 낡은 이발소를 담아봤다. 사장님과 얘기를 나누며 좁고 어둑한 실내에서 21미리를 가지고 1600으로 증감한 400TX로 다큐를 찍고 싶지만, 그 전에 일단 내 머리를 그에게 맡기며 말문을 트지 않는 한 그것은 불가능하리라. 물론 내 머리를 그에게 맡기는 것에도 큰 용기가 필요할 것 같다.





하교길의 아이들. 작고 여린 여학생들의 그림자가 비현실적으로 커지는 오후의 낮은 빛





다 쓰러져 가는 헛간과 아무렇게나 심은 호박에선 꽃도 피고 저 멀리에는 아파트가 보인다. 건천 지역은 인근 산업단지가 커지면서 유입 인구가 늘고 새 건물들이 많이 생겨나 몇년전에 비해 스카이라인이 많이 달라졌다.





지은지 얼마나 된 집일까. 벽의 단면만 찍은 이 장면만으로는 세월을 가늠할 수 없을 사진이다. 이 사진을 찍은 주마론이 1950년산이니 그와 비슷할까? 아니 오히려 이 집이 덜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하교길의 여학생. 하늘이 넓게 들어가는 역광에선 콘트라스트가 낮아지는 것이 느껴진다. 그래도 이런게 또 올드 렌즈의 맛이라면 맛이고 재미라면 재미다.





어디를 다녀오는 길인지 제 몸만한 트렁크를 들고서 씩씩하게 걸어가던 여학생. 대문 옆에 투박하게 쓴 ‘방있음 2층’이 인상적이었다.





지진의 흔적. 곳곳에 돌담이 무너진 집들이 제법 보였다. 살면서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공포였다.





건천1리 공부방.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서울(특히 이른바 강남 8학군)과 이런 시골의 학업 성적, 상위 학교 진학율의 차이가 많이 나는 건 결국 개인의 역량보다도 주어진 환경에서부터 근본적으로 너무나 많은 차이가 나기 때문은 아닐까. 경쟁의 수준 부터가 다르기에 여기서 공부를 좀 한다는 소리를 들어도 막상 나가보면 우물안 개구리인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그것은 우리 모두 마찬가지 일지도 모른다.





대략 이렇게 일주일간 갖고 놀며 두 롤의 흑백 필름으로 주마론을 겪어봤다. 충분한 소회를 풀어내기에 일주일은 짧은 기간이었고 72컷으로 이 렌즈의 특성을  파악하기에 나는 너무나 막눈이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흑백 사진을 위주로 찍는다면 굳이 비싼 주미크론이 아니어도 라이카의 재미를 느끼기에 충분한 렌즈라는 점이다. 세필로 그린 듯한 섬세한 묘사력과 뛰어난 왜곡 억제력, 어떤 상황에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완벽에 가까운 성능의 주미크론 ASPH도 좋지만 약간 뭉툭해진 2B 연필로 그린 듯한 굵고 묵직한 묘사를 보여주는 주마론의 느낌도 개인적으로는 참 마음에 들었다.


주머니가 가벼워 대안으로 택했던 땜빵 렌즈가 이 정도라면 사실 더 바랄게 없다. 후배에게 다시 렌즈와 카메라를 싸서 보내며 문자를 보냈다.


“야 렌즈 대박 좋더라. 잘써라.”


(그리고 이 렌즈를 써본 덕에 나는 뜬금없이 2.8cm Summaron에 꽂혀 버렸다..)

Ricoh GR1s


Contax T3를 시집보내고 나서 결국은 다시 똑딱이를 하나 들였다. 

사실 T3 팔아서 Elmarit-M 28mm ASPH나 하나 사려고 했던건데 물건이 나오지 않는 사이 그 돈은 야금야금 생활비로 들어가버렸고 기약할 수 없는 미래가 되어버렸다. ㅠㅠ 그러던 중 28미리를 탑재한 GR1s가 나왔기에 참지 못하고 덥썩. 28미리도 해결하고 T3를 대신할 휴대용 똑딱이도 확보하고 겸사겸사. 한동안 T3를 대신해 가방에 넣고 다녔던 롤라이35SE는 재미는 있지만 아무래도 목측의 압박 때문에 주광하에서 어느정도 조리개를 조이지 못하면 어려워서..



GR시리즈의 명성이야 필름 시절부터 구축된 것이라 성능에 별 의심은 없었다. 워낙 좋다고 알려진 기종이라..  슬림한 두께 덕분에 호주머니에 넣기도 부담스럽지 않고 직관적인 조작성과 스냅포커스 모드는 역시 이 카메라의 설계 지향점이 스냅이라는 점을 잘 드러내준다. 뷰파인더도 렌즈와 동일축선상에 위치하고 있어 근거리에서의 오차도 상하만 신경쓰면되고, 데이터백과 앙증맞은 꽃무늬 후드도 기본. 



몇가지 단점은 뷰파인더가 그리 밝지 않고 파인더 내부의 프레임 라인과 촬영 정보 표시가 좀 흐릿하다는 점인데 가격대를 생각하면 이부분은 좀 아쉽다. 그리고 AF속도도 빠른 편이 아니고 컨트라스트가 낮거나 밋밋한 벽 따위에는 초점을 잘 못맞추는 경우가 많다는 점인데 출시시기가 아무래도 좀 오래된 기종이다 보니 감안해야할 듯.. 



일단 얼른 필름넣고 찍어봐야 렌즈의 성능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Ricoh GR1s & GR


마찬가지로 가방에 늘 넣어다니던 GR과 함께 찍어보았다. 필름시절부터 자리잡은 GR시리즈의 디자인이 디지털 시대에도 잘 계승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닮은 꼴이다. 아무래도 디지털인 GR이 조금 더 크긴 하다만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 덕에 늘 가지고 다니며 스냅을 찍기엔 최고의 조합.






엿바꿔 먹은 T3를 대신해 요즘 가방에 늘 넣고 다니는 ROLLEI 35SE


CONTAX T3를 들이게 된 계기는 당시에 쓰던 검정색 ROLLEI 35S가 아무래도 목측이라 불편하기도 해서 이를 대체하기 위함이었는데 결국 T3가 떠나고 나니 다시 ROLLEI 35가 그 빈 자리를 채우고 있다. 


목측이라 다소 불편할 수도 있지만 이게 또 재미인지라, 주간에 깊은 심도를 이용한 스냅에서는 별로 무리가 없고 HFT코팅의 40mm f2.8 Sonnar렌즈는 언제나 실망없는 결과물을 보장해준다. 


택배 도착! 







케이스를 여니 마치 반지라도 들어있을 것 같은 파란 주머니가 딱. 이거 이왕이면 각잡힌 가죽이었음 좋았을 듯.







바로 28미리 화각의 외장 파인더. 뷰파인더에서 28미리 화각을 지원하지 않는 라이카 M3용으로 쓰려고 구입. 0.72배율 M4-P이후 부터는 28미리 프레임 라인을 지원하긴 하나 안경안쓴 나로서도 보기가 힘들었다. 0.58배율 파인더가 아닐바엔 그냥 외장 파인더가 더 보기 편하긴 할 듯. 어차피 28미리는 조리개 팍 조이고 돌아다니면 되니깐.







생각보다 아주 밝고 깨끗하고 프레임 라인도 선명하다. 한 때 후보였던 리코의 GV-2는 생각만큼 맑고 깨끗하지가 않았다. 광학식 파인더이긴 하나 플라스틱 렌즈알을 통해 보는 듯해, 가격에 비해 실망이었다. GV-1은 21미리와 28미리가 동시에 표시되어 집중이 잘 안되었고 프레임 라인이 각도에 따라 너무 잘 사라져서.. 결국 실물을 보지 못한채 중고로 나온 걸 일단 사봤다만 아주 만족스럽다. 




문제는 Elmarit-M 28mm ASPH는 언제? 




주륵.


자이스이콘의 폴딩 중형카메라 최상위 라인업 SUPER IKONTA 중 최후기 모델인 534/16. 

RF연동 거리계와 노출계까지 내장되어 있고 이중노출 방지 장치, B, 1초~1/500초까지 가능한 컴퍼 셔터, 자동리셋되는 필름 카운터까지.. 그야말로 자이스이콘 6X6 포맷 폴딩 중형카메라 중에 최고봉이라 할 수 있을 듯.. 







물론 렌즈도 훌륭하다. 코팅된 Carl Zeiss 75mm f3.5 Tessar.







모든 조작부는 렌즈 셔터 쪽에 모여있다. 셔터스피드와 조리개는 EV값을 바로 적용할 수 있어 디지식스같은 소형 외장 노출계와 사용시 편리하다. 







폴딩을 하면 요런 식으로 벨로우즈가 접히면서 렌즈가 쏙 들어간다.







납작해진 슈퍼이콘타. 환갑 쯤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까슬한 커버 상태에 페인트가 벗겨진 부분도 없고 자이스이콘 특유의 아름다운 실버 코팅의 광택도 여전하다.







폴딩을 하고 나면 이렇게 작은 가방(A&A ACAM-1100)의 한구석에도 쏙 들어간다. 그러면서도 필요할 때 한방을 해주는 우수한 렌즈를 장착한 이런 폴딩 중형의 매력은 롤라이플렉스나 핫셀과는 또다른 기동성의 확보라는 부분에서 크게 어필할 수 있지 않나 싶다.






그리고 슈퍼이콘타는 새 주인에게로..







서비스로 엑타100이랑 같이. 기분내라고 1팩 포장채로. 사실은 한 롤







중형 필름의 스풀은 50년전의 것이 둘레가 더 커서 이쑤시개 같은 걸 하나 감아줘야 필름 컷간 겹침을 방지할 수 있다. 다소 귀찮은 부분이기도 하지만 어차피 이제 많이 찍는 것은 아니니깐.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취리에 있는 Arthur Binz라는 자이스이콘과 포잌틀랜더의 전문 수리점에서 점검된 듯.







서비스로 받은 엑타100을 바로 로딩하는 그. 굳이 바로 찍을 것도 아니면서 왜 갖고 놀지 않고 필름을 바로 넣을까 의아했는데, 결국 거래 후 집에서 가지고놀다 실수로 뒷판을 열어버렸다고.. ㄷㄷ





잘가렴 슈퍼이콘타. 그래도 가까운 곳에 갔으니 자주 보자꾸나.





2016.08.31
















해외포럼에서 확인한 Contax IIa와 IIIa 모델의 시리얼넘버를 블로그에 옮겨둬본다. 





Contax IIa 


P, 97,001-100,000, 11/1949 to 6/1950 

S, 20,001-28,000, 7/1950 to 4/1951 

T, 5,001-9,000, 3/1951 to 7/1951 

T, 28,001-35,000, 8/1951 to 12/1951 

U, 1-5,000, 1/1952 to 5/1952 

V, 15,001-20,000, 7/1952 to 8/1952 

X, 1-3,000, 9/1952 to 10/1952 

Y, 57,001-62,001, 11/1952 to 3/1953 

A, 43,001-46,001, 4/1953 to 10/1953 

A, 46,000-53,000, 11/1953 to 9/1954 

B, 90,001-95,000, 10/1954 to 2/1955 

F, 20,001-25,000, 3/1955 to7/1956 

Q, 30,001-33,000, 7/1956 to 9/1957 

R, 33,001-34,000, 11/1956 to 4/1958 

L, 85,001-87,000, 4/1958 to 2/1961 





Contax IIIa 


T, 35,001-40,000, 3/1951 to 7/1952 

V, 20,001-25,000, 7/1952 to 10/1952 

Y, 52,001-57,000, 11/1952 to 3/1953 

A, 53,001-63,000, 4/1953 to 10/1953 

B, 95,001-100,000, 11/1953 to 9/1954 

C, 1-5,000, 10/1954 to 2/1955 

D, 76,001-86,000, 3/1955 to 1/1956 

F, 25,001-30,000, 2/1956 to 8/1956 

L, 75,001-85,000, 7/1956 to 7/1961 

O, 86,001-91,000, 11/1956 to 7/1957 

Q, 1 to 25, 1960 

R, 34.001-38,000, 2/1961 to 8/1962








내가 가지고 있는 두 대의 Contax IIa. 

50mm Sonnar가 꽂힌 칼라다이얼의 후기형은 R333XX 시리얼로 57년생으로 추정되고 21mm Biogon이 꽂힌 블랙다이얼의 전기형은 A434XX 시리얼로 53년생. ㄷㄷ














2016.07.16. 여남부두에서


뭐니뭐니해도 결국 가장 손에 익고 가장 중요한 순간에 선택하게 되는 카메라와 렌즈는 얘네 둘이더라.


Nikon F3HP & ai-s 28mm f2.8







필름이 대세이던 시절에는 이른바 럭셔리 똑딱이라 불리는 기종들을 각 사에서 한두개씩 내놓았었다.


대부분의 공통점은 광각 계열의 밝은 단렌즈를 탑재하고 조리개우선 등의 자동노출 시스템을 갖추고 렌즈의 성능이 렌즈교환식 카메라와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우수하다는 점이었는데 이 같은 장점은 애호가들의 전천후 에버레디 카메라로서 혹은 출사시 서브 카메라로서 안성맞춤이었기에 신품가 기준 70~100만원에 가까운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많은 인기를 누렸었다.



손꼽히는 카메라들이 Contax T3, Leica Minilux, Minolta TC-1, Ricoh GR-1 등이었는데 내 선택은 T3였다. 




2002년 겨울 쯤 당시 기준으로 70만원 정도나 하던 T3를 회현지하상가에서 신품으로 구입했었다. 칼자이즈 35mm 2.8 Sonnar 렌즈를 탑재한 담배갑만한 사이즈. 이거 하나면 언제 어디든 들고 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시만해도 자가인화를 하던 시절이라 확대기에 T3로 찍은 필름을 걸었을 때의 느낌이 생생하다. 이 작은 렌즈에서 찍혀진 결과물이라 믿을 수 어려울만큼 날카로운 선예도와 강한 콘트라스트. 옆에서 지켜보던 동기가 뱉은 말이 기억이 난다.


'아 내 카메라도 팔아버리고 이거 하나 달랑 들고 다닐까?'




당시 혜화동에는 암실이라는 까페가 있었다. 말그대로 까페에 암실이 있는 특이한 곳이었는데 여기서 돈을 내고 인화를 할 수도 있었는데 나야 학교에서 암실을 이용했기 때문에 그 곳에서 작업하진 않았지만 독특한 분위기가 좋고 그 곳에서 즐겨 인화하던 친구를 따라 가서 도와주기도 하며 여러차례 갔었다. 어느날 저녁인가도 암실에 들렀는데 친구의 지인이 암실에서 인화된 사진을 들고 나오며 희희낙락하는 걸 마주쳤었다. 


'야 이것봐. 죽이지 않냐? 이거 뭐로 찍었게?'


'형 라이카 쓰잖아요? 주미크론으로 찍은거 아녜요?'


'아니지롱~ 짠! 이것봐. 예쁘지? 이걸로 찍은거야. 콘탁스 T3! 야 이거 죽이네 진짜.'


나와는 직접 알던 사람은 아니라 별 말 않고 있었지만 당시엔 참 '방정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그 양반이 그렇게 호들갑 떨 정도로 T3의 결과물은 상당히 훌륭하기는 했다.





군입대 후 T3는 당분간 놀게 되었다. T3를 대체한 카메라는 올림푸스 뮤2였다. 귀하신 몸 T3는 탄창 주머니에 넣고 돌아다닐 수는 없어서 대안으로 마련한 것이었는데 같은 35미리 화각에 개방값도 2.8로 동일했다. 조리개우선을 지원하지 않았지만 어차피 똑딱이는 대부분 P모드로 찍는지라 별 상관이 없었고 렌즈의 선예도도 상당히 우수한 편이라 군에서 잘 사용했었다. 내구성이 다소 떨어져서인지 말그대로 전투형으로 사용해서인지 전역하기 전 마지막 혹한기 무렵엔 이미 초점이 엉뚱한데 맞으며 짧은 생을 마감했다.




전역 후 회사원이 되면서 다시금 T3는 늘 가방속에 들어서 거의 대부분을 시간을 함께 하게 되었다. 2004년경 요도바시 카메라에서 구입한 속사케이스에 싸여서 서류 가방 한구석에 한두롤을 필름과 함께 늘 들어있던 T3는 그야말로 나의 에버레디 카메라. 회식 자리에서나 아님 잠깐의 외근에서나 필요하면 언제나 톡톡톡 누를 수 있었던 소중한 존재였다.




그러나 2010년경부터는 나도 디지털이 주력이 되면서 거의 5년간 T3를 놓고 살았는데, 그동안 이효리 효과로 중고가가 치솟는 기이한 경험을 겪었다. 대부분의 필름 카메라들이 X값이 된 와중에 T3는 지금 팔아도 살 때 가격을 보장받을 수 있단 사실에 이거 그냥 팔아버릴까 하는 생각을 한두번 한 것이 아니었지만 결론적으로 지금까지도 잘 살아 남아있다. 




그리고 2015년..   5년만에 다시 필름 사진을 시작하며 새로 주문한 필름이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필름을 넣어준 카메라는 T3였다.




T3의 기계적 성능이야 별달리 언급할 것이 없고 장단점도 명확히 알려져있지만 그래도 리뷰니 몇 가지만 언급해보자면.




▶ 장점


작은 크기, 우수한 렌즈... (뭐가 더 필요한가)



▶ 단점


1. 고질적인 베리어 고장 : 자동 카메라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렌즈 베리어 부분이 아무래도 충격을 받으면 쉽게 고장날 수 있는데 고장 정도에 따라 국내 가능 혹은 일본 ㄱㄱㅆ이라고 한다. 그런데 외부의 강한 충격에 의한 것이 아닌 자연스런 고장은 대부분 내부 접점의 접촉불량이나 이동 범위 오류에 따른 것으로 부품 교체 등을 요하지 않고 수리가 가능한 것으로 수리점에서 수리 불가 판명 받은 T3를 '병동사'님이 직접 수리하여 공개한 적이 있다. 따라서 수리점 말만 무조건 믿고 큰 돈을 들이지 않아도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2. 필름 로딩 에러 : 필름을 넣었을 때 자동으로 로딩이 되지 않고 헛도는 현상이 간혹 있다. 필름 스풀의 돌기가 다소 낮고 뭉툭해서 제대로 못거는 경우가 있는데 나는 자가로 수리했다. 돌기 부분을 칼로 좀 깎아서 좀 더 두드러지게 해줬는데 그 후 전혀 문제가 없다.



3. 감도 수동 설정 불가 : 이 정도 가격대면 감도 수동 설정 정도는 가능해야 좋을는데 DX코드만 인식된다. 뭐 전원켤 때 마다 플래쉬 설정 만져줘야하는 미니룩스에 비하면 이정도는 참아줄 수 있다. 




Contax T3는 최초 발매된지 이제 15년이나 지난 기종이 되었다. (벌써? ㄷㄷ) 필름 시대가 저물면서 더이상 이런 카메라는 나올리가 없기에 어쩌면 T3의 인기는 여전히 높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직 필름을 사용한다면 이런 고급 똑딱이에 매력을 한번쯤은 누구나 느낄 수 밖에 없는데 라이카의 손맛도 좋고 니콘의 단단함도 좋지만 이렇게 가볍고 작은 카메라를 주머니에 쏙 넣고 다니다 쓱 꺼내서 톡톡 찍어대는 스냅의 묘미도 만만치 않은 즐거움이니까 말이다. 









2007.01 서울 / 400TX / 미니룩스를 사용하던 친구







2007.12 포항 / APX400 / 지금은 사라진 송도해수욕장 방파제의 횟집들







2008.04 포항 / APX400 / 송도해수욕장








2008.04 대구 / APX400 / 삼성라이온즈 개막전. 경기가 잘 안풀렸던 걸로..







2008.05 후쿠오카 / RDP III






2008.05 후쿠오카 / RDP III

 






2008.07 부산 / TMX / 영도다리 밑








2008.08 군산 / Centuria 100 / 지금은 사라진 육교







2008.08 군산 / Centuria 100 / 군산역 도깨비 시장 가던 길








2008.08 군산 / Centuria 100 / 군산역 도깨비 시장








2008.08 포항 / Centuria 100 / 구룡포 해녀들의 잠수복





2008.10 대구 / 400TX / 민뿡형 유부초밥 되던 날








2009.01 서울 / 400TX / 후임 귀 꼬집기






2009.02 부산 / 400TX / 거가대교 건설 중일 때. 아직은 '섬'이던 가덕도








2010.12 경주 / TMX / 경주 남산 등산 중







2015.07 경주 / Color Plus 200 / 건천 5일장






2015.07 포항 / TMX / 포클 포항지부







2015.09 경주 / Delta 100 / 자화상







2015.09 경주 / Delta 100 / 매복 포인트에서






2015.09 경주 / Delta 100 / 매복 포인트에서






2015.09 경주 / Delta 100 / 매복 포인트에서






2015.10 제주도 / C200 / 동생과 스벅질






2015.12 대구 / APX100 / 평광동 광복 소나무







2015.12 대구 / APX100 / 시골집에서






2007.12 포항 / APX100 / 김치~~~! 하고 달려오던 아이들.




끝.
















할아버지 제사라 지방쓰시는 중인 아버지







뭔가 메모하고 계신 어머니







아마 슈퍼맨이 돌아왔다 보고 계셨던걸로







단촐한 제사 준비







집에 돌아와 LX를 한번 찍어줬다. 43리미티드는 진짜 거의 10년만에 다시 찍어준 것 같은데 역시 좋군 좋아. 갖고 있는 AF바디가 허접스런 ZX-7 뿐인게 아쉽다. 


MZ-S를 사야하나?



2015.12.29

몇년째 사용치 않고 있던 롤라이플렉스를 작년에 '부루마님'께 오버홀한 후 TMY 2롤을 찍었다. 몇달에 걸쳐.. ㄷㄷ


지난 주 드디어 그 2롤을 '솔리스트'에서 현상했고 하는 김에 밀착도 한번 맡겨서 받았는데 몇몇 사례가 보고되던 TMY불량에 당첨.







오버홀 후 필름을 넣고 첫 컷을 뭘 찍어볼까 하다가 셀카나 한번 찍어본 건데 보다시피 유제면에 암지의 프린팅이 묻어났다.. 아놔.








인서 돌 스튜디오 촬영 때 찍었던 컷들에도 한가득. 스튜디오 사장님이 중형 카메라들고 옆에서 찍어준 아빠는 처음이라고 놀라셨는데 결과물은 참담하네 ㅋㅋ








여기는 두번째 필름. 복불복인지 이 필름에선 그런 현상이 좀 적다. 저 정도면 포토샵에서 어찌 해볼만하겠는데.








다행히 두번째 필름에선 프린팅이 묻어나지 않은 컷들이 대부분이다. (근데 왜 이건 9컷만 찍힌거지?)



보관한지 오래된 120필름에선 이런 현상이 종종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 유통기한 넉넉한 새 필름에서 이게 뭔 지랄인지. 남아있는 3롤은 어째야할지도 고민이다. 살다살다 이런 적은 처음. 



2003년 09월 15일에 구입했던 펜탁스 FA 43mm 1.9 Limited렌즈. 리미티드란 말이 무색하게 무지 많이 생산된 렌즈지만 발매 당시 이건 꼭 사야한다며 지금은 사라진 단골 가게 남대문 '유공 카메라'에서 신품을 깠었다. 테스트 좀 해보자고 사장님께 후지 포지티브 필름 '센시아' 한롤을 얻고 바디를 안가져가서 샵에 있던 MZ-3를 빌려다가 남대문 일대를 돌아다니며 후딱 한 롤을 찍고 돌려드렸던 기억이 난다.





아쉽게도 구입 이후 많이 사용은 하지 못하다가 문득 얼마전 이 렌즈를 다시 써보고 싶은 생각에 바디에 마운트했다. 펜탁스 LX보다는 AF바디에 쓰고 싶었는데 AF바디가 꼴랑 요거 하나뿐. MZ시리즈의 막내급 보급형 MZ-7의 미주 발매형인 ZX-7. 필름 감도 수동 지원도 안되고 AF도 무지하게 느리지만 공짜로 생긴 바디라.. 






요즘 일제 렌즈답지 않게 금속으로 만들어지고 작고 아담한 외형이 무척 매력적인 43 리미티드. 렌즈에 비해 바디가 좀 많이 모자라보이지만 뭐 바디는 어둠상자일 뿐이니깐. 



그래도 예쁜 어둠상자를 들이고 싶다. MZ-S 정도면 딱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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