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1.13. 경주


홈그라운드에서 관광객처럼 놀기. 교토에서 돌아오신 보따리 장수 수경님과 콩고물 얻으러 정희님이랑 접선했던 날. 무려 첫 눈을 남자 셋이 함께 맞았다. ㄷㄷ 


Contax IIa / Carl Zeiss Biogon 21mm f4.5 / Kodak 400TX / IVED


Leica IIIa & Elmar 3.5cm f3.5


지인께서 선물로 주시고 가신 바르낙과 역시 또 다른 지인이 그의 지인으로 부터 선물받은 엘마 35미리 렌즈의 조합. 역시 바르낙은 예쁘다.




IIIa의 정면샷. II 모델들에 비해 스트랩 고리와 저속셔터가 추가된 것이 III 모델들의 가장 큰 특징. 바르낙형 라이카는 IIIc 이후부터는 상판의 제작 방식이 기존 단조에서 주조 방식으로 바뀌고 상판의 높이가 다소 높아지게 된다. IIIa는 단조바디의 단단한 만듦새와 컴팩트함을 즐길 수 있으면서 저속과 1/1000초를 사용할 수 있는 완성에 가까운 바디라 할 수 있다. 셔터소리나 조작감 등은 물론 이후에 나온 IIIf나 IIIg가 더욱 훌륭하지만 바르낙다운 컴팩트한 매력은 역시 IIIa가 아닐까. 물론 이쁘기로 치면 IId 블랙 페인트가 최고라 생각.




상부의 모습. 오밀조밀 위치한 각종 다이얼과 레버와 노브들이 조화롭게 아름답다. 필름 이송과 셔터 장전을 위해 노브를 돌리면 셔터 다이얼과 되감기 노브가 같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상판 각인은 언제나 옳다. 저게 없는 바디들은 너무나 밋밋하다.




IIIa 부터는 드디어 1/1000초가 가능해진다. 시리얼번호를 조회해본 결과 1937년 생산분으로 확인됐다. 올해로 무려 팔순이 되신 분.. ㄷㄷ 








바르낙의 파인더는 포커싱창과 프레이밍창으로 나뉘어져 있어 왼쪽 창에서 초점을 맞추고 오른쪽 창에서 구도를 잡는다. 당시 라이벌인 Contax II는 이를 하나의 파인더에서 가능케 했지만 라이카는 M3가 등장하기까지 이같은 방식에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덕분에 초점을 맞춘 후 다시 구도 맞춤을 위해 눈을 옮겨야하는 불편함이 따르는데 인간의 적응의 동물이라 또 쓰다 보면 그러려니 하게 된다. 프레이밍창은 좁긴 하지만 맑고 밝은 편이나 프레임 라인은 별도로 표시되지 않고 보이는대로 꽉차게 찍었을 때 약 40미리 정도의 화각이다. 바르낙에 흔히 쓰는 50미리 엘마같은 걸로 찍을 경우는 파인더에서 보이는 것 보다 조금 적게 찍힌다는 걸 감안해야 한다. IIIa까지는 여전히 포커싱창과 프레이밍창의 간격이 제법 넓지만 IIIb 부터는 두 창이 가깝게 붙어서 눈을 옮기기 수월해진다. (뭐 그래도 불편하긴 매한가지;)




필름카운터는 수동으로 리셋해둬야한다. 역시 불편하지만 재미라면 재미.




Leica IIIa와 Contax IIa의 사이즈 비교. 바르낙의 컴팩트함을 다분히 의식한 듯 Contax IIa는 Contax II에 비해 제법 작아졌지만 여전히 바르낙에 비하면 크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상판의 배치는 확실히 Contax가 간결하게 설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Leica IIIa & Contax IIa



한롤도 못찍어보고 일단 오버홀하러 서울로 떠났다. 셔터속도 및 작동이 불안정했고 이중합치상의 상하가 틀어져있어서 굳이 테스트해볼 생각은 않고 오버홀 부터 해주고 제대로 써보고 싶다. 얼른얼른 돌아오길.























2017.01.22. 포항

Contax IIa / Carl Zeiss Tessar 50mm f3.5 / Kodak 400TX / IVED



Zeiss Opton Biogon 35mm f2.8 T




RF카메라를 사용하는 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화각은 단연 35미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 좁지도 넓지도 않은 화각 탓에 편안하게 두루두루 운용할 수 있는 35미리 렌즈는 거리 사진과 보도 사진 분야에서 널리 인기를 끌었고 각 메이커들은 저마다 우수한 35미리 렌즈의 개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하지만 20세기초 표준렌즈와 장초점 망원렌즈의 발전에 비해 광각렌즈의 발전은 상대적으로 더뎠고 오늘날까지도 성능을 인정받는 '제대로된' 35미리 렌즈의 출현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 


소형카메라의 선두주자이던 라이츠사는 1930년 Elmar 3.5cm를 출시했다. 당시 자이스이콘은 아직 Contax I 조차 발매하지 못했던 때였으니 라이츠의 엘마는 가장 빨리 등장한 35미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에 자존심이 상했던 것인지 Contax I이 출시되고 난 후에도 칼 자이즈는 35미리를 아예 건너 뛰어버리고 더 넓은 화각인 28미리 테사를 발매하며 그들의 기술력을 과시한다. 그리고 정작 35미리 화각은 Contax II가 발매되고 난 뒤인 1937년에 처음 출시하게되니 바로 칼 자이즈 예나 비오곤이었다. 비로소 '제대로 된' 35미리 렌즈가 사진계에 등장한 것이었다.



역사적인 첫번째 비오곤. Carl Zeiss Jena Biogon 35mm f2.8 (uncoated)


35미리 비오곤은 당시로선 대적할 상대가 없는 최고의 35미리 렌즈였다. 라이츠에 비해 한발 늦었던 만큼 성능상으로 엘마를 완전히 압도하고 있었는데 최대 개방값은 f2.8에 달했고 놀라운 해상도와 극도의 왜곡 억제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는 후옥의 크기가 극단적으로 크고 플렌지 백이 엄청나게 짧은(21미리 비오곤보다 더) 특유의 설계로 달성할 수 있었던 놀라운 성능이었다. Elmar 3.5cm의 최대개방값은 f3.5에 머물렀고 해상도는 사실상 열악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당시 비오곤과 엘마의 성능 격차가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2차대전 전에 생산되었다고 하여 전전형(pre war) 비오곤이라 불리게 되는 Carl Zeiss Jena Biogon 35mm f2.8은 종전 이후까지 생산이 지속되며 당대 최고의 35미리 렌즈라는 지위를 내려놓지 않았다. 후기에 들어서는 T코팅이 더해지는 개량이 이루어졌고 전쟁 기간 중에는 특이하게도 라이카 스크류 마운트용으로도 잠시 생산되었다. 



라이카 스크류 마운트용 35미리 비오곤. 


전쟁 중 드레스덴의 자이스이콘 공장이 폭격을 맞아 카메라 생산을 못하게 되자 예나의 렌즈 공장 역시 위기에 처한다. 렌즈를 만들어봐야 이를 장착할 카메라가 없는 것이었다. 이에 궁여지책으로 자이스이콘은 콘탁스용 렌즈들을 라이카용으로 제작하여 판매처를 뚫기로 한다. 종전 후 이같은 변종들은 더이상 생산되지 않았고 생산기간이 짧다보니 생산량도 상당히 적어 구하기는 물론 쉽지 않다. 하지만 구할 수만 있다면 마운트할 수 있는 바디가 제한적인 콘탁스용에 비해 훨씬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하지만 명성을 날리던 전전형 비오곤은 1950년, Contax IIa가 등장하면서 뜻밖의 문제에 맞딱드린다. 앞서 얘기한 커다란 후옥과 짧은 플렌지백 때문에 Contax II에 비해 소형화된 Contax IIa에 장착이 되질 않는다는 점이었다. 최고의 성능을 자랑하던 비오곤 35미리를 쓸 수 없다니, 이건 심각한 사안이었다. 물론 자이스이콘이 이같은 문제를 몰랐을리는 없고 바디의 소형화를 달성하기 위해 희생시켰을 가능성이 크다. 어쨌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원투수로 동독 칼 자이즈 예나에서 설계된 Biometar 35mm f2.8이 급히 투입되게 된다. 이때만 해도 영구적이고 완전한 분단이라 여겨지지 않았던 터라 동독과 서독의 교류는 유지되고 있었고 비오메타를 공급받을 수 있었다는 점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비오곤과 비오메타. 한 눈에 봐도 렌즈 후옥의 길이가 짧은 것을 알 수 있다.




 Zeiss Opton Biogon 35mm f2.8 T



하지만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될 수는 없었고 서독의 Zeiss Opton은 곧 새로운 비오곤을 출시하게 된다. 덕분에 위에서 언급한 비오메타 35미리는 1,614개만 생산되고 사라지게 되어 레어 아이템으로 등극하게 된다. Zeiss Opton Biogon 35mm f2.8은 이전의 비오곤과 구분하기 위해 전후형 비오곤으로 불리게 되는데 Contax IIa에 마운트 할 수 있기 위해 새롭게 설계된 것으로 후옥의 크기가 작아지고 길이가 짧아진 것이 특징이었다. 출시 초기부터 단종 때까지 코팅의 변화 외에는 구조적으로 크게 변하지 않은 50mm Sonnar와는 달리 흥미로운 변화라 할 수 있다. 아래의 그림을 통해 그 변화를 확인해보기로 하자.





최초의 비오곤은 조나 타입으로부터 파생되었는데 후옥이 크기가 전옥보다 큰 특유의 구조를 확인할 수 있다. 전전형 비오곤은 전쟁 후 두갈래로 나뉘어 발전하게 되는데 전쟁 후 소련에서 생산된 주피터-12 렌즈는 전전형 비오곤의 설계를 거의 그대로 이어받은 반면, 서독에서 생산된 전후형 비오곤은 앞서 언급했듯 Contax IIa에 사용되기 위해 후옥의 크기가 작아지고 길이도 짧아진다. 




마운트된 전후형 비오곤. 짧아졌다지만 필름면 가까이 상당히 들어와있음을 볼 수 있다.




전전형 비오곤(좌)과 전후형(우) 비오곤의 비교. 후옥의 길이가 짧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바로 이 점이 전후형 비오곤이 가지는 핸디캡이었다. 바디에 맞추기 위해 비오곤의 완벽한 설계에서 타협이 이루어졌다는 의심을 받게 된 것이다. 이때문에 전후형 비오곤은 콘탁스 마운트 비오곤 타입 35미리 렌즈들의 성능을 논할 때 주피터-12 보다도 한수 아래라는 평가를 받는 렌즈가 되고 말았다.


이것은 사실일까? 실제 전전형과 전후형 모두를 써본 유저들의 대체적인 평가는 해상도 만큼은 전전형이 탁월하다는 쪽이다. 전후형 비오곤의 짧고 작아진 후옥을 고려해 봤을 때 전전형에 비해 해상도와 왜곡 억제력이 다소 떨어졌을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 하지만 나는 아직 두 렌즈를 1:1로 비교한 결과를 보지 못해서 선뜻 수긍이 가지는 않는 것이 사실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과연 전후형의 해상도가 다소 떨어졌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확연한 차이가 날 것 같지는 않다. 엘마와 비오곤이 60:100이라면 전후형과 전전형은 90:100의 느낌은 아닐런지. 그리고 해상도 측면에서만 렌즈를 평가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더군다나 고해상도 렌즈와 고화소 이미지 센서들이 당연시된 요즘 시대에 올드 렌즈를 사용하면서 기대하는 요소는 뛰어난 해상도만은 아니란 점에서 전통적인 시각을 무조건 따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 전후형 비오곤에 대한 평가는 여러가지 개선점들을 고려하여 다시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Contax II에서 IIa로 이어지면서 이루어진 소형화, 그리고 디자인의 개선은 비오곤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루어졌다. 전전형 비오곤이 다소 투박한 디자인과 마감을 보여줬다면 전후형 비오곤은 훨씬 세련된 디자인과 컴팩트함을 이루어냈고 크롬 코팅의 품질도 개선되어 아름다운 광택을 자랑한다. 거기에다 개선된 T코팅이 적용되어 역광에서는 물론 칼라 필름 사용시에도 보다 안정적인 결과물을 보장해준다. 결국 종합적으로 고려해봤을 때 전후형이 보다 우수한 성능이라고 봄이 더 타당하지 않겠냐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 바닥이 그러하듯 객관적 성능과 정밀하게 측정된 수치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전설'은 분명 존재한다. 전전형 비오곤은 그런 면에서 전설의 대열에 오른 렌즈였지만 전후형 비오곤은 아쉽게도 그러질 못했다. 그렇게 된 이유로 두가지를 들고 싶다. 


① Biogon 21mm f4.5의 출현. 

비오곤 35미리의 출시 후 얼마지나지 않은 1954년 칼 자이즈는 21미리라는 놀라운 화각의 비오곤을 출시한다. 전에 없던 광활한 화각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충격적이었을 이 렌즈는 광학적 성능마저 뛰어났다. 비오곤하면 21미리가 먼저 떠오를 정도로 임팩트가 강한 렌즈의 등장으로 상대적으로 35미리 비오곤은 한마디로 묻히게 된다. 


② 라이츠의 약진

앞서 언급했듯 전전형 비오곤이 출시되던 당시 라이츠에서 내세울 수 있는 35미리 렌즈는 해상도 낮고 코팅도 적용되지 않고 개방값도 어두운 Elmar 뿐이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당시 비오곤의 성능은 라이츠를 포함한 여타 경쟁사들의 렌즈들을 압도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전전형 비오곤은 독보적인 위치를 확보하고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전후형 비오곤은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라이츠는 엘마에 비해 모든 면에서 성능이 향상된 Summaron 35mm를 출시하고 있었고 1958년에는 그야말로 신화가 된 렌즈, Summicron 35mm 1st, 일명 8매를 선보이게 된다. 이건 그야말로 두 회사의 35미리 경쟁에서 종지부를 찍어 버리는 일이었다. Contax IIa가 61년 단종되며 콘탁스 마운트 렌즈들 역시 같은 운명을 따르게 되면서 주미크론에 대항할 f2.0개방값의 비오곤은 결국 시장에 선보이지 못했다. 이처럼 전전형과는 달리 경쟁 상대를 압도하지 못했던 상대적 지위 역시 전후형 비오곤이 다소 박한 평가를 받게된 이유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이러쿵 저러쿵 하는 호사가들의 얘기를 별개로 치더라도 전후형 비오곤은 좋은 렌즈임에 틀림없다. 출시 당시 콘탁스용 교환렌즈 중 세번째로 비싼 가격이었고 깔끔한 외관 디자인과 고급스런 크롬 광택이 아름답고 비오곤 다운 컴팩트한 사이즈 역시 매력적이다. 초점링과 조리개링은 아주 부드럽게 작동되어 만지작 거리는 재미도 크다. 더군다나 상대적으로 구하기도 어려운 물건인 탓에 소유에 따른 만족도도 높은 렌즈라고 할 수 있다. 


21미리 비오곤과 50미리 조나라는 걸출한 두 렌즈 사이에 가려 콘탁스 마운트 렌즈들 중에서 그 이름은 드높지 않지만 역시 비오곤은 비오곤이다. 시중에 돌아다니는 물건이 많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바디가 제한적임에도 불구 여전히 만만치 않은 가격을 자랑하지만 Contax 유저들이 선택할 수 있는 35미리의 폭이 좁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 렌즈 역시 Must Have Item이다. 보이면 사야하는 렌즈다. 




Contax IIa / Zeiss Opton Biogon 35mm f2.8 T




AGFA APX1OO




AGFA APX1OO




AGFA APX1OO




AGFA APX1OO




AGFA APX1OO




AGFA APX1OO




ILFORD HP5 400




ILFORD HP5 400




KODAK 400TX




KODAK 400TX




KODAK 400TX




KODAK 400TX




KODAK 400TX




KODAK 400TX




KODAK 400TX




FUJIFILM C200




FUJIFILM C200




FUJIFILM C200




FUJIFILM C200




FUJIFILM C200




FUJIFILM C200




FUJIFILM C200




FUJIFILM C200




FUJIFILM C200





"21mm Biogon이 없었다면 Contax는 지금쯤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 것이다."


조금 극단적이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지난 리뷰에서도 언급했듯 Leica M3의 등장으로 후속기를 내놓지 못하고 단종된 자이스이콘의 콘탁스는 잊혀진 카메라가 되어 버렸다. 그럼에도 아직도 소수의 열렬한 추종자들은 콘탁스를 사랑하고 있으며 60년이 넘는 세월동안 아껴가며 사용된 적잖은 콘탁스들이 여전히 시중에 돌아다니고 있다. 바디 자체만 놓고 봤을 때 그리 매력적이지만은 않은 것도 사실인 콘탁스가 이 정도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데 큰 공헌을 한 렌즈가 있다. 바로 '20세기 최고의 광각 렌즈.'라고도 불리는 전설의 렌즈, Carl Zeiss Biogon 21mm f4.5 이다.




1954년, 자이스이콘은 당시로선 그야말로 초광각이던 90도 화각의 21미리 비오곤을 출시한다. 




당시 브로셔 표지에는 21미리 비오곤으로 촬영한 사진 위에 50미리 화각을 표시하여 21미리가 얼마나 넓은 화각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21미리가 발매됨으로써 콘탁스용 비오곤은 두 개가 되었다. 21mm f4.5와 35mm f2.8





21미리 비오곤은 총 8매의 렌즈로 구성되었으며 전면에 2개의 오목 유리를, 후면에 1개의 오목 유리를 놓은 대칭형 구조를 이루고 있는데, 백포커스가 극단적으로 짧아 렌즈의 후옥은 필름면 가까이 최대한 근접하여 장착된다. 이를 통해 최고 수준의 왜곡 억제력과 주변부까지 선명한 해상도를 자랑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비네팅 현상 역시 그리 두드러지지 않아 사용에 불편함을 초래하지 않았다. 개방값은 f4.5로 그리 밝은 편은 아니었으나 라이카 28mm 주마론이 f5.6, 칼 자이즈 28mm 테사가 무려 f8.0이었던걸 생각해보면 보다 넓은 화각을 가지고도 f4.5를 달성한 비오곤이 오히려 대단하다 여겨진다.    




21미리 비오곤의 렌즈부를 분해한 사진 




배럴 내부의 사진


배럴 내부에는 노란색이 보이는데 이는 황동의 색이 아니라 금 코팅의 색이다. 비오곤 배럴 내부에는 금이 코팅되어 있는데 이는 렌즈의 부드러운 움직임을 확보하고 정밀한 중심축 유지를 위한 것이었다. 다른 렌즈에도 이런 식으로 금을 코팅한 경우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칼 자이즈가 비오곤에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21미리 비오곤의 특이한 설계 중 하나. 렌즈 후옥에 '플레어 쉴드'가 부착되어 있다. 렌즈 전면이 아닌 바디 속에 들어가는 후면에도 후드가 있는 셈이다. 같은 구조로 설계된 Contarex용 21미리 비오곤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 있는데 이와 같은 '플레어 쉴드'는 칼 자이즈의 다른 렌즈들에서는 볼 수 없는 것으로 21미리 비오곤을 설계하며 아주 미세한 부분까지 신경쓴 그들의 집념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아답터를 이용해 라이카 바디에 마운트 하고자 할 때는 두 개의 나사를 풀어 '플레어 쉴드'를 제거해주면 된다. 제거했을 때 특별히 문제가 있다는 보고는 보지 못했다. 




가장 비싼 금속인 금까지 코팅해줄 정도로 정성을 다한 21미리 비오곤은 당시 콘탁스용으로 발매 중이던 교환렌즈들 중 가장 비싼 가격을 자랑했다. 1961년 10월 기준 가격표에 비오곤의 가격은 219달러로 나와있다. 현재 화폐 가치로 환산했을 때는 약 3,000달러 정도로 추정된다. 참고로 당시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93달러..ㅠㅠ 




콘탁스용 21미리 비오곤에 이어 자이스이콘의 SLR 라인업 Contarex용 21미리 비오곤도 발매되었다. SLR용으로 발매되었지만 구조적, 성능적으로 콘탁스용과 동일한 렌즈로 알려져 있다. 필름면 바로 앞까지 들어가는 특성상 미러업을 한 상태로 마운트해야 했고 그로 인해 프레이밍은 외장 파인더를 이용해야 했고 포커싱은 목측으로 해야하는 불편한 방식이었지만 디스타곤 같은 레트로 포커스 구조의 광각 렌즈가 개발 되지 않은 상태라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콘탁스용 비오곤의 설계를 해치지 않은 덕분에 오늘날에는 비교적 더 후기에 생산되어 코팅이나 재료의 개선이 이루어졌으리라 '예상되는' Contarex용 21미리 비오곤의 인기가 조금 더 높다. Contarex 사용자는 멸종 위기로 현재 시중에 돌아다니는 Contarex용 비오곤의 대부분은 M마운트로 개조되었거나 아답터를 포함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21미리 비오곤은 여기까지 이어진다. 바로 누구나 써보고 싶어한다는 핫셀블라드 SWC에 탑재된 38mm Biogon이다. SWC의 높은 인기를 가능케 해준 것 역시 칼 자이즈의 비오곤이었다.




SLR이 대세를 장악했던 시절. 비오곤은 간신히 명맥만을 유지해왔다. 미러 박스가 차지하고 있는 공간으로 인해 비오곤 타입의 렌즈는 설 자리가 좁았던 탓이다. 하지만 교세라의 콘탁스 G시리즈와 함께 G28과 G21이 비오곤이란 이름으로 부활했고, 최근에는 코시나에서 자이즈 브랜드로 비오곤 광각 렌즈들을 출시하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요즘의 비오곤들은 60년전 당시에 비해 설계 구조의 많은 변경이 이루어 지고 있는데 성능상의 개선은 물론 좋은 일이나 렌즈 매수가 증가하고 백포커스에 여유를 두는 설계로 인해 길이가 길어지고 있다는 점은 안타깝다.




Zeiss C-Biogon 21mm f4.5




미러리스나 D-RF카메라들이 출시되고 있는 오늘날에도 비오곤은 그리 사용하기 편한 렌즈는 아니다. 앞서 얘기했듯 비오곤 설계의 특징은 대칭형 구조와 극도로 짧은 백포커스라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가장 우수한 왜곡 억제력과 뛰어난 해상력, 그리고 컴팩트함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비오곤처럼 짧은 백포커스로 설계된 렌즈는 디지털 센서에서 비네팅과 마젠타 캐스트를 억제하기 어렵다. goliathus님의 리뷰에 의하면 A7에 마운트했을 때 의외로 마젠타 캐스트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하며 이태영님께서 Leica M-P typ240에 테스트했을 때는 약간의 마젠타 캐스트가 발생한다고 알려주셨다. 슈퍼 앵글론에 비해서는 적게 발생하는 편이라 한다. 이 같은 문제점은 이미지 센서의 발전과 함께 개선될 부분일 수도 있겠으나 최상의 광학적 성능만을 고려해 설계된 오리지날 비오곤의 제 짝은 역시 RF카메라, 그리고 필름이라 생각된다. 



14-24mm 같은 초광각 줌렌즈까지 흔해진 오늘날 21미리는 '초광각'이라는 수식어를 붙히기도 쑥스러운 수준의 화각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35미리와 50미리를 주로 사용하는 대부분의 RF카메라 유저들에게 여전히 21미리는 낯설다. 파인더의 특성상 RF카메라 유저들은 28미리 이하 광각으로 내려가는 일이 드물다. 최단 거리가 길어 강렬한 근경을 큼지막하게 넣기가 어렵고 외장 파인더를 사용해야 하는 불편함도 따른다. 

이 같은 이유로 꺼려하는 이가 많지만 막상 21미리 비오곤을 접해보면 그 자유로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렌즈는 바디에서 아주 조금 돌출되어 있을 정도로 컴팩트하며 조리개를 8.0 정도로만 조여줘도 거의 모든 구간에 초점이 맞는다. 오로지 외장 파인더만 들여다보며 신나게 셔터를 눌러주면 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135판 SWC가 되는 것이다. 아니지. 콘탁스용 비오곤이 선배이니 그렇게 불러주는 것은 예의가 아니겠다. 어쨌든 콘탁스용 비오곤을 쓴다는건 단순히 21미리 화각을 다룬다는 의미가 아니라 RF카메라에 최적의 설계를 이루어낸 다시 나올 수 없는 최고의 광각렌즈와 함께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앞에서 슈퍼 앵글론과 슈퍼 엘마를 논하지 말자. 더 좋은 렌즈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나오겠지만 그 시작은 바로 콘탁스용 비오곤이었으니까 말이다.




Carl Zeiss 21mm f4.5 Biogon for Contax (1954~1961년)















































2017.01.14. 포항


Contax IIa / 21mm f4.5 Biogon / Kodak 400TX / IVED





왜 온통 라이카 뿐인가.


오늘날 레인지파인더 카메라라고 하면 누구나 라이카를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전문 사진가들을 위한 카메라 형식의 대세가 SLR이 되어버린지 50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RF카메라 특유의 장점인 저소음, 저진동, 그리고 컴팩트함은 적지않은 이들에게 어필하고 있고 작업 스타일에 따라서는 SLR에 비해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RF시장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고 정교한 레인지파인더의 생산에 많은 비용이 들어 지금도 RF카메라를 생산하고 있는 곳은 사실상 라이카가 유일하다. 신품만이 아니다. 중고로 구한다 치더라도 다양한 교환 렌즈와 모터 드라이브 혹은 접사 장치 등 시스템 카메라로서 접근해보면 라이카 말고는 더욱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RF카메라를 사용하는 이들의 십중팔구는 라이카 유저들이다. 왜 우리의 선택지는 이토록 좁은 것이란 말인가. 라이카에 견줄 상대는 과연 없었던 것일까?




ZeissIkon의 대항마 Contax IIa


라이카에 대적했던 카메라가 있었다. ZeissIkon의 Contax가 바로 그것이다. Contax IIa는 그 콘탁스 라인업 최후의 모델로 1950년 발매되어 61년경 단종되기까지 Leica IIIf, M3 등과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카메라였다. Contax IIa 이후 후속 모델이 출시되지 않으면서 역사속으로 사라진 탓에 알고 있는 이들도 드물었지만 이미지프레스에서 출간된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란 책을 통해 소개되며 비교적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중적 인지도의 상승이 인기와 비례하지는 않아 여전히 사용자는 극소수에 머물고 있다. 그나마 사용해봤다는 이들도 중고가가 저렴하니 호기심에 들였다가 금세 내친 경우가 대부분이다. M형 라이카를 쓰는 이들은 좁은 파인더 탓에 포커싱이 어렵고, 라이카와 반대인 조리개, 초점링의 회전 방향에 적응하지 못하겠다는 등 여러가지 불평을 내세우며 이래서 콘탁스가 망했다고 한다. 과연 콘탁스는 이렇게 혹평 받을 카메라였을까.




Contax의 역사


Contax IIa에 대해 본격적으로 얘기하기에 앞서 이전의 콘탁스 모델들을 먼저 간략히 알아보자. 부모없는 자식이 없듯 근본을 살펴봐야 Contax IIa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Contax I



라이츠사가 출시한 라이카의 대성공은 자이스이콘을 자극시켰다. 소형 포맷의 기술적, 품질적 한계로 소형 카메라의 개발에 대해 탐탁치않게 여기던 자이스이콘은 시장의 주도권을 라이츠에게 뺐겨 버렸지만 그 상황을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에 자이스이콘은 Leica II를 압도할 대응 모델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게 되고 1932년, 그들의 첫 시스템 RF카메라를 시장에 선보이게 된다. Contax의 등장이었다. 


라이카를 능가하겠다는 자이스이콘의 개발 의지대로 콘탁스는 라이카가 가지고 있던 문제점 내지 불편함을 상당부분 개선한 선진적 설계가 적용되었다. 뒷판은 통채로 열렸고 렌즈 마운트는 베이요닛 방식을 채택했다. 이 부분은 당시 라이카에 비해 훨씬 빠르고 편리한 필름 로딩과 렌즈 교환을 가능케 해준 선진적인 방식이었다. 최고 셔터스피드는 이미 1/1000초에 이르렀고 금속제 상하주행 셔터막을 채택하여 천으로 만들어진 라이카의 가로주행 셔터막이 햇빛에 종종 타서 구멍이 나는 문제로 부터 완전히 해방시켜 주었다. 레인지파인더의 기선장은 극단적으로 길어 초점 맞춤의 정밀성이 높았고 이 같은 장점은 특히 망원렌즈 사용시에 두드러졌다. 그리고 콘탁스 바디들의 특징인 포커싱휠이 채택되었는데 한 손(오른손)만으로도 포커싱과 셔터 릴리즈를 할 수 있도록 고안된 장치였다. 이것이 당시에 얼마나 큰 효용성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말을 탄 상태에서도 왼손은 고삐를 쥔 채 촬영할 수 있었거나 하는 장점은 있지 않았을까 싶다. 어쨌든 이 포커싱휠은 다른 카메라들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으로 콘탁스 시리즈에 계속해서 적용된다.


하지만 Contax는 유려하고 컴팩트한 디자인의 라이카에 비해 크고 둔중했다. 다소 급한 출시였는지 5년이라는 짧은 발매 기간에 비해 약 6번에 이를 정도로 잦은 성능 개선이 이루어졌고 금속제 셔터막은 햇빛에 구멍은 나지 않았지만 고장이 잦고 수리가 난해했다. 최초의 콘탁스는 여러가지 획기적인 기능을 대거 선보였지만 종합적인 완성도는 다소 떨어진 바디로 1936년 Contax II가 등장하며 단종되고 만다. 



Contax II



1936년 콘탁스의 두번째 모델 Contax II가 출시된다. 어딘가 프로토타입 같은 어설픈 디자인의 이전 모델에 비해 한결 현대적인 형태로 거듭난 Contax II는 여러가지 개선된 부분으로 당대 최고 성능을 자랑했다. 특히 하나의 뷰파인더에서 프레이밍과 포커싱이 동시에 가능해지고, 저속이 생략되거나 혹은 고속 다이얼과 분리된 라이카와 달리 하나의 다이얼에서 모든 셔터스피드의 조정이 가능했던 점은 획기적이었다. 이러한 기술은 1954년 출시된 M3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라이카에서는 가능해지는 것들이니 콘탁스의 설계가 얼마나 선진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특이하게도 최고 셔터스피드는 1/1250초였는데 이 역시 라이카에 앞선 그들의 기술력을 과시하기 위한 의도가 다분히 내포된 것이었다. 셀프타이머 역시 기본 탑재되어 IIIF모델 일부에서 처음 탑재되기 시작하는 라이카에 비해 훨씬 빠른 것이었다. Contax II에 이어 노출계를 탑재한 파생모델 Contax III도 출시되었다. 이 역시 세계 최초라 한다. (하지만 비연동식..)


이처럼 Contax II는 이미 바르낙 라이카를 압도하고 있던 Contax I에서 또 다시 발전을 이루어낸 카메라로서 프로 작가들의 고성능 카메라라는 이미지가 굳어졌고 베를린 올림픽을 맞이하여 발매된 180mm f2.8 Sonnar와 함께 스포츠 촬영에서도 역사에 남는 카메라가 된다. (손기정 선수의 마라톤 결승선 통과 사진도 Contax II와 180미리 조나가 찍었을 거란 설이 있다)




이같은 고성능을 바탕으로 Contax II는 큰 변화없이 2차대전 종전 때까지 지속적으로 생산되었다. Contax II는 특히 로버트 카파가 사용하면서 그 유명세를 떨치게 되는데 그가 찍은 유명한 사진, 1944년 6월 6일 D-Day 당일 연합군이 가장 많은 피해를 입었던 오마하 해변의 상륙 장면은 Contax II를 사용해 찍은 컷들이다. 전장의 급박함 속에서 촬영을 해야했던 그에게 콘탁스의 빠른 렌즈 교환과 필름 로딩이 크게 어필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Contax IIa



2차대전이 끝나고 5년이 지난 1950년, 콘탁스의 세번째 모델인 Contax IIa가 출시되었다. IIa의 가장 큰 특징은 전작인 II에 비해 컴팩트해졌다는 점인데 소형화는 물론 외형상의 아름다움에도 신경을 쓴 흔적이 역력하다. 크롬코팅의 개선이 이루어지고 곳곳의 금속 마무리에 화려함이 더해져 아름다운 광택을 자랑했으며 비로소 '보석같은 카메라'라는 별명이 생겨났다. 기능적인 개선 사항으로는 T셔터, 그리고 B와 1/2초 사이에 1초가 추가되었고 플래쉬 싱크 케이블 단자가 생겼다. 그보다 의미있는 개선점은 셔터스피드의 변경을 셔터를 장전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가능해졌다는 점과(Contax II나 바르낙 라이카들은 셔터 장전 후에 셔터스피드를 변경하는 순서를 지켜야 했다) 셔터막의 재설계로 고장이 잦고 수리가 난해하던 이전 모델에 비해 높은 안정성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라이카를 압도하던 성능상의 우위는 유지되었고 콘탁스의 약점이던 큰 덩치도 제법 작아지고 전체적인 디자인도 예뻐졌다. 이만하면 역대 최고의 콘탁스를, 아니 당대 최고의 카메라를 출시했다고 자이스이콘이 자신할만했다. 



1952년의 Contax IIa 광고. Contax가 내세우던 기능적 우위를 어필하고 있다.




짧은 영광과 몰락


하지만 Contax IIa의 화려한 시절은 오래가지 못했다. IIa가 출시되고 불과 5년 뒤인 1954년. 카메라 업계는 '깡패'의 출현으로 충격에 휩싸이고 만다. 그렇다. 그 유명한 라이카 M3가 등장한 것이었다. 전혀 새로운 베이요닛 마운트를 적용한 새 라이카는 렌즈의 화각에 따라 자동으로 프레임 라인이 변하는 밝고 시원한 파인더를 장착하고 있었고 그 전까지 바르낙 라이카들이 가지고 있던 여러가지 문제점들을 한방에 해결해 버린 놀라운 카메라였다. 거기에다 자동으로 리셋되는 필름 카운터와 빠른 셔터 장전이 가능한 장전 레버를 채택했고 이는 콘탁스에는 아직 없던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여전히 라이카는 아름다웠다는 점이다. 바르낙형 라이카에 비해 M3의 크기는 무척 커졌지만 아무도 이를 탓하지 않았다.  


M3의 등장으로 라이카에 대한 콘탁스의 우위는 단박에 역전되어 버렸다. Contax I 이후 20년 가량 줄곧 앞서있던 콘탁스가 한순간에 라이카에게 압도당한 것이다. 자이스이콘의 허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자료에 의하면 M3의 발매 이후 콘탁스의 시판 가격은 절반 수준으로 하락하고 말았다고도 한다. 설상가상으로 자신들의 마운트를 카피한 니콘 SP같은 카메라들도 이미 기능적으로 콘탁스를 완전히 퇴물로 만들고 있었다. 카피캣을 따돌리고 라이카를 다시 한번 압도하려면 M3 이상의 콘탁스가 필요했다. 하지만 고심끝에 자이스이콘은 콘탁스를 결국 포기하고 만다. 보석 같은 카메라는 화석이 되어버렸고 후대는 M3에 패하며 사라진 비운의 카메라로 Contax IIa를 기억하게 된다. 




Contax IIa를 위한 변명


Contax IIa는 참 운이 없는 카메라다. 발매당시 라이벌이던 Leica IIIf 등에 비해 우수했던 점은 어필되지 못하고 역대급 카메라 M3에 비교되며 혹평을 받고 있다. M3에 패했다는 것만으로 이렇게 까여야(?) 한다면 세상에서 M3 앞에 당당할 카메라가 몇 개나 있는가. Contax IIa에 대해 변명을 해주고 싶었다. Contax IIa가 조금만 더 좋은 카메라였다면, 혹은 뒤이어 새로운 Contax가 출시되었더라면 이 정도로 역사 속에 묻힌 카메라가 되지는 않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을 곧잘 하곤 했다. 도대체 왜 자이스이콘은 그러질 못했을까. 여기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추론해본 것들을 얘기해보기로 한다. 



① 이미 달성한 압도적 성능 우위, 크기만 줄이면 된다!


Contax IIa가 M3의 획기적 발전 앞에 한방에 나가 떨어지게 된 결정적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Contax I 부터 이미 바르낙 라이카를 압도하고 있던 성능상의 우위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앞서도 언급했듯 베이요닛 마운트, 프레이밍과 포커싱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뷰파인더, 저속과 고속 영역이 합쳐진 셔터스피드 다이얼, 뒷판의 열림 등은 M3가 등장하기 전까지 라이카에선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카메라의 성능 뿐만 아니라 콘탁스용 칼 자이즈의 렌즈들 또한 당대 라이카의 그것들 보다 뛰어난 화질을 자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콘탁스의 판매량이 라이카에 미치지 못하는 점에 대해 자이스이콘은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고 결국 그 원인은 콘탁스의 큰 크기 때문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Contax IIa의 개발 방향은 그래서 기능의 향상보다는 크기를 줄이고 디자인을 개선하는 쪽으로 수립되었다. 침동식 엘마를 장착한 바르낙의 컴팩트함에 매료된 애호가들의 마음을 뺐어오려면 자잘한 기능상의 우위보다는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크기에만 집착하는 동안 자이스이콘은 라이카가 준비한 강력한 한방에 대응할 거시적 시각을 가지지 못했다. M3가 제시한 방향은 그게 아니었다. 자이스이콘이 크기를 줄이는데 집착하는 대신 35미리 프레임 라인부터 시작하는 멀티 프레임을 가진 혁신적인 파인더가 탑재된 콘탁스를 개발했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실제 자이스이콘은 크기를 줄이는데 집착한 나머지 몇가지 문제점을 야기시켰는데 그렇지 않아도 좁던 파인더가 조금 더 좁아졌고 기선장의 길이가 줄어 초점 맞춤의 정밀도도 다소 떨어졌다. 하지만 이 두가지는 그럼에도 불구 바르낙보다는 여전히 우수한 부분이라 감수할 수 있었다. 유저들 입장에서 당황스런 문제는 전쟁전에 생산된 35미리 비오곤 렌즈가 장착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전전형 35미리 비오곤은 특유의 설계로 인해 후옥이 유난히 길고 컸는데 크기가 작아진 Contax IIa에는 후옥이 들어가질 않았던 것이다. 물론 칼 자이즈사는 새롭게 설계한 전후형 35미리 비오곤을 발매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지만 자이스이콘 입장에서 크기를 줄이는데 얼마나 사활을 걸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부분이다. 



② 2차 세계 대전과 독일의 분단


라이츠에 비해 자이스이콘은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굴곡을 더 많이 겪어야 했다. 전쟁 기간 동안 독일의 주요 공업도시들은 연합군 폭격기들의 공습에 시달렸고 이는 자이스이콘의 카메라 공장이 있던 드레스덴도 마찬가지였다. 자이스이콘 드레스덴 공장 역시 폭격을 맞아 가동이 중지되었고 개발 중이던 주요 시제품과 설계 자료들이 몽땅 사라지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드레스덴은 소련군 점령 지역이 되면서 자이스이콘의 공장 설비와 생산에 필요한 재료들은 소련으로 옮겨진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숙련된 기술자들도 함께였다. 거기에다 자이스이콘은 잠수함의 잠망경, 전차의 조준경 등 직접적인 전쟁 무기를 생산했다는 이유로 전범 기업으로 분류되어 고초를 치른다. 반면 라이츠사는 쌍안경 등 일반적인 광학장비만을 생산했기에 전범 기업에 포함되지는 않았다.


폭격을 맞은 자이스이콘 드레스덴 공장. 1947년경 미군에 의해 촬영된 사진이다.


상황이 이러했으니 서독 슈트르가르트의 자이스이콘은 반쪽 짜리 회사밖에 되지 못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기술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전쟁 후의 혼란스런 상황을 고려해볼 때 획기적인 새로운 콘탁스가 나올 수 있는 여건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오히려 종전 후 5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 (Contax IIa는 정확히는 49년 11월에 발표되었다고 한다) Contax IIa 같은 카메라를 만들어낸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③ 자이스이콘의 합리적(?) 상황 판단


M3의 등장을 지켜본 자이스이콘은 M3를 압도할 수 있는 새로운 콘탁스의 개발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러자면 일단 파인더의 개선이 가장 시급했을 것이다. 그리고 M3처럼 렌즈에 따라 자동으로 변환되는 프레임 라인을 적용하려면 라이츠가 그러했듯 새로운 마운트를 설계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높은 제작 비용이 드는 파인더 개선과 마운트 변경이라는 도박을 시도하기에는 성공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다. 그리고 앞으로 시장의 대세는 분명 SLR이 될 것이었다. 콘탁스 말고도 엄청난 카메라 라인업을 갖추고 있던 자이스이콘은 성공 가능성이 희박한 Contax에만 집중할 수는 없었다. 결국 자이스이콘은 Contax를 포기하고 SLR인 Contarex 개발에 집중하기로 결정한다. 이는 물론 당시로서는 지극히 합리적인 판단이었으리라 여겨진다. 실제 60년대 이후 대세는 완전히 SLR이 되어 일본 카메라 업계들이 세계 시장을 석권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라이츠 역시 심각한 경영 위기를 겪으며 망하기 직전까지 갔으니 말이다. 문제는 저렴하고 우수한 성능의 일제 SLR에 비해 자이스이콘의 Contarex는 지나치게 비싸고 고급스러웠다. 이미 일본 메이커들이 장악한 시장에서 자이스이콘의 승부수는 신통치 못했다. 결국 1972년에 이르러 자이스이콘은 모든 카메라 생산에서 손을 떼고 만다. 




오늘날 콘탁스의 매력


콘탁스는 분명 사용하기 편한 카메라는 아니다. 프레임 라인도 그려져 있지 않은 작은 뷰파인더에다 셔터 장전도 돌림식이라 속도가 느리다. 하지만 이것은 지금의 시각일 뿐이며 또 M형 라이카와의 비교일 뿐이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사랑하고 있는 바르낙 라이카에 비해서는 훨씬 사용하기 편리한 카메라가 바로 Contax IIa다. 잘 관리된 Contax IIa의 파인더는 좁긴 하나 어둡진 않고 이중상도 명확하다. 셔터 소리는 라이카(천 셔터막)에 비해서는 조금 더 크긴하나 절도있고 카랑카랑해 기계적 매력이 물씬 느껴진다. 아름다운 크롬 코팅은 갓 잡은 갈치를 연상케할 정도로 광택이 빛나고 렌즈 마운트와 다이얼 곳곳의 금속 가공 처리는 스위스 시계의 브레이슬릿을 보는 듯 유광과 반광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바디를 감싸고 있는 가죽은 모로코산 양가죽이라 하는데 그 보들보들한 감촉이 매우 좋다. 감성 품질도 훌륭한 카메라란 얘기다.


무엇보다 당대 최고 성능의 콘탁스용 칼 자이즈 렌즈들을 저렴한 가격에 사용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서 가치가 가장 중요하다 하겠다. 전쟁 후 서독에서 생산된 Zeiss-Opton 혹은 Carl Zeiss 각인의 렌즈들은 고급스런 크롬 광택 마무리와 부드러운 조작감, 그리고 T코팅이 적용된 우수한 성능을 자랑하는 명렌즈들이다. 그 중에서도 50mm f1.5 Sonnar와 21mm f4.5 Biogon은 아답터를 이용해 라이카 바디에 이용하는 이들도 많을 정도로 여전히 인기가 높으며 35mm f2.8 Biogon이나 35mm f3.5 Planar는 물론 당대 최고의 해상도를 자랑했다는 50mm f3.5 Tessar도 매니아라면 놓치기 아까운 렌즈들이다. 이 우수한 렌즈들은 사용할 바디가 극히 제한적이라는 이유로 당대 라이카 렌즈에 비해 훨씬 저렴한 가격에 거래되고 있는데 Contax IIa의 중고 가격 조차 저렴하기 그지 없으니 오리지널 독일제 시스템 RF카메라를 즐기기에 이보다 효율적인 방법이 있을까. 물론 라이카에 비해 물건이 귀하여 꽤 오랜 정성과 '운'이 필요하긴 하지만 '돈만 있으면 구하는' 라이카에 비해 그 만족감은 더욱 크다고 얘기하고 싶다. 



내가 갖고 있는 Contax IIa와 렌즈들. 다 합쳐봐야 라이카 Summicron 35mm f2.0 1st 일명 '8매' 하나는 살 수 있을까 싶은 가격이지만 보석 같은 얘네들을 8매 '따위'와 바꿀 수야 있나.



라이카에 맞섰던 또 하나의 최고의 카메라였던 콘탁스. 비록 바르낙과 M 사이, 그 어설픈 위치에서 진화를 멈추고 말았다는 점이 안타깝지만 이야기 거리 풍부한 역사적인 카메라임에는 틀림없다. 리뷰를 쓰다보니 문득 이런 생각도 든다. 

'그래도 콘탁스가 있었기에 Leica M3라는 역사에 남을 카메라가 탄생한 것이 아닐까.' 

콘탁스의 여러가지 편리함과 기능상 우위는 분명 라이카를 자극했을테고 그 결과로 탄생한 것이 M3라면 콘탁스의 쓸쓸한 오늘날의 처지가 그리 딱하게만은 여겨지지 않는다. 반세기전 독일 광학업계의 마지막 전성기, 시장의 주도권을 치열하게 다투던 전장에서 패자로 퇴장해버린 Contax IIa. 세상은 승자만 기억한다지만 그에 못지 않은 패자의 이야기도 사뭇 흥미로운 법이다. 그리고 그 상대가 하필 넘사벽 M3였다. 그를 너무 탓하지는 말자. 지금보다는 더 멋진 카메라로 기억되길 바라며 긴 글을 마친다.


Leica M3 + Carl Zeiss 50mm f1.5 Sonnar






Contax IIa / Carl Zeiss 50mm f3.5 Tessar


2017.01.22

날씨는 너무 춥고 심심해서




2016.11.27. 포항

Contax IIa / Biogon 35mm f2.8 / Ilford HP5+ 400 / IVED

Contax IIa / Carl Zeiss 50mm f1.5 Sonnar / Zeiss-Opton 35mm f2.8 Biogon / Carl Zeiss 21mm f4.5 Biogon


구입한지 거의 10년이 지난 Contax IIa에 슬슬 문제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저속셔터가 늘어지고 고속에서 상단끝부분의 노광이 제대로 되지 않는 상태. 심지어 11월 마지막 주 죽도시장 새벽 출사에서 한파를 견디지 못하고 셔터가 작동하지 않기를 몇 회. 더이상 버틸 재간은 없었다. 오버홀을 다시 해줄 때가 된 것이다.


다른건 몰라도 Contax는 무조건 중앙카메라에 맡기고 싶었다. 금속날로 이루어진 Contax의 셔터막은 손을 대기가 까다로워 제대로 하는 곳이 몇 없다. 사장님 연세도 있으시고 슬픈 얘기지만 사장님이 일을 그만하시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앞섰다. 무뚝뚝하기 그지 없는 사장님과 통화를 나누고 카메라를 포장했다. 직접 찾아가서 뵙고 부탁드리고 싶었지만 변방에 사는 사람이 이 것 하나 때문에 한양으로 올라갈 수는 없었다. 기왕 보내는 김에 초점링 돌림이 너무 빡빡하던 35mm 비오곤이랑 조리개 지침이 눈금과 다소 어긋난 상태이던 21mm 비오곤도 함께 넣었다. 


약 2주만에 돌아온 녀석들은 아주 건강해져 있었다. 셔터속도는 당연히 정상으로 돌아왔고, 약간 맥없이 풀어지는 듯한 느낌의 셔터는 아주 야무지고 절도있게 작동된다. 파인더도 아주 맑고 깨끗해졌고 와인딩 놉과 헬리코이드 등 곳곳의 조작감도 매우 부드러워졌다. 35미리 비오곤도 적당한 저항이 묵직하게 느껴지는 딱 좋은 정도로 윤활 작업이 잘 되었고 볼 때 마다 개운치 않던 21미리 비오곤의 조리개 지침도 눈금과 맞아 떨어지니 속이 시원하다. 


상대적으로 중고가가 그리 비싸지 않은 Contax IIa를 위해 상당한 오버홀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사실 그리 효율적인 선택은 아니다. 같은 가격으로 오버홀 대신 바디를 새로 구할 수도 있을 정도니까. 장터에 Contax IIa 매물이 나올 때 마다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손 때 묻은 내 카메라이기에, 이 녀석이 남겨준 필름과 추억들 때문에 이렇게 고쳐주며 쓰는 것이다. 어쨌거나 내년이면 딱 60년이 되는 할아버지 카메라가 주기적 관리만 해주어도 이렇게 멀쩡히 현역으로 활약할 수 있다니.. 이런 카메라는 단순히 기계, 도구, 물질이라고만 부르기 미안할 정도다. 


2016.12.15.































































2016.09.04. 포항






























































2016.09.10. 포항































































































































요건 백창원님이 찍어주신 컷. Leica M6 / UC-Hexanon 35mm f2.0 / Kodak 400TX / IVED




2016.08.15. 포항

















2015.09.29 경주


간만에 21mm 4.5 Biogon으로.

"아, 콘탁스 그거 정말 좋은 카메라였는데!"


내 목에 걸린 카메라를 보시자 마자 최민식 작가께서 내뱉으신 말씀이었다. 해운대에 있는 고은사진미술관에서 그의 전시회를 관람하고 나오던 길에 우연히 마침 전시회장에 나와계시던 작가를 마주쳤던 것. 연예인이라도 만난 듯 흥분하여 사인을 받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헤어졌었다. 그리고 얼마 후 작가께선 세상을 떠나셨으니 그 만남이 새삼 얼마나 소중한 기회였나 싶다. 최민식 작가께서도 한 눈에 알아보신 콘탁스. 작가께서는 주로 라이카와 니콘을 사용하셨던 걸로 알고 있는데 그에게도 콘탁스는 참 좋은 카메라로 각인되어 있었나보다. 







2006년 구입당시 처음 찍어줬던 증명사진. 칼라다이얼의 후기형에 T코팅 Carl Zeiss Jena 50mm 2.0




보석같은 카메라?


사실 흔히 얘기되는 '보석같은 카메라'라는 표현에 크게 공감해본 적은 없다. 어디서부터 유래된 말인지 모르지만 해외 사이트에서도 종종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 혹은 일본에서만 통용되는 표현만은 아닌듯 하다. 하지만 나는 보석보다는 오히려 딱 카메라다운, 오로지 기능을 위해 설계된 듯한 공학적 아름다움을 느꼈다. 물론 그렇다고 미국제 공산품 같은 투박하고 실용적인 느낌만의 디자인은 아니다. 





우아한 라이카와 달리 다부진 콘탁스는 왠지 흑백으로 다큐를 찍으면 저절로 기가 막힌 작품을 만들어줄 것만 같았다.



보석같은 카메라라는 별명은 아마도 콘탁스 곳곳의 아름다운 가공 처리 때문일 것이다. 2차대전 전의 Contax II에 비해 전쟁 후의 IIa는 크기가 작아지고 몇가지 소소한 기능의 개선이 이루어졌는데 특히 외관의 크롬처리와 소재의 고급스러움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수준이었다. 보통 오랜 전쟁을 겪고 난 후 공산품의 품질이 열악해지거나 원가절감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반해 다소 의외다.





아름다운 실버 크롬의 Contax IIa


콘탁스의 실버크롬은 갓 잡은 갈치 마냥 반짝이는 광택을 자랑하는데 이는 어느 다른 카메라 보다도 아름답게 반짝인다. 다만 코팅의 두께는 다소 얇은 듯하다. 일반적으로 실버크롬 바디들은 황동이 드러나기 쉽지 않은데 Contax IIa는 모서리 부분의 황동이 드러난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매끈하게 폴리싱 처리된 독특한 구조의 마운트


렌즈 마운트부와 다이얼 곳곳에는 바디의 크롬코팅과는 또 달리 매끈하게 폴리싱 처리되어 있어 단조로울 수 있는 표면에 포인트를 준다. 마치 스위스 시계의 브레이슬릿을 보는 듯한데 적지 않은 가공 비용이 들었음이 짐작된다. 콘탁스의 마운트는 특이하게도 내부는 50mm용, 외부는 광각과 망원용으로 이중 설계되어 있고 초점 조절 또한 렌즈를 직접 돌리거나 바디 전면의 톱니바퀴를 돌려서도 가능하다. 이렇게 설계한 까닭이야 있었겠지만 그냥 나사식으로 돌려끼우던 바르낙에 비해 생산 단가를 올리는데 큰 영향을 줬을 것 같다. 





양가죽 커버와 조금씩 솟아오른 '자이즈의 혹'


바디를 감싸고 있는 가죽은 모로코산 양가죽이라고 하는데 라이카의 볼커나이트도 당시로선 최첨단 소재였다고 하나 이쯤되면 사치스럽다고 여겨질 정도다. 오늘날에는 가죽을 붙힌 접착제 성분이 오래되면서 부풀어올라 '자이즈의 혹'을 만들어내는 문제가 있다. 심하지 않으면 '애교'로 넘어갈 수 있는 부분. 





라이카를 압도했던 성능적 우위


콘탁스는 동시대의 라이카의 바르낙보다 성능적으로 우월한 부분들이 많았다. 


일단 통채로 열리는 뒷덮개와 편리하게 끼울 수 있는 필름 스풀로 인해 바르낙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편리하고 빠른 필름 로딩이 가능했다. 또한 초점 맞춤과 구도 확인이 하나의 파인더에서 가능한 점과 하나의 다이얼에서 전 구간의 셔터스피드를 설정할 수 있다는 점도 초점 맞추고 구도 맞추고, 저속따로 고속따로 맞춰야하던 바르낙에 비해 훨씬 편리한 촬영을 가능케한 부분이었다. 바르낙 III모델 이전까지 1/500초가 한계였던 시기 콘탁스는 이미 1/1250초가 가능했다. (근데 굳이 1/1250초는 무슨 의미였을까..)


설계 부분을 보더라도 셔터스피드 다이얼, 셔터릴리즈 버튼, 필름 카운터, 필름 진행 와인더가 하나의 축에 붙어 있고 이는 필름타입 설정 다이얼이 있는 필름 되감기 놉과 좌우대칭을 이루며 간결한 상판 디자인을 구성하고 있다. 이것저것 다 따로 놀고 있는 바르낙의 상판과 비교되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필름 리와인딩 해제 버튼도 바닥에 깔끔하게 함몰되어 있어 깔끔하다. 또한 Contax II에 비해서는 짧아졌다지만 여전히 긴 Contax IIa의 기선장은 초점 맞춤의 정밀도에서도 바르낙에 비해 유리했다.





이처럼 통채로 열리는 뒷판으로 인해 좁은 홈을 통해 필름을 쑤셔넣는 수고따위 없이 현행 카메라처럼 쉽게 필름 장착이 가능했다.





필름 스풀에는 이같은 돌기가 있어 쉽고 빠르게 필름을 걸 수 있고 절대 풀리지 않는다. 다만 되감을 때 무리하게 잡아당겨서 필름이 뜯기면 그 조각이 간혹 셔터막으로 들어가 고장의 유발할 수도 있다고 하니 주의. 적당히 감다가 멈추면 그대로 뒷판을 열고 빼는 것이 좋다.





바르낙의 미학적인 아름다움은 둘째로 하고 콘탁스가 얼마나 간결하게 설계된 카메라인지 알수 있는 상판 배치



깡패의 등장. Leica M3, 그리고 화석이 되어버린 보석


하지만 바르낙에 대한 콘탁스의 비교 우위는 너무나도 유명한 라이카 M3 등장으로 한방에 역전되고 만다. M3는 뭐 어디에서도 얘기가 빠지지 않는 그야말로 RF카메라계의 깡패인 듯. 흔히 M3의 등장이 니콘과 캐논의 RF카메라 개발 의지를 꺾어 SLR로 집중하게 했다고 하는데 자이스이콘도 마찬가지가 아니었나 싶다.  


3개의 프레임을 지원하는 밝고 시원한 파인더는 그야말로 충격적이었고, 뒷판도 이제 열려 바르낙의 대표적 불편함을 해결했다. 돌려감기식이 아닌 레버식의 채용으로 빠른 필름 장전이 가능해졌고, 필름 카운터도 자동으로 리셋됐다. 새로운 베이요넷 M마운트의 채용과 오늘날도 인기가 식을 줄 모르는 1세대 주미크론 등의 우수한 렌즈 라인업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기가 막힌 조작감과 정숙한 셔터음, 우수한 내구성 등등 뭐 그야말로 역사적 명기의 등장이었던 것. 이후에 나온 모든 라이카 M라인업도 M3 앞에서는 한두가지씩 모자랄 정도니 말 다한 듯. 


이렇듯 완벽한 카메라의 등장 이후 자이스이콘은 기가 질렸는지 더이상 콘탁스의 후속기를 내놓지 못했고 Contarex와 같은 SLR 라인업을 출시하며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는가 했지만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자이스이콘 입장에서 대세는 이제 SLR이라고 판단했었던 걸수도 있지만 콘탁스의 후속이 더이상 나오지 않았다는 점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바르낙과 M사이. 콘탁스는 그렇게 어중간한 위치에서 결국 진화를 멈추고 말았다.



오늘날 가장 저렴하게 사용할 수 있는 오리지날 독일제 시스템 RF카메라로서의 가치


자이스이콘도 망하고 그렇게 잊혀진 옛 명기가 돼버린 콘탁스가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계기는 뭐니뭐니해도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라는 책의 출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중적 인지도의 상승이 꼭 인기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 오늘날에도 콘탁스 매니아는 소수일 뿐이다. RF카메라는 어쩌면 '라이카와 나머지들'로 분류할 수 있을 정도로 라이카 M의 위상이 워낙 독보적이라 콘탁스의 존재감은 약할 수 밖에 없고 막상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도 아니다. 보관 상태가 좋은 콘탁스는 드물고 50mm Sonnar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교환 렌즈들은 구경하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대체품이 많지도 않아 라이카 스크류 마운트나 M마운트와 달리 호환되는 렌즈나 바디도 거의 없다. 물론 전혀 없지는 않아서 코시나에서 발매했던 R2C/S와 니콘의 S2, SP같은 기종과 2차대전 승전의 전리품이 된 소련의 키에프를 들 수 있는데 문제는 얘네들도 그리 흔하지는 않다는 거다.





매니악한 기질의 코시나에서 내놓은 R2C. 미묘하게 다른 니콘 마운트용 R2S도 함께 발매됐다. 구입하진 않았지만 이런게 세상에 나온 것만으로도 당시 너무 고마워 했었다.





콘탁스 마운트를 기본으로 많은 부분을 개선해서 내놓았던 니콘의 S시리즈 중 S2 모델. 니콘의 F시리즈보다도 더 야무지고 솔직하게 생겼다. 남대문을 뻔질나게 다니던 대학교 시절 쇼윈도 넘어 처음 보았던 이 카메라가 콘탁스에 꽂히게 되는 신호탄이 되기도 했다.





마지막 대안은 소련에서 생산한 Contax II의 카피 Kiev. 50년대 초반까지의 생산제품들은 오리지널 Conatx II의 부품을 그대로 썼다고 해 품질 차이가 없어 가격대도 꽤 비싸게 거래되고 있지만 그 이후로 갈수록 품질이 조악해진다. 내가 써본 사진의 것은 플라스틱 부품이 많이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품질이 저하되기 시작한 후기형과 초기형의 사이 정도. 생각보다 렌즈의 성능은 괜찮았다. 키에프는 Contax II와 기본적으로 같은 카메라라 Contax II를 사용하는 이들이 서브로 쓰거나 부품용으로 가지고 있기도 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콘탁스의 가격은 번들 렌즈처럼 따라다니는 우수한 성능의 50미리 조나 렌즈를 포함해도 4~50만원대로 저렴하게 형성되어 있다. 이는 오히려 구입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유리하게도 작용하고 있다. 라이카는 언감생심 꿈도 못꿀 형편이라면 오리지널 독일제 RF카메라를 저렴하게 쓸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할까. 그것도 한 때 광학적, 성능적으로 라이카를 압도했던 자이스이콘의 카메라와 렌즈를 말이다. 





50미리를 애용한 것으로 유명한 브레송의 경우도 콘탁스용 50mm 1.5 Sonnar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아마도 그의 초창기 작업 시절에는 라이카의 빠른 50mm가 마땅치 않아서였을지도. 아쉽게도 그가 조나를 사용하는 사진은 찾지 못했다. 대부분 1세대 주미크론 침동식과 1.5 주마리트를 사용하고 있는 사진으로 보이는데 M마운트의 밝은 50mm 렌즈들이 나오면서부터 아답터를 사용해야하는 불편한 자이즈 렌즈는 더이상 많이 사용하지 않았던게 아닐까 추측된다.



- 해외 어느 포럼에서 본 댓글 -





브레송도 사용했다니 다시 보이는 50mm 1.5 Sonnar




Conatx를 쓴다면 꼭 가져봐야할 전설의 광각렌즈. 21mm 4.5 Biogon


앞서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독일제 RF라고 했는데 저렴하게 누릴 수 있는 재미는 딱 50미리까지! 

50미리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교환렌즈들은 모두다 구하기 어렵고 되팔기 어렵고 가격도 저렴하지 않은 금단의 영역들이다. 50mm중에서는 유독 엄청난 가격에 거래되는 50mm 3.5 Tessar라든지 35mm 2.8 Biogon, 35mm 3.5 Planar, 21mm 4.5 Biogon등이 대표적인 명렌즈들. 그 중에서 내가 소유한 것은 21미리 비오곤이다.





21mm 4.5 Biogon과 전용 파인더를 장착한 Contax IIa


전설도 많고 명기도 많은 카메라/렌즈의 세계에서도 20세기 최고의 광각 렌즈로 손꼽히는 21미리 비오곤이다. 렌즈 후면이 필름면 근처까지 바짝 붙는데 이로 인해 왜곡 억제력이 우수하다고 한다. 사실 개인적으로 렌즈의 광학적 성능을 논할 전문적 지식도 없고 대형 인화를 자주 하지도 않기에 성능을 체감할 경우가 많지는 않다. (자가 인화를 하던 시절이 그립다) 


하지만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칭송하는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란 '종교적 신념'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결과물 역시 언제나 만족스러웠다. 21미리라는 화각이 다소 부담스러울 때도 있지만 적응되자 의외로 편안하고 시원한 화각이었고, 스냅에서도 상당히 편리한 면이 있다. 깊은 심도로 인해 초점 맞춤에 신경을 덜 써도 되고 어차피 외장 파인더로 구도를 잡으니 어둠침침하고 흐린 카메라의 파인더도 상관이 없었다. 감도 400이상의 필름을 넣고 조리개 팍 조이고 돌아다니다 게눈 파인더로 보고 그냥 찰칵 하면 끝이다. 부드러운 조리개와 묵직하면서 적당한 저항이 느껴지는 초점링, 견고하게 체결되는 마운트의 조작감까지 단연 최고다. 




M의 그림자만 벗어난다면 행복하다.

콘탁스에 대해 혹평하는 이들은 대부분 M형 라이카를 사용하는 이들이다. M시리즈를 한번이라도 사용해본 사람이라면 아마 대부분 비슷할 것이다. 다행히 나는 라이카보다 콘탁스를 먼저 사용했기에 어둡고 작은 뷰파인더가 불편한지 몰랐고(안경을 안쓰기에 가능했을 수도..) 유럽식 셔터스피드 다이얼도 상관없었다. 자그마한 크기에 반짝이는 크롬 코팅이 더해진 멋진 디자인과 금속제 셔터막이 내주는 카랑카랑한 셔터소리와 양가죽의 부드러운 질감은 시각적 청각적 촉각적 만족을 주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라이카 M을 부러워하지 않고 충분히 만족하며 콘탁스를 휘두르고 다녔던 시절이 참 즐거웠고 60년이 다된 카메라를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감탄했었다. M과 비교하자면 부족한 부분이 없지 않은 카메라지만 패자와 약자에겐 어차피 조금은 너그러운 잣대를 들이대는게 보통의 심리가 아닐까. 기백만원을 주고 산 카메라가 아니기에 '그래 괜찮네.' 그렇게 만족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




꼽사리로 등장하는 나의 Leica M3. 한번은 써보고 죽자며 뒤늦게 들였는데 의외로 받아들고 나서 별 감흥이 없었다. 한 롤도 찍기 전에 'Elmar가 좋아봐야 Sonnar 보다 못할 거 같은데 그냥 다시 팔아버릴까?' 하며 고민을 꽤 하긴 했었다. 



그리고 Robert Capa


브레송이 라이카와 자연스레 연상되는 작가라면 콘탁스를 사용한 작가로는 단연 로버트 카파가 유명하다. 스페인 내전부터 2차세계대전과 베트남전쟁까지 전장을 주로 누빈 그에게는 콘탁스의 편리함이 크게 어필했던 것일까. 한 때 카파에 푹 빠져 그의 사진집을 주구장창 보던 시절도 있던 나였기에 그가 사용했던 카메라를 쓰고 싶었던 것은 당연한 수순이기도 했다. 





미군 공수부대 점프 수트를 입은 카파(왼쪽)와 조지 로저(오른쪽)가 얘기를 나누고 있는 사진. 카파의 목에 걸린 Contax II가 보인다. 그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가장 피해가 컸던 오마하 해변에서 목숨을 내놓고 귀중한 상륙작전 1진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겼고 그 날의 소중한 기록은 훗날 '라이언 일병 구하기' 상륙작전 씬을 연출하는데 결정적 자료가 되기도.. 





카파가 남긴 마지막 컷. 1차 베트남 전쟁 중이던 1954년 5월, 노르망디 해변에서도 무사했던 그의 운명이 다한 날이 찾아왔다. 정찰 부대를 따라 이동하던 카파는 사진을 찍기 위해 지프에서 내려 움직였고 얼마 뒤 지뢰를 밟고 쓰러졌다. 그의 손에는 Contax IIa와 Nikon S가 들려있었다고 한다.





카파의 사진집과 내 콘탁스들. 교환렌즈를 갈아끼우는 것이 귀찮다는 이유로 21mm Biogon용 바디를 하나 더 들여 2대가 되었다. 




역사상 다시 나올 수 없는 카메라에 대한 애도


역사는 승자만 기억한다고 하지만 패자의 비장한 이야기에 더 많은 관심이 가고 대중적으로 선호되지 않는 것을 소유할 때는 더 많은 애착이 가기 마련이다. SEIKO의 쿼츠 시계가 스위스 기계식 시계 산업을 고사 직전으로 몰아붙여 인하우스 무브먼트를 만들던 명가 여럿을 망하게 만들었 듯, 니콘, 캐논 등의 일본 메이커들로 인해 어차피 자이스이콘, 그리고 콘탁스의 명줄은 그리 길게 가지 못했을 것이다. 제품 원가와 생산 효율만을 앞세우지 않고 장인 정신을 쏟아내던 마지막 시대를 장식한 콘탁스라는 명기는 라이카와 굳이 비교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아름답고 훌륭한 카메라로 기억되기 충분하다.


내게 와있는 2대의 콘탁스는 서독 슈트르가르트에서 태어나 60년의 세월동안 전 세계 어디에서 누구의 손에서 무엇을 찍다가 나에게 왔을까? 오랜 세월에도 곱게 늙은 상태로 별 탈없이 내 손까지 온 얘들의 마지막 주인은 내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오버홀 해줘야 되는데..)



마무리 안되는 사용기는 몇몇 작례들을 늘어놓으며 슬쩍 끝내겠다. 2010년 이후 한동안 필름으로 사진을 안찍다보니 다 예전 사진;





2008.03 부산 / 21mm 4.5 Biogon / TMY





2008.03 부산 / 50mm 1.5 Sonnar / 400TX





2008.03 부산 / 21mm 4.5 Biogon / TMY





2008.03 부산 / 50mm 1.5 Sonnar / 400TX





2008.03 부산 / 21mm 4.5 Biogon / 400TX





2007.08 대구 / 50mm 2.0 Sonnar / Delta100





2007.10 경주 / 50mm 2.0 Sonnar / Agfa ULTRA100





2007.11 포항 / 50mm 2.0 Sonnar / Agfa ULTRA100





2007.12 포항 / 50mm 2.0 Sonnar / Reala



2007.12 포항 / 50mm 2.0 Sonnar / Reala





2007.12 포항 / 50mm 2.0 Sonnar / Reala





2007.12 포항 / 50mm 2.0 Sonnar / Reala





2007.12 포항 / 50mm 2.0 Sonnar / Reala





2007.12 포항 / 50mm 2.0 Sonnar / Reala





2008.02 청도 / 50mm 1.5 Sonnar / Autoauto200





2008.02 포항 / 21mm 4.5 Biogon / TMX





2008.03 포항 / 21mm 4.5 Biogon / 400TX





2008.05 나가사키 / 21mm 4.5 Biogon / 400TX





2008.05 나가사키 / 21mm 4.5 Biogon / 400TX





2008.05 구마모토 / 50mm 1.5 Sonnar / 400TX





2008.09 경주 / 21mm 4.5 Biogon / Agfa ULTRA100




2008.10 포항 / 21mm 4.5 Biogon / RVP





2010.03 포항 / 21mm 4.5 Biogon / TMX





2010.03 포항 / 21mm 4.5 Biogon / TMX





2015.07 경주 / 50mm 1.5 Sonnar / TMX





2015.07 경주 / 50mm 1.5 Sonnar / TMX





2009.01 포항 / 50mm 1.5 Sonnar / 400TX





2015.09 경주 / 21mm 4.5 Biogon / APX100





2015.09 경주 / 21mm 4.5 Biogon / APX100




-끝-














































2015.07.04 안강


거의 5년만인가. Contax IIa로, 그리고 필름으로 사진을 찍은 것이. 이날 이후 다시 손맛이 그리워 필름으로 요즘은 열심히 사진질 중이다. 최근 몇년간 느껴보지 못한 오랜만의 열정과 설레임이 솟아나는 필름 사진의 르네상스 2015년. 




정말 오랜만에 꺼낸 Rollei 35. 배터리는 오래되어 부풀어 올라 잘 빠지지도 않아서 식겁하고 안에는 뭘 찍던건지, 또 뭔지도 모를 필름이 들어있었다. 감도 설정 및 필름 타입 설정 다이얼을 보니 감도 400짜리 흑백 필름인 것 같았는데 일단 거기에 맞춰 남은 10여컷을 찍고 빼보니 일포드 델타 400. 음..언제 넣었던건지 기억도 안난다. 현상이 기다려진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는 내가 사랑해 마지않던 Contax IIa를 들고 나갔다. 필름은 유통기한 따위는 이미 진작에 지났을 코닥 TMX를 넣고.. 21mm Biogon을 꽂아갈까 하다가 50mm1.5 Sonnar를 쓰기로. 이제 필름으로 찍기에 필름값이나 현상비나 모두 부담스러워졌음에도 난사하던 시절의 버릇이 남아 자제하기가 상당히 힘들었다. 20컷 조금 못되게 찍었는데 기대되는 컷이 몇개 있는데 궁금해 미칠 지경. 이게 필름 시절의 재미라면 재미였지. 유통기한이 지난 필름이라 다소 걱정되는데 흑백이니 별 문제없이 잘 나와주겠지. -_-



2015.07.04 




Contax IIa / 50mm1.5 Sonnar / 50mm2.0 Sonnar / 21mm4.5 Biogon


정말 좋아했던 카메라 Contax IIa와 칼자이즈 렌즈들


50년도 넘은 이 클래식 카메라는 지금 관점에서도 아름답기 그지 없다. 부산에서 열린 최민식 작가 사진전에서 우연히 최민식 작가분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카메라 예전에 참 좋았는데' 라는 말씀을 하신 기억이 생생하다. 


필름이 귀해지고 현상, 스캔할 시간도 열정도 부족해진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게된.. 이 녀석들을 메인으로 들고 촬영했던 때가 2008년 규슈 여행이었나. 그 이후로는 딱히 기억도 나지 않는구나.


시간날 때 리뷰라도 한 편 써주고 치장물자로 보관해야겠다.




송도 해수욕장의 모습을 뒤바꿔놓은 해안도로 공사도 거의 마무리되었다.




축대가 쌓아지고 아스팔트가 덮인 도로가 차지해버린 모래사장은 이제 거의 남아있지 않다. 뭐 이미 해수욕장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던 송도해수욕장이었지만 한적한 분위기를 느끼러 찾아오기 좋았던 곳 하나가 결국 사라졌다.




반면 다 쓰러져가던 빈 집들과 상가들은 이 도로의 개통과 함께 다시 살아나게 될지.. 오늘 신문기사를 보니 모래사장을 엎어서 도로를 만든 포항시에서 송도해수욕장 모래사장 복원을 추진할 계획이라던데 파괴하기 만큼 복원하기도 쉬울 것인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어쨌든 모래사장이 포항시의 계획대로 성공적으로 복원되고 다시금 많은 관광객들이 찾게 될 명소로 거듭난다면 이런 흉물스런 폐가들 대신 번듯한 건물들이 삐까뻔쩍하게 들어설지도 모른다. 광안리처럼 변해버린 북부해수욕장처럼.




프레임만 남은 문. 송도의 골목길.




방파제 근처의 선착장 주변. 21mm Biogon의 광활함을 다루기란 여전히 쉽지 않다. 사진은 뺄셈의 예술이라 했건만 이것저것 다 들어오는 화각은 절제를 요한다.




꽃샘추위도 이제 거의 물러간 듯 하다만 바닷바람은 쌀쌀하다. 아직은 저 난로와 잡목 땔감이 유용하리라.




방파제 위에는 허름한 횟집들이 모여 있지만 언제나 한산하다. 누군가는 이 허름한 곳에서 투박하게 썰은 회 한점에 소주를 털어넣는 운치를 즐기겠지만 내가 한 번 그렇게 해본바로는 이 곳의 회 맛은 솔직히 그닥이었다.




송도해수욕장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이 '평화의 여상' 뿐인듯 하다. 촌스럽기도 하고 조형적으로도 우수해보이진 않지만 송도 해수욕장에 대한 크고 작은 추억이 있는 사람들에게 송도의 상징으로서 뇌리에 기억될 수 있는 것 중 하나일 듯 하다. 나 역시 해안도로가 건설된다고 했을 때 이 것은 좀 남겨줬으면 하는 바램이었는데 다행히 위치를 조금 옮겨 보존되었다. 이제 우리나라도 무조건 갈아 엎어버리는 불도저식 개발 시대는 지나갔음을 느낀다.

어쨌든 송도의 변화에 대한 큰 가치 판단없이 심심할 때면 들러 셔터를 눌러온지도 몇 년이 되었다. 그동안 송도의 모래사장이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했지만 이제 또 복원을 한다니 틈날 때면 한번씩 들러 또 그 모습을 담담하게 기록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2010.03.28 포항 송도



2009.08.08 포항

죽도시장



사용자 삽입 이미지


08.10.26  포항 구룡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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