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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횡단 구간에서 환바이칼 철도 구간으로 나뉘는 작은 역. 슬로쟌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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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칼도 바이칼이지만 난 사실 이 마을에서 한 참을 머물며 사진을 더 찍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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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9월  앙가라강변, 이르쿠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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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쪽 여자는 박태환을 좀 닮은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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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앙가라강에 낚시대를 드리운 할아버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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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老兵과 그의 아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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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아해들이 지키고 있는 것은 2차대전 전몰장병을 위한 꺼지지 않는 횃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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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대중인 단원들 중 남자애는 우리와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바이칼 일대의 원주민 부리야트족인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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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9 몽골 울란바토르
왠지 특파원 분위기가 난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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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란바로트 시가 : 소련 영향의 각종 극장과 관공서, 그리고 몽골에서 무척 어울리는 Toyota의 Land Cruis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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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을 당시에는 별 생각없었는데 스캔하고 보니 톤이나 질감이 참 담백한 느낌이다. 역시 흑백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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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하바토르광장의 특이한 공중전화 : 약속 장소에서 늦게 나오는 남친에게 전화하는 듯한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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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쿠츠크 공항에 도착한 직후.
울란바토르와 달리 활기찬 느낌이 들지는 않았던 러시아와의 첫 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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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름대로는 인생의 숙원목표 중 하나였다. 바이칼호에 가보는 것.
아무래도 북방계 몽골로이드의 유전인자가 흐르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을 정도로 가보고 싶었던 그 곳에서
 그에 걸맞는 장엄한 사진을 담아내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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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9월 앙가라 강변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많이 보이지 않는 하얀 자작나무를 실컷 볼 수 있었던 시간.
자작나무는 참 포토제닉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얀 껍질의 질감과 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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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9. 24  Irkut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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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여름  안동 봉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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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가을  인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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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4월 회기역

 구걸하는 할머니라곤 생각도 못할 정도로 꽤 말쑥하신 분이셨는데 두 손엔 몇 푼의 동전이 들어있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난 다짜고짜 카메라를 들이대고 사진을 좀 찍겠다고 말씀드렸고 앞 뒤로 오가며 3-4컷을 눌렀다. 그리고 인사를 하고 천원짜리 한장을 드렸던 것 같다. 할머니는 화를 내지도 슬퍼하지도 그냥 처음과 같은 표정으로 카메라를 대했다.

상당히 부끄러워 지는 사진이다. 앞에서 찍은 컷은 차마 올릴수도 없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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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4월 2일  인사동

 서울로 상경 후 일찍부터 다녔던 곳. 곳곳에 카메라를 들이댈 거리들이 있었고 가벼운 마음으로 걷기 좋은 곳이었다. 문제는 맛있는 밥집이 드물다는 것이었는데 그 것을 알 때쯤 부터 인사동에서 처음 느꼈던 감회도 사라지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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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3월 26일 올림픽공원

 처음으로 흑백 사진을 찍었던 날. 필름이 흑백이라는 점외에 전혀 새로운 기분이 들지 않았던 날이었다. 벌써 7년이나 지난 이제와 생각해보니 모르는 사람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기 시작한 첫 날이었다. 그 전에 절대 생각도 못하던 일이었는데.  이 다정한 남매는 얼마나 자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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